글램 메탈의 대표곡들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Here I Go Again '87 화이트스네이크, 1987 | Jump 밴 헤일런, 1984 | ||
I Remember You 스키드로우, 1989 | Pour Some Sugar on Me 데프 레파드, 1987 | ||
Livin' on a Prayer 본 조비, 1986 | Sweet Child O' Mine 건즈 앤 로지스, 1987 | ||
To Be with You 미스터 빅, 1991 | Every Rose Has Its Thorn 포이즌, 1988 | ||
The Final Countdown 유럽, 1986 | More Than Words 익스트림, 1990 |
글램 메탈 Glam Metal | |
<colbgcolor=#fff><colcolor=#EB0A09> 기원 | 장르 하드 록, 헤비 메탈, 글램 록, 팝 록, 팝 음악, 아레나 록 |
지역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등장 시기 | 1980년대 초반 |
시초작 | High 'n' Dry (1981, 데프 레파드) Too Fast for Love (1981, 머틀리 크루) |
시대 | 1980년대 초반 – 1990년대 중반 (전성기 1983년 – 1991년) |
사용 악기 | 보컬, 일렉트릭 기타, 신디사이저, 베이스 기타, 드럼 |
대표 음악가 | 데프 레파드, 머틀리 크루, 밴 헤일런[후기한정], 에어로스미스[후기한정], 화이트스네이크, 본 조비, 스키드로우, 포이즌, 신데렐라, 유럽 |
[clearfix]
1. 개요
1980년대에 미국에서 등장한 하드 록, 헤비메탈 계통의 음악 장르.2. 명칭
미국에서는 글램 메탈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흔히 헤어 메탈이라고 부른다. 화려하게 머리를 기르고 다니는 멤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어감에서 느껴지듯 다소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는 표현이다.영국에서는 글램 메탈보다는 주로 헤어 메탈이나 팝 메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글램'의 느낌과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듯하다. 그리고 '글램 록과 메탈은 영국이 정통이다!' 라는 자부심에 '팝'이라는 말을 써 약간 낮추는 느낌으로 부르는 것도 있다. 한국에서는 팝 메탈이라는 말이 글램 메탈보다 훨씬 많이 사용된다.
LA 메탈은 항목이 따로 작성되어 있지만 사실 이 장르의 분파 중 하나로, LA나 미국 서부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글램 메탈 밴드만을 부르는 표현이다. 사실 LA 메탈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쓰는 표현으로 영미권에서는 그냥 글램 메탈에 다 포함시킨다.
3. 특징
글램 메탈은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의 기타 사운드에 팝 음악의 캐치한 멜로디와 훅을 결합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글램 메탈이라고 해서 밴드별로 모두 같은 음악을 한 것은 아니지만, 들어보면 비슷한 점도 많다. 예를 들어 메탈에서 사용되는 리프 개념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기타가 코드 배킹을 하며[3] 하이톤/테너 성향의 보컬이 앞으로 나서게 되지만, 그에 비해 기타 솔로는 매우 화려한 편이며 앨범에 발라드가 한두개씩 껴있다는 점이 있다. 또한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섹슈얼하고 쾌활한 느낌이 두드러지는데, 장발+메이크업+레더자켓/트러커자켓+각종 장신구 등 일반인들에게 전형적으로 인식되는 록스타의 이미지와 상업성이 가장 부각된 음악 장르이기도 하다.과거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연주력과 작곡 실력을 뽐내기 위해 7-8분짜리의 곡은 물론, 10분을 훌쩍 넘기는 대곡을 써낸 반면, 한 곡의 길이가 4분 이내로 짧아진 것도 특징이라 할수 있다. 이는 라디오나 방송에서 틀어주기 좋게 대중과 방송국의 입맛에 맞는 곡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글램 메탈이라는 것은 평론적인 개념에서 나온 말이며, 글램 메탈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활동한 밴드는 없다. 그냥 하드 락이나 헤비메탈을 주로 하는 밴드인데 위와 같은 '글램 메탈'로 규정되는 특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평론가나 언론 매체에서 글램 메탈로 분류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글램 메탈로 분류되는 밴드들은 스스로를 그냥 락 밴드, 헤비메탈 밴드로 불러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4]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펑크 록 밴드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공연하던 클럽들이 펑크 록 밴드들의 폭력성을 염려하여 이들의 공연을 거절하고 글램 메탈 밴드들 위주로 공연을 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뉴욕의 펑크 밴드들은 하드코어 펑크 밴드의 수가 상당히 많았으며, 이들의 문화이자 사상이었던 스트레이트 엣지[5]와는 문화적 상성도 맞지 않았다. 뉴욕의 펑크밴드들이 보기엔 글램메탈 밴드들은 인기에 취해 약에 쩔어 난잡한 생활을 하는 이미지가 강하기도 했다. 물론 뉴욕펑크 밴드들의 스트레이트 엣지를 강요하는 듯한[6] 강압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지자 사이가 좋아질래야 좋아질 수가 없었다.
4. 역사
4.1. 형성
주다스 프리스트 등의 밴드에 의해 시작된 NWOBHM의 물결에서, 주다스 프리스트의 명곡 Living After Midnight이나 데프 레파드의 Bringin' On The Heartbreak 등의 곡에서 영향을 받아 팝적이고 대중적인 멜로디와 메탈의 강렬한 사운드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밴드들이 많아졌으며, 미국의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밴 헤일런의 직접적인 음악적 영향 아래에서 형성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밴 헤일런과 키스 같은 예도 사실 최초가 아니라 글램 록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록 밴드 슬레이드 (Slade), 티 렉스와 데이비드 보위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있는 밴드들이다. 또한 밴 헤일런의 경우 에릭 클랩튼[7], 레드 제플린 등 블루스 음악가들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비주얼적으로는 5~10여 년 전 영국에서 태동한 글램 록과, 미국의 쇼크 록 계통 밴드인 KISS와 앨리스 쿠퍼 등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화려하게 꾸미고 분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남성 멤버들도 화장을 하고 나오는 등 글램 록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를 가장 처음 성공한 밴드는 데프 레파드로서, 이들은 글램 메탈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을 열어 젖히게 된다. 좀 강하게 얘기하자면 영국의 글램 록을 주로 미국 LA 주변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 확대 재생산하며 더 거칠고 세련되고 날카롭게 다듬어 발전한 형태라고 할수 있다.
물론 데프 레파드의 이전에도 퀸,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등 여러 밴드들이 Hammer to Fall, Soldier of Fortune 등 소프트 록, 팝 록 등의 대중적인 장르들을 블루스 록이나 하드 록에 결합시킨 노래들을 발표하면서 글램 메탈의 가능성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다듬은 것은 데프 레파드를 위시로 한 1세대 글램 메탈 밴드들이다.
4.2. 글램 메탈의 전성기
1980년대 초기에 본격적으로 미국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글램 메탈 밴드들이 등장하였다. 트위스티드 시스터는 그 중 가장 영향력있는 밴드로서, 다소 과장된 분장과 퍼포먼스로 초기 글램 메탈의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이후 현재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밴드 중 하나인 머틀리 크루 그리고 그들의 초기 라이벌인 또 하나의 명그룹 래트 등이 등장하면서, 글램 메탈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1983년 콰이어트 라이엇의 "Metal Health" 앨범이 빌보드 200에서 1주간 1위를 달성하면서[8] 본격적인 글램 메탈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으며, 동년에는 데프 레파드의 Pyromania 앨범이 빌보드 2위를 찍고 싱글 "Photograph"[9]와 "Rock of Ages"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미국에 글램 메탈을 전파하였다. 뒤이은 1984년에는 밴 헤일런의 Jump가 빌보드 핫 100 5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글램 메탈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전미에 글램 메탈의 열풍이 불어닥쳤다.[10]
1980년대 중반에는 LA를 중심으로 글램 메탈 밴드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때 등장한 밴드들은 일명 LA 메탈이라 불리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LA 메탈 참조. 또한 유럽 지역 출신의 밴드들이 글램 메탈 컨셉을 받아들여 미국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The Final Countdown이라는 곡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밴드 Europe, 본래 정통 헤비메탈 밴드였지만 대중성을 위시하여 글램 메탈을 시작한 독일의 스콜피온즈 등이 대표적이다. 핀란드 출신의 밴드인 하노이 락스는 글램 메탈의 비주얼을 확립한 밴드로도 평가받는다.[11] 게다가 에어로스미스, 벤 헤일런, 화이트스네이크 등 하드 록과 정통 헤비메탈을 연주하던 밴드들도 너나할것없이 글램 메탈의 폭발적인 인기 행진에 동참하여 글램 메탈에서 영향을 받아들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시도하여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에는 글램 메탈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밴드 중 하나인 본 조비가 등장한다. 이들은 세번째 앨범 Slippery When Wet을 1200만장 이상 판매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둔다. 또한 이 흐름 속에서 슈퍼 밴드로 평가받는 건즈 앤 로지스[12] 역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1985년에서 1990년에 이르는 이 시기를 글램 메탈의 황금기로 부르며 수많은 밴드들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5년부터는 본 조비와 포이즌을 위시로한 밴드들이 MTV의 적극적인 푸쉬를 받으면서 인기를 끌었다. 글램 메탈이 특유의 비주얼에 치중하게 된 것 역시 이때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액슬 로즈의 건즈 앤 로지스, 세바스찬 바흐의 스키드로우 등 꽃미남 보컬들을 내세운 밴드들이 활동하면서 헤어 메탈이라는 멸칭도 생겨나게 되었다. 데프 레파드의 Pour Some Sugar on Me는 MTV의 주제가라고 불릴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딥 퍼플 출신 멤버들이 결성한 화이트스네이크의 Here I Go Again도 MTV에서 크게 히트쳤다. 이때를 이른바 글램 메탈의 MTV 광풍기 혹은 제2의 전성기[13]라고 한다.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이 이 시기보다 대중적으로 더 인기를 끌었던 적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14][15]
4.3. 쇠퇴기
글램 메탈 밴드들의 빌보드 성적 비교 | |||
밴드 | Nevermind 이전 | → | Nevermind 이후 |
건즈 앤 로지스 | Use Your Illusion 1991년 / 1위 | The Spaghetti Incident? 1993년 / 4위 | |
스콜피온즈 | Crazy World 1990년 / 21위 | Face the Heat 1993년 / 24위 | |
본 조비 | New Jersey 1987년 / 1위 | Keep the Faith 1992년 / 5위 | |
데프 레파드 | Hysteria 1987년 / 1위 | Adrenalize 1992년 / 1위 | |
스키드로우 | Slave to the Grind 1991년 / 1위 | Subhuman Race 1995년 / 35위 |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일부 음악 평론가들과 팬들 사이에서는 일부 글램 메탈 밴드들의 과도한 상업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990년은 글램 메탈의 정점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만, 곧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글램 메탈에 싫증을 느낀 음반 업계는 너바나의 대박을 계기로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을 위시한 그런지 밴드들로 그 관심을 돌리게 되며, 그들을 크게 띄워주게 된다.
이 과정에는 세바스찬 바흐나 액슬 로즈 등 글램 메탈 뮤지션들이 저지른 여러 사건사고와, 메탈 음반의 제작비가 펑크 록 계통인 그런지에 비해 많이 든다는 점 등이 작용하였다. 90년대부터 대중들도 그런지에 꽂힌 사람들이 다수가 되었다. 이로서 글램 메탈은 그 전성기를 마치고 수많은 밴드들이 해체 및 활동 중지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나 모든 밴드가 활동을 중지한 것은 아니었으며, 밴 헤일런은 무려 1990년대 후반까지 그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에어로스미스는 뒤늦은 전성기를 맞아 1990년대에 오히려 팝적인 메탈 곡들이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4.4. 재결성 및 기타사항
1990년대 후반, 헤비메탈씬의 전체적인 침체기 속에서 글램 메탈 밴드들은 예전의 자신들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하여 속속 재결합 및 앨범 발표를 하기 시작한다. 본 조비는 그들의 2000년도 앨범 Crush 로 엄청난 히트를 치며 글램 메탈 밴드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으며, 머틀리 크루 역시도 1997년부터 다시 신보를 내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글램 메탈"이라는 말 자체가 글램 메탈의 쇠퇴 이후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므로 그냥 헤비메탈 밴드로 활동하고 있다.또한 "The Darkness" 등 80년대의 글램 메탈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글램 메탈 밴드들이 다시 등장하여 활동하고 있기도 하며, 특히 The Darkness의 경우 특유의 독특한 음악성과 글램 메탈 사운드를 섞은 음악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전성기를 마쳤다곤 하지만 아시아 시장에서는 아직까지도 통하고 있는데 특히나 일본의 경우는 본조비의 인기가 90년대,2000년대에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아시아에서 글램 메탈이 가장 큰 히트를 친 시장이 일본 시장인데, 본조비의 경우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현역 외국인 밴드이며, 앨범 These days 오리콘 차트 주간 1위 베스트 앨범 The cross road앨범 Have a nice day 주간 1위[16] The Circle 1위 오리콘 차트 주간 1위로 일본에서 외국 그룹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순위를 차지한 그룹 중 하나다.
본조비는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흥했고, 페어 워닝이나 파이어하우스등 나머지 팝메탈 밴드들 역시 국내 시장보단 일본 시장을 주로 겨냥해 인기를 얻었다. 본 조비가 새 앨범을 내면 항상 빌보드 1위와 오리콘 차트 주간 3위 이내에는 든다. 외국 그룹 중에서 아무리 인기있는 가수라고 해도 저렇게 꾸준히 오리콘 차트 주간 3위 이내에 드는건 쉬운편이 아니다. 근데 2000년대 이후에 본조비같은 이런 팝메탈 밴드가 일본에서 계속 흥하고 있다곤 하지만 80년대에 정통 팝메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함정이다.단, 정통 글램메탈을 찾아보자면 현재까지도 스틸 팬더 같은 정통 미국의 글램 메탈밴드도 활동 중이며, Hanoi Rocks의 유산이 남아있는 북유럽에서는 핀란드의 Reckless Love, Santa Cruz, 스웨덴의 Crashdïet, Crazy Lixx, Hardcore Superstar 같은 밴드들이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으로, 이 밴드들은 바켄 등의 주요 페스티벌에서도 활동하는 등, 아직까지도 꽤나 인기가 많이 있다. (Reckless Love의 Spirit 앨범은 핀란드 앨범 차트 3위 기록, Santa Cruz의 Bad Blood Rising 앨범은 핀란드 차트 2위 기록 등)
5. 글램 메탈의 영향
명실상부하게 헤비메탈을 미국, 나아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만든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다소 거칠었던 성향을, 팝적인 느낌을 받아들여 세련되게 다듬고, 본격적으로 첨단 장비를 활용한 녹음이나, 고품질의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를 전면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 펜타토닉 스케일 기타 솔로를 활용하여 캐치한 멜로디의 솔로를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이후 록 음악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특히 테크니컬한 록 기타리스트 중 글램 메탈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그들이 연주하는 스타일이나 기타 톤에서 글램 메탈의 영향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조지 린치, 잉베이 말름스틴 등 대표적인 많은 테크니컬 록기타리스트들이 글램 메탈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아예 글램 메탈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비록 많은 한계를 노출하였다고 해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시기는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의 명실상부한 최고 전성기였다. 데프 레파드, 본 조비, 건즈 앤 로지스 등의 밴드는 다이아몬드 레코드[17]까지 달성하며 당대의 팝스타들과 견줄정도의 위상을 자랑했고, 적당히 잘나가던 글램메탈 밴드들의 앨범이 멀티플래티넘[18]을 달성하는 경우도 매우 흔한 광경이었다. 그 외에도 Headbanger's Ball(MTV), Metal Edge(잡지) 등 방송과 각종 미디어가 메탈음악의 인기를 적극 지원하였으며, 여성팬은 물론 아동부터 중장년층에까지 어필하는 광범위한 음악팬덤을 형성하였다. 헤비메탈 콘서트를 찾아가 록스타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이 보편적이었으며, 여러모로 지금으로서는 전혀 상상하기 힘들만큼 하드록/메탈 음악의 위상이 가장 고점에 달한 시기였다.[19]
서구권에선 많은 한계를 노출했어도 바다 건너 아시아에서는 그 전성기가 꺼지지 않고 오히려 계속 이어져왔다. 특히 글램 메탈이 가장 큰 히트를 친 시장이 일본 시장인데, 그 덕택에 빙 스튜디오에 소속된 가수나 밴드들도 글램 메탈에 영향력을 많이 받아 히트를 치기 시작하는데 그 대표적인 그룹이 B'z이며, X JAPAN, 디르 앙 그레이 등 비주얼계 밴드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 역시도 80년대 유명하던 팝송하면 본 조비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할 정도로 수요가 많았던 장르. 음악계도 영향을 받아 80년대 시나위, 백두산, 티삼스 등 기라성 메탈 밴드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90년대 큰 조류인 록발라드 전성기를 개막시키기도 했다. 이후로도 한국에서 성행하는 발라드의 기타톤 또한 록발라드 내지 글램 메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5.1. 글램 메탈의 한계
초기에는 헤비메탈 밴드들의 새로운 시도로 취급되었으며, 상당히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밴드들도 많았으나, 이후 글램 메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양산형 밴드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기존에 앨범당 한두곡씩 들어가던 발라드 곡들을 흥행을 위해 전면적으로 배치하고, 음악적인 깊이는 없이 스타일만을 내세워 활동하는 양산형 밴드[20]들이 많이 등장하고, 이러한 밴드들의 팬덤 역시 맹목적으로 겉모습만을 보고 추종하는 빠순/빠돌이들의 비중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한 가지 장르가 인기가 높아지면 양산형 밴드들이 등장하는게 비단 글램 메탈만의 단점은 아니었으나, 글램 메탈에서는 특히 심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21]하지만 음악을 비판할 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음악 외적인 요소가 개입되면 곤란하다. 밴드 멤버가 약쟁이라든가[22], 외모가 잘생겼다라든가,[23] 다른 장르의 밴드들도 구린게 많은데 왜 글램 메탈만 까냐던가...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게다가 위에서 말했듯이 글램 메탈이라는 장르명 자체가 특징을 가지고 분류한 것일 뿐 음악 자체는 헤비메탈이며 밴드마다 고유의 개성이 있다. 하지만 신인 팝메탈 밴드들이 점점 양산화 되어가고 기존의 밴드들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못하고 정체되면서 팝메탈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런 글램 메탈의 문제점을 비판한 곡이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스팅과 협업하여 발매했던 노래 Money for Nothing이다.[24]
6. 다른 헤비 메탈 장르와의 관계
매우 좋지 않다. 기존 메탈 팬덤들, 특히 익스트림 메탈 팬덤들은 글램 메탈을 헤비 메탈 장르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한다. 사실 글램 메탈이 이름만 메탈이 들어갈 뿐 음악적 특징은 헤비메탈보다는 하드 록에 더 가깝다. [25]다만 너바나의 등장으로 인한 록 음악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헤비메탈의 몰락 이후로는 메탈리카나 본 조비, 밴 헤일런, 메가데스 가릴 것 없이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지라, 최근에는 대놓고 싸우거나 하지는 않는 편이다. 서로 연계해서 사업을 하거나 작품을 내는 모습은 없지만, 서로 자기 밥 그릇 챙기는 게 바쁘다보니(...) 무신경 해진 듯. 때문에 글램 메탈 팬덤과 익스트림 메탈 팬덤간의 갈등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며 본 조비 등과 같은 글램 메탈 밴드들의 재평가 역시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애초에 글램메탈 밴드들이 80년대에 인기도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었고, 익스트림 메탈 쪽은 글램 메탈에 도전하는 모양새로 경쟁이 이뤄졌었다.
7. 주요 글램 메탈 밴드 목록
LA를 중심으로 등장한 글램 메탈 밴드들은 LA 메탈 항목을 참조- 데프 레파드
- 반 헤일런
- 화이트스네이크
- 포이즌
- 본 조비
- 머틀리 크루
- 래트
- 도켄
- 에어로스미스[26]
- 스콜피온즈[27]
- 앨리스 쿠퍼[28]
- 키스[29]
- 미스터 빅
- 신데렐라
- 스키드로우
- 건즈 앤 로지스[30]
- 나이트 레인져
- 블랙 앤 블루
- 빅센
- Slaughter
- Warrant
- Winger
- 콰이어트 라이엇
- 킥스
- 테슬라
- 트위스티드 시스터
- 파이어하우스
- 화이트 라이온
- 익스트림
- 스틸하트
- 유럽
- Steel Panther[31]
- Crazy Lixx
- Damn yankees
- L.A. Guns[32]
8. 빌보드 핫 100 1위곡
곡명 | 연도[33] | 1위 기간 | 아티스트 |
Jump | 1984 | 5주 | 밴 헤일런 |
You Give Love a Bad Name | 1986 | 1주 | 본 조비 |
Livin' on a Prayer | 1987 | 4주 | |
Here I Go Again' 87 | 1주 | 화이트스네이크 | |
Sweet Child O' Mine | 1988 | 2주 | 건즈 앤 로지스 |
Love Bites | 1주 | 데프 레파드 | |
Bad Medicine | 2주 | 본 조비 | |
Every Rose Has Its Thorn | 3주 | 포이즌 | |
I'll Be There for You | 1989 | 1주 | 본 조비 |
Blaze of Glory | 1990 | 1주 | 존 본 조비[34] |
More Than Words | 1991 | 1주 | 익스트림 |
To Be with You | 1992 | 3주 | 미스터 빅 |
9. 빌보드 200 1위 앨범
앨범명 | 연도 | 1위 기간[35] | 아티스트 |
Metal Health | 1983 | 1주 | 콰이어트 라이엇 |
5150 | 1986 | 3주 | 밴 헤일런 |
Slippery When Wet | 8주 | 본 조비 | |
OU812 | 1987 | 4주 | 밴 헤일런 |
Hysteria | 5주 | 데프 레파드 | |
Appetite for Destruction | 5주 | 건즈 앤 로지스 | |
New Jersey | 4주 | 본 조비 | |
Dr. Feelgood | 2주 | 머틀리 크루 | |
Use Your Illusion | 1991 | 2주 | 건즈 앤 로지스 |
Adrenalize | 1992 | 5주 | 데프 레파드 |
Get a Grip | 1993 | 1주 | 에어로스미스 |
Balance | 1995 | 1주 | 밴 헤일런 |
Best of – Volume I | 1996 | 1주 |
[후기한정] [후기한정] [3] 밴드에 따라서 기타 리프에 복잡한 주법과 테크닉을 반영하는 케이스도 상당히 많다.[4] 뉴 메탈과도 엮이며 정통 헤비메탈 이외의 메탈류 전체가 비하적 이미지로 변질된 적도 있어서 자기네 음악이 메탈도 아니고 "빅 록"이리고 우기는 어떤 똘기 있는 밴드도 있긴 했지만, 장르는 다 헤비메탈 벤드에 속한다.[5] 술, 담배, 마약 금지[6] 실제 해당 문화를 시작시킨 푸가지는 스트레이트 엣지를 남에게 강요해선 안된다고 하였다.[7] 1988년 빌보드 핫 100 5위를 기록한 When It's Love가 에릭 클랩튼에 대한 헌정곡이다.[8] 레드 제플린 이후 처음으로 빌보드에서 1위를 찍어본 헤비 메탈 앨범이다. 레드 제플린을 헤비 메탈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이 앨범을 역대 최초라고 하기도 한다.[9] 이 곡은 최초의 글램 메탈 히트 곡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상징성으로 인하여 최고의 글램 메탈 곡을 꼽을때 반드시 3위 안에 들어간다.[10] 하지만 이 당시까지는 벤 헤일런에 헤비메탈 성향과 실험성이 남아있던 시기이며, 본격적으로 글램 메탈 노선을 탄 것은 새미 헤이거의 가입 이후 발매된 음반들이다. 이 음반들은 글램 메탈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11] 다만 활동은 영국에서 했다.[12] 건즈 앤 로지스의 장르가 글램 메탈, LA 메탈인지 아니면 정통 하드록인지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며, 위키백과에는 그냥 하드록, 헤비메탈 밴드로 분류되어 있다. 다만, 이 밴드가 글램 메탈, LA 메탈의 흐름에서 생겨난 밴드인 건 확실하다.[13] 제1차 전성기는 1983년~1985년정도로 본다.[14] 그나마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쪽이 헤비메탈이 대중적인 음악이다.[15] 톰 크루즈, 캐서린 제타 존스 주연의 락 오브 에이지(영화)가 글램 메탈의 최전성기였던 87년 그것도 글램 메탈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LA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이다. 영화 속에는 포이즌, 건즈 앤 로지스, 벤 헤일런같은 당시를 풍미했던 뮤지션들의 음악이 쉴 새 없이 나오므로 글램 메탈의 팬이거나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 보기를 강추. 심지어 세바스찬 바흐와 누노 베텐코트도 카메오로 잠시 얼굴을 비춘다.[16] 3주 연속 1위로 90년대 중반의 일본 시장이었더라면 더블 밀리엄 셀러 이상을 노려벌 앨범이었다.[17] 단일음반으로 미국 내 1000만장 이상 판매[18] 100만, 200만, 300만장 또는 그 이상[19] 작품성, 예술성의 측면에서 이전세대보다 후퇴했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20] 견해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Warrant, Winger, Firehouse, Slaughter등 짧은 전성기에도 양질의 음악성을 보여준 후발주자들도 분명 존재한다[21] 단, 일부 익스트림 메탈 팬들이 까는것처럼 모든 글램 메탈 밴드들이 음악적 깊이도 없고 대충 음악을 한건 아니다.[22] 물론 뮤지션 개인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메탈뿐만 아니라 재즈나 그 외 장르의 뮤지션도 약물을 사용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70년대.[23] 외모랑 음악실력이랑은 완전 별개의 사항이다. 잘생긴 것도 죄냐! 로버트 플랜트나 리치 블랙모어,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믹 테일러 같은 전설의 뮤지션들도 잘생긴 것으로 유명하여 여자를 엄청나게 후리고 다녔다. 또 전설적인 록 기타리스트로 이름높은 랜디 로즈도 상당한 꽃미남에 속하며, 정통 헤비메탈 밴드인 화이트스네이크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인 존 사이크스도 미남으로 이름 높았다.[24] 록스타의 한쪽 면만 보고 그들이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같은 것들은 싸그리 무시하며 불평하는 자들을 비꼰 가사라는 설도 있다.[25] 이 때문에 RYM 등 음악 사이트에서는 글램 메탈을 메탈의 하위 장르가 아닌 하드 록의 하위 장르로 분류한다.[26] 후기 한정.[27] 후기 한정.[28] 후기 한정.[29] 후기 한정.[30] 앞서 서술한것처럼 영향을 받은것은 확실하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건즈 자체는 메탈이라고 보기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31] 2000년에 데뷔한 밴드. 아무래도 컨셉만 옛날식으로 잡았다보니 똘끼와 광기로 물든상태서 활동했던 진짜배기 80년대 선배들에 비해 약하다는 평. 실제로 이들이 80년대 글램 메탈 밴드 영상들 보면서 기겁하는 영상이 있다.[32] 건즈 앤 로지스의 초기 멤버였던 트레이시 건즈가 결성한 밴드.[33] 빌보드 핫 100 1위 연도 기준[34] 싱글 곡[35] 빌보드 핫 100 1위 연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