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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4B233> 국가 | [[미얀마| ]][[틀:국기| ]][[틀:국기| ]] | ||
주 | 네피도주 | ||
면적 | 7,504.37km² | ||
인구 | 924,608명 | ||
인구 밀도 | 131.1명/km² | ||
시간대 | UTC+06:30 | ||
지역 번호 | 067 | ||
링크 | 주미얀마 대한민국 대사관 | ||
양곤 무역관(KOT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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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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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 과거에는 양곤에 있었지만 천도 이후 신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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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연방의회 앞부터 시작해서 핀마나 북부로 이어지는 왕복 20차로 도로인 야자 타니 대로(Yaza Htarni Road).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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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타니 대로의 정면. |
2. 연혁
원래 이름은 핀마나(Pyinmana)로 내륙의 작은 지방 도시였다. 2000년대 수도로 지정되며 새로 붙인 도시명이 바로 '네피도'로 '왕궁'이라는 뜻이다.[1] 흔히 사람들이 아는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Yangon, 1989년 이전에는 랑군)은 옛 수도이다.[2] 2005년 11월 6일에 먼저 핀마나로 행정 수도를 옮기고, 2006년 핀마나를 네피도로 이름을 바꾼 뒤 공식적으로 천도했다.미얀마 정부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나 야사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독재자 탄 쉐가 본인이 총애하는 점성술사의 말을 듣고 술사가 정해준 곳으로 천도했다고 한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기운을 떨어뜨리기 위한 주술적인 목적으로 일부러 심은 나무들도 있다고 한다.#
옛 수도 양곤은 영국이 식 통치의 일환으로 만든 계획도시이기에 수도 천도는 식민잔재 청산이란 목적도 있었다. 한편으론 미군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이 '폭정국가' 리스트에 미얀마를 올렸으므로, 미국이 이라크처럼 공격할까 걱정하여 방어에 불리한 항구도시 양곤에서 군사적 요충지인 내륙의 네피도로 천도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충 국토의 중심부에 가깝고 방어에도 유리한 지형인 데다 인구마저도 적으니, 통제하고 감시하며 방어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어쩌면 주술적 이유와 군사적 이유가 둘 다 맞을지도 모른다. 독립 후 수십 년 동안 수차례 민주항쟁이 양곤에서 일어났으므로, 민주화 세력의 힘을 꺾고 국내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자 함도 있다.
하지만 급하게 옮긴 수도인 데다가 당시 미얀마 경제제재가 풀리기 전이라 허겁지겁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도시계획이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드문드문 들어선 주택가와 정부청사밖에 없는 곳에 위에 있는 사진처럼 왕복 20차선 도로를 만들어 놓으니 이용을 하는 인원이 극히 적다. 간혹 도로를 소 떼가 가로질러 가며 소똥을 여기저기 흩뿌리는 수준. 위성사진을 보면 아직 개발 중인 곳도 많은 듯하다.
수도가 이후로는 인구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지만, 네피도의 면적이 서울의 10배를 넘는 데다가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곳이 많아 양곤에 비해 황량한 모습은 2020년대에도 여전하다. 네피도의 곳곳에는 군사정권을 미얀마의 정당한 집권세력이자 상좌부 불교의 수호자(?)로 포장하는 여러 랜드마크와 종교시설물, 상징들을 배치했다. 도시 곳곳의 지명은 팔리어로 작명되었는데, 아웅 산 장군보다는 왕조 시대의 영광과 관련된 명칭이 많다.
2014년 아세안 정상회의를 여기서 개최했고, 2016년 미얀마 정권이 교체된 이후로도 여전히 수도 지위를 유지한다. 건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수도 건설로 쏟아 부은 예산이 적지 않아, 굳이 양곤이나 만달레이로 재천도하기도 뭐하기 때문이다.
3. 여담
외국인의 네피도 관광은 엄격히 통제되며, 복잡한 절차를 거쳐 군경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더라도 볼거리가 많진 않지만, 굳이 가보기로 했다면 건물 간 공간이 매우 넓기 때문에 도보여행은 불가능하고 최소한 오토바이라도 타야 한다.네피도, 양곤, 만달레이 등 세 도시는 거의 정확하게 남북 자오선상에 있다. 제일 북쪽이 만달레이, 제일 남쪽이 바다와 접한 양곤이고 네피도는 둘 사이에 있다. 거리상으로는 네피도가 이 두 도시들의 정확하게 중간은 아니고 만달레이 쪽으로 약간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