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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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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1969) | <colbgcolor=#ffffff,#1c1d1f>김애경 · 박광남† · 박상조 · 박은수 · 서권순 · 이도련† · 임문수† · 임현식 · 조경환† | |
2기 (1970) | 권귀옥 · 김자옥† · 박경현† · 박원숙 · 양정화 · 최은숙 · 한혜숙 | |
3기 (1970) | 국정환† · 김수미† · 김영애† · 박영태 · 손창호† · 안옥희† · 염복순 · 허진 | |
4기 (1971) | 김정 · 김호영 · 나영진† · 박영지 · 신국† · 홍민우 | |
5기 (1972) | 강인덕 · 고두심 · 김동주 · 김정하 · 남영진† · 문회원 · 박정수 · 박종관 · 윤석오† · 이계인 · 정대홍 · 한인수 · 현석 | |
6기 (1973) | 김성찬† · 김주영 · 박윤배† · 백인철 · 송경철 · 오미연 · 유인촌 · 이금복† · 임채무 · 정소녀 · 정태섭† · 홍순창 | |
7기 (1975) | 김동현 · 김해숙 · 노영국† · 송기윤 · 박상규 · 이경진 · 임정하† · 진유영 | |
8기 (1976) | 김보연 · 박병훈 · 이숙 · 이창환 · 전인택 · 한미영 | |
9기 (1977) | 권은아 · 길용우 · 김홍석† · 신신애 · 이원용 · 정한헌 | |
10기 (1978) | 김용선 · 윤순홍 · 이미영 · 이혜숙 · 홍성애 | |
11기 (1979) | 오미희 · 이미지† · 이보희 · 이상숙 · 한영수 | |
12기 (1980) | 김화란† · 나영희 · 송옥숙 · 임영규 · 정선일 | |
13기 (1981) | 김성일 · 박순천 · 최명길 | |
14기 (1981) | 김청 · 김혜정 · 이휘향 · 홍진희 | |
15기 (1982) | 맹상훈 · 박찬환 · 서갑숙 · 신복숙 · 안명숙 · 이동신 · 이상미 · 이영범 · 이원재 · 정성모 · | |
16기 (1983) | 김주승† · 문용민 · 최항석 · 한애경 · 황신혜 | |
17기 (1984) | 견미리 · 김도연 · 노경주 · 윤철형 · 이정훈 · 정호근 · 천호진 · 최재호 · 허윤정 | |
18기 (1986) | 강문영 · 김영석 · 김응석 · 박상원 · 박순애 · 신혜수 · 윤예희 · 이경아 · 이재룡 · 이재훈† · 정명환 · 채유미 | |
19기 (1989) | 김나운 · 김명수 · 김미영 · 김은수 · 김은정 · 김종아 · 김찬우 · 김화영 · 박세준 · 박선영 · 박지영 · 박형준 · 배영옥 · 변소정 · 송경희 · 신윤정 · 양동재 · 오연수 · 유식 · 음정희 · 이명희 · 이진우 · 이창훈 · 임대호 · 임채원 · 장서희 · 정은수 | |
20기 (1991) | 강이은 · 감우성 · 곽진영 · 김소이 · 김현숙 · 박철 · 안신우 · 정경희 · 차광수 · 한석규 | |
21기 (1992) | 김원희 · 박선영 · 박주미 · 안승미 · 윤동환 · 장동건 · 조현숙 · 최범호 | |
22기 (1993) | 김현석 · 손보영 · 심은하 · 왕희지 · 양정아 · 이시은 · 전유진 · | |
23기 (1994) | 손건우 · 안재욱 · 유태웅 · 윤용현 · 이민영 · 이아현 · 이은영 · 이현경 · 최선미 · 최영재 · 최지우 · 황상희 | |
24기 (1995) | 나경미 · 박용우 · 오세정 · 이성재 · 이종수 · 장성원 · 정재곤 · 정준호 · 조미령 · 최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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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기 (1998) | 김용희 · 박솔미 · 박정은 · 박주희 · 송일국 · 이승아 · 허성수 · 홍은희 | |
28기 (1999) | 고정민 · 김철기 · 이세은 · 정소영 | |
29기 (2000) | 박도유 · 박현정 · 손민경 · 손유경 · 인교진 | |
30기 (2001) | 강보라 · 신동미 · 이상이 · 전익령 · 진태현 · 최자혜 | |
31기 (2003) | 김남길 · 김효서 · 이제인 · 장남경 · 전수지 |
※ 특채 탤런트는 제외
※ 나무위키 등재 인물만 기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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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5436c><colcolor=#fff> 이보희 Lee Bohee | |
본명 | 조영숙 (趙英淑[훈음], Jo Youngsook) |
출생 | 1959년 6월 30일 ([age(1959-06-30)]세) |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대신리[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한양 조씨 |
학력 | 명지여자중학교 (졸업) 한강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
배우자 | 함윤식 (1988년 결혼, 1993년 이혼) 이○○ (재혼) |
자녀 | 아들 함원준 |
종교 | 개신교 |
소속사 | 아이티이엠 |
데뷔 | 1979년 MBC 11기 공채 탤런트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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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컨셉 이미지 |
리즈 시절 |
이보희의 어린 시절 |
1990년대 이후 그중 특히 40세 이후 주로 공주병 아줌마나 푼수데기 조연, 비밀을 가진 조연, 사극 조연으로 많이 활약했다. 전성기인 1980년대엔 원미경, 이미숙과 더불어 1980년대 3대 트로이카로 유명했으나, 2010년을 전후로 '멱살잡이를 즐기는 억척아줌마 배우로 유명'하며, '재밌는 배역명도 꽤 갖고 있다.'[3] 한국의 대표적 섹시스타로 유명해서 유명 에로영화였던 '무릎과 무릎 사이'라든지, '어우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특히 다리가 예쁜 걸로 유명해서, 서양권 여배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4]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던 이장호 감독의 작품에 고정출연하다시피 했다. 애초에 조진원이라는 예명으로 무명 시절을 보낸 중, 감독 이장호의 눈에 띄어 '일송정 푸른 솔에'(1983)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사회고발적인 성격으로 화제작이 된 이장호의 '바보선언(1984)'에서 가짜 여대생 역으로 유명해졌다. 이보희라는 예명도 이장호 감독이 자신의 성을 따서 지어 준 것이다.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이보희가 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5]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가 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 '博(넓을 박)'자를 '傳(전할 전)'자로 잘못 읽었다. 김재박(金在博) 항목 참조. 사실 21세기 현재는 전(傳)이든 박(博)이든 한자 자체를 못 읽는 사람이 태반인 데다 손으로 갈겨적은[6] 한자 고유명사를 잘못 읽는 것이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그렇게 퉁치기에는 당시의 김재박은 너무나, 너무나 유명했다는 게 문제. 훗날의 인물로 비교해보면 손흥민을 '송홍민'으로, Yuna Kim을 국내 행사에서 '김유나' 내지 '김윤아'로 읽은 셈. 여성들이 비교적 스포츠에 관심이 적다지만 아무리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김재박은 그러기엔 너무 전국적으로 유명한 스타였기에 졸지에 상식이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은 것. 사실 1980년대 당대의 전국구 스타였던 김재박을 몰랐다는 것은 신문 한 자, 뉴스 한 번 안 봤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서...현대에도 스포츠를 안 보는 사람도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의 이름 석 자를 모른다면 상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결국 이날 이후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수상자 명단은 철저히 한글로 표기되고 있다.#
19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탑 여배우로서 전성기가 짧은 편이다.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 뒤 19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19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당시 한국 영화보다 인기가 더 높고,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대중성이 떨어지고, 인기 편향도가 남성들에게 집중됐다. 함께 19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소리를 들은 원미경이나 이미숙[7]이 1980년대 후반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3~40대 들어서도 주연 작품을 흥행시킨데 비해, 이보희는 잠정 은퇴하고 복귀 이후에는 주연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중장년 조연급으로 밀려났다.[8] 다만 중장년 조연급으로 활동하면서 연기의 폭은 더 넓어졌고, 따라서 나이가 들어서도 드라마 등에서 활발히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미모는 당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실 연기력은 동시대 배우 중에서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가끔 발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이보희가 전성기 때 영화만 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일 수 있다. 연극, 영화, 드라마의 연기는 각각 개성이 뚜렷하고 차이가 있다. 물론 영화도 드라마 같은 스타일의 영화가 있어서 차태현 같은 배우가 그런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경우 마치 마라톤을 전력으로 질주하면 지치듯 긴 호흡으로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을 특징으로 하고, 반면에 연극은 과장되어 보이는 특징이 있고, 영화는 드라마와 연극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전성기 때는 미모와 더불어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섹시한 분위기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다.
같은 완도 출신 여성 중견 탤런트로는 배우 김창숙이 있으며, 완도누나로 통한다.
문영남 사단에서 주로 인간쓰레기 악역을 맡아 출연했지만, 그중 세 작품은 올바른 개념인으로 출연했다.[9]
관리하고 살아서인지 주로 결혼 안 한 극중 부모의 여동생으로 자주 출연한 바 있다.
어릴 적에 상경했고, 데뷔전까지는 사투리가 매우 심한 편이었다.[10]
3. 사생활
1984년 '무릎과 무릎사이'의 흥행으로 영화제작사로부터 현대 스텔라를 선물받았다. 1986년에도 차를 몰았다는 기사가 있다.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11]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현재 남편은 동료 영화배우 나영희[12]가 소개해준 것이라고 한다. 이보희는 이혜숙, 이상숙, 전인화, 나영희 등 동료 여배우들과 골프 동호회 활동을 했는데, 골프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달려라 울엄마' 촬영 시절에 촬영에 여유가 생기자 당시 신혼여행으로 남편과 파타야에 갔다고 한다.
4. 출연 작품[13]
4.1. 영화
<rowcolor=#fff> 개봉 연도 | 제목 | 배역 | 관객 수 | 비고 |
1983년 | 일송정 푸른 솔은 | 참모장 | 조연 | |
1984년 | 과부춤 | 홍말숙 | 주연 | |
바보선언 | 혜영 | 106,423명 | ||
무릎과 무릎사이 | 자영 | 263,334명 | ||
1985년 | 추억의 빛 | 소연 | ||
아가다 | 아가다 | |||
어우동 | 어우동 | 479,225명 | ||
1986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 | 엄지 | 287,712명 | |
1987년 | 달빛 사냥꾼 | 인옥 | 73,943명 | |
Y의 체험 | X | |||
1988년 | 접시꽃 당신 | 수경 | 237,744명 | |
깜동 | 깜동 | |||
아메리카 아메리카 | 수잔 | 127,449명 |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미세스 최 | 7,435명 | ||
1994년 | 장미의 나날 | 지현 | ||
49일의 남자 | 하영 | |||
2010년 | 식객: 김치전쟁 | 수향 | 462,714명 | 조연 |
2011년 | 써니 | 과거 사진 특별출연 | 7,453,586명 | 특별출연 |
2017년 | 아들에게 가는 길 | 친정 어머니 | 6,822명 | 조연 |
4.2. 드라마
<rowcolor=#fff>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1979년 | 안국동 아씨 | ||
1981년 | 포옹 | ||
1982년 | 여인열전 - 서궁마마 | ||
1994년 | 성냥갑 속의 여자 | 오지영 | |
1995년 | 서궁 | 인목대비 | |
1996년 | 용의 눈물 | 선빈 안씨 | |
1997년 | 내가 사는 이유 | 배 간호사 | |
1998년 | 맨발의 청춘 | 한수림 | |
로맨스 | 이수진 | ||
사랑해서 미안해 | |||
1999년 | 아름다운 선택 | 은희 | |
우리는 길 잃은 작은새를 보았다 | 김영화 | ||
2001년 | 푸른 안개 | 오영희 | |
여인천하 | 자순대비 | ||
피아노 | 이은심 | ||
여자는 왜 | 이보희 | ||
2002년 | 언제나 두근두근 | 장 교수 | |
장희빈 | 윤씨 | ||
부엌데기 | 강옥 | ||
2003년 | 달려라 울엄마 | 이보희 | |
2004년 | 애정의 조건 | 나진득 | |
형수님은 열아홉 | 박영란 | ||
남자가 사랑할 때 | 박화영 | ||
2005년 | 세잎클로버 | 조윤숙 | |
어여쁜 당신 | 조옥자 | ||
하늘이시여 | 김미향 | ||
2006년 | 서울 1945 | 아메 카오리 | |
넌 어느 별에서 왔니 | 안진희 | ||
2007년 | 꽃피는 봄이 오면 | 김부선 | |
하늘만큼 땅만큼 | 영민 모 | ||
마왕 | 여순옥 | ||
아현동 마님 | 사비나 | ||
착한여자 백일홍 | 천덕희 | ||
2008년 | 내 여자 | 하신애 | |
2009년 | 집으로 가는 길 | 오선영 | |
멈출 수 없어 | 구효선 | ||
수상한 삼형제 | 계솔이 | ||
2010년 |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 한수라 | |
드라마 스페셜 - 이유 | 김지수 | ||
욕망의 불꽃 | 차순자 | ||
웃어라 동해야 | 계선옥 | ||
2011년 | 광개토태왕 | 고야 | |
드라마 스페셜 - 올레길 그 여자 | 오 여사 | ||
당신뿐이야 | 이선영 | ||
청담동 살아요 | 김보희 | ||
2012년 | 난폭한 로맨스 | 양선희 | |
드라마 스페셜 - 아트 | 고정아 | ||
내사랑 나비부인 | 배신자 | ||
2013년 | 아이리스 2 | 정수민 | |
왕가네 식구들 | 박살라 | ||
2014년 | 모두 다 김치 | 지선영 | |
연애 말고 결혼 | 훈동 모 | ||
압구정 백야 | 서은하 | ||
2015년 | 위대한 조강지처 | 홍금숙 | |
내일도 승리 | 지영선 | ||
2016년 | 우리 갑순이 | 남기자 | |
2017년 | 달콤한 원수 | 윤이란 | |
전생에 웬수들 | 우양숙 | ||
2019년 | 왜그래 풍상씨 | 노양심 | |
모두 다 쿵따리 | 조순자 | ||
2021년 | 오케이 광자매 | 오봉자 | |
2022년 | 빨간풍선 | 양반숙 |
4.3. 광고
<rowcolor=#fff> 방영 연도 | 기업 | 브랜드 | 비고 |
1983년 | 해태제과 | 해태 뷰티 알로에껌 | [14] |
1986년 | 성도어패럴 | 톰보이 | |
피죤 | VOS 샴푸 | ||
1986년 ~ 1988년 | 가양 나드리 코티 화장품 | 에쿠아 리브레 | |
SB-3 | |||
나드리 버태니컬즈 - 이보희편 | |||
그레이스 - 숙녀 | |||
나드리 에스비쓰리 메이크업 - 색 | |||
나드리 에스비쓰리 메이크업 - 신선한 칼라 | |||
나드리 에스비쓰리 레몬 - 여자의 봄 | |||
나드리 에스비쓰리 - 창가 | |||
나드리 코티버태니컬즈 - 물보라 | |||
오버나잇 썩세스 - 밤 |
5. 그 외 활동
5.1. 홍보대사
<rowcolor=#fff> 역임 연도 | 기업/기관 | 직함 |
2009년 | 전라남도 광양시 | 홍보대사 |
5.2. 가족오락관
- 1985년 12월 24일
- 2003년 12월 27일
6. 수상 경력
<rowcolor=#fff> 수상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1983년 | 제22회 대종상 | 특별상 | 일송정 푸른 솔은 |
제19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바보선언 | |
1984년 | 제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신인여우상 | |
1986년 | 제21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어우동 |
1988년 | 제23회 백상예술대상 | 접시꽃 당신 | |
제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여우주연상 | ||
2010년 | KBS 연기대상 | 여자 조연상 | 수상한 삼형제 |
2015년 | MBC 연기대상 | 연속극부문 베스트 조연상 | 압구정 백야 |
[훈음] 꽃부리 영 맑을 숙[2] 출처[3] 이는 배역명 막 짓는 걸로 유명한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4] 참고로 '무릎과 무릎사이'는 단순 에로영화가 아닌 여성이 性을 극복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 수작이다.[5]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6] 그래서 당시 골든글러브 사회를 맡았던 이덕화도 이름을 정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분이 글씨를 상당히 흘려 쓰신 것 같네요...[7] 단 이미숙은 결혼으로 1987년부터 1990년대까지 잠시 은퇴했다.[8] 드라마에서만 활동하고 3세대 트로이카급의 인기를 얻었던 정애리 역시 결혼 후 복귀하며 김수현 작가 드라마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활동했던 것을 보면 이후의 행보가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9] 애정의 조건, 수상한 삼형제, 오케이 광자매[10] 지금도 꽤나 사투리를 쓰는 중이고, 억양이 꽤 있는 편.[11]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12] 1982년에 '낮은 데로 임하소서', 1988년에 '매춘'으로 흥행하였다. 그리고 남편이 치과의사라고 한다.[13] 당시에는 하나의 서울 영화관 관객수만 기록하였으므로 표의 기록수의 10배 정도로 보면 현재의 관객수랑 얼추 비슷해진다고 한다.[14] with 서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