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금요일 애니메이션 | ||||
1993.6.25~9.17 | → | 1993.10.22~1994.10.21 | → | 1994.10.28~1995.1.20 |
마법사의 아들 코리[1] | → | 초롱이의 옛날여행 | → | 사랑의 학교 |
1. 개요
KBS 2TV에서 1993년 10월 22일부터 1994년 10월 21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방영된, 한국사의 위인들을 소재로 한 한국 애니메이션. 한국방송공사와 세영동화/세영애니텔이 공동제작하였다.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52부작(4쿨)으로 제작되었다.[2][3] 그 이후 방영된 국산애니 장편시리즈가 21년 후에 방영한 터닝메카드 시리즈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 프로젝트였다.1995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붙은 <역사만화 한국 위인전>이라는 부제로도 알려져 있고, 투니버스에서 개국 초기부터 <초롱이의 역사기행>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DVD로도 나온 적이 있다.역사 소재 작품인 만큼 실사 자료화면도 보충자료로 간간히 나온다. 오프닝을 부른 가수는 이상우. 방송순서고지는 이어서(곧이어)멘트는 정용실 아나운서가 멘트로 했다.
방영 당시에는 시청률도 그저 그런 것도 있고 워낙 편수가 길고 아름다워서 그런지 이후에 2TV 방영 이후 1TV에서의 재방영은 하지 않았다.[4] 하지만 상술한 대로 비디오로 출시되어서 이 작품을 최소 한 편 정도는 초등학교때 역사 수업 참고자료로 접해본 사람이 많다.
2. OP
위 영상은 비디오판 오프닝이고, 실제 방영 당시 오프닝은 달랐다.
경기 아리랑을 샘플링한 곡이다.
옛날옛적 아주 오랜 먼 옛 - 날 우리 조상님은 어떻게 사셨을까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께서 용감하고 정의롭게 걸어오신길 아름답고 슬기롭게 살아오신길 재미있고 신나는 역사 여행길 자 떠나자 초롱이와 함 - 께 온가족 모두모여 옛날여행 떠나요 만화속의 조상님 함께 만나요 |
3. 특이사항
작품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홍길동 복장을 차려 입은 아이 '초롱이'가 나와 각 화의 주인공인 위인들을 소개하는 관찰자 역할로 출연했다. 각 화의 도입부는 해당 화의 주역인 위인들이 잠깐 스쳐가듯이 모습을 보이고(주로 어린 시절), 이를 본 초롱이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하며 징을 친다. 이 때 화면이 전환되며 나오는 3D 징 타종 화면 뱅크신이 꽤 인상적이다(...).작화는 초롱이를 제외한 모든 이가 사실적으로 그려진, 멋드러진 극화체 화풍이다. 물론 초롱이도 눈깔괴물 수준은 아니다. 본편 분량은 25-30분 정도로 되어있지만 이건 광고나 예고편을 포함해서 그런거고 실제 본편 분량은 15-20분 내외로 그리 길지 않은 편.. 다만 이순신과 김구 편은 상, 하편으로 나누어 방영했다. TV판은 당연히 민족의 시조 단군 편부터 시작했으나, 비디오판은 방영 화 순서가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뱅크신이 심해진다. 예를 들면 최영편 초반부의 경우 대조영편 초반부를 그냥 짜집기한 것.
여담이지만 프로그램 제작 계획자체는 1980년대 초반에 세워졌다하며, 원래는 이 작품이 첫 국산TV애니가 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계획이 이리저리 미뤄지다보니 결국 최초의 국산TV 만화영화가 된 것은 떠돌이 까치였고, 이후로도 아기공룡 둘리나 달려라 하니, 옛날 옛적에같은 다른 작품보다 흥미도면에서 밀린다고 판단되어, 결국 실제 제작 된것은 1993년이 되어서였다. 참고로 처음 기획안이 통과되었을때에는 딱히 수신료 문제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것은 아니었지만, 방송기간 도중에 KBS에서 수신료 합산징수를 노리고 흥행을 뒤로 미룬채 1년 반 가량을 공익성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열중한감이 있었다. 물론 후속작인 사랑의 학교도 시청률이 별로 높지 않아 흥행에 실패하고, 수신료 합산징수를 통한 수익증대라는 목표도 이루어지자 꼬비꼬비때부터는 다시 흥행위주 노선으로 북귀해서 이후로 두치와 뿌꾸, 녹색전차 해모수, 레스톨 특수구조대 등을 제작해 편성하였다.
위인들의 시대는 고조선에서 일제강점기 시대까지의 위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때는 아직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6.25전쟁[5] ,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10.26 사건,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은 다루고 있지 않았다.
다양한 위인들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역사 애니메이션이지만 김유신, 왕건, 정몽주, 곽재우, 김홍도, 안창호, 윤봉길, 한용운, 윤동주, 유일한 등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몇몇 위인들은 다뤄지지 않았다.
4. 성우진
- 최흘 - 해설
- 이재경 - 초롱이
- 홍시호 - 우덕순 / 정약용 / 장영실
- 박상훈 - 고종 / 이이
- 문관일 - 일본경찰 / 할아버지
- 유제상 - 안중근의 부하 / 이토 히로부미 / 백범 김구의 비서
- 박홍식 - 안태훈(안중근의 아버지) / 김구 / 방정환 / 을지문덕 / 황희
- 김민석 - 이순신 / 대조영
- 김환진 - 안중근 / 이사부 / 지석영 / 주시경 / 김좌진 / 김정호 / 전봉준 / 장보고 / 나운규 / 효종 / 허균 / 이항복 / 최영
- 설영범 - 묘청 / 우장춘 / 안익태
- 정미숙 - 유관순
- 정동열 - 이완 / 강감찬 / 안두희
내레이션의 성우는 최흘. 초롱이는 이재경[6]이 맡았다. 그 밖에 출연하는 성우들은 중복이 매우매우 심한데, 특히 김환진은 대충 남자 위인의 50~60%를 혼자 담당했다.
그 외 배역들은 순동운, 송인숙 등이 맡았다.
5. 고증
고증 수준은 각회에 따라 다르다. 일단 복식 고증은 오래 전 작품이기도 하고, 제작 구현의 한계와 당시 연구 기반의 한계도 있지만 한국 사극류 작품의 종특상 조선, 특히 영~정조 이전의 시대에서는 제대로 맞는 복식이 나오는 걸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각 인물들 나이 고증도 엉망이라 청소년 내지 청년이었던 고려 인종, 우왕을 노인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그나마 사육신 때 비운의 소년왕으로 제대로 각인된 조선 단종 정도만 노화시키지 않고 제대로 묘사한 정도이다.역사적 상황의 고증은 잘 된 편도 있고 그렇지 않은 편도 있다. 예를 들면 이순신 편에서는 이순신과 유성룡이 동갑친구로 나와서 이순신이 과거에 붙기 전에도, 낮은 관리 시절에도 유성룡에게 '성룡이 자네~'하며 부른다던지... 실제로 유성룡은 이순신의 친구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이순신의 둘째 형 이요신의 친구였는데, 친구의 동생이었던 이순신과 만나 친구가 된 것이라 이순신보다 5살이나 더 많다. 이순신이 무과시험 준비할 때와 하급무관 때는 자신보다 훨씬 높은 관리였고 자신보다 다섯 살이 많은 유성룡에게 대고 형, 형님 소리도 안하고 이름을 막부르며 자네자네 거리는건 조선 왕조 당시 기준으로는 상상도 못할 하극상이다. 아니 이순신이 정2품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을때도 류성룡은 정1품 영의정이었다. 문익점 편은 애초에 분량 대부분이 후세의 창작이고, 황희 편에서도 황희가 두문동 출신 및 청백리였다는 야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본시 철저히 태종의 의도로 진행된 왕실 외척 숙청도 황희의 건의로 시작한 것으로 처리했으며, 특히 김정호 편에서는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를 보고 분노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투옥되어 옥사하였다는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반영하였다.
심지어 성왕 편에서는 백제 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와 전쟁할 때 전사가 아니라 신라에서 보낸 자객[7] 에게 암살당해 죽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8]
그리고 정약용 편에서는 조선시대에 서인과 남인 간의 당파싸움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정약용이 살았던 조선 정조 때는 시파와 벽파의 대립이 심했으며, 본격적으로 조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세도정치가 일어난 것은 넓게는 순조, 좁게는 헌종 때부터다.
그에 비해, 김구 편에 나온 이봉창 의사가 일본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어가 서툴어 밀정으로 의심을 사는 장면을 연출에 반영한 점이나 우장춘 편에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흔히들 우 박사가 씨없는 수박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씨없는 수박을 발명한 것은 일본 기하라 연구소이며,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위해 우 박사가 국내에 들여와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업적은 씨없는 수박보다 몇만 배, 몇억 배 값지다"는 내레이션으로 끝맺는 등의 좋은 고증을 보인 적도 있었다. 다만 김구 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 안창호[9] 가 초대 대통령으로 손병희, 국무총리로 이승만이 추대되었다고 발표하는데 사실 이는 대한국민의회 때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국무총리는 이동휘[10]이다.
김정호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에 동화정책인 소위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편찬한 <조선어 독본>에서 왜곡되어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반면, 일본에 직접 무력투쟁을 한 이봉창 의사는 일본 쪽의 평가를 국내 학계에서 수용할 리 만무하며, 해방 이후에도 활동을 남긴 우장춘 박사는 말할 것도 없다. 즉 현대사에 가까운 인물일수록 일제가 왜곡한 식민사학의 영향을 덜 받아서 고증이 더 정확한 것. 그리고 황희 같은 경우는 정사인 실록이 이제 막 번역을 마쳤을때라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이미 번역이 되었던 야사인 연려실기술에 의존하다보니 고증이 부정확 했던 측면도 있다.
전봉준 편에서는 일본 육군이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으로 추정되는 기관총으로 동학농민군을 무차별 학살한다. 이 기관총은 1933년 처음 제작된 물건으로 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또한 일본 육군 군복 고증도 틀렸다. 19세기 말 일본 육군은 검은색 군복을 입었고 저런 전투모 대신 정모 형태의 군모만 썼다. 흔히 케로로 모자로 통하는, 우샨카는 1930년대부터 나왔으며, 그나마도 저 방서천은 열대 지역에서만 부착이 허용됐다. 사실 주력이 일본군이고 조선군은 들러리에 일본군이 동학군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조선군 군관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나왔는데, 실제 당시 주력은 조선군이었으며[11], 동학군을 학살하는 중화기는 모두 조선군이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
또 우장춘 박사의 일대기를 다룬 에피소드에서는 아버지가 조선인이고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사실만 언급했지, 그의 아버지가 을미사변의 주동자 중 한 명인 우범선[12]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안익태도 2008년 과거 만주환상곡 연주와 관련된 친일행적이 밝혀졌지만 방영 당시 시점에선 밝혀지지 않았던 걸 고려하면 인물 선정에 문제가 생겼다. 사실 어린이들이 보는 작품에서 그런 충격적인 사실을 언급하기가 뭐했던 것도 사실이었겠지만.
게다가 선덕여왕을 다룬 에피소드에서도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 한반도의 삼국을 그린 지도가 나오는 장면에서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가 서울, 경기도 등 한강 유역과 충청남도, 전라도의 서해안 지역 땅들은 전부 다 고구려, 백제 땅으로 그려져 있고 신라는 서해안의 영토가 없고 지금의 경상도 지역 일대의 동해, 남해안 지역만 지배하는 왜곡된 면적으로 나오던데 사실 이것도 삼국시대 초, 중반기 때에나 가까운 지도이지 실제 선덕여왕이 다스릴 당시 신라는 한강 유역 등 서해안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고 당시 백제는 한강 유역 땅을 차지한 신라에 가로막혀 고구려와의 육지 국경이 소멸된 상태였었다.. 게다가 고구려의 영토도 만주 땅은 지워버리고 지금의 한반도 북부와 중부 지역만 차지한 걸로 왜곡된 묘사를 해놓았다.
강감찬을 다룬 에피소드에서는 소배압이 귀주대첩 전투 직후 자살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근거없는 서경천도를 주장하고 반란을 일으킨 서경파의 꼭두각시 묘청을 자주민족의 자부심이라는 이유로 소재로 선정하기도 했었다. 묘청 자신이 서경천도가 하늘의 계시인양 징조를 조작해댄걸 부하들이 멋대로 한걸로 뒤바꿔놓았고 반란을 일으킨 후 마치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운걸로 묘사했지만 실상 묘청은 제대로 교전조차 못해보고 반란을 일으킨지 17일 만에 조정에 회유를 당한 자기 부하들에게 살해될 정도로 묘청은 반란을 일으킬만한 실력조차 형편없던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삼별초와 배중손 편에서도 삼별초와 삼별초의 사령관인 배중손과 김통정을 몽골에게 항거한 집단으로 묘사하고 여몽전쟁 당시 고려의 정세 상황을 몽골의 고려 침공 이전에 고려 중기 무신 정변으로 권력을 탈취해 고려 왕실과 조정을 힘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고 여몽 전쟁의 여파로 정권이 붕괴될때 까지 권력을 농단하며 고려를 회생 불능 수준으로 망쳐놓아 고려 멸망의 발단을 제공했던 고려 무신정권에 대한 묘사나 언급도 없이 여몽전쟁 당시의 고려를 삼국이나 조선처럼 고려 국왕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던 절대왕정 국가처럼 묘사해놓은가 하면,[13] 몽골과의 싸움에 버티지 못한 나머지 고려 왕실과 조정이 몽골에 항복하고, 고려 조정에 속해있던 고려군 특수부대인 삼별초가 외세에게 굴복한 고려 조정과 몽골 원나라에게 항거하는 것 마냥 묘사를 해놨는데 사실 삼별초는 고려 왕실과 조정의 어떠한 승인 없이 무신정권의 최우 등의 실권자들이 만들어놓은 무장 친위대 겸 사병 집단들이었고, 삼별초의 난 또한 외세에 대한 항쟁보다는 무신 정권 붕괴 후 몽골과의 강화로 오랜 무신정권에게 빼앗긴 권력을 되찾은 고려 왕실과 문신 세력들에 대항하려고 무신정권이 만들어놓은 사병집단들이 일으킨 내전의 성격이 더 짙었다.
최치원 편에서는 진성여왕 시기 나라가 혼란스러워져 백성들이 분개하고 호족들이 등장하는데 몇 초 남짓이지만 이 때 등장한 궁예가 대중들에게 익숙한 애꾸눈 이미지가 아닌 평범한 장수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6. 방영 목록(등장 위인)[14]
회차 | 방영일 | 부제 |
1 | 1993년 10월 22일 | 민족의 시조 단군 |
2 | 1993년 10월 29일 | 훈민정음과 세종대왕 |
3 | 1993년 11월 5일 | 호국의 명장 을지문덕 |
4 | 1993년 11월 12일 | 민족의 과학자 장영실 |
5 | 1993년 11월 19일 | 한의학의 선구자 허준 |
6 | 1993년 11월 26일 | 바다의 제왕 장보고 |
7 | 1993년 12월 3일 | 대륙의 정복자 광개토대왕 |
8 | 1993년 12월 10일 | 발로 그린 대동여지도 김정호 |
9 | 1993년 12월 17일 | 목민심서와 정약용 |
10 | 1993년 12월 24일 | 북벌의 높은 기상 효종과 이완 |
11 | 1994년 1월 7일 | 민족의 영웅 이순신 구국의 영웅 이순신 |
12 | 1994년 1월 14일 | |
13 | 1994년 1월 21일 | 가야의 혼 우륵 |
14 | 1994년 1월 28일 | 발해의 시조 대조영 |
15 | 1994년 2월 4일 | 율곡과 신사임당 |
16 | 1994년 2월 11일 | 익살과 해학의 명정승 이항복 |
17 | 1994년 2월 18일 | 고려의 큰별 강감찬 |
18 | 1994년 2월 25일 | 청렴한 명정승 황희 |
19 | 1994년 3월 4일 | 자주독립의 꽃 유관순 |
20 | 1994년 3월 11일 | 민족의 지도자 김구 |
21 | 1994년 3월 18일 | |
22 | 1994년 3월 25일 | 녹두장군 전봉준 |
23 | 1994년 4월 1일 | 토정비결 이지함 |
24 | 1994년 4월 8일 | 자유를 그린 천재 장승업 |
25 | 1994년 4월 15일 | 땀으로 이룬 명필 한석봉 |
26 | 1994년 4월 22일 | 문무겸비의 명왕 성왕 |
27 | 1994년 4월 29일 | 고구려의 기상 고선지 |
28 | 1994년 5월 6일 | 어린이의 벗 소파 방정환 |
29 | 1994년 5월 13일 | 화포장군 최무선 |
30 | 1994년 5월 20일 | 불교 대중화의 선구자 원효 |
31 | 1994년 5월 27일 | 죽음으로 지킨 충절 성삼문과 사육신 |
32 | 1994년 6월 3일 | 추사 김정희 |
33 | 1994년 6월 10일 | 선덕여왕 |
34 | 1994년 6월 17일 | 자주민족의 자부심 묘청 |
35 | 1994년 6월 24일 | 민족의 횃불 안중근 |
36 | 1994년 7월 1일 | 꿈을 그린 화가 안견 |
37 | 1994년 7월 8일 | 문장의 대가 최치원 |
38 | 1994년 7월 15일 | 삼별초와 배중손 |
39 | 1994년 7월 22일 | 호국불교의 선봉장 사명대사 |
40 | 1994년 7월 29일 | 나라사랑에 바친 과학 우장춘 |
41 | 1994년 8월 5일 | 황금을 돌같이 최영 |
42 | 1994년 8월 12일 | 조국 사랑의 환상곡 안익태 |
43 | 1994년 8월 19일 | 자유를 향한 비행 안창남 |
44 | 1994년 8월 26일 | 성리학의 대가 이황 |
45 | 1994년 9월 2일 | 홍길동전과 허균 |
46 | 1994년 9월 9일 |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이사부 |
47 | 1994년 9월 16일 | 안시성의 투혼 양만춘 |
48 | 1994년 9월 23일 | 한국영화의 선각자 나운규 |
49 | 1994년 9월 30일 | 청산리 대첩의 영웅 김좌진 |
50 | 1994년 10월 7일 | 끝없는 한글사랑 주시경 |
51 | 1994년 10월 14일 | 현대의학의 선구자 지석영 |
52 | 1994년 10월 21일 | 따뜻한 사랑의 실천 문익점 |
[1] 날아라 슈퍼보드가 방영 전 땜빵으로 임시 편성되었다.[2] 그 이전에도 아기공룡 둘리가 대박이 나자 KBS에서 50회까지 연장방송을 하려고 했지만, 김수정 작가가 KBS판 둘리에 실망한지라 거절당했다는 후문이 있었고, 한 동안 외전격인 작품만 제작되다가, 2009년에서야 26부작 추가 에피소드가 나왔다.[3] MBC 최초의 국산TV 만화영화인 달려라 호돌이가 회수로 친다면 이보다 길기는 했지만 5분짜리 단막 애니메이션이라서 실제 분량은 이보다 훨씬 짧다.[4] 간혹 프로야구 중계가 일찍 끝났을 때 땜빵용으로 1회분씩 재방영하기도 했다.[5] 김구 편에서 김구가 남북분단을 우려하며 통일을 희망하는 연설을 하지만 김구는 6.25 전쟁 발발 1년전인 1949년에 암살당했기에 6.25 전쟁은 언급되지 않았다. 6.25 전쟁 이후에도 활동한 우장춘과 안익태도 있지만 이들도 전쟁과는 큰 연관이 없기에 해당 애니메이션에서 6.25 전쟁 관련 내용은 다뤄지지 않았다.[6] CBS 13기 성우로 연기 쪽보다는 자동응답 서비스 관련 내레이션을 도맡아 했다. # 유명한 멘트는 삐삐 시절 '삐삐호출은 1번, 음성녹음은 2번을 눌러주십시오.' 현재는 해외로 이민가서 은퇴하였다.[7] 김무력의 휘하 장수인데 여기에서는 요괴로 묘사했다.[8] 막상 이후에 방영된 이사부 편에서는 성왕이 요괴로 묘사된 자객이 아닌 평범한 신라 장수들의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다.[9] 어째서인지 해당 애니메이션에서는 독립운동의 대표격 인물들인 안창호와 윤봉길 편이 따로 방영되지 않고 김구 편에서 잠깐 등장하는데 그친다.[10] 의원내각제 시기까지 고려하면 이승만이 초대 국무총리가 된다[11] 다만 지휘관은 일본군 장교였다.[12] 우범선은 우장춘의 나이 5세 때에 전 만민공동회장인 고영근과 그 종자인 노원명에 의해 살해당했다.[13] 오히려 무신정권,여몽전쟁 당시의 고려의 국왕들은 이의방이나 이의민, 최충헌, 최우 등 무신 정권의 실권자에게 모든 정치적인 권력을 잃은 실권 없는 허수아비 군주에 지나지 않았으며 대략 현재 캄보디아의 훈 센 독재 정권 치하의 캄보디아 왕실이나 막부 정권 시기의 일본 황실과 다르지 않았다.[14] TV판 방영 순서를 따른 위키백과 자료를 인용. 일부 화 제목은 직접 확인 후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