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06:18:11

마초 패러독스

도서명 The Macho Paradox: Why Some Men Hurt Women and How All Men Can Help(英)
마초 패러독스: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韓)
발행일 2006년(원서)
2017년(역서)
저자 잭슨 카츠
(J.Katz)
신동숙 역
출판사 Sourcebooks(원서)
갈마바람(역서)
ISBN 979119563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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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및 출간 배경2. 목차 및 주요 내용
2.1. 챕터별 내용 정리2.2. 폭력 문제가 남성의 문제인 이유2.3. MVP 훈련 프로그램: 감수성 훈련 X 리더십 훈련 O2.4. 남성들: 잠재적 가해자 X 잠재적 투사 O
3. 남는 의문점들4. 둘러보기

"여성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성폭력과 아동 학대, 그리고 가정폭력의 높은 발생률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대부분의 남자는 여성과 어린이를 학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남자들은 품위를 지키며 공손하게 살기 위해 늘 노력한다. 그러나, 지금껏 이런 남자들이 한목소리를 낸 적은 없다. 이 문제가 국가 차원의 문제로 다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는 남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고립되어, 그들 또한 다른 사람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남성이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요구를 듣게 될 것이다."
- 넬슨 만델라(N.Mandela), 1997년 "전국남성행진"(National Men's March) 연설문 中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들을 깊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런 소중한 여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학대를 당하며 살아간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사실상 모든 여성이 위협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모르는 남자에게 폭행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여성들 대부분은 저마다의 예방 수칙을 정해놓고 날마다 지키려고 노력한다... (중략)

...이에 대해 일반 남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남자가 자신은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니 이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아끼는 여자들이 있고 이 문제가 여자들에게 아주 큰 걱정거리를 안긴다면, 남자들도 어떻게든 나서야 하지 않을까? 특히 남자들의 행동이 도움이 된다면, 마땅히 함께 나서야 하지 않을까?"
- p.85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1. 소개 및 출간 배경

본서는 여성들이 겪는 폭력의 문제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들이 관심 갖고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할 남성의 문제임을 역설하는 책이다. 즉, 여성들이 유독 불안해하고 폭력을 두려워하는 것이 "여성들만의 문제" 가 아니며, 이를 여성들만의 문제로 여기는 것 자체가 그 폭력의 가해자를 감추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다른 여성이 아니라 남성을 두려워하며, 이는 폭력의 가해자 성비를 보면 절대 다수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폭력 문제는 (개인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간에) 일부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연관된 문제로서,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이후로 더 나아가기 전에, 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몇 가지를 먼저 정리해 놓아야 할 것이다. ① 대부분의 남성들은 폭력과 거리가 멀지만, 통계적으로 폭력 문제를 저지른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이라는 사실은, 모든 남성들이 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라는 비난을 정당화하지 않는다.[1] ② 남성들도 때로는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가해자는 여성일 때보다 남성일 때가 더 많다.[2] 즉, 남성 가해자는 남녀 모두가 힘을 합쳐 물리쳐야 할 적이다. ③ 남성 본인이 직접적으로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해도, 폭력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삶의 고통을 내버려두고서 남성들끼리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④ 남성들 중에서도 특히 젊은 남성들은 남성 폭력 문화의 또 다른 피해자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폭력적 사회화를 선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폭력의 강요된 행사에 대해 거부할 명분이 있다. ⑤ 폭력 문제의 더 효과적인 근절을 위해서는 사회적 권력 계층, 즉 의사결정자, 권력자, 유력자, 정부 당국, 집단 지도부, 공권력, 관리자들과 같은 중장년층 남성들의 의식 개혁과 참여가 필요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소개한 것처럼, 저자는 항상 강연을 나갈 때마다 남성 청중과 여성 청중에게 각각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화이트보드에 옮겨 적는다. 그 질문인즉슨, "여러분은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날마다 스스로를 지키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습니까?" 남성들은 자신이 성폭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자체가 없기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지만,[3] 여성들은 화이트보드가 가득 차도록 한도끝도 없이 자기만의 방법들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4] 제시카 발렌티(J.Valenti)는 자신의 저서 《Full Frontal Feminism》 에서 이런 '방법들' 을 강간 일정(rape schedu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저자가 7~8페이지에서 나열하는 이 방법들이 몇 가지나 될지, 아래를 펼치기 전에 잠시 방법들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펼쳐서 얼마나 그 수에 근접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한 여성들의 방법들' 펼치기 / 접기 ]
  • 비상시 호신용으로 쓰기 위해 열쇠를 손에 쥔다.
  • 자동차 운전석에 타기 전에 뒷자리를 확인한다.
  • 휴대폰을 항상 지니고, 밤에는 산책이나 조깅을 삼간다.
  • 한여름일지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문을 모두 잠근다.
  • 과음하지 않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잔에 채워진 술은 마시지 않고, 직접 보는 앞에서 따른 술만 마신다.
  • 덩치가 큰 개를 키운다.
  • 호신용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닌다.
  • 휴대폰 번호를 함부로 알려주지 않는다.
  • 자동응답기에 남자의 음성을 녹음해 둔다.
  • 가로등이 밝게 비추는 곳에 차를 주차한다.
  • 후미진 곳의 주차장은 이용하지 않는다.
  • 엘리베이터에 남자 혼자나 남자들만 있을 때는 타지 않는다.
  • 출퇴근 경로를 다양하게 바꾸어가며 다닌다.
  • 옷차림을 조심한다.
  • 고속도로 휴게소 이용을 피한다.
  • 주거용 도난 경보 장치를 단다.
  • 조깅할 때 헤드폰을 끼지 않는다.
  • 낮 시간이라도 숲이 우거진 곳에는 가지 않는다.
  • 아파트를 구할 때 1층은 피한다.
  •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닌다.
  • 총기를 구입한다.
  • 첫 데이트를 할 때는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만난다.
  • 이용할 차량 혹은 택시비를 확실하게 준비해 둔다.
  • 길에서 지나치는 남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 길에서 마주치는 남자들에게 단호한 눈빛을 보낸다.

그 외에도 국내에서도 이런 '방법들' 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예컨대 첫 데이트 때 자신의 행선지와 만나는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주변 친구들에게 공유해서 경찰 수사가 쉬워지도록 한다거나, 원룸 입구에 남성의 신발을 놓아두거나, 바깥 빨랫줄에 남성의 속옷을 걸어놓거나 하는 등이다. 물론 이상의 리스트는 방법의 '다양성' 을 보여줄 뿐이며, 한 여성이 이 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키고 살아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에서 확실한 것은, 남성들은 이만큼 다양한 종류의 '조신하게 처신하는 방법' 을 떠올리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본서의 제목인 "마초 패러독스" 는 마초(macho)라는 단어의 어원이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과는 정반대의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당초 스페인어의 "마초" 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였다. 즉, 어떤 남성이 마초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먼저 "용기, 용맹, 명예, 정직, 긍지, 겸손, 책임 같은 품성을 겸비하고, 남들의 존경을 받아야 했다"(p.11). 쉽게 말해 타인의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는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남성이 마초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 미국 언중에게 마초는 정반대로 폭력배가 되었다. 본디 라틴 문화에서 마초들은 지역사회에서 남을 괴롭히는 불한당을 해치우기 위해 책임감 있게 나설 용기있는 남성이었지만, 현대 미국 사회에서 마초들은 여성폭력이나 성차별 문제에 대해 반대하기보다는, 도리어 이를 긍정하거나 적어도 침묵 또는 방관하고, 그런 문제에 여성들과 목소리를 함께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며 불쾌해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많은 "마초적" 인 남성들이 거친 성미를 드러내거나 여성에게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면서 마초라는 찬사를 받지만, 이제는 그런 남성들은 상남자라고 칭송받을 게 아니라 시급히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 잭슨 카츠(J.Katz)는, 7장에서 회고한 바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선수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학생이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세 개의 스포츠 팀의 대표로도 활동했다. 저자는 대학 시절 이후 "야구장과 라커룸, (거의) 모든 종류의 술집, 수많은 직장과 사회 기관에서 수천 시간을 참여 관찰자로 보내며"(p.222) 남성들 간의 집단적 상호작용을 체험했다고 한다. 본서 저술 당시 저자는 노스이스턴 대학교 소속으로, 스포츠 팀이나 해병대 등에서 MVP(Mentors in Violence Prevention)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폭력 문제에 대해 영향력이 있는 남성들부터 먼저 목소리를 내도록 장려하고 있다. 한편 9장에서 긴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듯이, 에미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저자는 에미넴이 여성 차별적인 가사를 쓴다는 내용으로 여러 저술활동을 했으며, 고등학교 강연 때마다 야유를 각오하고 에미넴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고.


저자가 TEDx에서 강연하는 모습. (한국어 자막 지원) #TED 홈페이지 링크

2. 목차 및 주요 내용

  • 1장: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 2장: 사실 바로보기
  • 3장: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기
  • 4장: 여성의 말에 귀 기울이기
  • 5장: 남성 혐오?
  • 6장: 성적 중립의 틀에 갇히다
  • 7장: 방관자들
  • 8장: 인종과 문화
  • 9장: 성폭행은 문화의 산물이다
  • 10장: 죄의식 속의 쾌락: 음란물, 매춘, 스트립쇼
  • 11장: MVP: 운동선수와 해병
  • 12장: 아이들을 잘 가르치자
  • 13장: 이제는 더 많은 남자가 나설 때다

여기서 5장의 제목이 눈에 들어올 수 있는데, 역자가 "남성혐오" 라고 번역한 단어는 원서에서는 "misandry" 가 아니라 "male bashing" 이다. 그대로 번역할 경우 "남자 때리기"(…)인데, 국내 트위터 등지에서 "XX때리기" 의 표현들이 등장한다면 이 역시 같은 어원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국내에도 익숙할 용례로는 게이 배싱(gay bashing)이 있다.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여성들은 폭력 문제로 인하여 남성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삶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며, 이것은 실상 남성의 문제이기도 함을 인식해야 한다.
  • 남성이 폭력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집단과 상황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며, 가장 용감하고 남자다운 '마초' 의 모습이다.
  • 모든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닌 잠재적 투사로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로, 이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2.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하단에 간략히 정리할 것이다. 먼저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 즉 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어째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남성의 문제이기도 한지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저자가 진행하는 MVP 훈련 프로그램을 일부 소개한다. 그 다음에는 저자가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비난하기보다는 상황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투사로 바라본다는 점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는 본서의 설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들을 몇 가지 언급할 것이다.
  • 1.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저자가 바라는 것은 여성들이 의제화해 온 여성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더 많은 남성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성폭력을 자꾸 여성의 문제라고 한정지을 경우,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남성들의 참여를 저해하며 결과적으로 폭력을 줄이지 못한다. 소중한 여성을 마음 속에 지닌 모든 남성들은, 그 소중한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연히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 2. 사실 바로보기
    우리 사회에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 폭력과 이로 인한 불안 및 공포는 만연해 있지만, 남성들은 충분한 경각심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남성들은 여성폭력 문제의 가해자로서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여성폭력을 부추기는 문화에 저항해야 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남성들은 가해자를 일탈적 괴물로 치부하기 쉽지만, 평범한 주변 남성들도 얼마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3.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기
    남성들에게는 그들이 사랑하는 소중한 여성들이 있으며, 때로는 그들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기에, 여성폭력은 남성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폭력을 머리로만 피상적으로 이해해 왔지만, 최근 들어 영향력 있는 남성들이 폭력에 관한 아픔의 기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여성폭력을 반대하는 남성들은 흔히 기사도 정신의 덫에 빠질 수 있으므로, 폭력 사건을 자신의 명예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해야 한다.
  • 4. 여성의 말에 귀 기울이기
    여성들은 남성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남성들은 이들의 경험과 느낌, 생각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곤 한다. 남성들은 여성의 제안이나 주장, 의견을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여성의 전문성이 더 높다고 해도 자신이 훈수를 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가려지는 것은 결국 사회적 권력의 문제이므로, 진정 리더십 있는 남성은 약자들의 작은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한다.
  • 5. 남성 혐오?
    소위 '남성 때리기' 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으로서, 그나마도 오늘날 점점 많은 남성들이 여성폭력 의제화에 동참하는 현실 속에서 힘을 잃고 있다. 남성들은 이 주제를 접하면 흔히 남성 대다수를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며,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꺼리고, 논란 많은 보수 인사들의 발언만을 신뢰한다. 여성폭력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남성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학습과 사회화의 결과에 가까우므로, 여성폭력 의제화는 남성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 6. 성적 중립의 틀에 갇히다
    미디어는 여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여성 피해자는 '여성' 으로 묘사하는 반면, 남성 가해자는 '사람' 이라는 성 중립적인 단어로 묘사한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미디어가 보도한 것을 보면, 미디어는 사건의 젠더적 측면을 포착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불완전한 설명을 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다른 전략으로는, 가해자를 언어적으로 숨길 수 있는 수동태 문법을 활용함으로써 책임질 사람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있다.
  • 7. 방관자들
    종래의 '잠재적 가해자' 논변은 남성들을 방어적이고 적대적이게 만들었으며, 그보다는 어째서 이들이 침묵하고 방관하게 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남성들은 남자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에 노출되며, 늘 주변 남성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지대하게 받아 처신하게 된다. 이런 남성 또래 문화에서는 암묵적으로 남자다운 남성은 여성폭력 문제에서 여성의 편을 들지 않으며, 오직 게이들이나 그런다는 규칙이 존재한다.
  • 8. 인종과 문화
    여성폭력의 가해자가 유색 인종일 경우에는 인종이 중요하게 논의되지만, 가해자가 백인일 경우에는 유독 "백인들은 왜?" 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흑인 갱스터 랩에 환호하는 백인 남성들을 통해, 우리는 여성을 친밀하게 대하지 말라는 남성성의 공통된 규범이 인종 간에 공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인종문제는 여성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으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더 정교하고 복잡한 관점을 견지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 9. 성폭행은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 문화 속의 대중매체는 비록 여성폭력을 모방하게 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지탄 받을 만하지 않은 정상적인 행동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전달한다. 유명한 음악가인 에미넴의 경우, 극단적인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그에게 팬덤이 열광함으로써, 자칫 그런 태도가 옳다는 잘못된 생각이 확산될 수 있다. 프로레슬링이나 남성들에게 인기 많은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의 대중적 인기 역시, 성차별적 언행이 보편적으로 수용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 10. 죄의식 속의 쾌락: 음란물, 매춘, 스트립쇼
    음란물과 스트립 쇼는 남성에게도 문제인데, 이는 그것들이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잘못된 행동이 정상인 양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음란물 시장의 최대 수요자이고, 청소년들은 음란물을 통해 잘못된 성 지식을 배우며,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기 어려워진다. 크리스틴 크롤리 살해 사건이나 밤비 사냥 마케팅 사건을 잘 들여다 보면, 음란물과 스트립 쇼를 이해하는 남성들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다.
  • 11. MVP: 운동선수와 해병
    남성들은 여성폭력 예방에 힘을 합쳐 맞설 동지이며,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남성성의 상징' 인 운동선수와 해병대에게 먼저 개입할 수 있다. 저자가 1993년에 개발한 MVP 훈련 프로그램은 이미지 트레이닝과 가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토론을 함으로써 최적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이를 통해, 폭력을 관망하기보다는 상황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이끌고 집단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자질을 연마하게 된다.
  • 12. 아이들을 잘 가르치자
    자녀의 앞날을 우려하는 부모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자녀에게 여성폭력 문제에 귀감이 되고 폭력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교 교사들 역시 남성 교사들의 헌신과 영향력 있는 체육인, 제도적 수준의 개선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비폭력적인 남성성을 가르쳐야 한다. 남성의 폭력성을 정상화하는 주요 요인이 미디어인 만큼, 이런 교육에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높일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 병행되어야 한다.
  • 13. 이제는 더 많은 남자가 나설 때다
    더 많은 남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의 남성들이 여성폭력 근절이라는 '빅 텐트' 아래로 여성들과 함께 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남성들은 개인적으로 아무에게도 폭력을 가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매우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여성폭력 근절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남성에게서 행동의 자유를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남성성의 길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역서 부제에서 언급된 '여성폭력' 을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가해자가 남성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강간, 기타 각종 신체적 학대" 사례를 전반적으로 포괄하여 "폭력 문제" 라고 지칭하기로 하겠다.

2.2. 폭력 문제가 남성의 문제인 이유

우선, 저자는 폭력 문제가 남성들에게는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일", "여성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 "남자인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 라고 여겨지곤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미국 FBI 통계에 따르면 가해자의 99%는 남성이며,[5] 특히 폭력 문제의 피해자에서는 남성 역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저자는 남성들 역시 폭력 근절을 자신들의 일로서 받아들이고 액션을 취할 때라고 강조한다. 즉 폭력 문제의 밑바탕이 되는 원인을 남성들이 스스로 조명하고, 당장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여성들을 위해서,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적극적인 고민과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이 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공론화한다는 것은 남성들 역시 이제부터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며, 넬슨 만델라의 인용구처럼 이제는 폭력적인 남성이 발 붙일 곳이 없게 만들어 줄 것이고 어떤 남성도 그런 남성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적 표명이 된다는 것.

저자는 1장에서 폭력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치환하면 안 되는 네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남성들이 문제를 외면하고 그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둘째,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의 아버지, 아들, 남편, 오빠, 남동생, 남자친구로서 미국 사회에 이미 수백만 명의 남성들이 존재함을 간과하게 한다. 셋째, 폭력의 발생 빈도나 조직화 정도, 발생의 차원은 남성이 가해자일 때 훨씬 높아지며, 남성 또래 문화의 어떤 측면이 폭력을 지원하거나 유발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못하게 한다. 넷째, 폭력을 근절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에 남성들의 협조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을 실질적 방해 요인으로 남겨두어, 늘 피해자 지원금이나 가해자 처벌 같은 이슈로만 옥신각신하게 만든다.

남성 문화와 폭력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논리는 일견 독자들에게 "죄책감을 가지세요! 반성하세요!" 와 같은 강요처럼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2장에서 저자는 남성 독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은 반성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감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자라서 죄가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남자니까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p.55). 죄책감과 책임감은 분명히 다르며,[6] 여성의 입장에서도 죄책감은 전혀 반갑지 않다. 예컨대 오클랜드 맨스 프로젝트(Oakland Men's Project)의 빅터 루이스(V.Lewis)에 따르면, 어떤 여성 응답자도 남성들의 죄책감을 통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 고는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설령 남성이 죄책감을 느낀다 해도, 그 죄책감의 이유는 "내가 어쩌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따위가 아니라, "내가 지금껏 폭력 문제에 관망만 해서" 여야 한다는 것.

6장에서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은 남성과 폭력을 연결시키는 메시지에 굉장한 불편함을 느끼며, 이는 언론이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방식까지도 바꿔놓았다. 언론은 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남성일 경우 '남성' 이 아니라 '사람' 이라는 중립적 표기를 선호하며, '남녀 모두' 같은 표현이 있으면 '우리 모두' 라는 표현으로 바꾸곤 한다는 것이다.[7] 마찬가지로, '아내를 때린 남편' 이라는 표현 대신 '폭력적인 배우자' 같은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언론은 남성 가해자는 '사람' 으로 보도하는 반면, 여성 가해자는 '여성' 으로 고스란히 밝히는 걸 선호한다. 예컨대 2003년 일리노이 주 글렌뷰 지역에서 여고생들의 잔혹한 신고식 장면이 폭로되자, 온 언론이 "여학생들의 폭력성" 을 언급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점을 느꼈다는 것이고, 그런 폭력적인 사건은 으레 남성이 가해자이게 마련이라는 상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6장에서 저자는 많은 장을 할애하여 폭력 사건에서 젠더 문제를 가린 결과 사건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 사례를 들고 있는데,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중 집단으로 자행된 사례들은 당시 상황을 현장에서 촬영한 비디오 영상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관계 검증이 가능하다고 한다. (모바일에서는 열람이 어려울 수 있다.)
사건명일시범죄유형가해자피해자매스컴의 중립적 보도알려지지 않은 것
아칸소 존즈버러 총기난사 사건1998.03.24.총기난사군복 차림의 만11세, 만13세 남학생 2명여학생 4명, 여교사 1명 사망어린이들이 저지른 불가해한 참극애인과의 실연으로 인한 복수극
1999 우드스톡 페스티벌1999년
(30주년 행사)
폭동, 혼란, 집단강간수십 명의 남성불특정 다수 여성일부 남녀 군중의 일탈
신세대들의 정체성 모색
녹화 비디오에 따르면, 여성의 폭력행사는 미확인
푸에르토리코 인의 날 행사 집단 성폭행 사건2000.06.11.집단 성폭행10여 명의 남성50여 명 이상의 여성젊은 유색인종 폭력배들의 만행더위를 식히기 위해 서로 물을 뿌리다가 남성들이 갑자기 광분, 상대방 여성들의 가슴을 움켜쥐고 무자비하게 겉옷을 찢음
2002 어린이 연쇄 유괴 사건2002년아동 유괴불명의 남성(들)다수의 아동
대니얼 밴 담(D.Van Dam)
새먼다 루니언(S.Runnion) 등
어떤 패턴이나 공통점도 없는 연쇄 범죄모든 사건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남성이라는 것
2002-2003 미군 성폭력 스캔들2002년~2003년집단 성폭행이라크 및 쿠웨이트 주둔 중인 다수의 남성 군인같은 부대에 소속된 동료 여군 10여 명상급자에 의한 성폭행 사건실제로는 하급자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여군도 존재했음

위의 사례들을 보면 매스컴이 사실의 일부를 보도하지 않는 행태를 저자가 비판하고 있음을 잘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만11세 어린이가 군복을 입고 총을 쏴갈기는, 그야말로 할 말이 없는(…) 사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어째서 남성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우리 사회가 막지 못하는지를 질문한다. 저자는 남성들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부추기게 만드는 것들 중 한 원인으로서 음란물을 들고 있다. 10장에서 저자는 음란물 역시 남성의 문제라고 말하는데, 그 사례로서 2002년에서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 사건을 들고 있다.[8] 아직 멋모르는 어린 고등학생들이 그런 행위를 해도 '괜찮다' 는 것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저자에 따르면, 음란물이 그래도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남성들이 죄가 되는지도 몰랐던 가해행위를 저질러서 처벌을 받고 인생길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음란물은 남성들의 건강한 성생활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며, 음란물의 자극적인 시퀀스가 정상적인 성관계 방식이라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남성들이 만약 공감을 표하고 폭력이 문제라고 느꼈을 때에도, 남성들은 자칫 기사도 정신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들은 물론 좋은 남성들이긴 하지만, '나쁜 남자들' 로부터 소중한 내 여자를 지켜주자는 마음은 어디까지나 의도는 좋았다 수준일 뿐, 그 한계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사도의 논리는 "여자는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 이지만, 사실은 "약자는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 가 올바르며 여기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어야 하고, 약자보호는 인류의 당연한 도덕적 의무이기도 하므로 딱히 내세울 만한 대단한 일도 아니다. 둘째, 폭력으로 폭력을 갚는다는 논리에 빠지기 쉽다. 예컨대 "감히 내 여동생을!", "감히 내 을!" 하면서 흥분하는 남성은 우선 샷건부터 들고 달려나가기 십상이다. 셋째, 여성이 도움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남성이 자의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레짐작하여 도와주려 하는 것에 가깝다. 넷째, 기사도 정신은 폭력 문제를 자신의 명예에 대한 개인적인 도전으로 여기게 하며, 이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서 통제하려는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에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남성이 폭력에 문제의식을 느낄 때, 남성은 가부장적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서 보편적인 인류애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2.3. MVP 훈련 프로그램: 감수성 훈련 X 리더십 훈련 O

남성들의 젠더 의식을 교육해야 한다면, 어떤 남성들부터 건드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래윈 코넬(R.W.Connell)이 《남성성/들》 에서 제시한 분류에 따르자면, 어떤 활동가들은 종속적이거나 주변화된 남성성을 가진 남성들부터 교육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은 게이와 같은 성 소수자들, 혹은 늘상 게이 취급을 받는 여성적인 남성들일수록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패권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의 허상을 잘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부터 먼저 변화시킨다면 단시간에 많은 수의 남성들이 효과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정반대의 접근을 취한다. 저자는 패권적 남성성의 상징과도 같은 집단, 미식축구 선수들이나 해병대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다닌다. 이들이 폭력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다른 남성들은 "진정한 남자다움은 폭력에 대해 할 말을 하는 것이다" 라고 믿게 되어 자연히 이들을 따라가게 된다는 논리다.

저자의 이런 접근법에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11장에서 저자는 미국 역사를 예로 들어, 리처드 닉슨(R.Nixon)은 완고한 반공주의자 이미지가 있었기에 "미국을 팔아넘기려 한다" 는 강경파들의 비난 없이 중국과의 교류를 시작할 수 있었고, 린든 B. 존슨(L.Johnson)은 남부 출신으로 전체적인 강한 공권력을 행사했기에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공민권법을 제정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경영 분야에서도 유효한 방식이었다. 밀러 맥주회사(Miller Brewing Company)는 소비시장의 85%가 남성인 상황에서, 남성들이 다이어트 맥주에 대한 수요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가 말이야, 맥주를 마셔도 하필 다이어트 맥주가 뭐냐? 싸나이답지 못하게"(…) 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딕 버트커스(D.Butkus)와 부바 스미스(B.Smith) 등 미식축구 스타들을 기용하여 다이어트 맥주 광고를 찍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비아그라 제조사는 남성들이 발기부전 치료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강인한 이미지의 미식축구 코치인 마이크 디트카(M.Ditka), 당시 유명한 메이저리그 스타 라파엘 팔메이로(R.Palmeiro)를 광고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남성들은 싸나이다운 사람의 처신을 유심히 지켜보고, 그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운동선수나 해병대 외에도 정치인이나 의사결정권자처럼 높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역시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아직은 높으시지 않은 분들'(…)이 장차 높아지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갈고 닦는 교육까지도 포함된다. 저자가 보기에, 변화하는 21세기의 새로운 리더십은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9] 그리고 동료 남성의 폭력에 단호하게 개입하는 것은 이런 리더십을 갈고 닦기에 최적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폭력에 개입한다는 것은 자신이 보기에 옳지 않게 돌아가는 집단 내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모두를 이끌어 가는, 전형적인 지도자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력을 방관하지 않는 것은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책임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폭력 근절 교육은 일각의 생각처럼 계집애 같은(?) 감수성 훈련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거창하고 남성들에게도 매력적인 "리더십 훈련" 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저자는 이런 '상남자' 들을 교육하기 위한 자료로서 MVP 프로그램이라는 특수한 강의 코스를 만들어두고 있다. 이 강의는 무작정 '군 내 여성의 비율이 50%가 아니다!' 라거나, '미식축구 선수들만큼 성범죄로 자주 입건되는 사람들도 없다!' 고 주장하는 비난조의 슬라이드 쇼만 늘어놓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일단 11장에서 소개되는 프로그램의 구성은, 남성들로만 구성된 공간에서[10] 학교 선배나 팀 코치 등 남성성의 역할 모델이 될 만하면서도 충분히 가까운 사람들이 조별 트레이너로 들어가고, 이미지 트레이닝과 토론, 시나리오 트레이닝과 토론, 이후 결론의 도출로 이어진다.

여기서 이미지 트레이닝이 무엇인고 하니, 대략 아래의 상황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상상한 후에는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를 토론하게 된다.
1)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여성이 방 안에 다른 남성과 함께 있다고 상상하라. 어머니, 여동생, 누나, 여자친구 등 누구라도 좋다. (정말로 자신이 어떤 여성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그 대신에 당신이 소중히 여기고 있으면서 비교적 몸집이 왜소하거나 나이가 어린 남성을 떠올려라.)

2) 함께 있던 다른 남성이 갑자기 그 여성을 가혹하고 잔인하게 폭행하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할 뿐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 현장을 상상하라.

3) 이번에는 알고보니 그 방 안에 다른 근육질의 상남자 이미지를 한 남성이 있었다고 상상하라. 그러나 그가 "뭔가 이유가 있겠지, 감정에 휩쓸리지 않겠어, 섣불리 개입하는 건 좋지 않아" 라고 독백하며 폭행 현장을 관망만 하고 있다고 상상하라.

4)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피해 여성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폭행한 남성에게는? 관망한 남성에게는? 이 폭행 사건의 책임은 세 사람 중 누구에게 있는가?

보통 이미지 트레이닝 후에 많은 '상남자' 들은 매우 괴로워하고 관망자에게 분노하며, 무력감과 슬픔을 표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현실에서의 시나리오로 넘어가게 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현실은 복잡하기 때문에, 수많은 전후맥락이 있고 신경써야 할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미지 트레이닝 속의 근육질 남성은 의외로 현실적이지 못하며, 상상 속의 관망자와 현실 속의 관망자는 사뭇 다르다. 현실에서는 우발적으로 목격하게 되고, 얼핏 모호해 보이며, 일시적이며 맥락을 종잡기 어려운 형태의 폭력이 대부분이다. 이런 어렴풋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다음으로 진행될 시나리오 트레이닝이다.

시나리오 트레이닝은 플레이북(playbook)이라는 모음집에 수록된 주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들은 실제 사고사례나 이를 각색한 가상의 이야기를 짧게 다루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스포츠 규칙 용어들이 제목으로 붙어 있다. 참가자들은 이 사례를 읽어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다시 토론한다. 본서에서 소개된 두 가지 사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슬랩샷(slapshot)

"쉬는 시간에 학교 복도에 나와 있다. 그때 당신이 아는 한 남녀 커플이 말싸움을 하다가, 남학생이 여자친구를 사물함 쪽으로 강하게 밀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 당신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 무리지어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다. 그 장면을 보고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일리걸 모션(illegal motion)

"당신은 파티에서 한 친구가 만취한 여성을 데리고 나가려는 것을 목격한다. 그 여자는 얼큰히 취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많이 마셔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당신도 아는 사이인 그 여자는, 같이 나가자는 남자의 제안에 주저하는 듯 보인다."

위에서 나왔던 이미지 트레이닝보다는 훨씬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앞의 이미지 트레이닝에서는 분개했던 많은 '상남자' 들이, 이번에는 대부분 "개입하고 싶지 않다" 고 응답한다고 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트레이너가 개입하게 된다. 물론 이들은 "뻔히 폭력인데 불편하지도 않으냐, 당연히 개입해야지!" 하는 우격다짐으로 개입하진 않는다. 이들의 역할은, 세상에는 "개입한다 or 하지 않는다" 의 이분법 이외에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큰 소리를 내는 등의 행동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의를 돌릴 수도 있다. 당장은 침묵하지만 나중에 피해자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도와줄 용의가 있다고 넌지시 알릴 수도 있다. 당장은 침묵하지만 나중에 가해자와 만나서 아까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넌지시 알릴 수도 있다. 여러 친구들에게 알릴 수도 있고, 인터넷에 알릴 수도 있고, 책임자나 상급자, 기관 내 상담사들에게 알려서 사건을 공론화할 수도 있다. 따져보면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참가자들은 비로소 "그럼 우리는 왜 굳이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지?" 의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게 되며, 생산성 있는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트레이너들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도출되어도 좋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만큼은 유일하게 피해야 할 결론이라는 원칙 하에 결론의 도출을 돕는다.

저자에 따르면 해병대에서 이런 강의를 하는 것은 격투 이미지가 강한 특성상 언뜻 매우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다른 기관이나 분야들보다 훨씬 더 쉽다고 한다(…).[11] 왜냐하면, 해병대의 퇴역 중장 조지 크리스마스(G.Christmas)가 말했듯 "폭력은 해병답지 못하다" 는 상명하달식(?) 메시지는 아랫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해병대원들에게 "해병대는 명예와 용기, 헌신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면서, 그 이후에 "우리 사회에는 폭력 아래 신음하는 여성들을 위해 용감한 남성들의 리더십이 긴급히 필요하다" 라고 말하면 동기부여가 아주 제대로 된다나(…).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위해 무모하게(?) 온몸을 내던지는 집단인 해병대의 특성상, 폭력 근절이라는 '임무' 는 이들에게 아주 매혹적인 도전 과제가 된다고 한다. 특히나 강의실 분위기도 관리가 잘 되는 편인데, 참가자들이 집중을 안 하거나 비아냥거리더라도 카리스마 있는 부사관이나 장교가 앞자리에서 맞장구를 쳐 주면 아랫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고 한다(…).

나무위키에 한하여 생각건대, 국내 환경에서 고스란히 이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일단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같은 문헌들에서도 암시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이들이야말로 진짜 남자다" 라고 말할 만한 집단이 흔치 않다. 우리나라가 무슨 미식축구 애호국도 아니고,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으니 군인들도 남성성의 아이콘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고,[12] 대한민국 해병대 역시 대중적으로 인식이 썩 좋다고는 차마 말하기 힘들다(…). 이는 미국의 경우 유달리 패권적 남성성이 하나의 단일한 '표준형' 남성성으로서 확립되어 있지만 국내에는 다수의 남성성으로서 미분화 및 파편화되어 있다는 차이에 기인할 것이다.

2.4. 남성들: 잠재적 가해자 X 잠재적 투사 O

"MVP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남자들을 잠재적인 가해자가 아니라 성폭력에 대항해 싸우는 동지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 p.391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보통 이런 류의 운동가들이 폭력 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주 빠지게 되는 함정은 모든 남성들을 글러먹은(?) 범죄자 천성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7장 서두에서, 저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운동이 마치 모든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미숙한 이분법적인 모델"(p.203)을 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남성들을 설득할 수도 없고 방어적이며 적대적인 태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남성의 폭력성을 불가피한 측면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들었다.[13]

그 대신, 저자는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평범한 남성들이 폭력 문제에 대해 그저 수수방관만 해서는 안 된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보다는 "관망자", "잠재적 책임자", "잠재적 투사" 와 같은 표현들을 선호하는데, 이런 표현들은 남성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다른 운동가인 토니 포터(T.Porter)가 "선한 남성들의 힘" 에 호소하는 것과도 상통하는 부분. 저자가 희망하는 것은, 일부 남성들이 폭력 문제를 저질렀을 때에 이 선량한 남성들이 "그 행동을 혐오할 뿐만 아니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로 평가"(p.210)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마이클 킴멜(M.Kimmel), 저널리스트 네이선 맥콜(N.McCall), 하버드 대학교의 평화심리학자 캐럴 콘(C.Cohn) 등이 지적하듯이,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일반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며, 대중매체의 영향도 더 크게 받는다. 이런 사회적 영향력(social influence)의 힘은 종종 폭력을 부추기는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지만, 폭력을 뜯어말리는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저자의 목표는 이 힘을 전자가 아닌 후자의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성 또래 문화에 공유되는 암묵적 규칙은 일반적으로 폭력을 부추기는 쪽이라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그 이유는 미국 사회에서 "진정한 사내 대장부라면 공개적으로 여성 편을 들어줄 리 없다",[14] "게이가 아닌 이상에야 여성 편을 들어줄 리 없다" 같은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저자는 반문한다. 폭력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남들 따라 침묵하는 것보다 훨씬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닌가? 남자다움은 다수의 방식(침묵)에 휩쓸리는 데 있는가, 아니면 옳다고 믿는 것을 끝내 관철시키는 데 있는가?

11장에서 저자는, 남성들의 침묵이 심지어 주위에게 상남자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조차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저자의 지인 중 한 예로, 고교 미식축구 쿼터백으로서 엄청난 근육질과 다부진 피지컬을 지녔던 브라이언 허트(B.Hurt)라는 사람은, 고등학생 시절에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여학생을 가혹하게 폭행하는 남학생을 목격했지만 그조차 공포에 질려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고 회고한다. 의외로, 남성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마동석처럼 어지간히 우람한 사람들조차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장면이라는 얘기다. 교사들의 관점을 다루는 12장에서도, 많은 남성 교사들이 교실마다 한 명씩 있는 우락부락한 남학생에 대해서 심리적인 위축을 느끼고 움츠러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루어 보면, 관망하고 침묵하는 게 남자다운 게 아니라, 공포를 이겨내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정말 남자다운 것이다.

남성들이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행동하지?" 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사실은, 결국 최대한 많은 수의 남성들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13장에서 많은 남성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면 결국 다양한 남성들이 폭력의 근절이라는 공통의 기치 아래에서 공통의 목적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일명 "빅 텐트" 를 제안한다. 남성들은 모두들 생각과 사상과 삶의 방식과 관심사가 다르지만, 그런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보다는 서로 공유하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뜻이 완전히 일치하는 파트너와의 완벽한 결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공통되는 부분에서 연합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p.449). 이와 같은 저자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하단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나무위키에서 생각건대, 본 문서 서두에서 밝혔듯이 본서는 전반적으로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는 모두 무슬림이다" 의 논리구조를 따르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무슬림에 대한 문제의 증오발언은 "따라서 모든 무슬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의 잘못된 논리적 결론을 도출했지만, 대조적으로 본서에서는 "따라서 모든 남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의 잘못된 논리적 결론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다. 본서는 남성들 중의 절대 다수가 폭력 범죄자가 아님을 인식하면서, 그 대신에 그들이 '폭력의 피해자를 도울 수 있음에도 아직 돕고자 나서지 않은 사람들' 이라고 프레임화한다.[15] 또한 기저율 무시의 오류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인구가 훨씬 더 많아서 폭력 범죄자의 남초 비율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3. 남는 의문점들

  • 남성은 언제나 폭력을 막을 수 있는 투사인가?
    위에서 잠재적 가해자 논리에 대응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이것이 일반화인가에 대한 의문점은 책의 최후반부에 이르도록 가시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남성들은 폭력의 피해자를 도울 힘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 간의 위계적 권력관계의 영향이 존재할 수도 있고, 당장 맞서고 싶어도 차후 계속 봐야만 하는 상호의존 관계라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16] 또한 설령 관망만 한다 할지라도, 즉석에서 불쾌해하지 않았더라도 차후 그 가해자와 거리를 둘 수도 있는 것이다.[17] 심지어 이런 가해자를 두둔하고 맞장구치는 남성이 있다 해도, 그 남성이 권력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면 가해행동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두둔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선뜻 묻기 어렵다. 결국 본서의 메시지는 만약 당신에게 힘이 있다면 과감히 용기를 내서 도우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본서가 잘못된 일반화를 한다면 그것은 "모든 남성들을 범죄자 취급한다" 가 아니라 "모든 남성들이 다 폭력을 막아설 힘이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가 될 것이다. 대체로 남성들은 힘이 있겠지만, 특정 남성이 막지 못하고 있을 때 비난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 에미넴에 대한 비판은 주효한가?
    9장에서 저자는 긴 지면을 할애하여 에미넴의 노래 가사가 어째서 남성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에미넴의 가사에 흠뻑 빠져든 남성들이 에미넴의 노래 가사처럼 똑같이 폭력적이게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그 대신, 그런 폭력적인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저자는 예술의 자유와 검열의 논리 중에서 무작정 후자를 고르지는 않지만, 저자가 기대하는 '비판적 의식' 이 팬덤 내부에서 전혀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닐 수 있다. 예컨대 에미넴의 팬들은 에미넴의 가사 하나하나를 자신의 삶의 가이드라인(?)으로서 맹종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에미넴의 우울한 정서에 공감하는 것일 수 있다. 즉 에미넴의 메시지가 규범적이고 당연해서가 아니라, 비규범적이고 위험하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80년대에 "아기의 시체를 공양하라, 동물을 때려죽여서 바쳐라, 사탄을 숭배하라" 고 떠들던 일부 몰지각한 음악가들의 대다수는, (신해철 씨가 한때 투고했던 칼럼인 《음악과 악마주의》 에서 언급되듯이) 이후 중년이 되어서는 "남들 보기 민망하다" 면서 방정하게 처신하고 교회도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근본주의 개신교계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고 맹렬히 질타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 수사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이런 음악가들의 활동이 정말로 모방범죄를 불러일으켰다는 증거물도 없었다. 당시 그런 음악가들에게 열광하던 팬들 역시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었고, 오히려 그들을 걱정하던 부모 세대보다 더한 '꼰대' 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에미넴이 어떤 실질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할 때,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세대를 이어 늘 반복되어 오던 대중문화 비판을 단순히 반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음란물 비판 : 보지 말라는 것인가?
    저자는 10장에서 음란물(특히 하드코어 포르노)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것이 마치 남성의 폭력적인 성관계가 당연하다는 것처럼 남성들에게 거짓 성교육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물론 서구권의 하드코어 포르노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극단적이며 과격하고 가혹한 섹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며, 페미니스트 중에도 안드레아 드워킨(A.Dworkin)의 《포르노그래피》 에서 격렬한 어조로 이를 다루기도 했다. 그런데 본서가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입장에서 음란물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럼 보지 말라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나올 때 본서의 논조는 조금 멈칫하는 느낌을 보인다. 본서는 남성이 음란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못박아 놓지 않는다.

    남성은 성욕을 관리하고 해소해야 하는 당사자이며, 이 지점에서 음란물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음란물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금욕주의를 대안으로 내놓는다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본서는 음란물에 대한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힘주어 말하지는 못한다. 사실, 일본의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의 경우는 음란물의 순기능으로 "마음 속의 욕망이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상으로 표현됨으로써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 는 점을 들고 있다. 우에노는 아동 포르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음란물에 대해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에노가 폭력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모순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자" 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만족한다. 이는 《남성 페미니스트》 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제안하는 것과도 상통하지만, 저자의 지침을 따르고자 하는 남성들에게는 다소 막연한 것 역시 사실이다.
"나는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기준을 다른 남자들에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성폭력이나 성차별적인 행태에 맞서고 싶은 남자들은 그 누구라도 자신이 지키지도 않는 기준을 들이대 남을 비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거나 어떤 모순에 직면했을 때 그저 정직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해결책이다."
- pp.324-325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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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링크에서도 나오지만 이 논리는 그 집단(무슬림, 혹은 남성) 자체에 대한 평가나 비난의 근거로 쓰일 수 없다. 젠더 문제에서도 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의 남성이라는 통계적 사실은 자칫 잠재적 가해자라는 잘못된 일반화로 빠지기 쉬운데, 저자는 이에 대해서는 다행히 선을 긋는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 문서 하단에 다시 서술한다.[2] 저자의 예를 소개하자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잔혹하게 학대하는 동안 옷장 속에 숨어서 공포에 질려 울먹이는 어린 아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3] 단, 사회학자 조이 윌리엄스(J.E.Williams)가 《The Blackwell Encyclopedia of Sociology》 에 기고했던 것처럼, 어떻게 보면 남성들이 성폭행에 대한 공포를 상시 느끼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곳은 바로 교도소일 것이다. 실제 강간 사고는 흔치 않지만, 그 위협의 규모는 엄청나기 때문에 체격이 왜소한 재소자들은 자기만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청년막(?)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불안감을 확장시켜 보면, 여성들은 남성이 교도소에서 느끼는 강간의 공포를 일상 속에서 상시 느낀다는 식의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4] 이런 공포는 국내에서도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많이 느낀다는 사회조사 결과도 있다. #기사[5] 국내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짤이 돌기도 했었다. 성범죄자 알림e 어플리케이션 피드백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다 좋은데, 왜 남성 가해자만 공개하는 거죠? 이거 차별 아닌가요?" 라고 불만을 제기하자, 담당자가 "저희는 성범죄자의 성별에 무관하게 모두 공개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변을 달아둔 것이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즉, 성폭력 가해자 인구집단은 극심할 정도의 남초라는 것.[6] 저자는 미국 역사에서 노예해방이나 민권운동의 중요한 도약은 죄책감이 아니라 책임감을 느꼈던 백인들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당시 인종주의자들에게 "죄책감에 굴복했다" 는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7] 저자는 이런 경향이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라고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여성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상황이 바뀔 수 있을 것인가 같은 궁금증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2019년의 대한민국에서는 거꾸로, 통영경찰서 여경 뺑소니 사건에 대해 가해 경찰의 성별 표기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도 벌어졌다. 예컨대 이 기사 내용만으로는 가해자가 여경임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여경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공개된 후 도리어 여경의 이미지에 역효과만 낳았다.[8] 이 사건은 만16-17세 가해자들이 만16세 피해자 여성을 술에 취하게 만든 뒤, 피해자의 성기에 음료수 페트병(!)을 비롯한 각종 극단적인 이물질 삽입을 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특히, 가해자들의 변호사는 피해자의 장래희망이 포르노 배우였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는 행위였다고 주장했으며, 언론이 이를 고스란히 받아 보도했다. 가해자들은 모두 전과가 없는 평범한 모범생이었으며, 그 중 한 사람은 해당 카운티 부국장의 아들로 밝혀져 더욱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하다.[9] 4장에서 저자는 2000년~2003년에 펜타곤에서 군 가정폭력 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는 동안,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최고결정권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했다고 회고한다.[10] 남녀를 섞어서 교육하는 경우 남녀 간에 편을 갈라 싸우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기 때문에 교육이 힘들다고 한다.[11]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강의가 더 어렵거나, 적어도 유의해야 할 문제들이 더 많은 경우로는 남고남녀공학을 포함하는 고등학교 강의인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원들은 폭력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자고 하면 단순하게 "예!" 하면서 받아들이는데, 고등학생들에게는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인상이 행간에서 종종 드러난다.[12] 도리어 국내 환경에서는 과거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되는 거지" 라고 여기다가, 근래에는 군대에 다녀오는 것이 "2년 손해보는 것" 이라는 인식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13] 이에 대해서 유명한 페미니스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가 비판한 바 있는데, 《잘못된 길》 에서 바댕테르는 90년대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의 폭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그대로 생물학적 본질주의(biological essentialism)로 빠져 버렸고, 결국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에야 누구든 폭력 가해자로서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관주의를 주장함으로써 그들의 사상적 선배인 시몬 드 보부아르(S.de Beauvoir)의 '젠더' 개념을 저버렸다고 지적했다.[14]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미국 젊은이들의 신조어 'cock-blocker' 를 소개한다. 역서에서는 "훼방꾼" 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여성을 꼬셔서 드디어 자신이 덮칠 수 있게 된 결정적 상황에서 하지 말라고 훼방을 놓는 동료 남성" 을 의미한다. 이런 표현이 통용된다는 것 자체가, 남성 또래 문화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것' 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것.[15] 아마도 저자는 무슬림에 대해서라면 "테러에 반대하는 무슬림들은 동료들의 테러리즘을 막을 힘이 있으므로, 무슬림 사회에서 테러리즘을 방관하기보다는 그 근절을 위해 나서야 한다" 는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이 논리가 온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저자가 남성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동의하기 쉬울 것이다.[16] 연예계나 재벌 가문들에서 이런 일이 많다. 누군가가 행실이 개차반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힘이 없는 남성은 다른 여성에게 "○○○와는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 정도로 슬쩍 조언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남성들조차 자기 발언에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17]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적 발언이라면, 많은 경우 침묵은 긍정보다는 부정으로 이해된다. 주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어떤 가해자는 자신이 승인되었다고 여겨서 더욱 신이 나는 반면, 어떤 가해자는 고립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차이가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