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2 00:28:08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서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2)
발행일 2017년 5월
저자 권김현영 편저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
출판사 교양인
ISBN 9791187064138
#교보문고

1. 소개2. 목차 및 주요 내용
2.1. 챕터별 내용 정리2.2. 식민지 남성성2.3. 한국 남성들을 남성답게 하는 것2.4. 성소수자와 한국인의 남성성
3. 서평: 식민지 근대성 관점에서의 인문학적 비평

1. 소개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 정서에 맞는 독자적인 남성성 논의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문헌. 이를 위해 기존의 주먹구구식 통념에서 벗어나서 더 체계적인 젠더학적 인식론과 연구방법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로 새롭게 제시한 남성성이 바로 "식민지 남성성".

이전 책인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와 마찬가지로 핸드북의 형태를 따르며, 이번에는 권김현영 씨가 편집인이 되었다. "도란스 기획 총서" 의 둘째 서적으로서, 이 다음으로 출간된 서적으로는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이 있다. 저술에 참여한 저자들은 권김현영,[1] (필명) 루인,[2] 엄기호,[3] 정희진,[4] (필명) 준우,[5] 그리고 한채윤[6]이다.

책의 출간 배경을 설명하는데 돼지 흥분제로 유명한 그분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 그런 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출마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 또한 저자들은 남성들이 남성다움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보살핌의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책의 출간에 대한 정보는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이미 예고되었는데, 청중들 중 누군가가 책 제목을 "한국 남성에 반대한다" 로 잘못 기억해서 좌중이 빵 터진 적이 있다는 뒷얘기가 있다. 본서는 "분석" 이라는 표현에서도 보듯이 학술적 논의를 목적으로 하는 젠더 서적이다.

이 책에서 2장,[7] 3장,[8] 5장[9]의 경우 기존에 출판되었던 《남성성과 젠더》(2011)의 각 장의 저자들이 기존에 저술했던 내용을 업데이트하여 다시 쓴 것이다. 따라서 바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남성성과 젠더》 의 논의를 더 최신 버전으로 접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저술과 새 저술을 비교하면서 어떤 내용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어떤 내용이 추가되었는지 살펴보는 것 역시, 이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겠다.

2. 목차 및 주요 내용

  • 들어가는 글
  • 1장: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정희진, 2017)
    • 남성성, 식민지 남성성
    • 남성성에 대한 여성주의 이론
    • 패권적 남성성
    • 주변적 남성성
    • 식민지 남성성
  • 2장: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 (권김현영, 2017)
    • 한국 남자는 왜?
    • 근대 전환기 식민지 남자들의 처지
    • 차이로서 남성 주체는 가능한가
    • 한국 남자의 남성성들을 위해
  • 3장: 남성 신체의 근대적 발명 (루인, 2017)
    • 근대 외과 의학의 발달과 남성성 규범 형성
    • 외부 성기로 증명하는 남성 신체
    • 징병 검사, '국민' 관리 제도, 그리고 남성성
    • 남성/성이란 생물학
  • 4장: 보편성의 정치와 한국의 남성성 (엄기호, 2017)
    • 피해자 대 기득권자
    • 남성의 위기, 노동에서 추방되고 국민권을 박탈당하다
    • 평등의 문 앞에서 엎어지다 - 찌질이라는 속물
    • 평등? 나 혼자 즐기련다 - 동물이 된 우아한 초식남
    • 평등! 남녀 간의 평등 말고 남성들 간의 평등 - 괴물로 진화하는 사이버 마초
    • 속물, 동물, 그리고 괴물을 넘어
  • 5장: 이성애 제도와 여자의 남성성 (한채윤, 2017)
    • 소녀는 어떻게 레즈비언이 되었는가
    • 레즈비언의 남성성과 이성애주의
    • 부치와 트랜스남성 - 남성성의 원본은 없다
    • 이성애주의와 남성성
  • 6장: 트랜스남성은 어떻게 한국 남자가 되는가 (준우, 2017)
    • 트랜스남성이 이렇게 평범해도 되는 거야?
    • 평범한 남자의 들킬 위험
    • 남성 간 유대 관계에서 남자 되기란
    • 남자의 몸은 낭만이자 권력이다
    • 트랜스남성은 '한남'이 되고 싶은가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한국 남성들이 드러내는 남성성은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가장 잘 설명되며, 이는 젠더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 한국 남성들은 그들의 페니스가 존재함을 국가에게 확인받음으로써, 그리고 남성 간에 다양하게 연대함으로써 남성성이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레즈비언 부치들은 여성의 시각에서 남성성을 새롭게 변형하지만, FTM 트랜스남성들은 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패권적 남성성을 추구한다.

2.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으며, 해당 챕터가 이 책에서 갖는 역할을 괄호 속에 정리하였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몇 종류로 추려서 하단에 다시 챕터 구분 없이 소개할 것이다. 여기서는 식민지 남성성의 개념과 내용, 우리 사회가 남성성을 정의하는 방식, 성소수자들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패권적 남성성의 이미지를 우선 소개한다.

  • 들어가는 글
    한국의 남성성에 대한 '위기' 담론이 증가하는 가운데, 학계에 본격적인 남성성 분석이 필요하다. 남성성의 분석을 위해서는 젠더학적 인식론과 방법론을 제안하는 담론적 실천이 필요하다. 남성성에 대한 기존의 접근은 남성성이 곧 보편성이라고 전제하고 있기에, 식민지 남성성을 시작으로 새로운 남성성의 목록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1.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남성성 연구에 필요한 탈식민주의 및 메타-젠더적 인식론의 적용)
    남성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이해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나타나면서 본격화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서구에 제한되는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서구적 인식에 따르면 남성성은 패권적 남성성을 선망하는 주변적 남성성의 관계로 설명되지만, 제3세계의 남성들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식민지 남성성은 강자로서의 외세와 약자로서의 자국을 상정하며, 한국의 남성성 분석 역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 2.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 (역사적 배경을 통해 살펴보는 한국 남성들만의 남성성의 양상, 그리고 그 가능성)
    한국 남성들은 보편성을 갖는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유독 페니스에 집착하며, 이것이 보편적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받는다. 하지만 한국 남성들이 경험하는 삶의 양상들은 개화기부터 시작되어 온 식민지의 경험에 기초하는 남성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일견 여성적으로 보이는 식민지 남성성을 제시한다면, 남성성 간의 차이가 두드러짐으로써 기존의 남성성의 합의에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3. 남성 신체의 근대적 발명 (남성의 신체가 정상성을 획득하는 기준으로서의 페니스)
    근대적 외과의학을 통해 형성된 의료 규범은 페니스의 존재유무만을 근거로 하여 남성성을 독단적이고 근원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남성성의 본질을 정련하기 위해 페니스에 기초하는 복무 적격 심사를 실시하고 있다. 남성성을 페니스에만 연결짓는 젠더 실천을 극복함으로써, 우리는 성소수자 및 다수자를 포함한 모두가 자유로운 젠더 실천을 하도록 보장할 수 있다.
  • 4. 보편성의 정치와 한국의 남성성 (양극화된 세계 속에서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남성들의 연대 노력)
    기존의 국민국가가 제공하는 주체성에 기대어 관성적으로 살아오던 남성들은 신자유주의가 도래함에 따라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위기 상황에 대해 페미니즘에 동조하거나 피해의식을 드러내는데, 이는 주체적 시민권을 얻기 위한 남성 간 연대의 다양한 분화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시민권의 개념에 대해 남성의 임금노동에 근거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 5. 이성애 제도와 여자의 남성성 (이성애적인 것으로서 남성성을 이해하는 사회를 향한 부치들의 도전)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성이 결여된 존재로 이해되나, 레즈비언들 중 '부치' 는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치들이 꾸미는 남성적인 외양은 여성의 시각에 입각한 것으로서, 남성성이 새롭게 재조정되는 사례에 해당한다. 부치들의 남성성은 늘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해야 하는 이성애자 남성들에게는 위협적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 6. 트랜스남성은 어떻게 한국 남자가 되는가 (FTM 트랜스남성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남성성)
    FTM 트랜스남성들은 평범한 남성이 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평범한 시스남성 '한남' 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이들이 갈망하는 남성 간 유대 관계의 참여, 이상적 성관계, 성범죄에 대한 시선에는, 시스남성 못지않게 지배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 현상은 FTM 트랜스남성들이 주류 사회에서 수용되는 남성성을 바라기 때문이지만, 여기에는 더 많은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2.2. 식민지 남성성

Colonial Masculinity

정희진(2017)은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 과 같은 리버럴 페미니즘이 보편적 인권의 언어로 페미니즘의 시작을 열었고, 《제2의 성》 을 필두로 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젠더 문제를 공적영역에서의 여성의 진출 이외에도 사적영역에서의 여성 억압 문제로까지 확장시켰다고 페미니즘의 역사를 되짚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논의는 남성의 시선에 주로 종속되어 있었다고 비판한다.

1장에서는 남성성에 대한 기존 논의들을 검토하기 위해 먼저 "패권적 남성성" 과 "주변적 남성성" 으로 구분한다. 패권적 남성성은 한 시대의 사회 전체를 주도하는 대세를 의미하며, 그것이 제시하는 남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인간다움" 을 의미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종종 이상적인 남성성이 변화하기도 하지만, 이는 남성성의 변화일 뿐 남성 권력의 감소나 여성상위 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이들과 대비되는 주변적 남성성의 경우, 패권적 남성성을 선망하는 피지배 계급의 남성들로서 실생활에서는 오히려 더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이것은 남성에게는 약하고 여성에게는 강한 면모를 보이며, 정희진(2017)에 따르면 이들은 "패권적 남성성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이니, 우리 남성들 역시 피해자이다" 와 같은 주장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이 평소에는 남성 간 연대(homosocial)를 이용하다가 자기 아쉬울 때에만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강조하는 행태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들어 이를 거부한다. 적어도 본인이 남성중심적 문화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면 하소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10]

정희진(2017)이 구분한 바 패권적 & 주변적 남성성의 구분은 《남성성/들》 의 저자 래윈 코넬(R.Connell)이 분류했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코넬에 따르면, 패권적 남성성에 의해 거부당한 모든 속성들이 집약된 "종속적 남성성", 패권적 남성성을 어정쩡하게 묵인하면서도 그 '배당금' 만큼은 꼬박꼬박 받아 챙기는 "공모적 남성성", 패권적 남성성을 거부하려 하지만 실상은 그것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어떤 '배당금' 도 받아 챙기지 못하는 "주변화된 남성성" 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정희진(2017)의 구분은 이보다는 좀 더 단순한 것으로, 마치 "이상적 남성성과 현실적 남성성" 의 간략한 구도를 연상하게 한다. 전후맥락을 고려하면 코넬의 분류법은 다분히 '서구적' 인 것이어서 국내의 남성성을 설명하기에는 자신의 분류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상의 남성성의 분류는[11] 제3세계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된다. 한국을 포함하여 제3세계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젠더 의제의 복잡성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적 배경과 국제정치적 맥락을 고려할 때, 이들의 남성성에는 피해자로서의 위치를 자처하는 약자로서의 남성성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12] 식민지 남성성에서 남성은 약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여성이 강자에게 종속당하는 것에 대한 통렬한 자성이 없다. 여성을 외세에게 빼앗겼다면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니, 결국 여성은 그런 자신의 자존심을 세워 주어야 한다는 것. 이들은 매사를 외세(강자)와 자국(약자)의 관계로 환원하는 바람에, 어떤 경우에든 결국 외세 탓을 할 수 있어서 자국 내의 이슈는 사소한 것이 되고 만다. 이는 제국주의의 경험이 있는 서구의 남성성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라는 것.

이쯤에서 식민지 남성성의 핵심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식민지 남성성은 남성(강자) 대 여성(약자)의 관계를 상정하기에 앞서서, 외세(강자) 대 자국(약자)의 민족 맥락의 관계를 상정한다.
  • 자신이 외세(강자)와 싸우는 동안 여성은 자신을 지원하는 젠더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강자와의 타협을 위해 여성을 자원화해야 한다.
  • 여성을 '조공' 함으로써 무너진 자존심은 외세(강자)에 대한 저항으로 표출되는 대신, 여성을 추가로 혐오하거나 영 안 되면 현실도피를 하게 만든다.

이는 직감적으로 짐작하다시피 국내 운동권 및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행태를 잘 설명할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파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역시 설명이 가능할 수 있다.[13] 예컨대 좌파는 여성의 피해에 일견 분노하면서도 그들의 경험에 공감하고 연대하려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그러한 피해 사실외세와의 투쟁에 동원하는 손쉬운 카드로 삼아 버린다. 한편으로 우파의 경우, 여성의 피해 사실을 협상의 기회로 이해하여, 외세의 비위를 맞추고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한 자원으로 삼아 버리게 된다는 것.

사실 이런 식의 접근이 완전히 생소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강력한 외세에게 자기 여성을 빼앗긴 남성들이 자기비하를 하고, 그것이 "양공주" 여성들에게 다시 투사된다는 설명은 이미 박이은실(2013)의 《패권적 남성성의 역사》 같은 기존의 문헌에서도 언급되었던 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더 나아가, 현대 한국 남성들의 남성성은 그러한 식민지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할 때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2장에서 권김현영(2017)은 논의를 이어받아, 식민지 남성성이 개화기 맥락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탐구한다. 개화기 남성들은 남성다움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오이디푸스적으로 동일시해야 하는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광수 같은 경우 일본인 남성에 대한 동성애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근대성에 대한 동경을 꿈꾸었다고 한다. 문제는 일제강점기가 장기화되면서 실시된 내선결혼 정책. 권김현영(2017)은 이 정책을 한국 남성들이 갖게 된 약자성으로서의 남성성의 시초로 이해한다.

일본 제국은 당시 대동아공영권에 조선인을 동참시키고 싶어했는데, 그 방안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서로 결혼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일본인 남성과 조선인 여성의 결혼이 아니라, 일본인 여성과 조선인 남성의 결혼을 허용했다는 것. 얼핏 보면 반직관적인 정책이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 정책이 시행될 경우, 일본인 남성은 독자적으로 일제 신민의 남성성을 획득하지만, 조선인 남성은 누구와 결혼하는가에 따라서 남성의 여부가 결정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 이는 조선인 남성들을 또 다른 "백마 탄 왕자님" 의 간택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로 내몰았다. 일견 내선결혼은 여성의 교환이라는 호모소셜의 성격을 갖지만, 실상은 식민지 남성들에게 여성성을 주입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식민지 남성성은 기존의 젠더 담론에서 보자면 차라리 여성성에 가깝다. 남성성 = 보편성, 여성성 = 특수성의 언어로 설명되는 기존 관점에서, 식민지 남성성은 일반적인 남성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식민지 남성들 역시 자신이 여성성의 위치를 점유하고, 스스로를 피해자화하고 약자화한다. 즉, 남성 간의 대등한 경쟁의 패배자가 아니라, 외집단 남성의 압제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 선량한 피해자로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기존에 약자의 위치에 있던 여성들은 아예 자원의 위치로 끌어내려 버린다.

남성성이 보편적인 무언가가 아니라[14] 특수성을 갖는 다수의 개념이라는 점을 이해할 때, 식민지 남성성은 여성성이 아니라 또 다른 남성성의 하나로 이해된다. 여기서 권김현영(2017)은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성에 도전하는 빠른 길은 남성성(들)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인데, (일견 여성적 성격으로 보이는) 식민지 남성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구와는 달리, 한국 남성들은 자신을 꽤 자주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남성" 에 동일시하는데[15] 이것은 식민지 남성성의 존재를 시사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편으로 한국 남성들은 보편의 언어로서의 남성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페니스 중심적 남성 문화를 과장하려 하며, 이것이 자신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남성이라고 착각하는 면모도 갖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저자는 한국 남성들이 갖고 있는 식민지 남성성의 성격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6]

2.3. 한국 남성들을 남성답게 하는 것

3장에서 루인(2017)은 우리 사회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페니스의 존재를 근거로 남성성의 여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병무청 신체검사를 들어서 주장하고 있다. 근대 사회에서 외과의학은 이상적 남성성의 규범을 만드는 자리에 올랐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해부학생물학을 토대로 제시되는 성적 이형성이었다는 것. 이런 사회에서 인터섹스는 필연적으로 문제시되었는데, 이들을 남성으로 포괄할지 아니면 타자화할지의 여부는 결국 이성애규범적 성관계를 수행할 수 있는 페니스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남성의 신체를 결정하는 기준은 외부 생식기의 존재 여부, 구체적으로는 이성애를 실천할 수 있을 만큼의 조건을 갖는 외부 생식기의 존재 여부이기에, 사실상 인터섹스와 비-인터섹스를 포괄하는 모든 남성들이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루인(2017)은 다소 섬뜩할 수 있는 사실을 환기한다. 즉, 위키러 여러분이 만일 남성이라면, 그것은 여러분이 출생한 직후 산부인과 의사가 여러분의 자그마한 페니스를 관찰하고서 "그것이 이 사람의 남성의 자격을 보증할 만큼 건실하다" 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라는 것. 반대로 인터섹스는 여기에 불합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페니스를 기준으로 남성의 몸을 판정하는 경향은 근대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훈련된 몸" 에 대한 이상을 통해 가속화되었다. 루인(2017)에 따르면, 일차적으로는 간첩 색출을 명목으로 주민등록 제도를 실시하여 징병 적격자를 관리했고, 다음으로는 국가의 이름으로 근대적 남성성을 승인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실시했다는 것. 즉 국가가 승인한 남성은 "복무 적격자" 라는 이름을 새로이 얻게 된다. 관련법에 따르면 그 기준은 사정 능력, 무정자증 여부, 고환의 상태 등,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전투력과 관련이 있을까 싶은 것들이지만,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남성은 (아무리 람보 같은 전투력의 포텐셜을 갖고 있을지라도) 국가에게 남성의 몸으로 승인받지 못한다. 페니스를 근거로 하는 복무적격 기준은 결국 국가가 특정한 몸으로 남성성을 정의함으로써 섹슈얼리티를 관리하려는 시도이다. 이렇게 "가공된" 남성성은 어떻게 보면 트랜스젠더[17] 같은 사람들보다도 더욱 인위적인 인조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의 남성-페니스 연결고리는 남성성을 본질적인 무언가로, 가장 덜 모호하고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정의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지만, 남성성에 대한 질문은 이런 합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던져져야 한다는 게 루인(2017)의 결론이다.

한편 엄기호(2017)는 주체로서의 자리를 박탈당한 한국 남성들이 인터넷과 같은 공간에서 상호 연대함으로써 주체성을 재확인한다고 분석한다. 엄기호가 주목하는 호모소셜의 유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사회학계에서 자주 논의하곤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의 노동은 남성 이외에는 감당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금융에 기초한 형태로 변모했고, 더욱이 서비스 산업과 감정노동이 확산되면서 남성들은 어느 순간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자신들을 확인했다. 소위 "남성의 위기"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떤 남성들은 "찌질이", "속물" 소리를 듣기를 개의치 않으면서 번식경쟁에 매달린다. 기존에는 노동을 바탕으로 한 금권이 강했기에 남성들이 연애시장, 결혼시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남성 간 금권이 양극화되면서, 소수의 부유층 남성을 제외한 다수 남성들은 결혼시장의 협상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변화한 사회는 갈수록 부유층 남성의 기준에 따라가고 있고, 연애와 결혼에 요구되는 비용은 다수 남성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형편. 결국 이들은 "찌질하다" 는 여성의 핀잔을 듣기를 감수하고서 칼 같은 더치페이를 요구하거나, 혼수와 내집마련을 두고 약혼자와 흥정하거나, 심지어는 "내가 너에게 해 준 것이 얼만데 나와 섹스하는 것을 거부하는 거냐?" 면서 여성의 몸을 돈을 주고 사려는 행태까지 보인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엄기호(2017)가 보기에, 또 다른 부류의 남성들은 아예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초식남이 되기를 선택한다.[18] 이는 신자유주의 사회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사례인데, 개인적 욕망의 충족과 쾌락의 추구 이외에는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측면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공적영역에의 참여를 포기하고 사적영역에서의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데 머무른다. 다시 말해, 초식남들은 공공성에 관심이 없고 혼자만의 쾌락에만 관심을 갖는다. 엄기호(2017)는 이들이 "동물이 되어 버렸다" 고 진단한다.

다음으로 언급되는 남성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다.[19] 연구의 대상이 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름아닌 DC인사이드인데, 흔히 한국 남성의 마초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고도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런 마초성은 오히려 이 공간에서 활동하기 위한 자격 증명에 지나지 않는다. DC인사이드의 공동체 내지 공간인 "갤러리"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인데, 여기서 저자는 실마리를 찾는다. DC갤러들은 스스로의 활동 경험을 되살려 보면서 읽어보자.

DC 갤러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소위 '고인 물' 을 거르고 친목질을 배격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폐쇄성은 갤러리 내부에서 나타나는 남성 간 수직적 질서에서 기원하는데, 이에 따라 많은 DC 이용자들은 남성 간의 위계를 차단하고 갤러들 사이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속칭 뉴비올드비나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남성 간의 위계를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원인이 바로 여갤러의 유입으로 인한 친목이며, 이들을 차단할 때 모든 갤러들이 평등한 주체로 보장받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그 갤러리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것. 결국, 많은 DC 갤러리들은 여성 이용자들을 차단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극단적 마초성을 제시하면서 이를 견디라고 요구하고 있다. 마초들이 DC로 모이는 게 아니라, DC에서 활동하려면 마초성을 견뎌야 하는 셈. 갤러리 내에서 모두는 마초인 것처럼 치장하면서 서로의 평등을 확인하고, 호모소셜의 회복을 보증하기 위해 이들은 서로에게 포르노성 "떡밥" 이미지들을 교환하기도 한다.[20] 이는 다수의 남초 커뮤니티에게도 광의적으로 적용 가능하며, 이를 통해 남성들은 자신들의 주체로서의 자리를 회복한다고 한다. 이상의 논의가 엄기호(2017)가 바라보는 바, 사이버 호모소셜에 입각한 남성성의 재확인 과정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지금껏 확장을 거듭해 오던 근대적 시민권의 개념을 도리어 "" 의 기준을 통해 축소시키기 시작하고 있다면서, 시민권을 임금노동을 기준으로 사유할 것이 아니라 그와는 무관한 기준을 들어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맺는다. 이렇게 할 때 남성들은 자신의 주체로서의 자리가 위협받는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있으며, 과장된 마초성으로 더 이상 가식을 부릴 필요도 없어진다는 것.

한편 엄기호(2017)는 자신의 글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주장을 제시한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로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난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 역시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피해자론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여성운동에 합류하는 (자칭) 남성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라는 것. 첫째로, 전자의 목소리는 20대 남성들 사이에 공유되는 서사에 의존하며, 특혜나 기득권에 대한 경험이 없고 오히려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마초 문화를 지겨워한다. 그러나 엄기호(2017)는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자신들의 남성으로서의 다음 위치가 무엇일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자기연민의 언어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둘째로, 후자의 목소리는 기존의 페미니즘 친화적 남성들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측면이 있는데,[21] 가부장제를 비판하기 위해 주로 폭력성과 반-인본주의적 측면에 정서적으로 호소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가부장제의 후진성과 반지성주의적 측면을 부각시켜서 객관적 통계를 들어 호소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언어를 동원하여 전자의 목소리를 공격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들의 언어 역시 보편성에 호소하기 때문에, 보편성의 언어를 남성의 언어로 간주하는 페미니즘과는 충돌의 여지가 있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2.4. 성소수자와 한국인의 남성성

5장에서 한채윤(2017)은 레즈비언부치(butch)가 갖고 있는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이성애중심적 사회는 레즈비언의 연애에 대해서 "여성은 반드시 남성과 이성애적 연애를 해야 하며,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결핍된 남성성으로 인해 남성을 갈구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 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 결과 레즈비언들 중 펨(femme)은 "남성에게 학대받은 경험 때문에 그런 갈구가 억압된 여성", 부치는 "그런 상처받은 여성들만 노려서 레즈비언으로 만드는 여성" 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저자는 부치를 통해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남성성을 신체적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의 결과물로서 논의한다는 점에서는[22] 3장에서의 루인(2017)의 페니스에 기초한 남성성이라는 논의와 흥미로운 대조가 될 수 있겠다.

여기서 한채윤(2017)은 여성성이란 곧 남성성을 숨기고 부인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성 역시 여장을 해야만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화장을 하고, 생머리를 기르며,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핑크빛 핸드백을 메야 한다.[23] 반면 부치는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치가 드러내 보여주려고 하는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것. 이들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적 매력이 아닌,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적 매력을 추구한다. 즉 부치는 남성성을 남성의 관점이 아닌 여성의 관점에서 평가, 복제, 변형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치의 남성성은 여성을 남성성이 결핍된 존재로서 정의하는 경향에 도전한다.[24]

6장에서 준우(2017)는 FTM 트랜스남성에 대한 논의를 꺼낸다. 그는 FTM들이 오늘날 여성 운동가들이 말하는 "한남" 과 다를 바 없는 사고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때 트랜스남성은 정상 규범을 전복시키는 주체로서 높이 평가되기도 했지만, FTM들과의 면접법을 활용한 연구들이 누적되면서 이들 역시 잠재적 성폭행 가해자가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게도, 이들 역시 꼬툭튀(…)와 쩍벌남 행세를 하면서 주변 여성들에게 과시하는 것에서 심리적 쾌감을 얻고, 주변에 지나가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하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기 때문.

준우(2017)가 인터뷰한 다섯 명의 FTM들을 토대로[25] 저자가 해석한 바에 따르면, FTM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여성이 아님을 입증하고, 그와 동시에 특수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남성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늘상 "들킬 위험" 에 대한 불안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들키는 것은 자신의 과거가 발각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남성성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한 처지임을 발각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주의 깊게 염려하는데, 그 누구도 완벽하게 평범하면서도 전형적인 남성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FTM들이 남성성의 결여를 걱정하지만, 실상 시스-남성들도 그들이 얼마나 남성적인지에 대해 일상적인 검증을 거치고 있으며 이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

FTM들이 합류하고자 하는 호모소셜은 위계적이며, 성적 능력과 경험을 과장하고 허세를 부리는 과정 속에서 친밀감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이다. 몇 명과 자 봤는지 자랑하거나, 사정을 몇 번 할 수 있는지 떠벌이거나, 소변 줄기가 얼마나 강한지(…) 경쟁하는 등의 식이다.[26] 특히 FTM들에게 있어 대표적인 로망은 상의탈의를 하거나, 무엇보다도 동료들과 함께 사우나 및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라고 한다.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주민등록번호를 오픈할 수 없는 FTM들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남성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그 외에도 파트너와 성관계를 가질 때 "삽입 섹스" 를 실현하는 것은 이들이 바라는 최고의 로망이지만, 사실상 이룰 수 없는 현실에 늘 좌절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준우(2017)는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페니스를 갖고 있지 않다고는 하더라도, 사회적인 페니스만큼은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조차 성범죄와 성적 욕망을 남성성의 발휘 수단으로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성의 이상을 드러내기 위해 이들은 적지 않은 경우 마초적인 폭력성을 드러내어 자기 자신을 증명받아야 한다. 이들은 자신이 남성 사회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합류하기 위해, 그 수단으로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력까지도 기꺼이 추구하게 된다. 여기서 준우(2017)는 이런 심리가 "전형적인 한국 남성들의 심리와 똑같다" 고 평가한다. 남성성의 완벽한 실천에 실패하는 것은 비단 FTM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막연히 동경하는 '평범한' 한국 남성들 모두에게도 해당된다. 시스-남성들과 FTM들을 이끄는 욕망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 남성 문화에 의해 결정되지만, 저자는 FTM들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주문한다.

이상의 내용을 나무위키에 한하여 생각건대, 필자 '준우'는 이들이 자기오만에 가까운 프라이드를 갖춘 '스페셜 원'이 아닌 '노멀 원'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FTM들이 남성 사회의 호모소셜에 포함되고자 하는 바람을 단순한 '욕망'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그 욕망이 생존욕임을 간과한 시선이다. 이를테면 간첩을 생각해보자. 다른 곳의 생활방식을 익히고 그것에 대해 '공작원'들끼리 뭐가 부럽더라, 하고 싶다 등의 논리로 떠들어대는 것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속하지 못했던 세계에 침투하며 그들의 삶을 후천적으로 체화하며 겪어야만 하는 스트레스를 자조적으로 떠들어대며 해소하고자 하는 '힐링'이자 생존을 위한 '정보교환', '도움'의 성격이 강하다.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이라던지, 무함마드 깐수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화폐단위를 착각하거나, 이북 말씨가 남아있거나, 메밀소바 제대로 먹는 법도 모르는 실수 하나하나가 '일반인'들이라는 디코이 사이에서 방첩기관의 타겟으로 지목당할 위험을 높이는 행동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탈북자들이 어떻게 스텔스를 유지하고 어떠한 스트레스를 겪는지 생각해보자.(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종편채널에서 진행하는 탈북자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을 XY그녀??? 트랜스젠더 토크쇼와 다르다고 볼 것도 없다.) 트랜지션을 진행하는 FTM들에게는 '모든 남성이 남성성을 완벽하게 갖춘 것은 아니'라는 위로에 긴장을 풀 여유가 없다. 이해가 안된다면, 여성으로서 '노멀 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MTF들이 과연 식당이나 가게에서 나라사랑카드를 들이밀까 생각해보자. MTF들에게도 가슴 큰 여성 세상에 별로 없다, 신발 270 280mm 신는 여성 너 말고도 있다는 위로에 '안주'할 여유가 있을까? FTM들이 통관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해외에서 바인더나 패커를 직구하는게 '좋아서' 하는 걸까? MTF들이 화장을 '좋아서' 할까?[27]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28]에서 활동하는 인권운동가임에도 필자는 책의 주제인 탈식민주의 남성성 사유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전형적인 한국 남성들의 심리와 똑같다'는 비판을 진짜 원흉인 '한국 남성 사회'가 아닌 FTM들에게 돌리고 말았다. 스스로가 트랜스포비아와 상극인 인물임에도 주화입마한 나머지 TERF 세력의 'MTF는 남성들의 욕망인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가짜 여성'이라는 논리에마저 악용될 수 있는 주장을 펼치고 만 것이다. 필자는 FTM들이 젠더 고정관념의 해체에 단단히 한 몫 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트랜스젠더 남녀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흑역사를 들키지 않은채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다. '꼬툭튀'나 '짙은 화장'을 하고 '한남충'이니 '코르셋'이니 하는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남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가 있다면,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그러한 비난 따위는 기꺼이 견뎌낼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스텔스 상태의 트랜스젠더에게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성별로의 패싱에 있어 '완벽한 남성성',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부질없는 고정관념에 목 맬 필요 없다는 깨달음은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타인에게 뭐라 지적당할 것이 아닌, 온전히 당사자 개개인의 몫이다. 만약 자신의 트랜지션에 있어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여유가 생긴다 해도 이러한 여유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편하게 살아가는 '경험'과 그에 기반한 '깨달음' 덕에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지, 남들의 고정관념 타파하란 지적질이나 고정관념 다 부질없다는 위로 덕에 주입당한 것은 아니다. '준우'의 글은 트랜스젠더를 일상에서 자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만연해있는 어두운 일면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으며 트랜스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일독을 권할 가치가 있으나, 자신의 삶을 가꿔야 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시선에서는 젠더 고정관념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에 앞서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만 여겨질 소지가 있다.

3. 서평: 식민지 근대성 관점에서의 인문학적 비평

탈식민주의를 남성성 분석에 활용했다고 공언하는 본서인 만큼, 인문학계에서 즉각 반응이 나온 것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본서에서 언급하는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서는 결국 "식민지" 와 "근대성" 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씨름할 수밖에 없는데, 인문학에 대해 개론 수준에서라도 개관한 사람이라면 이 두 개념이 인문학계에서 얼마나 초대형 떡밥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단어 각각을 주제로 나온 논문만 모아 보면 그야말로 산을 쌓을 수 있으며(…) 두 단어를 합친 "식민지 근대성" 에 대한 논문 역시 산을 쌓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배경에서 오혜진(2017)[29]은 인문학자들이 그간 식민지 근대성을 놓고 머리를 쥐어뜯은 끝에(…) 얻어진 통찰들을 활용하여 본서의 논의에 도움을 주려 하였다. 그는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 탈식민지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정희진(2017)과 권김현영(2017)의 시도가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호평하면서도, 식민지의 경험을 특수화하는 또 다른 식민주의적 사고를 보여주었다는 점, 개념의 확장성 및 설명력이 부족하다는 점[30]에서 프란츠 파농 등의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 식민지라는 단어가 '식민화된 상태' 로 간단히 개념화되는 것은 단순한 지배-피지배 관계 이상의 사유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민지인의 심리는 제국인의 심리와 다르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 뭔가가 결핍되어 있다" 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결국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이미 식민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는 사례라는 것이다.

또한 오혜진(2017)은 식민지 남성성의 개념화에 대한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로, 식민지 남성성이 그 자체로서 여성을 자원화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식민지 남성성 자체가 원래 복수의 것이고 그 중 가장 패권적인 방식이 여성을 자원화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론하였다. 즉, 모든 식민지 남성들이 여성을 자원화할 수 있을 정도로 처지가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식민지 근대성을 논의할 때 우리는 식민지적 주체 역시 다양한 탈식민적 기획 및 실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긍정적 시각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본서의 논의에서는 식민지 남성성을 이야기할 때 이들이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남성으로서 보여주는 저항적 효과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오혜진(2017)은 비판하였다. 해당 문헌의 각주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페미니스트들은 무조건 남성성이면 다 나쁜 것이라는 식의 흔한 통념이 있는데, 여기서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고 의심하고 있다(…). 식민지 남성성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 마땅히 제시되는 것이 올바른 식민지 담론임에도, 본서에서는 일말의 그런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상의 반론을 바탕으로, 저자는 식민지 남성성을 고려할 때 이를 다양한 남성성들 중의 한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식민지 남성성은 이미 그 자체로도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남성들 사이의) 복수의 남성성들을 포괄하는 용어라는 점을 차후 이론화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위에서 언급했듯, 본서에서 이미 권김현영(2017)은 "남성성은 여러 종류로서 존재하나, 박노자 등의 논자들은 패권적 남성성 하나만을 논의에 반영하였다" 고 비판한 바 있는데,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서도 동일한 반론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모양새가 된 것.


[1]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다수의 대학에 출강하며 다수의 저술활동 경력이 있다.[2]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소속. 다수의 저술활동 경력이 있으며 홈페이지를 운영중이다.[3] 사회학자이며 다수의 저술활동 경력이 있다.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4] 여성학, 젠더학, 평화학자. 다수의 저술활동 및 언론 인터뷰.[5] 인권운동가이자 여성학자. 바이섹슈얼폴리아모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6]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장이며,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7] 권김현영 (2011). 남장 여자/남자/남자 인간의 의미와 남성성 연구 방법. 권김현영 역,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8] 루인 (2011). 의료기술 기획과 근대적 남성성의 발명. 권김현영 역,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9] 한채윤 (2011). 레즈비언의 남성성: 공존, 반전, 경쟁, 갈등하는 젠더. 권김현영 역,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10] 이처럼 "저항하지 않은 한 연대책임을 진다" 는 논리는 《맨 박스》 의 저자 토니 포터(T.Porter)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다.[11] 물론 정희진 및 코넬 이외에도 남성성에 대해 논의를 시도했던 논자들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하비 맨스필드(H.Mansfield)와 같은 정치철학자들 역시 남성성을 고찰한 바 있다.[12] 이와 관련하여 식민지 남성성의 개념화의 기초가 된 문헌들이 필요하다면, 본서 1장 각주 20번에 제시되는 문헌들을 참고할 수 있다.[13] 이 부분은 본서에서 힘주어 언급되었던 내용은 아니지만, 식민지 남성성의 기초가 되는 문헌들로 미루어 보건대, 민족주의에 깊게 투신하는 남성들일수록 식민지 남성성을 선명히 드러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14] 이 지점에서 저자는 박노자(2009)와 Mansfield(2006)를 들어서 남성성을 단일한 패권적 남성성 그 자체로 이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하였다.[15] 예컨대 "집안 여자들 등쌀에 살 수가 없다",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 등이 있다.[16] 저자가 구상하고 있는 전개는 아마도 "우리 한국 남성들에게 식민지 남성성이 있다고? → 근데 이거 좀 여성적이지 않나? → 이것도 어떻게 보면 남성적인 측면 중 하나일 거야! → 그럼 남성성이 다양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 그럼 남자다워지기 위해 억지로 과장하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 → 이제는 여성들을 깔보지 않아도 남자답다고 인정받겠구나!" 정도로 생각된다.[17] 참고로 저자는 자신의 문헌에서 항상 "트랜스젠더퀴어" 라는 단어를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루인(젠더학자) 문서를 볼 것.[18] 초식남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저자 역시 "연애의 피곤함에서 물러나거나, 더는 연애를 꿈꾸지 않거나, 성욕이나 독점욕이 강하지 않거나,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등의 다양한 초식남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정의되는 초식남의 범주는,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누기 위해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로 특정된다. 새롭게 나타나는 초식남의 양상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MGTOW 문서도 함께 참고할 수 있다.[19] 이 단락의 서술에서 저자는 다음의 문헌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이길현 (2010). 우리는 디시 인사이드-사이버 공간에서의 증여, 전쟁, 권력.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서울.[20] 저자에 따르면, DC에서 아무리 오래 활동하더라도 이런 여성 이미지 교환에 참여하지 않으면, 방금 DC에 들어왔더라도 "떡밥" 을 다수 뿌려서 갤러리의 영웅(?)이 되는 뉴비만도 못한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길현(2010)의 인류학적 관점에 의탁하여, 이것이 파푸아뉴기니 지역의 남성 성인식 의례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고 진단한다.[21] 예컨대 기존에는 페미니스트를 특징짓는 결정적 요소가 "억압의 경험" 에 있다고 보아서 이 분야의 많은 남성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길 꺼렸지만, 오늘날의 풍조는 그런 것이 페미니스트로의 정체화를 가로막을 수 없다고 여긴다고 한다.[22] 예컨대 젠더 개념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남녀는 오로지 생식기를 통해서만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반동성애 운동가들조차도 부치와 펨의 일반적 이미지를 말해주면 곧바로 그것을 이해하며, 소위 "게이 레이더" 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그들 역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사회적 구성 개념을 갖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23] 여기서 나무위키에 한하여 생각해 볼 점은, 저자는 이런 것들을 하지 않는 여성이 "남성으로 오인받는다" 고 했지만, 화장의 경우는 "어디 아픈 여성" 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이 접근은 "여성이 아닌 것" 으로서 남성성을 정의하는 토니 포터 등의 방식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것인데, 이는 단순히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일 수 있다.[24] 이 이후에는 이성애와 남성성을 동일시하는 사회 풍조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읽어 볼 만하다. 남성의 동성애는 남성성의 훼손으로 여겨졌지만, 여성의 동성애는 남성성의 과잉으로 여겨져 온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한채윤(2017)은 주장한다. 이는 물론 성적 접촉이 무조건 남녀 사이에만 존재해야 하므로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이성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통념이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겠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런 사고방식은 "남성성이 때로는 과잉되거나 결여되기도 하는" 것으로서, 인간에게 내재된 자연의 질서치고는 너무 쉽사리 허물어질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론한다.[25] 피면접자에 대한 정보는 본서의 p.217을 참고할 것.[26] 본서에서는 이에 관련된 구체적인 경험들이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실제로 이런 유아적인 남성성의 자랑을 통해 연대감을 형성할지는 좀 의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질색하는 남성들도 존재하며 이들은 자기처럼 이런 얘기를 질색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린다. 어쨌거나 이것이 우리 사회의 패권적 남성성 중 일부인 것은 젠더학계에서 대략적으로 합의된 부분이다. 이것을 패권적이라고 느꼈기에 FTM들이 그렇게나 선망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27] 예를 들어 2013년에 음경 재건수술을 받지 아니한 다수의 FTM에 대한 서울 서부지법의 여->남 성별 정정 허가 결정이 나온 뒤로 FTM들은 성별 정정 '퀘스트'도 바뀌었다. 힘들기만 한 성기 재건술을 안 받아도 그냥 호르몬 시작하고 유방축소('탑'수술), 자궁적출('궁'수술)만 견뎌내면 법원 잘 겨냥해서 충분히 주민번호 바꿀수 있으므로 재건수술은 주민등록상 남성으로서 번듯한 직장 잡아서 돈 많이 벌고 하든 말든 알아서 한다는 것. 당연하지만 힘들기만 하다고 안하는 이들도 많다.[28] 비온뒤무지개 재단의 도움으로 설립된 인권단체. 사실 이 도란스 총서 필진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다들 비온뒤무지개 재단 활동가들이다. 퀴어락도 조각보도 비온뒤랑 같은 사무실에 입주해있는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한지..[29] 오혜진 (2017). '식민지 남성성'은 무엇의 이름인가, 황해문화, 96, 392-401.[30] 오혜진(2017)에 따르면, 식민지 경험은 그 자체로 반드시 한국 남성이 경험하는 그 '식민지 남성성' 을 야기한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