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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Rock'n Roll | |
<colbgcolor=#e3d0ad><colcolor=#382307> 기원 | 장르 R&B, 블루스, 재즈, 컨트리, 부기우기, 가스펠 |
지역 | |
등장 시기 | 1940년대 후반 |
시대 | 1940년대 후반 - 현재[1] 전성기(1차) 1955년 - 1958년 전성기(2차) 1960년대 중반 (브리티시 인베이전) |
사용 악기 | 보컬,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피아노, 색소폰 |
파생 장르 | 록 음악, 팝 음악 |
대표 음악가 | 척 베리, 리틀 리처드, 엘비스 프레슬리, 쟈니 캐쉬, 칼 퍼킨스, 제리 리 루이스, 로이 오비슨, 버디 홀리, 진 빈센트, 에디 코크런, 리치 발렌스, 빅 바퍼, 비틀즈, 롤링 스톤스, 디온 등 |
1. 개요
로큰롤(Rock and roll, rock & roll, rock 'n' roll)은 블루스, 재즈, 가스펠, 부기우기, 컨트리 음악의 요소들이 융합되어 형성된 음악으로, 1940년대 후반 리듬 앤 블루스의 발전 속에서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1950년대 초반 ‘로큰롤’이라는 명칭으로 대중화되었다.특히 리듬 앤 블루스는 로큰롤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전기 기타와 백비트, 스트레이트한 리듬, 감정의 폭발을 특징으로 한다. 원래 ‘로큰롤’이라는 용어는 ‘rocking and rolling’이라는 흑인 사회의 오래된 속어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춤 동작이나 감정적 진동을 의미했다. 이 표현은 이후 음악 장르를 대표하는 말로 고정되었다. 후대에는 Rock은 에너지와 추진력을, Roll은 그루브와 감각적인 흐름을 상징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오늘날 ‘로큰롤’은 종종 록 음악의 초기 형태 또는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공식적으로 올워드닷컴(Allwords.com)이나 일부 음악학계에서는 1950년대 흑인 및 백인 아티스트가 함께 발전시킨 특유의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로 더 구체화한다.
로큰롤의 음악적 뿌리는 블루스와 스윙 재즈, 컨트리, 가스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적인 형태는 명백히 리듬 앤 블루스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시기까지 R&B는 주로 미국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연주되었으며, 초기 로큰롤 역시도 흑인 음악의 한 갈래로 시작된 것이다.
로커빌리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로큰롤의 한 갈래로, 특히 컨트리와 R&B가 융합된 백인 남부 음악 스타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로커빌리는 말그대로 로큰롤의 파생 장르라 로큰롤 전체를 대표하지 않으며, 그 기원은 보다 포괄적이고 다양하다. 초기 로큰롤에서는 피아노와 색소폰이 리드 악기로 사용되었으며, 1950년대 중반부터 일렉 기타가 본격적으로 중심 악기로 자리 잡았다. 스네어 드럼 중심의 백비트(2·4박 강조)와 부기우기 셔플 리듬이 기본 구조를 이루었고, 리드/리듬 기타, 더블 베이스(혹은 베이스 기타), 드럼으로 구성된 밴드가 표준이 되었다.
1950년대 중후반, 로큰롤은 급속도로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리틀 리처드, 칼 퍼킨스, 제리 리 루이스 등이 잇따라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척 베리는 로큰롤의 작곡 방식, 기타 주법, 무대 퍼포먼스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존 레논은 그를 두고 “로큰롤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면 ‘척 베리’로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로큰롤은 단순한 음악 장르에 그치지 않고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패션, 춤, 언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10대 문화의 중심축이 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하위 장르인 하드 록, 소프트 록, 펑크, 헤비메탈 등으로 분화되어 오늘날의 록 음악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2. 역사
로큰롤의 대표곡들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Rock Around the Clock 빌 헤일리 앤 히즈 코메츠 (1954) | Tutti Frutti 리틀 리처드 (1955) | ||
Hound Dog 엘비스 프레슬리 (1956) | Blue Suede Shoes 칼 퍼킨스 (1956) | ||
Peggy Sue 버디 홀리 (1957) | Johnny B. Goode 척 베리 (1959) | ||
Please Please Me 비틀즈 (1963) | Star Star 롤링 스톤스 (1973) |
2.1. 발단
1940년대 후반, 전쟁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던 시기, 대중음악은 여전히 재즈와 트레디셔널 팝 위주의 음악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평화를 되찾은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감성과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율적인 소비를 경험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당시의 주류 음악인 프랭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 페리 코모 등의 트레디셔널 팝은 주로 성인층의 감수성을 겨냥한 음악이었고, 젊은이들에게는 조금 더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자극적인 음악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들은 흑인 커뮤니티에서 발전한 리듬 앤 블루스(R&B)와 블루스, 그리고 가스펠의 영향을 받은 음악을 접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말부터 흑인 뮤지션들은 이미 전자 기타와 백비트, 직선적인 보컬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있었고, 그 흐름은 로큰롤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뚜렷해져 갔다. Sister Rosetta Tharpe는 전자 기타를 앞세운 강렬한 가스펠 음악으로 후대 록 뮤지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Jackie Brenston의 “Rocket 88”(1951)은 종종 ‘최초의 로큰롤 녹음’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흐름을 상업적으로 백인 시장에 가져와 폭발시킨 계기 중 하나가 바로 Bill Haley & His Comets의 Rock Around the Clock이다. 이 곡은 1955년 영화 《폭력교실》에 삽입되며 미국과 일부 서구권에서 대히트를 기록했고, 로큰롤이라는 장르가 주류 미디어와 청소년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조명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시작점이 아니라, 이미 여러 갈래로 형성되고 있던 로큰롤 흐름에 불을 붙인 ‘점화’의 순간이었다. 로큰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R&B), 그리고 백인 지역의 컨트리 음악 등 다양한 전통이 충돌하며 형성된 장르로, 음악적 기원은 서양의 악기와 악보 등, 서구 음악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리듬 전통의 융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인 뮤지션들의 성공은 당시 흑인 음악의 사운드를 당시 방송 및 대중 시장에 맞게 재구성하고, 보다 순화된 형태로 기성세대의 반발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며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 번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기성세대는 로큰롤을 선정적이고 위험한 음악으로 간주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로큰롤은 곧 10대들의 정체성과 반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2.2. 로큰롤의 탄생
로큰롤 이전의 시대는 재즈와 블루스가 대중음악인 시대였다. 하지만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재즈는 대중의 외면[2]을 받았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흑인들이 부른 성가인 가스펠에서 탄생한 블루스가 탄생했고 이 블루스가 현대 흑인 음악 계열의 뿌리로서, 대중음악 역사에서 결정적인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음악, 힙합, 더 나아가 록큰롤에 이르기까지 기본 베이스 음악으로써 불쏘시게 역할을 하였다.[3]간혹 블루스가 모든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놓고 서양 전통 민요에 기원을 두는 포크 음악, 틴 팬 앨리에서 시작된 팝 음악, 그리고 전위 실험가들의 실험을 기원을 두는 전자 음악(일렉트로닉 뮤직) 등은 블루스가 조상이라고 볼 수 없다.
재즈와 블루스에서 발전한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은 우후죽순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등장시키기에 이른다. 록 기타주법을 최초로 완성시킨 척 베리라든가, 반항과 불량과 기괴함을 최초로 시도했던 리틀 리처드라든가, "폼 나는" 남자 인생을 주로 소재로 삼았던 칼 퍼킨스, 무법자 이미지로 유명했던 쟈니 캐쉬, 로큰롤 피아니스트로서 훌륭한 주법을 완성해낸 제리 리 루이스[4], 멤피스의 무서운 아이들 브루넷츠(후에 조니 브루넷 트리오로 이어지는)등이 모두 1954년~1955년 사이에 등장한 뮤지션들이다.
이 시기에는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이 서서히 로커빌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커빌리의 상대적으로 촌스러운 이미지[5]를 탈피하기 위해 당시 10대들 사이에서 널리 쓰인 속어인 "록 앤 롤"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로큰롤은 로커빌리에서 분화되어 나오기 시작한다.
시간상으로 따져보자면 빌 헤일리가 새로운 리듬 앤 블루스를 1950년대 전반 내내 선보여 오다가 1954년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게 되고, 1955년 척 베리가 기타주법을 선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리틀 리처드가 격동적인 피아노 주법을 도입한다.
이때쯤 이제 신기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 "흑인처럼 노래하는 백인 가수가 나오면 게임 끝난다"는 것이었다. 이미 빌 헤일리가 "백인의 흑인음악"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이는 어려운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 각지의 다양한 레코드 회사들은 이러한 아티스트를 찾는데 혈안이 되고, 이때 선 레코드에서 발굴해낸 불세출의 아티스트가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다. 이때가 1955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얼마나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지는 설명 자체가 불필요 하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55년부터 쟈니 캐쉬, 칼 퍼킨스, 엘비스 프레슬리는 함께 전미 투어에 나서게 되고, 이때부터 이들이 명성은 확고부동한 위치를 갖게 된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1956년을 로커빌리의 해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1956년 칼 퍼킨스의 "블루 스웨이드 슈즈"와 쟈니 캐쉬의 "폴섬 프리즌 블루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트 브레이크 호텔"이 발매되고, 로커빌리는 전국적인 음악이 된다. 이들은 모두 백인이었으며 인종에 관계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로커빌리가 좀 더 블루스의 부기우기 셔플리듬에 컨트리적 감성이 가미된 것이라면, 로큰롤은 리듬 앤 블루스의 스트레이트한 리듬을 잘 계승했다. 이러한 스트레이트한 음악은 전 미국을 강타하게 되고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2.3. 전성기
"과거에 리듬 앤 블루스로 불렸지만 이제 로큰롤이라고 불리는" 이 음악이 미국을 강타하고 전 세계로 퍼저나가게 되자, 다양한 뮤지션들이 뒤를 이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1956년 이후의 뮤지션들은 모두 앞서 말한 로커빌리 뮤지션들을 보고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세대.이 시기에 등장한 뮤지션들은 로이 오비슨, 버디 홀리, 진 빈센트, 에디 코크런, 리치 발렌스, 빅 바퍼등이 있다. 또한 완다 잭슨, 재니스 마틴같은 여성 로커빌리 뮤지션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영국에서는 미국을 흉내낸 뮤지션들이 출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빈스 테일러[6], 빌리 퓨리, 조 브라운, 위 윌리 해리스, 클리프 리처드등이 훗날 영국 록의 토양에 밑거름이 되는 뮤지션이 된다.
대개 1955년부터 1958년까지를 로큰롤의 전성기로 친다. 후반부로 갈수록 로커빌리 방식의 그루브한 셔플 리듬의 로큰롤에서 스트레이트한 로큰롤로 변화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양상이다(척 베리의 〈Johnny B. Goode〉이 1958년 발매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로큰롤은 미국에서 그리저라는 서브컬처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리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큰롤 패션인, 리젠트머리에 가죽 쟈켓과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을 말한다(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랐기 때문에 그리저).[7] 이 서브컬쳐는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이름과 모양을 약간씩 달리 하면서 전세계를 휩쓸게 된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로커스로 불렸고,[8] 북유럽에서는 Raggare라고 불렸다.
2.4. 몰락
로큰롤의 종말은 의외로 일찍, 그것도 불현듯이 찾아오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이 되자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미국 사회와 언론은 무언가 그들을 제어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반항과 자유의 상징이었던 로큰롤은 기성세대의 눈엣가시였고 그들은 무언가 사고가 터지길 바라고 있었다.1958년이 되자 로큰롤 뮤지션들 주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게 된다. 제리 리 루이스는 13살짜리 미성년자 사촌 동생과 결혼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고, 쟈니 캐쉬는 마약에 빠져 헤롱대고 있었다. 리틀 리처드는 갑자기 목사가 되겠다며(...) 은퇴를 했고, 척 베리는 미성년자 여자아이를 데리고 주 경계선을 넘다가 걸려서[9] 법적, 도덕적인 치명타를 입고 수감된다. 앨런 프리드는 1958년 관객들에게 "경찰은 여러분이 즐기길 원하지 않을겁니다"라고 이야기 했다가 폭동을 선동했다는 죄로 수감되고, 이후 뇌물을 받고 특정 곡들을 틀어준 사실[10]이 밝혀지면서 방송에서 하차하고 벌금형을 선고받는다.[11]
이러한 스캔들에 로큰롤이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되자, 엘비스의 매니저 '대령' 톰 파커는 기가막힌 전략을 생각해 내는데, 바로 입대하는 것이다. 미국은 당시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군대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12]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10여년밖에 안 되었고,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착실한 젊은이"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자진입대를 결정한 것이다. 엘비스가 나이가 들면 반항적인 느낌의 로큰롤 청춘스타라는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을테니, 자진 입대를 통해 기성세대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이후 보다 폭넓은 팬층에게 사랑을 받는 '국민가수'로 전환시키는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꼭 필요하다는게 톰 파커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엘비스는 전역 후 60년대 내내 로큰롤 음악활동보다는 삼류 영화들에 자주 출연하며 배우 활동에 더욱 주력했고, 60년대 후반에 점프슈트를 입고 라스베가스에서 공연을 시작하면서 음악계에 컴백한다.
1959년 버디 홀리와 리치 발렌스, 빅 바퍼를 태운 비행기가 악천후로 인해 추락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이 세명의 젊은 로큰롤 뮤지션들 또한 세상을 떠나게 된다.[13][14][15]
1960년, 진 빈센트와 에디 코크란은 영국에서 투어를 돌고 있었다. 그들은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그만 택시의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교통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에디 코크란은 사망하고 진 빈센트는 평생 다리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게 되고 다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량의 술과 약물을 복용하게 된다. 결국 이는 그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결과, 1961년부터 62년까지 Runaround Sue, The Wanderer, Lovers Who Wander를 연속으로 히트시킨 디온(가수) 만이 남게된다. 이때부터 로큰롤은 몇년간 깊은 잠에 빠진다. 대신 빌보드 차트에서는 로큰롤에게서 파생되긴 했지만 아예 가사가 없는 기교 중심의 서프 음악이 대중들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 사운드를 발전시켰고, 후에 나올 신세대 록 뮤지션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사이키델릭을 비롯한 여러 시도를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또한, 60년대 초에 처비 체커의 The twist가 역사에 한획을 그으면서 트위스트 열풍이 불었다. 이 두 가지가 로큰롤을 몇년간 붙들어 놓으며 완전히 한물간 장르가 되어 버리는 상황은 피할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로큰롤은 그 본래의 정신과 활력을 잃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 로큰롤이 시들해지게 된 건, 위의 교통사고처럼 뜻하지 않은 사고의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로큰롤 1세대인 기존 로큰롤 뮤지션들의 창작력이 고갈되고 더이상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서 음악적으로 정체되어버린 상태였다는 점도 큰 원인이었다. 음악적으로 더이상 딱히 새로운게 안나오니 음악팬들도 차차 질려하며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로큰롤 뮤지션들 스스로도 이젠 나올만 한건 다 나왔나 보다라며 로큰롤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잃어갔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야든지 이런 답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세대로의 교체 및 외부로부터 뭔가 신선한 바람이 유입되는게 필요하기 마련이다.
2.5. 부활
정작 미국 본토에선 로큰롤이 다 소탕되었다고 믿었지만, 대서양 건너편에서 로큰롤의 음악적 유산을 간직한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를 비롯한 영국 밴드들이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통해 로큰롤 열풍의 부활을 알렸다. 그리고 이 밴드들은 더 나아가 로큰롤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새로운 록 음악의 시대를 개척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수 십년 간 대중 음악계에서는 록 음악이 주류 장르로 자리메김 하게 되었고, 그 이후 파생되고 탄생한 수 많은 대중음악 장르의 음악적 기반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새옹지마.영향력은 The Association, Gary Lewis And The Playboys, Classics 4 정도가 적당한 예.
2.6. 몰락과 부활의 반복
이후 로큰롤은 블루스와 더불어 록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 되었으며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등 여러 록음악의 중요한 세부 장르들을 탄생시키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록 공연 문화와 밴드 시장이 거대해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빠르고 더 복잡하고 더 화려한 음악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로큰롤은 잊혀지게 된다. 물론 초기 메탈, 글램록에서는 로큰롤, 블루스적인 측면이 많이 남아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메탈이 하드록과 구별되는 헤비 메탈로 진화하고 글램 록이 음악적인 측면을 배제한 화려한 측면만 강조한 글램 메탈로 진화하게 된다. 이렇게 속주등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더 진화했지만 로큰롤 음악이 가지고 있는 그루비함, 대중성이 많이 퇴색된 록 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18] 물론 70년대에서 팝의 시대인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섹스 피스톨즈를 비롯한 펑크 록과 엘비스 코스텔로, 브루스 스프링스틴같은 솔로 아티스트들, 블론디, 더 카스, 토킹헤즈같은 뉴웨이브 아티스트, 레너드 스키너드, CCR, 다이어 스트레이츠같은 루츠 록 아티스트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착하는 다른 록 아티스트들과 구별되는 음악들을 들려주고 히트곡도 많이 만들었으나 결국 헤비 메탈과 글램 메탈에게 록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이렇게 80년대에는 밴드들이 부족한 리듬감과 창의성을 샤우팅, 속주, 통속적인 가사등의 과장된 구성으로 감추자 대중들도 점점 외면하게 된다. 이렇게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록 시장에 나타난 밴드가 바로 너바나다.
다시 록음악의 본연적인 정체성, 작가주의 정신, 대중성, 기성세대와 상업주의에 저항하는 야수성을 되살리자는 너바나의 외침은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음악으로 이어지게 된다.[19] 이렇게 90년대에 영국에서는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 등의 밴드들과 미국에서는 펄 잼,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 같은 밴드들이 초대형 히트곡도 내고 명반들도 내면서 다시 록 음악의 인기를 되살리고 영광의 시대인 1960년대가 재현되고 제2의 비틀즈, 롤링 스톤즈, 더 후, 킹크스, 레드 제플린이 나올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90년대에는 60년대와 다르게 록 음악만 있었던게 아니기에 R&B, 힙합과 팝의 인기를 꺾기에는 무리였고[20] 상술한 90년대 밴드들은 보컬의 자살, 매너리즘, 멤버들의 불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선배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명반 1,2개만 내고 잊혀지게 된다.
이후에 90년대 후반으로 들면서 얼터너티브 록은 라디오헤드 류[21]의 음악들로 변하게 되는데 이 음악들의 특징은 작가주의 정신과 창의성에는 부합했으나 위의 밴드들이 보여주었던 로큰롤 정신(야수성, 대중성)들이 결여되어있다. 2000년대로 오면서 스트록스니 화이트 스트라입스, 프란츠 퍼디난드같은 복고풍의 로큰롤 밴드들이 다시 성공하면서 라디오헤드류의 얼터너티브 록이 왕좌를 가지고 있던 록음악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나 싶었으나 복고음악의 근본적인 문제인 매너리즘의 벽을 못넘고 롱런에 실패한다. 이후 라디오헤드류의 얼터너티브 록이 2020년대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많은 평론가들은 로큰롤을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 록 음악 역사를 양분해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록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음악이라고 간주한다. 위에서 인용한 키스 리처즈와 엘비스 코스텔로의 말처럼 요즘 밴드들은 록(Rock)은 잘하지만(Roll)은 못한다는 발언도 결국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여담
- 미군들이 전투준비를 외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락엔롤!! 락 엔 로드를 빨리 발음하면 이해할 수 있다.[22]
- 록맨 클래식 시리즈의 주인공 록맨과 여동생 롤의 이름의 모티브가 되었다.
- 문명 4에서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효과는 매 턴 위대한 예술가 점수와 고유한 사치품인 인기 음악 몇 개(지도의 크기에 따라 다름), 행복을 제공하며, 이 불가사의가 지어진 도시의 매 턴 문화에 50%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것. 문화 승리를 거두기 위해 꼭 확보해야 할 불가사의로 꼽힌다.
[1] 오늘날 독립된 장르로써의 로큰롤 음악은 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로큰롤의 음악적 문법은 록 음악의 기본기에 계승되어 활용되고 있다.[2]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영화 '버드'를 보면, 색소폰으로 들고 아무 클럽에 들어간 말년의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가 자신이 서야할 무대에 록큰롤 뮤지션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3] Larry Starr & Christopher Waterman – American Popular Music: From Minstrelsy to MP3 (Oxford University Press, 6th ed. 2021)[4] 이승환의 노래 '제리 제리 고고'의 주인공[5] 로커빌리 자체가 록+힐빌리(컨트리 음악)의 합성어다.[6] 약간 정신이 이상했던(...) 로큰롤 뮤지션으로, 훗날 데이빗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의 모델이 된다. 맨날 기차역 앞에서 땅바닥에 지도를 놓고 UFO가 착륙할 지점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7] 뮤지컬 "그리스"의 이야기가 바로 이 그리저들 이야기다.[8] 참고로 테디보이는 로커스보다 좀 더 앞선 서브컬쳐로 영국 오리지날 서브컬쳐다. 이들은 재즈와 스키플을 들었다.[9] 그 당시에는 범죄로 취급되었다.[10] 이건 문서가 가리키는 '페이올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이기도 하다.[11] 당시로서는 돈을 받고 특정 곡들을 틀어주는게 이상한게 아니었고, 사실상 로큰롤 확산의 주범이었던 앨런 프리드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12] 하지만 당시 징병제는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학업이나 취직등 다양한 이유로 징병을 손쉽게 피할 수 있었고, 처음부터 예비역으로 주방위군이나 연방군에 지원해서 출퇴근 하며 짧은 군생활을 마치는 방법도 있었다(한국의 과거 방위병이나 상근예비역이 이 제도에서 기원한다). 지금 대다수의 청년들이 무조건 끌려가는 한국의 징병제랑은 결이 달랐다. 징병제가 다시 빡세진건 베트남 전쟁 이후다. 여튼 엘비스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징병검사에 응하게 되고, 기왕 군대 가는 김에 사병으로 가서 주독미군으로 자대배치를 받는다. 2년동안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구르다 나왔다고 한다(...).[13] 이날 신문을 읽고 한 소년이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 소년은 훗날 뮤지션이 되어 이날의 충격을 곡으로 남긴다. 그 소년은 바로 돈 맥클린이었고 그 곡은 아메리칸 파이였다. 가사 자체에도 "그날, 음악이 죽은 날"이라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14] 음악이 죽은 날이란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향년 22세였던 버디 홀리는 단 18개월의 활동만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정도로 로큰롤과 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적으로 록밴드 표준 구성에서 색소폰과 건반을 치워버린 것도 버디 홀리의 크리켓츠가 최초이다. 그리고 영화 라 밤바로 잘 알려진 리치 발렌스의 향년은 만 18세였고, Chantilly Lace를 빅 히트 시킨 '빅 바퍼' J.P.리처드슨이 최연장자였는데 이 때 나이가 만 28세였다.[15]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빅 바퍼와 함께 겨울 댄스 파티 투어를 다니던 디온(가수)은 사고 비행기에 타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이후 그는 프랭키 사르도와 당시 무명가수였던 바비 비와 함께 남은 2주간의 겨울 댄스 파티 투어를 다녀야 했다.[16] Rock이 록 음악으로서의 형식과 테크닉만을 뜻한다면 Roll은 로큰롤 정신부터 그루브, 소울까지 지칭한 표현이다. 60년동안 로큰롤 음악만 파온 롤링 스톤스를 생각해볼때 정말 찰떡 같은 표현이다.[17] 참고로 로큰롤 음악의 또다른 레전드인 엘비스 코스텔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18] 원래 예술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건 기술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다.[19] 물론 너바나 이전에도 얼터너티브 록의 REM이나 U2같은 밴드들은 록 시장을 넘어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음악성을 인정받던 밴드들이였으나 너바나 음악이 등장하면서 더더욱 평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20] 이 이유로 90년대 영국 밴드들이 60년대와 다르게 오아시스를 제외하고 미국 시장의 벽을 끝내 못넘었다. 미국에서는 록음악보다 R&B, 힙합, 팝음악이 더 인기가있었기 때문이다.[21] 영미권에서도 실제로 라디오헤드 류의 음악이라는 뜻인 ‘Radioheadism’이라는 단어를 쓴다. 대표적으로 콜드플레이와 뮤즈의 초기작을 들 수 있다.[22] 실제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테란 군인 해병 역시 이동 명령을 내리면 해당 대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