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5 00:40:23

당나라 군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문서는 군대에 대한 속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 당나라 군에 대한 내용은 당/군제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2. 어원
2.1. 고구려 유래설2.2. 남북국시대 신라 유래설2.3. 언어유희설2.4. 일본 유래설2.5. 국민당군 유래설
3. 사례

1. 개요

막장 군대를 일컫는 말. 무능한 군대는 예전부터 있었는지 고사성어로도 나왔다.

그런데 초기 당나라는 동아시아 내에서는 오늘날의 미국같은 당대 최강국으로, 당시 당나라 군대는 중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역대 최강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강군이었다. 대 기병 전술의 발전으로 소수의 보병으로 다수의 기병을 제압하는가 하면, 북방 유목민들의 장점을 받아들여 기동력을 살린 경기병대를 출현시키고, 나아가 아예 사방에서 데려온 이민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당시 동양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병종의 장점을 모았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아시아의 고창, 위구르에서부터 돌궐, 거란, 해, 말갈부터 심지어 고구려 백제 유민이나 신라군도 전력으로 써 먹었다. 한마디로 동양 전역을 커버하는 범위에서 전력이 될만한 것들을 긁어모아 활용하며 이에 따라 출현한 거물급 장수들의 출신 역시 고구려, 백제, 위구르, 말갈, 돌궐 등등 아주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돌궐 출신인 아사나사이, 선비족 출신인 울지경덕, 거란족 출신인 이해고와 백제 출신인 흑치상지, 신라 출신인 설계두, 그리고 고구려 유민 출신인 고선지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저력은 조그마한 태원 한 구석에서 시작해서 10년 남짓한 기간에 중국 대륙을 통일한 것도 모자라서 북쪽으로는 유목제국, 서쪽으로 중앙아시아, 남쪽으로는 베트남, 동쪽으로는 고구려백제를 제압하고 일본까지 박살내는 그 전과로 확실히 증명된다. 그러나 7세기 말쯤 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안사의 난황소의 난을 거치고 나면 당나라 군대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속 진짜(...) 당나라 군대로 전락한다.

물론 안사의 난 당시의 당군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의미의 당나라 군대까지는 아니었다. 일단 초기에 당의 정부군을 압도한 안녹산의 15만 반란군은 반란 이전가지는 당의 최정예군이었다. 그리고 당의 정부군도 결코 실력이 나쁜 것은 아니어서, 처음에는 15만 반란군에게 얻어 맞았지만 곽자의, 이광필, 복고회은 등 하늘이 내리신 명장들의 활약과 정부군 자체의 경험 축적으로 인해 상당한 강군이 되어 있었다. 안사의 난이 진압된 이후에 당이 위구르 제국토번에게 골골댄 것은 안사의 난으로 당의 재정과 국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며, 이 두 나라도 끝내 당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최치원이 남북국시대 후기의 주요 인물로 다뤄지며 황소의 난과 관련있기 때문에 이 형편없는 당나라 군대가 한국사와 아예 무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당나라 군대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것은 고구려 원정 당시의 수나라 군대와, 당 멸망 이후 이를 계승한 송나라 군대다. 특히 송나라는 당나라 멸망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분열된 5대 10국을 통일했을때를 제외하면 군대 자체가 허약했다.

수나라의 경우 억지로 긁어모은 오합지졸에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당시 '요동에 가지 마라' 라는 내용의 노래가 수나라에 널리 퍼졌을 정도. 요동에 가면 죽는다는 의미의 가사다. 지휘체계도 중구난방인 등 문제 투성이었다. 심지어 보급품을 실어나를 말과 수레가 부족해서 우중문, 우문술 부대는 병사들에게 무거운 쌀가마니를 직접 업고 운반하라고(...) 명령하는 미친짓을 했고, 지친 병사들이 견디다못해 중간에 쌀을 몰래 버리면서 진지에 도달해서는 쌀이 바닥나버렸고, 병사들은 병사대로 지쳐서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송나라 군대는 일단 장수들부터가 황제와 문신들에 의해 큰 차별을 당했다. 물론 문치국가라는 중국의 특성상 문신보다 무신이 차별받은 것은 있었던 일이지만 송나라 때는 정말 전대의 왕조인 당나라에서 일어났던 절도사들의 난을 참고로 삼아 군인의 지위를 크게 낮춰 버렸다.

특히 정예병력을 모두 황궁과 도성을 지키도록 배치하고 적과의 국지전이 자주 일어나는 최전방에는 오합지졸들만 배치하는 뻘짓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반란을 두려워하여 사령관도 무관이 아닌 문관을 임명했는데 문제는 이 문관들이 전투 경험이 전무하고 군대를 모르는 비전문가들이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안 그래도 지나친 문치주의로 약해진 군대가 더욱 허약해져버렸고, 금나라의 기병 120기에게 송나라 군 수천 명이 패퇴해버리는 풍선 효과를 낳고 말았다. 또한 온갖 질 나쁜 불량배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등 군의 질적 저하가 심각하였으며, 군 기강도 엉망이 되었다.

송나라는 오히려 정강의 변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난 남송 시기에 군제 개혁을 하여 군사력을 보강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몽골의 대대적인 침공을 무려 40년 동안 버틸 수 있었다. 덕분에 훗날 금나라가 몽고에 의해 수도가 털리고 애종이 자살하는 동안 남송은 몽골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로 남았다. 결국 이에 질린 몽골은 남송 정벌 후 남송인을 최하층 계급으로 분류하였다.

사실 저런 송나라의 허약해 보이는 군대 체제가 등장했던 이유로는 근대 이전까지 거의 모든 거대 제국들이 부딪혀왔던 중앙군과 지방군간의 균형 문제도 있다. 교통, 통신, 행정기술의 한계상 중앙 정부가 직접 지방군을 유지하고 통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강력한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나라의 번진절도사, 비잔티움의 테마 제도와 스트라테고스 처럼 반독립적/봉건적 성격을 가진 군관구를 설치하여 병력을 직접 편성-유지하고 지휘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독립적인 지방의 군관구들은 정국이 혼란해지면 손쉽게 군벌로 변신하여 중앙 정부를 위협하여 혼란한 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지방 군사력의 반란을 막기 위해 군사력의 주축을 중앙군에 두게 되면 변경의 방어력이 약해지고, 군사력의 총 규모 역시 심하게 축소되는 것이 불가피했기에 거의 대부분의 전근대 제국들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어떤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송나라가 찾아낸 균형점은 '중앙군 중심, 정국 안정 중시'에 아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전 왕조인 당나라 자체가 그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절도사들의 이탈과 반란을 통제하지 못하여 망해버렸고, 그 후 오대십국시대의 혼란기를 거친 끝에 건국된 것이 송나라이니 군사력의 강화보다는 정국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그 대가로 송나라는 역대 중국 통일왕조중에서 군사력 최약체라거나, 요, 금, 원에게 막대한 세폐를 내며 평화를 구걸했다는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당대 송나라의 문화적 번영과 경제적 성세를 생각하면 이 또한 나름 "평화? 그까짓거 돈으로 사면 될거 아냐! 얼마야! 얼마면 살 수 있냐고!" 식의 선택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당시 요금이 내건 조건은 단순 돈을 넘어서 요나라를 형으로, 금나라는 아예 신하로 섬기라는 그야말로 중화사상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조건이었던지라 송이 무슨 돈이 너무 넘쳐서 그까짓거 몇푼 쥐여주고 상대하지 말자는 마인드였다는건 아큐식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실제 송나라의 행적을 보아도 어떻게든 연운16주와 북중국을 탈환하려 발악을 하다 군사력이 딸려서 못했을 뿐이다. 애당초 요금원은 이전의 유목민과 달라도 한참 달랐던것이, 이들의 목표는 그냥 삥뜯는게 목적인 과거 흉노나 선비와 달리 중국을 정복하고 한족을 피지배층으로 두는 것이었고, 송나라도 이걸 모르지 않았기에 열심히 요,금을 무너뜨려보려 애썼지만 결국은 원나라에 이르러 완전 멸망했다. 애당초 당시 요금에게 바친 조공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중화천자님'이 '오랑캐'를 형 혹은 임금으로 섬기고 조공을 바치는 것 자체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황후,황녀,황태자비,황제,선황제가 싹 다 잡혀가는 대참사 속에서 어쩔수 없이 한 것이다. 다만 사실 송나라의 왕조 유지기간은 다른 역대 중국 통일 왕조에 비해도 그다지 짧은 것은 아니다.

2. 어원

시초에 관한 설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럴 듯한 가설로는 다음과 같다.

2.1. 고구려 유래설

비록 고구려가 668년에 나당 연합군에 멸망당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 고구려는 당나라를 맞아 큰 승리를 거두었고 하니 고구려 입장에서 당나라군대 이미지는 오합지졸로 보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1] [2]

그나마도 나당 연합군이 굉장히 고전 끝에 멸망시킨 것이다. 한 예로 당나라 군은 667년 2월에 신성을 공략했는데 그 성 하나 깨는데 무려 7개월이나 허비했고 그나마도 사부구라는 역적의 도움으로 겨우 함락시킨 것이다. 수도인 평양성도 1년 가까이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다가 역시 매국노 땡중 신성을 회유해 성문을 열게 해서 겨우 함락시킨 것이다.

박근형 저 <중국 읽어주는 남자>란 책에는 이 당나라 군대란 속어의 유래를 고구려에서 찾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고구려 계통 아이들 위인전이나 사극에서 인물의 뛰어남을 부각시키기 위해 당나라 군대 이미지가 무능하고 늘 패배하는 등 그야말로 영 좋지않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가 경연에서 당나라 군대의 연패에 대해 논하는 것을 보면[3] 민중들 뿐만 아니라 식자층들에게도 '당나라 군대'는 오합지졸로 이미지가 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고구려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2.2. 남북국시대 신라 유래설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당나라군을 형편없는 약군으로 인식한 것에 유래했다는 설.

물론 지금이야 각국의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파악이 가능할 정도로 정보가 충분하기에 당시의 당군이 질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군대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보의 양과 질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피상적으로 대국인 당나라가 신라에게 패했으니, 신라 입장에서는 당나라의 군대 이미지는 실제와 관련없이 형편없는 오합지졸로 인식했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게다가 실제와는 무관하게 적을 조롱하는 문화는 그리 드문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또한 그 후 나당전쟁을 겪지 못한 후세의 신라인들이 안사의 난, 황소의 난 등에서 당나라 정부군이 무력하게 패배하고 이민족이나 의용병의 힘으로 겨우 안정을 찾은 것을 황해 바다를 건너오는 소문과 자치통감 등 중국 사서를 통해 접하면서 당나라 군대에 대한 이미지는 더 악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라군도 몇백년이 지나 후삼국시대 직전까지 가면 약군이 되기는 하지만, 당나라가 안사의 난으로 골골거리기 시작할 8세기 때 신라는 여전히 전성기였고 9세기 초반까지도 김헌창의 난을 정부군으로 신속하게 진압하는 등 신라보다는 당나라가 더 일찍부터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의 행보가 나당전쟁 이후에도 지나칠 정도로 친당적인 걸 보면 신라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은 좀 떨어진다.

2.3. 언어유희설

군기가 빠진 군대에서는 을 쏴도 소리가 아니라 허전하게 소리가 난다고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용어라는 설. 또는 군기가 빠져 싸우지는 않고 매일 꾸벅꾸벅 졸기만 하는 모습에서 나라 군대 → 당나라 군대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 당나라를 닭나라로 잘못 이해하는 유머는 예전에도 있어왔다.

2.4. 일본 유래설

일본에서 중국의 군대를 일컬어 당나라 군대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일본은 당의 율령제를 받아들인 이후 당이 망하고 천년이 다 돼가는 에도시대 말까지도 중국을 당나라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 흔적은 많이 남아있다. 일본어에는 가라테(당수)라는 단어가 있고, 중국풍을 당풍이라고 한다. 참고로 임진왜란을 일본쪽에서 지칭하는 이름중 하나가 唐入이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당나라 군대는 곧 중국 군대를 의미했다. 그리고 왜구들이 겪은 중국(원명) 군대가 당시 군기 빠질 정도로 문란했던 수준을 감안하면 당나라 군대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비하적인 표현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중국(원명) 군대가 왜구들을 격퇴시켜 대승리를 거두는 사례가 더 많았다. 마치 예비군처럼 군기는 빠졌을지 몰라도 막상 전쟁 시에는 아니었던 셈. 실제로도 예비군들이 현역들과 같이 훈련을 하면 예비군들이 현역들보다도 전투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

다만 이 설은 이 당나라 군대라는 표현이 현재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안 쓰이고 한국에서만 쓰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일본이나 일본인에 의해 유래한 표현이라면 이런 표현이 일본어에 퍼져 나갔을 확률이 높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그 근거가 약한 설이다.

또한 사실 중국을 통칭으로 당(唐)이라고 일컫는 것은 고려-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대목들이 나온다.
唐人戴延卿、鄭自良等十三人各米一石。
당인(중국인) 대연경과 정자량 등 13명에게 쌀 한 섬씩을 하사하였다.
― 태종실록 9권, 태종 5년 2월 2일 무진 2번째 기사

"… 所率軍馬甚衆, 糧餉浩繁, 未審有司恒費外, 所餘米、豆, 足支唐軍幾名、幾朔乎? …"
"… 거느리고 온 군마(軍馬)가 매우 많아 군량이 엄청나게 많이 들 것이다. 모르겠다만 유사(有司)는 늘상 쓰는 분량 이외에 남은 쌀과 콩으로 당군(중국군) 몇 명에게 몇 달간이나 지공할 수 있겠는가? …"
― 선조실록 62권, 선조 28년 4월 19일 신유 1번째 기사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군대도 이처럼 일반 대화에서는 임금(선조)까지 당군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처럼 조선에서도 '중국=당'의 의미로 통상 쓰던 말이었기에 굳이 일본에서 연원을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2.5. 국민당군 유래설

중국의 국민당군을 당군이라고 비하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 대륙을 통일한 국민당의 군대는 병력의 수에서 뿐 아니라 미국 등의 지원으로 확보한 막강한 화력과 보급물자에서 알 수 있듯이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 군대(홍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분명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관매직에 따른 군기 문란으로 결국 연전연패하다가 대륙을 내주고 작은 타이완 섬으로 완전히 쫓겨나고 말았다.

이때 중국 국민당 군대의 무능함을 비웃는 단어로 국민당군이라고 비하하다가 이것이 나중에 국민당군 => 당군 => 당나라 군대로 변화되었다는 설이다. 물론 이 학설 또한 확실한 근거가 있는 설은 아니다.

3. 사례

한국 내에서는 주로 공군 등 군기가 타군에 비해 약하다며 왜곡된 군을 비하할 때 사용해왔고, 근래에는 논픽션 매체에 등장하는 막장 군대들이나 다른 나라 군대의 막장 행각을 깔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자유로운 군기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해외의 군대 드라마 등을 깔 때 많이 사용된다. 국군이 현대화 되고 개방화 되는 추세에 대해 요즘 군인들 군기가 엉망이라고 까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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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마린블루스에서 예비역인 성게군이 소대 최고 맞선임이 된 쭈꾸미군에게 요즘 신병들을 "자기 땐 그러지 않았는데~"라는 특유의 군대허세를 섞어 당나라 군대라 말한다.[4]

다만 당나라 군대에 대해 서로들 자기 때는 고생하고 무조건 후배들이 빠졌다라고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한 위키러가 90년대에 군대 복무할때 좀 나이든 지인에게 이런 말 듣었는데 정작 이 이야기를 같이 듣은 위키러 아버지는 그 지인을 비웃으면서 자신이 군대 가던 60년대조차 똑같은 말을 하며 자신들은 6.25 실전을 치뤘다느니 잘싸운 것만 강조하고 후배들이 빠졌다느니 당나라 군대라느니 소리하던 민간인들이 많았고 그들이 하던 소리를 재방송한다고 깠던 이야기도 있다.

한편 이라크 내전에선 이라크군ISIL 상대로 매우 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라, 오합지졸 소리를 듣고 있다. 심지어 모술에선 800명이 쳐들어오자 3개 사단이 그냥 증발해버렸고[5], 결국 모술은 ISIL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이건 2015년 전에 있던 이야기다. 이라크군이나 이라크를 봐도 이라크군이 엉망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다. 그래도, 그 엉망인 이라크군은 이후로 제정신을 차리고 황금사단을 필두로 하여 승승장구하며 다에쉬들을 이라크 내에서 대거 청소했다.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이는 중인 우크라이나군도 같은 취급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이탈리아군과 유고슬라비아군이 당나라 군대 포지션이었다.

아프리카 전선에 막 투입된 미 제2군단 역시 카세린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스러운 모습을 왕창 보여주면서 대패.이 보고를 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 애들, 싸움할 줄은 아나?"며 탄식했다는 소문이 있다. 영국군은 위에서 아래까지 "양키새끼들은 연합군 안의 이탈리아군"이라며 비웃었고... 이에 투입되어 제2군단을 부흥시킨 인물이 다름아닌 (자칭) '한니발의 환생' 조지 S. 패튼. 물론 패튼 항목에 나오듯이 그만큼 미군들은 피범벅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야했고 미군 병사들은 패튼을 죽이고 싶은 걸 참아야 했지만.

2차대전의 이탈리아 군대도 일부를 빼면 당나라 군대라고 놀림받는데, 사실은 히틀러 부러워서 발 동동 구르는 무솔리니를 위해서 목숨걸고 남의 땅에서 죽으라고? 내가 왜? ...에 가까웠다. 뭔가 이상하다면 기분탓이다

중화민국 공군 고문으로 도착한 미군 공군 장교인 클레어 리 센놀트도 굉장히 군기가 빠져있던 중국 공군에 학을 뗀다. 그래서 다시 등장해서 2차 세계대전 때 중국 공군과 제대로된 연합작전을 펼쳐서 전쟁 승리에 기여한 게 미군외인부대플라잉 타이거즈.

군축으로 인해 약체화된 대다수의 서유럽 군대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 막장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자세한 건 독일연방군의 군축 항목을 참고하자. 그런데 군축이 되긴 했지만 적을 상대하는 군의 기강과 사기까지 개판이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국의 속담 가운데에 이와 얼추 비슷하면서도 뜻은 조금 다른 "죽어나는 건 조조 군사"라는 말이 있다. 적벽가에서 조조군이 엄청나게 깨지는 모습을 보인 것에서 유래했다.
[1] 사서를 보면 고구려-당 전쟁 때 당나라가 거의 매 전투기록이 승리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당나라 입장의 기록만 적혀있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하다못해 현대의 물리적 충돌만 해도 양측 주장이 판이한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당태종은 역사왜곡을 시도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이라.. 오죽하면 김부식삼국사기에서 "유공권의 소설에 당나라 군대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황이 묘사되어 있는데 중국 사서에는 없으니 지들이 부끄러워 숨긴 게 아니냐?"고 깠다. 중국에서조차 당나라 교환비가 40배에 승률 압도적이라는 부분은 내세우거나 거들떠보질 않고 다만 당대부터 고구려에 발린것만 기억했을 정도[2] 게다가 당나라의 연전연승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고구려는 이미 군대 자체가 소멸되고 징집할 남자도 남아있지 않아(예를들어 고구려 인구래봐야 300~400만에 불과한데 주필산 전투 하나에서만 15만이 전멸당했다고 한다. 노인과 아이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청년층이 붕괴한거라 고구려는 수십년을 더 항전할 여력 자체가 없는데 실제로는 신라와도 간간히 싸우며 수십년을 더 버텼다.) 후방의 신라와 손잡아가며 수십년간 똥꼬쇼를 할 이유 자체가 없다.[3] 정조실록 3권, 정조 1년 2월 1일 정유 4번째기사[4] 저런 거 가지고 군기 빠졌네하는 거 자체가 똥군기지만 일단 몇가지는 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긴 하다. 세면대에서 걸레 빠는 건 위생 문제, 식탁에 왼팔 올리면 안되는 건 자리가 좁아 공간 만들려는 사례가 꽤 많은 부대에 존재한다. 오른손으로 담배 피면 안되는 이유는 경례를 오른손으로 해야하기 때문.[5] 최소 9000명에서 최대 6만 명 정도 되는 병력이 싸워 보지도 않고 그냥 내뺐다는 소리다. 다만 이라크군의 경우 장교가 군수물자를 필요량보다 더 많이 받아 횡령하기 위해 없는 병사까지도 있다고 속여 이런 결과가 나온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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