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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태현/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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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현대그룹삼청태현(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2군
역사 정보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구단 역사역대 시즌실업 현대연고 이전
1994년 한국시리즈1996년 한국시리즈1998년 한국시리즈 (V1)2000년 한국시리즈 (V2)2003년 한국시리즈 (V3)2004년 한국시리즈 (V4)
역대 감독역대 주장역대 1차 지명 선수사건 사고암흑기
세부 정보 선수단등번호유니폼재계 라이벌 시리즈
경기장 숭의야구장(1996~1999)수원종합운동장 야구장(2000~2007)춘천공설운동장 야구장원당 야구장(제2 홈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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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차 암흑기 : (6366677 시절)
2.1. 1982년: 슈퍼스타 없는 슈퍼스타즈, 최악의 승률 0.188.2.2. 1983년: 슈퍼 괴물 너구리를 앞세운 인천의 봄.2.3. 1984년: 퍼져버린 너구리, 다시 추락한 삼미2.4. 1985년: 치욕의 18연패, 눈물의 구단 매각2.5. 1986년: 신생팀 덕에 탈꼴찌2.6. 1987년: 막내에게도 밀리는 만년 꼴찌 2.7. 1988년: 간판이 바뀌어도 또 꼴찌 신세2.8. 1989년: 돌풍의 돌핀스, 비밀번호를 끊어내다
3. 2차 암흑기 : (5568 시절)
3.1. 1990년: 포스트시즌의 기쁨도 잠시...3.2. 1991년: 올해도 아쉽게 5위를 하다3.3. 1992년: 올해도 탈락했다 내년에도 탈락할까
3.3.1. 참고 : 프로야구 초창기 10년간 삼청태와 다른 팀 간 포스트시즌 진출 성과 비교
3.4. 1993년: 5년 만에 꼴찌로 돌아가다3.5. 1994년: 첫 한국시리즈
4. 1995년~2007년: 태평양의 말로와 현대의 전성기의 시작, 그리고 비운의 해체5. 관련 문서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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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 리그 최초의 인천광역시 연고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이하 삼청태현)의 암흑기를 정리한 문서.

2. 1차 암흑기 : (6366677 시절)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이하 삼청태) 시절에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찍은 KBO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꼴찌 빈도가 높은 최악의 비밀번호이다.[1] 자연스럽게 삼미와 청보 시절의 모든 역사가 이 비밀번호에 들어간다. 롯데의 4/7(8888577), LG의 1/5 (6668587667), 한화의 1/2(5886899678)을 뛰어넘는 5/7(6366677)의 빈도 높은 꼴찌율을 자랑한다... 올드 삼청태 팬들의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비밀번호 중 6366은 삼미가, 6[A]67은 청보가, 7355682는 태평양 시절 찍은 비밀번호다.

2.1. 1982년: 슈퍼스타 없는 슈퍼스타즈, 최악의 승률 0.188.

6366677/3/5568/2. 승률 0.188, 팀 평균자책점 6.23[3]
"이름부터가 글러먹었어. 슈퍼스타즈가 뭐야 슈퍼스타즈가... 아니 스타 하나 없는 슈퍼스타즈가 말이나 돼?"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박현식 감독(장항선 扮).[4]
한반도에서 야구가 처음 도입된 도시인 구도 인천의 명예를 걸고 야심차게 출범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창단 첫 해부터 망신을 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팀 이름만 슈퍼스타즈였고 정작 야구팬들이 알만한 슈퍼스타는 양승관 말고는 없었기[5]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슈퍼스타 없는 슈퍼스타즈가 된 셈. 시즌 통합 성적이 15승 65패, 승률 0.188이었는데 당시 5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의 승률이 0.388이었다. 기별 리그 성적은 더 처참한데 전기리그에서 10승 30패, 승률 0.250였고 후기리그에서 5승 35패, 승률 0.125(...)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OB 베어스에게 시즌 16경기 전패를 당했다는 것은 덤.

자세한 내용은 한국프로야구/1982년 참고.

2.2. 1983년: 슈퍼 괴물 너구리를 앞세운 인천의 봄.

6366677/3/5568/2.

삼미의 짧은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부흥기. KBO가 재일교포 선수 영입을 허용하면서 일본에서 뛰던 장명부이영구를 데려왔고 인천고 출신 국가대표 투타 주역이던 임호균-김진우가 입단하면서 팀의 전력이 상승했다. 특히 에이스 장명부가 시즌 30승이라는 괴력을 발휘한 덕에 전기 2위, 후기 2위, 통합 성적 "3위"를 차지했다. 21세기의 규정대로라면 가을야구 진출은 따놓은 당상이었겠으나 당시는 6팀 전기·후기리그 1위팀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던 시절이라 가을야구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3년 인천의 영웅이었던 장명부는 이 해의 혹사 탓에 이듬해부터 비밀번호를 늘리는 원흉[6]이 되고 말았다. 한국프로야구/1983년 참고.

2.3. 1984년: 퍼져버린 너구리, 다시 추락한 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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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해 무려 60경기 427.1이닝[7] 마운드에서 굴렀던 장명부가 직전해의 혹사 영향으로 부진에 빠졌고[8] 덩달아 팀도 원년의 모습으로 회귀하면서 다시 꼴찌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 모기업 삼미그룹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한국프로야구/1984년 참고.

2.4. 1985년: 치욕의 18연패, 눈물의 구단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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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무려 디펜딩 챔피언의 에이스 최동원을 무너뜨렸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음날인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무려 한 달 가까이 내리 패하는 바람에 [age(1985-01-01)]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는 단일 시즌 최다연패 (18연패)라는[9] 치욕의 기록을 세웠다. 팀 성적은 당연히 부동의 꼴찌.

구단의 성적이 이처럼 급전직하 했던 것에는 모기업 삼미그룹의 경영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 제2차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삼미그룹의 주력 업종이던 해운업이 불황을 겪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삼일빌딩과 삼미해운을 제3자에 매각해야 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야구단마저 청보식품에 매각했다.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구단 매각 사례. 당시 김현철 구단주는 야구단 매각 도장을 찍은 날 밤 아쉬움을 못 이겨 대성통곡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청보식품으로 매각이 됐다고 해도 이름만 청보 핀토스로 바뀌었을 뿐 전기리그 꼴찌를 만든 사람은 그대로여서(...) 후기리그에서도 이렇다 할 반전 없이 또 꼴찌를 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기업이 파는 음식들도 맛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1985년 참고.

2.5. 1986년: 신생팀 덕에 탈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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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최초의 확장 구단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면서 청보와 꼴찌 다툼을 했으나 그야마로 도긴개긴 수준. 결국 청보보다 경험치가 적었던 신생팀인 빙그레가 꼴찌를 하면서 청보는 6위가 되었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1985년보다 더 형편없어졌다. 기별 리그로 따져도 전기리그 꼴찌는 빙그레였지만 후기리그 꼴찌는 청보의 차지였다. 한국프로야구/1986년 참고.

2.6. 1987년: 막내에게도 밀리는 만년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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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가 6위를 하고, 청보가 꼴찌를 하면서 팬들에게 대놓고 굴욕적인 꼴찌를 보였다. 신생팀에게 뒤지는 게 얼마나 굴욕적이냐면 1991년의 OB 베어스, 2013년의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를 생각해[10]보면 빠르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년도 우승팀인 LG 트윈스와 공동 6위를 했고, 2013년 NC는 7위를 기록함으로써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OB, KIA와 한화는 신생팀에게마저 뒤지는 팀'''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그리고 슬픈 역사가 반복되는 바람에 이 시즌 중부터 그룹 모기업인 풍한방직과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못 만들던 청보식품이 경영난을 겪는 바람에 팀 안팎이 어수선했다. 결국 1987년 시즌 종료 후 태평양화학으로 구단이 또 매각됐다. 이로써 삼청태는 모기업이 두 번 이상 바뀐 유일한 구단이 되어버렸다.[11] 한국프로야구/1987년 참고.

2.7. 1988년: 간판이 바뀌어도 또 꼴찌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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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와 청보보다는 인지도도 높고 재무 상태도 훨씬 탄탄한 태평양화학이 야구단의 새 주인이 됐지만 꼴찌 근처를 맴돌던 팀의 전력은 변화가 없었다. 결국 이 해 태평양은 0.319의 승률을 기록하며 2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한국프로야구/1988년 참고.
시즌부터 안좋았다. 개막전을 6:0으로 지고 있었는데 8회에 6:5 까지 추격했으나 결국 역전하지 못한채 시즌을 시작하면서 1승 13패를 기록한 강태정 감독을 해임시키고 4월 22일부로 임신근 투수코치를 4월 23일 감독대행으로 썼으나 이미 때는 한발 늦었고 역시나 웃음후보 답게 꼴찌를 했다.(.....)

2.8. 1989년: 돌풍의 돌핀스, 비밀번호를 끊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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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인천야구의 부활기. 새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과 박정현-정명원-최창호 등 신예 투수 3총사가 돌풍을 일으키며 페넌트레이스 최종 성적 3위를 기록해 인천야구 역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동시에 비밀번호도 끊었다. 자세한 건 한국프로야구/1989년 참고. 5할 승률에 한끗차이로 실패한 0.496의 기록으로 시즌을 마친게 아쉬울 따름이다.

3. 2차 암흑기 : (5568 시절)

참고로 5568은 비밀번호 조건에 해당하지 않지만 번외로 기록하였다.[12]

3.1. 1990년: 포스트시즌의 기쁨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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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태평양은 전년도 순위인 3위에서 두 계단 내려간 5위를 함으로써 제2의 흑역사로 남게 될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해부터 1993년까지는 태평양이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실패해 또 다시 고통스런 4년을 보내게 된다. 한국프로야구/1990년 참고. 그리고 그동안 프런트와 마찰이 잦았던 김성근과 결별하는데 이후 김성근의 팀 운영에 따른 후폭풍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3.2. 1991년: 올해도 아쉽게 5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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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같이 또 5위를 하며 2연속 목메달(당시는 4위까지 포스트시즌을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5위)을 찍고야 말았다.한국프로야구/1991년 참고.

3.3. 1992년: 올해도 탈락했다 내년에도 탈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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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태평양은 쌍방울 레이더스와 함께 동네북의 면모를 보여주며 6위를 했다. 한국프로야구/1992년 참고.

3.3.1. 참고 : 프로야구 초창기 10년간 삼청태와 다른 팀 간 포스트시즌 진출 성과 비교

  • 우승한 해는 굵게 표시한다.
팀명 창단연도 포스트시즌 진출 시즌 횟수
삼성 라이온즈 1982 1982,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10회
해태 타이거즈 1983,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8회
빙그레 이글스 1985 1988, 1989, 1990, 1991, 1992 5회
OB 베어스 1982 1982, 1986, 1987 3회
롯데 자이언츠 1984, 1991, 1992
LG 트윈스 1983, 1990 2회
태평양 돌핀스 1989 1회
원년 6개 구단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가을야구 진출 횟수가 적었다. 심지어 1985년에 창단돼 1986년부터 1군 리그에 뛰기 시작한 빙그레가 5번에 걸쳐 포스트시즌에 갈 동안 삼청태는 5번에 걸쳐 꼴찌의 굴욕을 뒤집어 썼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1992년 당시의 창단 2년차 쌍방울 레이더스가 삼청태를 능가하는 동네북이었다는 점이다.[13]

3.4. 1993년: 5년 만에 꼴찌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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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계속 순위가 떨어진 태평양은 5년 만에 꼴찌로 추락했다. 한국프로야구/1993년 참고.

3.5. 1994년: 첫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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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태평양은 2위를 하며 인천야구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준우승을 했다. 이 기록은 현대 유니콘스가 세워진 첫 해인 1996년, 준우승을 하며 타이기록을 세웠고 1998년 인천야구 사상 첫 우승을 했다. 한국프로야구/1994년 참고.

4. 1995년~2007년: 태평양의 말로와 현대의 전성기의 시작, 그리고 비운의 해체

1995년 태평양은 .401의 승률을 기록하며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막바지였던 그 해 8월 현대그룹의 태평양 야구단 인수 사실이 발표되면서 태평양 돌핀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6년부터는 현대 유니콘스가 4번째 인천 연고팀으로 간판을 바꿔달며 현대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위 항목에서도 언급했듯이 현대는 1998년 인천야구 사상 첫 우승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는 영광과 시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데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 연거푸 우승함으로써 현대는 당대 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0년 초 구단이 단행한 연고지 이전 사태, 현대그룹왕자의 난으로 인한 계열 분리, 구단주 정몽헌 회장의 별세, 모기업 현대전자의 경영난과[14] 이에 따른 구단 지원 미비[15] 등으로 인해 결국 2007년 해체되며 호흡기를 떼고야 말았다. 6366(삼미)/6[A]67(청보)/73556827(태평양)/261513411736(현대)을 기록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리그 역대 비밀번호 목록
구단 비밀번호 기간
태평양 돌핀스 6366677 1982~1988년
롯데 자이언츠 8888577 2001~2007년
LG 트윈스 6668587667 2003~2012년
한화 이글스 5886899678 2008~2017년
롯데 자이언츠 7A78877 2018년~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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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LG 트윈스/암흑기 (2차)
kt wiz/암흑기
롯데 자이언츠/암흑기 (1차 · 3차)
삼성 라이온즈/암흑기 (2차)
한화 이글스/암흑기 (1차)
삼청태현/암흑기
비밀번호에 대한 정보는 비밀번호(스포츠)를 참고


[1] 그러나 비밀번호라는 용례가 쓰이는 계기가 된 8888577보다 훨씬 오래 전의 기록이므로, 일반적으로 6366677 시절의 비밀번호를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다.[A] 6이 한 번 더 들어간 이유는 1985년 중 전기리그는 삼미, 후기리그는 청보가 했기 때문이다. 다만 전기와 후기 성적을 따로 계산하면 전기(삼미)는 6위, 후기(청보)는 4위를 기록했다.[3] 이 기록은 30년 넘게 지나서 2013년 한화 이글스가 팀 평균자책점 6.35를 기록하며 깨졌다. 그래도 6점대의 팀 평균자책점은 당시 삼미의 투수진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끝없이 고통 받는 한화 투수진[4] 영화 대사를 위해 일부 각색이 되긴 했지만 박현식 감독은 '슈퍼스타즈'라는 팀명을 전해듣자 진짜로 혀를 차며 저런 말을 했다고 한다.[5] 인천 출신 국가대표 선수로는 임호균김진우가 있었으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출전으로 인해 프로행이 연기된 상태였다.[6] 또 다른 썰은 구단주와 사장이 장명부에게 직접 와서 30승을 하면 1억원(저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오늘날 그 돈이 10억원 이상 된다는 말이다.)을 주겠다고 뺑끼인지 진짜인지 모르나 진짜로 30승을 달성한 장명부가 내심 기대를 했으나, 사장과 구단주는 그딴 소리 없었다라면서 빤쓰런을 시전했고 장명부가 이를 빌미 삼아 태업을 했다는 썰이 있다고 한다.[7] 당시 한 시즌 팀당 경기 수는 100경기였다.[8] 사실 30승이라는 임팩트에 가려서 그렇지 이 해 장명부의 성적은 여전히 최상위권이었다. 최동원에 이은 이닝 2위(261 2/3이닝), 탈삼진 4위(145개) 그리고 WAR 5위(투수 3위)등으로 삼미 투수진을 캐리했다. 다만 삼미가 그냥 에이스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고 리그 역사에 남을 미친 활약을 펼쳐야 겨우 "중위권" 정도 갈 팀이었딘 것이 문제였을 뿐…[9] 2020년 한화 이글스가 이 기록을 깰 뻔 했으나 타이 기록을 세우는 것에서 멈췄다.[10] 그런데 애초에 2013년 한화는 아무도 기대를 안했었다. 다만 9등을 2번 할것이라고 상상을 못한거다. 반면에 기아는 분명 5월 5일 어린이날 까지 괜찮다고 언론들도 그렇게 평했는데 이후 '''경기력을 보면 그저 환장할 지경이다.[11] 비슷한 예로 2008년부터의 우리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를 둘 수가 있겠으나 여기는 구단을 통째로 소유하는 모기업이 아니라 명명권만 구입한 경우이기 때문에 삼청태현과 동일시할 순 없다. 그러한 연유로 2021년 현재까지도 KBO 역사상 모기업이 두 번 이상 바뀐 유일한 구단이다. 다른 구단들은 모기업이 바뀌지 않았거나 한 번만 바뀌었으며, 쌍방울 레이더스-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의 경우에는 구단의 지분을 그대로 인수인계하는 방식이 아닌 해체 후 재창단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해당할 수 없다. 이 경우에는 SK-SSG의 역사만 인정된다. 그렇기에 이쪽도 모기업 1회 변경이 전부.[12] 이 5568은 노래방 곡번호로도 쓰이는데, 금영과 TJ. 둘 다 동요를 적용했다.[13] 쌍방울은 현대 유니콘스로 구단명이 바뀌었던 1996년에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14] 현대가 인천을 떠날 당시 그 자리에 들어오는 SK로부터 연고지 보상금 54억원을 받았는데 모기업이었던 하이닉스반도체가 재정난 타개라는 미명하에 이 돈을 홀랑 가져가버렸다. 이 때문에 현대는 서울 연고지 입성에 실패했고 해체될 때까지 1차지명 신인 지명권을 써먹지 못하게 됐다.[15] 구단의 모기업으로 현대전자의 후신이 된 하이닉스반도체는 2001년부터 해체가 될 때까지 유니콘스 구단에 단 한 푼의 지원금도 내놓지 않았다. 2001년 이후 7년간 어렵사리 구단이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자동차, 현대해상범현대가 형제 기업들의 지원 덕분이었다. 특히 현대해상은 다른 형제 기업의 지원 거부 이후에도 구단이 해체되던 그 순간까지 지원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이는 현대 가문 내의 유이한 야빠였던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덕분이기도 하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