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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0><colcolor=#ece5b6> 서초 초대 패왕 항적 | 項籍 | |||
출생 | BC 232년 | ||
초(楚) 팽성(彭城) 하상(下相) (現 장쑤성 숙천현(宿遷縣) 서남) | |||
사망 | BC 202년 12월 (향년 30세) | ||
서초(後楚) 오강(烏江) (現 안후이성 쑤저우 시) | |||
능묘 | 서초패왕묘(西楚霸王墓) | ||
재위 | 서초패왕 | ||
BC 206년 2월 ~ BC 202년 12월 (4년 10개월)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008000> 성 | 항(項) | |
휘 | 적(籍) | ||
자 | 우(羽) | ||
신장 | 184cm[1] | ||
묘호 | 없음 | ||
시호 | 없음 | ||
왕호 | 서초패왕(西楚霸王) | ||
국적 | 초(楚) → 진(秦) → 후초(後楚) → 서초(西楚) | ||
가족 | 조부 항연, 숙부 항량, 항백 | ||
연인 | 우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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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글이라는 것은 본래 자기 성과 이름을 쓸 줄 알면 족할 뿐입니다. 검술 역시 한 사람과 싸워 지지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둘 다 배우기는 충분치 못하니, 만인(萬人)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학문을 배우겠습니다.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고대 중국 진나라 말기의 군벌이자 초한전쟁 당시 서초를 건국한 서초(西楚)의 패왕이었다. 성은 항(項), 이름은 적(籍)으로 우(羽)는 자(字)다. 즉 본명은 '항적'이지만 본명보다는 자로 더 널리 알려져 있어 항우(項羽)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초나라 부흥 운동의 선봉장으로서 임하는 모든 전투에서 백전백승의 위업을 달성했으며, 서초를 건국하고 패왕을 자칭하며 한(漢)의 한고조 유방(劉邦)과 천하의 패권을 두고 자웅을 다투었으나, 사면초가에 몰리면서 패배 후 최후를 맞이했다.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초패왕/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평가
자세한 내용은 초패왕/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4. 여담
- 사마천의《사기》에서는 한 고조 유방에게 패배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제후를 다루는 세가나 신하와 반역자를 다루는 열전 대신 천자의 기록을 수록하는 본기에 항적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사기는 천자와 제후를 나누는 데 명분보다 실제 세력과 영향력을 중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기에서 유방 다음에 나오는 것도 명분상 천자가 아니라 태후로서 실제로 천하를 호령한 여후다.
- 그의 이름은 항적이지만 자인 항우로 훨씬 널리 알려져 있다. 조자룡, 제갈공명과 비슷한 케이스지만, 이름이 조운, 제갈량이란 건 대부분 알고 있는 것에 반해, 이쪽은 대부분이 항우가 이름이 아니란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은 항우가 죽은 오강에 와서 그를 기리는 시를 짓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권토중래.[ruby(勝敗兵家不可期, ruby=승 패 병 가 불 가 기)] 병가의 승패는 기약할 수 없으니[ruby(包羞忍恥是男兒, ruby=포 수 인 치 시 남 아)] 부끄러움을 참는 것도 사내의 일이다.[ruby(江東子弟多才俊, ruby=강 동 자 제 다 재 준)] 강동의 자제 중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았으니[ruby(捲土重來未可知, ruby=권 토 중 래 미 가 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여기에 송나라의 정치가 왕안석은 백성들을 아끼는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반박하는 답시를 남겼다. 학살자와 그가 일으킨 전쟁에 로망을 느끼는 시인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ruby(百戰疲勞壯士哀, ruby=백 전 피 로 장 사 애)] 수없이 싸워 피로함에 장사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ruby(中原一敗勢難回, ruby=중 원 일 패 세 난 회)] 중원에서 크게 패하니 대세를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되었네
[ruby(江東子弟今雖在, ruby=강 동 자 제 금 수 재)] 강동의 자제들이 지금 남아있다 하더라도
[ruby(肯與君王捲土來, ruby=긍 여 군 왕 권 토 래)] 과연 군왕과 더불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올 성 싶은가?
[ruby(中原一敗勢難回, ruby=중 원 일 패 세 난 회)] 중원에서 크게 패하니 대세를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되었네
[ruby(江東子弟今雖在, ruby=강 동 자 제 금 수 재)] 강동의 자제들이 지금 남아있다 하더라도
[ruby(肯與君王捲土來, ruby=긍 여 군 왕 권 토 래)] 과연 군왕과 더불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올 성 싶은가?
- 패왕이라는 칭호는 항우가 호칭이 필요하다고 부르자 장량이 "삼황오제, 춘추오패, 전국 9왕 같은 호칭들이 많으니 택일하십시오."라고 답하여 패와 왕을 섞어서 스스로 패왕이라 붙였다고 전한다. 이 때 범증은 춘추오패의 결말이 모두 좋지 못했다는 점과 왕 칭호의 격이 너무 낮다는 점을 들어 항우에게 다른 명칭을 권했으나 묵살당했다.[2] 그리고 범증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패왕이라는 호칭 때문에 '패'라는 글자의 의미도 어느 정도 변질이 되어서 무력적이고 강압적인 의미를 많이 띠게 되었다. [3][4]
- 삼국지의 조조에게 데꿀멍하는 민담도 있다.[5] 어느 날 조조가 항우에게 바위를 기어다니는 이를 가리키며 "공께서는 힘이 산을 뽑을 정도로 강한데 이 이를 죽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항우는 코웃음을 치며 다른 바위를 들어 이가 기어다니는 바위를 내리찍었는데 큼지막한 바위들 사이의 틈이 컸는지 이는 죽지 않고 여전히 바위 위를 기어다녔다. 이를 본 조조는 항우를 비웃으며 "천하 장사가 이만한 이도 못 잡는단 말인가!"라고 말한 후 손가락으로 이를 톡 터뜨려 죽여 버렸다. 이것을 본 항우가 기겁을 하여 조조에게 굽신댔다는 훈훈한 민담 한 토막. 실제 항우가 저 정도로 무식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우가 능력을 가지고도 그 힘을 엉뚱한 데다가 쓰기도 했던 역사적 행적을 생각하면, 이 민담은 항우와 조조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민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종종 삼국지의 최강 무장이라 꼽히는 여포와 비교를 하는 경우도 보인다. 당장 네이버에 검색에도 "항우하고 여포하고 누가 더 쎔?"이라는 초딩같은 질문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최강 논쟁은 언제나 그렇듯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중국에서의 무력 비교는 거의 대부분 항우가 기준이다. 이 때문에 삼국지에서는 그 어린 나이에 인간 병기급 활약을 보인 손책을 항우의 재래[6]라며 그의 용맹을 있는 대로 추켜세우는 묘사도 존재한다. 애초에 여포가 삼국지 최강자라는 인식은 연의가 띄워준 것이 크다. 또한 당대에 곽가도 여포의 위력이 항우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였다.[7] 중국의 용맹한 장수에 대한 묘사를 보면 거의 언제나 '그 모습과 무용이 능히 항우와 견줄 만했다'는 뜻을 가지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여포보다 '실제 역사 기록'의 항우가 훨씬 강하게 묘사된다. 팽성대전과 거록대전만 살펴보더라도 이게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무용을 자랑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무력으로 한때나마 중국 전역을 제패한 패왕과 용맹하긴 했지만 일개 군벌 내지 제후를 벗어나지 못한 여포의 비교인데 성립할 여지가 없다.아무래도 여포와의 비교는 이들이 탔던 애마때문에 생긴것이 아닐까 싶은데 여포는 적토마라는 당대의 명마와 이를 활용한 기마술이 삼국지 최강이었기에 이런 비교가 나온 것이지 마침 우연찮게 항우의 애마 오추마의색이 검은색이라서 적토마와 색대비가 되다보니 비교하기 딱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여포 역시 당대에 비할 인물이 없다는 평가를 받긴 하는데 얜 애초에 기마병 겸 활잡이가 본업이다. 항우 마냥 판타지의 영역인 장수가 아니라 살상력이 높은 기술에 능한 현실적인 장수에 가깝다. 현대에 과거 맹장에 대한 우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중국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상상할 수 있는 최강의 장수자리에는 항우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도 될 듯하다. 말 그대로 남자의 로망이 형상화되었다 볼 수 있는 것이 항우기 때문.
그래서 요절했나 보다
- 항우 장사는 바로 이 항우에게서 비롯된 단어다.
- 생전의 업보 때문인지 죽어서도 말년이 곱지 못했는데 문화대혁명 때 항우의 묘와 우희의 묘가 파헤쳐지고 석사자만 남게 되었다. 다만, 실제로 항우와 우희의 유골이 묻혀져 있는 묘는 아니다.
- 구정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중원을 상징하는 9개의 솥 구정은 하나하나가 5천근이 되기에 구정을 옯기려면 수백명의 장사가 동원되어야 했다. 이를 무시한 진나라 무왕은 신하들과 힘 자랑하다가 구정 1개에 깔려서 죽은 것에 비해 초패왕 항우는 당시 진나라에 있던 구정 8개를 양어깨로 들고 수만리 떨어진 팽성까지 들고 갔다고 한다. 5천근이 3톤이 되므로, 항우가 24톤의 무게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건 진짜 개구라다
- 특히나 단 몇만 명의 병사로 수십만 대군을 패주시키거나, 단신으로 기병 수백여 명을 썰어버리는 등 기록만 보면 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무협지의 묘사인 걸로 착각할 지경이다. 이 기록은 그의 초기의 대표적 전투인 거록대전, 그리고 화룡점정은 바로 팽성대전인데, 고작 3만의 군사로 60만 대군과 정면으로 맞붙어 초토화시키고 별다른 피해조차 없이 적군 30만 명을 일방적으로 살육한 경우는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이 팽성의 전투는 오늘날까지 전설로 전해지는 항우의 괴력과 군사적 능력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전투가 된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대의 사료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으나 춘추 필법#이라는 고대에 보기 드문 사실만을 쓰겠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신뢰성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10]
5. 대중매체에서
자세한 내용은 초패왕/기타 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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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 8척(약 184)이라는 기록이 있다.[2] 장량 역시 이를 잘 알기에 교묘히 항우가 패왕이라는 칭호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다는 말도 있다.[3] 원래 '패'는 천자인 주나라 왕을 잘 섬긴 제후에게 주었던 칭호였다.[4] 항우의 행적에서 나온 압도적 강함과 이로인한 영향으로 인해 으뜸패는 최강을 뜻하는 한자로 이미지가 굳어졌고 현재 최강의 공룡이라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중국식 이름도 패왕룡으로 로컬되어있다.[5] 조조는 항우의 사후 몇백년 뒤의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민담이니 오해 말자.[6] 소패왕, 즉 작은 패왕[7] 출처: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2289[8] 중국사 정사에서 공식 인증된 만인지적은 항우, 관우, 장비, 한세충 4명 뿐이다. 특히 관우의경우 중국사 최고의 인기인물이자 중국내에서 수천년에 걸쳐 제왕 혹은 신으로 추존되어올 정도로 만인의 우러럼을 받아온 인물인데 이정도로 관우빠인 중국인들조차 최강 혹은 무력을 논하면 항우의 손부터 들어줄 정도니 항우가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9] 진무왕도 들지 못한 8개의 청동솥 구정을 한손으로 들었다고 한다. 기록에는 9개의 솥 하나하나의 무게 무려 5천근이니 항우는 한손으로 4만근이나 되는 솥을 한손으로 들정도로 힘이 셌다.[10] 실제로 사실만을 쓰겠다는 사상이 주류가 된 나라는 고대에 매우 드물었다. 물론 호왈백만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 동네이니만큼 병력의 수 등이 뻥튀기되어 있을 확률은 염두에 둬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