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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8000><colcolor=#522142,#522142> 초(楚)나라 18대 왕 숙왕 肅王 | ||
| 성 | 미(羋) | |
| 씨 | 웅(熊) | |
| 휘 | 장(臧) | |
| 아버지 | 초도왕(楚悼王) 웅의(熊疑) |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370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381년 ~ 기원전 370년 |
1. 개요
전국시대 초나라의 제34대 군주이자 제18대 왕. 초 도왕이 죽고 그 뒤를 이었다.2. 생애
초 도왕이 죽은 뒤 오기를 미워한 초나라 귀족들이 그를 죽였는데, 오기는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기지를 발휘해 도왕의 시신 곁에 있다가 거기서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화살이 도왕의 시신에 꽂혔는데 초 숙왕이 즉위한 뒤[1] 도왕의 시체에 화살을 쏘아 맞힌 자의 일족을 멸하니 무려 70여 가구가 화를 입었다고 한다.초 숙왕 4년(기원전 377년), 초나라는 촉나라의 공격을 받아 자방[2] 땅을 잃었다. 초나라에서는 천관에서 촉군을 막아 물리쳤다.
초 숙왕 6년(기원전 375년), 위나라(魏)가 초나라와 유관에서 싸우고 노양 땅을 빼앗았다. 이때 한나라(韓)가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신정(新鄭)으로 천도했다. 한 애후 2년의 일이었다.
초 숙왕 11년(기원전 370년), 숙왕이 죽었는데 후계자를 남기지 못해 그의 동생인 웅량부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초 선왕이다.
숙왕의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으나, 2008년에 발견되어 중국 고대사에 적잖은 수정을 필요하게 한《청화간》《계년》이 그의 치세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1] 오기가 예뻐서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도왕의 시신에 함부로 화살을 쏘아 맞춘 죄를 지어 죽인 것이었다. 초 소왕 시절 오왕 합려와 그를 도운 오자서가 침공했을 때 오자서가 원수인 초 평왕의 능을 파 굴묘편시한 이후, 왕의 몸에 쇠붙이로 상처를 입히면 사형에 처하는 법이 생겨는데 오기가 이를 이용해 동귀어진을 시도한 것이었다.[2] 먼 훗날인 후한시대 여강군 송자현에 속한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