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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예니 라크(Yeni Rakı)의 모습 | 에흘리 케이프에 담긴 라크 |
1. 개요
튀르키예의 전통 술. 우조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원래 그리스인들이 만들던 술에서 발전한 형태지만 사이가 나쁜 두 나라에선 서로 자기들 술을 베꼈다고 깐다. 넓게 보면 라크와 우조, 이탈리아의 삼부카는 전부 아락을 기원으로 한다. 아르메니아도 자기가 원조라고 주장하는데 아르메니아에 대해서는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함께 깐다. 애당초 아르메니아는 브랜디가 더 유명하기도 하고.2. 설명
전통적으로 그리스와 튀르키예에서는 포도 재배가 성행했고 포도주도 마찬가지로 상당한 생산량을 자랑했다. 포도주를 만들 때는 포도껍질 같은 찌꺼기를 거르는데 이렇게 걸러낸 포도 찌꺼기를 이용해서 재양조한 뒤 이것을 다시 증류한 것이 바로 라크다. 순수한 라크는 굉장히 독하고 포도주 특유의 향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아니스 같은 다양한 향신료를 첨가해 재숙성 과정을 거친다. 향신료를 첨가한다는 것을 빼면 포메이스 브랜디 양조와 비슷하다.우조와 마찬가지로 아니스[1]가 들어가기 때문에 물을 섞으면 뿌옇게 변하는 특징이 있으며 지독한 숙취를 유발하는 것도 비슷하다. 입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막걸리처럼 계속 마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훅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튀르키예에서는 라크를 '사자의 젖'(Aslan sütü)라고 하는데 물에 탔을 때 뿌옇게 변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크는 병 안에서는 얌전하지만 일단 병 밖으로 나오면 결코 얌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갑게 마셔야 제맛이 나기 때문에 에흘리 케이프(Ehl-i keyf)라고 불리는 그릇에 담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릇은 둘레에 얼음을 담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그릇 가운데에 라크가 담긴 술잔을 놓아 두면 차가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특유의 아니스향이 매력적인 술인데 이것 때문에 호불호가 정말 크게 갈린다.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그 특유의 아니스향이 플라스틱 맛처럼 느껴진다며 냄새조차 맡는 것을 꺼린다.
그리스인들이 우조를 마실 때와 마찬가지로 튀르키예인들도 라크를 마실 때 술안주로 페타 치즈 같은 짭짤한 맛 치즈나 올리브 절임을 즐겨먹는다. 현지에서 이걸 마셔 본 한국 방송작가는 '라크는 감기약(지미콜) 맛이었고, 안주로 먹는 치즈 맛도 너무 이상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보통은 멜론, 짜고 작은 치즈와 같이 먹는다. 튀르키예 멜론은 엄청 달아서 라크를 처음 접하면 살기 위해 멜론 한 통 비우는 것쯤은 껌일 것이다.
3. 여담
- 2013년에 튀르키예의 총리 에르도안이 "우리의 전통 음료는 라크가 아니라 아이란(요구르트)[2]이다."라면서 술을 제한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정책에 따라 라크를 규제하려다가 여론과 라크 제조업체(+ 맥주를 비롯한 다른 주류 업체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럴 만도 한 게 튀르키예는 아직도 마치 한국인들이 집집마다 김치를 담가먹듯이 집집마다 손수 술을 담가먹는 문화도 있고 수준 높은 양조주와 증류주를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는 국가인지라 에르도안에게 반발하던 어느 기자가 "라크가 우리 전통 음료가 아니라면 뭐 그리스 놈들 음료인가봅니다? 어서 불매운동이라도 해야겠군요?"라고 비아냥거렸는데 이 말에 에르도안도 반박하지 못하고 "어... 절대로 그런 뜻은 아니고요..."라면서 즉시 얼버무렸다.
그랬다간 민중혁명이라도 각오해야 할 걸결국 에르도안 자신도 금주법을 만들더라도 지킬 생각은 절대로 못 하고 술을 즐겨 마신다고 자백이나 한 꼴이다. 게다가 금주법으로 라크를 금지시키면 전국적으로 에르도안만 죽어라 욕을 먹을 게 뻔한 데다 어떻게든 튀르키예인들은 몰래 술을 마실 것이다. 무엇보다 튀르키예인들이 국부로 모시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부터가 라크를 입에 달고 살던 애주가였다. 구국의 영웅이자 최고 지도자였던 아타튀르크가 값비싼 양주나 고급 증류주가 아니라 서민들이나 마시던 싸구려 술을 즐겼다는 사실 때문에 튀르키예인들이 아타튀르크를 더 존경하는 만큼 잘못 건드렸다간 아타튀르크가 나쁜 것을 마시고 그걸 국민들에게 퍼뜨렸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더더욱 건드리기 까다로운 문제다.
-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등의 슬라브권 발칸반도 국가들에는 라키야(rakija, ракија)라는 술이 있는데 라크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이쪽은 자두 등 다른 과일로도 만드는 데다 아니스를 쓰지 않으며 물을 타도 색이 변하지 않는 등 라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술이다.
- 한국인들에게는 불호가 강한 아니스 향 때문인지 매우 마이너한 축에 속한다. 심지어 담배 라크보다도 더 마이너한 수준이다. 한국에 정식 수입 판매되는 라크가 없기 때문에 해외 직구 같은 방식을 제외하면 구하기도 어려우니 무슨 맛인지 궁금하다면 비슷한 아니스 리큐르인 삼부카를 구해 보는 것이 좋다. 우조와도 맛이 비슷하지만 이쪽도 구하기 어려운 건 도긴개긴이다.
[1] 스타 아니스(팔각) 말고 미나리과 초본식물 아니스.[2] 다만 그 아이란도 원래는 고대 튀르크인들이 말젖으로 담근 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슬람화된 후 요구르트로 순화(?)되어서 그렇지 몽골에서는 아직도 아이락이란 술을 마시며 아이란과 아이락 모두 동일한 어원에서 비롯된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