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9A44,#009A44><colcolor=#fff> 국민통합추진회의 (통추) 구당과 개혁을 위한 모임 (구당모임) 통합과 개혁을 위한 모임 (통합모임) | |||||||
| 형성 | 1995년 | ||||||
| 해체 | 1997년 | ||||||
| 주요 정치인 | 김원기 노무현 제정구 김정길 이부영 박계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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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민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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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국민회의 | 한나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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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민통합추진회의는 민주당(1996년) 내 비주류 계파이며, 이기택에 반대한 인물들이 모인 단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속해 있었기에 친노의 전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2. 역사
1995년 민주당에서 동교동계가 이기택 총재와의 갈등으로 인해 분당하려는 조짐이 일었다. 그러자 동교동계의 신당 창당에 반대하지만 반이기택 성향도 가진 중도파들을 중심으로 '구당과 개혁을 위한 모임(구당모임)'이 결성되었다. # 조세형, 김원기, 노무현, 김근태, 김정길 등은 신당 창당을 반대하면서도 이기택에게 사퇴를 요구하였다.당 총재인 이기택은 동교동계와의 반목이 심해 결국 분당(새정치국민회의)에 이르렀는데, 동교동계와 갈라선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민주당은 이기택계와 구당모임으로 양분되어 갈등을 빚었다. 이들은 이기택 총재의 거취와 전당대회 관련 문제로 당권파와 다투었다. 그러다가 서로 합의하여 이기택이 다음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임시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된다.
전당대회 개최 후, 구당모임은 '통합과 개혁을 위한 모임(통합모임)'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 야권통합을 위해 통합수임기구를 구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통합모임이 이기택 쪽 세력인 '정통민주연합(정통연합)'과 위원을 각각 9명씩 총 18명으로 나누었다. 이후 민주당은 신생 정당인 개혁신당(1995년)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1995년)을 신설하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은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당 수습을 위해 임시전당대회를 거친 결과, 이기택이 당 총재로 선출되었고 당명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이에 비주류 세력들이 다시 이기택에게 반발하면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하였다. #
이들은 제15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신한국당-민주당 합당에 반대하였고, 일부는 탈당한 뒤 김대중을 지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탈당하지 않고 잔류하여 한나라당 소속이 된 인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