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8:05:19

신정사회당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파일:1px 투명.svg제11대 국회
원내 구성
''' 1981.4.11. ~ 198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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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파일:민주정의당 심볼.svg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151석
관제야당
파일:민주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82석
파일:한국국민당(1981년) 로고.svg
25석
파일:민권당 로고+상징(흰색).png
2석
파일:신정당(1981년) 금색 로고타입.svg
2석
파일:민주사회당(1981년) 선거벽보 글씨.png
2석
파일:민주농민당 선거벽보 글씨(흰색).png
1석
파일:안민당 선거벽보 글씨.png
1석
무소속
10석
재적
27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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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파일:민주정의당 심볼.svg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149석
야당
파일:민주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59석
파일:신한민주당 흰색 로고.svg
32석
파일:한국국민당(1981년) 로고.svg
24석
파일:신정사회당 선거벽보 글씨.png
1석
무소속
6석
재적
27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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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진보정당
제1공화국 ~ 노태우 정부
(1948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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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이전
독립노농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민주주의독립전선 민주독립당 민족자주연맹
와해 소멸
진보당 민주혁신당
등록취소
사회대중당
사회대중당 혁신당 통일사회당*
강제해산 (5.16 군사정변)
대중당 통일사회당
정당활동 금지 (10월 유신)
통일사회당
정당활동 금지 (5.17 내란)
사회당 신정당 민주사회당
신정사회당
사회민주당
정당등록취소 민중의 당
민중당
* 사회대중당 창당준비위원회의 다수파가 통일사회당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셨으나 곧 해산됨.
노태우 정부 이후 }}}}}}}}}


파일:신정사회당 선거벽보 글씨.png
신정사회당
창당일1982년 3월 29일
해산일1985년 3월 1일
총재고정훈
당 색
주홍색 (#FF4500)
이념 민주사회주의
진보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좌파~좌익
선행조직

파일:신정당(1981년) 금색 로고타입.svg
,

1. 개요2. 신정당과 통합3. 합당 이후4.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참패와 그 이후5. 역대 지도부6. 상징

[clearfix]

1. 개요

고정훈이 결성한 '민주사회당'과 김갑수가 결성한 '신정당'이 합당하여 1982년 세워진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정당. 약칭은 신사당이었으며, 언론에서는 약칭만 쓰는 경우도 많았다.

2. 신정당과 통합

사회당과의 통합이 무산된 민주사회당은 1981년 6월 29일 신정당의 김갑수 총재의 합당제의를 받게 된다. 다음날 낮 민주사회당의 고정훈 당수는 신정당, 민주농민당, 안민당의 대표와 함께 합당문제를 논의하였다. 1982년 1월 8일 민주사회당 백찬기 부당수는 신정당 이원형 사무총장과 만나 합당 조건과 신당의 명칭, 당헌의 제정에 대해 논의하였다. 1982년 3월 29일 민주사회당과 신정당의 수권위원들은 세실 레스토랑에서 수임기관합동회의를 가지고 통합정당 신정사회당의 출범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통합한다 한들 어디까지나 체제내에서의 진보정당이었기 때문에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이끌던 진보성향 운동가들이나 유권자들에게 야합정당이라며 비난받던 상황이었고 당연히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끌여올릴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지지기반 확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3. 합당 이후

1982년 3월 24일 신정당 이대엽 부총재와 4명의 지구당 위원장이 합당에 반대해 탈당하였다. 이대엽 의원은 신정당 주도 통합이 아니라 민주사회당의 당세만 확장시키는 합당에 반대한다며 탈당 이유를 밝혔다.

1984년 당내 내분이 존재했다.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정훈파와 김갑수파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지구당 위원장을 누굴 임명할 것 가지고 지분 싸움을 한 것이다. #

4.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참패와 그 이후

결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총재 고정훈 본인조차 낙선하고, 전남 지역에서 김봉호 의원 1석밖에 얻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나마 이렇게 당선된 김봉호 의원이 혁신운동 경력이 있던 사람도 아니고, 전직 민주공화당 의원 출신으로 여러 당을 전전하며 공천을 받으려다가 간신히 신정사회당 간판 걸고 나와 당선된 터라... #[1] 이에 총재 고정훈이 사퇴했고, 권대복이 대표직을 이어받았다. 나중에는 당선된 김봉호 의원마저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으로 이적함으로써 원내정당 지위를 잃고 만다.[2]

결국 1986년 사회민주당에 흡수되었다.

5. 역대 지도부

파일:신정사회당 선거벽보 글씨.png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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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고정훈
제2대
권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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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상징

# 84년 고정훈 총재의 연두기자회견 사진에서 드러나오는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로고에서 장미꽃을 무궁화로 바꾼 모습임을 알 수 있다.


[1] 그래서인지 13대 총선에서 신정사회당 출신 인사 중 다수가 신민주공화당 간판으로 출마했다.[2] 김봉호 의원은 이후 동일 지역구에서 3선을 더해서 5선의원으로 국회부의장까지 지냈으니 나름 성공적인 부활 사례라고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