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0:26:22

어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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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과 표기3. 역사4. 관련 인물5. 아사신파가 암살/시도한 주요 인물6. 대중매체
6.1. 고르고136.2. 기타 고유명사

1. 개요

중세 시아파극단주의 암살 조직.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3세기 후반 마르코 폴로의 '산지 노인' 기록에 의하면 '해시시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단어 '하샤신(حشّاشين)'에서 유래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마르코 폴로가 묘사한 것과 같은 정원의 유적은 페르시아나 시리아의 니자리파 요새들 중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약쟁이 살인마들이라는 이미지도 14세기 이후에나 유명해진 것이고 12세기 십자군과 무슬림들의 기록에서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 인내심이 강한 전문 암살자들로 묘사된다.[1]

이제는 암살자란 뜻으로 일반명사화된 '어쌔신'이지만, 이것은 조직명이기 때문에 실제 어쌔신 내에서 암살을 실행하는 자들은 피다이(فدائي)라고 불렸다. 직역하면 '희생'. 엄밀히는 '(신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자'라는 뜻으로, 광신과 함께 지도자를 향한 충성과 헌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뜻을 가졌기 때문에 현대의 이슬람 테러조직 내에서는 자살 테러 실행 대원들을 피다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9.11 실행범들도 알카에다 내에서는 피다이다.

피다이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단검으로 표적을 살해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이는 정치적 과시가 주요한 목적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날의 테러리즘과 흡사한 양상이다. 특히 십자군 전쟁몽골 제국의 중동 침략 과정에서 암살단으로 활동하면서 역사 속에 악명을 떨쳤다.

조직 자체는 살아남아서 맘루크 왕조의 직속 암살단으로 남았으며 이란에 남아 있던 이맘의 후손들은 19세기 인도로 이주하여 아가 칸 세력으로 현존한다. 현재는 수백년간 타지에서 고생하며 암살은커녕 상식과 지식을 지향하는 사람들로 바뀐 지 오래다.

2. 어원과 표기

원어인 페르시아어로는 아사신(حشیشیان‎)이라고 표기하며 기원인 아랍어로는 하샤신(حشّاشين‎)이라고 한다. 화려한 암살 행적으로 암살자의 대명사가 되어 1276년 페르시아 지방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를 통해 이 말이 유럽에 흘러들어가 어쌔신(Assassin)을 탄생시켰고 그것이 영어로 유입되었으며 결국 아예 암살자를 이르는 말로 일반명사화되었다.[2]

나무위키는 대중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이 문서의 제목은 어쌔신으로 한다. 나무위키에서는 ①정발명 ②범용성 ③외래어 표기법 순으로 우선하는 원칙에 따라 디아블로 2어쎄신(정발명)을 제외한 Assassin의 일반 문서는 어쌔신으로 문서명을 정했다.[3] 보통명사 assassin은 표기법을 따르면 어새슨 또는 어새신이 된다.

3. 역사

본래 이슬람 시아파 중 이스마일파에서 갈라져 나온 니자리파의 신도들이었다. 중세 초 발흥한 이스마일파는 북아프리카에서는 파티마 왕조를 세우고 이슬람 제국의 곡창지대였던 이집트를 정복하지만 피지배층 주민들[4]을 이스마일파로 대거 개종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파티마 왕조는 이에 중동과 중앙아시아 각지로 선교사들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이른바 순결 형제단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이스마일파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순결 형제단 시절까지만 해도 니자리파는 암살 대신 계몽 활동이나 과학, 의학 활동에 전념하는 지식인 집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동을 장악한 셀주크 제국의 재상 니잠 알 물크가 중동 전역이 이스마일파를 이유 불문 탄압하면서 순결 형제단이 밀려나게 되자 중동과 중앙아시아 이스마일파 신도들은 극단적인 유혈 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하여 1090년 하산 사바흐의 인도 아래 現 이란의 다이람산에 알라무트 요새를 건설하고 암살자 집단(Al Assas)을 만들었다. 대중매체에서는 어쌔신이 보통 엄청난 암살 기술을 가진 전투집단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이들이 사용한 방식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니자리파는 교단 차원에서 어릴 때부터 정예 요원들을 길러냈으며 이들이 사용한 무기는 종교적 광신, 어학 능력과 교양, 그리고 용의주도한 인내심이었다고 한다.[5] 수많은 민족이 뒤섞여 때로는 교류하고 때로는 갈등하던 중세 중동에서 어학능력이 출중하고 타 민족의 관습에 박식한 이들이 유력 인사의 하인으로 고용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렇게 잠재적 표적인 유력 인사들의 곁에서 잠복하고 있던 니자리파 요원들은 지령이 떨어지면 오랜 시간을 들여 때를 엿보다 기회가 왔을 때 암살을 수행했다. 대단한 암살 기술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는데 암살자의 생환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교단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희생하는 종교적 광신성이 그 자리를 메웠다. 자살폭탄 테러가 테러리스트의 탈출을 전제로 한 일반적인 폭탄 테러보다 훨씬 단순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것을 떠올리면 쉽다.

4대 지도자 하산 앗 살람부터 이맘을 칭했으며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하고 여러 지도자들에 대해 암살을 기획하였다. 동시에 학자들을 후원하여 문화적으로 융성하였다. 알라무트 어쌔신 군주 무함마드 3세 때 시리아 어쌔신의 지도자 라시드 앗 딘 시난이 분리 독립했다. 13세기 들어서는 압바스 왕조와 타협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1257년 몽골군의 공격으로 이란 북부의 본부는 멸망하였고 시리아 산지의 지부 역시 1273년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에게 항복하였다.

유발 하라리의 책 '대담한 작전'에 따르면 니자리파는 하람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물론 여색을 밝히거나 신앙을 숨기는 것을 정당화[6]하고 심지어 때로는 이를 권장하는 등 일반 이슬람 규범과 매우 이질적인 교리를 가졌는데 이것이 하샤신이라는 멸칭이 붙은 원인이라고 한다. 이런 은밀함은 니자리파가 암살로 유명해진 이유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바르톨의 '알라무트'라는 소설은 아예 하산 사바흐와 하샤신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니자리 이스마일파라고도 부른다. 어쌔신은 페르시아의 어쌔신과 시리아의 어쌔신으로 나뉜다.

파일:external/static.flickr.com/1346123536_f0939e8cbf.jpg파일:attachment/a0080834_50d6b0ef07a2b.jpg

참고로 시리아 어쌔신의 근거지였던 마시아프(Masyaf) 성은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어쌔신 크리드의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매우 유명해졌다.

십자군 전쟁과 함께 이들의 암살 대상에는 유럽인들도 포함되었고 살라흐 앗 딘도 주요 암살 대상이었다. 당시 시리아 어쌔신의 지도자였던 라시드 앗 딘 시난은 최초로 '산중 노인'의 이름으로 언급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7] 수차례 암살 위협을 당한 살라딘은 분노하여 여러 번 그들의 시리아 거점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살라딘이 잠자는 막사에 어떤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독이 든 과자와 '당신은 우리 손 안에 있다'라는 메모를 두고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는데 이는 어쌔신들 스스로 남긴 몇 안 되는 기록 중 하나라서 신빙성이 낮다.[8] 실제로 몇 차례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모두 경비병들에게 저지, 살해당했다.[9]

무슬림이었지만 때로는 이익을 위해 침략자인 유럽인들과 연합하기도 했다. 애초에 누르 앗 딘과 살라흐 앗 딘 이래 중동의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가 대세를 이뤘기 때문에 같은 무슬림이라고 해 봤자 별 의미가 없다. 이들은 서로를 프랑크인들보다 더 싫어했다. 심지어 일부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고려하기까지 했다. 이는 성전기사단의 방해로 결국 실패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10] 그처럼 암살로 악명 높은 집단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득보다 손해가 크다고 여겼을 수 있다.

이런 과거가 있어서인지 이슬람 테러 당시 어느 기자가 이들을 어쌔신에 비유하자 그런 놈들과 비교하지 말라며 분을 냈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게 한때는 엄청난 위세를 자랑했으나 이미 살라흐 앗 딘 시대쯤에는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왜냐하면 하도 막장짓을 많이 저지르고 다녀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물론 같은 이슬람인 수니파, 시아파 할 것 없이 만인의 증오와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이들도 사람이니 왕성한 활동을 위해서는 , , 사람 등이 필요한데 이것들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알라무트에서 자기네들끼리 조용히 살게 되었다.

수백년에 걸쳐 행한 암살과 수많은 어그로로 인해 많은 적들을 만들었지만 견고한 천연요새를 방패로 농성해 버티고 장기인 암살로 적군의 사령관 등 지휘관들만 죽여 반격을 가해 침입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중세의 군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세 군대는 오늘날의 군대처럼 지휘관 유고 상황이 돼도 차상급자가 지휘권을 인수해 계속 작전을 수행하는 견고한 관료제적 조직이 아니라 혈통, 가문과 주종관계, 카리스마 같은 개인적 특질로 하급자들의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내야 통제할 수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그 중핵인 최고 지휘관을 살해하는 게 원정을 흐지부지시키는 특효약이었다. 얼마나 잘 먹혔는지 심지어 세말리크샤 1세의 어쌔신 정벌군도 막아내고 후에는 수 차례에 걸쳐 칼리파술탄의 군대도 막아내는 위세를 떨쳤을 정도다. 결국 아시아유럽을 무대로 최강대국의 길을 걷는 몽골 제국에게는 짓밟히고 말았지만. 중동 최초 테러조직, '아사신'은 어떻게 사라졌을까?

1200년훌라구[11]가 이끄는 중동 원정군이 당도해 아사신파를 공격했으며 아사신파도 암살을 시도해 반격했으나 이전처럼 잘 되지 않았다. 실제로 몽골군의 천호장과 백호장 몇명이 습격당해 암살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아사신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고[12] 오히려 암살자들이 빠른 기동력과 엄청난 실전경험, 은밀하고 교묘한 추적술을 사용해 저승의 귀신들(타르타로스)이라는 이명까지 가진 몽골의 척후대에게 뒤를 잡혀 본거지를 들켜 버렸다.

이후 몽골군은 차례차례 어쌔신의 요새를 격파하며 마침내 최초로 1256년 12월 5일에 아사신파의 본거지인 알라무트를 점령했다. '죽음이 우리를 낙원으로 이끈다'는 믿음 아래 어쌔신 광신도들이 요새를 되찾기 위해 항전했으나 결국 실패하였고, 알라무트 요새는 광신도들의 시신으로 뒤덮여져 한동안 시체 뜯어먹는 까마귀 소리가 멎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 몽골의 공격으로 인해 알라무트의 도서관이 불에 타버리는데 이 와중에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인 나시르 앗 딘 알 투시라는 인물이 자신은 천문학자로 영험한 점쟁이이며[13]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하다고 설득하여 도서관 장서 상당수를[14] 구하는 데 성공하였다. 알라무트 요새는 몽골의 영향인지[15]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알라무트가 함락될 때 성채에 있던 무와팍크 알다울라와 그 아들 이마드 알다울라, 라이스 알다울라 형제, 그리고 이마드의 아들인 라시드 이렇게 3대 일가가 함께 성채를 내려왔는데 유대인이었던 라시드는 훗날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라시드 웃 딘(Rashīd u’d-Dīn Fadu’llāh)이라고 불리며 일 칸국의 재상 자리에까지 올랐고 일 칸국을 비롯한 몽골-투르크중국동유럽 제민족의 역사를 모아 집사(集史)라는 이름의 역사서로 편찬했다. 이 책은 ‘최초의 세계사’라는 평을 받으며 몽골 제국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1급 사료의 하나로 꼽힌다.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으니[16] 관심있는 사람은 읽어 보면 좋다.

1273년 시리아의 마시아프 지부가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에게 깡그리 쓸려 버렸는데 이때 시리아 어쌔신들은 맘루크 왕조에게 충성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고 이들이 암살 비용을 술탄과 흥정했다는 기록이 14세기에 있으며, 다른 공식적인 역사 기록 속에서는 사라졌으나 이후에도 한동안 권력자들에게 붙어서 생존했다.

페르시아 어쌔신들 중에서는 니자리파가 분열해 무함마드 샤히와 카심 샤히의 혈동으로 나뉘다가 무함마드 샤히 계열의 이맘이 19세기 말에 혈통을 남기지 않고 인도에서 사망하면서 이들의 대다수는 카심 샤히 혈통만 남아 현재는 29대 이맘 아가 칸 4세가 아사신파의 이맘 직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사신파들은 현재도 미미하게 남아 있다. 행여나 아사신파가 남아 있다고 해서 옛날처럼 암살자 양성소 분위기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 명시하지만 아가 칸 4세를 따르는 이들은 이슬람 시아파에 속한 이스마일파 산하의 니자리파이며 하샤신파 신도들, 즉 옛 어쌔신들은 1095년에 니자리파와 흡수, 합병되는 식으로 교리를 하나로 뭉친 것이다. 현대의 니자리파는 전 세계적으로 1천 5백만 명이 믿는 종교적 분파다.

이맘 아가 칸 4세이맘이지만 동시에 아일랜드, 프랑스에서 최상위급 규모의 경마장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 국적의 사업가다.[17] 지금 와서 "요새도 암살하십니까?" 라고 물으면 어이없어하면서 "시리아에나 가보쇼."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크다.

칸은 세속주의 무슬림으로, 이슬람 세계의 문맹 퇴치와 성평등주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파키스탄 훈자에 '아가 칸 여학교'를 세워 소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덕분에 훈자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지방이며 30세 이하 남녀의 문해율은 100%에 가깝다. 아가 칸 재단은 훈자의 도로 포장, 병원, 상수도 정비, 유적 복원을 지원한다. "아들과 딸이 있다면 딸을 먼저 교육시켜라. 그녀가 나머지 가족들을 가르칠 테니까."라는 것이 아가 칸의 지론이다. 아가 칸은 시아파 무슬림이지만 예언자 무함마드를 본받되 맹목적 믿음에 빠지지 말고 이성으로 그의 가르침을 되새길 것을 권장하며 타인의 문화와 종교를 멸시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영토 없는 군주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터이다. 오늘날의 어쌔신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암살 대상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진 기아, 문맹, 성차별주의, 극단주의라는 악폐습이다. 역마살이 낀 채 타지에서 타지로 옮겨다니며 몇백년간 고생하다 보니 중세에 오늘날의 IS 같이 악명을 떨치던 사람들이 180도 갱생한 사례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 채웠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도덕의 계보학>에서 기존 사회의 정의에 따르지 않고[18] 자신의 의지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초인'[19] 대해서 말했는데 그 중에서도 어쌔신을 좋은 예로 지목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암살단 묘사는 여기서 따 온 것이다.

4. 관련 인물

알라무트 아사신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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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사신파가 암살/시도한 주요 인물

  • 니잠 알 물크 (1092년): 아사신파에게 암살당한 것이 맞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셀주크 제국의 와지르(재상). 20년 동안 셀주크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페르시아인이자 문관 출신이라는 한계[20]에도 불구하고 술탄 말리크샤 1세를 능가하는 권세를 누린 인물이다. 니잠 알 물크가 살해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리크샤 1세도 병으로 죽었고, 이후 셀주크 제국은 후계자 다툼과 내분으로 붕괴되었다. 물론 니잠 알 물크가 죽을 당시 70대의 고령이었으며 이후 제국이 쇠퇴한 원인은 그의 개인적인 권력과는 큰 관련이 없는 문제이지만, 만약 그가 아사신파에게 암살당한 것이 맞다면 아사신파가 암살한 인물들 중 가장 거물이라 할 만하다.
  • 이맘 아불 마하신 루야니 (1108년)
  • 알 아프달 샤한샤 (1122년): 파티마 왕조의 와지르. 아르메니아 출신 맘루크의 아들로, 1차 십자군 당시 실질적으로 이집트를 지배하던 인물이었다. 시아파(그중에서도 이스마일파)의 최대 종주였던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를 실권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사신파의 분노를 산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가 실제로 아사신파에게 암살당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 아부 하라위 (1123년)
  • 이븐 알 카샤브 (1124년):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카디(이슬람 율법 재판관)로, 십자군에 맞서 싸우는 지하드를 주창한 최초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다. 알레포의 셀주크계 영주가 죽은 뒤 실질적으로 알레포를 다스리면서 아사신파를 탄압해 원한을 샀다.
  • 레몽 2세 (1152년): 십자군 출신 트리폴리 백작. 아마도 구호기사단을 지원한 것 때문에 원한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 콘라드 1세(몬페라토의 코라도) (1192년): 이탈리아 몬페라토 출신의 귀족이자 이후 몬페라토 후작. 하틴 전투 이후 아이유브 왕조예루살렘 왕국 전역을 석권하는 동안 주요 도시인 티레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두 차례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이후 명목상의 왕인 기 드 뤼지냥를 디스하며 왕위를 노렸고, 예루살렘의 공주인 이자벨라와 결혼한 뒤 예루살렘 왕 직위에 올랐지만 일주일 뒤 아사신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 몽포트의 필리프 1세
  • 고르 왕조의 술탄 무함마드
  • 살라흐 앗 딘도 수차례 어쌔신의 암살 위협을 넘긴다.
  • 에드워드 1세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다가 어쌔신의 습격을 받았으나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젔다.

6. 대중매체

역사 속 어쌔신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단순한 암살자는 암살자 문서를 참조해 주십시오
워낙 신비스럽고 매력적인 소재이다보니 영화, 소설, 게임, 만화 등지에서 관련 묘사가 많았다.

6.1. 고르고13

고르고13 30권의 에피소드에서 유서깊은 암살 교단이라는 설정으로 나오지만, 터키 중장 압둘 무하마드 암살을 여섯 차례나 실패하면서 조직 내부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이에 단원 중 한명이 자신들의 암살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초일류 암살자에게 압둘 무하마드 암살을 의뢰하고 그 방식을 지켜보면서 세계에 통용되는 암살 기술을 익히기로 한다. 그 결과 고르고13에게 의뢰하지만, 고르고13이 이를 거절하자, 의뢰를 하되 자신들이 몰래 고르고13의 암살 방식을 보기로 한다. 하지만 고르고13은 이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압둘 무하마드 암살을 완수한다.[21] 압둘 무하마드는 제거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암살 방식의 문제점은 알지 못했고, 고르고13에게 의뢰를 건의했던 단원은 자신이 직접 고르고13을 노려 암살 방식을 알아내려 비행기 화장실에서 기습하지만 고르고13은 미리 알아낸 듯 대응하며 실패하고 만다. 자신의 기습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묻자 고르고13은 해시시 냄새 때문이라고 답한다. 자신들의 문제점이 전통 무기 재료인 해시시 냄새가 원인이었다는 점에 단원은 놀랐고, 암살 방식의 문제점을 알려준 고르고13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어쌔신 교단 만세라고 외치며 자결한다.

6.2. 기타 고유명사



[1] 물론 현대 첩보물의 암살자 캐릭터들이 대부분 골초인 것처럼 암살 기도 시의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해시시를 복용했을 수는 있지만 일단 고고학적으로 이 사실이 증명된 바는 없다.[2] 일단 Professional Killer 같은 용어도 있기는 하지만 이쪽은 살인 청부업자의 성격이 더 강하다.[3] 2015년 11월 1일 구글 검색에 따르면 "어쌔신" 1,980,000건, "아사신" 722,000건, "어쎄신" 352,000건, "어새신" 292,000건, "어세신" 201,000건, "어새슨" 1,380건 순이다.[4] 당시 이집트에는 수니파와 콥트교가 반반 섞여 있었다.[5] 어학능력과 교양은 상술된 순결 형제단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전수받게 되었다.[6] 박해를 앞두고 종교를 숨기는 것을 이슬람에선 타끼야(현명함)라고 한다. 니자리파가 활동하던 시기는 신앙을 꺾지 않고 순교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든 무슬림 사회에서든 매우 명예롭고 고결한 일로 받아들여지던 중세다.[7] 라틴어로는 Vetulus de Montanis, 아랍어로는 Shaykh al Jabal로 기록되어 있다.[8] 상식적으로 그런 게 가능할 정도로 살라딘에게 가까이 갔으면 그냥 칼침을 놓고 끝냈겠지 편지만 남기고 마는 찌질한 짓거리로 멈췄을 리가 없다. 즉, 어쌔신들 스스로가 남긴 자작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전승으로는 살라딘이 자신의 심복 두 사람만 데리고 산중노인을 만난 자리에서 어쌔신에 대한 진압을 경고하는 살라딘에게 산중노인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어떻게 할 수도 있다며 살라딘의 심복에게 눈짓을 하자 심복이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라며 대번에 칼을 빼어 살라딘을 겨누었고 살라딘이 식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9] 이후에 누르 앗 딘 계열의 살라흐 앗 딘의 정적들이 차례차례 타이밍 좋게 죽어나가자 개중에서는 살라흐 앗 딘이 어쌔신들과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 정복 후 토사구팽했다는 카더라설도 존재하기는 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10] 실제 성전기사단은 미디어에 묘사되는 것처럼 꽉 막힌 광신도 집단은 아니었다.[11] 칭기즈 칸의 손자로 일 칸국의 초대 칸이다.[12] 무엇보다 몽골군이 관료제를 갖추었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했다. 즉, 백호장을 죽여도 그저 부하들 중 한명이 승진해 뒤를 잇는 식.[13] 중세 일반 대중들은 천문학자들을 점쟁이로 생각했다. 동양에서도 이런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데 역술인들이 주역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생각해 보자.[14] 이스마일파 교리에 관련한 책들보다는 천문학, 의학, 과학, 철학서 등이 더 많았다.[15] 몽골에 의해 갈려나간 도시들은 상당히 많다. 사마르칸드바그다드, 부하라는 몽골에 함락되고 파괴된 뒤에도 어느 정도 살아남아 이어졌지만 그것은 운이 좋은 희귀한 케이스에 속했고 대부분의 도시들은 지금까지도 황량한 사막 벌판으로 남아 있다.[16] 번역자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17] 아가 칸 4세의 조부 아가 칸 3세는 현대 경마계에도 이름을 남겼는데 현대 경주마 혈통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씨수말 나스룰라의 브리더이자 마주였다.[18] 니체는 교회나 사회에서 말하는 정의에 대해서, 스스로 가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순종만 하면서 따르는 이를 '노예(Slave)'로 묘사했다.[19] 반대로 이들은 노예에 대항하는 의미인 '주인(Master)'으로 묘사를 했는데,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의 의지로 개척할 수 있는 인간이다.[20] 셀주크 제국은 페르시아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페르시아인 학자와 문관들을 매우 중용했으나, 그들의 위상이 실제 칼자루를 쥔 쪽인 튀르크인 군인들과 같을 수는 없었다.[21] 열병식 참가 군인으로 위장해 잡입한 뒤 손을 앞으로 뻗는 경례를 하면서 옷소매 안쪽에 숨겨둔 무기를 발사해서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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