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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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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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등번호 59번 | ||||||||||||||||||||||||||||||||||||||||||||||||||||||||||||||||||||||||||||||||||||||||||||||||||||||||||||||||||||||||||||||||||||||||||||||||||||||||||||||||||||||||||||
백창수 (2008) | → | <colbgcolor=#000> 정성훈 (2009~2010) | → | 신재웅 (2011~2015.7.23.) | |||||||||||||||||||||||||||||||||||||||||||||||||||||||||||||||||||||||||||||||||||||||||||||||||||||||||||||||||||||||||||||||||||||||||||||||||||||||||||||||||||||||||
LG 트윈스 등번호 16번 | |||||||||||||||||||||||||||||||||||||||||||||||||||||||||||||||||||||||||||||||||||||||||||||||||||||||||||||||||||||||||||||||||||||||||||||||||||||||||||||||||||||||||||||
이재영 (2008.6.3.~2010.7.27.) | → | 정성훈 (2011~2017) | → | 박지규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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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No.16 |
정성훈 鄭成勳 | Jeong Seong-Hoon 2009~2017 |
1. 개요
전 야구선수 정성훈의 LG 트윈스 시절 커리어를 담은 문서.2. 2009 시즌
LG의 3루는 본래 한대화, 송구홍 등이 지키며 탄탄했던 포지션이지만,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이종열만이 준수한 수비와 그냥저냥의 타격으로 자리를 지켜왔고[1] 기대주인 김상현은 2군 활약에 비해 미미한 공격력과 잇따른 수비 실책으로 실망감을 안겨주며 눈 밖에 났고, 박기남이나 김태완은 수비에 비해 타격이 약해 주전으로 쓰기는 무리여서 사실상 정성훈이 3루에 무혈입성하게 된다.LG에 합류한 첫 시즌인 2009년, 3할대의 타율과 안정적인 3루 수비로 FA의 성공사례로 남는다. 최종 성적은 121경기 0.301 126안타 10홈런 70타점 5도루. 3루에서 정성훈이 정착함에 따라 본래 3루의 주인이었던 김상현은 준수한 3루 백업인 박기남과 패키지로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페넌트레이스 MVP와 홈런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LG로서는 김상현이 약 8년간 LG에 있으면서 보여주길 바랐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KIA에서 폭발한 것이 억울할 판에 정성훈마저 먹튀로 남았다면 분통이 터질 일이었으니 그나마 다행. [2]
3. 2010 시즌
시즌 초 타격감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2할대 중반을 마크했다. 수비에서도 기록된 실책수는 현재 2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에러성 플레이가 자주 터져나오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7월 21일까지 타율 0.277, 73안타 4홈런 35타점을 기록중이며 어찌저찌 2010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다만 병살타가 12개(리그 공동 6위). 그 위로 발 느린 장돈건과 홍성흔, 강민호, 잉금님 등이 포진해 있는 걸 보면 보통 수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실책은 6개를 기록 중이며, 간혹 나오는 정줄놓은 수비 덕분에 가뜩이나 오지환의 돌 글러브질이 불안한 LG팬들은 3-유간으로 가는 타구만 나오면 일단 포기한다. 현대 시절 정성훈-박진만의 3-유간을 떠올려 본다면 참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밖에...
올스타전 이후에도 타격 슬럼프를 보이다가 막판 페이스를 찾았으나 너무 늦게 찾았다. 결국 0.263 96안타 4홈런 38타점으로 시즌 마무리.
4. 2011 시즌
등번호를 원래 쓰던 16번으로 바꿨다.3할대 중반 가까이까지 갔다가 2할대 중반까지 떨어진 이대형이 폭풍까임을 당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정성훈도 지난 시즌 상당히 많이 까여야 할 상황이었다. 3루수 포지션의 선수로써는 겨우 4홈런 밖에 못친 것이 가장 까일거리였고 0.263 의 타율도 그랬다.
그러나 10일까지의 경기만 놓고 봤을 때는 다시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타석에서의 집중력이 살아났다는게 가장 중요한 점이다.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이다. 장타력만 조금 더 발휘해준다면...[3]
15일까지 평균 수준의 실력을 보이고 있고 LG의 내야진 안정에 큰 공헌을 하고 있지만 0.257의 타율이 불만이고 아직 장타가 없다. 더군다나 15일 경기에서 환상적인 송구로 벤자민 주키치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했다.
6월 5일 롯데전에서 실책으로 3점을 내줬다.
6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3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볼넷을 기록하면서 좋은 활약을 했고 6월 들어서 방망이가 불을 뿜고 있다. 21일 활약으로 타율도 3할대로 올랐다. 더불어 개그신도 두 번이나 연출했다. 한 번은 슬라이딩하다 눈에 흙이 들어갔는데 트레이너가 뛰어오자 괜찮아 하면서 손사래를 쳤는데 모르고보면 빨리 와달라는 걸로 보였고 두 번째는 권영철 심판에게 개그성 묵념항의를 했다.
6월부터 맹타를 치기 시작해서 7월 9일 현재 타율 5위에 올라왔다. 2010년엔 정성홍어라고 불리며 엄청나게 까였지만 현재는 똘느님까지 격상.
7월 12일 SK전에서 2루타를 때려내며 팀의 결승점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직후, 꼬리뼈의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고 말았다. 10일 기아전에서의 부상이라고 한다. 네이버 중계창에서는 정성훈의 2루타 후 교체되고 나서 득점이 난 걸 꼬리뼈 타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웨스턴이 4: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10회말 오승환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날리며 웨스턴의 승리에 일조했다. 다만 그 후에 큰 이병규가 끝내기 안타를 날리며 묻힌 감이 있다.
9월 8일 쓰리런을 쳐내 벤자민 주키치의 패전을 막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5. 2012 시즌
자세한 내용은 정성훈/선수 경력/201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그래도 투고타저 시즌에 3루를 안정적으로 맡았고 타율 대비 1할이 높은 출루율을 기록한 것에서 보이듯이 수준급 선구안을, 동시에 OPS 0.9 이상을 찍어주는등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했다고 볼수있다.[4] 특히 WAR은 5.5를 찍으며 커리어 하이.
6. 2차 FA
2012시즌을 마치게 되면서 FA 4년 계약이 모두 종료되었고, 이에 같이 FA로 LG에 합류한 이진영과 함께 두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김주찬과 더불어서 2012년 스토브 리그의 FA 시장에서 최대어로 뽑히게 되었다.김기태 감독이 직접 나서 내부 FA인 이진영과 정성훈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고, LG 구단 역시 단장이 나서 두 선수를 잔류시키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지만 정성훈을 노리는 구단도 굉장히 많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비록 첫 번째 FA도 아니고 나이도 33세로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리그 정상급 3루수인데다가 공수 양면에서 기대해 볼 만한 선수였기 때문에 충분히 수요가 나올 만한 상황.
우선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에서 전력 보강을 위해 노릴 가능성이 컸으며[5], 한화 이글스에 새로 부임했던 김응용 감독[6] 역시 FA 보강을 요청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성훈을 원할 확률이 컸다.[7] 마찬가지로 이범호의 부상 장기화 등으로 3루에 공백이 생긴 친정 팀 KIA 타이거즈 역시 정성훈을 노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FA에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전년도의 FA 시장에서의 내부 단속을 실패한 LG 트윈스였기 때문에 정성훈과 이진영의 잔류에 더욱더 사활을 걸었고, FA 우선협상기간이 시작된 뒤 사흘 만인 11월 12일, 같이 FA를 선언한 이진영과 4년간 총액 34억 원에 재계약하면서 4년 더 LG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많은 LG 팬들은 한 시름 덜었다. 못해도 10억 원은 더 받을 수 있던 걸 고려하면 의리로 남은 듯. 여담으로 FA 재계약 당일 이진영과 함께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날이었는데, 훈련이 끝나자마자 LG 구단의 연락을 받고 예비군 군복을 그대로 입은 채(...) 사무실로 들어가 첫 협상 테이블을 차렸고, 첫 만남 1시간 만에 속전속결로 계약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7. 2013 시즌
자세한 내용은 정성훈/선수 경력/201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8. 2014 시즌
자세한 내용은 정성훈/선수 경력/201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9. 2015 시즌
자세한 내용은 정성훈/선수 경력/201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10. 2016 시즌
자세한 내용은 정성훈/선수 경력/201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11. 3차 FA
2016 시즌 종료 후 세 번째 FA를 맞이하였으나, 계약기간을 두고 구단과 장기적인 기싸움을 해왔고, 결국 2017년 1월 24일 1년 7억원 계약을 체결하면서 잔류했다.다수의 LG 팬들은 1+1 형태로라도 2년은 맞춰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여론이 대세였으나 결국 단년 계약에 그쳤다. 오랫동안 팀에서 준수한 활약을 해오며 준 프랜차이즈 취급을 받는 그에게 너무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이다. 특히 같은 LG입단 동기인 이진영은 KT가 총액 15억원으로 2년 계약을 체결해주었기에 더욱 비교된다.
12. 2017 시즌
시즌 전엔 젊은 선수들과 1루수 포지션을 놓고 경쟁이 예상됐으나 서상우는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고 양석환은 히메네스가 빠진 자리를 메꾸러 3루수로 출장하게 되어 1루수로 출장하고 있다.요즘은 박용택 대신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있기도 하다.
6월부터 7월까지 각종 기록들을 쏟아내고 있다. 6월 14일 개인통산 7000타수 (역대 세 번째)[8], 6월 25일 개인통산 1000득점 (역대 11번째), 7월 23일 개인통산 3000루타 (역대 11번째)를 기록했다. 하지만 6월 14일 두산전 외에는 모두 패배해 기록을 달성할 때마다 팀이 지는 징크스가 생기는 것 같다 (작년 시즌의 2000안타때도 팀은 패배).
7월 말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1루수인 제임스 로니가 오게 되며 포지션 경쟁이 예상된다.
8월 10일 SK전 9회말 유강남의 대타로 출장해 안타를 때려내고, 대주자 황목치승과 교체되었다.
8월 현재 2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는데, 이는 현역 최다며 달성한 선수도 양준혁, 김민재 단 둘 밖에 없는 기록이다.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아 부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 기록이 올해 내 갱신될 가능성은 높다.
9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2112경기 출장으로 우타자 최다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9월 14일 드디어 KBO 우타자 최초로 2100안타를 쳤다.
10월 3일 팀 마지막 경기에서 KBO 최다경기 출장 타이기록(2135경기)을 달성했다.
[1] 이마저도 팀 사정에 따라 2루와 3루를 오갔다.[2] 한편 히어로즈는 황재균이 3루수로 포텐이 터지면서 정성훈은 2명에게 자리를 새로 준 셈이 되었다. 근데 황재균은 2010시즌 부진에 빠지고 롯데로 팔려가면서 김민우가 공백을 메웠으며, 김민성이 2012년부터 3루수로 뛰게 되었다.[3] 코너 내야수는 기본적으로 두 자릿 수 이상의 홈런은 기록해주는 것이 기본 미덕으로 여겨진다. 물론 정성훈이 장타력이 아주 뛰어난건 아니지만 17홈런을 기록했던 적도 있는만큼 좀 더 장타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4] 당시 리그에서 WRC+ 5위였다.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최정과 동률.[5] 하지만 신생팀 특별지명을 통해 SK에서 20인 외로 풀린 모창민을 지명하며 3루수 보강에 성공했다.[6] 김응용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감독 재임 시절 고졸 신인이었던 정성훈을 데뷔 첫 해부터 믿고 주전으로 기용하며 정성훈과 어느 정도 인연이 있다.[7] 특히 한화는 이범호의 이적, 송광민의 군 복무로 인해 3루 자리가 사실상 구멍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같은 포지션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준 오선진이 있지만 오선진 본인은 3루보다는 2루나 유격수가 더 적합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여상은….[8] 우타자 최초다. 기존 7천타수 기록은 좌타자인 양준혁과 장성호만이 갖고 있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