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7-11 06:57:54

정무문


파일:이소룡 서명.svg
이소룡
주연 5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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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작
2.1. 줄거리2.2. 이야깃거리
3. 파생작
3.1. 신정무문(新精武門 New Fist of Fury, 1976)3.2. 속 정무문(精武門續集 Chinese Connection 2, 1976)
3.2.1. 절권응조공(截拳鷹爪功 Fist Of Fury 3, 1979)
3.3. 달마철지공(達魔鐵指功 Bruce and Shaolin Kung Fu, 1978)3.4. 중건정무문(重建精武門 The Supergirl of Kung Fu,1975)3.5. 당산정무문 (唐山精武門 Fist of Fury in China,1974)3.6. 최후의 정무문 (The Last Fist of Fury, 1977)3.7. 불타는 정무문 (Fist of Fury part 3, 1978)3.8. 신정무문 (Fist of Fury New Part, 1978)3.9. 정무가정(精武家庭 House of Fury, 2005)3.10. 대협 곽원갑 (大俠霍元甲 The Legendary Fok, 1981)3.11. 정무영웅(精武英雄 Fist of Legend, 1994)
3.11.1. 개요3.11.2. 원작과의 차이점
3.12. 정무영웅 2: 철보표 (Fist of Legend 2: Iron Bodyguards, 1996)3.13. 중진정무문(重振精武門 Return of Dragon 1998)3.14. 신정무문 1991(新精武門 一九九一 Fist of Fury 1991, 1991), 신정무문 뇌전영웅(新精武門 雷電英雄, 1992)3.15. 정무문(精武門 Fist of Fury, 1995)
3.15.1. 개요3.15.2. 등장인물
3.16. 정무풍운 (精武風雲 Legend of the fist - Return of Chen Zhen, 2010)3.17. 정무진진 (精武陈真 Chenzhen Legend, 2019)3.18. 정무영웅:곽가권지 정예무영 (霍家拳之精武英 Fist of the Fury Hero, 2019)3.19. 정무문:전설의 흑협 (精武陳真 Fist of Legend, 2020)3.20. 신 정무문:무혼 ( 新精武门:武魂 New Fist of Fury, 2021)
4. 만화 정무문5. 모바일 게임 정무문

1. 개요

이소룡 주연의 1972년작 홍콩 영화. 영문 제목은 분노의 주먹(Fist of Fury).[1] 일본 개봉명은 ドラゴン怒りの鉄拳(드래곤 분노의 철권).

실존인물 곽원갑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로, 중국에는 아직 정무체육회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상해정무체육총회. 깨알같은 부시오바마. 그러나 이소룡이 맡은 진진이란 인물은 가상인물이다. 진진은 곽원갑의 제자인 진공철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2. 원작

<colbgcolor=#000000> 정무문 (1972)
精武門, Fist of Fury
파일:attachment/정무문/jwm.jpg
<colcolor=#ffffff> 감독 나유
제작 추문회
노량화[2]
각본 나유
출연 이소룡
묘가수
이의
전준
이곤
전풍
한영걸
하시모토 치카라
로버트 베이커
나유
장르 드라마, 액션
음악 고가휘
촬영 진청거
제작사 골든하베스트
공개일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1972년 3월 22일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1973년 7월 27일
상영 시간 90분
제작비 $100,000
수익 $100,000,000

개봉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되었다. 리메이크작 제목은 조금씩 다른데, 우리나라에선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보통 주연배우 이름을 앞에 붙여 '아무개의 정무문'이라고 부른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곽원갑의 죽음. 곽원갑은 암살을 당한 게 아니라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되어서 사망했다. 또한 곽원갑이 참여했던 공개무술시합은 순수하게 실력을 겨루는 스포츠 시합에 가까웠으며 곽원갑에게 원한을 가질 일도 없었다.[3][4]

사실상 이소룡 스타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소룡하면 떠오르는 쌍절곤, 플라잉 킥, 창파오[5], 특유의 기합소리(괴조음) 등이 여기서 첫등장 한다. 액션도 상당히 무자비하고[6] 박력도 있다.

2.1. 줄거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서양 열강 각국의 조계가 설치되어 있던 상하이.

정무문 창시자이자 비종권 명인 곽원갑이 사망하고 그의 제자 진진[7][8]은 스승의 주검 앞에 오열한다. 의사는 병으로 사망했다고 진단하지만, 사실은 정무문의 주방장이 독살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주방장의 정체는 일본 무술단체인 홍구도장의 부사범 요시다의 동생이었다. 정무도장, 아니 중국인 전체를 하대하는 홍구도장 패거리의 소행에 진진은 분개하지만, 대사형은 문제를 확대하지 않도록 참으라고만 한다.

그러나 하수인인 주방장과 풍 집사의 얘기를 엿들으며 스승이 살해당했다고 확신한 진진은 그 주방장과 풍 집사를 그 자리에서 죽이고[9] 관장의 통역관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고 처단한 뒤 홍구도장에 침입하여[10] 요시다, 관장의 측근들, 러시아인 마피아 보디가드, 스즈키 관장 등을 차례로 죽여버리고 정무문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정무문은 이미 홍구도장의 패거리에 의해 문하생들이 대거 피살된 뒤였고, 이후 일본 대사가 경찰 병력으로 정무문을 포위하고 진진을 내놓지 않으면 정무문을 폐쇄시키고 정무문 사람들을 모조리 체포하겠다고 협박한다.

이러한 정무문의 위기에 결국 자수를 결심한 진진은 연인이던 스승의 딸 려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일본 대사에게는 정무문을 건드리지 말라고 다그친 뒤[11] 자신에게 겨누어진 총부리를 향해 마지막 포효를 하고 뛰어오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파일:external/kaleidoscope.cultural-china.com/culturalchina6d068de99d69f326cebd.jpg

2.2. 이야깃거리

명장면들도 여러 장면 나온다.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는 공원 입간판을 날아차기로 박살내 버리기도 하고[12] 동아병부[13]라고 적힌 액자를 들고 홍구도장에 찾아가서는 일본 무술인 다수를 호쾌하게 때려눕힌 후에 액자에 들어가있던 종이를 구겨 일본인에게 먹이는 등(...).[14][15] 특히 동아병부 장면은 중국인들에게 통쾌한 것도 있고 도장깨기가 박력도 있어서 정무문 시리즈에선 대부분 패러디된다[16].

일본인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과 싸우기도 한다. 웬 뜬금없이 러시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이 청나라 말기에 러시아와 일본에 의해 연해주와 대만 등의 영토들을 빼앗긴 것을 감안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17]

이 러시아인을 맡은 배우는 이소룡의 친구이자 제자인 로버트 베이커(Robert Baker)라는 무술인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실제 러시아인은 아니고 미국인이다.[18] 부업으로 바텐더를 했다고 하는데 영화상의 복장도 그것을 반영한 듯. 웃긴 건 러시아인이라면서 영화에서는 대놓고 영어를 쓴다. 정작 일본인들은 중국어만 쓰니까 따질 일은 아니다정무문이 시사회에서 반응이 좋자 이소룡과 함께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후반에 홍구도장으로 난입한 이소룡을 막다가 오른쪽 눈을 다치며 쓰러지는 사람은 영환도사 임정영이다. 재미있게도 임정영은 오우삼의 영화 영웅무루(1986)에서도 오른쪽 눈을 다친다.[19] 그 외에도 맹해, 원규 등의 배우들도 단역으로 등장한다.

스즈키 관장이 이소룡의 발차기를 맞고 날아가는 장면의 스턴트는 다름 아닌 무명시절의 성룡이 맡았다. 성룡은 후에 나유가 만든 정식후속인 신정무문에 주연으로 발탁된다.

이 작품에서 대사형 역을 맡은 전풍은 1993년에 대만에서 방영된 판관 포청천에서 여러 역할을 맡았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역할은 진가포공 편에서 등장한 반역자 석국주 역.

진진이 약혼녀 려아와 마지막 눈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이소룡이 단지 싸움만 잘 하는 게 아니라 배우로서의 연기력도 뛰어난 인물임을 확실히 증명해 준 장면이다. 아무런 대사도 없지만 굉장히 많은 것을 전하고 있다. 참고로 본작은 이소룡의 주연작 중에서 유일하게 직접적인 키스 장면이 있는 작품이다.

작중 홍구 도장은 기도류[20] 현판과 가노 지고로[21]의 사진을 걸어 놓는 등 훌륭한 고증을 보여주고 있다. 정무문과 관련된 대부분의 매체들이 곽원갑의 사망 당시(1910년)엔 식민지 오키나와 출신 깡패 무술 취급 받던 가라테대일본제국의 성명절기라도 되는 양 다루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 그리고 실제로도 이소룡과 맞붙으려 하던 첫 번째 홍구 도장 단원은 유도 기술을 걸려고 이소룡의 허리춤을 잡으려 했다가 맞고 쓰러지며, 이후 덤벼드는 단원들도 유도로 패싸움했으면 보였을 거 같은 움직임들을 보여준다. 유도가 한번 잡히면 무서운 기술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후대에 나올 정무문 시리즈 통틀어서도 주인공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을듯...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홍구 도장의 일본인들이 일본 전통 바지인 하카마를 반대로 입고 있는 고증 오류를 범했다. 하카마를 입을 때 요판(허리받침)이 허리 뒷쪽으로 가도록 입어야 하는데 모두 요판이 배쪽으로 오도록 돌려 입었다. 홍콩인 배우 및 스태프들이 그 부분까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22] 이후의 정무문 시리즈에서는 1995년작의 이시이 히데아키를 제외하면 일본인 캐릭터들이 하카마를 고증에 맞게 요판이 허리 뒷쪽으로 가도록 입는 것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촬영 과정에서 감독 나유에게 화가 단단히 난 이소룡은 결별을 선언한다. 나유는 영화 촬영을 하면서 졸거나 경마 중계 라디오나 듣는 등 본업을 망각한 태도를 보여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소룡과 마찰을 빚었고, 당산대형에서부터 그런 나유의 행태에 질린 이소룡은 새로운 회사를 세워 맹룡과강에서 자신이 각본/감독을 맡게 된다. 그리고 나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묘가수가 이소룡을 따라갔다.[23]

엔딩에서 진진이 총에 맞아 죽는 엔딩[24][25]은 이소룡이 원한 것으로[26], 복수를 위하여 사람을 많이 죽였던 주인공이기에 그가 살아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소룡 사후에 개봉되어서 본의 아니게 추도개봉 형식이 되었다.[27] 웃긴 것은 중국인들이 일본인을 마구 두들겨 패고 죽이기까지 하는 내용인데, 이 영화를 시청한 일본인들이 기립박수를 쳤다고(...) 전해진다.[28][29] 일본의 철학자이자 합기도 7단 무술가인 우치다 다쓰루는 이 영화를 감상하며 이소룡이 홍구도장을 상대로 도장깨기를 하는 장면에서 이소룡에 이입해 열렬한 박수를 쳤던 본인의 경험을 예로 들어 롤랑 바르트의 구조주의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든 다른 예시는 조지 래프트가 노예선 선장으로 나오는 영화에서 추격전 중 '짐짝'인 흑인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버리는 장면에 코트디부아르의 한 영화관의 관객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30]

일본에서는 오리지널 주제가 대신 별도의 영어 가사를 만들어 따로 녹음한 주제가를 사용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원곡을 부른 진미령(陳美齡)[31]과의 저작권 문제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73년 7월 27일[32] 국내 개봉하여 당시로서는 흥행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관객 31만 7천 명을 동원했다. 2013년 8월 29일에 한국에서 재개봉되었는데 전국관객은 5,536명. 그리고 같은 해 2014년 1월 30일에 KBS에서 추석 특선 영화로 방영했으며, 이소룡의 더빙 성우양석정이 맡았다.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fury.jpg
(1973년 당시의 신문 광고)

작중 시점은 1910년으로, 모두가 알고 있듯이 수십 년 후 중국은 동아병부를 자처하고 말았다.

이소룡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된 증언으로는 당시 자동차 극장에 포르노와 정무문을 동시 상영했는데 다들 정무문만 봣다고 한다.[33]

3. 파생작

3.1. 신정무문(新精武門 New Fist of Fury, 1976)

파일:attachment/정무문/320.jpg
파일:external/www.lovehkfilm.com/new_fist_of_fury.jpg

이소룡 사후 나유성룡을 주연으로 제작한 정식 속편.

진진을 잃고 일본의 압박에 견디다 못한 정무관은 대만으로 이주하지만 그곳도 이미 일본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었다. 정무관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던 려아는 길거리 건달인 성룡을 발탁하여 정무관의 간판으로 키우려고 한다. 성룡의 캐릭터가 어정쩡해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성룡이 초반에는 진진의 유품인 쌍절곤을 쓰다가 삼절곤으로 바꾸는데 이 싸움 장면 정도가 볼 만하다.

이소룡의 모습이 회상 장면에서 살짝 등장한다. 악역인 일본인 관장 역으로 '홍콩의 찰스 브론슨'이라 불렸던 진성(陳星)이 출연한다. 또한 이소룡의 데뷔작인 당산대형에서 최종보스 역할로 출연했던 한영걸이 정무체육회의 관장 역할로 나왔으며 맹룡과강의 히로인으로 나왔던 여배우인 묘가수가 본작의 여주인공인 려아 역으로 나왔다. 그 외에도 전작의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여러 파생작들 중 이질감이 가장 적다.

한국에선 1984년에 금성비디오에서 "성룡의 끝없는 용기" 란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다가 이후 다른 업체인 씨앤씨 미디어에서 같은 제목으로 비디오를 또 냈는데 1989년 신정무문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서울관객은 11,178명으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금성비디오에서 재출시한 제목이 성룡의 정무권.

엔딩에서 일본인 관장에게 죽을 뻔했으나 발을 이용해 일본도로 관장을 무찌르고 나왔다. 그러나 일본군들의 총격에 주인공은 사망한다.[34]

원작 정무문에서 공식적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데에 의의가 크다.

3.2. 속 정무문(精武門續集 Chinese Connection 2, 1976)

파일:external/achoolegends.ocnk.net/f5f9caf90d.jpg

여소룡(하종도) 주연으로 만들어진 리메이크라기보다 일종의 짝퉁. 일본인들이 술과 고문으로 대사형을 폐인으로 만들고는 정무관을 가로챈다. 이때 진진의 동생 진산이 시골에서 급거 달려와 일본인들을 박살내고 정무관을 지킨다. 스토리는 원조 정무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35], 캐스팅도 물론 전원이 새로 바뀌었지만 대사형만큼은 원조 정무문의 전풍과 삼사형이던 이곤이 그대로 나와서 어이없게 만든다. 홍콩 영화계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은 이야기.

3.2.1. 절권응조공(截拳鷹爪功 Fist Of Fury 3, 1979)

파일:external/3.bp.blogspot.com/Jeet+Kune+the+Clawsand+the+Supreme+Kung+Fu-1979.jpg

'속 정무문'의 또 속편. 제목부터 정무체육회와는 상관없게 되었지만, 일단 스토리는 이어진다. 진진의 유골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간 진산이 거기에서 또 싸우게 되는 이야기. 설정상 모친을 비롯한 진진의 가족들이 등장하는 점은 다소 흥미롭다. 그리고 오리지널 앞잡이 '통역관' 위평오도 얼굴을 비춘다.

3.3. 달마철지공(達魔鐵指功 Bruce and Shaolin Kung Fu, 1978)

파일:external/hkmdb.com/BruceandShaolinKungFu+1978-50-b.jpg

남궁훈 감독, 여소룡 주연의 또 다른 한 편의 '속 정무문'. 원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관계가 꽤 먼 짝퉁이다.

3.4. 중건정무문(重建精武門 The Supergirl of Kung Fu,1975)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050E000053FD94AA67379F113B0BE3F6.jpg

대만서 촬영. 주연은 한때 이소룡의 여동생으로 불리웠던 가능(嘉凌). 영화 초반부에 개찰구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승객이 들락거리는 상해역이 등장하는, 시간을 달리는 작품.

3.5. 당산정무문 (唐山精武門 Fist of Fury in China,1974)

파일:CHINA GODFATHER.jpg

마치 당산대형과 정무문을 합친 듯한 제목, 내용도 고스란히 그대로이다. 마피아 대부 역으로 네덜란드 배우인 얀 빌렘 스토커(Jan Willem Stoker)가 출연하고, 고웅, 이곤 등이 출연한다. 이곤 같은 경우는 정통 원조 정무문의 출연 배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안타깝지만 이런 게 당시의 홍콩 영화 업계.[36]

3.6. 최후의 정무문 (The Last Fist of Fury, 1977)

파일:attachment/정무문/0080.jpg

훗날 소림사 용팔이나 암흑가의 황제 등의 액션영화에 출연한 거룡(문경석) 주연으로 만들어진 역시 일종의 짝퉁. 훗날 「Real Bruce Lee」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이소룡을 제치고 절반을 차지해버렸다.

거룡은 이 최후의 정무문 말고도 돌아온 정무문이라는 제목으로 정무문 영화 한 편을 더 찍었다.

3.7. 불타는 정무문 (Fist of Fury part 3, 1978)

파일:attachment/정무문/lee.jpg

한국에서는 발음이 같아서 여소룡(黎小龍)과 자주 혼동되는 여소룡(呂小龍) 주연의 한국영화. 감독은 그 유명한 남기남이다. 조선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정무문에 돌아온 소청룡이 일본군을 무찌른다는 스토리. 도대체 어느 시대

3.8. 신정무문 (Fist of Fury New Part, 1978)

파일:new fury.jpg

역시 남기남 감독에 여소룡, 백호, 진성 등이 출연. 성룡 주연의 신정무문과는 정말로 손톱만큼의 관련성도 없다. 평가도 '역시 남기남 감독!' 한마디로 귀결된다.

3.9. 정무가정(精武家庭 House of Fury, 200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House_of_Fury_movie_poster_2005.jpg

이쯤 되면 제목에 정무가 들어갔을 뿐 완전히 북극으로 가버린 단계. 그래도 주연은 왕년에 영화판에서 제법 이름을 날렸던 황추생(黃秋生). 조연으로 나온 배우들도 중화권에서 유명한 배우 오언조와 풍덕륜, 그리고 트윈스라는 그룹으로 유명한 종흔동과 채탁연. 의외로 배우진은 화려하다.

3.10. 대협 곽원갑 (大俠霍元甲 The Legendary Fok, 1981)

파일:attachment/정무문/52.jpg

홍콩 RTV(現 aTV)에서 제작한 TV 시리즈. 총 20부작. 감독은 서소명(徐小明).

곽원갑의 일대기를 그린 TV시리즈여서 약간 범주가 다른 듯 하지만 끝부분에 가서 곽원갑이 암살당하고 제자가 복수에 나선다. 요컨대 정무문 내용 그대로다.

홍콩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이후 RTV는 속편인 진진과 곽동각[37]을 제작했다. 진진 역은 양소룡이 맡았다.

주제곡은 엽진당(葉振棠)의 만리장성영부도(萬里長城永不倒). 여담으로 해당 곡은 중국 공산당 중앙 선전부(中共中央宣傳部) 등에서 2009년에 선정한 애국가곡(愛國歌曲) 100곡 중 하나로 뽑혔다. 일단 노래 가사부터가 애국심을 띄었기에 홍콩, 중국 대륙 등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3.11. 정무영웅(精武英雄 Fist of Legend, 1994)

파일:external/farm4.static.flickr.com/2902873967_c077771180.jpg

3.11.1. 개요

주연은 이연걸. 이소룡이 주연한 원작 정무문의 정식 리메이크 영화.

한국에서는 "이연걸의 정무문"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리메이크로 나온 정무문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작품. 원작과 다른 점은 진진이 일본 유학생이란 설정으로 이연걸의 일본어 연기를 잠깐이나마 볼 수 있다. 액션만이 아니라 일본 여인과의 로맨스 요소도 들어가 있어서 남성관객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38]. 구성이 의외로 원조 정무문보다 맹룡과강에 가깝다. 중간에 도장 수련장면중 샌드백을 걷어차서 수련생이 날아가는 장면은 명백한 맹룡과강의 오마주.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이소룡의 정무문을 리메이크한 작품임에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괴조음, 쌍절곤, 상의탈의를 따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소룡의 진진은 일종의 '종교'와도 같다. 똑같이 따라 하다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신성모독'이라며 욕을 먹는 구조다. 이연걸은 본인이 이소룡을 따라 하면 아무리 잘해도 비난받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소룡 흉내를 내다가 잊혀져간 수많은 무술배우들을 지켜보며, 흉내 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연걸은 일본 교복, 허리 벨트, 복싱 스텝 등의 파격적인 장치를 통해 이소룡의 영화와 겹치지 않는 다른길로 갔다.

이소룡의 원작 '정무문'은 강렬한 반일감정이 핵심 정서다. 일본인은 무조건 악이고, 중국인은 무조건 선이며, 이소룡이 통쾌하게 응징한다는 구도다. 당시 중국, 홍콩 관객들이 그 카타르시스에 열광했던 것인데 이연걸 버전은 그 공식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주인공 진진이 일본 대학교 유학생이고, 일본인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일본인 무술 고수와 교류하고, 악당은 일본인이지만 선한 일본인도 등장한다.[39] 또한 중국인 진진이 적국 일본의 교복을 입고 최종 결투에 나선다. 이런 요소들은 원작의 민족주의 관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배신에 가까운 파격이었다.

이소룡의 처절한 복수극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일본인 전체를 악마화하지 않고, 군국주의와 개인을 분리하여 입체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던 설정이 "일본에 지나치게 타협적이고 미화된 전개"라며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원조 팬 입장에선 "이게 무슨 정무문이냐, 이소룡이 그렇게 싸워서 지킨 민족 정서를 왜 희석시키냐"는 원성이 나올수 밖에 없었다. 개봉당시 관객들은 이연걸의 새로운 해석보다 익숙한 카타르시스를 원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혹평이 많았다. 이러한 올드 팬들의 강한 반발과 민족주의 정서의 충돌 때문에, 영화는 개봉 당시 흥행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품은 특히 서양권 평단으로부터 단순한 반일 감정에서 벗어난 "세련된 근대적 리메이크"라는 극찬을 받으며 역대 최고의 무술영화 중 하나로 위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소룡이라는 불멸의 아이콘을 가슴에 품은 원작 팬들에게는 "본질을 잃어버린 이질적인 작품"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다.

이연걸은 '리메이크가 원작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도 된다'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게 원작 팬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졌지만, 동시에 최고의 리메이크로 평가받는 이유였다. 이런 과감한 재해석이 가능했던 건 이연걸이 주연배우일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도 참여했기 때문이다. '정무문'은 이연걸이 설립한 '정동영화사(正東製作有限公司)'에서 만든 작품이라 그의 의도가 100% 반영될 수 있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단순히 배우로만 출연했다면 감독이나 제작사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만, 이연걸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덕분에 영화의 방향성 자체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당시 홍콩 영화계는 자극적인 복수극 위주의 '공장식 제작 체제'였다. 이에 회의감을 느낀 이연걸은 자신이 설립한 영화사를 통해 "무술 영화도 깊이 있는 철학과 높은 완성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진가상 감독, 원화평 무술감독 같은 본인의 의도를 100% 반영할 수 있는 실력파 스태프들을 직접 영입했다. 그들과 심도 있게 소통하며 본인이 제작 전면에 나섰다. 이소룡의 정무문과는 다른 새로운 '진진'을 만들기 위해, '진진'이라는 캐릭터를 완전히 재창조했다.

일본 교복 장면, 일본인 여자친구 설정 등 고전적인 틀을 깨는 요소들은 이소룡 버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치들이었다. 만약 이연걸에게 제작권이 없었다면 제작사나 감독이 "관객이 쌍절곤을 기대한다, 아뵤 한 번만 해달라"는 압박을 넣었을 거고, 배우 이연걸 혼자서 그걸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사 사장이자 최고 결정권자였기 때문에 주위의 우려를 물리치고 "이소룡을 따라 하지 말자"라고 과감하게 밀어붙일수 있었다. 이연걸판 '정무문'이 다른 리메이크들과 달라질 수 있었던 건 이연걸의 무술실력, 냉철한 현실인식을 통한 판단, 제작권한 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리메이크작들은 항상 두 가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소룡과 똑같이 따라하면 '흉내만 낸다', '이소룡의 카리스마에 못 미친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렇다고 너무 다르게 하면 '정무문의 정신을 훼손했다', '이게 무슨 정무문이냐'는 소리를 듣는다. 한마디로 이소룡의 시그니처를 지키면 '짝퉁'이라 욕하고, 시그니처를 버리면 '원작 모독'이라 욕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욕을 먹을 지언정 아예 노선을 틀어버렸는데 결국 나중에는 영화가 이연걸만의 매력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이소룡의 상징인 쌍절곤을 과감히 포기하고 벨트를 사용한 것, 괴조음을 내지 않은 것 등 정무문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버린다는 건 엄청난 도박이었다. 만약 이연걸이 쌍절곤을 들고 '아뵤~' 했다면, 이연걸만의 클래식한 멋은 나올 수 없었다. 즉, 이소룡을 흉내내지 않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어설프게 따라 하면 아류작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자기만의 스타일로 진진을 연기한 덕분에 영화가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이연걸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연걸이 엄청난 노력으로 영혼을 쏟아부어 만든 '정무문'은 중화권 흥행에 실패했다. 이소룡의 원작처럼 일본인을 무조건 악당으로 그리는 평면적인 방식이 아니라, 일본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리는 등 시대를 앞서간 세련된 연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점 때문에 당시 보수적인 중화권 관객들의 반감을 사서 실패를 맛봐야 했다.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이 작품의 흥행 실패는 영화사에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주며 동력을 잃게 만들었다. 이로인해 큰 실망과 충격을 느낀 이연걸은 결국 정동영화사를 폐업했다. 그런데 개봉 당시에는 외면받았지만, 불과 3년 뒤인 1997년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시장에 판권이 팔리며 해외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극찬을 받기 시작했다.

서구권 평단과 전세계 액션 매니아들은 이 영화가 가진 압도적인 액션 퀄리티와 세련된 스토리 라인에 열광하며,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마스터피스로 재평가받았다. 워쇼스키 자매는 이 영화의 액션에 반해 무술감독인 원화평과 스턴트 팀을 그대로 고용해 영화 '매트릭스'를 제작했다. 또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프레임 단위로 이 영화의 액션 시퀀스를 연구해서 '액션 영화의 교과서'로 만들었다. 그리고 전 세계 영화 학교와 후배 감독들에게 "액션 연출을 배우려면 이 영화를 교본으로 삼으라"며 극찬했다. 실제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연걸의 정무문'을 서양권에 널리 알리고 재평가받게 만든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이연걸이 회고하길 "영화는 나중에 서양권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미 회사는 문을 닫은 상태여서 정작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고 말하며, "당시 실패에 낙담해 성급하게 회사를 정리했던 선택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비록 돈은 벌지 못했지만, 이 영화가 서양권에서 워낙 크게 흥행한 덕분에 쿠엔틴 타란티노 등 할리우드 거물들의 눈에 띄어 이후 이연걸이 '리썰 웨폰 4'로 미국에 진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국 영화가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고향인 홍콩에서는 실패했지만, 서양권에서 그 가치를 뒤늦게 알아봐 준 덕분에 세계적인 클래식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해외시장 수출을 의식했는지 민족주의적 감성은 많이 순화되었다. 이소룡의 원조 정무문조차 강한 중화사상을 내비치는 것과 비교해 보면[40], 이연걸 주연의 정무문은 유일하게 중립적이다[41]. 기존의 '정무문'이나 다른 항일 영화들과는 달리 일본인들 쪽에서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진진(이연걸 분)의 애인으로 나오는 미츠코(나카야마 시노부 분)[42]와, 미츠코의 삼촌이자 진진에게 깨달음을 주는 일본인 고수이자 흑룡회의 교두 후나코시 후미오(쿠라타 야스아키 분).[43] 사실 작중 묘사를 보면 일본군과 일부 일본인이 나쁜 거지, 그 밖에 일본 무술인이나 보통 일본 사람은 좋은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아예 영화 시작부터 일본 학생들이 인민 만세를 외치며[44], 천황제, 군국주의, 중국 점령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당장 도장 내에서 사형(전소호 분)과 싸울 때도 사형이라 차마 때리지 못하고 제지에만 그쳐서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으나, 사형을 응원하던 다른 문하생들이 '일본인 따위는 필요없다'며 미츠코를 욕하자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한다[45]. 원작에서 여주인공(묘가수 분)은 정무문의 동료이자 같은 중국인이었다. 그런데 이연걸 버전에서는 일본인 연인이 등장해 진진이 정무문 동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그녀를 끝까지 지킨다. 원조 팬들입장에서는 "사부님이 일본인에게 독살당했는데, 그 원수를 갚아야 할 영웅이 일본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정무문을 떠나기까지 하느냐"라며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었다. 무조건적인 선악구도를 벗어나려 한 것인데 이게 당시 중국, 홍콩 영화계에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홍콩에서 오래 활동한 '쿠라타 야스아키'가 '후나코시 후미오' 역으로 나와 이연걸과 한 판 대결을 펼친다.[46] 일본인 고수인 후미오와의 대결도 말이 무승부지 후미오와 '대련'하며 한 수 배우는 느낌이 강하다. 싸우기 이전에 '강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주먹으로 돌을 부수고 손날로 종이를 베며 짧게 논하는 장면이 포인트.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치던 중 진짜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촬영이 잠시 중단되었다.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여서 촬영이 계속 지연되자, "바람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느냐, 아니면 이 상황을 이용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이때 현장의 무술감독이었던 원화평이 아이디어를 내어 "아예 서로 눈을 가리고 마음의 눈(心眼)으로 싸우는 설정을 넣자"고 합의했다. 이 즉흥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두 고수가 승패를 넘어 무도로서 교감하는 전설적인 '안대 대결' 장면이 완성되었다. 대결 직후, 후나코시 후미오는 진진에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사를 남긴다. "무술은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최선의 방법은 '총'이다. 무술은 너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다." 이 대사는 진진의 정신적 각성의 계기가 된다. 이 결투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가장 완벽한 무술철학이 담긴 액션"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훗날 할리우드 감독들이 액션 콘티를 짤때 교과서처럼 참고하는 장면이 되었다.

홍구도장 사범이자 흑룡회 소속인 아쿠타가와 류이치는 본인이 정말 곽원갑과 정정당당히 싸워 이긴 것으로 알았으며, 이후 진진과 싸우기 전에도 서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면서 자신의 말을 지켰고, 이에 진진 역시 문하생들과 싸울 때와는 달리 얌전히 구두를 벗고, 허리띠를 뽑아서 무기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후 아쿠타가와 류이치는 후지테라오카 장군이 곽원갑에게 독을 먹인 사실에 대해 무도인의 정신을 더럽혔다며 따지다가 살해당한다. 홍구도장과 정무문의 패싸움에서도 홍구도장 쪽 수련생들이 진진에게 억울하게 죽은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실제로는 정무문으로 쳐들어간 것이니 무협물 기준으로는 악당도 아니다. 실제로는 후지테라오카 장군이 죽이고 진진이 한 짓으로 꾸민 뒤 시체를 홍구도장 앞에 전시하듯 내다 버렸다. 당연히 스승이 죽고 시신까지 모욕당한 홍구도장 측은 딥빡...

또한 이러한 소재의 작품들이 대개 '중국 전통무술 최고'라는 국뽕에 빠져들기 쉽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진진은 오히려 중국 전통 무술의 결함들을 지적하면서 일본무술의 단련법을 적용한 개혁을 주장한다[47]. 양쪽 도장의 패싸움도 진진 개입 이전에는 홍구도장 쪽이 좀 더 밀어붙이는 느낌이 강하다. 홍구도장 수련생들은 일본도, 정무문 문도들은 대도와 장봉을 들고 맞서서 조건은 동일했는데도 말이다.

이소룡의 정무문과는 달리 진진이 일본 여성 미츠코와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며 미츠코는 이연걸의 앞날을 위해서 스스로 떠난다. 히로인으로 나카야마 시노부[48]가 출연했다. 원래 홍콩 영화계에서는 일본인 캐릭터가 필요할 때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홍콩 여배우에게 가발을 씌우고 기모노를 입혀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진가상 감독은 이 영화가 가진 "국경을 초월한 로맨스"라는 주제를 제대로 살리길 원했다. 그래서 관객들이 보자마자 '지켜주고 싶다', '저렇게 착한 일본인도 있구나'라고 납득할만큼 청순하고 예쁜 이미지의 일본 여배우를 집중적으로 물색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떠오르는 청순 스타였던 '나카야마 시노부'와 접촉할 수 있었다. 나카야마 시노부는 일본의 레전드 여배우인 나카야마 미호(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의 친동생으로, 이미 일본에서 J-POP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당시 일본 스타가 홍콩 액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국경 없는 사랑이라는 메시지와 아시아 최고 액션스타인 이연걸과의 호흡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캐스팅은 성공적이었다.

나카야마 시노부는 일본에서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주로 자국 내에서만 활동하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나중에 '이연걸의 정무문'이 홍콩, 중국을 넘어 한국, 동남아, 그리고 서구권까지 진출하자 그녀는 단숨에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그녀는 후일 인터뷰에서 "동남아 국가를 방문했을 때 현지 분들이 나를 알아보고 일본어로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어 깜짝 놀랐다. 전 세계 많은 팬들이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미츠코'로 기억하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녀는 이연걸에 대해 "최고의 액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장 안팎에서 늘 젠틀하고 따뜻했던 배우"로 기억하며, 그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갓 넘어온 신인배우였던 나카야마 시노부는 홍콩의 덥고 습한 날씨와 낯선 언어때문에 초반에 현장 적응을 힘들어했다. 이때 주연이자 제작자였던 이연걸이 그녀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전담 통역을 붙여주고, 홍콩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봐 일본식 식사를 직접 챙겨주는 등 극진히 배려해 주었다.

액션씬이 풍부해 볼거리가 많다. 1대1 대결부터 패싸움까지 다양한 액션을 넣었다. 홍구도장에서의 싸움이라든지, 홍구도장 대 정무문과의 패싸움이라든지, 사형이자 곽원갑의 아들인 곽정은과 대결,[49] 후나코시 후미오와의 싸움이라든지, 곽원갑의 묘 앞에서 쌩뚱맞게 팔극권의 대팔극투로를 하면서 전의를 불태우는 장면도 있다. 팔극권에 흥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볼거리. 액션 장면 중간중간 멋진 장면에 영웅본색에서나 볼 수 있는 슬로 모션을 집어넣어 연출에도 공을 들였다. 슬로 모션으로 마지막 대결에 보여주는 섬머솔트킥이 멋지다.

클라이맥스는 극중 후지테라오카 장군 역을(필살기는 허리꺾기) 맡았으며 킥복싱 챔피언을 했던 빌리 초우(주비리)와 싸우는 장면으로, 이연걸이 본인의 탈골된 팔을 끼우며 싸우는 명장면을 보여준다. 후지테라오카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밀리다가 막판에는 (아마도 유학시절 배웠을 듯한) 복싱스탭과 킥복싱에서 응용한 듯한 동작들을 가미하여 후지테라오카를 요리하는데, 무도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졌던 곽원갑의 제자라는 암시로 보아도 되겠다. 물론 이소룡에 대한 경의 표시도 될 수 있다.[50] 중반의 후미오와의 대결 후 후미오가 진진의 무술을 썼다고 하는 대사도 나오는데 진진도 이에 느낀 바가 있어 다른 쪽의 무술로부터도 좋은 것을 배우는 모습을 보여줬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장면은 후미오가 한창 진진과 싸울 때 진진이 자세를 바꾸어 대응하자 "그게 뭔가?"라고 물었으나 진진이 "보면 압니다!"라고 말하자, 재미있다고 여겼는지 후미오도 복싱(?) 자세로 바꾸며 대응하는 씬에 등장한다.

원작에서는 정무문의 폐쇄를 막으려고 정무문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홀로 일본 헌병대에게 덤벼들며 끝났다. 이것은 이소룡 본인이 원했던 엔딩이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서라지만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기 때문에 그 또한 무사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여기서는 후지테라오카와 사이가 나쁜 일본 영사[51]가 후지테라오카를 죽여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며 살려주지만, 그 대신 진진은 사망했다는 걸 보여줘야 윗선이 납득하고 넘어간다며 스승에게 독을 타 죽인 첩자 아강의 시신을 가져다 진진의 시신이라고 속여 그가 총으로 자살했다 위장하고, 진진은 몰래 빠져나가는 결말로 나온다.

이연걸판에서는 진진이 사람을 죽인 것은 스승의 원수인 후지테라오카 장군이 유일하므로 딱히 원작의 엔딩을 곡해한 것은 아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원래 그냥 나가려던 걸 장군이 칼로 죽이려던 것인데, 이것도 벨트에 휘말린 거라 과실치사나 사고라고 볼 수 있다. 과잉방어겠지만 칼로 계속 죽이려는 상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진이 죽어 안타깝다는 대화를 나누던 행인 둘이 때마침 곁을 지나가던 진진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더니 자기가 뭘 잘못 봤다며 현실을 부정하는 연출이 깨알같다.

특기할 점으로 광둥어 원판과 쿠엔틴 타란티노가 수입하여 제작된 영어 더빙판에서 진진의 마지막 대사가 180도 다르다. 원본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일본인이 많은 동북 3성으로 가 정무문의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해(=일본인과 싸우러) 떠나지만, 영어 더빙판에서는 죽은 사람이 되었으니 사랑이라도 얻어야겠다며 미츠코를 만나러 가는 로맨틱한 대사로 바꾸어 결말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에는 광둥어 원작이 비디오로, 영어 더빙판이 DVD로 들어와 한국 시청자들은 서로 다른 2개의 결말을 모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상파에서 방영한 한국어 더빙판은 광둥어 버전을 기반으로 번역했고, 케이블 영화채널들은 영어 더빙판을 방영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긴 하나,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고 정무문이 궤멸적 피해를 입은 원작과는 달리, 정무문도 무사하고 진진이 살아서 떠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등, 전반적으로 원조 정무문에 비하면 분위기가 다소 밝아진 편이다[52]. 이를 반영하듯이, 마침 주제곡도 원작은 애국심과 비장미를 강조한 어두운 곡조의 노래인데 반해#, 본작의 곡은 웅장하고 열혈스런 분위기를 강조하는 밝은 분위기의 곡이다#.

국내 관객은 서울관객 181,740명.

재미있게도 이연걸은 훗날 곽원갑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그 곽원갑을 연기했다. 국내 개봉명은 '무인 곽원갑'.

3.11.2. 원작과의 차이점

결말도 그렇고 로맨스 부분도 그렇고 이소룡판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 여럿 있다.
  • 원작의 배경이 1910년으로, 실제 역사에서 곽원갑이 타계한 시기다. 본작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으로 추정되는데[53], 그러다보니 곽원갑이 실제보다 몇년은 더 오래 살았던 고증오류가 있다.[54] 다만, 원작도 일본 측을 악역으로 부각시키다보니, 아직 중국의 눈치나 보면서 지내던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대놓고 중국인들에게 오만불손하게 대하는 고증오류가 있다[55].
  • 원작에서는 이소룡이 흰색 중국정장을 입었다면, 이연걸은 검은색 일본교복 가쿠란을 입고 나온다. 본작의 진진이 일본 유학파라는 설정을 반영한 연출이다[56].
  • 이소룡의 격정적이고 난폭한 진진에 비해, 이연걸의 진진은 다소 차분하고 진중한 편이다[57]. 특히 일본인 고수 후미오와의 '대련'에서 배움을 즐기는 듯이 싸우다가[58] 돌풍이 불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후미오에게 불리해지자, 공평해지도록 천으로 눈을 가리고 싸우자며 제안하는 등 공정함을 주로 나타내고 있다.
  • 히로인도 곽원갑의 딸이 아니라 일본 유학 시절 동급생이 연인 역으로 나온다[59]. 양쪽 모두 작중 비중은 다소 비슷하지만, 원작의 묘가수는 그 곽원갑의 딸이라는 설정이라서 짧긴 해도 홍구도장 측 인사들을 상대로 무술을 선보이거나 다른 문하생들과 함께 훈련하는 장면이 나오지만[60], 본작의 나카야마 시노부는 삼촌이 무술인이지 본인은 그냥 대학생이라는 설정이라서 단 한번도 무술을 하지 않는다.
  • 이연걸의 아이덴티티를 보여 주기 위함인지 여기서 진진은 절대 웃통을 까거나 괴성을 지르지 않고, 피도 과다하게 흘리지 않는다. 다만 이소룡 특유의 표정과 비스무리한 얼굴이 한 번 나오는데, 홍구도장에서 문하생들과 싸우다가 양 주먹으로 2명을 동시에 날려보낼 때 그 표정이 나온다.[61]
  • 정무문의 필수 아이템 쌍절곤 또한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일본도에 대항하기 위해 혁대를 뽑아 쓴다.[62] 혁대를 휘두르는 모습이 보기에 따라서 쌍절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구두를 항상 신고 싸운다. 점점 더 학원폭력물 다만 구두의 경우 흑룡회의 아쿠타가와가 대표끼리의 싸움을 통해 마무리짓자며 깔끔한 결말을 제안하자 구두를 벗고 싸우긴 한다.
  • 원작에서는 진진이 사부님을 죽인 내부자를 잡아서 직접 처단하지만, 여기서는 후지테라오카 장군이 진진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첩자를 직접 죽인다. 그 첩자는 정무문의 문하생 중 한 명이었다. 원작의 배신자는 총 두 명으로, 한 명은 곽원갑의 개인 집사였고, 다른 한 명은 중국인으로 위장하고있던 요시다 사범의 남동생이었다. 그러나 본작에서 요시다의 동생 포지션에 있는 정무문의 주방장은 진짜 중국인으로, 진범에 의해 곽원갑을 독살한 배신자라는 누명을 쓴 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원작에서는 진진이 남긴 편지를 대사형이 읽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정무문 내에 배신자가 있는 줄 모르지만, 본작에서는 진진의 주도로 검시관을 불러 부검하면서 바로 배신자가 곽원갑을 죽인 것을 눈치채는 것으로 나온다[63].
  • 최종 보스인 후지테라오카 장군은 원작의 러시아 무술고수 페트로프와 홍구도장 사범 스즈키를 합친 듯한 캐릭터로, 나무판에 못을 맨손으로 박거나 몽둥이를 박살내거나 하는 등의 힘 자랑하는 장면도 그대로 나온다. 그래서 진진과의 최종결전에선 단순히 진진하고만 싸우는 게 아니라 체급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서인지 난간, 기둥, 정원의 돌 의자, 가느다란 나무 등 부술 수 있는 건 다 때려부순다(…). 후반부엔 일본도도 그대로 쓰지만, 검술을 배운 건 아닌지 결국 진진이 휘두른 허리띠에 휘말려서 자기 목을 베고 만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진진이 세계관 최강자로, 마지막 대결에서조차 러시아 고수의 암바에 잠시 고전하는 것과[64] 스즈키 관장의 일본도에 가벼운 자상을 입은 것을 빼면,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상대를 발라버린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작중 최강자인 후나코시 후미오와는 대등한 실력을 보이면서 일진일퇴하고, 또다른 최강자인 후지테라오카를 상대로는 처절하게 개털리다가 간신히 승리하는 등으로[65], 상당히 고전하는 것으로 나온다.
  • 엔딩 역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는 이소룡과, 죽은 척한 뒤 변장을 하고 떠나는 이연걸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3.12. 정무영웅 2: 철보표 (Fist of Legend 2: Iron Bodyguards, 1996)

파일:attachment/정무문/14533.jpg

'이연걸의 정무문' 속편을 표방하여 제작되었다. 그래서 이연걸의 일본교복 스타일과 허리띠를 활용한 벨트액션 시퀀스를 영화에 그대로 가져왔다. 심지어 주연 배우의 이름도 이연걸의 영어 이름인 'jet li(젯 리)'와 한글자만 다른 'jet le(젯 레)'로 되어 있다. 이 뭔지 모를 주연 배우는 놀랍게도 영화 '호소자' 시리즈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대만배우 '좌효호(左孝虎)'이다. 정무영웅2의 완성도는 매우 떨어지는데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전혀 다른 '기존 무협 영화' 영상에, 좌효호가 진진으로 등장하는 장면만 새로 촬영하여 조잡하게 편집해 붙인 아류작이다.

영화 '정무영웅 2: 철보표'를 연출한 '대철수(Robert Tai)' 감독은 당시 컬트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독특한 무술 감독 겸 영화감독 이었다. 그는 홍콩영화 명가인 '쇼브라더스' 소속으로 장철 감독이 연출한 무협 영화 등에서 무술지도를 맡았었다. 나중에 쇼브라더스에서 독립 후 대만에서 저예산 무협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독창적이고 속도감 넘치는 액션 스타일 덕분에 서양의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런 조잡한 '짜깁기 영화'를 만든 이유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올리기 위한 편법 제작이었다. 뛰어난 액션을 찍을 능력은 있지만 돈이 없으니, 옛날 필름을 사와서 스토리를 때우고 주연배우 및 소수의 배우만 섭외후 '맨몸 액션'을 며칠 만에 싸게 찍어 붙여 동남아나 비디오 시장에 빠르게 팔아치우는 생계형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1974년 진동민 감독이 만든 '이건곤' 주연의 영화 '적담호한(赤胆好汉)'의 필름에 대철수 감독이 새로 찍은 좌효호 액션 장면을 혼합하여 짜깁기했다. '적담호한'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주인공인 좌효호만 중간에 억지로 끼워 넣어 액션 신만 새로 찍었기 때문에 세트장이나 수많은 조연 배우를 고용할 제작비를 아낄수 있었다. 또한 이연걸 주연의 '정무영웅'의 인기에 편승해 돈을 벌려고 제목을 '정무영웅2: 철보표'로 만들었다.

대철수 감독은 영화 '적담호한'의 원본 필름 사용 권리를 돈을 주고 정식으로 구매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당시 홍콩, 대만 영화계에서는 개봉한 지 오래되어 극장에 걸기 어려워진 옛날 영화의 ‘필름 판권’을 통째로 사고파는 일이 흔했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찍으려면 세트장 대여, 수많은 엑스트라 고용, 야외 로케이션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반면, 옛날 영화 판권을 싸게 사와서 주인공 액션만 며칠 만에 뚝딱 찍어 붙이면 제작비를 10분의 1 이하로 절감할수 있었다. 홍콩, 대만 영화계에서는 이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제작 방식’으로 여겼다.

아무래도 짜집기영화다 보니 스토리 흐름과 개연성이 완전히 무너져서 관객이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1974년 영화 '적담호한' 에 나오던 원본 배우의 얼굴이, 다음 장면에서는 1996년의 좌효호 얼굴로 갑자기 바뀐다. 필름 자체의 화질과 색감, 배우들의 옷차림조차 20년의 격차가 그대로 드러나 보는 사람은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원래 영화는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이동하는 쑨원(孫文)을 보호하기 위해, 열혈 협객(보디가드)들이 각지의 무술 고수들과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는 내용인데, 대철수 감독은 이 흐름과 아무 상관 없이 좌효호를 등장시켜 뜬금없이 악당들과 싸우게 만들었다. 주인공 좌효호가 왜 그 장소에 있는지, 방금 전까지 싸우던 적들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개연성이나 설명조차 없었다. 제목은 '정무영웅2'이지만, 정작 스토리는 정무영웅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영화 첫 장면에만 이연걸의 정무문 마지막 결투 신을 흉내 낸 장면을 넣고, 이후에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스토리를 따라가며 보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구작 영화를 틀어주다가 중간에 좌효호의 장면이 가끔 튀어나오는 비디오"에 불과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린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목표로 만든 주류 영화가 아니라, 해외 판권 판매와 2차 시장(비디오, DVD) 마케팅을 노리고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급조된 저예산 B급 영화였다. 이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비를 댄 제작자들은 해외 B급 무술영화 유통업자들이었다. 이들은 아시아 극장가에 걸 목적이 아니라, 서양(미국, 유럽)의 비디오 대여점이나 삼류 동시상영관, 컬트 영화 시장에 "이연걸의 정무영웅 공식속편이 나왔다"고 속여서 팔아넘기기 위해 이 영화를 기획했다.

영화 자체는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눈 뜨고 볼 수 없는 쓰레기 영화"라는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주연배우 좌효호의 인생을 바꾸었다. 사실 그는 개인사정 때문에 배우생활을 은퇴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비록 영화는 엉망이었지만, 좌효호의 무술실력과 현장에서의 성실함만큼은 진짜였다. 이를 눈여겨본 대철수 감독이 그를 자신의 무술팀 스태프로 거두어주었고, 좌효호는 이 지독한 3류 영화 현장에서 밑바닥부터 카메라 무빙, 액션 합 짜기, 연출법을 배우며 나중에 대감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정식 극장 개봉 영화도 아니고, 오직 돈만 아끼려는 삼류 짜깁기 영화였기에 촬영 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 세트장도 없어 주로 대만의 한적한 산속이나 숲속을 돌아다니며 게릴라식으로 액션 신을 찍었다. 하지만 좌효호는 이 엉망진창인 현장에서도 짜증 하나 내지 않고 대철수 감독의 디렉팅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비록 영화는 극장 구경도 제대로 못 한 삼류 비디오 영화로 끝났지만, 좌효호는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최소한의 비용과 필름으로 화려한 액션 화면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생존 연출법을 마스터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아역스타 출신배우가 조잡한 짜깁기 영화에 나온 모습을 보면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에게도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대만의 유명 경극무술 학교인 '육광희교(陸光戲校)'에서 익힌 무술실력을 인정받아 영화 '호소자'에 아역배우로 캐스팅 되었다. '호소자'의 제작사는 전 아시아를 뒤흔들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지만, 정작 어린 좌효호의 손에 쥐어진 돈은 거의 없었다.

출연료는 모두 그의 부모 혹은 친척들이 가로챘다. 좌효호의 부모는 매우 가난하고 먹고살기 힘들었다. 미성년자였던 좌효호의 출연료 통장도 모두 그의 부모가 관리했는데 아들이 하루아침에 대박이 나자 이성을 잃어버렸다. 평생 큰돈을 만져본 적 없는 가난한 부모 앞에 수십억 원의 돈이 쏟아지자 부모는 아들의 미래보다 이 돈으로 더 큰 사업을 해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허황된 꿈에 부풀었다. 주변에서 온갖 친척과 사기꾼들이 부모에게 접근했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 "돈을 불려주겠다"며 좌효호가 피땀 흘려 번 돈을 빌려 가거나 사업 자금으로 가져갔다.

결과적으로 금융이나 투자에 대해 무지했던 부모는 귀가 얇아 대부분의 돈을 사기를 당하고, 친척들의 무리한 사업 자금을 대주다가 아들의 피땀 어린 돈을 눈 깜짝할 사이에 공중분해 시켰다. 돈은 어른들이 다 쓰고, 정작 성인이 된 좌효호에게 남은 것은 아역 시절 와이어도 없이 맨땅에 구르며 다친 척추 부상과 관절 염증, 그리고 당장의 생계고뿐이었다. 좌효호가 군대를 전역한 후,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확인했을 때 잔고는 0원이었고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만 남아 있었다. 부모는 아들이 벌어놓은 돈을 자신들의 유흥비, 방탕한 생활, 그리고 무리한 사업에 투자해 완전히 날려버린 상태였다.

이 비극적인 상황에 그는 어쩔수없이 생계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정무영웅 2' 같은 짜깁기 영화에 출연해야 했다. 부모의 배신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마음고생에 무너지거나 삐뚤어지지 않고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본인이 스타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빠르게 직시했고 배우로서의 미련을 과감히 내려놓았다. 그는 '정무영웅 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 영화의 감독이었던 무술감독 '대철수(Robert Tai)' 밑으로 들어가 현장 스태프들과 인맥을 쌓았다. 막내 스태프로서 영상 제작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영화현장의 스턴트 대역과 스태프들의 잔심부름부터 시작했다. 밤낮없이 밑바닥 스태프 일을 하며 빚을 갚아나갔다. 가장 화려한 곳에 있던 사람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걸레질과 잔심부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밤새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며 그는 자신의 특기인 무술을 살려 스턴트맨과 무술 감독으로 입지를 다졌다. 점차 연출력을 인정받아 90년대 후반부터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무술지도 및 무술감독으로 활약하며 현장 지휘 능력을 키웠다.

무술감독으로서 연출 감각을 쌓은 그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대만 방송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드라마 감독으로 당당히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무술감독 출신답게 드라마 내에서 역동적인 액션 시퀀스를 직접 매끄럽게 연출하는 감독으로 정평이 났다. 그렇게 버텼기에 지금의 '드라마 감독 좌효호'가 존재할 수 있었다. 과거의 영광에만 갇혀 방황하다가 망가져 버린 수많은 아역 스타들과 비교하면 그의 생활력과 정신력은 정말 독보적이다. 결국 이 씁쓸한 괴작 영화는 옛 아역 스타의 흑역사라기보다는, 몰락해 가던 90년대 중화권 B급 영화계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청춘배우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버텨낸 생존 기록이었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반성하기는커녕 좌효호가 다시 돈을 벌기 시작하자 또다시 손을 벌리며 그를 괴롭혔다. 부모가 전 재산을 탕진하고도 계속해서 돈을 요구하자, 그는 살기 위해 부모로부터 도망쳐 인연을 끊었다. 인연을 끊은 초기에는 부모가 그를 다시 '돈줄'로 이용하기 위해 수소문하며 찾아와 괴롭히기도 했다. 아들의 돈을 모두 탕진했던 부모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 병들고 경제적으로 매우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병원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수십 년간 쌓인 원망이 깊었지만, 자식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하기 위해 병상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만난 부모는 이미 늙고 병들어 과거의 당당하고 탐욕스럽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모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좌효호 역시 눈물을 흘렸지만, 그것은 과거에 대한 용서라기보다는 지독했던 불행과의 작별이자 체념에 가까웠다.

그는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아역 스타 시절을 돌아보며 "내게 어린 시절은 없다. 그저 돈 버는 기계였을 뿐이고, 당시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 소풍이나 졸업여행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 인생 최대의 한"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2006년 오랜기간 교제한 비연예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후 얻은 귀한 외아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그는 "내가 겪었던 불행과 외로움을 내 자식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바쁜 드라마 촬영 스케줄 중에도 아들의 학교 행사나 성장을 살뜰히 챙기는 헌신적이고 다정한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3.13. 중진정무문(重振精武門 Return of Dragon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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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룡 주연. 양리칭[66]과 고웅 등의 유명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원조 정무문의 뒷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진진이 사실은 죽지 않고 은거하며 살고 있다가 일본인들의 만행에 다시 분노를 폭발시킨다는 내용.

3.14. 신정무문 1991(新精武門 一九九一 Fist of Fury 1991, 1991), 신정무문 뇌전영웅(新精武門 雷電英雄,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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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정무문(精武門 Fist of Fury, 1995)

파일:external/www.stephenau.com/fury_p_20.jpg

홍콩 aTV 정무문 홍보사진.

파일:external/www.lovehkfilm.com/fist_of_fury_1995.jpg

견자단의 포효

3.15.1. 개요

홍콩 aTV, 스타 TV 합작 드라마.

용소기(龍紹基) 감독[67]진목승(陳木勝), 등연성(鄧衍成), 양흔전(梁欣全)[68], 황금세(黃錦鈿), 정위문(鄭偉文), 호명개(胡明凱) 연출.

주연은 견자단, 윤천조(尹天照), 만기문(萬綺雯), 고웅(高雄), 유지영(劉志榮)[69] 등. 홍콩 aTV 첫방송은 1995년 8월.[70]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에는 90분 분량에 13부작이었고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원판은 총 30편이었으며 국내에서는 채널 CGV의 전신인 현대방송을 통해서 박일 등의 호화배역으로 더빙 방영했다. 이 작품이 인기를 얻자 아예 KBS 2TV를 통해 재더빙되어 판관 포청천의 후속작으로 1996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 포청천과 같은 시간대에 2회씩 방영되었다. 광동어 원어판은 무협 TV나 영화 TV 등 다양한 채널에서 방영되었는데 최근 칭 TV에서 방영 중이다.

비슷한 시기 경쟁 방송사 TVB에서 내보냈던 작품은 신조협려로, 바로 고천락, 이약동이 주연한 명작이었다. 시간대는 일부만 겹쳤지만(신조협려: 21:00~22:00/정무문 21:30~22:30).

기본적으로 중국인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에 전편들에 비해서 민족주의가 노골적인 게 흠이라면 흠. 다만 신세대 시청자들을 위해서 태국의 킥복싱이나 일본의 여러 무술가나 영국 여자 무술인 등을 동원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냈다. 일본인이 중국 무술을 하는 건 따지지 말자

기본적인 인물구성이 복잡하고 이연걸판에서 인기를 얻은 일본 여자와의 사랑(정확하게는 일본 남자+중국 여자 사이에서 얻은 혼혈아지만)을 강조하였으며, 원작이나 다른 속편들보다도 특히 암울한 분위기가 특징. 물론 원작부터도 대체적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진진이 주먹 하나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다 결국 쓰러지는 스토리라 밝은 분위기따윈 없지만, 기본적으로 작품을 관통하는 감정은 분노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견자단의 정무문은 암울한 시대상에서 배어나오는 답답하고 암담한 상황을 영화판보다 훨씬 긴 분량 내내 밀도있게 묘사해서 전반적으로 분노보다는 우울한 감정이 강하게 드러난다. TV판으로 30편이라는 긴 분량을 제작하다보니 곽원갑의 죽음 직후에서 시작되는 원작과 달리 진진이 곽원갑을 만나서 정무문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부터 그려지는데, 이때 TV판 오리지널 캐릭터로 진진의 어린 여동생이 등장한다. 여동생과 함께 큰 도시로 온 진진은 힘겨운 세태에 부대끼면서도 가난하게 살아온 여동생을 잘 먹이고 입히려고 고군분투하지만, 여동생은 그런 진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초반에 죽고 만다. 진진은 곽원갑에게 은혜를 입고 정무문에 들어가지만, 기존에 정무문에 있던 곽원갑의 여러 제자들과 끊임없이 대립하거나 친해지거나 하는데 이렇게 미운정 고운정 든 사형들도 작품 후반부에서 갑자기 몰살당한다. 곽원갑의 운명도 원작대로 중독을 당한 채 일본인 무술가와 싸우다 죽게 된다.

그나마 진진의 인생에 빛을 던져주던 일본 여자친구에게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그 약혼자는 진진과의 대결에서 패한 후 할복을 하게 되고 이 일로 인해 여자친구는 진진의 곁을 떠나게 된다. 가면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정무문을 돕는 조력자들도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명줄이 길지 못해 암살당하는 등 여러모로 암울하기 그지없다.

후반부는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서는 지사형 연기를 강조했으며 진진도 무술가답지 않게 인민복 코스프레를 하고 나온다. 실제 인물인 장작림과 장학량이 가명으로 주요 인물로 출연하는 게 특징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인들은 천하의 개쌍놈으로 731부대 지부를 영사관 지하에 설치하고 시간을 달리는 731 영사관 지하에는 수십 명의 무술인들이 기거하는 본부가 있다.

견자단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전혀 그답지 않은 열혈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역시 마지막은 이소룡판의 호쾌한 결말과 같다. 이소룡 특유의 포효에서부터 표정 연기까지 꽤 그럴싸하게 재현해 멋지다. 그러나 알고 보면 페이크라는 게 후속작에서 나온다

기교 없이 쌈박하게 멋을 낸 OST[71] 는 곰TV의 스타2 예능(?) 절대지존에서도 마구 쓰인다. 어딘가에서 많이 들은 곡 느낌이 팍팍 나서 재미있다.

일본인 중에서도 꽤 괜찮은 남자로 나오는 이시이 히데아키(石井英明)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일본인 중에서도 유일하게 혼자만 하카마를 거꾸로 입고 있다. 일부러 캐릭터를 만들려고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하카마는 원래 그 사다리꼴형 천이 뒤로 가게 입는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일본인 캐릭터가 나올 때 복색이나 시대 고증이 잘못되는 것은 흔한 일. 원조 정무문에서도 잘못 입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선 왜 얘만? 다들 그러면 차라리 고증이 좀 잘못됐구나 하고 넘어갈 수나 있겠는데 이건 뭐...

3.15.2. 등장인물

  • 진진(陳真) - 견자단(KBS 성우는 이재용)
  • 곽원갑(霍元甲) - 고웅(高雄)(KBS 성우는 이강식)
  • 타케다 유미(武田由美) - 만기문(萬綺雯) (KBS 성우는 김수경)
  • 유진성(劉振聲) - 오정엽(吳廷燁)
  • 채육근(蔡六斤) - 유지영(劉志榮)
  • 채학부(蔡學富) - 윤천조(尹天照)
  • 이시이 히데아키(石井英明) - 임지호(林志豪)
  • 타케다 유키오(武田幸雄) - 양택림(楊澤霖)

3.16. 정무풍운 (精武風雲 Legend of the fist - Return of Chen Zhe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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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aTV, 스타 TV 합작 드라마인 95년 드라마 정무문의 최신 속편이다. 견자단이 주연을 맡았으며 무간도의 유위강 감독에 서기, 황추생 등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였다. 95년작 리메이크 드라마의 후속작으로 진진이 죽지 않고 살아서 1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자로 서부 전선에 파견을 나가 독일군의 기관총 공격을 파쿠르가 생각나는 회피로 피해서 접근한 다음 무술로 바른다.[72] 이후 파리에 은거하다 20년대 격동의 상해로 돌아와 죽은 동료의 신분으로 위장하여[73]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상해 유력 인사들과 접촉한다.[74] 한편 가면을 쓰고[75] 중국인을 일본군의 테러로부터[76] 구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리고 일본군의 테러 행위에 상해는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고 진진은 상해 일본군의 중심인 홍구도장과 싸우기로 한다.

최종보스는 진진이 젊었을 때 죽인 홍구도장 사범[77]의 큰 아들.[78][79] 아버지 쪽이 손도 한 번 못 대보고 떡처발렸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진진을 궁지로 몰아넣은 아들 쪽의 능력치가 좀 더 출중한 듯하다. 하지만 진진이 고문받다 풀려나서 몸을 추스른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란 것을 생각하면... 게다가 이미 수하들과 난전을 벌인 후란 것까지 감안한다면...

홍구도장과의 싸움에서는 거의 이소룡의 정무문과 흡사하다. 결국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소룡 오마쥬인 셈. 다만 영화 전체에 깔려있는 민족주의적 정서는 역대 정무문 작품 중 가장 강한 편.[80] 영화 초반부터 엑스트라들이 모여 앉아 대만을 친일한다는 식으로 까는 대화를 나누고, 진진과 일본인 여성과의 로맨스는 정무영웅과 다르게 그냥 민족감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비극으로 끝나고, 일본인들은 그냥 전부 악당으로 그려서 정무영웅의 후나코시같은 그나마 좀 괜찮아 보이는 일본인 캐릭터는 한 명도 안 나오는 반면 중국인 캐릭터 중에는 분명 존재했을 친일 인사는 한 명도 안 나온다.[81] 영화평론가 중에는 아무리 제국주의 일본에게 향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좀 진한 민족주의적 감성이 관람에 방해된다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

한국에서는 2011년 6월 23일에 '정무문: 100 대 1의 전설' 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으며 제목의 오글거림만으로는 이미 전설이다. 전국관객은 117,141명.

3.17. 정무진진 (精武陈真 Chenzhen Legend,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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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정무영웅:곽가권지 정예무영 (霍家拳之精武英 Fist of the Fury Hero, 2019)

곽원갑의 제자 진진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우연히 위험에 처한 야마다 히로코를 구해 준 후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청나라 유학생들 모임인 자강사는 실종된 청나라 유학생들을 찾아헤매고, 일본 군부에서 청나라 사람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자강사는 야마다의 집을 급습했다가 잡히고, 소식을 들은 진진이 친구들을 구하러 가는데...

장문걸, 조신유 주연. 대일본제국 군부가 중국인 유학생들을 납치하여 전쟁병기를 만들려는 목적의 생체실험의 음모를 막아낸다는 내용인데 일본군 군부와 흑룡회가 주요 조직으로 나온다. 막판에는 일본군에게 생체실험으로 잡혀간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곽가권으로 모든 것을 박살낸다. 한국에서는 정무문 2:1대 100의 전설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아무래도 바로 위의 작품이자 견자단이 주연한 정무문:1대 100의 전설 (원제:정무풍운)과 연관성을 넣고 싶었던 모양이다.

3.19. 정무문:전설의 흑협 (精武陳真 Fist of Legend, 2020)

중화민국 시대, 정무문의 제자 진진은 일본에서 신분을 숨기고 대학에서 공업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흑룡회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 낭인들을 패배시킨 신비의 남자가 진진이라고 의심한다. 흑룡회 부회장 치요 시노부는 계속해서 진진을 도발하고, 진진은 가면 쓴 남자의 정체가 형의권 사부 설자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진은 설자립의 조언에 깨달음을 얻지만, 치요 시노부는 진진을 끌어내기 위해 그의 친구들을 희생시키려 하는데...

주연은 서명호, 황미정, 서소항, 왕구승. 검은 교복에 흑색 가면을 쓰고 나타나서 일본 낭인들을 때려잡는 내용이다. 이 작품도 바로 위 작품처럼 흑룡회가 나온다. 1912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해서 곽원갑의 제자 진진이 일본에서 흑룡회의 사무라이와 대결을 펼치는 영화. 다양한 중국 무술로 사무라이, 닌자와 상대하는 액션신은 볼 만하다.

3.20. 신 정무문:무혼 ( 新精武门:武魂 New Fist of Fury, 2021)

  • 중국 원판 시놉시스
    나라의 혼란을 틈타 생겨난 흑우회는 모든 문파를 제압한 후 멋대로 세상을 휘젓는다. 정무문의 문주 곽장공은 죽을힘을 다해 흑우회의 혈마라와 싸우지만 결국 패하고 필생의 정수인 오기정문을 아들에게 전해 준 후 눈을 감는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이후, 유정이라는 소년이 곽가권관에 찾아와 무예를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곽 사부는 살기가 강하다며 돌려보내는데...
  • 한국 개봉명 시놉시스
    무림대회에서 혈마와 무신(武神)간의 치열한 결전이 벌여져 혈마가 승리를 거두자, 맹주 곽장공은 자신의 무술 공력을 소년 유정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숨을 거둔다. 14년 후, 무술 연마를 꿈꿔왔던 유정은 우연한 기회로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자만이 입문이 허락되는 곳이라 불리는 ‘곽가권관’에 오게 된다. ‘곽가권관’의 맹주 곽사부가 유정에게 입문할 기회를 주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 길로 거리를 배회하던 유정은 무림 고수 당백백을 따라 절대 무림고수를 찾아 떠났으나 정작 혈마를 만나게 되는데...

2021년 9월 8일 개봉한 영화로 진관영, 장맹안, 장춘중 주연. 정무문 시리즈의 수많은 파생작들 중 일본과 관계가 전혀 없는 이색작품. CG가 가미된 전형적인 중국의 무협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며 정통 타격액션을 추구하는 정무문과는 달리 검을 무기로 한 무협영화로 변질된 작품이다. 극장용이 아닌 중국의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인 아이치이의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되었고 한국에도 IPTV를 통해서 소개되었다.

4. 만화 정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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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정무문들과는 눈꼽만치도 관계없는 해묵은 대만산 에로무협만화. 1990년대쯤 엄청난 삭제 후 정식발매되었다. 이런 마이너한 만화가 정식발매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아직도 공유 사이트 등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은근히 아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참고로 정식발매명이 좀 대단한데 '드래곤러브' 다(...)

5. 모바일 게임 정무문

당연히 위의 영화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국의 픽토소프트에서 발매한 모바일 게임으로 3편까지 나왔다.

샤오샤오처럼 검은 실루엣의 스틱맨을 조종하는 액션 게임으로, 스승의 복수를 한다는 위의 영화 내용과는 달리 1편에서는 납치당한 연인. 2편에서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싸운다는 내용.

기술 모션의 경우 아랑전설 시리즈의 모션을 가져왔으며 메가크래시는 파워 챠지를 사용하며 2편에서는 반격기로 라이징 태클을 사용하며[82] 기를 전부 모았다면 초열파탄을 사용한다. 3편의 일섬의 경우 참영권을 사용한다.

1편에서는 기본적인 스테이지만 있으며 일반모드 이외에 시간제한이 존재하는 타임어택과 서든데스 모드가 있다. 일반모드에서는 제한시간이 없으나, 타임어택은 체력이 무제한인 대신 제한시간이 존재하며 서든데스는 일반모드에 시간제한이 추가된 정도이다.

3편의 경우 정무문1, 2와 다르게 단색 실루엣 인물 구도도 바뀌어 주인공과 적의 모습이 도트 그래픽으로 그려졌다.[83]

콤보와 반격기 및 공방 총 30여종이 넘는 스킬 트리가 추가되었으며 스킬콤보라는 것을 도입하여 스킬을 시전하면 딜레이없이 다른 스킬로 이어 줄 수 있는 등의 막나가는 플레이도 가능하여 콤보 연타만 제대로 걸리면 웬만한 적은 물론이고 보스도 뼈도 못추리고 요단강을 건넌다.

또 전작 특유의 던전식 게임진행 방식[84]을 버리고 일직선으로 진행하도록 단순화시켜 전작 미로식으로 구성된 스테이지를 헤매던 유저들을 배려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식 구성이기 때문에 굉장히 단조롭다. 장애물도 기껏해야 상자더미 하나뿐이고, 적들 패턴도 다 거기서 거기라 오히려 재미만 반감되고 말았다.

전작에서는 경험치로 스킬을 획득했던 반면 스킬트리라는 시스템이 생겼는데 이것도 영 좋지 않다. 스킬에 숙련도라는 게 있어서 더 높은 레벨의 스킬을 달성하려면 적어도 50번은 적에게 마구 갈겨야한다[85] 게다가 초반에서는 쓸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서 스킬 하나 배우려고 그것만 주구장창 파는 어이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또 정무문1, 2에서 보스만 만나면 수십 번을 죽어서 유저들이 불평한 걸 감안했는지 적들이 굉장히 느리다. 어느 정도냐면 주인공은 달리면서 싸우는데 적들은 나몰라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으면서 승부한다.

그리고 이 게임의 가장 큰 맹점은 무한 공중 콤보.

핸드폰 상에서 0번을 누르면 주인공이 유도 자세를 하는데, 이 상태에서 적이 전면공격을 날렸을 때 5번을 누르면 어퍼컷을 날리면서 적은 그걸 맞고 제자리에서 공중에 뜬다. 이때 적이 공중에 뜬 상태에서 어떤 공격을 해도 적이 뒤로 밀리지 않고 그냥 계속 그 자리에서 뜬다. 다시 말해서 그냥 가만히 주먹질하던 발차기를 하던 스킬을 쓰던 적은 일반적인 격투게임처럼 뒤로 날아가지 않고 그저 위로 솟아오르기만 한다. 게다가 보스, 심지어 최종보스마저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라서 땅을 딛어보지도 못하고 죽게 만들 수도 있다.

물리의 기본 법칙마저 어긴 이 괴이한 현상 때문에 자연히 '가드 - 반격기 - 공중에 뜬 적을 공중콤보로만 공격'이라는 패턴으로 흘러가게 되어 게임 난이도가 매우 낮아졌다.

텐션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적을 타격할 때마다 텐션게이지가 조금씩 게이지가 상승하면서 50% 이상이면 공격력이 소폭 증가, 방어력이 소폭 감소하며 텐션이 100%일 땐 공격력과 반격기가 2배이상 강화된다. 대신 방어력이 매우 낮아지며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이 상태에서 반격기를 쓰면 웬만한 놈들은 다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일부 보스는 데미지를 입어도 바로 일어서서 때리므로 그냥 공중 콤보로 하늘을 날게 해주는 게 훨씬 낫다. 쌓인 텐션게이지는 명상을 사용해 줄일 수 있으면 소모된 텐션게이지에 비례해 조금씩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시나리오 모드, 무한 모드, 보스 모드의 총 3개의 모드가 존재한다. 시나리오는 기존처럼 스테이지로 진행되는 모드이며 무한은 증원되는 적들을 얼마까지 쓰러트릴 수 있는지 도전하는 모드이다. 보스 모드의 경우 시나리오 어려움 난이도를 클리어해야 해금되며 기존에 나왔던 보스들과 대결하는 모드이다.

엔딩의 경우 멀티 엔딩을 채택했는데, 난이도별로 엔딩이 바뀐다. 기본적으로 쉬움은 배드, 보통과 어려움은 해피로 진행된다. 일부 SKT 기종에서는 쉬움과 보통이 해피, 어려움이 배드로 나온다.

기게이지를 모아 사용하는 필살기는 일반적으로 2번째까지만 사용이 가능하며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스킬 조각을 얻어야 한다. 필살기 4번째인 필승전타의 조각 중 일부는 랭킹등록을 해야 얻을 수 있으며 시나리오 모드에서는 쓸 수 없고 무한모드나 보스모드 전용으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평가는 거의 쿠소게. 무료게임타운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 걸 보면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1] 단 미국에서는 Chinese Connection이라는 제목이 많이 쓰이는데 이는 처음 미국 개봉 당시 배급사가 당산대형과 제목을 바꿔서 개봉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2] 나유의 부인.[3] 당시 정무관 측의 무술가와 시합하던 일본인 무술가가 골절상을 입고 패하자, 정무관 측에서 급히 사람을 보내서 치료해 주었다. 시합 후에도 부상당한 무술가 본인을 포함해서 양자 간에 덕담이 오갈 정도로 굉장히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4] 곽원갑의 사인에 대해 이설이 있긴 한데, 폐질환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이를 치료하기 위해 복용했던 비상 때문에 비소 중독이 생겨서 사망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실제로 후대에 중국고고학자들이 그의 시신을 발굴한 결과로는 정말로 비소가 검출되긴 했으나, 이것이 진짜 사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곽원갑이 독살당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5] 중국 전통의상 중 하나.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에서 입고 나온다.[6] 쌍절곤에 머리를 맞고 피를 뿜거나, 등에 칼이 꽂혀 죽는 장면이 나온다.[7] 가상의 인물로, 모티브는 곽원갑의 제자인 진공철(陳公哲).[8] 실존 인물인 진공철은 무술로 일본인들 조지고 다닌 인간 백정(...)이 아니라 문무를 겸비한 엘리트였으며, 무보다도 문 쪽에 좀 더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무술 관련 역사가이자 저술가로서 상당한 양의 저술과 업적을 남겼고, 홍콩의 고고학에도 상당히 많은 공을 남겼다.[9]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스승을 죽인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진진의 그 매우 강력한 주먹 공격을 견디지 못해 결국 죽고 말았다. 진진은 그 주방장과 풍 집사의 시체를 나란히 전봇대에 매달며 홍구도장을 향해 선전포고한다.[10] 홍구도장에 침입하기 전 도장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사전에 전화 수리기사로 위장한 채로 도장에 들어갔는데, 안경을 쓰고 영업용 미소까지 지어서 평소 이소룡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꽤 맹해 보여서 깬다.[11] 이때, 진진의 카리스마가 어찌나 대단했는지 정무문을 폐쇄시키고 정무문 사람들을 모조리 체포하겠다는 협박을 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일본 대사조차도 겁에 질린 나머지 결국 진진에게 머리를 숙이며 굴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12] 웃긴 건 이소룡과 공원지기가 이 간판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는 중에 웬 여자가 개를 데리고 공원에 들어가는데 이건 또 제지하지 않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이소룡이 저 개는 왜 들어가게 내버려 두냐고 따지니 공원지기는 '외국 개니까 괜찮다'고 한다. 참고로 이장면 촬영지는 마카오에 위치한 카모에스 공원이다. 다만 공원 입간판 부분은 영화에서 각색된 것으로 실제 공원에 있었던 안내문의 내용은 '개와 자전거 출입금지'였으며, 모든 중국인의 출입을 막은 게 아니라 중국인 중에서도 하층민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원화가 이소룡에게 시비를 거는 일본인을 연기했는데 그는 이후 홍구도장 액션중 중간보스급인 사범과 대결하는 장면에서 이소룡의 텀블링 장면 대역을 했다. 이소룡이 그런 원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용쟁호투에서 자신의 텀블링 대역을 다시 맡긴다.[13] 東亞病夫. 중국을 동아시아(東亞)의 병든 늙은이(病夫)라고 모욕하는 것. 특히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을 비하할 때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14] 사실 곽원갑의 장례식에 온 일본인들이 "패자들은 동아병부 글자가 적힌 종이를 먹는다"는 말로 도발하다가 결국 다음날 홍구도장의 일본 무술인들을 때려눕힌 진진한테 액자에 들어갔던 동아병부 글자가 적힌 종이를 먹히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거기에 다음에는 깨진 유리(!)를 먹여주겠다는 경고까지 덤으로 들었다.[15] 홍구도장에서 벌이는 1대 다수의 대결은 훗날 킬 빌 1부 후반의 녹엽정 대결로 오마주된다. 차이가 있다면 배경이 일본이고, 쌍절곤 대신 카타나를 들고 마구 썰어댄다는 것 정도?[16] 심지어 원조 정무문의 중화사상적 요소를 대거 없앤 이연걸 버전의 정무문에서도 진진이 홍구도장을 개박살내는 장면이 나오며, 마지막 대결 씬에서 메인 악역이자 최종 보스인 후지 테라오카가 승리하면 선물로 주겠다며 '동아병부' 현판을 보여주고 이를 진진이 박살내버린다.[17] 지금도 중국은 연해주를 비롯한 무려 300만 평방km라는 엄청난 러시아 영토가 중국 땅이라고 주장한다. 하긴 이게 맞는 말인 게, 청나라 최전성기 시절 영토가 1300만 평방km이 넘었던 것을 19세기 중반 러시아에게 넘겨버리면서 영토면적이 1100만 평방km로 줄어들어버렸으니... 지금도 극우 성향의 중국인들연해주러시아의 동북부 지역 영토로 가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꽂고 영유권 주장 시위를 하며 러시아 경찰과 충돌이 벌어진다. 사실 아편전쟁으로 홍콩마카오중국으로부터 임대 형식으로 받은 영국인포르투갈인을 적측 세력으로 넣으려다가, 당시 홍콩과 마카오가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에 이 적측 설정을 러시아와 일본으로 수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8] 용쟁호투, 맹룡과강, 사망유희에 등장한 로버트 월과 생김새가 비슷해서 같은 배우로 착각하던 사람이 많다.[19] 차이점이 있다면 정무문에선 이소룡 손에 다치고, 영웅무루에서는 달아나는 여인을 저격하려 오른쪽 눈을 스코프에 대고 있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주인공이 쏜 총알에 다친다.[20] 유도의 전신[21] 유도의 창시자[22] 하지만 스즈키 관장 역 배우가 일본인 하시모토 치카라였는데, 조언을 안해준 건지 말을 해도 무시당한 건지는 알 수 없다.[23] 이때 나유이소룡 대신 왕우를 데려와서 찍은 영화가 냉면호.[24] 단 총을 맞았다는 것은 발차기 장면이 멈추면서 이후 들리는 총소리로 암시되는 방식으로 처리됨.[25] 이러한 연출은 당대의 흥행작이었던 내일을 향해 쏴라의 오마주로 보인다.[26] 본작의 감독이었던 나유는 당산대형처럼 진진이 잡혀가는 걸로 끝나기를 원했다고 한다.[27] 일본에서는 이 작품 개봉일이 이소룡 사망 1주년인 1974년 7월 20일.[28] 사실 이때만 해도 일본 제국 시절에 겪은 무자비한 강제징병과 침략전쟁, 그리고 엄청난 패배의 충격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을 때라 일본 제국에 대한 반감은 일본 민간인들에게도 똑같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많은 문화인들도 대부분 일본제국에 대해 온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가 죽이던 매우 고통스러운 시대였다고 회고한다.[29] 이 영화가 개봉했던 1970년대부터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얼마되지도 않았던 시점이라서 전세계적으로 반일 감정이 뚜렷하게 남았다보니, 1940년대 이전 시기를 다루는 작품마다 일본인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식으로 묘사되는 일이 잦았다. 당장 정무문보다 10여년 전에 개봉한 콰이 강의 다리부터가 대놓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폭로하는 작품이고, 이소룡 사후 10년 뒤에 일본인 감독인 오시마 나기사가 만든 영화인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도 일본인 배역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나간 인간들로 묘사되었다. 원조 정무문에서 일본인들이 악역으로 묘사되는 건 당연지사였다.[30] 우치다 다쓰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이경덕 옮김, 갈라파코스(2010), p.136.[31]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던 홍콩 가수로, 코미디언 전유성의 전 부인과는 아무 상관없는 동명이인.[32] 개봉 날짜가 공교롭게도 이소룡이 사망한 지 딱 1주일 뒤였다.[33] 자동차 극장은 라디오 주파수로 소리를 들려준다.[34] 진진과 달리 이건 대놓고 총맞아 피범벅이 되니 사실상 배드엔딩이다(...).[35] 곽원갑의 장례식 장면과 흡사한 진진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이 려아가 이 장례식에서 할복자살을 하고 만다.[36] 쓰던 배우를 계속 쓰고 돌려쓰고 어떤 작품이 성공하면 따라하는 식으로 그 작품이 그 작품이 되면서 홍콩 영화계는 홍콩 느와르 전성기 시절의 흥행을 잃고 추락하게 된다.[37] 다만 곽동각에서는 진진이 등장하지 않는다. 진진 마지막에 진진이 죽었기 때문. 곽동각에서는 곽원갑의 아들인 곽동각을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38] 로맨스 요소는 원작에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나온다. 히로인이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묘가수인 게 다를뿐이다.[39] 오히려 악역 일본인은 상대적 소수이며, 다수는 선역이거나 최소한 중립이다.[40] 이는 서방권 중국인 이민자들이 현지의 숱한 인종차별에 지친 탓에 자연스레 중화사상에 이끌림을 받은 탓이 크다. 이소룡 본인부터가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내내 조연이나 단역만 전전하다가, 홍콩에서 대성공을 거둬서 금의환향한 케이스였으므로, 이런 기질이 상당히 드러나는 편이다.[41] 다만, 이연걸판도 중화 민족주의적 경향이 없는 게 아니다. 전작과는 달리 선역인 캐릭터도 있다지만 악역들이 모두 일본인인건 똑같고, 중국인 캐릭터들은 잘해야 반동인물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작중 초반에 자길 보고 '중국 돼지는 나가라'고 시비털면서 강의실에서 깽판치는 흑룡회 회원들을 진진이 직접 개발살내거나, 귀국길에 오르는 진진에게 미츠코가 일본에는 언제 돌아올거냐고 묻자, 그가 '일본군이 중국 땅에서 철수하면 돌아오겠다'고 대답하거나, 결말에서 죽음을 위장하고 상하이를 떠나면서 향후의 거취를 묻는 정무문 관계자에게 일본인과 싸우러 간다고 하는 등, 원작에도 있던 항일 정신이 이 작품에도 반영되어있다. 무엇보다 본작에서의 도장깨기 씬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홍구도장 측이 스승인 곽원갑의 죽음에 연관되어있다고 주장하면서 냅다 쳐들어간 것이며, 그때 스승이 직접 남긴 자 현판도 진진이 직접 개발살내고는 홍구도장을 치러가겠다며 뛰쳐나가는 등, 의외로 초반에는 원작의 이소룡과 비슷한 면모도 꽤 보여줬다.[42] 작품 중반에 아쿠타가와 류이치 관장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된 진진을 위해 증언을 해주어서 그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는데, 그게 아쿠타가와 관장이 살해당하던 시각에 진진과 자신이 숙소에서 뜨밤을 보내고 있었다고 증언한 거라서(...) 진진을 뻘쭘하게 만들었다. 재판에 있었던 후지테라오카가 그를 보고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 호색한이구만!"이라며 조롱한 건 덤이다.[43] 이 역을 맡은 배우 쿠라타 야스아키는 훗날 굉굉전대 보우켄저 THE MOVIE 최강의 프레셔스에서 치프 아카시 사토루의 아버지 역할로 특별 출연한다.[44] 그것도 자국 땅인 일본교토 한복판에서 이러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 역사였으면 법적인 처벌을 떠나서 비국민이라면서 일가가 사회적으로 생매장당하는 시대에서, 그야말로 의기를 보여준 셈이다.[45] 정작 정무문의 관장이자 진진의 사형인 곽정은은 소홍이라는 이름의 매춘부와 연인 관계를 맺고있었다. 그런데도 소홍은 같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정무문 사람들이 무난히 받아들이는데, 진진과 함께 교토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인 미츠코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끝까지 백안시한다. 작중 후반에 곽정은이 진진에 대한 열등감을 털고 그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진진과 미츠코의 관계를 인정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이 여전히 요지부동이니 결국 미츠코가 일본으로 귀국해버렸다.[46] 사실 쿠라타는 원조 정무문 촬영 때 스즈키 관장 역으로 물망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당시 장철 감독 파벌에 속해 있었던 탓에 캐스팅되지 못했다.[47] 사실 원작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생전의 이소룡중국권법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나름의 단점도 있으니 꾸준히 개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무술인 절권도부터가 기본 베이스는 태권도, 권투 등 중국권법이 아닌 무술들이 주가 되었는데, 이연걸의 리메이크작은 이소룡이 추구한 무술관을 충실히 계승한 셈이다. 물론 중국권법의 단점만 부각시키는 것은 아닌데, 작중에서 진진과 대련을 한 후나코시 후미오가 결투가 끝난 후에 중화권법은 순간적인 대처에 유리하다고 칭찬하는 장면이 있다. 심지어 대련 도중에 막상막하로 싸우다가 조금 밀리는 기색이 있자, 후나코시 사범이 갑자기 곽원갑의 권법으로 기술을 바꾸는 장면도 있다. 어느 쪽이 무조건 좋다거나 나쁘다는 편견을 갖지 말라는 의미다. 이것도 이소룡의 무술관을 반영한 부분이다.[48] 일본의 유명 가수 겸 배우인 나카야마 미호의 동생. 평성(헤이세이) 가메라 시리즈가메라: 대괴수 공중 결전, 가메라 3: 사신각성의 여주인공인 나가미네 마유미 역을 맡기도 했다.[49] 아버지의 사후 도장을 물려받았으나, 정무문의 제자들이 자신보다 진진을 따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급기야 일본인 여자까지 도장에 들이려 하자 결투를 신청했다. 패배한 이후엔 정무문을 잠시 떠났다가 진진과 재회하고 흑룡회의 초대를 받아서 함께 홍구도장으로 향한다. 후지 테라오카로부터 자신의 선친을 독살한놈을 찾았다며 눈앞에서 원수의 죽음을 보게 되고 첫 주자로 먼저 나서 싸우지만 비참하게 리타이어 한다.[50] 실제로 이소룡은 자신만의 무술인 절권도를 창시할 때도, 펜싱이나 복싱, 태권도 등의 중국 무술이 아닌 무술 종목들의 특징을 대거 참고했다. 무술에 대한 열린 자세를 보여주는 장면이야말로, 진짜로 그에 대한 경의를 드러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51] 이 사람은 중일 양국의 체급 차이, 그리고 영미 등 나라들의 개입을 우려하여 후지테라오카 등이 밀어붙이는 중국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52] 후지테라오카를 처치한 후에 일본 측 관계자가 진진이 죽어야 윗선에서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장면이 암전된 뒤 총소리가 나며, 다음 장면에서 사형인 곽정은을 포함한 정무문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시신을 운구하는 묘사가 나와서 원작과 동일한 배드 엔딩으로 가나 싶더니, 그 다음 장면에서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채 정무문 관계자와 함께 태연작약하게 차에 오르는 진진을 보여주어서, 원작의 결말을 아는 관객들을 벙찌게 만들었다.[53]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7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 중에서 일본은 독일과 싸우러 가는 거라고 미츠코가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게다가 칭다오는 중국 영토이 독일이나 일본 둘 다 침략자라는 진진의 언급까지 있으므로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이 맞다.[54] 실제 곽원갑은 고작 4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으므로, 아무리 10대 시절에 결혼하여 출산하는게 당연시되던 청나라 시기라 해도 원작의 려아나 본작의 곽정은같이 도장을 물려받을 정도의 장성한 자녀를 두기엔 무리가 있다.[55] 1910년이면 이미 의화단 운동의 여파로 중국일본을 포함한 열강들에게 개털린 뒤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본 역시 이제서야 겨우 강대국 말석 대접받고 조선도 갖은 난리법석 끝에 간신히 합병했던 시기라서 국력이 그리 강하지는 못했을 때이다. 상하이 조계 역시 다른 열강들과 공동으로 관할하던 터라, 자국령인양 현지의 중국인들을 이런 식으로 핍박했다간 열강들로부터 넌씨눈 취급받았다.[56] 원작의 진진도 정무도장이 위치한 상하이의 지리를 모른다던가, 스승인 곽원갑의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정무도장에 들어설 때 양복을 입고 나타나는 등, 학생 신분임을 암시하는 연출이 꽤 있다. 이는 모티브가 된 진공철이 무술인을 겸하는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였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57] 원작의 이소룡은 막 하관을 마치고 흙을 덮는 중이던 스승 곽원갑의 묘를 파헤치면서 스승의 죽음에 오열하며, 곽원갑을 독살한 배신자를 추궁하다가 그를 때려죽이고는, 그 시신을 길거리에 효수한다. 그러나, 이연걸은 여친의 삼촌인 후나코시 사범에게서 스승의 부고를 전해듣고는 이를 덤덤히 받아들이고, 곧장 귀국한 후에 정무문에 도착하자 조용히 스승의 영전에서 절을 하고 물러나며, 후에 후지테라오카가 정무문의 배신자의 정체를 밝히고는 곧바로 죽여버리자, 이에 놀라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않는다.[58] 애초에 둘이 사생결단을 내려는 생각조차 없었다. 대련 직전에 진진과 후나코시 후미오가 서로 이 대결에서 죽으면 고향으로 시신을 운구해주겠다는 살벌한 말을 해서 두 사람 모두와 가까운 사이인 미츠코를 불안하게 하더니, 대련에 임하기 전에 난데없이 후나코시 사범이 무슨 사우나를 즐기러온 사람인양 몸 좀 풀고 시작하자는 말을 해서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벼워졌고, 대련 시에는 말 그대로 즐기면서 서로에게 기술을 걸고는 후나코시 사범이 그만하자며 잘 놀았다는 듯이 진진에게 덕담까지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준다.[59] 이 작품에서 곽원갑의 자녀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며, 진진의 사형이자 정무관의 2대 관장으로 나온다.[60] 사족으로, 원조 정무문은 묘가수의 무술 연기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다.[61] 이소룡 특유의 표정이나 아뵤!하는 소리는 주성치가 영화에서 제일 많이 했다. 주성치는 이소룡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이소룡과 별 연관이 없어보이는 작품에도 이소룡 오마주를 꼭 한다.[62] 이 혁대는 나중에 이연걸의 히트맨(원제: 살수지왕)에서도 나온다. 최종보스의 서양인 경호원(폴 라포브스키 扮)이 반지와 구두 끝으로 레이저눈뽕 공격을 일삼자 눈부셔서 당황하다가 혁대로 깨부순다. 히트맨도 최종보스가 일본인(사토 케이지 扮)이고 칼을 사용한다.[63] 이후 부검 결과를 두고서 정무문 식구들이 설왕설래하는 도중에, 주방 일을 하던 한 젊은 여성과 주방장이 범인으로 의심받아서 주방장이 대노하는데, 이를 악용한 진범이 그를 죽여버리고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웠다. 사실 주방장도 완전히 무고한 건 아니고 곽원갑의 음식에 약을 탔기는 하나, 일시적으로 스턴에 걸리게하는 식으로 승부조작을 하는 것에 그치는 줄 알았다가, 그가 아예 사망한 탓에 이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려 한 것이다. 이를 사주한 진범이 죄도 뒤집어씌울 겸, 입막음을 목적으로 주방장을 목졸라 죽인 것이다.[64] 원작에서 이소룡은 이걸 이빨로 깨물어서 탈출했다(...). 반칙같아서 일견 황당해보이지만, 실전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무술을 지향했던 이소룡의 무술관을 생각하면 상당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65] 특히 본작의 이연걸은 하마터면 후지테라오카의 필살기인 척추 부러뜨리기에 당할 뻔했다가, 그의 머리채를 잡아서 힘을 분산시키는 식으로 타격을 최소화해서 빠져나왔다.[66] 홍콩여형사물 영화인 예스 마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배우다.[67] 이 외에 대표작은 드라마 'Fated Love(天長地久)'.[68] 미인심계의 감독.[69] 1951.11.09~2008.05.15. 폴리스 스토리에서 주도의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70] 이후 2003년과 2010년에 재방송했다.[71]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의 작품이다. 그는 이와 함께 견자단이 부른 주제가의 작곡도 맡았는데 견자단 본인이 가수가 아닌지라 녹음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시공사에서 낸 양방언의 책 '프런티어' 상상력을 연주하다' 192-193쪽으로.[72] 북양 군벌 정부는 당시 승전국 자격을 얻어 독일의 식민지가 된 산동반도를 되찾기 위해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전선에 파견했다. 그 결과 승전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그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뒤이어 반장전쟁중일전쟁이...[73] 이름은 기천원.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그리고 세간에서는 진진이 전선에서 죽었다고 알려졌다.[74] 이 대목에서 일본군 장교들이 제 안방인 양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라고 하며 꼬장을 부리자 견자단이 말쑥한 정장을 입고 피아노로 인터내셔널가를 연주하는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에 일본군의 행태를 불쾌해하던 모습을 보여주던 서양인들은 반가워하고, 일본군 장교들은 뭐 씹은 표정을 짓는 게 백미. 원래 견자단의 취미가 피아노라고 한다... 참고로 이 장면은 카페의 이름이기도 한 카사블랑카(영화)의 오마주이다.[75] 모습을 숨기기 위해서 '천산흑협' 이라는 이름의 가상의 영화 캐릭터로 코스프레. 이는 그린호넷에서 이소룡이 맡았던 카토에 대한 오마쥬.[76] 중국 해방의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기록이 된 살생부를 언론에 공개했으며, 이들 외에도 일본을 욕하던 영국의 유명 인사와 천산흑협의 활약을 기사로 내던 신문사 사람들을 죽인다.[77] 이 홍구도장 사범으로 쿠라타 야스아키(倉田保昭)가 출연했다. 이연걸의 정무문에서도 주인공의 애인인 미츠코의 할아버지이자 무도가인 후나코시로 출연했던 배우.[78] 하지만 스즈키(鈴木) 성을 썼던 이소룡의 원작과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치카라이시(力石)라는 성을 사용한다.입양보냈나[79] 암살 부대를 이끌고 중국인들을 암살하다가 진진에게 죽은 대장이 최종보스의 동생이다.[80] 원작의 중국을 욕하던 동아병부가 액자 대신 진진의 일방적인 호통으로 변한 것도 모자라 대사 직후 두둥 하는 효과음과 함께 클로즈업되지 않나, 마지막에 광폭화한 진진이 치카라이시가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무다무다 펀치를 먹이는데 중간중간에 숙청된 중국인 무술가들과 중국인들의 시위가 오버랩되면서 대놓고 이것은 중국인의 몫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아 다소 억지스럽다.[81] 그나마 동북군의 증 대사라는 인물이 일본군과 결탁했다는 언급이 나오며, 작중에서는 그의 아들인 증 장군과 반대파 세력인 동북 국민국의 탁 장군이 서로 가까운 사이인데 일본군이 일부러 증 장군 부부를 습격하고 후에 그 아내를 죽이는 바람에 탁 장군 부부가 일본군과 동북군에게 패해 죽었다고 한다.[82] 후반부의 적들 또한 같은 라이징 태클을 반격기로 사용한다.[83] 전작의 사오샤오 캐릭터는 필살기 3번째의 외기격인, 필살기 4번째의 필승전타 사용 시에 옆에 잠깐 같이 나와서 도와준다.[84] 2층으로 되어 있어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던지 연기 같은 함정이 있다던지[85] 특히 쉬움 난이도의 경우 적들의 방어력이 낮아서 스킬 한두방에 픽픽 쓰러져 숙련도가 잘 모이지 않는다. 만약 모든 스킬을 마스터하려면 원하는 스킬만 사용하는 것은 줄이고 최대한 모든 스킬을 골고루 사용해서 숙련도를 전부 올려야 거의 최종 직전 스테이지에서야 전부 배울 수 있다. 어려움에서는 졸개들의 방어력이 늘어나서 스테이지 중간쯤이면 전부 마스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