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미라. 고대 이집트 미라들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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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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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미라 문화에 대해 다루는 문서. 미라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미라이며, 미라의 대중적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문화이기도 하다.
2. 제작 방법
1. 시신을 눕히고 코로 꼬챙이를 집어넣어 코와 뇌 사이의 연골을 부순 다음 그 속을 휘젓는다. 꼬챙이로 한참 머리 속을 누비다 보면 콧구멍으로 분쇄된 뇌가 흘러나오는데 이 뇌는 모조리 버린다.[2] 두개골 속에 남아 있는 뇌 조각들은 약품을 넣어 다시 깨끗하게 씻어낸다.
2. 날카로운 칼날로 옆구리를 따라 절개한다. 절개한 부위로 폐, 위, 간, 장[3]을 꺼낸다. 단, 심장만큼은 사후세계에서 심판받을 때 꼭 필요한 부위[4]였기 때문에 잠깐 꺼내서 특수처리를 거친 다음 다시 안에 넣는다. 배 안을 깨끗이 비우고 나면 복강 안에 야자 포도주, 으깬 허브, 향신료를 주입해 헹군다. 내부의 이물질을 헹궈냈다면 몰약, 송진, 계수나무, 모든 종류의 향신료[5] 등으로 복강 속을 채운다. 속을 채운 후 향유와 술로 시체를 한 번 씻어내리고 절개부위를 실로 꿰맨다.
3. 시체를 탄산나트륨 속에[6] 70일 동안 파묻어 물을 쫙 빼내 탈수시킨다. 70일보다 빨리 꺼내면 물이 충분히 빠지지 않고 70일보다 오래 놔두면 몸이 지나치게 뻣뻣해져서 붕대를 감쌀 수 없다.
4. 70일 간 염장이 끝난 시체를 꺼내 술과 향유로 몇 번씩 닦아낸다. 이러면 냄새를 없앨 뿐 아니라 뼈 등이 붕대로 감는 과정에서 부러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다. 씻긴 시체 위에는 각종 향신료를 섞어넣은 황금빛 수지를 두껍게 펴바른다. 금빛 수지는 황금이 신의 살이라고 믿었던 이집트인들의 종교와도 연관이 있었고 박테리아나 벌레가 시신에 꼬이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 수지는 주성분이 송진으로, 열로 녹여서 발라야 했기 때문에 수지 자체의 항균 작용 외에도 고온으로 잡균을 살균하는 효과와 산소를 완전히 차단해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7] 시체가 지나치게 쪼그라들었다면 리넨 등으로 속을 적당히 채워서 사람 같은 모양을 만든다.
5. 마침내 붕대를 감는 단계다. 고급 리넨으로 만들고 고인의 축복을 비는 주문이 빼곡히 적힌 붕대를 접착제 역할을 하는 수지에 적신 후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발까지 꽁꽁 감는다. 한 겹만 감는게 아니라 몇 겹씩 여러 차례 둘둘 감아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고 완성 후에는 수십 겹의 붕대가 온몸을 두껍게 감싸게 된다. 붕대 사이사이마다 고인의 유품이나 부적, 보석 따위를 끼워넣는다.[8] 붕대를 감는 중간중간마다 사제가 옆에서 축복을 내린다.
6. 미라가 완성되면 고인의 모습을 본뜬 데스마스크를 씌우고 유가족들에게 돌려주었다. 이 미라는 관에 실려 막대한 부장품들과 함께 무덤에 묻히게 된다.[9]
위의 미라 제작법은 사실 파라오나 대귀족이나 할 수 있는 최고급 미라 제작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미라 제작처럼 값비싼 방법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중산층이나 소귀족은 그냥 특수제작한 삼나무 오일을 주사기로 복부에 주입했다. 이 오일을 넣어두면 장기를 녹이는 동시에 복강을 소독하는 효과를 한번에 줄 수 있었다.[10] 그리고 70일 간 소금에 절이는 건 똑같았다. 70일 간의 염장이 끝나면 항문으로 기름을 싹 빼낸 다음 붕대를 감고 추가처리를 거쳤다. 붕대를 감은 미라는 관에 넣어 마찬가지로 부장품과 함께 무덤에 안치했다.2. 날카로운 칼날로 옆구리를 따라 절개한다. 절개한 부위로 폐, 위, 간, 장[3]을 꺼낸다. 단, 심장만큼은 사후세계에서 심판받을 때 꼭 필요한 부위[4]였기 때문에 잠깐 꺼내서 특수처리를 거친 다음 다시 안에 넣는다. 배 안을 깨끗이 비우고 나면 복강 안에 야자 포도주, 으깬 허브, 향신료를 주입해 헹군다. 내부의 이물질을 헹궈냈다면 몰약, 송진, 계수나무, 모든 종류의 향신료[5] 등으로 복강 속을 채운다. 속을 채운 후 향유와 술로 시체를 한 번 씻어내리고 절개부위를 실로 꿰맨다.
3. 시체를 탄산나트륨 속에[6] 70일 동안 파묻어 물을 쫙 빼내 탈수시킨다. 70일보다 빨리 꺼내면 물이 충분히 빠지지 않고 70일보다 오래 놔두면 몸이 지나치게 뻣뻣해져서 붕대를 감쌀 수 없다.
4. 70일 간 염장이 끝난 시체를 꺼내 술과 향유로 몇 번씩 닦아낸다. 이러면 냄새를 없앨 뿐 아니라 뼈 등이 붕대로 감는 과정에서 부러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다. 씻긴 시체 위에는 각종 향신료를 섞어넣은 황금빛 수지를 두껍게 펴바른다. 금빛 수지는 황금이 신의 살이라고 믿었던 이집트인들의 종교와도 연관이 있었고 박테리아나 벌레가 시신에 꼬이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 수지는 주성분이 송진으로, 열로 녹여서 발라야 했기 때문에 수지 자체의 항균 작용 외에도 고온으로 잡균을 살균하는 효과와 산소를 완전히 차단해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7] 시체가 지나치게 쪼그라들었다면 리넨 등으로 속을 적당히 채워서 사람 같은 모양을 만든다.
5. 마침내 붕대를 감는 단계다. 고급 리넨으로 만들고 고인의 축복을 비는 주문이 빼곡히 적힌 붕대를 접착제 역할을 하는 수지에 적신 후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발까지 꽁꽁 감는다. 한 겹만 감는게 아니라 몇 겹씩 여러 차례 둘둘 감아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고 완성 후에는 수십 겹의 붕대가 온몸을 두껍게 감싸게 된다. 붕대 사이사이마다 고인의 유품이나 부적, 보석 따위를 끼워넣는다.[8] 붕대를 감는 중간중간마다 사제가 옆에서 축복을 내린다.
6. 미라가 완성되면 고인의 모습을 본뜬 데스마스크를 씌우고 유가족들에게 돌려주었다. 이 미라는 관에 실려 막대한 부장품들과 함께 무덤에 묻히게 된다.[9]
이것보다도 더 저렴한 방법도 있었다. 관장하는 것처럼 시체의 항문에 특수 약품을 넣어 장을 싹 녹여서 청소한 다음 70일 간 천연 소다에 파묻었다가 그대로 가족에게 돌려줬다. 당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미라의 질은 위의 방법들에 비해서 한참 떨어졌지만 이 정도도 당시로서는 양반이었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장기만 어찌어찌 제거한 다음 모래에 그대로 묻거나 암벽 동굴에 안치해 버렸다. 그냥 이 방법을 쓸 경우 운이 좋으면 미라로 보존될 수 있었지만 운이 없으면 그냥 썩어서 없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3. 특성
이집트 문명에서는 사후세계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이유로 다수의 인공 미라를 제작, 관리했으며 미라 제조 전문가들도 있었다. 붕대(아마포)를 몸에 감은 미라가 바로 이집트 미라의 특징.미라를 제작한 이유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관(死後觀) 때문인데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인 '카(Ka)'는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으며 그럴려면 그때 돌아올 육신인 '하(Ha)'가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어 시체 보존에 대한 경험과 약학지식 등을 동원하여 시신을 방부 처리한 것이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의 육체와 '이름' 등의 실체가 현세에 남아있어야 저승에서도 영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독특한 믿음을 가졌기에 영생을 위해서는 미라처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11].
복잡한 미라 제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이집트 기후가 워낙 건조하다 보니 바깥에 놔둬도 저절로 자연 미라가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12] 피라미드 등의 폐쇄적인 무덤 안에 시신이 안치되면서 시신이 부패할 가능성이 생겨나 결국 저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고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미라. 얼굴 부분을 보면 붕대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보일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감았음을 알 수 있다.
미라 제작 시 심장을 제외한 내장을 빼낸 후 시신 안에 다른 물질을 채웠는데 상류층은 송진과 향료를 섞어 넣었고 하층민의 경우 톱밥이나 돌덩이를 넣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몸을 탄산나트륨을 이용해 건조시키고 붕대(아마포)를 감은 후 관에 넣으면 끝. 이집트 미라의 역사를 기준으로 먼 훗날에는 미라 제조 문화가 고대 로마 문명권으로 확산되었는데 로마 문명권에서는 주로 관을 쓰지 않고 시신을 아마포를 감은 뒤 석고 또는 회반죽을 칠해 시신의 윤곽을 드러내도록 굳히고[13] 채색해 관을 대신하거나 석고를 칠한 뒤 그 위에 일상복이나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아마포를 더 감는 경우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생각을 뇌로 하는게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고 생각했고 사후 지하에서 오시리스가 저울에 심장을 달아 선악을 판별하고 저승 또는 천국으로 보내는 증거로 삼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심장은 가장 중요한 장기여서 꺼낸 다음 따로 붕대로 싸서 다시 넣거나 실로 꿰맸다고 한다. 한편 심장과 달리 뇌를 그다지 중요한 기관인 줄 몰랐고 뇌는 콧물 만드는 장기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미라 제작 시 시신의 뇌를 제거했다.
파라오의 일족이나 귀족의 경우는 제거한 장기(간, 폐, 위, 소장/대장만)를 따로 방부처리하여 카노푸스 단지라고 부르는 다른 용기에 담았고 중산층의 경우는 특수한 약물[16]을 시신의 항문에 주입해 내장을 다 녹여서 겉만 남은 시신을 미라로, 형편이 안 되는 서민들은 소금에 절이거나 그냥 건조한 토굴에 안치하여 자연적으로 건조되는 방식을 택했다.
미라로 만들 대상이 젊은 귀부인일 경우에는 시간(屍姦)을 방지하기 위해 며칠 방치하였다가 미라 제작자들에게 건네주어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야짤이 그려진 종이가 발견되는 등 할 사람들은 했다.(...)
고대 이집트의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고양이들의 미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개나 고양이같은 친숙한 동물뿐만 아니라 거의 웬만한 동물도 미라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특수한 동물들은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별도의 무덤에 안치되었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모셔지던 매, 따오기, 악어, 하마, 소의 미라는 살고 있던 신전의 묘지에 안치되었고, 신성시되었을 뿐 아니라 애완용으로도 키워지던 고양이 미라[17] 같은 것은 한번에 수십 톤씩 발굴되기도 했다. 19세기에 베니하산에서는 20톤의 고양이 미라가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했는데, 몽땅 갈아서 비료로 써버렸다고 한다.
2017년 영국에서 전국 박물관에 있는 이집트 동물 미라들을 X선 등으로 조사했더니, 사체가 실제로는 없는 '가짜 동물 미라'가 적지 않다는 게 밝혀졌다. 현대에 모조품을 만든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이 처음부터 가짜 동물 미라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를 연구한 리디야 맥나이트 박사는 두 가지 이유를 추측했는데, 하나는 동물의 사체 자체는 주인과 함께 매장하고 이후 기념품의 용도로 '모의 미라'를 제작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미라 제작자들이 사기를 쳤을 가능성이다. 후자의 경우, 당대 이집트에선 위에 언급한 것처럼 동물 미라 제작이 대단히 활발해서 '산업'으로 봐도 될 정도였으므로 이를 악용해서 가짜 미라를 만드는 사기꾼도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게 그 근거이다.
미라 풍습은 로마 점령 시대 이후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미라제작은 이집트 방식을 그대로 따랐으나 매장방식엔 차이가 생겼는데, 붕대를 감은 뒤 로마식 유화/모자이크화 방식으로 망자의 얼굴이 그려진 마스크를 씌우거나, 미라를 안치할 관에 망자의 생전 얼굴을 그려넣는 등이었다. 아예 생전에 영정사진처럼 그려둔 초상화를 붕대에 부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 초상화에 보정을 과하게 넣은 것이 현대에 밝혀지기도 했다.
이후 이집트 전통 신앙의 쇠퇴와 기독교/이슬람교의 박해로 미라 제작은 사라졌으나, 유럽이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든 이후 해부학의 발전에 따라 고대 이집트의 시신 방부 처리법을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오늘날의 엠버밍으로 그 여명이 이어진다.
4. 기타
미라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그림을 보면 항상 자칼처럼 생긴 동물 마스크를 쓴 인물이 함께 등장한다. 이건 아누비스의 마스크다. 아누비스가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신이자 죽음의 신이었기에 망자가 좋은 곳에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라 제작자들이 아누비스의 마스크를 썼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 고대 이집트의 전통 방식을 사용해 실험적으로 제작된 미라가 있다. MUMAB이라는 이름으로, 1994년에 메릴랜드 대학교 연구팀이 시신을 최대한 고대 이집트 시기에 사용된 방식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이 미라는 만들어진 후 [age(1994-01-01)]년이나 지났지만 당연하게도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
한때 서양에서는 미라 가루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이름으로 팔렸다.[18] 이 미라 가루는 아랍어로 역청(석유 타르, 아스팔트)를 일컫는 '무미야'[19]로 불렸다. 사실은 과거 중동 지역에서 아스팔트를 약용으로 쓴 적이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 '땅에서 새어나오는 검은 수지'라고 설명한 책을 본 유럽인들이 이집트에서 땅 파면 나오는 이상하게 잘 보존된 시체(미라)의 몸에 덮여있는 항균성 수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라에 사용된 수지는 값비싼 향신료를 아낌없이 섞어넣은 고급 수지였던데다 보존성도 매우 좋아 매장된 지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미라의 붕대를 풀면 시체 썩는 냄새 대신 향기로운 향신료 냄새가 짙게 풍길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걸 보고 약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점도 있다[20]. 이렇듯 원래는 미라의 표면에 덮여있는 수지만을 약용으로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 수지가 고갈되며 수지 밑에 있는 미라 본체, 즉 사람 시신까지 가루를 내서 살에 배어있는 수지 성분을 알코올로 추출한 팅크(tincture)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미라 가루가 인기를 끌자 시신을 파헤쳐 미라처리해 판매하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그냥 시체를 가루내서 미라 가루라고 속이고 파는 일도 있었다. 좀더 후대에는 미라를 가루내어 물감으로 사용했다고도 한다.[21] 때로는 미라는 갈아서 비료로 쓰고 겉을 싼 붕대는 벗겨내서 종이 만드는 원료로 쓰기도 했다.[22] 어떤 경우에는 미라를 장식용품이나 장작 대신으로도 사용했다.[23]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약용 미라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영상 중세에는 몰상식한 축산업자들이 미라를 싸던 붕대를 고기 싸는 포장지로 쓰면서 역병이 돌기도 했다(...)
영화 미이라 시리즈를 필두로 한 왜곡으로 인해 고대 이집트에는 대죄인을 산 채로 붕대 둘둘 감고 묻어버리는 등 생미라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극형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허나 실상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 처리란 것은 부활을 기원하는 의식으로써 노고도 돈도 꽤 드는, 고인의 시신에 대한 최고 최상의 예우 장례 방법이었다. 대죄인이나 범죄자들은 평범하게 참형, 화형 등으로 처형한 후 시신을 그대로 썩게(부활을 못 하도록) 내버려두거나 태워버렸다 한다. 이때는 사후의 눈/귀를 열어주는 종교적 의식도 취하지 않았고, 매장 직전 손과 혀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집트의 사후 세계관에서 절대 부활할 수 없도록. 죽으면 영혼이 신들과 지옥의 관문들에서 심판을 받는데, 이 때 자기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손과 혀를 잘라버리면 자신의 죄를 변호할 수 없으며, 눈과 귀를 열어주지 않으면 재판장까지 가는 저승길에서 길을 잃고 괴물들에게 잡아먹힌다. 그들의 종교관을 생각할 때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으로 던져버리는 방법.[24] 돈없는 서민들은 자연 미라가 되길 바라며 건조한 모래사막이나 동굴에 안치했다.[25]
아무나 못하는 고급 장례방법이었지, 끔찍한 처형법은 절대 아니란 소리.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과 좀 비슷하게 처리된 미라가 발견된 적이 있기는 하다. DB320[26]에서 무더기로 나온 미라중에서 Unknown Man E 라는 미라는 양가죽에 싸인 채로, 고통에 차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 관 같은 것도 없이 고대 이집트에서 부정한 것을 쌀 때 사용된 양가죽에 싸여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미라였던 것. 이 미라는 같은 곳에서 발견된 람세스 3세하고 유전자가 비슷해서 람세스 3세 암살 음모에 연루된 왕자 펜타웨레트(#)로 추정되었다 - 람세스 3세는 목욕 도중 목구멍이 칼에 찔려 살해당했는데, 조사 결과 둘째 왕비가 태자를 제치고 자신의 아들 펜타웨레트를 옥좌에 올리기 위해 벌인 짓이라는 게 발각되어 관련자 전원이 사형당했다. (내서널 지오그래픽 기사) 그리고 2012년 말, 연구진이 람세스 3세 미라의 목을 감은 붕대 안쪽에서 찢어진 부분을 확인했으며 # 2018년 2월에는 유전자 정밀 감식을 통해 펜타웨레트가 맞다는 점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 연구진에 따르면, 역적인 동시에 왕족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미라 처리 과정에서 이런저런 옥신각신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정식으로 미라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잘 말라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라가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펜타웨레트의 경우는 자살할 것을 강요받은 뒤 시신이라도 남은 케이스고, 나머지 관련자들은 전원 화형당해서 시신 자체가 남지를 않았다.
- 세케넨레-타오의 미라. 혐오감을 줄 수 있으니 열람시 주의 [펼치기ㆍ접기]
또다른 끔찍한 미라로는 이집트 제17왕조의 파라오 세케넨레-타오의 미라가 있다. 이 미라는 반역죄는 아니고 정말 잔인하게 살해당해서 그 모습이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해진 케이스다. 세케넨레-타오는 이집트 제2중간기의 혼란기를 살았던 파라오였다. 세케넨레-타오는 침략자 힉소스인들을 쫒아내기 위해 전투를 벌이다가 장정 몇 명들에게 둘러싸여 둔기로 처참하게 얻어맞고 죽음을 맞았는데, 어찌나 시체 상태가 안좋았는지 제대로 방부 처리마저 되지 못했다. 미라화 과정도 올바르게 거치지 못해서 박물관에 전시할 때 썩은내가 진동해서 관람객들이 기겁해서 가까이 가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하도 흉악하게 생겨서 훗날 미이라 시리즈의 악당 이모텝의 모델이 되기까지 했다.
DB320 무덤에서 한꺼번에 재안치되어 보존된 파라오들의 미라. 기존 무덤에는 보물들과 함께 묻혔기에 몇 십년도 안 돼서 처참히 도굴당했지만, 새로 안장된 DB320 무덤에는 부장품들을 함께 묻지 않았던 덕에 살아남았다.
파라오들의 미라는 의외로 대부분이 살아남았다. 총 45구의 파라오 미라들이 현재까지 보존된 상태다. 왕가의 계곡에 만들어진 파라오들의 무덤은 이미 고대 시대에 진작 털려나갔다. 도굴당한 무덤을 보고 경악한 사제들은 파라오들의 미라만 겨우 수습해서 한꺼번에 데이르 엘 바하리의 DB320 무덤에 파묻었다. 이 DB320 무덤에는 값비싼 부장품들을 함께 묻지 않았기에 도굴꾼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투트모세 3세, 람세스 1세, 람세스 2세, 세티 1세, 람세스 9세 등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대표적인 파라오들이 싹 다 이 무덤에서 발견된다. 그 외에도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에서 투트모세 4세, 세티 2세,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6세 등의 미라들이 추가적으로 발견되면서 사실상 신왕국의 파라오들은 대부분이 미라가 보존된 채 발견되었다.[27] 그러다 보니 신왕국 파라오들의 가계도를 만들기는 정말 쉽다. 이미 DNA를 채취할 만한 증거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람세스 2세의 미라와 투탕카멘의 미라가 매우 유명하다. 이집트 관광 산업의 돈줄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 더 자세한 내용은 파라오/미라 문서 참조.
게티 박물관(Getty Museum)에서 제공한, 미라 제작 내용을 담은 3D 애니메이션이 있다(#). Herakleides라는 인물의 미라로, 기원후(AD) 1세기의 고대 이집트 미라로 전체로 놓고 보면 비교적 최근의 미라다. 이름 역시 그리스 문자로 적혀있었다고 한다. 구글 검색을 하면 인물의 이름이 섞여 나오는데,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철학자인 'Heraclides Ponticus'와는 다른 인물이므로 혼동하지 말 것. 한글로 '헤라클레이데스'라고 적으면 거의 모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얘기만 나오므로 이 미라에 관한 내용은 로마자로 적거나 뒤에 Mummy 등을 꼭 붙여야한다.
기원전 1450년 최고(最古) '미라 제조법' 발견
자신이 죽은 후 미라가 되기를 원하는 어느 프랑스인은 자기가 묻힐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을 공동묘지에 미리 건설해두고 전통 방식으로 자신을 미라로 만들어 줄 기술자와 시술 재료를 미리 확보해 둔 경우도 있었다. MUMAB이 만들어진 지 2년 후에 촬영된 다큐멘터리에서 등장한 인물이었으니, [age(1996-01-01)]년이나 지난 지금은 그의 바람대로 미라가 되어 미니 피라미드 속에 잠들었을 것이다.
5. 대중매체에서의 미라
미라(Mummy)의 정확한 뜻은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시체이지만, 매체에서는 보통 '미라'라고 하면 저 시체가 다시 살아나서 돌아다니는 언데드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언데드로서의 미라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다. 이는 이집트 인공 미라만의 특징인데 보편적으로 묘사된다. 붕대를 뻗어서 목표를 구속하거나 끌어당겨 희생자를 권속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묘사도 보인다.
- 어째서인지 눈은 멀쩡하며, 그 부분만을 드러내 놓고 있다.[28]
- 불 또는 태양에 약하다.
- 파라오 같은 고위 계급인 경우엔 마법에 능하다. 이런 경우 스피릿 오브 파라오처럼 악역이 아닌 캐릭터도 다수 존재한다.
이외에도 등장하는 매체에 따라 세부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표적인 특징인 붕대를 두르고 있으면 보통 미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강시, 유럽과 아메리카-아프리카 문화권의 좀비, 이슬람 중동 문화권의 구울이라는 특징적인 언데드와 비교하여[29] 고대 이집트가 배경인 매체에 등장하는 언데드로 미라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30]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인데, 정작 이집트 신화에는 이러한 언데드로서의 미라라는 크리처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든 이유는 부활할 때를 대비할 육신이 필요해서였지 절대 저런 언데드 캐릭터를 상정한 것이 아니었다. 각종 매체에서 등장하는 미라라는 언데드 캐릭터는 서구에서의 왜곡된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 말에 왕가의 계곡 일대가 발굴되고, 20세기에 투탕카멘 왕의 무덤 발굴과 관련된 이야기가 널리퍼져 투탕카멘의 저주라는 도시전설로 발전하면서 공포물의 소재가 되어 종종 공포 영화나 액션 영화의 주연으로서 등장한다. 이는 고대 이집트 문화에 대한 후대의 몰이해와 당시 서구 열강에 신비스럽고 기괴하게 받아들여진 이집트 미라의 인식과도 관련깊다.
거꾸로 툼 킹처럼 제대로 된 세력으로 대우해주는 사례도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미라와의 대담〉이 되살아난[31] '알라미스타케오 백작'이란 이름과 직함을 가진 이집트 미라 얘기를 다루는데, 편견과는 전혀 다르게 대단히 지적이고 품격 있는 캐릭터로 나온다. 주인공들에게 과거 이집트의 문화와 종교[32] 및 기술[33]을 얘기해주며[34] 이집트의 미라들은 전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미래에 깨어날 수 있도록 기능이 정지되어 있을 뿐이라고 한다.[35] 그 이유는 사람들이 썼던 책이 몇백년이 지나면 알지도 못하는 후대 좆문가들의 제멋대로 넣은 주석들이 더해져 엉망진창으로 오역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이를 저술가 본인들이 직접 해결하기 위해 몇백년 동안 미라가 되어 '동면'에 빠진 다음 깨어나서 자기 책의 저술 의도를 직접 밝히기 위해서(...)라는 전개의 풍자적인 단편소설이다. 알라미스타케오 백작은 이후 앨런 무어의 젠틀맨 리그에서도 출연하게 된다.
6. 관련글
[1] sꜥḥ. 발음은 /sɑːh/이다.[2] 현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꼬챙이로 후비는 것 외에도 두개골에 약품을 넣어 뇌를 녹인 다음 중력으로 콧구멍으로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고 한다.[3] 대장과 소장을 한꺼번에 처리했다.[4]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에서 심장의 무게를 달아 고인의 생전 죄를 심판한다고 믿었다. 만약 심장이 너무 손상되어 도저히 수복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가짜 심장이라도 만들어 넣어야 했다.[5] 단 유향만은 쓰지 않았다고 한다. 잘못하면 시체가 유향 때문에 녹아서 훼손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6] 나일강 변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나트론(Natron)을 썼다.[7] 수지를 제대로 식히지 않고 뜨거운 상태 그대로 끼얹어 시신이 익어버리는 사례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투탕카멘이 있었다.[8] 이 풍습 때문에 파라오의 미라들 중에는 멀쩡한 게 없다. 미라 붕대 사이에 보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도굴꾼들이 붕대를 죄다 풀어제꼈기 때문이다.[9] 이때 미리 빼 놓았던 장기들을 보존처리해서 카노푸스 단지에 넣어 함께 묻었다.[10] 이러면 카노푸스를 제작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11] 사고로 시신이 수습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가묘와 유품 등으로 대체했다. 사실 사람이나 동물을 묘사한 조각상이나 인형, 그림과 글에도 묘사한 자의 영이 깃들 수 있다고 믿은 이집트인들이었기에 시신이라고 대체못할 것은 없었다. 또한 죽으면 시체 건사하기도 힘든 군인들은 '명예롭게 죽으면 파라오와 신들이 직접 영혼을 보호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사가 천시받는 직종이었겠지만, 고대 이집트는 오랜 기간 군사강국이었고 전사의 지위도 높았다. 물론 시신이 남는 것이 최고였기에 최대한 수습했으며 기아로 사망한 시신조차 미라 처리를 한 것이 발견될 정도로 미라 신앙은 귀족 평민할 것없이 절대적이었다.[12] 이 현상 때문에 미라 제작 문화가 생겼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시체가 좀처럼 썩지 않는 것을 보고 '일부러라도 시체를 보존해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사후관이 형성된 것.[13] 이 방법은 얼마가지 않아 쓰이지 않게 된다.[14] 일설에 의하면 투탕카멘의 미라가 이 시술을 거쳤다는 설이 있다.[15] 고위계층은 향료를 섞은, 두개골에 주입하자마자 굳어 버리는 (지금까지도 명확히 판명되지 않은) 물질로, 평민들은 톱밥, 돌 등으로 채웠다.[16]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삼나무 기름을 주입했다고 한다.[17] 여신 바스테트가 변신한 동물로 여겨져 역시 성스럽게 여겨졌다.[18] 미라를 약으로 썼던 인물은 영국의 찰스 2세가 대표적. 미라의 힘을 얻기 위해 가루를 몸에 발랐다고 한다.[19] 영어로 미라를 일컫는 'mummy'의 어원이 되었다.[20] 실제로도 약용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약으로 쓸 수는 있다. 다만 현대에는 굳이 문화재 파괴 + 고인드립을 저지르는 대신 직접 만드는 편이 훨씬 나을 뿐이다.[21] 미라를 갈면 고운 갈색 물감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갈색을 부르는게 'Mummy Brown'. 투명도가 좋아서 많은 화가들이 애용했지만 나중에 물감의 원재료(...)가 알려지면서 인기가 확 떨어졌다. 여담으로 에드워드 번 존스라는 화가는 자신이 쓰던 물감이 Mummy Brown임을 알고 땅에 묻어 버렸다고 한다. 헥스 코드로는 #824b27이다.[22] 19세기에 미국에서 유행한 콜레라의 원인이 미라를 쌌던 붕대라는 소문이 돌면서 중단되었다.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고 실제 콜레라로 죽은 사람 미라는 있지만 과학적으로 볼때 발굴 이후 묻어왔을지는 몰라도 썩지 않을 정도로 건조한 미라 몸속에서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의 세균이 수천년간 번식했을 가능성은 없다.[23] 마크 트웨인의 이집트 여행기에서 기관사들이 이런 개드립을 치는 대목이 있다. "영 화력이 안오르는데?" "평민 녀석들 말고 왕 좀 태워봐!" 미라는 바짝 마른데다, 제작과정에서 기름과 송진 등을 다량으로 사용했으므로 잘 타긴 했을 듯.[24] 오늘날 잘 알려진 잔혹한 처형법은 이집트보다는 오히려 고대 로마 및 동아시아, 중세 시대 유럽에서 주로 나온 것이고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25] 하층민들에게도 보편적인 방법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두치 지방에서 발견된 미라들은 모두 하나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되었는데, 가난한 외딴 마을이라 극심하게 굶은 흔적이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다수가 깨끗이 씻어 장기를 적출해 내고 그 자리를 톱밥이나 돌로 채워져 있었으며, 가발과 같은 간단한 장신구라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잖게 발견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현세보다 내세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26] 왕가의 계곡 항목에도 있듯, 다른 털린 무덤에서 수습한 미라들을 몰아넣은 무덤.[27] 좀 인지도가 있는 파라오들 가운데에서 미라가 발견되지 않은 파라오는 기껏 해봐야 아케나톤, 아이, 호렘헤브 등이고 나머지도 람세스 11세 등 권력이 약했던 파라오 몇몇 밖에 없다.[28] 사실 미라의 경우 제일 먼저 썩는 눈과 뇌를 빠르게 제거한다.[29] 다만 구울은 원래는 단순히 식인을 하는 요괴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좀비랑 이미지가 혼합되면서 언데드 크리처가 되었기에 조금 애매한 면이 있다.[30] 실제로 미라와 같이 등장하는 배경은 사막이며, 높은 확률로 고대 이집트에 자주 보이는 피라미드 안 금색 관에서 뚜껑을 열고 등장하는 연출을 볼 수 있다.[31] 주인공들이 호기심에 전기를 가하는 실험을 했다가 덕분에 기능이 정지되어 있던 미라의 몸이 생기를 되찾은 것.[32] 예상과는 달리 일신교였다고 말한다.[33] 초고대문명 수준이다.[34] 주인공 학자들 중 2명이 이집트어를 할 수 있었다.[35] 다른 가문들은 뇌나 장기를 따로 처리하여 보존하나, 미라가 속한 풍뎅이 씨족은 장기를 몸 안에 넣어놓은 채로 미라화하는 것이 관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