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梁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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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c499><colcolor=#ece5b6> 소량의 반란자 상사좌복야(尙書左僕射) 王偉 | 왕위 | |
최종직위 | 상사좌복야(尙書左僕射) |
성 | 왕(王) |
이름 | 위(偉) |
본적 | 진류군(陳留郡) 준의현(浚儀縣) |
생몰 | ? ~ 552년 6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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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중국의 남북조시대 후경의 측근 심복이자 소량의 반역자, 후경이 세운 한나라의 전략가 겸 개국공신.왕위는 양서에 따로 열전은 없으나 양서 제56권 후경등전(侯景等傳)에 왕위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청나라 때 편찬된 전양문(全梁文)에는 1권의 약 3분의 1 정도의 양을 차지할 정도로 양서에 짤막하게 남겨진 것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비중있게 쓰여졌다.
2. 행적
태청 2년(548년), 후경이 난을 일으키자 왕위는 임하왕(臨賀王) 소정덕과 함께 후경을 따랐으며 소연과의 전투에서 식량을 늘리기 위해 여기저기를 약탈했으나 부패한 양나라 조정에 대항해 후경에게 호응하는 반란군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식량은 바닥이 났다. 그러자 왕위는 후경에게 조언을 해 소연과 협상을 하도록 했다. 후경이 수도 건강으로 입성하여 소연을 감금시키고 진안왕 소강을 옹립하자 왕위는 그를 옆에서 호위하며 조정의 문서를 정리했다.대보 2년(551년), 후경은 왕극(王克)을 태사로 송자선(宋子仙)을 태보(太保)로 원라(元羅)를 태부(太傅)로 곽원건(郭元建)을 태위로 지화인(支化仁)을 사도로 임약(任約)을 사공으로 왕위를 상서좌복야로 색초세(索超世)를 우복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왕위는 원공(元功), 색초세와 함께 조정의 모주(謀主)가 되어 상서대의 사무를 맡았다.
후에 임약이 긴급함을 알리자 후경은 몸소 군사를 인솔하여 서쪽으로 올라가며 태자(太子) 소대기(蕭大器)를 인질로 삼고 왕위에게 건강을 지키도록 명령하였으며 후경은 서양(西陽)에서 양의 서문성이 후경을 격파하고 우승(右丞) 고적식화(庫狄式和)를 쏴죽이니 숨어서 건강으로 달아났다. 후경은 소강의 소생 율양공주(溧陽公主)를 모시며 총애하니 정사에 방해가 되었는데 이에 왕위가 누차 후경에게 이를 간하니 후경은 이 사실을
왕위가 말하길:「옛부터 정(鼎)을 옮기는데에는,반드시 폐립(廢立)을 거쳐 세워야 했으니,이미 위세와 권력을 보이고,그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을 끊었습니다。」이에 후경이 말을 좇았다。옛날 수광전(壽光殿)의 학사(學士) 사호(謝昊)에게 조서를 만들게하니「동생[1]과 조카[2]가 황위에 오르길 원하며 다투고,별이 질서를 잃은 것도,모두 짐이 적통이 아니기에,재앙을 부르고 오게 한것이니,무릇 황위를 예장왕(豫章王) 동(棟)에게 선양해야 할 것이다。」여계략(呂季略)로 하여금 그것을 싸서,황제를 압박해 서명하도록 하였다。
王偉曰:「自古移鼎,必須廢立,旣示我威權,且絶彼民望。」景從之。使前壽光殿學士謝昊爲詔書,以爲「弟侄爭立,星辰失次,皆由朕非正緖,召亂致災,宜禪位於豫章王棟。」使呂季略繼入,逼帝書之。
후경은 위위경(衛尉卿) 팽준(彭雋)을 파견하여 군사를 인솔하고 전각으로 입성해 소강을 폐하고 진안왕으로 삼아 영복성(永福省)에 감금하고 안팎의 시위(侍衛)를 물리치도록 하였으며 기병에게 가까이에서 그를 지키게하고 담장에는 탱자나무와 가시나무를 다 펼쳐놓도록 했다. 후에 예장왕 소동을 맞이하여 황제로 옹립했으며 건강에 있는 소강의 아들 대부분을 참살했다. 당시 진군(秦郡)에 있던 곽원건은 황제가 폐위됐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건강으로 돌아와 후경에게 간하였다.王偉曰:「自古移鼎,必須廢立,旣示我威權,且絶彼民望。」景從之。使前壽光殿學士謝昊爲詔書,以爲「弟侄爭立,星辰失次,皆由朕非正緖,召亂致災,宜禪位於豫章王棟。」使呂季略繼入,逼帝書之。
급히 후경에게 이르길:주상(主上)은 선제(先帝)의 태자로,이미 과실이 없는데,어찌하여 그를 폐위하였습니까!」후경이 말하길:「왕위가 일찍이 나에게『조속히 백성이 바라는 이를 제거하십시요』라고 간언했는데 때문에 나는 그를 받아들여 천하를 안정시킨 것이오。」이에 곽원건이 말하길:「나는 천자를 끼고 제후(諸侯)를 호령하여도,오히려 일을 해결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데,이유 없이 그를 폐하는 것은,곧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인데,어찌 안정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후경은 황제를 맞이해 복위(復位)시키기 위해,소동을 태손(太孫)으로 삼았다。
謂景曰:「主上先帝太子,旣無愆失,何得廢之!」景曰:「王偉勸吾,云『早除民望』。吾故從之以安天下。」元建曰:「吾挾天子令諸侯,猶懼不濟,無故廢之,乃所以自危,何安之有!」景欲迎帝復位,以棟爲太孫。
후경이 곽원건의 말을 듣고 소강을 맞이하여 황제로 세우고 개원하여 바로 세울려 하자 왕위는 급히 달려와 후경에게 간하였다.謂景曰:「主上先帝太子,旣無愆失,何得廢之!」景曰:「王偉勸吾,云『早除民望』。吾故從之以安天下。」元建曰:「吾挾天子令諸侯,猶懼不濟,無故廢之,乃所以自危,何安之有!」景欲迎帝復位,以棟爲太孫。
「폐립(廢立)이라는 대사(大事)를 어찌 자주 바꾸겠습니까!」
「廢立大事,豈可數改邪!」
이에 후경은 이를 중단하였으나 조정의 수많은 중신들이 다시 소강을 바로 세우기를 원하니 왕위는 소강을 시해하여 복위를 바라는 무리를 끊도록 간언하니 후경은 이에 사람을 시켜 시해하도록 하였다. 왕위는 그날 밤에 좌위장군(左衛將軍) 팽준, 심복 왕수찬(王修纂)과 더불어 옛날 후경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는 소강의 저택에 들어가 독을 탄 술을 주며 말했다.「廢立大事,豈可數改邪!」
「승상(丞相)은 폐하께서 우울증이 이미 오래되었다 생각하시어,신에게 명하여 오래 축수하도록 하였습니다。」태종(太宗)이 웃으며 말하길:「이미 황제의 자리를 넘겼는데,어찌하여 황제라 할 수있겠는가!축수하는 술이,장차 여기서 다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이에 팽준은 목이 굽은 비파를 싸가지고 왔으며,태종과 더불어 취하도록 마셨다。태종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완전히 취하여 말했다:「생각지도 않게 즐거움이 이정도에 이르렀구나!」이미 취하고나서 잠에 들었다。마침내 왕위가 나오고,팽준이 흙주머니를 바치자,왕수찬이 그위에 올려 황제를 죽였다。왕위는 문짝을 뜯어서 관을 만들고,영구를 성의 북쪽에 있는 술 창고 속으로 옮겼다。태종은 유폐된 후부터,다시 시중을 드는 사람과 종이가 없어서,마침내 벽과 판장에 글을 써서,시와 글 수백편을 만들었는데,말씨가 아주 처량했다。후경은 시호를 명황제(明皇帝)로,묘호를 고종(高宗)이라 하였다。
「丞相以陛下幽憂旣久,使臣等來上壽。」太宗笑曰:「已禪帝位,何得言陛下!此壽酒,將不盡此乎!」於是雋等繼曲項琵琶,與太宗極飮。太宗知將見殺,因盡醉,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旣醉而寢。偉乃出,雋進土囊,修纂坐其上而殂。偉撤戶扉爲棺,遷殯於城北酒庫中。太宗自幽縶之後,無復侍者及紙,乃書壁及板障,爲詩及文數百篇,辭甚淒愴。景謚曰明皇帝,廟號高宗。
후에 후경은 자신이 옹립해던 소동마저 폐위하고 황제를 자칭했고 삼공을 거느려 위상이 천하에 알려졌는데 왕위는 후경에게 칠묘(七廟)[3]를 세워야 한다고 간언하자 후경이 말했다.「丞相以陛下幽憂旣久,使臣等來上壽。」太宗笑曰:「已禪帝位,何得言陛下!此壽酒,將不盡此乎!」於是雋等繼曲項琵琶,與太宗極飮。太宗知將見殺,因盡醉,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旣醉而寢。偉乃出,雋進土囊,修纂坐其上而殂。偉撤戶扉爲棺,遷殯於城北酒庫中。太宗自幽縶之後,無復侍者及紙,乃書壁及板障,爲詩及文數百篇,辭甚淒愴。景謚曰明皇帝,廟號高宗。
후경이 말하길:「무엇을 칠묘라 하는가?」왕위가 말하길:「천자는 7대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아울러 7대의 휘를 여쭙니,후경이 말하길:「전의 세대는 나는 다시 기억하지 못하고오직 나의 아버지 이름이 표(標)라는 것을 기억하는데,그는 삭주(朔州) 땅에 있으니,어찌 여기까지 와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이에 무리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후경의 무리중에 조부의 이름이 을우주(乙羽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었고,그외에는 왕위가 이름과 지위를 만들었으며,원황제(元皇帝)로 추존(追尊)했다。
景曰:「何謂七廟?」偉曰:「天子祭七世祖考。」並請七世諱,景曰:「前世吾不復記,唯記我父名標;且彼在朔州,那得來啖此!」眾咸笑之。景黨有知景祖名乙羽周者;自外皆王偉制其名位,追尊父標爲元皇帝。
후경은 평소 혼자서 작은 말을 타고 날아가는 새를 탄환으로 쏘는 것을 즐겼는데 왕위가 이를 매번 그것을 금지하고 가벼이 밖을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후경은 울적하며 즐겁지 않았으며 이에 뜻을 잃고 왕위를 원망하며 말했다.景曰:「何謂七廟?」偉曰:「天子祭七世祖考。」並請七世諱,景曰:「前世吾不復記,唯記我父名標;且彼在朔州,那得來啖此!」眾咸笑之。景黨有知景祖名乙羽周者;自外皆王偉制其名位,追尊父標爲元皇帝。
「나는 황제가 되었지만 주고받고 배척되는 것이 달라지지는 않았구나。」
「吾無事爲帝,與受擯不殊。」
이후 진패선이 석두(石頭)의 서쪽 낙성산(落星山)에서 목책을 쌓아 군대가 8개의 성을 연결하여 곧바로 석두의 서북으로 나오니 후경은 이에 서주(西州)로 가는 길이 단절될까 두려워 스스로 후자감(侯子鑒)을 인솔하여 석두 동북에서 다섯개의 성을 쌓아 그들을 막았다. 후경은 왕위에게 명해 성을 지키도록 하였으며 상동세자(湘東世子) 소방제(蕭方諸)와 이전의 평동장군(平東將軍) 두유안(杜幼安)을 죽였다. 진패선과 왕림(王琳), 두감(杜龕), 왕승변(王僧辯)이 후경을 격파하고 그를 추격하니 후경은 대궐 아래로 도망쳐 감히 상서대로 들어가지 않고 왕위를 불러 옛날 황제를 폐하고 황상을 칭할 것을 간언한 그를 책망하며 말했다.「吾無事爲帝,與受擯不殊。」
왕위를 불러 그를 책망하며 말하길:「너는 나로 하여금 황제가 되게하고,지금은 나를 그르치게했다!」왕위는 능히 응대하지 못했으며,대궐을 둘러싸고는 숨었다。후경이 달아나려고 하자,왕위는 말고삐를 잡고 간하길:「옛날부터 어찌 반란을 일으킨 천자가 있었습니까! 궁안에 있는 위사(衛士)로,오히려 한번 싸우기,충분한데,장차 어디를 가려고 하십니까?」후경이 말하길:「나는 옛날에 하발승(賀拔勝)을 격파하고,갈영(葛榮)을 깨뜨리고,이름을 하(河)와 삭(朔)에 떨쳤으며,강을 건너 대성을 평정하고,류중례(柳仲禮)를 하복시키는 것을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하였으나,오늘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이에 석궐(石闕)을 올려다보며 탄식하기를 오래했다。이에 강동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담아서 그것을 말안장의 뒤에 걸고,방세귀(房世貴) 등의 백여명의 기병과 더불어 동쪽으로 달아나,오(吳)로 사답인(謝答仁)에게 가려하였다。후자감과 왕위 진경(陳慶) 등도 주방(朱方)으로 달아났다。
召王偉責之曰:「爾令我爲帝,今日誤我!」偉不能對,繞闕而藏。景欲走,偉執鞚諫曰:「自古豈有叛天子邪!宮中衛士,猶足一戰,棄此,將欲安之?」景曰:「我昔敗賀拔勝,破葛榮,揚名河、朔,度江平台城,降柳仲禮如反掌;今日天亡我也!」因仰觀石闕,歎息久之。以皮囊盛其江東所生二子,掛之鞍後,與房世貴等百餘騎東走,欲就謝答仁於吳。侯子鑒、王偉、陳慶奔朱方。
왕위는 달아나던 중 후자감과 흩어졌고 결국 수주(戍主) 황공희(黃公喜)에게 사로잡혀 건강으로 송치했다. 옛날 후경의 재상으로써 자신을 위협하던 왕위가 몰락하여 왕승변의 앞에 체포되자 이에 왕승변은 포박된 왕위에게 말했다.召王偉責之曰:「爾令我爲帝,今日誤我!」偉不能對,繞闕而藏。景欲走,偉執鞚諫曰:「自古豈有叛天子邪!宮中衛士,猶足一戰,棄此,將欲安之?」景曰:「我昔敗賀拔勝,破葛榮,揚名河、朔,度江平台城,降柳仲禮如反掌;今日天亡我也!」因仰觀石闕,歎息久之。以皮囊盛其江東所生二子,掛之鞍後,與房世貴等百餘騎東走,欲就謝答仁於吳。侯子鑒、王偉、陳慶奔朱方。
왕승변이 물으니:「경은 도적의 재상으로,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수 없고,초야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왕위가 답하길:「없어지고 일어나는 것은,운명이오。한제(漢帝)가 하여금 일찍이 나 왕위의 말을 좇았다면,명공(明公)이 어찌 이자리에 있었겠소!」상서좌승(尙書左丞) 우즐(虞騭)이 일찍이 왕위에게 모욕을 당한적이 있어서,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왕위가 말하길:「그대는 책을 읽지 않았으니,더불어 알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오!」우즐은 부끄러워 물러났다。왕승변은 나주자사(羅州刺史) 서사휘(徐嗣徽)에게 주방으로 진수하게 하였다。
王僧辯問曰:「卿爲賊相,不能死節,而求活草間邪?」偉曰:「廢興,命也。使漢帝早從偉言,明公豈有今日!」尙書左丞虞騭嘗爲偉所辱,乃唾其面。偉曰:「君不讀書,不足與語!」騭慚而退。僧辯命羅州刺史徐嗣徽鎭朱方。
후에 왕승변은 방세귀의 목을 베고 왕위, 여계략, 주석진(周石珍), 엄단(嚴但), 조백초(趙伯超), 복지명(伏知命)을 강릉(江陵)으로 압송했다. 왕위는 감옥에서 소역에게 5백자로 된 시를 올렸는데 이에 감탄하며 소역은 왕위를 특별히 사면하려 하였다. 그러나 곁에서 왕위를 질시하는 어떤 이가 소역에게 간하였다.王僧辯問曰:「卿爲賊相,不能死節,而求活草間邪?」偉曰:「廢興,命也。使漢帝早從偉言,明公豈有今日!」尙書左丞虞騭嘗爲偉所辱,乃唾其面。偉曰:「君不讀書,不足與語!」騭慚而退。僧辯命羅州刺史徐嗣徽鎭朱方。
「예전에 왕위가 만들었던 격문은 아주 좋았습니다。」
「前日偉作檄文甚佳。」
「前日偉作檄文甚佳。」
소역은 그 말을 듣고 그 격문을 구해 살펴보았다. 그러자 격문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다.
「항우(項羽)는 겹눈동자였으나,오히려 오강(烏江)에서 패배한 일이 있었는데,상동(湘東)은 눈이 하나이니,어찌 적현(赤縣)이 귀부하겠는가!」
「項羽重瞳,尙有烏江之敗,湘東一目,寧爲赤縣所歸!」
이에 소역은 분노하며 왕위를 불러들여 크게 화를 내며 혀를 기둥에 못질하고 배를 가르고 살을 저며서 죽었다. 후에 소역은 조서를 내리니「項羽重瞳,尙有烏江之敗,湘東一目,寧爲赤縣所歸!」
「왕위 등이 이미 죽었으니,나머지 의관을 입은 옛 귀족으로 압박받아,구차하게 살려고 하였던 사람과,용맹한 사인과 공로가 있는 호걸로,화광동진(和光苟免)으로 구차하게 위기를 모면한자는,모두 죄를 묻지 않겠다。」
「王偉等旣死,自餘衣冠舊貴,被逼偸生,猛士勳豪,和光苟免者,皆不問。」
왕위와 함께 강릉으로 압송된 여계략, 주석진, 엄단 등은 저자에서 주살당했으며 조백초와 복지명은 감옥에서 굶어죽었고 사답인은 소강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후경의 심복들 사이에서 특별히 사면되었다. 「王偉等旣死,自餘衣冠舊貴,被逼偸生,猛士勳豪,和光苟免者,皆不問。」
3. 평가
왕위는 『자치통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후경의 실질적인 측근 심복이었고 당시 조정의 대신들의 으뜸이었다. 본래 갈족 출신으로 군사적 재능은 뛰어났으나 정치에는 자질이 영 없던 후경을 사모하며왕위의 초기 행적에 대해서는 불명이지만 후경의 난에서 후경에 투신하여 군주으로 섬겨 강경하게 후경을 황제로 즉위시키고 양나라를 멸망시킨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왕위는 후경에 대한 충성심뿐만이 아니라 당시 막장테크를 탄 말기 양 왕조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왕위의 주군 후경이 사서의 기록에서와 같이 후경의 난으로 소량을 일단 멸망시켜 새왕조의 황제가 될 수 있었지만 무재만 넘치던 단순 무부에 불과했던 것이 그의 치명적인 한계점이었다. 그로 인하여 왕위는 결국 그의 군주 후경과 함께 패망하여 비참하게 끔살당하고 역사에서 신왕조 후한의 개국공신이 아니라 단지 후경의 난의 주동자 참칭 황제 역적 후경의 심복 측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 효원제, 소기.[2] 소예, 소찰.[3] 당시 양의 칠묘는 태중부군(太中府君) 소예(蕭裔), 회음부군(淮陰府君) 소정(蕭整), 제음부군(濟陰府君) 소할(蕭轄), 중종사사부군(中從事史府君) 소부자(蕭副子), 특진부군(特進府君) 소도사(蕭道賜), 태조(太祖) 문황제(文皇帝) 소순지(蕭順之), 덕황후(德皇后) 치휘(郗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