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0:27:45

야마우치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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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제3대 대표이사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
山内 溥 | Hiroshi Yamauchi
파일:야마우치 히로시.jpg
<colbgcolor=#de0000> 출생 1927년 11월 7일
일본 제국 교토부 교토시
사망 2013년 9월 19일 (향년 85세)
일본 교토부 교토시 사쿄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와세다대학 전문부 (법학 / 졸업)
직책 닌텐도 대표이사 사장 (1949년 ~ 2002년)
닌텐도 상담역 (2002년 ~ 2005년)
소속 닌텐도 (1949년 ~ 2005년)
1. 개요2. 행보3. 어록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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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닌텐도의 제3대 사장. 자신까지 이어진 족벌경영을 끝내고 이와타 사토루에게 자리를 넘겨 고문으로 몇 년 동안 있다가 2005년 6월 29일부로 완전히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

닌텐도를 교토의 조그만 카드 제조회사에서 혁신의 아이콘이자 세계 최고의 게임사로 만든 인물이다. 그가 50년에 걸친 세월에 닌텐도에서 세운 업적은 굉장하며, 그가 없었으면 지금의 닌텐도와 일본 게임업계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닌텐도 역시 이 사람이 세운 철학을 토대로 돌아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게 게임기를 튼튼하고 간단하게 만드는 것. 닌텐도가 게임 관련 분야 밖으로는 절대로 진출하지 않는 것.[1] 닌텐도의 콘솔 하드웨어는 절대로 적자를 보는 구조가 아닌 것 등이 있다.

야마우치 히로시 본인이 직접 고용한 인물인 요코이 군페이, 미야모토 시게루와 함께 닌텐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또한 게임 하나 개발하는 데 6년 넘게 걸린[2] 타지리 사토시가 만든 게임을 과감하게 투자하여, 포켓몬스터로 이미 발매된 지 오래되어 다 죽어가던 게임보이를 살려내는 등 인재를 보는 안목도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그리고 이와타 사토루가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닌텐도라는 거대기업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야마우치가 직접 그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회사를 맡겼기 때문이다.

2. 행보

호탕하고 직선적인 성격으로 유명했으며, 그 거침없는 행보와 독특한 겉모습[3] 때문에 팬 사이에선 '야쿠자' 또는 '오야붕' 등의 별명으로 불린다. 사장이 아니라 '쿠미쵸(組長:두목?)'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실제 야쿠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것도 굉장히 싫어했다. 인명록에서 자신과 비슷한 이름이 많다는 이유로 이름의 한자를 바꿨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또한 독단적이고 자존심 높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성향이 그가 이끈 회사인 닌텐도에도 주입된 경향이 있다.

또 엄청난 독설로도 유명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놓고' 이야기한 경우는 드물다. 교토 토박이답게 에둘러서 말했다. 예를 들어 플레이스테이션을 까려고 스퀘어를 까는 식.

그런 그가 위기감을 가지고 씹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로, 플레이스테이션3DOPTA(학부형회). 특히 대기업의 시장 진출에 큰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결국 소니에 밀려서 많은 자리를 내준 걸 생각하면 나름 선견지명. 멀티미디어라는 단어를 수식어로 홍보를 하던 세가 새턴과 플스의 차세대기 경쟁에 대놓고 '멀티미디어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 '멀티미디어'라는 단어가 등장은 했지만, 당시엔 실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르지 않다. 지금에야 동영상 보고 방송 보는 게 흔하지만 당시엔 기껏해야 PC로 10분짜리 동영상을 1시간에 걸쳐서 내려받고 재생하고 있던 시절이니...

그의 어록은 게임 개발자를 희망하면 이래저래 새겨들을 말이 많지만, 통신 기능에는 무척 부정적이었다. 실제로 닌텐도는 패밀리컴퓨터 모뎀슈퍼 패미컴사테라뷰로 두 번 연속 통신 기능으로 사업을 말아 먹은 전례가 있으니 부정적일 법도 하다. 각종 신기술에 관심이 많아 신작 게임기의 아이디어를 여럿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3D 출력과 다중화면 기능. 본격 3D 게임기로 출범한 버추얼 보이가 처참하게 실패했음에도 3D 기술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요청하여 게임큐브, 게임보이 어드밴스 SP에도 비록 활용되지 못했지만 관련 기능이 삽입되었으며, 스크린 기술이 결국 컨셉을 구현할 만큼 발전해 닌텐도 3DS로 결실을 맺었다. 닌텐도 DS가 두 화면을 가지게 된 것도 야마우치 사장의 강력한 요망 때문이었는데, 두 화면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다 터치 스크린 아이디어로 발전했다고 한다.[4]

젊었을 때는 빈둥거리며 놀려고 본가인 교토가 아닌 도쿄에 있는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진학. 그 와중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아버지가 집에서 나가고 다른 여자와 재혼한 등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조부가 사망한 시점에서는 아버지는 이미 사망해버린 바람에 조부의 뒤를 이어 1949년,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화투회사 닌텐도의 3대째를 이어받았다.[5] 3대째를 이어 받을 때 회사의 인척들을 몰아내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주위에 인척이 있으면 휘둘려서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6] 젊은 사장 길들이기 목적인 파업에도 강경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세계 최초플라스틱 카드(1953), 디즈니라이선스를 획득해 만든 미키 마우스 트럼프(1959)[7] 등의 성공으로 닌텐도를 일본 제일의 카드회사로 만들었다. '세계 제일의 카드회사'를 목표로 승승장구하다가 미국 시찰로 세계 최대의 플레잉 카드 제작사인 USPC에 견학하러 갔다가 USPC의 생각보다 작은 규모를 보고 놀란 뒤에 '카드로 세계 제일이 된다 한들 소용이 없겠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닌텐도의 젊은 사장이었던 히로시는 이리저리 다른 사업에 손을 댔는데, (1962년) 이때 말아먹은 사업들이 하나같이 전설이다. 러브호텔, 택시회사, 뽀빠이 라멘, 디즈니 프리커(후리카케), 인스턴트 라이스 등등, 특히 1960년대의 기술력으로 만든 인스턴트 라이스는 오늘날의 햇반 같은 게 아니라 '잘 봐줘야 '정도의 완성도. 이 당시에 평생 2번 겪게 되는 첫 번째 부도위기를 겪게 됐다. 두 번째 부도위기는 체감형 광선총의 성공으로 사업을 확장했다가 오일쇼크로 큰 손해를 본 1970년대. 이렇게 이것저것 건드리던 당시의 영향인지 닌텐도가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한 뒤에도 게임기 밖의 사업에 사업확장을 절대로 안 했으며, 자신이 사장에서 물러나면서 이와타 사토루에게도 절대로 게임기 말고는 손을 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8]

어쨌든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 완구회사로 성장시키기를 결심하고 요코이 군페이가 고안한 울트라 핸드 등의 완구들을 시작으로 완구회사로서의 역사를 시작했다. 이후 처음엔 낙하산 인사였지만 현재는 닌텐도를 게임회사로서 황금기를 이끌어낸 미야모토 시게루를 고용하고 동키콩으로 히트치며 부도위기에 벗어나자 게임기 개발을 시작할 때 그의 철학과 생각들을 쏟아냈고, 이것은 곧 서드파티와 같은 게임계의 기본 제도와 패밀리컴퓨터이라는 게임기를 만들어냈으며, 전무후무의 히트를 내며 슈퍼 패미컴까지 이어지는 닌텐도의 전성기를 이끌어나갔다.

'야쿠자'나 '쿠미쵸'라는 별명으로 야마우치의 독단이 닌텐도의 닌텐도 64게임큐브 같은 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야마우치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사업 수완만큼은 스티브 잡스에 비견될 만한 번뜩임을 가지고 있었고 닌텐도를 이 위치에 올려놓은 것 역시 야마우치다. 요코이 군페이게임 & 워치는 야마우치가 아니었으면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고, 당시 만 80억 엔이었던 닌텐도가 빚을 다 갚고 40억 엔을 저금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닌텐도가 게임기 사업이 잘 안 되었던 것은 맞지만 포켓몬스터게임보이/게임보이 컬러 덕분에 여전히 잘나가고 있었고[9], 은퇴를 내다보고 오랜 시간을 들여 HAL 연구소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낸 신예 이와타 사토루를 후계자로 지명해 몇 년 동안의 수업을 시킨 뒤에 2002년에 자리를 물려준 것 역시 야마우치다.

서드파티와 갈등과 불화를 일으켰다고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당시의 닌텐도는 가혹한 서드파티 정책을 내세워 갑질을 일삼아 왔었지만, 그렇다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서드파티들에게 졸렬하게 보복하지는 않았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낸다고 사죄하러 온 사람에게 '그렇습니까' 한마디만 하고 차를 마셨다는 일화도 있고, 서드파티가 어디서 뭘 하든 그건 자기들 자유라는 방침을 고수했다. 허드슨PC 엔진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때도 닌텐도 하드웨어로 게임을 내는데 별 문제가 없었을 정도. 스퀘어의 경우는 서드파티 이탈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퀘어가 이탈하고 닌텐도에 대해 뒷담화한 것이 걸린데다, 디지큐브 상장 등의 문제로 어그러진 것이 원인이었다.

그가 해온 행보를 보면 구두쇠일 것 같지만 오히려 자신의 사비를 들여 여러 기부 활동에 앞장서온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 고액 납세자로 등재될 정도로 세금도 성실히 납부했다. 닌텐도와 스퀘어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진 계기도 야마우치 본인의 사비로 Q 펀드라는 게임 개발사 투자 펀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10]
파일:external/www.kyoto-u.ac.jp/02.jpg
2010년 5월 18일 교토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암병동 준공 기념식. 한가운데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야마우치 당시 닌텐도 상담역으로, 병동 건설을 위해 개인 재산 70억 엔을 기부했다.[11]

2013년 9월 19일폐렴으로 사망하였다.

3. 어록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닌텐도를 이끌던 시절에 수많은 말을 남겼고, 유명해져 그가 현역에서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자되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고 있을 정도이다. 아래는 그가 닌텐도에서 남긴 말들이며 시간이 너무 흘러 출처가 불명확한 것들도 있다.

3.1. 패미컴, 슈퍼패미컴 시절

任天堂というのは、独りぼっちの企業なのです。独りぼっちの路線を歩んでいるのだということを最近つくづく感じます。

닌텐도는 외톨이 기업입니다. 외톨이 노선을 걷고 있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낍니다.
패미컴과 그 시대(ファミコンとその時代), 우에무라 마사유키(上村雅之), 호소이 코이치(細井浩一), 나카무라 아키노리(中村彰憲) 공저, NTT 출판,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발매를 앞두고
娯楽には常に“異質の創造”が必要、改良じゃダメ

오락은 항상 '새로운 창조'가 필요합니다. 개량으로는 안 됩니다.
주간 다이아몬드, 1984년 12월 15일호
市場調査?そんなことしてどうするんですか?

시장조사? 그런걸 하면 뭐합니까?

たしかに、そういったタイムラグという問題もある。でもね、任天堂が市場を創り出すんですよ。調査する必要などどこにもないでしょう。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신대로 타임랙(시장 조사 결과와 게임 발매시 유저들 수요와의 시간적 불일치)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닌텐도가 시장을 창출하는 거죠. 조사할 필요 따위 어디에도 없습니다.

ゲームソフトを作れる技術屋というのはたくさんいます。しかし、本当に才能の豊かな、経験を持った有能な人は極めて少ない。優秀なゲームを作れる人が少ないということは、くだらないゲームなら作る人が大勢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んな人に市場を荒らされたら、育つものも潰されてしまう。各メーカーが競争になればなるほど、どうしても多作に走り、ソフトの種類で勝負しようということになる。そうなると、似たようなくだらないゲームソフトが市場に氾濫する。駄作が多く出回ると、消費者は不快感を持つようになる。そうなったら、娯楽市場なんてアッという間に崩壊します。駄作で市場を崩壊させないためにも「独占」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んです。

게임 소프트를 만드는 기술을 지닌 회사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재능이 풍부하고 경험을 가진 유능한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우수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형편없는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많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시장을 맡겨 버리면 성장할 것도 무너지게 됩니다. 각 업체가 경쟁하게 되면 아무래도 많은 게임을 만들게 되는데, 소프트의 종류로 승부하는 꼴이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비슷한 형편없는 게임 소프트가 시장에 범람합니다. 형편없는 게임(駄作:태작)이 많이 나오면 소비자는 불쾌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락 시장은 '앗'하는 사이에 붕괴합니다. 형편없는 게임으로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독점'해야 했습니다.
닌텐도 장사의 비밀 - 어떻게 어린이들의 마음을 잡았는가(任天堂商法の秘密―いかにして“子ども心”を掴んだか), 타카하시 켄지(高橋健ニ), 쇼덴샤(祥伝社), 1986년
なにより大事なことは、娯楽というものは飽きられるものだということ、ここが必需品と根本的に違うところです。必需品は飽きられない。そして基本的には、安いほうが売れる。ある品物が売り出されて、それに遅れて同じような品物が売り出された場合、必需品なら二番手でも安いほうが売れます。しかし娯楽は二番煎じはダメです。たとえ安くても売れな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락이라는 것이 질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필수품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필수품은 질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싼 것이 팔립니다. 어떤 물건이 출시되고, 뒤늦게 같은 물건이 출시된 경우, 필수품이라면 두 번째라도 싼 것이 팔립니다. 하지만 오락은 재탕은 안 됩니다. 싸더라도 팔리지 않습니다.
산업대회전 시나리오(産業大転回のシナリオ), 타하라 소이치로(田原総一朗), 일간공업신문(日刊工業新聞), 1988년
「任天堂はライセンス契約を利用して、ピンハネして、そして不当利得を得て高成長を成し遂げてきて、高い利益率を誇っている」マスコミはみんなそういうような書き方をするんです。そうじゃないんですよ、任天堂の強さは、任天堂が世界最強のソフトメーカーだからなんですよ。そうでなかったら、そんなもの一年や二年続いても、十年も続きません。

'닌텐도는 라이선스 계약을 이용해 뻥튀기해 부당 이득으로 높은 성장을 이루어왔고 높은 이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다 그렇게 써요. 그렇지 않습니다. 닌텐도가 강한 것은 닌텐도가 세계 최강의 소프트 메이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게 한두 해 계속되더라도 십 년을 못 갑니다.
今度の3DOを見て、いかにもハード屋だなと痛切に思うんです。バーッとアドバルーンを打ち上げて、そしてソフト屋集まれと言うわけです。日本でもやりました。そして、いまソフト会社は100社申し込みが来た、これから続々参加すると言っているわけです。冗談じゃないよと言うんです。いま世界でいったい何百社のソフト屋がゲームソフトづくりをやっているかと。そして、ソフトも1000か、2000か、3000か知りませんけれども、それだけたくさんの種類が出て、その中でいったい売れるソフトは何点なのか。売れないソフトを作っている圧倒的多数のソフトメーカーが参加すると言って、それが100社になろうと、500社になろうと、それは何なのですか。そんなものは絶対にユーザーを説得できない

이번 3DO를 보고 역시 하드웨어 메이커라는걸 통감합니다. 팍하고 애드벌룬을 쏘아 올리며, 소프트 판매 가게들에게 모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에서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100개의 소프트 회사에서 신청이 왔고, 앞으로 속속 참가한다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지금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회사의 소프트 업계가 게임 소프트를 만들고 있나요.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소프트 개수도 1000개인지, 2000개인지, 3000개인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많은 종류의 소프트 중 실제로 시장에 판매되는 소프트는 몇 점입니까. 팔리지도 않는 소프트를 만들고 있는 압도적인 다수의 회사가 참가한다고 해서 그 회사가 100개의 회사가 되든 500개의 회사가 되든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일본 기업 부활의 조건(日本企業復活の条件),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巌), 동양경제신보(東洋経済新報), 1993년

3.2.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해

ハードの価格競争だとか、ソフトをおまけにつけてまで、ハードを売ったら勝ちだとか、そんな発想は通用しない。ハードウェアをいくら広げてもだめなんです。ソフトがそれにスライドして、ついてこないとだめなんです。そんな戦い方はハード体質の戦い方であって、本来のソフト化路線とは違うからだめです。

하드 가격 경쟁이라느니, 소프트를 덤으로 얹어서까지 하드를 팔면 이기는 거라느니 하는 그런 발상은 통하지 않습니다. 하드를 아무리 넓혀도 소용없어요. 소프트가 거기에 서서히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싸움 방식은 하드 체질의 싸움 방식이며, 본래의 소프트화 노선과는 다르기 때문에 안 됩니다.
今、ゲーム市場を語っている人には本当にゲームを知らない人が多すぎる。シェアにしても米国のように調査機関があるわけでもなく、秋葉原とトイザらスでは異なる。プレイステーションを買っている人はどのソフトで遊ぼうという気がなく、ムードで買っている人だろう。

지금 게임 시장을 말하는 사람 중에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시장 점유율이라고 해도 미국과 같이 시장 조사 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닌텐도 64가 팔리지 않고 남아 있다고 지적되는) 아키하바라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토이저러스에서는 (판매 상황이 서로) 다릅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는 사람은 어떤 소프트에서 놀 생각이 없고, 분위기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新機軸を打ち出さなければ、ゲームそのものがマンネリ化して飽きられる。また、『重厚長大』型のソフトは、内容が複雑で、制作に時間も人手も費用もかかる。数十億円をつぎ込み、百万本を販売するヒット作となっても、なお赤字という場合もある。それではビジネスとして成り立たない。『軽薄短小』でも完成度の高い面白いゲームはできる。

혁신적인 게임을 내놓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매너리즘화되고 질릴 수 있습니다. '중후장대'형 소프트는 내용이 복잡하고 제작에 시간, 일손에 비용도 듭니다. 수십억엔을 들여 백만 장을 판매하는 히트작이 되어도, 아직 적자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비즈니스로서 성립되지 않습니다. '경박단소'라도 완성도 높은 재미있는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二十一世紀のソフトに大容量はいらない。そんな人海戦術を要する仕事をしていたらソフト会社はみんな沈没する。

21세기의 소프트에 대용량은 필요없습니다. 그런 인해전술이 필요한 일을 하다 보면 소프트웨어 회사는 모두 침몰합니다.
プレイステーションはDVDプレーヤーでもありますから、DVDプレーヤーとしては価値があると思うんです。でも、ゲーム機としては問題がある。ソフトが作りにくいんですね。やっぱりハードは、ソフト屋がソフトを作りやすいハードを設計しないとだめなんですよ。作りにくいハードを設計したら、ソフト屋もコストアップになるし、思うことはなかなかできない状態になってきますから、それはものすごくソフト屋にとってはマイナスですね。

플레이스테이션 2DVD 플레이어도 되기 때문에 DVD 플레이어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게임기로서는 문제가 있습니다. 소프트를 만들기 어렵고요. 역시 하드는 소프트 가게가 만들기 쉬운 하드를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들기 어려운 하드를 설계하면 소프트 가게도 비용이 상승하고, 생각(창작)하는 것은 좀처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까요. 그것은 굉장히 소프트 가게 입장에서는 마이너스입니다.
世界的なゲームソフト販売の低迷を考えれば今の日本のゲーム関連株は高すぎる。販売現場では消費者のゲーム離れが起こっている。『PS2』を見れば分かる。ソフト販売がゲーム機の販売本数を下回っている。本物そっくりで高精細な映画のようなゲームなんてナンセンスだ。

세계적인 게임 소프트 판매의 침체를 생각하면 지금의 일본의 게임 관련 주가는 너무 비쌉니다. 판매 현장에서는 소비자의 게임 이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PS2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소프트 판매가 게임기의 판매 갯수를 밑돌고 있습니다. 진짜와 똑같은 고화질 영화 같은 게임이라니 넌센스입니다.
明日のことは誰にも全く分からない。明日ソニーが負けるかもしれない。それがゲームビジネスなんです。そういうことが、いわば我々のビジネスの基本なんです。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내일 소니가 질지도 모릅니다. 그게 게임 사업이거든요. 그런 것이 말하자면 우리 비즈니스의 기본인 것입니다.

3.3. 파이널 판타지에 대해

大容量ゲームは駄目。こんなことをしていたら世界中のメーカーがつぶれてしまうだろう。
重厚長大なゲームは飽きられている。ゲームは常に新しい楽しさを開発し、ひたすら完成度を高めていくことが本質である。
それにもかかわらず、ソフトメーカーはIIだのIIIだの、VII、VIII、IXと出し続けている。クリエイター達は行き詰まり、質的転換を迫られている。
日本だけで受けて、しかもVII、VIII、IXだと言っている会社は駄目である。このように、ゲーム業界は存亡の危機に陥っている。
反論があるならいつでも受けて立つ。 しかし誰も直接反論しには来ず、陰でものを言う。こうした体質も業界の危機を象徴している。

대용량 게임은 안 됩니다. 이러다가는 온 세상의 메이커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중후장대'한 게임은 질려 있습니다. 게임은 항상 새로운 즐거움을 개발하고 오로지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 메이커는 II니 III니, VII이니, VIII이니, IX으로 계속 내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은 막다른 곳에 몰려 질적 전환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만 통하는 VII, VIII, IX이라고 하는 회사는 안 됩니다. 이처럼 게임업계는 존망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반론이 있다면 언제든지 받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직접 반박하지는 않고 뒤에서 말합니다. 이런 체질도 업계의 위기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というのは従来の『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と違わねばならないのです。同じであるはずがない。ところが今までの『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というのは、ずっと一貫してひとつの流れを辿ってきました。そして前々作、前作と長い時間と多大なお金を掛けて、そしてCGの威力を最も発揮したソフトに仕上げていくと。それに対して、私の考えは、ゲームソフトを2年、3年かけて作る時代は去ったんで、そういうことをやっていたんではゲームビジネスは栄えない。また、ゲーム会社も利益を得られなくなっていく。ゲームの完成度を高めながら、しかも期間を短縮するという、きわめて難しい問題に挑戦する。こういうことを、ゲームクリエイターは考えていかないとダメな段階に立ち至っているというのが私の考えにあります。

'파이널 판타지'란 기존의 파이널 판타지와 달라야 해요. 같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파이널 판타지'라는 건 줄곧 일관되게 하나의 흐름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전전작, 전작까지도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서, 그리고 CG의 위력을 가장 발휘한 소프트로 완성해 갔습니다. 제 생각은 그에 비해 게임 소프트를 2, 3년 걸려 만드는 시대는 지났고 그러한 일을 하고 있으면 게임 비즈니스는 번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게임 회사도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면서도 기간을 단축하는, 극히 어려운 문제에 도전합니다. 이런 것을 게임 크리에이터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NINTENDO 64ソフトは容量の小さいロムカセットを使うが、『ゼルダの伝説 時のオカリナ』はスクウェアが出す大容量のCD-ROMソフト『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VIII』を圧倒するだろう。ゲームは容量が問題でない事を証明するはずだ。

NINTENDO 64 소프트는 용량이 작은 롬 카세트를 사용하지만,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스퀘어가 내놓는 대용량의 CD-ROM 소프트 파이널 판타지 VIII를 압도할 것입니다. 게임은 용량이 문제가 아님을 증명할 것입니다.

3.4. 엑스박스에 대해

파일:야마우치 히로시 빌 게이츠.jpg
1996년, 비즈니스 협력을 위해 만난 야마우치 히로시와 빌 게이츠[12]

빌 게이츠는 이전부터 닌텐도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엑스박스로 게임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무려 250억 달러를 들여(!)[13] 닌텐도를 인수하기 위해 2000년 1월 그들을 만났으나, 1시간 회의 동안 비웃음만 받았다고 한다.# 2004년에도 인수하려 했으나 야마우치 히로시가 거부해서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외에 미야모토 시게루를 스카우트하려는 시도도 했었다.
パソコンOSという特定の分野でたまたま成功し、独占的地位を守ることに精を出してきたマイクロソフトが、安易に手を出せるような世界ではない。このことは、マイクロソフトのような質の違う会社には絶対分からない。分かったとしたら、それこそ神様だ。

(게임 사업은) PC OS라고 하는 특정 분야에서 우연히 성공해 독점적 지위를 지키는 것에 힘을 써온 마이크로소프트가 안이하게 손을 쓸 수 있는 세계는 아닙니다. 이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질이 다른 회사에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안다면 그야말로 신일 것입니다.

アメリカの大きな会社が金でソフトメーカーを囲い込んで同じことをやろうとしているが、うまくいかないだろう。来年にはゲーム機を発売するようだが、再来年の年明けには答えが出ているだろう。

미국의 큰 회사가 돈으로 소프트 메이커를 에워싸는 것 같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년에는 게임기를 발매할 것 같은데 내후년 초에는 답이 나올 것입니다.
その勝利の信念をゲーム機ビジネスにそのまま持ち込もうというのなら、「全く勝算はないから今のうちにやめとき」と言いたい。Xboxは日本では完敗状態だ。飛躍の可能性は限りなくゼロに近い。欧米でも敗色濃厚だ。ゲーム機ビジネスというのは、パソコンOSとは根本的に違う世界なのだ。彼らにはそれが分かっていない。ゲーム機事業の赤字が今はかすり傷程度かもしれないが、次第にそうでなくなるだろう。「勝つまでやる」と言っているようだが、まるでベトナム戦争の泥沼に突っ込んでいった米国を思わせる。

그 승리의 신념을 게임기 사업에 그대로 가져오려고 한다면, '전혀 승산이 없기 때문에 지금 그만둬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엑스박스일본에서 완패 상태입니다. 도약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유럽미국에서도 패색이 짙습니다. 게임기 사업이라고 하는 것은, PC OS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게임기 사업의 적자가 지금은 찰과상 정도일지 모르지만 점차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길 때까지 하겠다는 듯하지만 마치 베트남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간 미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これまでのマイクロソフトは”ツキ”過ぎだった。人間も企業もツキはいつか必ず落ちるもんでしょ。ゲイツも決して神様で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そう遠くない将来に証明されることになるだろう。

지금까지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이 따라줬습니다. 인간도 기업도 운은 언젠가 반드시 떨어지기 마련이지요. 빌 게이츠도 결코 신이 아니었다는 것이 머지않은 장래에 증명될 것입니다.

3.5. 그 외

This is up to you guys, but you have to create unique experiences, you have to do things that other companies cannot imitate, that is your mission.

닌텐도가 자신만의 길을 가지 못 한다면 그것이 곧 회사의 끝일 것이야. 그건 자네들에게 달렸지만 항상 독특한 경험을 창조해야 하고 다른 회사들이 절대로 모방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야만 하네, 그것이 자네의 사명이야.
키미시마 타츠미 닌텐도 사장이 얘기하는 닌텐도 스위치와 다른 것들에 대한 19가지 이야기(19 Things Nintendo's President Told Us About Switch and More)# , TIME, 2017년[14]

4. 기타


  • 64DD 소프트웨어인 마리오 아티스트: 탤런트 스튜디오에 본인 역으로 출연해 인사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주로 알려져 있다. 야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서 가장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구단주였다.[15] 야구가 일본에서 인기 스포츠다보니 일본인들은 웬만하면 야구를 약간이라도 아는 경우도 많은데 그는 정말로 전혀 관심이 없었는지, "야구를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라고 대답해서 이건 해도해도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냐고 욕을 좀 먹기도 했었다고 전해진다. 1990년대시애틀 매리너스에 경영위기가 닥쳤을 때, 닌텐도 미국법인[16]에 인수를 제의했고 그가 받아들여 구단주가 되었다. NOA가 있는 시애틀에 은혜를 갚는다는 게 그 이유. 홈 구장에 그의 이름을 딴 방이 있지만 방 주인이 야구에 관심이 없어 여전히 깨끗했으며, 실제 경영을 NOA 회장 하워드 링컨에게 일임했다.
  • 스즈키 이치로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했을 때 시애틀 매리너스를 선택한 것도 야마우치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경기했다고. # 2005년에는 이치로가 그 전 시즌에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한 공로로 야마우치가 이치로에게 직접 닌텐도의 주식 5000주를 양도했다고 한다.
  • 그가 사망하자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들은 홈구장인 세이프코 필드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했으며 당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선수단은 그의 영문 이니셜(HY)이 새겨진 휘장을 내걸고 경기를 펼쳤다고 전해진다. #
  • 야마우치 사후 3년 뒤인 2016년에 NOA는 49%였던 보유 지분을 상당량 처분했고 현재는 10%로 소액 주주 신분이다. 지분 처분과 동시에 하워드 링컨 NOA 회장은 일선에서 은퇴했다.
  • 그의 손자인 야마우치 반조는 그가 죽은 직후 양자로 입적해서 재산을 상속받았고, 2020년야마우치 No.10 가족회사를 창업해 신생기업들의 기술 혁신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1] 다만 2022년 기준, 영화와 테마파크 사업 등에도 손을 대고 있어서 이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에 가깝다. 아마도 생뚱맞은 분야가 아닌 관련분야라면 OK인 듯. 한창 방황하던 시기에 사무용품이나 즉석밥 등 아주 뜬금없는 것들까지 해본 것을 고려하면 지금 하는 정도는 여전히 만들고 있는 바둑판과 전자오락의 차이 수준 정도다.[2] 본래 포켓몬스터는 1990년부터 캡슐몬스터라는 이름으로 계획되었지만 게임프리크의 개발력 부족으로 인해 개발 기간이 계속 길어지며 1996년에야 발매됐다.[3] 백발 올백머리, 선글라스[4] 사장이 묻는다, 닌텐도 3DS 편.[5] 재미있는 점은 조부도 데릴사위로 뒤를 이은 사람인 것이다.[6] 정확히 이야기하면, 조부가 죽기 전에 손자를 위해서 회사의 인척들을 몰아냈다.[7] 디즈니 트럼프로, 당시에 반쯤 도박 도구로 여겨졌던 트럼프를 '애들이 갖고 노는 게임'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했다.[8] 이는 시간이 흘러 6대 사장 후루카와 슌타로시대에 이르러 조금 벗어나 유니버셜 스튜디오마리오 테마파크를 세우는 등 게임이 아닌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히로시 사장 현역 시절에도 이미 몇번 진출한 적이 있다.[9] 실제로 플레이스테이션 2 발매 이후 몇 년 간인 2000년부터 2005년 경까지 영업이익은 닌텐도가 더 많았고, 오히려 SCE는 적자를 본 해도 있었다.[10] Q 펀드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게임 개발사로는 지니어스 소노리티와 스킵이 있었다.[11] 그래서인지 교토대학 의학부에는 그의 성을 딴 '야마우치홀'이 있다.#[12] 게임 관련이 아닌 위성방송 서비스 관련 조인트 벤처를 위해 만난 것이었다.[13] 당시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보다 더 높은 금액이었다.[14] 말년의 야마우치로부터 키미시마 타츠미가 직접 들은 말이라고 한다.[15] 구단주야구에 관심이 없으니까 투자만 하고 팀 관리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16] NOA: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