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1-11 17:39:26

사리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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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里院市 / Sariwon City

파일:external/3.bp.blogspot.com/2012-08-22_079_Sariwon.jpg
[1]
사리원시
沙里院市 / Sariwon City
국가 북한
면적 187.91㎢
광역시도 황해북도
행정구역 31동 9리
시간대 UTC+9

박민하 : 사리원이 어디야?
- 백설(CJ제일제당) '사리원불고기' 양념 광고[2]

베스킨라빈스 사리원과는 관계없다.

1. 개관2. 교통시설3. 통일 후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1. 개관

황해북도 서쪽 끝에 있는 도시로, 도인민위원회 소재지이다. 인구 30.7만(2008년 통계)로 개성특급시보다 조금 적은데, 일제강점기의 인구가 2:1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배로 증가하여 따라잡은 것이다.

조선시대에 사리원은 비록 고을의 읍내 지역은 아니었지만, '-院'이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교통취락으로 발전한 곳이다. 원래 봉산군 사원면이었다가 1934년 봉산군청이 이곳으로 이전해 옴과 동시에 사리원읍으로 승격하였고, 1945년 광복 당시 북한 치하에서 로 승격되어 봉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대한민국이북 5도 체계로는 현재도 봉산군청 소재지이다.

서쪽으로는 넓은 재령평야를 바라보고, 동북쪽으로는 정방산과 마주한다. 평야에 있는 도시인만큼 북한 제일의 농업도시로,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농사시험장이 있다.

이북에 있는데다가 딱히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국사책을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했다면 고려 시대 다포식(多包式) 건축 양식을 보전[3]하고 있는 응진전이 있는 성불사가 부근[4]에 있음을 알 것이다. 하지만 다포식 건물은 사진이 없어서인지 시험에 안 나오더라 참고로 이 성불사가 가곡 <성불사의 밤>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면 지금도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리원의 관광명소로 성불사가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시내에는 재령강(載寧江) 쪽으로 향하는 운하를 뚫어놓은 것이 특징. 시내 중심부 경암산(景岩山) 공원에는 민속거리라는 것을 조성해 놓았는데, 북한 주요 유적들의 미니어처를 전시하고 있으며[5] 조선시대 건물인 경암루가 그 안에 있다.

광복 당시 사리원읍은 면적 31.77㎢, 12개 리로 구성되었다.
  • 동리(東里)
  • 서리(西里)
  • 상하리(上下里)
  • 철산리(鐵山里)
  • 신창리(新昌里)
  • 사원리(沙原里)
  • 사리(沙里)
  • 구천리(駒泉里)
  • 신양리(新養里)
  • 경암리(景巖里)
  • 대원리(大元里)
  • 북리(北里)

백설(CJ제일제당)의 불고기 양념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고수와 박민하[6]가 광고에 출연하였다. 문서 상단의 멘트가 바로 그것.

사리원시의 정방산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자생하는 전갈의 서식지로, 북한 천연기념물 171호로 보호하고 있다.

2. 교통시설

철도는 평부선사리원청년역 - 동사리원역이 있다. 사리원역은 황해청년선의 분기역으로, 신천이나 해주 방면으로 갈 수 있다. 평양개성간 고속도로가 시가지 북부를 지나고 있으며, 평양-개성간 1급도로와 사리원-해주간 1급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평양을 수도로 하는 분단체제 하에서 꽤 재미를 보고 있다. 우선 수도 평양과 해주, 개성 등 남부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교통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더불어 평양과 강원도 주요 지역들 사이의 교통도 분단 된 현재로서는 사리원을 거쳐야 하는 형편이다.[7] 이러다보니 북한 최대의 도매시장인 평성시장에서 황해·강원도권으로 들어가는 물자들은 거의 무조건 사리원을 경유하고 있다. 또한 원산을 통해 반입된 일본산 고급제품들, 해주에서 강원도나 함경권으로 반출되는 쌀 등의 제품들도 사리원을 경유한다. 한마디로 평성시장의 하위호환인 셈이며, 별 다른 산업시설이 없던 사리원은 이런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서비스업이 크게 발달해 있다. 그리고 평야지역 답게 쌀이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만갑에 나온 사리원 출신 탈북자는 사리원 쌀은 굉장히 부드럽고 맛있다 한다.

이렇게 보면 통일 되면 말짱 꽝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는 것은 광적으로 이동거리 단축에 집착하는 북한 특유의 중앙집권식 계획경제체제 때문이고[8] , 통일 후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사리원은 서울과 평양을 잇는 도로·철도 간선축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넓은 개발부지를 바탕으로 적지 않은 이점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9]. 일제강점기 황해도청 소재지는 해주였지만, 이미 1923년부터 도내 각계각층에서 사리원으로의 도청 이전 요구가 빗발칠 정도로 사리원은 상당한 발전을 구가하던 도시였다. 만약 해주에 철도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공주시가 그랬듯 사리원에 속절없이 도청을 뺏겼을 가능성도 높다. 진주시:우린 있는데도 뺏겼는데?

3. 통일 후

통일이 되고 안정이 되면 천안시 정도로 발전할 것이다. 실제로 지도를 보면 천안과 지정학적 위치가 상당히 비슷하고. 대신 더 춥다[10]. 넓은 평야에 미래 경의선경의고속철도가 경유할 확률이 굉장히 높으며 북한판 경부고속도로인 경의고속도로 또한 이곳을 지날 확률이 매우 높다. 실제 지금도 지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천혜의 교통의 요지이자 살기 좋은땅(물론 지금은 아니지만)을 가만히 놔둘리가 있겠는가? 더불어 통일되면 옆에 붙어 있는 재령군은 아산시급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여기는 통일 초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지역이다. 개성이 북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면 이곳은 북한 전역으로 연결되는 교통과 특별히 통일 초기, 북한의 북부지역(함경도와 평안도)을 연결하는 물류의 중간기착 지역으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 지역으로 탈바꿈 하게된다. 북한 전역의 도로망이 완공되기 전 까지 사리원은 북한 전 지역을 잇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11].

그래서 통일 후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다면 배스킨라빈스 사리원 같은 프렌차이즈 점포가 입점하는건 시간문제이다. 그야말로 교통의 요충지이자 물류의 중간 기착점이란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요식업과 숙박업이 강세를 보일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주민들 역시 관련업종에 종사하거나 자영업 형태로 일할 수도 있으므로 경제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있을것으로 보여진다.

시의 서쪽 경계인 재령강에서 시내로 가는 운하가 있다.

서울에서 직선으로 약 150km[12], 철도로는 200km 거리에 있다.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파일:Flag_of_Hwanghae-do_little.png 황해도의 하위행정구역 (이북5도위원회)
해주시 사리원시 송림시
벽성군 연백군 금천군 평산군 신계군
장연군 송화군 은율군 안악군 신천군
재령군 황주군 봉산군 서흥군 수안군
곡산군 옹진군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행정동 법정동·리
경암동 경암리(景巖里)
대원동 대원리(大元里)
동동 동리(東里)
사동 사리(沙里)
사원동 사원리(沙原里)
상하동 상하리(上下里)
서북동 북리(北里)·서리(西里)
신구동 구천리(駒泉里)·신양리(新養里)
신창동 신창리(新昌里)
철산동 철산리(鐵山里)

[1] 출처[2] 참고로 이 '사리원 불고기'의 유래는 사리원 출신 실향민 고 구분임 할머니(1916~1980)가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하여 개발한 것이라 한다.[3] 조선 시대 중수는 했으나 양식은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다고 한다.[4] 성불사는 광복 직후 행정구역상으로는 황주군 주남면 정방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봉산군 정방리에 위치한다.[5] 북한 유적뿐만 아니라 경주에 있는 첨성대 미니어처도 있다...[6] 박찬민 아나운서의 셋째 딸로, 스타주니어쇼 붕어빵불굴의 며느리에 출연한 바 있다.[7] 강원도 도소재지인 원산은 도내 주요 지역들과 평양을 이어주지 못하는 위치다. 이런 입지가 대일무역 중단 이후 원산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8] 아직 남북이 활발히 소통하던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은, 북한은 도로가 산을 만나는 경우가 아니면 완전히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모든 토지가 국가소유이고 반항하다가 코렁탕 수준이 아니라 끔살 당하기 쉽상인 동네여서, 그 땅에 집이 있건 논밭이 있건 그냥 헐고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이는 1960~70년대 한국, 1980,90년대 중국에서도 비슷했다, 물론 지금은 알박기가 횡행한다[9] 멀리도 말고 당장 통일 직후 새로 개설해야하는 북한 전국의 도로망과 철도망을 생각해보면 사리원의 중요성은 지나치다고 할 수도 없다. 북한의 이북지역과 도서지역을 연결하는 거점으로서와 아울러 후술한 바와 같이 중간기착지점 역할까지 담당하는 지리적 특성상 사리원은 통일 직후 개성시 다음으로 통일 한국정부가 최우선으로 개발할 지역이 된다.[10] 한반도 이북지역은 남한보다 추운 지역이라는 상식을 가지고 들어가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11] 게다가 평양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평양의 위성도시로서도 그 위력이 대단할 것이다. 평양의 거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이곳으로 이주할 가능성도 높고 요충지라는 잇점을 십분 살려서 관련사업 지점에서 근무할 이들의 주거지역으로의 잇점을 누리게 될것이다.[12] 대전광역시보다 약간 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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