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16:03:24

만민중앙교회 MBC 습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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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만민중앙교회 MBC 습격 사건
파일:만민중앙교회 습격.gif
1999년 5월 11일 당시 PD수첩의 방송사고 장면[1]
<colbgcolor=#bc002d> 발생일 1999년 5월 11일
발생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문화방송 사옥[2]
유형 테러, 폭동, 습격 사건
원인 사이비 종교 단체의 보복, 폭동적 습격
주동 단체 만민중앙교회

1. 개요2. 배경3. 습격4. 문제가 된 이유5. 반응6. 사건 이후7. 타 매체에서의 패러디8. 유사 사례
8.1. 종교8.2. 정치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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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습격현장.gif
당시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주조정실 습격 모습
사건을 요약한 MBC 유튜브 채널 '모지'의 영상[3]
1999년 5월 11일 밤에 기독교 계열 신흥종교이자 사이비 종교만민중앙교회의 신도들이 당시 여의도에 있던 문화방송(MBC)의 본사 사옥을 급습하여 방송 송출을 강제로 중단시킨 테러 사건.[4] 1974년 8월 15일의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5] 더불어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악의 방송사고 양대산맥으로 통하며, 대한민국의 기독교계 사이비 종교가 저지른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6]

2. 배경

당시 이재록 목사는 1990년 10월 이단성의 문제로 예수교대한성결교회에서 제명처분 당한 후 1998년 8월 하나님이 자신의 교회에 임재한다고 하여 교계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만민중앙교회와 만민기도원을 중심으로 이재록 목사는 직통계시를 앞세워 자신이 신유의 은사, 물질의 축복 등의 권능이 있다고 교인들에게 인식시켰다.

1998년 1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이재록 목사와 만민중앙교회를 사이비로 규정[7]한 데 이어 이재록 목사에게 피해를 보았다는 이탈 신도들의 주장이 쏟아졌고 이재록 목사가 도박, 음주소동, 여교역자, 젊고 어린 무용수와 집단난교 등을 밥 먹듯 벌이는 데다 자신의 교회에만 하나님의 권능이 내렸다고 선전하며 촬영 중 일어난 분진을 가지고 하늘에서 금가루가 내렸다고 하거나 교회 하늘에 무지개가 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권능이 만민중앙교회를 통해서만 일어났다고 선동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심지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한 것에 대한 변명이랍시고 한 말이 "제 욕심은, 며칠 우리에게 시간이 있으니까 내가 재정 좀 해결해야 되겠다. 그리고 갔습니다!"였다.

이에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는 '이단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 우리 목자님!' 이란 제목으로 이재록 목사와 만민중앙교회의 실태를 폭로하는 특집을 1999년 5월 11일 화요일 밤에 방영하기로 하였다. 다만 방영 전날 법원은 "성추문 등 목사의 사생활은 방영하지 말라"고 판결[8]했기에 사생활 부분만 편집하고 방송할 예정이었다.

3. 습격

방송 당일 밤 10시 30분부터 만민중앙교회 신도 2,000여 명이 교회 버스와 자가용, 대중교통 등을 타고 와 여의도 문화방송 본사 사옥 앞에 구름떼같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1층 로비와 방송국 주변을 점거하였고 급기야 신도 200여 명이 건물 내부로 침입해 당시 여의도 본사 2층에 있던 주조정실을 점거하고 장비를 닥치는 대로 끄거나 부수며 방송 송출을 중단시켰다. 한술 더 떠서 일부 신자들은 당시 당직과 야근으로 방송국에 남아 있던 송출부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이로 인해 방송 시작 8분 만에 PD수첩 방송이 중단되었고 당시 남산 송신소는 보관 중이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자연은 살아있다'[9]아프리카 얼룩말의 생태를 다룬 에피소드인 '줄무늬의 충돌'을 긴급 송출했다. 미처 끊어지지 않은 본방송과 비상송출 방송이 혼선되면서 화면은 아수라장이 되었다.[10]

신도들의 난입으로 본사와 지역국의 연결도 단절되며 대처에 난항을 겪었다. 대구에서는 블랙스크린 하단에 "방송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로 시작되는 자막이 뜬 화면과 당시 MBC 마스코트였던 엠비즈가 나오는 화면이 떴으며 당시 화면조정 음악이 흘러나왔다.[11] 이런 현상은 다른 지역 문화방송 계열사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강릉[12], 춘천[13], 부산[14] 등의 당시 상황은 KBS 뉴스 보도로 알려졌다. 지역에 따라 지역 MBC 자체 판단에 의해 지방국 제작물을 방송하거나 검은 화면인 채로 나가기도 했다.

오후 11시 40분쯤에 여의도 본사에 경찰 병력이 대거 투입되어 방송국에 난입한 신도들을 끌어냈고 방송 송출이 정상화되었다. 신도들은 방송이 정상화된 후에도 MBC 사옥 로비에서 오전 1시 30분쯤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신도들이 파괴한 장비는 메인 장비가 아닌 예비 장비여서 방송 정상화의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

MBC는 밤 11시 50분경 MBC 마감뉴스를 통해 이 사건을 최초로 시청자들에게 공지했다.

4. 문제가 된 이유

이 사건은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악의 방송사고 1~2위를 다툴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다.[15]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사이비 종교의 물리력에 의해 방송이 중단된 최초이자 유일한 방송사고이며 심지어 5.16 군사정변이나 12.12 군사반란군사정권 집권기에도 사전 검열은 했을지언정 멀쩡히 진행되던 방송을 끊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군사정권 수뇌부도 벌인 적이 없는 일을 사이비 광신도들이 저지른 것이다.

물론 서슬 퍼런 군사정권도 만만치는 않았는지라 군사정권 시절엔 군이 방송국을 통째로 장악하고 앵커에게 혁명 공약이나 관제뉴스를 낭독하도록 강요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권에서는 아예 한술 더 떠서 동아방송동양방송 등을 강제로 없앴다. 하지만 적어도 만민중앙교회처럼 정직원을 폭행하고 방영 중인 방송을 강제로 끊고 장비를 파괴하는 정도의 주제 넘은 폭력은 휘두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휘둘렀다. # 확실히 만민중앙교회가 습격한 사건은 외면적으로만이라도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이 겉으로나마 양반으로 보일 정도의 분명한 중범죄다.[16]

국가 중요 보안시설인 공영방송사의 주조정실을 민간인이 쉽게 탈취했다는 점에서 보안이 허술하지 않느냐는 의문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방송국 건물은 범죄자나 적군에게 쉽게 점거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미로에 가까운 복잡한 구조로 설계하는데 그런 건물의 핵심시설이 고작 민간인에게 점거당했기 때문이었다. 비무장 민간인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화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조선인민군 남파공작원 같은 국가의 적대세력이 MBC 직원을 인질로 잡았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다만 당시 문화방송 본사 사옥은 원래 예능과 드라마 등을 촬영하는 TV 방송 스튜디오로 설계되었던 건물이었다. 이것을 급하게 본사 사옥으로 증축해서 이전해야 했던 이유는 박정희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1974년 MBC를 경향신문과 합병시키면서 사옥을 같이 쓰게 되었는데,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신군부가 집권한 뒤 신방겸영 금지 조치를 내림으로써 갑작스럽게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함과 더불어 여의도 사옥은 정동 사옥과 떨어져 있던 탓에 사원들의 불편함과 번거로움이 많이 생기고 불필요한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도 존재했고, 결국 부랴부랴 정동의 시설을 통째로 여의도로 이사하면서 방어의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17] 이는 11년 전인 1988년 8월 4일에 일어난 일명 '내귀에 도청장치' 방송사고 당시에도 드러난 문제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무장 경찰이 허겁지겁 도착했을 때는 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이 훌쩍 넘어서였고 최종적으로 해산된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이었다는 것. 경찰청 정보처와 경비처 간 의사소통도 안 되었고 당시 MBC가 있던 여의도를 관할하는 서울영등포경찰서와 만민중앙교회가 있던 구로구 구로동 일부를 관할했던 남부경찰서(현 서울금천경찰서)[18]간 정보 교환도 제대로 안 되었기에 저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야간 예배 직후 바로 버스와 승용차 여러 대를 타고 나감을 남부경찰서에서 인지해 이를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영등포경찰서나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혀 통보하지 않는 바람에 골든 타임을 날렸던 것이다.

다만 "만민중앙교회인해전술[19]과 MBC 내부에 만민중앙교회와 사전 내통한 조력자가 있어서 쉽게 털렸다"는 기사가 나오긴 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이, 내통자가 주조정실의 상세한 위치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 이상 한번에 곧바로 주조정실로 직행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 또 몇몇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은 경찰로 위장[20]하기도 했다. 사건 다음날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이런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치밀함이 일부 보도되었는데 '신도 일부가 경찰로 위장했다.'는 사실까지 보도되었다. #

5. 반응

5.1. MBC

사건 다음날 뉴스데스크 보도 1
사건 다음날 뉴스데스크 보도 2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MBC에 기습적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폭도와 다름없이 직원을 폭행하고 방송 기자재를 부쉈습니다.
당시 이인용 앵커의 앵커 멘트 중 (1999년 5월 12일 MBC 뉴스데스크)
만민중앙교회의 폭거에 그야말로 눈이 뒤집힌 피해자 MBC는 가만있지 않았다. 다음 날 뉴스데스크에서 약 50분 가량의 분량 중에서 해당 소식을 22분 동안 14개 꼭지로 편성했는데, 한 마디로 반(半)특집 수준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편성하여 방송의 쓴맛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심지어 당시 5개를 소개하던 주요 뉴스 코너에서도 무려 2개나 차지했을 정도. 전체 뉴스 방송 분량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게 만든 소식이다.

앵커 멘트 역시 "쳐들어왔다", "폭도와 다름없이" 같이 군사독재(땡전뉴스) 정권 시절 시위대에 대해 보도하듯 굉장히 강하고 과격한 어조의 용어를 아예 대놓고 썼다. 프롬프터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보도국 차원에서 사전에 확정한 멘트라고 보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적절하지만, 이인용 앵커도 피해 당사자인 MBC 보도본부의 구성원이기도 하거니와 앵커 멘트 작성 과정에서 앵커 본인의 영향력이 작을 리도 없으므로 결국 이인용 앵커를 포함한 MBC 보도본부 전체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보도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애초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 자유를 짓밟는 데 규탄하지 않는 언론인이 있을 수도 없고. 여기에 평소 점잖은 이미지였던 이인용 앵커가 이날만큼은 굳어진 표정을 하고 화를 애써 눌러 참고 있는 것이 드러나는 태도와 목소리로 기사를 전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21] 특히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이인용 앵커의 목소리가 유난히 비장해진다.

본 방송 보도에서 이 사건을 일으킨 만민중앙교회에 대해서는 정말 가루가 되도록 질타했으며, 뒤늦게 대처한 경찰의 무능에 대해서도 여과없이 비판했다. 그 결과 그때나 지금이나 KBS 뉴스 9에 밀리던 뉴스데스크가 이날만큼은 특별히 20%가 넘는 시청률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뉴스데스크 방송 직후 PD수첩 해당 화가 다시 온전히 방영되었고[22] 이때 시청률은 PD수첩 역사상 가장 높은 41.5%를 기록했다.

급히 만드느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제작진도 어지간히 눈이 뒤집힌 게 아니었는지 군데군데 기초적인 편집 실수가 자주 보였다. 자막이 있는 부분을 읽을 틈도 없이 바로 지나가 버리거나 명예훼손명예회손이라고 써서 내보내는 등.

5.2. KBS

옆 방송사인 KBS에서도 의외로 사건 다음날인 12일, 관련 소식을 11개 꼭지나 할애해 중요 뉴스로 보도했다. 21세기처럼 타 방송사 언급이 자유로운 시대[23]가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MBCSBS과거 사례까지 들어가며 보도할 정도로 방송권 침해에 대해 꽤나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언론의 자유를 폭력으로 침해하는 정신나간 행태에 대해 이날만큼은 동업자 정신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

다만 보도 논조에 있어서는 MBC에 비해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자세를 보였다. 방송사상 유례가 없는 초유의 사태임을 강조하면서도 "사태의 책임이 제대로 방비를 하지 않은 MBC에게도 있다"는 투로 보도하기도 했다. 사전의 치밀한 계획을 강조하고 내부 조력자에 대한 의심까지 언급한 MBC와 대조적. 다만 이와 같은 KBS의 양비론(?)은 MBC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비판이기도 하다. 여의도 사옥 자체의 한계도 있거니와 민간인의 공영방송 시설 습격은 특히 민주주의가 정착된 대한민국 사회의 상식을 초월하는 전례 없는 테러 행위이기 때문. MBC는 방송 직전 만민중앙교회의 소송에 따른 판결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켰으며, 법원의 판결까지 불복해가면서 방송국을 물리적으로 점거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게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광신도들 자체도 상술했듯 내부자와의 협력과 경찰 사칭 등 다분히 치밀한 준비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던 만큼 법치주의와 언론 자유, 그리고 이들을 수호할 공권력의 힘을 믿고 있던 MBC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한 측면이 존재한다. 오히려 1시간이 넘도록 사태 진압에 나서지 않은 경찰의 무능력한 대처야말로 옹호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고 KBS도 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다.

그 외에도 KBS는 만민중앙교회의 입장이나 MBC에 사과했다는 소식 등을 보도했으나 MBC는 사과 소식마저 쏙 빼 버렸다.[24] 당시에는 MBC 뉴스데스크KBS 뉴스 9와 같이 9시에 시작했으니 격분한 MBC가 사과를 통째로 씹은 게 맞다. 사과 소식은 송두리째 빼놓으면서 정치권의 비판 소식외신 반응까지 각각 1꼭지씩 할애하고 아예 자체적인 논평까지 곁들이는 등 흘러넘치는 분노가 뉴스 구성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보기 드문 광경을 보여줬다.

5.3. SBS

SBS 또한 SBS 8 뉴스를 통해 톱뉴스로 타전했다. 특히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국민들은 충격 속에 불안감마저 느끼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테러 행위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국가기간 방송망이 외부압력에 의해 중단된 사례는 외국에서도 쿠테타나 전쟁 같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 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며, 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채 방송사 무단 점거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인 종교 단체 신도들은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

6. 사건 이후

검찰과 경찰은 5월 13일 사무국장을 포함한 교회 신도 6명을 체포했고 이 중 만민중앙교회 부목사, 사무국장, 안전실 차장을 전파법 위반죄로 기소했다. 8월 28일 부목사와 사무국장에게는 징역 3년을, 안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으며 2002년에 만기 출소했다. #

당시 사건의 후폭풍이 커서 여야가 한 목소리로 규탄 성명을 냈으며 청와대 역시 규탄 성명을 냈다.

만민중앙교회 측은 이후 반론보도를 청구했고 10월 29일 뉴스데스크에서 이를 보도했다. #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MBC는 만민중앙교회를 상대로 방송 기재 파손, 광고료 손실, 직원 부상 등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승소하여 만민중앙교회 및 그 신도 61명으로부터 6억 9천여만 원을 배상받게 되었다. #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 관련 이익/시민단체는 사건 다음날인 5월 12일 일제히 성명을 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 한 만민중앙교회를 규탄했다. #

만민중앙교회의 악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으며 나중에 나타난 대국민 사기가 바로 무안단물.

2014년 8월 문화방송은 여의도를 떠나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로 본사를 옮겼는데 이 상암동 신사옥은 여의도 사옥과 비교해 보면 구조도 굉장히 복잡해졌고 CCTV도 여의도보다 상당히 많아진 데다 크기 자체가 축구장 21개에 맞먹는 면적으로 커져서 제2의 MBC 습격 사건은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방송센터, 미디어센터, 경영센터, 공개홀 등 4개 동으로 분리되어 있고 엘리베이터 하나만 믿고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주조정실까지 타야 할 엘리베이터가 1~2개가 아니니 이런 일이 재현되는 건 대규모 테러 수준이 아닌 이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 이후 MBC는 사이비 종교와는 완전히 척을 져 이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방송을 포함한 종교계에 만연한 부정을 고발하는 내용을 계속 내보냈으며, 마침내 2023년 봄에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투자하고 MBC측이 직접 제작한 사이비 종교 고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공개되었고 여기서도 만민중앙교회와 교주 이재록이 JMS, 오대양, 그리고 아가동산과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안 좋은 쪽으로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게 되어 과거의 만행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이후 당시 교주 이재록도 결국 대장암으로 2023년 12월 31일 결국 사망했다.

6.1. 로스트 미디어

해당 사건 당시 방영되었던 PD수첩 방송분은 다시보기가 불가능하다. MBC의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 1996~1997년이기 때문에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라면 인터넷 다시보기가 가능했지만 사이트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다시보기가 중단되었고 MBC의 고대유물을 찾으려면 반드시 찾아야 할 MBC C&I에 문의를 넣어도 만민중앙교회와 법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영상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MBC의 특급 고대유물이 있는 MBC Archive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해당 영상이 본 문서의 가장 유용한 출처가 될 수 있는 만큼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다만 방송 주제와 날짜가 2020년 30주년 특집과 맞물려 공개된 역대 PD수첩 방송주제, 날짜, 취재 PD와 작가 목록에 수록된 것이 확인되었다. 하나 그 부분은 어디까지나 제목만 남겨져 있지 영상은 아니니 크게 주목을 못 받은 듯 싶다. 그런데 RISS 검색 결과에 따르면 고려대학교 의학도서관에 녹화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확인해 본 결과 백주년 기념관(CDL) 2층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이후 어떤 분이 비메오에 사건 다음날 재방영된 녹화본을 올렸으나 삭제되었다. PD수첩 유튜브 공식 계정에는 물론 없다. 거긴 원래 추적 가능한 첫 방송분이 2003년의 것이다.
PD수첩 -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그리고 이 사건이 벌어진 지 7204일, 약 20년 만인 2019년 1월 29일 PD수첩에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후속보도가 이뤄졌다. 20년 전 방송사고 당시 화면과 당시 제작진의 인터뷰가 등장했고 MBC 습격 사건이 벌어진 날 방송된 내용 중 삭제된 내용이기도 한 이재록 목사의 성추문 의혹이 중점적으로 방송되었다.[25] 그 외에도 교회 내 폐결핵 감염 등 이재록 목사의 실체를 고발했다. 다행히 상술한 이유 때문인지 방송국 습격 등의 사건 사고는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두고 20년을 기다려온 복수극이라고 호평했다.

7. 타 매체에서의 패러디

  • 무한도전 YOU&ME 콘서트 방영분 중 무한창작동요제에 쓰인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부분에 노홍철이 자기 파트를 크게 망치는 바람에 동물의 왕국을 대신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얼룩말이 잔뜩 나오는 걸로 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듯. #(6분 30초부터)
  • 홍스구락부의 플래시 작품 중 MBC 뉴스데스크를 패러디한 MBG 뉴스[26]에도 과학자가 청소부를 패는 장면과 시사논평이 취소되어서 앵커가 스태프에게 마이크를 집어던지는 장면을 가릴 때도 얼룩말 화면을 대신 보여주는 부분이 나왔다. #

8. 유사 사례

아래 사건들은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의해 언론사가 습격당한 사건이다. 단, 습격이라고 해 봐야 사옥 앞에서 물리적 진입을 시도하거나 방송사 로비를 점거한 정도이지 방송사 전체를 점거하고 방송 송출을 방해하는 데 성공한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만민중앙교회가 유일하다.

8.1. 종교

8.2. 정치

9. 관련 문서



[1] 방송을 시작한 지 약 8분 만에 MBC 방송국 주조정실이 습격을 당해 남산송신소에서 급히 다큐멘터리 '자연은 살아있다'로 넘어가는 장면이다.[2] 현재는 여의도 사옥 자체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브라이튼 여의도라는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섰다.[3] 썸네일에 쓰인 문구는 우리식당 정상영업합니다의 패러디이다.[4] 유사 사례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찾기 힘들다. 방송국은 비상사태나 재난상황 등 유사시에 국민들에게 대응 방송을 내보내는 등 최중요 국가기간시설로 엄중하게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떠한 독재정권이나 폭력집단조차도 방송국을 물리력으로 점거하고 방송을 방해하는 짓거리는 하기 힘들다. 이걸 해냈다는 점에서 이 교회 광신도들이 얼마나 개막장 집단인지를 보여준다.[5] 당시 중계에 참여했던 KBS, MBC, TBC에서 동시에 일어났다.[6] 20세기로 국한된 이유는 21세기인 2020년 이 사건을 아득히 초월하는 대사건두 번이나 터졌기 때문. 만민중앙교회는 끽해야 일개 방송국 하나만을 꼴랑 몇 시간 동안만 점거했고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만을 침해했을 뿐이었지만, 신천지사랑제일교회는 대한민국의 전 분야를 정지시켰고 오천만 국민 모두의 건강과 일상을 송두리째 침해했다. 다만 정말로 대한민국 정부의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랑제일교회와는 달리 신천지의 경우 자신들의 반대파 인사들에게 벌인 만행이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방역체계에 교란을 일으켰을지언정 자신들로 인해 나라 전체가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를 입은 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과를 했다.[7] 정통과 이단의 내용을 근거로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이 '정통과 이단'은 한기총의 재검토 결과 같은 해 11월 폐기되었다. 즉, 만민중앙교회는 여전히 이단이라는 얘기다.[8] 이재록 목사의 성추문과 관련된 내용은 이 사건으로부터 20년 후인 2019년 1월 29일 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에서 다뤘다.[9] 해당 다큐멘터리는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방영하였으며 영국방송공사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이 제작한 여러 영상을 수입해서 하나로 방영한 것이다. 방송국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서 다큐멘터리나 영화 필름(물론 전부 연소자 관람가 등급 영화뿐이다.), 애니메이션 필름을 여러 개씩 지참하고 있다. 이런 식의 테러로 인한 방송사고가 일어날 경우 그 방송사고를 가리기 위해 대체용으로 보관하고 있다.[10] 이때 '동물의 왕국'을 대체 방송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동물의 왕국'은 KBS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므로 사실이 아니다. 다만 이런 자연 다큐멘터리의 대명사로 꼽힐 정도로 동물의 왕국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발생한 것.[11] 후일 영화 달콤한 인생개그콘서트씁쓸한 인생 코너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것으로 유명한 유키 구라모토의 'Romance'의 피아노 버전이 쓰였다.[12] 화재예방 캠페인으로 대체. 화재예방 캠페인의 배경음악은 쿠스코의 Happy Island.[13] 서울 MBC와 마찬가지로 줄무늬의 충돌을 거쳐서 춘천봉의산을 소개하는 영상 방영으로 대체.[14] 영상다큐멘터리 '부산의 사계절'로 대체.[15] 이 사건과 맞먹는 또 다른 방송사고들은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배철수 감전 사고,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 등이 있다. 그러나 특정 집단이 물리력을 동원해 고의적으로 언론 자유를 유린했다는 점에서 앞에서 열거된 그 어떤 사고와도 궤를 달리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KBS에서 일어난 배철수 감전 사고를 제외하면 모두 MBC에서 일어난 방송사고다.[16] 사족이지만 폭력의 정도나 막장성을 이유로 두 사안을 1대1로 비교할 순 없다. 사이비 종교가 방송사를 점거한 것은 크나큰 잘못이지만 공권력이 정의의 이름으로 언론을 사전검열하고 통폐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붕괴이기 때문. 만민중앙교회의 패악질은 처벌도 가능했고 실제로 그 다음날 뉴스데스크가 철저하게 보도로 진상을 공론화했지만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은 민주화 운동, 헌법 개정 및 여러 번의 투표를 통한 권력 교체 후에야 막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공권력이 폭주하면 이는 통상적인 법률 시스템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17] 당시 MBC와 경향신문이 함께 썼던 정동 사옥은 현재도 그 모습 그대로 경향신문이 사용하고 있다.[18] 당시 관할구역은 구로동 일부 외에도 가리봉동, 금천구 전역, 관악구 신림동 절반을 관할했다.[19] 2천 명이면 약 1개 연대 수준의 인원이다. 그리고 이 인원이 국가보안시설을 습격했는데 초동 출동한 경찰이 10여 명이었으니 부실 대응으로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20] 참고로 경찰 등 공무원을 사칭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21] 참고로 이인용 앵커의 종교는 개신교다. 결혼 후 1994년에 세례를 받았고 온누리교회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22] 이때 MBC는 또 다시 신도들이 사옥에 난입할 것을 우려하여 사내 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당시 노성대 MBC 사장을 비롯한 MBC 간부진들이 퇴근하지 않고 회사에 남아서 지켜보는 등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었다. 다행히도 이때는 신도들이 MBC에 다시 난입하는 일은 없었다. #[23] 2020년대 현재는 대놓고 타 방송사 화면도 '자료제공 XXX'와 함께 자유롭게 송출되고 또한 화면과 프로그램 이름과 방송국 이름도 자연스럽게 맘껏 언급할 수 있지만 90년대였던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M본부 S본부 하며 직접적 언급은 힘들었고, 최근에서야 생긴 문화다.[24] "사전에 계획된 일이 아니라 우발적인 일"이라는 만민중앙교회 측의 구차한 변명을 실은 KBS의 보도와 이인용 앵커의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발언은 대조하다 보면 참 묘할 정도.[25]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인 정민영 변호사는 "만약 삭제된 15분 가량의 성추문 의문을 없애지 않았으면 적어도 이후의 추가 피해자와 성추문은 막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26] 해당 영상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아폴로 안톤 오노의 반칙 논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주요 이슈로 나온 것으로 보아 2002년 초에 제작된 것이다.[27] 형과 나머지 동생 둘도 감리교 목사인데 막내를 제외한 셋이 대한민국 감리교에 남긴 족적은 컸다. 물론 악영향도 이에 비례해서 문제가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