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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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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2010년3. 2011년4. 2012년5. 2013년6. 2014년7. 2015년8. 2016년9. 2017년10. 2018년11. 2019년12. 남북한관계의 특수성 및 방향13.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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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2010년대에 진입하면서 사건사고 및 접점이 2000년대보다 많아지게 되면서 기존 남북한관계에서 분리하였다.

2. 2010년

한반도판 냉전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여 46명의 해군 장병이 전사하였다. 두 달 뒤에 다국적 민군 합동 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폭침당했다고 발표하였으며 발표 사흘 뒤인 5월 24일에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 교역과 교류를 중단시켰다. 당시 정부 측의 발표와는 달리 좌익 계열 내부에선 '좌초설' 같은 음모론이 오르내렸다.

2010년 11월에는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 해병대원 2명, 민간인 2명이 사망하였다. 이는 북한이 위험한 모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는 사건으로, 남북한관계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남북은 마치 냉전 시기로 회귀한 듯이 상호 적대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이에 따른 양측의 긴장도는 한층 높아져갔다. 남북한관계는 당국 간 대화는 물론이고 민간과 경제 교류 역시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 시기에 개성공단이 존폐의 위기에 처했으나 2016년까지 존치가 이어지게 되었다.

3. 2011년

2011년에도 여전히 남북관계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 말 김정일이 죽고 그의 아들인 김정은이 북한의 새 지도자로 집권한 뒤 12월 29일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의 핵실험 유예가 발표되어 북미간에 순풍이 오는 듯하였다.

4. 2012년

2012년 4월에 북한이 또다시 로켓을 발사하자 한반도의 정세는 다시 경색되었다.

5. 2013년

2013년의 3차 핵실험은하 3호(광명성) 발사로 남북한관계는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말기까지 얼어붙었다. 2013년에 이명박 대신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전 정부와 달리 남북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 회담 진전 시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한 대북 정책을 창안했지만, 초반부터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선언 등으로 인해서 남북관계가 크게 경색된 시기였으며 불안감까지 밀려오는 바람에 그 어느 때보다도 격랑이 심해가던 시기였다.

이 해에는 개성공단이 일시적으로 폐쇄되면서 지난 이명박 정부시절 금강산 관광 전면중단 이후 5년만에 일어나게 되었던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말로 '휴전협정을 파기한다'며 대남 선전포고격에 가까운 도발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남북관계는 긴장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2013년 6월 남북간 당국회담 역시 무산되었다.

게다가 국정원이 NLL 관련 문서를 개방해서 외교관계마저 더 악화되었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대북정책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사건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2013년은 대한민국, 북한 그리고 러시아 간 경제협력 시도가 시도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 라진항과 부산항을 이용한 석탄 무역 중개 등 경협 주제가 논의되었으나 북핵 때문에 다 무산되었다.

뜻밖에도 2013년에 평양에서 열렸던 아시아 클럽 역도 선수권 대회에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방북승인과 동시에 한국의 태극기 사용을 허가함과 동시에 한국의 애국가 연주까지 전면허용하면서 물꼬가 트여가기도 하였다. 참고로 우리나라 또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의 국기 및 국가사용을 허용하였다. 또 북한의 최룡해김양건 그리고 황병서가 인천아시안 폐막식을 위해 방남하기도 하였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정홍원 국무총리와 짦은 접견을 가졌다. 그러나 2013년 9월 21일, 북한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한다라고 밝히면서 한국측으로 책임을 전가하여 남북한관계는 진전되지 않았다.

6. 2014년

2014년 초 김정은이 남북한관계 개선을 주장하였고, 이에 따라 북측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었고, 그리하여 2월 20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4년 3월에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안 좋아졌다.

2014년 4월에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공식 석상에서 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등장하였다.

2014년 7월에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논의를 하기위해 20일 회담이 열렸다. 8월에는 인천아시안게임 북한측 선수단 참가를 위해 17일 실무접촉에서 결렬을 선언하고 일방퇴장했다. 그러다가 다시 8월에는 서면 형식으로 의견을 교환하자는 의견을 내비쳤으며 아시안게임 참가에 대한 협의가 지속되었다.

2014년 9월에 개최한 인천아시안게임에 북측 선수단 총 273명이 방남하였다. 북한은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별 종합순위 10위 안에 올랐다.

2014년 10월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인 최룡해, 황병서 그리고 김양건이 방남하였다. 10월 4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오찬 회동을 하였다. 폐막식날에는 박근혜 대통령 예방은 이뤄지지 못했고, 정홍원 국무총리와 만남을 가졌다.

2014년 10월 15일에는 남북군사회담이 열렸으나 의견차이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2014년 10월 30일에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이 5년 만에 재개되었다.

2014년 11월 29일에는 남북러 경제사업인 라선시-하산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이 실시되었다.

2014년 12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 관계가 또다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7. 2015년

2015년 1월 초 김정은 당시 국방위 제1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밝혔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여전히 지지부진했고 별다른 고위급회담 및 접촉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8월 4일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이 일어나면서 대북방송을 재개하기로 결정함으로 다시 냉각. 2015년 8월 20일 북한이 남한 연천군으로 사격을 하며 대북방송을 중지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서부전선 포격 사건으로 북한이 42년만에 대한민국 본토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였다는 점에서 재래식 전쟁의 위협이 제일 높았던 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북한측에서 먼저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을 제안하며 이번 사태에 대한 유감을 처음으로 표명하였다.

8. 2016년

그리고 2016년 1월 6일 북한에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고 2월 7일 광명성 4호 위성 발사를 저지르면서 이에 이해 관계가 얽힌 각국이 크게 반응하면서 남북한관계는 화해가 아닌 여지없는 힘대결로 들어가게 됐다. 결국 2월 10일에는 개성공단까지 잠정 폐쇄되고 당해 9월에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는 등 박근혜 정부 집권 4년 동안 남북한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9. 2017년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황교안 체제를 거쳐 새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새 통일정책을 창안하였으나, 이미 경색될 대로 경색되어 버린 남북한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에게 군사회담 등을 제안하는 스탠스를 보여줬으나 정작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6차 핵실험에 ICBM 발사 실험을 하는 가 하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말싸움을 하는 등 경색 분위기를 계속 이어갔다. 무엇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제 1목표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 보유국 지위를 얻는 것, 더 나아가서는 미국과의 평화협정 및 주한미군 철수이므로 미국이 아닌 남한 정부와는 대화를 시도해봤자 별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물론 대북 제재 등으로 북한의 사정이 더욱 악화된다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남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낮다.

10.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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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남북정상회담까지의 평화무드 급물살 연표.
2018년 남북회담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월 9일 <colbgcolor=#fff,#191919>2018년 남북고위급회담 (경과)
15일 평창동계올림픽 예술단파견을 위한 남북실무접촉 (경과)
17일 2018년 남북고위급회담 실무회담 (경과)
2월 9~11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계기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김영남, 김여정)
25~27일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계기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김영철)
27일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
3월 5~6일 대북특사 방북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포함 5명)
20일 예술단 평양 공연 관련 남북실무접촉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29일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 남북고위급회담
4월 5일 제1차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
7일 제1차 통신 실무회담
14일 제2차 통신 실무회담
18일 제2차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
23일 제3차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 반응 / 의의와 한계 )
5월 26일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
6월 1일 2018년 6월 남북고위급회담
14일 2018년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18일 2018년 6월 남북 체육회담
19~20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보수 작업을 위한 방북
22일 2018년 6월 남북 적십자회담
25일 2018년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복구를 위한 남북 통신실무접촉
26일 2018년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
27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보수를 위한 방북
28일 2018년 남북 도로협력 분과회의
7월 4일 2018년 남북 산림협력 분과회의
4~6일 남북통일농구대회 출전을 위한 방북
5~6일 2018년 7월 남북체육실무회담
31일 2018년 7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8월 13일 2018년 8월 남북고위급회담
9월 14일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 실무대표회담
18~20일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9월 평양공동선언
10월 4~6일 2018년 10.4 선언 남북공동기념행사 위한 방북
15일 2018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
22일 2018년 10월 남북 산림협력 분과회의
26일 2018년 10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11월 2일 2018년 11월 남북 체육회담
7일 2018년 11월 남북 보건회담
16일 2018년 11월 남북 항공회담
23일 2018년 11월 남북 통신 실무회담
12월 11일 남북 산림 실무회의
12일 남북 보건의료 실무회의
13일 남북 철도 실무회의
14일 2018년 12월 남북 체육회담
참고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결과 ( 준비 / 개최 장소 )
남북미정상회담 (가능성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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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격한 태도변화로 11년 만에 다시 시작된 한반도 평화무드라 할 수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우리 측에서는 북한에게 여러 번 관계 개선 의사를 꾸준히 표시하였으나 북한은 이를 무시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듯이 의사소통에 대한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1]

그러던 중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평창 올림픽 대표단 참가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2018년 1월 2일에는 통일부 장관 조명균은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며 2018년 1월 2일에 남북한 고위급 회담을 공개 제안하였다.

2018년 1월 3일, 판문점 연락 채널이 복구되었다. 개성공단 폐쇄 1년 11개월 이후에 판문점 연락망이 복구됨에 따라서 남북한은 서로에게 의사 전달 시 육성이나 언론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2]
2018년 1월 4일 북한이 먼저 판문점 연락 채널로 먼저 통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은 남북한 고위급 회담에 대한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 이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공개제안에 대해 검토 중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 10시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를 통하여 평창올림픽 동안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기로 하였다. 이는 1992년 이후 26년 만에 한미연합훈련이 연기되는 것이다.

2018년 1월 5일 북한은 이례적으로 한국의 공개 제안을 별다른 수정안 없이 받아들였다. 대체로 한미연합훈련 연기 결정이 북한의 적극적인 호응을 불러왔을 것이라는 예상이 크고, 한편으로는 미국의 초강압적 대북제재와 경제난이 북한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존재한다. 같은 날 오전 10:16분, 북한은 판문점 채널을 통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 관계 개선 등과 관련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회담한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냈다. 북한이 한국의 제안한 장소와 날짜 모두 수정하지 않고 수락하였다.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2018년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위시로 대한민국 측 5명의 대표단은 오전 9시에 파주 통일대교를 넘어서 판문점에 먼저 도착하였다. 이후 오전 10시 전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을 위시로 북측 5명의 대표단이 북측 판문각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회담을 하러 왔다. 먼저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의 회담이 오전에 진행되었고 오후에는 대표단장을 제외한 4인 실무자들의 회담이 진행되었다. 회담 이후 오후에 서해지구 군 통신선이 23개월 만에 복구되었고, 남북한은 곧 동해 군 통신선을 복구시킨다는 합의를 가졌다.

1월 13일 한국은 1월 15일에 평창올림픽 관련 3대 3 남북실무회담을 제의했다.

1월 13일 북한 측은 대한민국의 제안에 대한 역제안으로 평창 올림픽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 우선 협의를 제안하였고,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제안을 수용하며 1월 15일 북한에 위치한 통일각에서 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1월 15일 남북 예술단 실무접촉이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측 4인 대표단은 판문점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북한에 위치한 통일각에서 실무접촉을 하였다. 대한민국 측 4인 북한 측 5인 간의 실무접촉이 이루어졌고, 오전 회의는 공개, 오후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하였다. 자세한 것은 평창동계올림픽 예술단파견을 위한 남북실무접촉을 참조.

1월 15일 남북한은 예술단을 제외한 실무 회담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1월 17일 차관급 실무회담이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을 대표로, 북한은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을 대표로 지정하여 3 대 3 실무회담이 진행되었다. 자세한 것은 2018년 남북 평창 실무회담을 참조. 이러한 실무회담을 바탕으로 1월 19일부터 20일 동안 IOC, 평창 조직위원회, 남·북 올림픽위원회가 스위스 로잔에서 '23일 엔트리' 확장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1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남북한 조직위 및 올림픽위원과 IOC 간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1월 21일 현송월이 남한을 경의선을 통하여 방남하였다.

2월 1일 북한 선수단의 방남, 및 2월 5일 북한 예술단의 서울 및 강릉에서의 공연 등 문화적 교류가 일시적으로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이념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시민들은 삼지연관현악단의 무대 실력에 만족했다는 평이다. 그리고 북한 역사상 최초로 김일성의 직계 혈속인 김여정과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 및 남북단일팀 경기 구경 등, 북한은 전에 없었던 매우 이례적이고 개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튼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김영남, 김여정까지 방남을 가지면서 남북한관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화적 통일 및 한반도 운전자론을 재창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역대 가장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받고 있고 이를 완화해 보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법하다. 김여정이 전달한 김정은의 친서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봐서는, 대북 제재의 완화 및 한미동맹의 균열이 북한이 궁극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2월 19일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2021년에 개최될 동계 아시안게임을 남북한이 공동 개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발표에 장웅 북한 IOC 위원은 동계 아시안게임이 공동개최된다면 마식령스키장을 이용 가능하다고 답하였다.

2월 22일 대한민국 정부가 북측의 방문을 알리며, 김영철을 위시로 북한 대표단이 2월 25일부터 2박 3일 동안 방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북한의 조치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는 이방카 트럼프 및 북미대화에 관련성이 없지 않다고 평가된다. 또한 김영철이 방남함에 따라 대한민국측 국정원쪽에서 접촉을 하였던 것으로 드려나며, 국정원통일전선부 간 비공개 소통창구인 정보 채널이 복원된 것으로 고위급 관계자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이는 단순히 남북한의 정보 채널에 국한되지 않고, 남북미 간 정보 채널의 복원도 의미한다.

3월 3일 SBS가 대북특사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을 보낸다고 청와대 관계자에게 확인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이 청와대 관계자는 이 2명이 이르면 다음 주에 방북할 것이라고 알렸고, 3월 4일 정확한 방북 날짜를 발표할 것이라고 재확인하였다.

3월 6일 대북특사단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4월에 제3차 남북정상회담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이루어지게 남북한이 합의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1박 2일의 방북 이후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방문하여 방북 성과 및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말하였다. 서훈 국정원장은 이와 맞춰서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3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수락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4월말에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5월경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만일 4월과 5월을 문제 없이 보내고 북미정상회담 및 북미 수교가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향후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에 힘이 실리는 것과 동시에 평화협정 및 종전 논의에 대한 구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 본인의 트위터에 의하면 비핵화와 그 준비기간 동안 미사일 시험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조건과 일단 만나고 보자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향후 행방이 어떻게 될지는 더욱 미지수가 되었다.

3월 10일 백악관 대변인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여차하면 판을 깨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정상회담 시작 전 북한을 압박해 협상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어 보인다. 덧붙여, 비핵화 조치를 완수할 때까지 제재 및 압박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

3월 20일 대한민국 예술단의 평양 예술단 공연을 위한 예술단 평양 공연 관련 남북실무접촉이 이루어졌다.

4월에 이루어질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 3월 29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 남북고위급회담을 갖었다.

4월 1일부터 3일간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이 있었다. 예정에 없었던 김정은리설주와 동행하여 4월 1일 첫 공연을 관람하였으며, 우리 측 가수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3]

4월 5일에는 2018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을, 4월 7일에는 2018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통신 실무회담을 가졌다.

4월 14일에는 2018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통신 실무회담의 후속회담을, 4월 18일에는 2018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의 후속회담을 가졌다.

4월 20일에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북한 국무위원회와 직통전화가 가능한 핫라인이 설치되었다.[4] 정상간 핫라인 설치는 유례없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실무급[5]에서 정상급[6]까지 남북한은 핫라인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만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첫 정상통화를 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또한 같은 날 북측에서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휴대전화 사용을 요구하였고, 우리 측이 이를 수용함에 따라서 남북한의 이동기지국 차량이 판문점에 대기할 상황이다.

4월 21일 북한이 함경남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를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4월 23일 우리측에서 북한 핵실험장 폐기에 대하여 대북 확성기 운행을 중단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최초의 선제 조치로서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재개된 이후 약 2년 3개월 만에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 북한도 우리측의 행동에 대하여 민통선 부근에 대남방송을 중단하였다.

4월 25일 남·북한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합동리허설을 가졌다.

4월 27일에는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5월 1일 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 행위가 중지할 예정이고 5월 중으로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 할 예정이다.

5월 16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북한이 한미공군연합훈련 '맥스선더'를 이유로 무기한 연기하였다. 이러한 무기한 연기에서 김계관의 명의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재고려와 대한민국의 한미연합훈련, 태영호 전 북한 영국대사에 대한 비판을 퍼부었다. 이러한 북한의 반응에 청와대는 유감이라는 반응을 보냈으나 북한은 이에 다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명의로 재반박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5월 20일에 북한은 집단 탈북자들의 송환을 요구하였다. 대한민국 내 집단 탈북자들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탈북하였다는 의문점이 발생하는 가운데 북한적십자에서 이러한 요구를 내놨다. 대한민국 정부와 통일부는 이에 대해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며 탈북자 송환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북한적십자의 탈북자 송환 요구는 대한민국이 올해 8월 15일에 개최를 요구하는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조건으로 보여진다.

5월 22일 북한이 약속하였던 5월 23일부터 25일 중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공개에 대한민국측 기자단이 제외되었다. 원래 미국,중국,영국, 러시아 그리고 대한민국 기자단이 초청되어야 했지만 북한 측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고위급 회담 무기한 연기와 더불어 기자단 리스트 접수를 거부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 및 통일부에서 판문점 채널을 통해 계속 기자단 접수를 요구했지만 북한 측에서 상부의 별다른 지시가 없다며 접수를 거부하였다. 이렇게 남북한관계판문점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강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곧 앞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5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1박 4일 미국 공식방문 및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다. 같은 날 한국 시각으로 아침 9시에 통일부가 판문점 채널으로 송부한 기자단 명단을 북한이 마침내 접수하였다. 그리고 기자단 명단이 접수됨에 따라서 남북 직행로를 타고 성남에서 원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5월 24일 한국시간으로 늦은 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난 뒤 미국은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계관최선희의 담화를 근거로 북한의 북미정상회담 의지가 없다고 말한 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없는 일로 만들었다.

트럼프의 발표 이후 바로 김계관이 담화를 발표하며 저자세로 북한은 미국에게 대화를 생각해볼 시간를 수용해 줄 수 있다고 말하였다. 북미정상회담 취소 이후 국내여론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핫라인으로 통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김칫국을 마신 거라며 비판했다.

그러다가 5월 26일, 판문점의 북한 측에 위치한 통일각에서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며 6월 1일에 남북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5월 29일 정부가 북한에 고위급회담 대표단 명단을 통지했다. 고위급 회담 대표단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하고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등이 포함된다.

6월 판문점에서 2018년 6월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이후 남북한은 6월 14일, 18일 그리고 22일에 실무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6월 7일. 북한의 찬성으로 국제철도협력기구(OSJD:Organization for Cooperation of Railway)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로써 코레일은 오랜 숙원이였던 OSJD 가입 및 신북방정책 실현에 있어서 한 걸음을 내딛게 될 수 있게 되었다.

6월 14일에는 2018년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6월 18일에는 2018년 6월 남북 체육회담을 가졌다.

6월 19일부터 20일 동안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을 대표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보수 작업을 위해 개성공단을 방문하였다.

6월 22일에는 2018년 6월 남북 적십자회담을 금강산에서 가졌다.

6월 25일에는 14일에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을 바탕으로 2018년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복구를 위한 남북 통신실무접촉을 가졌다.

이후 6월 26일, 28일 그리고 7월 4일에는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세무 분과회의를 갖게 되었다.

6월 26일에는 2018년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를, 6월 28일에는 2018년 남북 도로협력 분과회의를 가졌으며, 7월 4일에는 2018년 남북 산림협력 분과회의를 갖게 되었다. 분과회의에서 남북한은 완만한 합의를 보았고, 7월 24일부터 공동조사 및 공동연구를 직접적으로 실행할 계획이다.

7월 4일부터 6일까지 남북통일농구대회 출전을 위해 대한민국 방문단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같은 일정 기간 동안 남북한 인사간 7월 5일 심야부터 6일 새벽까지 2018년 7월 남북체육실무회담를 갖었다.

7월 10일 대한민국 정부측에서는 미국의 프리덤가디언 연습 잠정 중단이라는 결정에 따르고, 남북한 대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을지연습 또한 잠정 보류한다고 밝혔다.

7월 12일부터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는 가운데, 북한 영화 9편이 최초로 상영 허락을 받고 상영되게 되었다.

7월 31일에는 2018년 7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갖으며 DMZ 내 GP 시범적 철수 및 JSA 비무장화 그리고 서해 해상 적대행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2018년 8월 13일에는 2018년 8월 남북고위급회담을 갖으며 평양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합의를 확인했다.

9월 5일, 1월에 이어 두 번째 특사단이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더 큰 역할을 안게 되어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다.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북한과 비핵화 초기 조치를 요구하는 미국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청와대는 더 큰 역할(중재자)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목표는 특사단이 중재안을 들고가서 북한이 비핵화 초기 조치를 구체적으로 하도록 약속을 받은 뒤 1월처럼 미국으로 다시 가서 미국 행정부 관료들이 종전선언을 하도록 설득하는 것으로 보인다.

9월 12일,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되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은 상시에 다양한 현안에 대해 대화하고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9월 18일~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정상은 이 회담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18년 9월 26일을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에서 그동안 폐지되었거나 유보되었던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다시 활성화한다고 한다. 특히 2015년 기금을 폐지하였던 경상남도가 이를 재설하고 울산광역시는 이번에 처음으로 기금을 신설한다. 아마도 대북제재 완화와 남북경협을 위해 대비하려는 모습이다.

그리고 10월부터는 남북한 철도 및 도로에 대한 현지 공동조사가 이루어질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 및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된 태도가 유엔사의 제지를 일시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다면 공동조사는 진행됨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한 남북한 적십자회담이 개최될 예정이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가 추가적으로 이루어질 계획이다.

10월 1일부터 JSA강원도 철원군의 화살고지에 대한 지뢰제거 작업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

10월 2일에는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화살고지 지역을 방문하며 군 장병의 안전을 강조하였다.

10월 4일부터 6일까지 2018년 10.4 선언 남북공동기념행사을 열기 위해 대한민국 측에서 160명 정도의 방북단이 평양을 방문한다. 이는 11년 만에 10.4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것이다. 10월 5일에는 남북 고위급 협의가 평양 고려호텔에서 진행되었다. 방북단은 김정은 접견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10월 7일날 마이크 폼페이오 방북 및 김정은의 삼지연시 방문으로 무산되었다.

10월 15일에는 2018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이 판문점 한국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이날 남북한은 후속회담을 10월과 11월에 조속하게 진행하도록 합의하였다. 동시에 같은 날 평양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하였던 JSA 내 지뢰 제거가 모두 완료되었다. 닷새 이후에 판문점 내 초소 철거 및 비무장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10월 22일에는 2018년 10월 남북 산림협력 분과회의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소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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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42년 만에 JSA이 비무장화되었다. 이제 공동경비구역은 남북한이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고 복장의 자유화와 무기소지가 일체 금지되었다.

10월 26일 2018년 10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렸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언제 열릴지 모르고 대북제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한관계도 이에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현재이다.

11월 1일부터 DMZ 근처에서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가 모두 금지된다.

11월 2일 2018년 11월 남북 체육회담이 개성시 소재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렸다. 이에 남북한은 도쿄올림픽 단일팀 출전과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개최에 대한 합의를 하였다.

11월 3일에는 남북한이 10년만에 서해 NLL의 불법조업 중국 어선에 대한 정보를 군 통신선을 통해 교환하였다. 그리고 울진군 소속 어선이 동해 대화퇴 수역에서 어업을 하다가 북한 해군에게 나포되었다가 풀려났다고 한다. 이러한 북측의 행동에 우리 정부는 유감을 표명하였다.#

11월 5일부터 남북한이 한강 및 임진강 하구 공동조사를 시작하였고 연말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이는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에 진행되는 일이며 군사분계선이 명확히 그어지지 않은 만큼 수로 조사가 3군데로 나뉘어 진행될 것이다.

11월 7일에는 2018년 11월 남북 보건회담을 11년만에 가졌다.

11월 11일에는 9.19 군사합의서에서 논의된 GP 시범철수가 완료되었다. 동시에 청와대는 이날 북한 김정은이 보낸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제주산 귤 200톤을 북한으로 보냈다. 그리고 유엔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해 한국이 채택에 가담한 것을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비난하였다.

11월 12일에는 남북 도로 공동연구 조사단이 2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며, 동해선 도로 현지 공동조사 일정 등을 포함해 남북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공동연구조사를 협의할 것이다.

자유 아시아 방송에서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전민무장화 방침을 제시하고 전시태세 훈련을 강요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11월 14일부터 17일까지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및 북측 대표단이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참석을 위해 방남하였다. 그리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접견하고 판교 테크노밸리를 방문하였다.

11월 16일에는 1년 만에 북한이 신형 첨단전술무기 시험 지도를 김정은이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같은날 개성에서는 남북 간 최초 항공회담인 2018년 11월 남북 항공회담이 열렸다.

11월 17일에는 북한에 지난달 10월에 억류된 미국인 브루스 바이론 로랜스가 추방 형식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에 폼페이오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11월 18일부터 20일까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민간 방북단이 금강산관광 시작 20돌 기념 남북공동행사을 위해서 북한 강원도 금강산을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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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에는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남북간 전술도로가 연결되었다.[7] 6.25 전쟁당시 남북 최대 격전지였던 지역 위에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군용도로가 개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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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도로 연결 당시 남북 각군 공병대가 도로공사를 맡았는데, 남북 군인들이 서로 조우하고 악수를 나누는 익숙지 않은 광경이 나오기도 했다. 육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예정에 없었던 만남이였다고 한다.

11월 23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2018년 11월 남북 통신 실무회담이 열렸다. 같은 날 미국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내 철도 공동조사에 대해 대북제재 면제를 인정하며, 유엔대북제재위원회가 제재 면제를 승인하였다. 그리하여 늦어도 남북한 철도 공동조사 및 연결착공식이 12월 중하순에는 이루어질 예정이다.

11월 30일 경의선 남북 철도 공동조사단 열차가 도라산역에서 공식 환송 행사를 하고 출발했다. 18일간 2600km를 이동할 예정이다. 방북 열차는 기관차 1량, 객차 6량으로 구성되었다.

12월 1일에는 남북간 합의된 GP 철수 이후 처음으로 북한군 1명이 귀순해왔다.

12월 5일에는 경의선 남북 철도 공동조사단이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12월 8일에는 동해선 철도 공동조사를 위해서 남북 철도 공동조사단이 제진역에 위치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서 출경했다. 공동조사단은 감호역부터 안변역 구간을 버스로 이동하고 금강산역을 시작으로 두만강역까지 800km를 이동할 예정이며, 12월 17일에 조사가 마무리될 것이다. 또한 이날 아침에는 북한 개성시에서 2대의 비행체가 강화도 방향으로 접근해서 대한민국 공군이 바로 출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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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에는 한강하구 남북 공동수로조사가 완료되었다.

12월 11일에는 북한은 다시 2대의 비행체를 전출조치선까지 내려보냈고 대한민국 공군은 다시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켰다. 같은 일이 두번이나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가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동체육관에서 열리는 ITTF 2018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대회를 위해 안철용 코치와 차효심 선수, 임원 3명 등 모두 5명의 북한 탁구선수단이 방남하였다. 같은 날 남측 산림협력 대표단이 평양으로 출발하여 13일까지 양묘장·산림기자재공장을 시찰하였다. 그리고 강원도 철원군 화살고지 공동유해발굴을 위해 남북 군 공동근무 연락사무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내년 2월 남북 공동유해발굴감식단 설치 및 4월부터 있을 본격적인 공동유해발굴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12월 12일에는 남북 간 시범철수 GP 검증이 진행되었다. 남북이 상호 현장검증을 한 건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만이라고 한다. 같은 날에는 개성 소재 남북연락사무소에서 남북 보건의료 실무회의가 열렸다.

12월 14일에는 2018년 12월 남북 체육회담이 열렸다. 남북단일팀, 도쿄올림픽 출전 종목 그리고 2032년 남북 공동 올림픽 유치 등에 대한 사안을 논의하였다.

12월 21일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문재인의 이름은 거명하지 않았지만 문재인의 발언을 인용하며 "자주외교를 운운하는 것과 같은 가소로운 추태도 부렸다"고 문재인을 모욕했다.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한 상대에게 믿기지 않는 무례를 범한 것이다.# 현재 북한은 미국의 반대로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자 대한민국이 미국에 끌려다닌다며 문재인을 맹비난하고 있다.

12월 25일에는 북측에서 강지영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명의로 남북한관계 간 처음으로 성탄절 축하 인사를 보냈다.

12월 26일에는 남북간 경의선동해선 철도ㆍ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이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판문역에서 이루어졌다. 남측 대표단으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비롯한 관련 인사 100여 명이,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방강수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김윤혁 철도성 부상 등 관련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해외인사로는 중국 국가 철로국 차관보와 러시아 교통부 차관, 몽골 도로교통개발부 장관, 몽골 철도공사 부사장,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 주한 중국대사, 에르데네투야 남스라이 주한 몽골 대사대리, 아르미다 알리샤바나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UNESCAP) 사무총장 등이 참석하였다.

12월 30일 김정은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였다. 친서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 및 번영에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12월 중순이냐 연말이냐에 대한 말이 많았던 연내 김정은 서울 답방은 공식적으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친서 내용에 서울 방문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음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는 2019년 연초 가능성이 시사되었다고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11. 2019년

연초까지는 표면적으로 평화 분위기가 이어졌으나, 2019년 중순에 들어서면서 북한이 또 다시 미사일 도발을 일으키며 경직되어 가는 상황이며, 더불어 한국에 대한 비난 수위도 나날이 높여가고 있다.

1월 1일에는 김정은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에는 자력갱생의 강조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였다.또한 트럼프 대통령과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가질 용의를 보이면서도 미국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을 지향하겠다는 경고도 우회적으로 보여주었다. 남한에게는 한미연합훈련 및 전략자산 배치 중지를 요구하며 조건없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의 재개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1월 말이나 2월 초에 남측에서 북측에게 타미플루 20만명분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육로 운송을 통한 개성에서 인도인수 할 계획 및 통일부 및 보건복지부 실무단의 방북 계획이 논의되었으나 북한의 무응답으로 흐지부지되었다.

1월 25일 개성에서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천해성-전종수 소장간 7번째 소장회의가 열렸다.

1월 26일에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방북을 요청하였으나 통일부에서 유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월이나 3월에 열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통일부 및 외교부 명의로 환영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또한 남북한간 고위급 회담 및 논의가 대북제재에 의해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한은 관영매체를 이용해서 남북경협 활성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중이다.

1월 29일 정부가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서해안고속도로 및 서해 남북평화도로의 일부분인 영종도~신도 평화도로 사업을 예타 면제시켰다. 그리하여 교동도해주 그리고 강화도개성을 잇게 될 서해 평화도로의 첫 삽이 뜨이게 되었다.

1월 30일에는 한국 정부의 동해선 공동도로조사 반출 물자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서 면제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날 판문점에서는 남북 군사실무접촉이 열렸으며 한강하구 해도를 북측에 전달하였다.

1월 31일에는 개성에서 남북 도로협력 실무접촉을 진행하였다. 여기서 북한 인사의 남측 방문 및 도로 시찰 등의 협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만약 협의가 긍정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북측 인사의 첫 남측 도로 시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2월 8일~9일에는 현대아산 창립 20주년 행사가 금강산 호텔에서 열렸다. 현대측 인원 22명이 8일날 방북하였다.

2월 12일부터 13일간 남북 인사 400여 명은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금강산 호텔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을 가졌다.

2월 15일 스위스 로잔에서는 남북한 그리고 IOC간 협의를 통해 2020 도쿄올림픽 남북단일팀 종목을 여자농구와 여자하키, 조정, 유도로 최종 합의했다. 같은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는 3·1운동 100주년 남북공동 기념행사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2월 18일 대한민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비용을 현물로 지급한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통일부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2월 25일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북측과 도로 및 철도 정보를 교환하였다.

2월 27일~28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 이후 남북한관계 및 북미관계가 모두 경색되었다.

3월 3일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3월 내 남북군사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3월 4일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탁구 남북단일팀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대한체육회가 밝혔다.

3월 6일에는 대한민국 국방부가 남북공동유해발굴단 남측 인원 리스트를 북에 송부하였다고 한다. 같은날 대한체육회에서 도쿄올림픽 여자 카누 종목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3월 7일에는 장애인체육회가 도쿄패럴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였다.

3월 8일에는 조명균 장관을 대신할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새로 통일부장관직에 내정되었다.

3월 22일, 남북간 연락과 상호민간교류를 위해 설치됐던 개성 연락사무소에서 북측 상주인원이 '상부의 지시'[8]라며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2018년 4월 27일 발표된 판문점 선언으로 설치하기로 한 뒤 9월 14일에 설치되었는데 1년도 못 가서 어떠한 조율이나 사전 통보도 없이 당일 일방적 통보만 내놓고 덜컥 철수해버렸다. 대북제재로 인해 남북간 경제협력이 지지부진하자 북한 측에서 대응조치로 벌인 행동으로 보이는데 덧붙여 한국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론에 대해 "자기의 처지를 망각한 주제넘은 처사다. 미국의 승인과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조선당국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중재자 역할,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수위높은 비난을 가했다.

미국이 대북제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자제하고 최대한 북한에게 위협이 될만한 언행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미 신경전 구도에서 한발자국 물러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한국측에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며 개성 사무소 상주인원 철수 등 파격적인 지시 등으로 계속 자극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각에서는 판문점 선언 후 이어지고 있던 남북간 협력기조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철수한 북측 연락사무소의 인력 일부가 3월 25일에 복귀함에 따라서 사무소 기능이 다시 정상화되었다.*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유해발굴사업이 유엔안보리 제재 면제를 받아 실행될 예정이였으나 북측의 무응답으로 남측이 단독으로 진행을 시작하였다.

또한 남북한 간 민간선박의 한강하구 자유항행을 시범적으로 허용하고,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나 이것 또한 북측의 무응답으로 답보 상태이다.

4월 8일에는 국제철도협력기구 사장단회의가 서울에서 열렸으나 북측에서는 불참하였다.

4월 25일에는 북러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문재인 정부가 이에 NSC 회의를 소집했다.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북측이 불참한 상태에서 판문점선언 기념 1주년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북한은 대외기관지 및 대외기구를 이용하여 남측을 비판하였다.

5월 4일, 5월 9일 2019년 북한 미사일 도발이 발생하였다. 이에 청와대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5월 17일에 통일부가 3년만에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을 승인하였다. 이와 더불어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800만 달러 공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하루만에 북한은 남이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 역할을 하라고 대남 압박용 선전문을 기고하였다.

5월 23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남북민간단체 실무협의가 북측의 일방적 통보로 무산될 위기에 있다가 깜짝 성사되었다. 그러나 합의 도달과 24일~26일에 예정되었던 사단법인 겨레하나와 민화협의 북측과의 실무협의는 모두 취소되었다. 같은날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북측이 참가가 어렵다고 통보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용섭 광주시장은 6월 12일 전까지 북이 참가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6월 3일에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 관람식에 숙청설이 나돌았던 김영철김여정이 살아있다는 것이 포착되었다. 김혁철 대미특별대표도 처형되지 않고 구금되어 조사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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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0일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면서 북측에서의 조문단 파견이나 조의 예측이 있었으나 김여정이 조문과 조화를 들고 판문점으로 오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6월 12일에 김여정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및 리현 통전부 실장이 판문점 통일각에 파견된 것이다. 이에 남측에서는 정의용 실장, 박지원 의원, 윤건영 실장 및 서호 차관이 나와 15분 동안 만남을 가졌다. 정의용 실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은 9월 평양 정상회담 이후 다시 보게 되었다. 여기서 박지원 의원이 광주세계수영대회에 북측 선수단과 응원단 참여 요구의사를 김여정 부부장에게 했다.

2019년 6월 11일에는 통일부 명의로 800만달러를 국제기구 WFP가 집행하는 대북 인도지원사업에 지원하였다. 언론에서는 내심 남북관계 해빙을 바라는 정부의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대북유화정책에 회의적인 측에서는 퍼주기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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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에는 서호 통일부 차관이 임명 이후 처음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방문하여 김영철 임시소장대리와 접견하였다. 1월 25일 7번째 소장회의 이후 단 한번도 열리고 있지 않는 소장회의에 통일부는 매주 1회에서 비정기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2019년 6월 15일에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 기념식이 남북간 따로 개최되었다. 같은 날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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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8~29일 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6자회담 당사국 지도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에 G20 이후 트럼프의 방한에 앞선 제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점쳐지고 있었으나, 정상회담은 조율되지 않았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2019년 남북미정상회동이 열렸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세 정상이 만나게 되었으며, 북미 정상간 비공개 회담이 진행되었다.

2019년 7월 24일 9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 정찰총국 소속 직파간첩이 검거되었다. 고정간첩이나 포섭간첩이 아닌, 북한에서 직접 내려보낸 직파간첩을 잡은 것은 2010년 황장엽 암살미수 사건 이후 9년 만이다. # 붙잡힌 간첩은 2018년부터 2019년 6월까지 국내에서 스님 행세를 하며 불교계에 잠입해 활동하려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안당국은 해당 간첩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

2019년 7월 25일을 시작으로 8월 10일까지 북한은 1주일도 안 되는 간격으로 총 5차례미사일 도발을 일으켰고,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조롱과 비난 수위도 나날이 높여갔다.

북미회담 조율이 진척이 없는 가운데, 북미대표 간 설전과 비판만 이어지고 있다. 리용호 외무상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및 유엔총회 불참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대미 비판은 지속되고 있다. 이와 별개로 북한은 대남 비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9월 24일 이후에는 다시 북미실무회담 분위기가 이어지더니 10월 5일 마침내 북한과 미국의 회담이 성사되었다. 다만 결과는 결렬. 이에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비하지 않았다며 비난하고 미국은 좋은 회담이였다고 반박했다.

10월 1일 북한이 SLBM 발사를 했음에도 진행된 것이고 북측에서 미국에서 새로운 신호가 있어보인다고는 했으나, 8시간만에 발언을 취소했다.

회담장소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이였고 스웨덴 측에서는 2주 이내에 다시 여기와서 회담하라고 제안했고 미국은 흔쾌히 받아들였으나, 북한은 말을 아꼈다. 그래도 간만에 하는 회담이라도 긍정하는 쪽도 있었다. 그리고 2차북미정상회담과 다른 점은 2차에는 트럼프가 먼저 일어섰지만 이번에는 북한이 먼저 결렬을 선언했다.

11월 23일 오전 경 김정은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한 사실이 확인됐다. 23일에 미상의 음원을 확보, 25일 북한측의 언론 보도로 사실임이 드러났다. 포격의 이유는 당시 북한측에서 연평도 폭격 9주년을 기념한 군사도발로 밝혀졌으며 국군은 북한이 사거리 12㎞의 76.2㎜ 해안포를 발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6일 국방부에서 서해안 군통신선을 통해 북측에 항의했다. 해당 사건은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상호간의 조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사건이다.

연말이 끝나가는 와중에도 남북관계는 답보 상태이며, 남측의 인도적 지원사업에 대해 북한은 헛된 짓거리를 하지말라며 원색적으로 비난중이다.

12. 남북한관계의 특수성 및 방향

현재까지도 한국과 북한은 특수한 관계로 6.25 전쟁 이후 서로 적대하며 일반인은 왕래하지 못하고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6.25 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민간은 커녕 국가 차원에서도 일말의 접촉 시도조차 전혀 없었고 1971년을 기점으로 남북회담이 시작되어 정부 차원에서 교류가 시작됐지만 매우 미비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소냉전이 큰 변화없이 수십년동안 유지되던 와중에 2000년 당시 김대중국민의 정부 측에서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처음으로 개최 하는데 성공,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때부터 2차 정상회담을 가진 참여정부까지가 가장 남북관계의 분위기가 좋았던 시기. 다만 대북송금 특검을 비롯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적 사건들, 막상 회담을 가진 이후 10년 가까이 진행된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으로 큰 진전이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음에서 비롯된 국민적인 피로감, 지속되는 북한의 핵개발과 언론 매체 및 군사적 도발,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인한 금강산 관광 중단 등 여러가지 계기로 인해 급속히 냉각화 되었다.

이후 2010년에 연달아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으로 인해 관계 악화와 국민적인 악감정은 최고점에 달했으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집권한 2010년대 초중반 내내 남북간의 갈등 상태가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이 내려진 것도 바로 이 시기.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평창올림픽 단일팀 추진, 남북정상회담 재개최, 판문점 선언을 비롯한 굵직한 국가적인 움직임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10여년 만에 화해 무드가 재생성되었고 전례없던 북미정상회담마저 개최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과 국제적인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개발 중단 및 종전 협상, 대북 제재를 비롯한 핵심적인 문제 해결이나 차후의 세부적인 방안에서 여전히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지지부진한 용두사미의 분위기로 흘러갔으며 북미간의 회담 결렬 및 관계 냉각화, 재차 시작된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매체를 통한 한국 및 미국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 같은 그 동안에 전국적으로 들인 수고와 비용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기존의 부정적인 현상이 빠르게 되풀이되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단일팀 및 새로운 정상회담에 대한 약속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측에서 즉각 거절한 소식마저 알려지면서 사실상 2년 반에 걸친 잠깐 동안의 평화 무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중론이다. 국민적인 기대치가 워낙 높았던 터라 2019년 기준,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 첫 정상회담 이후 20년 동안 전혀 진전된 바 없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남북관계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이 무시하지 못할만큼 상당하다. 이렇듯 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추진된 정책이 물거품이 된 이상 현재 소냉전 상태가 앞으로도 지속, 혹은 가속화 될 예상치가 높다. 이런 예측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다음 해인 2020년에 들어서 더욱 거세진 북측의 도발과 막말, '비핵화는 완전히 없던 일', '남조선과는 완전히 단절하겠다'라고 공표하고 핫라인까지 전면 단선하는 등 완전히 외교적으로 추락해버린 상황이다. 끝내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으로 폭파시키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남북관계가 완전히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든게 확실시되었다.

특히 2010년대부터는 남북 정부끼리의 국가적 마찰과는 별개로 통일에 대한 국민적인 감정과 사회적 시선마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북한과의 연고가 전혀 없고 객관적인 남북의 비교되는 지표와 그 동안의 답보하는 상황들을 꾸준히 보고 자라온 밀레니얼 세대[9]가 성인이 되어 입김을 내기 시작하면서 남북통일 자체가 이미 철 지난 논쟁 또는 과거와는 달리 남북간의 국력, 가치관 격차가 극심한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추진은 현재 한국의 전반적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를 도리어 악화시킬 거라는 의견의 부상이 상당하게 올라온 것이다.

한 마디로, 단순히 예전처럼 '우리는 한민족',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다 같이 주장하기엔 분리된 세월이 지나치게 흘러버렸고 그에 따라 새로 등장한 현 세대들의 의식변화가 사회분위기를 조금씩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북한을 형제가 아닌,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처럼 완전한 남남, 이웃한 외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버린 것. 이는 남북의 분단, 대립 상황이 지속될 수록 더 가속화되는게 기정사실이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영원할 것 같은 거시적인 담론과 여론도 결국 바뀌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북한에 김씨 세습정권이 도사리고 있는 한 그들과의 대화와 협상이 '성공'해서 당장 해빙과 평화 무드가 겉으론 도래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그들의 전략상 한국이 필요가 없어지는 때가 오면 번번이 배반당해 오던 법칙 수준의 경험이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똑같이 실증되었다는 것이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기대를 가졌을 법한 젊은층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가는 반북, 반통일 정서도 회담 이후의 실망과 좌절또한 반영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10년에 걸친 '2010년대 남북한관계'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살얼음판을 걷던 2010년대 초중반, 그 이후 1~2여년간의 평화무드가 잠시 찾아왔으나 진전없이 다시금 냉랭한 소냉전으로 돌아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13. 관련 문서



[1] 대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쾨르버 재단 연설 및 한반도 운전자론 구상 당시 북한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의견을 일축하였다. 또한 2017년 8월에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한국대표로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참석하였는데 리용호 외무상은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외교적 공식석상에서 북한은 대한민국측 인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무시하거나 만날 의사가 없다고 하는 등,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일조하였다.[2] 2016년 개성공단 폐쇄 이후로 남북한은 모든 연락수단을 단절하였기에 상대방의 의사를 언론이나 대북확성기 등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3] 평소 김정은이 알고 있었다던 레드벨벳의 멤버 중 아이린이 김정은 옆에 있는, 매우 특이한 사진을 찍었다.[4] 2018년 4월 7일 남북한 통신 실무회담에서 핫라인 설치를 논의하였다.[5] 판문점 채널, 서해 군통신선, 동해 군통신선 그리고 국정원 비공식 정보채널[6]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7] 이로써 경의선과 동해선처럼 한국과 북한을 직접적으로 잇는 3번째 도로가 완성되었다. 이 도로는 예전 국도 3호선의 중심 부분이기도 하다.[8] '상부'라고 에둘러 말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존재는 1인 독재국가 북한의 특성상 김정은뿐이다.[9] 밀레니얼 세대 이전의 베이비부머나 386, X세대만 하더라도 청년기까지 인터넷의 보급이 없었고 책자만으로 어깨 넘어 북한의 상황을 목도하며 자라온 터라 오히려 당장 북한의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후진적인지를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 386세대의 경우 그들의 청소년기까지는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터라 남북간의 격차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를만큼 커져버린 현 시점에 대한 현실 감각이 더딘 부분도 상당하다. 그리고 이 세대들은 분단이 시작되는 것을 직접 봐온 고령의 일제강점기 및 해방정국 출생 세대의 자식 세대인 경우가 많아서 부모 세대가 평생 간절히 바래온 남북통일에 대해 이성적으로 득실을 논하기도 전에 일차적인 감정에 휩싸여 무의식적으로 염원하는 경우도 있는 편이고 운동권의 중심 세대이다 보니까 북한에 대해서 기이할 정도로 애착이 있는 특이한 부류도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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