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92a33><colcolor=#fff> 험프리 보가트 Humphrey Bogart | |
본명 | 험프리 드포레스트 보가트 Humphrey DeForest Bogart |
별명 | 보기 Bogey |
출생 | 1899년 12월 25일 |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 |
사망 | 1957년 1월 14일 (향년 57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배우 |
학력 | 필립스 아카데미 엔도버 |
신체 | 173cm |
활동 | 1921년 – 1956년 |
배우자 | 헬렌 멘켄 (1926년 ~ 1927년, 이혼) 메리 필립스 (1928년 ~ 1937년, 이혼) 매요 메토(Mayo Methot) (1938년 ~ 1945년, 이혼) 로렌 바콜 (1945년 결혼) |
자녀 | 아들 스티븐 험프리 보가트 (1949년생) 딸 레슬리 험프리 보가트 (1952년생) |
계급 | 미국 해군 상병 |
서명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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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렌치 코트와 중절모를 쓴 탐정 캐릭터로 널리 알려졌으며, 미국 탐정의 대명사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역을 모두 맡았던 하드보일드의 남자. 유명한 명대사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남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1]가 있다.
필름 누아르에서 큰 활약을 펼쳤고 해당 장르를 개척한 배우로서 필름 누아르의 대표격으로 평가받는 배우이다. 미국에서는 Badass의 상징적 존재이자 사실상 영화 연기 내에서 쿨한 터프가이, 입체화 된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처음 선보인 배우이다. 《카사블랑카》의 로맨틱한 터프가이나 《몰타의 매》의 하드보일드 이미지에서부터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에서 보여주는 탐욕으로 뒤틀려 망가져가는 추악한 모습이나 《케인호의 반란》의 퀴그 함장 같이 PTSD로 무너져내린 초라하고 옹졸한 인간까지 두루 연기하며 스타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는 생동감 있는 인물상들을 창조해냈다. 보가트 이전의 주연급 배우들이 주로 전형적인 착한 주인공이나 코미디 캐릭터들에 불과했다는것만 봐도 영화 연기에 있어서 전환점이 된 인물이다. 어찌 보면 존 가필드를 거쳐 말론 브란도 이후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다양한 개성의 성격파 배우들의 큰 틀을 프레드릭 마치와 함께 미리 잡아준 배우라고 볼 수 있다. 훗날 AFI(미국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남배우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2. 생애 및 활동
무려 1899년생으로 동갑내기 제임스 캐그니와 함께 할리우드 남배우계의 맏형 라인이다. 참고로 이 둘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뉴욕 출신으로 원래는 배우를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다. 유명한 뉴욕 토박이의 대명사로 가문을 흥하게 한 조상 대부터 뉴욕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조상이 처음 정착한 곳이 나중에 발전해 뉴욕이 되었다. 집안이 매우 부유했었다. 할머니는 상속녀였고, 아버지[2]는 잘 나가는 심장/폐 전문의였으며, 어머니[3]는 당시 가장 많은 돈을 받던 유명 삽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험프리 보가트 본인도 미국 최고 명문 보딩스쿨로 꼽히는 학교 필립스 아카데미 엔도버를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르핀에 중독돼 1934년 많은 빚을 남기며 사망했고, 여동생 하나는[4] 알코올 의존증으로 34살에 사망했고, 다른 여동생은[5] 평생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는데 병원비를 보가트가 다 도맡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이런저런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1921년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브로드웨이에서만 일하면서 연기생활을 이어 나갔다. 29살이 되어서야 처음 영화에 등장했다. 1929년 월가 대폭락 사건으로 인해 연극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자 할리우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936년, 《화석의 숲》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쳐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후 《더럽혀진 얼굴의 천사》같은 갱스터 영화에 주로 출연하였다.
뉴욕 토박이인데, 그냥 토박이가 아니라 뿌리가 매우 깊다. 그의 7대조 할머니인 사라 라펠리에는 뉴욕주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뉴욕 자체가 그의 가문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당시 뉴욕 지역의 식민지 개척사를 보면 보가트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눈매와 턱선, 깡마른 체구등이 탐정 역할에 제격이었는지 그는 1941년부터 주연을 맡아, 《하이 시에라》, 《몰타의 매》같은 탐정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다음해에는 본인의 최고 흥행작이자 명작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카사블랑카》에 출연하여 주옥같은 연기로 인기를 얻게 된다.
네 번째 아내 로렌 바콜은 "귀족 출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종의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로렌 바콜과 함께 출연한 《소유와 무소유》, 《빅 슬립》, 《다크 패시지》, 《키 라르고》에 나왔다. 그는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에서도 출연하였으며 1951년에는 《아프리카의 여왕》으로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이후로도 《사브리나》, 《케인 호의 반란》에 출연하였으며 마지막으로 《하더 데이 폴》에 출연하였다.
3. 사생활
1937년 영화촬영장에서 연극배우이자 영화배우였던 세 번째 아내 매요 메토를 만났다. 둘의 결혼생활은 부부싸움으로 아주 엉망이었다. 메토는 별명이 꽐라[6]일 정도로 유명한 알콜중독에 우울증 환자였다. 그럼에도 보가트는 쉽게 메토를 떠나지 못해서 <소유와 무소유>를 찍으면서 만난 로렌 바콜을 여러 번 내버려두고 메토에게 달려가 바콜을 고통스럽게 했다.그러나 결국엔 이혼을 결심하고 1945년 5월 21일 바콜과 결혼했다. 결혼식은 보가트의 절친이었던 작가 루이스 브롬필드(Louis Bromfield)의 집인 오하이오주 루카스(Lucas)의 말러바 농장(Malabar Farm)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혁신적인 농사 기법을 도입했던 대농장으로,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농장"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바콜과 결혼한 뒤엔 바콜에게만 충실하게 지냈다.
4. 사망
1956년 과도한 흡연으로 인해 후두암이 발병하면서 수술을 받았지만 병이 깊어져갔다. 결국 1년도 못가 1957년 1월 14일, 만 57세로 세상을 떠난다. 사망 당시 몸무게가 40킬로그램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병색이 깊었다고 한다. 죽기 하루 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가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왔고 보가트도 이제 당장 죽을 몸임을 알아서인지 덤덤하게 이 둘을 맞이했다고 한다.5. 출연작
- 천사탈주
- 비정의 링
- 필사의 도망자
- 케인호의 반란
- 맨발의 백작부인
- 사브리나
- 비트 더 데블
- 아프리카의 여왕
- 고독한 영혼
- 도쿄 조
- 키 라르고
-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 명탐정 필립
- 소유와 무소유
- 사하라 전차대
- 카사블랑카
- 태평양을 건너서
- 몰타의 매
- 하이 시에라
- 그들은 밤에 달린다
- 포효하는 20년대
- 어두운 승리
-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
- 출입금지
-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 러브 어페어
- 육체와 영혼
- 교도소로 가다
6. 여담
- 험프리 보가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담배이다. 지금이야 담배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고 방송에서 흡연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7] 보가트는 당시 그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멋드러지게 담배를 태우는 모습으로 흡연의 아이콘이었고 뭇 남성들의 로망이었다. 오죽하면 이지 라이더 삽입곡 중에서 Don’t Bogart That Joint, 즉 '보가트처럼 대마초 피우지 마' 라는 곡이 있는데, 여기서 보가트는 '독차지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인다. 담배를 가장 멋지게 피우는 배우를 뽑으면 부동의 1위이기도 했다. 험프리 보가트의 사망 원인은 후두암이었는데, 이는 실제로도 엄청난 골초였던 그였기에 담배로 인한 후두암이 발생한 것이다.
- 냉전 시대에 미국 영화계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열풍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던 배우 중 하나였다.
- 키는 173cm. 당대 배우 치곤 그다지 별로 큰 편은 아니었기에 영화 촬영 때는 키높이 신발을 신었다는 일화와 카사블랑카 출연 당시 상대역 잉그리드 버그만이 175cm로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기준으로도 여자로는 상당한 장신이라 사과 상자 위에 올라가 포옹씬을 찍었다는 일화가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엄청난 바람둥이로 1000명 가량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여성편력은 오히려 그 자신이 게이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한다.
- <맨발의 백작부인(The Barefoot Contessa)>(1954)에서의 보가트는 평론가들로부터 미스캐스팅으로 여겨지고 있다.
- 리처드 버튼과 절친한 사이였다. 보가트가 사망하자 버튼 부부는 보가트의 8살 짜리 아들을 극장에 데리고 다니는 등 돌봐주었다.
- 버튼과 바콜은 둘이 바람핀 것처럼 꾸며 보가트를 곯려주려한 적이 있다. 보가트가 일을 하러 집을 비운 사이 버튼은 안방에서 보가트의 잠옷을 입고 기다렸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보가트는 버튼을 본체 만체하고 바콜에게만 "나 왔어, 꼬맹아"라고 하고 옆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장난을 보기 좋게 실패 당한 버튼이 "보기, 내가 네 잠옷 입고 있는 거 안 보여?!"라고 소리 쳤는데, 보가트는 "어. 알아. 이제 벗어."라고 대꾸했다.
[1] Here's looking at you, kid.[2] Belmont DeForest Bogart.[3] Maud Humphrey.[4] Catherine.[5] Frances.[6] Sluggy.[7] 사실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완전검열하는 국가는 아직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2010년대에 유럽, 일본 그리고 미국 드라마에서도 담배는 물론이고 전자담배나 대마초 흡연씬을 아무렇지 않게 내보일 정도이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동서를 막론하고 지금도 거리낌없이 흡연장면이 나온다. 단,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에 의한 검열이 아니라 방송사들 자체 협약에 의해 검열된다. 흡연장면이 불법인 것은 아니나 방송사 자체적으로 금연 운동을 위해 검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