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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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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 경력
1.1. LG 트윈스 시절
1.1.1. 2003~2004 시즌1.1.2. 2005 시즌1.1.3. 2006 시즌1.1.4. 2007 시즌1.1.5. 2008 시즌1.1.6. 2009 시즌1.1.7. 2010 시즌1.1.8. 2011 시즌1.1.9. 2012 시즌1.1.10. 2013 시즌1.1.11. FA 1기
1.2. KIA 타이거즈 시절1.3. kt wiz 시절
1.3.1. 2015 시즌1.3.2. 2016 시즌1.3.3. 2017 시즌1.3.4. FA 2기1.3.5. 2018 시즌1.3.6. 2019 시즌
1.4. 현역 은퇴
2. 국가대표 경력
2.1. 2007 대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3. 연도별 성적

1. 프로 경력

1.1.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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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시절

암흑기 동안 LG 팬들에게 응원할 이유를 제공했던 대표적인 선수이다. KBO 리그 유일 4년 연속 50도루를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인 도루 능력[1]으로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하고 구단 통산 최다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또한 잘생긴 외모로 여성팬들과 어린이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대표적인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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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이라는 별명을 제대로 보여주는 명짤. 그러나 본인 피셜로는 가슴 아픈 사진이라는데, 대주자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사진 좌측의 마운드 흙이 증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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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03~200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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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부터 도루 능력이 뛰어나고 타격이 정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던 이대형은 계약금 1억원, 연봉 2천만원에 계약했다. # 다만 투수 시절 어깨 부상 때문에 그렇게까지 높은 순위로 계약되지는 않았다. 당시 팀 내 테이블 세터였던 유지현의 에이징 커브가 본격화되자 팀 내에서 차세대 테이블 세터로써 육성하였고, 이는 테이블 세터로 기용되던 이병규의 십자인대 파열과 일본리그 진출로 공백이 생기자 주전 자리를 바로 차지함으로써 팀 내 입지를 다졌다.

2003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데뷔 후 2년 동안 이병규, 김재현, 박용택, 마르티네스의 견고한 외야라인 사이에서 60경기에 출장하며 미래 외야 자원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고교 때 부터 존재했던 몸이 심히 앞으로 나오면서 때리는 습관은 이때부터 이대형의 약점으로 지적 되었다. 이대형에게 이런 습관이 생긴 이유는 몸을 앞쪽으로 내면서 빠른발과 좌타자의 이점을 이용해 1루에서 살아나가기 위함이었다. 대부분이 이대형의 이러한 문제점을 언급하며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2007년 당시 타격코치였던 김용달은 이 문제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데 주력,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대형이 KIA로 이적하자 2007년 전성기 타격폼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폼을 유지하였다.

1.1.2. 200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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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이대형은 대주자 위주로 나와 타율 0.268, 34안타를 기록했지만 당시 도루왕인 박용택[2]과 단 도루 5개 차이인 37도루로 도루 3위를 달성했다.[3] 만약 출장 기회가 더 있었다면 규정타석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도루왕을 차지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1.1.3. 200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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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근과 주전 경쟁을 하던 시기이다. 87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258을 기록했고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또한 오태근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주전 도약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1.1.4. 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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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2007 시즌 소개 영상

첫 풀시즌인 2007년, 개막전 1번타자는 오태근에 밀렸으나, 바로 다음 경기부터 톱타자로 선발 출장하며 주전 자리를 공고히 다진다. 김용달 코치의 지도 아래 .308을 침과 동시에 LG 구단 내 최고 기록인 53도루로 유지현의 기록을 갱신하면서 2007년도 도루왕과 외야수 부분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저때 친 3할 8리의 타율은 2007년 기준 팀내 최고 타율이었다. 참고로 2위가 최동수의 0.306였다. 그리고 이 시즌은 커리어 내내 세이버 메트릭스에서 항상 낙제점을 받던 이대형이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리그 평균 이상의 타격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wRC+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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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이대형.[4]

1.1.5. 200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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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해태 타이거즈(現 KIA 타이거즈)의 이종범(64도루) 이후 11년 만에 한시즌 60도루를 기록했다.

임준혁과의 빈볼 시비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참고. 그리고 이 일을 전후하여 이대형의 성적이 떨어진 계기가 되었다. 이 일 이후 멘탈에 문제가 간 것도 있었으나 부진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내야수들이 이대형을 잡기 위해 극단적으로 전진 시프트를 걸기 시작한 것.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타격 능력이 좋아 이를 해결한 이종욱과는 달리, 이대형은 갖다 맞추는 스타일이어서 부진이 장기화되기 시작, 상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막장스런 팀 타자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풀타임 주전으로 뛰었기 때문에[5]이 해 부진은 팀 성적과 겹친 일시적인 타격 부진으로 여기는 팬들이 많았고, 2009년에 다시 타격 성적을 어느 정도 회복하며 팬들의 기대를 걸게 만들었다.

어찌 되었건 이 해 성적은 클래식은 나름 보기 좋게 찍은 거 같지만 문제는 나머지. 출루율이 0.317에 장타율이 0.281이다. 아무리 투고타저라지만 타율이 0.264인데 타출갭이 5푼도 안 되고 장타율은 그 출루율보다 더 낮다. OPS는 0.6도 안 되며 장타는 다 합해서 10개가 되지 않는다. wRC+는 60대. 오로지 주력 원툴로 먹었는데 출루율도 낮으니 계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대형을 대체할 외야수라고는 정의윤 정도밖에 없었으니 내년도 주전 확정.

1.1.6.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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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최초 3년 연속 50도루 달성 뒤 세레머니[6]

4월 12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김동주의 평범한 플라이성 타구가 조명에 들어가면서 포구에 실패했고 신인 최동환이 데뷔 첫 패전을 떠안으면서 LG 공홈의 커뮤니티 '쌍둥이 마당'에서 맹비난을 받았다.

4월 21일 잠실에서 삼성 선발투수 안지만을 상대로 밀어서 좌월 홈런을 쳐냈다. 통산 2호 홈런.

2009년 6월에 다이빙캐치 실패로 인해 이대호의 인사이드 파크 모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말았다. 기록은 3루타 + 이대형의 실책. 정작 본인도 해당 시즌에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정재훈을 상대로 기록했다.

2009시즌, 50도루를 채우며 KBO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50도루를 기록했다. 종합 64도루. 타고투저의 열풍이 불며 .280이라는 무난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대형이 유일하게 한 시즌 2홈런을 기록한 해다. 잠실에서 때려낸 X-존을 훌쩍 넘기는 홈런 하나와 또 잠실에서 친 인사이드 파크 호텔이라는 기묘한 기록. 또 부진했던 2008년보다 확연히 나아진 타격을 보이며 내년 모습을 다시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클래식 스탯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3-3-3에 2루타가 겨우 10개밖에 되지 않는 절망적인 장타력을 선보인 해였다. 게다가 리그가 투고타저가 완화된 탓에 OPS가 올라갔음에도 sWAR은 오히려 전보다 줄어든 데다가 wRC+는 여전히 60대... 심지어 작년보다 모든 세이버 스탯이 하락했다.

1.1.7.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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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8일 롯데전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1년만에 4호 홈런을 쳤다. 그것도 쓰리런! 잠실 X-존이 아닌, 오리지널 펜스를 훌쩍 넘기는 홈런이었다!!! 사실 X-존은 이미 철거한 지 오래였다.

2010년에는 초반에 삽좀 들다가 주전들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2군에 간 시기인 5월 중순부터 폭발. 6월에는 롯데 타선이 싹쓸이하던 타격 부문에서 4위나 5위에 링크되면서 롯데 독재를 막은 영웅으로 평가되었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나가 선발 중견수로 나왔는데, 앞서 서술한 4호 홈런 이후 고질적인 타격 문제가 뒤늦게 빛을 발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2010년 7~8월에는 43연타석 무안타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작성했다.[7] 기존 기록은 태평양 염경엽의 51연타석 무안타. 덕분에 출루율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8월 28일에는 계속 1위를 달리던 도루 부문에서도 김주찬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9월 들어 타격은 새털만큼 좋아져 어쨌거나 타율 .261을 찍었고, 엄청난 도루 페이스로 김주찬을 맹추격하여 시즌 한 경기를 남기고 65도루를 찍었다. 시즌을 마친 김주찬과 도루 공동선두를 기록한 후 마지막 경기에서 폭우가 쏟아져 도루를 못한 김주찬과 달리 1도루를 추가해 해담선생에 이은 4년 연속 도루왕 달성.[8]

5년 연속 도루왕을 노리고 있었지만 주전경쟁에 따라 본인의 몸상태와는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기록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대주자 & 대수비로 떨어질수 있다는 얘기. 타팀에서도 작뱅과 이대형을 견주면 작뱅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러브콜하는 반면 이대형에게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누가 우위인지는 명백했다.

이대형은 주전보다는 백업 수비수나 대주자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팬들의 얘기도 그랬지만 트레이드 시장에서 타팀이 이대형은 거들떠도 안 보는 것만 보더라도 타팀 감독 & 코치진들의 생각도 거의 일치했다. 타고난 타격재능 자체가 떨어지다 보니 이래저래 계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008~2009년보다 장타가 늘어나면서 컨택만 개선하면 되겠다고 싶었고, 모든 세이버 스탯이 상승하며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9] 실제로 외야 빅5에서 이진영, 이택근 다음이고, 이택근은 규정타석 미달+이대형을 가볍게 능가하는 최악의 클러치와 수비 실력으로 인해 마이너스 WPA는 확정이라 오히려 이대형은 예년보다 성적이 좋은 편이다. 김주찬보다도 WAR이 0.61이나 높다. 그러나...

1.1.8.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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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까지는 괜찮았는데 김수완에게 사구를 맞아 생긴 부상 이후로는 이보다 더 깝깝할 수 없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의 타격 능력이 급격하게 추락했다.[10]

1.1.9. 2012 시즌

내야안타가 30개가 넘는 선수가 타율이 3할이 안된다는 건 정말 문제가 많은 겁니다 - 1루까지 전력질주 하시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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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스윙 개조작업, 김무관코치 팔 걷었다

간결하지 못한 스윙 모션이 항상 약점으로 지적받았기에 새로 부임한 김무관 코치는 김용달 코치와는 달리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이대형의 상체를 밧줄이나 고무줄로 묶고 직접 잡아당기며 고치려 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어느 정도 김무관 코치의 조련이 통했는지 발이 빠지는 타격폼이 많이 좋아졌지만 막상 타격은 매우 저조했다.

이렇게 타격폼 수정이 실패하면서 이대형은 2012~2013시즌을 말아먹게 된다. 결과적으로 안 건든거만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이대형은 은퇴 후 코치님의 지도대로만 해야하는 주변 환경 때문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타격을 해야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본인에게 맞는 타격폼을 스스로 발견해서 반등할 수 있었다고. #

0.193의 안좋은 타율을 보이며 5월 24일 결국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하지만 6월 4일 이진영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함에 따라, 외야 구멍을 메꾸기 위해 다시 1군에서 뛰게 되었다.

깝깝한 타격은 변하지 않아서 아니나 다를까 2012년 6월 12일 SK전에서 한아두를 기록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김기태 감독이 계속해서 주전으로서 기회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톱타자로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중요한 찬스마다 족족 말아먹는 모습이 계속 나오면서 LG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런데도 계속 1번 타자로 기용되면서 김기태 감독의 양아들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결국 6월 21일 2군으로 내려갔고 팀은 그날 이틀 연속 패배했던 한화에 스코어 11:2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7월 13일의 금요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팀이 스코어 5:0으로 지던 3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 선발 투수 김영민의 공을 밀어쳐서(!) 좌측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치면서 깝수육 쿠폰을 한장 더 적립했다. 그런데 이 당시 LG는 6연패의 극심한 부진 중이었고, 연패 탈출을 위해 나선 선발 투수 벤자민 주키치마저 부진하여 2⅔이닝 5실점 5자책점으로 조기 강판 당한데다가 이대형이 홈런을 친 후 곧바로 4회초에 다시 4점을 내줘서 LG 트윈스는 스코어 9:1로 넥센 히어로즈에 크게 뒤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마침 날씨는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 날씨였기 때문에 (실제 서울의 다른 지역은 폭우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LG팬들은 보기힘든 이대형의 홈런이 나왔음에도 오히려 정지훈이 등판하여 우천 노게임이 되어 경기기록이 다 무효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불행히도(?) 5회말 공격이 끝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정식 경기가 확정되었고, 이대형 선수의 통산 6호 홈런도 정식 기록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팀의 7연패도 확정되었다. 이날 이대형은 5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으로 오랜만에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팀이 스코어 10:2로 패하고 7연패를 하는 바람에 이대형의 활약은 묻히고 말았다.

8월 17일 현재, 타율이 0.170으로 자기 키보다도 못쳤다.

그러던 9월 8일, 연장 12회 말 선두타자로 나왔고 LG팬이고 KIA팬이고 모두 원아웃은 잡고 가는구나 하던 순간에 뜬금없이 3루타를 쳤고 뒤이은 김용의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경기를 끝냈고 순식간에 이날의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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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날인 9일에도 연장 10회말 투아웃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고 이틀 연속 영웅이 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178, 출루율 0.253, 장타율 0.236, 19타점, 32득점 1홈런 25도루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11] 그런데 이번에도 연봉 대폭 삭감될 줄 알았으나 동결되었다.

유망주라고 부르기 민망한 나이도 돼 가는 데다 타격 실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본인이 분발하지 못하면 주전자리에 크게 멀어질 것으로 보였다. 초반에 못해도 밀어주던 김기태 감독도 도저히 안되겠는지 후반기 들어서는 이대형 자리에 박용택이나 이병규를 넣는 라인업을 꾸렸다.

1.1.10.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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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FA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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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KIA 타이거즈 시절

1.2.1.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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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해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멍청한 계약으로만 남을 것 같았던 이 FA 계약이 2014시즌의 끄트머리인 현재 놀랍게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126경기 461타수 149안타 타율 0.323 1홈런 40타점 22도루[13][14]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이 계약은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다. 물론 타고투저가 워낙 심각했던 시즌을 생각해보면 이대형의 성적에서 바람이 빠지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이대형에 대해 거는 기대가 거의 없어서 그랬지, 사실 기아의 올시즌을 생각해보면 이대형의 영입은 외야진 붕괴를 막은 신의 한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김주찬, 나지완, 김원섭, 신종길 등 주축으로 활약해야할 선수들이 죄다 부상으로 드러누운 기간이 길었던 가운데에서 홀로 부상없이 풀시즌을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뛰었고, 이대형이 없었을 경우 2014시즌 주전으로 쓸만한 중견수 자원이 없었던데다가 그나마 세울 수 있는 자원들은 돌아가면서 부상으로 누워버렸다. 거기다 테이블 세터를 맡을 수 있는 주전 유격수인 김선빈의 부상까지 생각해 봤을 때 풀타임으로 부상 많은 외야 중견수 자리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어 주고 테이블세터 역할까지 적절하게 수행해준 이대형은 답이 없는 올시즌 기아의 상황을 볼 때 의외로 공수 양면으로 기여해준 바가 크다는 점을 넘어, 꼴찌의 수모를 면하게 해준 공신 수준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대형의 소속팀 기아는 이번 시즌 8위인 약체팀이고 부상자가 매년 속출하는 팀이며 대체 중견수 자원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팀 사정을 고려하면 한시즌 내내 부상없이 중견수로 뛰어준 이대형의 가치는 결코 적지않다. 이대형을 제외한 외야자원인 김주찬, 신종길, 김원섭, 김다원, 이종환, 박준태, 나지완 중에서 한 시즌 풀로 중견수로 뛰어줄 수 있다고 검증된 선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대형의 2014시즌은 탈쥐효과가 나타난 시즌은 맞지만 BABIP 등의 세부지표를 참고하고,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인 2014시즌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있는 그대로 성적을 받아들일 정도의 기록은 아니다. 통산 성적 형편없는 타자도 한번쯤은 플루크 시즌을 맞아 성적이 반등할 수 있음은 김상현, 이현곤, 이대수 등이 아주 잘 보여줬고 이걸 실력으로 맹신할 경우 100% 손해를 봤다. 하지만 기아는 이 정도라도 해줄 외야수도 없는 약체팀이고 FA시장이 유래없이 미쳐날뛰면서 14 이대형은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친정팀 LG팬들은 별로 아까워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LG에서 실질적으로 14시즌 주전 외야수로 뛰었다고 할 수 있는 작은 이병규, 박용택, 이진영의 성적이 종합적으로 이대형보다 나쁘다고 보기 힘든데다가 백업으로 나온 선수들도 큰 이병규, 브래드 스나이더, 정의윤으로[15] 딱히 이대형이 아쉬운 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대형이 LG의 백업 외야수들보다 성적이 좋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백업외야수 보다 성적이 나은 정도였다. 그리고 LG 외야진의 문제는 주력 선수들의 고령화인데 이대형이 딱히 젊은 선수도 아니고. 팀적으로도 LG는 양상문 부임 후 꼴찌에서 4위까지 오른 반면 KIA는 8위에 머무른지라 시즌 내내 이대형을 떠올릴만한 순간이 그다지 없었다. 게다가 본래 이대형이라는 선수의 최대강점이었던 수비와 주루[16]에서 하락세가 완연한 상태라 그저 이대형이 가서 잘하니 다행이다며 덕담을 하는 정도다.

하여튼 KIA 팬들은 내년에도 이대형이 활약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1.3. kt wiz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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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로부터 20인 보호명단 외 특별지명을 받으면서 이대형의 고향 생활은 단 1년 만에 마무리되었다. KIA 팬들의 반응은 당장 개막전 라인업에 들어가야 하고 부상이라도 당하면 대체자조차 마땅치 않은 주전 중견수가 나갔으니 당연히 충공깽. 항간에는 김기태 감독과 사이가 안좋은 것 아니냐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2014년 시즌을 앞두고 이대형이 FA를 통해 KIA로 이적했을 당시 LG 감독이 김기태였다. 이번 일도 2015년 시즌을 앞두고 김기태가 KIA 감독으로 취임한 얼마 안되어 벌어진 일.

KIA에서는 공식적인 이유를 외야자원이 많아서라고 밝혔다. 또는 투수 지키느라 그랬다는 기사도 있었다. 팬들은 외야 자원이 많아서 이대형이 올해 중견수로 거의 전 경기를 출장했냐며 믿지 않았다. 이대형은 전체 128경기 중 126경기에 출장하여 안치홍과 같이 팀내 출장경기 수 1위이며, 타석(505), 타수(461), 최다안타(149), 득점(75), 3루타(9), 멀티히트(47) 부문 팀내 1위를 차지한 선수다. 타율 역시 김주찬(0.346)-안치홍(0.339)에 이은 팀내 3위(0.323). 피꺼솟한 KIA 팬들은 홈페이지를 마비시키기에 이른다. 기아에는 이대형보다 타율이 높거나, 수비가 양호하거나, 더 많은 경기 및 수비이닝을 책임지는 외야수는 없다. 저 셋 중 한 가지 조건만이라도 충족시키는 외야수가 말이다. 그냥 프런트가 막장짓을 한거다. 어떻게 변호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이대형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뺀 진짜 이유는 현재 재활 중인 박지훈을 넣기 위해서였다는 카더라도 있다. 이쯤 되면 팬들이 뿔이 나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즉시 전력감을 특별지명해야 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몸 상태로 군 입대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고서는 누가 재활 중이어서 기약이 없는 선수를 10억이나 줘 가면서 데리고 가려고 할까?

결국 KIA는 이대형이 오고 감으로써 보상금 200% + 선수 1명을 손해본 꼴이 되었다. 연봉 3억 원은 1년 잘 쓴 비용이라 손해라 볼 수 없고 계약금 10억은 KT 10억으로 메워졌으니, 정확한 손실은 보상선수 신승현과 LG에 지급한 연봉보상액 200%인 1억7천만 원. 여기에 당장 센터 라인이 붕괴되어 그 자리를 메울 선수를 찾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차일목송은범은 FA로 떠나고,[17] 김선빈, 안치홍은 군입대, 이대형은 이적.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단, 차일목송은범은 알아서 나가줬다고 KIA팬들은 반가워한다. 그리고 그것은 2015, 16 김호령과 이대형의 성적으로 비교된다. 수비야 김호령이 약간 낫다 쳐도 이대형은 10년 이상 리그에서 알아주는 중견수이다. 결국 타격 비교인데 더 이상 설명이 필요가 없다.

30일 취임식 때 김기태 감독이 이유를 밝힌다 하였으나 '말하기 곤란하다'라고 말을 바꿨다. LG 감독이었던 2013년에 이대형을 대주자 등으로 썼던 것을 볼 때 이대형의 기량을 낮게 보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다만 위 점은 김기태 감독의 LG 1군 감독 재임 시절에 이대형이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 보면 정확하게 반박되는데, 이대형은 2년간 타율 .178, .235를 기록했고 그동안 거의 500타석 가까이 나왔다. 김기태가 이대형의 기량을 낮게 봤다면 외야만큼은 화수분에 가까운 LG 트윈스에서 저런 타율을 기록하던 이대형을 2년동안 500타석 가까이 기용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실제로 김기태는 이대형이 최악의 삽질을 반복중이던 2012년 전반기에 엄청난 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대형을 중용했다. 그 이후 2013년에 이대형이 대주자로만 나오던 때 역시 이대형은 툭하면 견제사나 주루사를 하며 LG팬들의 혈압을 올리는데도 김기태는 꾸준히 그를 대주자로 기용했다. LG팬들은 그럴 때마다 '쟤를 왜 쓰냐' '툭하면 죽는 놈을 왜 기용하냐'며 의문을 드러냈으며, 만약 2013년에조차 가을야구에 가지 못했다면 이대형 기용 건에서 김기태는 엄청난 욕을 먹었을 것이다. 특히 FA때 야구팬들의 반응을 생각해본다면, 김기태는 최소한 야구팬들보단 이대형의 기량을 높게 봐 주었다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이 점은 오히려 김기태의 행보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LG 재임 시절이라면 이대형이 삽질을 해서 기용을 하지 않았다는 변명이 통하지만, 2014년에 이대형이 부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기태는 그를 보호명단에 묶지 않았다. 이는 지난 3년간 본인의 이대형 기용 건에 대응해 보면 정말 판이할 정도로 다를 지경이다. KIA가 외야 라인이 LG처럼 든든한 팀도 아니고, 특히 센터라인은 주전들의 대량 이탈로 손을 쓰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2014년 KIA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활약을 펼쳤던 이대형을 내버렸다는 점에서 김기태의 선택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찌되었건 김기태가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이대형의 하자를 들어 설명할 것이기 때문에 이대형 입장에선 그냥 뒤통수만 맞는 격이라는 얘기들이 오갔다. 심지어는 특별지명 선수로 풀타임 즉전감 톱타자를 얻어낸 KT의 조범현 감독도 특별지명 이후 인터뷰에서 보호선수 20인 명단에 이대형이 없는 걸 보고 건강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18] 의심하거나 혹시 KIA에 다른 동명이인 이대형이 나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둥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취임식에서 김기태 감독은 속시원한 이유가 아닌 팀 실정상 이런 결과가 나왔다.라는 앵무새같은 발언만 반복하였고, 팬들은 '그러면 그렇지'하고 탄식하였다. 정말 개인적인 불화가 있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김기태가 10월 28일 부임하자마자 한 말이 "1군 말고 2군에 빠른 선수들이 누구냐"였던 것으로 볼 때 애초에 이대형을 전력 외로 분류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데뷔 후 오랜 시간 몸을 담던 친정을 떠나 다른 팀에 이적했더니만 1년 만에 바로 다시 팀을 옮기는 등 개인으로서는 파란만장하게 됐다. 그렇더라도 이대형 개인에게는 나쁜 일만은 아닌 것이 1군 경험이 최대 약점인 kt wiz에서 1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중 한 명이고,[19] 외야 수비의 핵인 중견수 자리는 주전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11월 30일 골든글러브 후보가 발표되었는데 이대형이 후보에 들었다. 그리하여 kt는 1군 진입도 하기 전에 골글 후보자를 배출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

KIA 관계자 왈, 유망주를 보호해서 리빌딩을 하기 위해 이대형을 뺐다고 밝혔다. 작년엔 선동열 감독 마지막 해였으니 팀의 방향 자체가 달랐다고… 그러나 정 이대형이 불필요했다고 하면 트레이드 카드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당장 주전 중견수 전준우가 입대한 롯데 팬들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용덕한을 kt로 보내지 않고 이대형과 트레이드할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차일목이 FA선언을 해서 마땅한 주전포수가 없는 KIA에게도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윈윈 트레이드가 될 수 있었는데 이대형을 kt에 그냥 보내줌으로서 전력보강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린 것이다. 게다가 넥센이 허도환을 kt로 치울 기회도 막아버렸다[20]

이대형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홍콩 갔다오니 수원행'이라는 멘트를 남겼다.

이대형의 어머니 인터뷰에 의하면 # 홍콩 여행 중이던 20인 특별지명 발표 전날 밤 27일 소식을 알았다고 한다.

12월 1일 채널A에서 박동희 기자가 돌직구를 날렸다. 대외적 발표는 1, 2군 코칭스태프와 프런트가 합치한 결과가 이대형 제외라고 했는데 실제 KIA 코치는 "감독 의중이 거의 반영됐다"고 말했다고. 자세한 것은 링크 영상 링크 참조.

12월 2일 최훈은 돌직구 코너에서 이 사태를 극딜하는 만화를 그렸다.

KT 이적 이후에도 김기태감독과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밝히고 다만 집밥을 못먹게 되어서 아쉽다고 말하는 등 개념 인터뷰를 해서 LG & KIA팬들은 물론 KT 팬들도 이대형에 대해 응원해주는 분위기이다. 더불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도 굳이 참석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은 kt wiz의 선수로서 당연히 참가해야 한다며 KT의 유일한 골든글러브 후보자로서 참석했다. KIA 유니폼을 입고 신생팀 KT의 후보자로 나와 잊으려던 기아 팬들을 울리고 말았다. 외야수 골든 글러브 4회째 수상 중인 손아섭은 하필이면 크보 최고의 미남 옆에 앉는 바람에 꼴뚜기가 되고 말았다(...). 외야수가 위치 선정이 중요하다는 걸 잊을 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이쯤되면 인성으로는 완벽한 인물이라 할 만 하다.[21] 여기에 대해 엠팍이나 디시의 팬들은 이대형이 워낙 인간관계도 좋고 구단 윗선과도 늘 가는 팀마다 좋았다며 은퇴 뒤에도 자신이 거쳐온 팀이라면 코치 취업하는데 어려움이 없겠다고 예상할 정도.

12월 12일 스포츠투나잇 구구절절 코너에 나온 KIA 담당 김여울 기자는 "롯데에서 용덕한이 풀린다는 정보는 꾸준히 있었고 kt가 KIA의 보호 명단으로 머리 아파질 가능성이 있었는데, kt는 명단을 보자 때땡큐를 외치는 상황 전체적으로 KIA 구단의 정보력 부재로 인한 결과물이다, 이대형을 보호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 얘기인즉슨 용덕한이 풀리는 걸 알면서도 KIA의 20인 명단에 포수가 들어있었다는 뜻. 팬들은 어이가 없다며 KIA와 김기태를 깠다.[22]

1.3.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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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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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역대 4번째 450도루를 달성했다!

1.3.3. 2017 시즌

4월 6일 두산과의 홈경기에서 시즌 첫 도루를 기록했다.

이후 4월 10일까지 무려 타/출/장이 .231/.231/.231이라는 최악의 슬래시 라인을 기록중. 원래 선구안 따윈 없었지만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버렸다. 따라서 팀 내에서도 1번 자리에 심우준을 배치하는 등 여러모로 이대형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중. 또한 작년부터 좋지 않던 평가를 받던 중견수비가 드디어 팀내에서 중견수비 불가 판정을 받아, 코너 외야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대형의 생산력은 중견수로서도 타율에 비해 실제 생산성이 너무 낮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 수준이라 코너외야수로서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수준. 더군다나 어깨도 안 좋은지라 코너외야수로서도 우익수는 불가능하며, 범위가 넓지 않아 좌익수비도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는 상황.

컨택 과 주루만 있는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지라 롤이 굉장히 애매해져 버린 상황으로 대수비는 물론 장타력이 없어서 대타도 힘들고 대주자 정도로밖에 가치가 없어진 상황. 팀내 최다 안타를 기록한 지 1년만에 입지가 180도로 뒤바뀌어 버렸다. 다만 팀의 상황이 이대형조차 밀어낼 후보가 없어 꾸준히 선발출장 기회 자체는 받고 있기는 하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2번째 FA자격을 획득하게 되는데, 올해는 특히 외야수 매물이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지만 아무도 이대형을 찾지 않는, 어찌 보면 첫 번째 FA 직전으로 귀신같이 회귀해 버렸다.

하지만 팀 내에 이대형을 대체할 중견수를 결국 찾지 못함에 따라 다시 중견수로도 조금씩 출장중이다. 중-좌를 오가면서 출장하는 중. 시간이 지나면서 타격은 조금씩 올라오는 중이지만, 여전히 좌익수가 똑딱질을 한다는 데서 오는 근본적인 한계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5월 14일 NC전에서 도루를 기록하며 13년 연속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 통산 492도루를 찍었다. 근 몇년간의 도루 페이스라면 올해 역대 2위 기록인 이종범의 통산 510도루를 뛰어넘을 것이 유력해 보이는 상황. 또한 고무적인 것은 올해는 좀 생각을 하고 뛰는지 10도루 기록할 동안 도실이 1개밖에 안되는 상당히 우수한 성공률을 자랑하는 것도 개선된 부분.

wRC+도 매우 낮긴 한데 원래 이대형은 wRC+가 잘 나오는 선수가 아니다. 최다안타를 기록한 2016년조차 86이었으니...단타자에 볼 안 고르는 배드볼 히터이니, 아무리 타율이 높아도 생산성 자체가 잘 나오기 힘들다. 여튼 아무리 잘나와도 86인 선수이니 타율이 좀만 안 나와도 50대는 가볍게 찍고 최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원래 50~80대에서 형성되는 그정도 선수일 뿐이니. 또한 여전한 초구치고 자기만 살고 선행주자는 죽이는 플레이를 보이며 '도루 1툴', '초대형' 등으로 불리는 등 평이 굉장히 나쁜 편.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7월 13일 대 삼성전에서 500도루를 달성하였다. 대도 전준호, 바람의 아들 이종범에 이은 3번째 기록이자 역대 최연소. 과거 3년 연속 50도루를 달성했을 때와 달리 별다른 세리머니는 하지 않고 팬들을 향해 가볍게 목례하는 것으로 끝냈다.[23] 후반기 큰 부상만 없다면 시즌 종료 전에 이종범의 기록은 무난히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준호의 기록까지도 이제 50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득점권에서 병살을 치며 경기를 굉장히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끝내기로 이겼으니 다행이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타율 2할 7~8푼까지 올라오며 언제나처럼 시즌이 진행될수록 스탯이 조금씩 올라오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출루율 자체가 떨어지는 단점 때문에 생산성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노쇠화고 뭐고를 떠나서 기본적인 타격 자체가 생산성이 나올 수가 없는 형태이니...도루 또한 페이스가 주춤하며 박해민버나디나에게 순위를 내주었는데, 당연한 이야기다. 일단 1루에 나가야 도루를 하는데 1루에 나가질 못하니까 주력에 비해 도루가 쌓이는 페이스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정작 도루상황 판단은 더욱 좋아져서 근 몇년 통틀어 성공률이 가장 높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 본인도 이렇게 본인이 도루 쌓는 페이스가 처지는 걸 어느정도 인식은 하고 있는지, 인터뷰에서 전준호의 550도루 기록 갱신 목표를 내년이 아닌 내후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여튼 작년보다는 좀 페이스가 떨어지지만 언제나처럼 커리어 평균적인 스탯을 쌓아가는 중이긴 한데 문제는 그 커리어평균이란게 wRC+80도 안 되는 타격인지라...내실없는 스탯만 적립 중. 게다가 수비에서 몸을 사리는 모습이 잡히는 등 몇 없는 kt 팬들도 FA 때 잡지 말자는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

8월 1일 광주 기아전에서 4안타를 몰아치며 자신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풀어준 전 감독 앞에서 무력시위를 펼쳤다. 그런데...

8월 6일 SK와의 홈경기에서 도루 중 왼쪽 무릎을 다쳤다. 경기 영상

뼈가 튀어나왔다 다시 들어간 모습이라 큰 부상임을 대부분 예상했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되어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입은 것이 확인되었다. 재활기간이 1년이라 잘못하면 내년에도 시즌아웃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문제는 FA 목전인데 큰 악재가 터진 것은 물론 주루 툴의 대폭락이 확정적이다.[24]

9번 이병규가 30도루씩 하는 준족에서 마찬가지로 십자인대 부상 후로는 1년에 3~4개를 기록하게 될 정도로 주루 툴이 사실상 사라졌는데, 주루 1툴밖에 없고 나이도 30대 중반인 이대형으로서는 이제 도루 기록이 문제가 아니라 강제 은퇴를 걱정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선수로서 복귀만 가능하다면 5개 남은 이종범의 기록까지는 대주자로서라도 노려볼만 하겠지만, 이로서 전준호의 기록은 넘기기 거의 불가능해졌다. 후에 스톡킹에 나왔을 때 본인 역시 부상을 당한 순간 기록 달성은 힘들겠다 직감했다고.

2차 FA도 신청하기 힘들어진 것은 덤. 건강해도 생산성 문제로 2년 10억 남짓의 소규모 계약 이상은 따기 힘든데 십자인대 부상전력이 있는 35세 선수면 FA를 신청해도 용덕한 꼴이 날 것은 뻔한 일. 여러모로 이대형 인생 최악의 부상이라 할 만 하다. 거기다 이 해는 27시도 23성공으로 타 시즌보다 도루 성공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부분.

9월 3일 십자인대 수술을 위해 독일 레버쿠젠으로 출국했고, 레버쿠젠의 세인트 조셉 병원에서 5일 수술에 들어간다고 하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자신의 SNS에 올렸다.

1.3.4. FA 2기

그런데 시즌 종료 후 또다시 FA를 신청해 시장으로 나왔다. 아마 현 소속팀과 소규모 계약으로 남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이대형 입장에서는 지금 부상을 완치하고 돌아왔을 때 상술한 대로 주루능력이 그대로 남아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때 가서 나이는 서른여섯에 주력은 없어져서 FA 신청도 못해보느니 한 살이라도 젊고 아직 부상 후 운동능력이 떨어졌는지 어쩐지 검증이 안 된 지금 신청하면 차라리 10억쯤 먹튀라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신청하는 것이 탁월한 선택이다.

구단 입장에서도 야구 외적인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팬이 적을 수밖에 없는 신생 구단에서 그나마 팬을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몇 안 되는 인기선수이기 때문에 마케팅 차원에서 계약할 가능성은 있다. 대략 2~3년 대주자로 기용하면 통산 도루 2위 기록은 이미 확정적이고 주루 능력이 크게 감퇴하지 않았다면 통산 도루 1위라는 마일스톤도 노려볼 수 있다... 만 역시 그건 이대형과 프런트의 입장이고 얼빠를 제외한 kt 팬들은 저런 생산성 없는 선수 따위 2년 1억도 아깝다는 반응.

안 그래도 장점 없는 선수가 그나마 남아있던 다리까지 부상당했는데 좋은 계약을 원하는게 이상하다. 후려칠 수 있는데까지 후려치고, 못 받아들이겠다면 아무 미련없이 보내버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선택. 지금 와서 보면 받아줄 곳도 나타나지 않은 것 같지만...

구단은 이대형이 타 구단과 계약할 경우 보상선수 없이 보내주겠다고 밝혔다.[25] 사실상 결별 수순으로 보인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구단의 2번째 제의도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kt 팬들은 대체로 어이없다는 반응. 그러나 1월 22일 기사를 통해 큰 틀에서 계약이 성사될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못해도 2년 계약은 보장될 예정이라고. # 같은 주에 예정된 추가 협상을 통해서 최종 계약이 확정될 것이라고 한다.

1월 26일, 2년 4억원에 kt와 FA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직전까지 자기 주제는 알고 시간 끄는거냐고 부정적이던 여론이 많았지만 계약이 끝난 뒤의 평가는 '시간 끌만 했다' 는 평. 사실상 kt 외에 선택지가 없었던 이대형이 연봉 후려치기를 감수하고 계약한 모양. 허나 예상 외로 kt 팬들의 반응은 구단이 잘 선방했다고 보는데 일부 개인 팬들이 '황재균 살 돈은 있고 프차급 대우할 돈은 없냐'고 말하는 걸 빼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유니폼 판매 증대용이 다인 선수인데 재활기간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1년 4억으로 적당히 잡았다'고 보는 의견이 대부분.

계약 체결 후 한 인터뷰에 따르면계약내용이 아쉽긴 하지만 4년을 요구한 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계약을 하기 전 기자들과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다고 한다.

1.3.5. 2018 시즌

현재 1/2군 모두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 있다. 돌아온다 하더라도 로하스유한준은 말할 것도 없고 좌익수 자리에 강백호, 오태곤 등이 경쟁하고 있어서 자리가 없을 듯 하다.

6월 들어 간만에 근황이 나왔다. 현재 익산 재활군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복귀 시기는 대략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난 즈음이라고. 아시안게임으로 인한 리그 휴식기가 9월 2일까지니 이 페이스대로라면 9월 확대 엔트리 시행 때 올라올 듯... 했지만

2군에 복귀를 이미 시작을 했다. 9월 5일 LG트윈스전을 통해 복귀했으며 9월 15일 기준으로 7경기에서 18타수 5안타 4득점 1타점을 현재 기록하고 있으며 계속 경기 감각을 조율중이다. 다만 김진욱 감독은 지난 9월 6일 경기전.. "경기감각 외에도 끌어올려야 할 부분이 많다. 무릎, 발목 등 하체 쪽에 부상을 입은 선수는 상체에 비해 복귀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하체운동을 할 수 없어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배트 스피드도 저하된다”라고 견해를 전했다.

남은 정규시즌 상황상 본다면 올해는 힘들고 내년에 조심스럽게 1군 복귀가 예상된다.#

그러나 10월 6일 김진욱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남은 경기 중 팬서비스 차원에서 1타석 정도는 볼 수도 있을 듯.

그리고 드디어 10월 12일에 김민과 자리를 맞바꿔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2경기 남은 시점이라 대타나 대주자 정도로 나올 듯.

결국 12일 9회 말 이진영의 대타로 나왔다. 결과는 삼진이었지만 팬들의 함성은 굉장히 컸다.

11월 새로 부임한 이강철 감독이 중견수는 로하스로, 우익수는 강백호로 구상하고 좌익수 자원을 찾고 있다고 한다. 또 발 빠른 외야수를 백업으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대형은 좌익수 자리나 백업으로 2019시즌을 맞을 확률이 커졌다. 그리고 2019시즌을 앞두고 로하스와 재계약에 성공함으로써 백업으로 시즌을 맞이할 확률이 커졌다. 십자인대 파열 수술이후 얼마나 부상을 이겨냈느냐가 관건. 완벽히 회복한다면 전성기 만큼은 아니더라도 대주자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1.3.6. 2019 시즌

2월 20일 투산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평가전에서 2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출장만 했다

시범경기에서는 10타수 무안타 2볼넷으로 새로운 미스터 제로(...)로 등극하였다. 그와중에 2볼넷 무엇

이렇게 개막전 엔트리에서도 김민혁에게 밀리며 19시즌도 활기차게(...) 익산에서 시작할 전망이다.

6월 20일까지 퓨처스리그에서 2할7푼대초반의 타율과 2할9푼대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 장타율은 늘 그렇듯이3할초반... 시즌도루개수도 0개에 그치며 장점인 주루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있다. 이대형 KBO기록 이대로라면 남은시즌동안 1군에서 보기는 어려울듯.

하지만 강백호가 불의의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자, 6월 26일 1군에 콜업되었다.

6월 27일 사직 야구장 롯데 자이언츠전으로 8회 4번 대타로 나와 주자 1/2루 상황에 유격수 라인드라이브 아웃을 기록하였다.

6월 28일 수원 kt 위즈 파크 KIA 타이거즈전 8회 1번 대타로 나와 5구 삼진을 기록, 6월 29일 6회 1번 대타로 나와 주자 1/2루 상황에서 유격수 앞 땅볼을 기록, 6월 30일 8회 2번 대타로 나와 2구 유격수 앞 땅볼아웃을 기록하였다.

7월 2일 수원 kt 위즈 파크 삼성 라이온즈전 6회 2번 대타로 나와 주자 만루 상황에서 5구 볼넷 1타점 4사구 1을 기록, 7월 4일 5회 2번 대타로 나와 주자 1/3루 상황에서 1루수 땅볼아웃을 기록하였다.

7월 6일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한화 이글스전 5회 2번 대타로 나와 주자 만루 상황에서 중견수 희생플라이 아웃으로 1타점을 기록하였다.

7월 7일 9회 대주자로 나와 1득점을 기록하였다.

7월 17일 대타로 나와 두산전에서 마침내 시즌 첫 안타를 기록하였다.

7월 27일 LG전 대타로 나와서 볼넷으로 출루하는데 성공하였다. 시즌 출루율 0.333을 기록 중이다.

그 다음 날엔 사구에 맞고 부상당한 유한준을 대신해 4번타자 대타로 나와 첫 타석은 삼진,두 번째 타석에서는 1타점 2루타를 기록했다.얕은 타구에 2루로 가는 모습이 압권.[26] 그 이후 대타 문상철과 교체되었다.

이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타격이 안 되는데다 장점인 주루툴마저 사라지면서 올해가 마지막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종 성적은 18경기 19타석 2안타 타/출/장 .143 .316 .214 OPS .530.

결국 시즌 후 방출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본인은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훗날 자신이 만든 유튜브에서 이 해 7월에 타구단[27]과 트레이드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팀의 1군 코치가 직접 kt 2군에 있던 이대형에게 전화를 해서 "너 우리팀에 오면 바로 1군 경기해야 하는데 지금 몸상태가 괜찮냐? 2군에 더 안 있고 바로 1군 경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직접 밝혔다. 본인이 알기로는 NC의 카드가 안 맞아서 트레이드가 불발된 것으로 들었다고 하는데, 만약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팩트의 문제가 있는데, 이대형은 2군에 있을때 전화를 받았고 트레이드가 불발된 뒤 며칠 있다가 1군에 올라갔다고 증언했는데, 실제로는 이미 6월말부터 이대형은 1군에 있었기 때문에 7월에 2군이었다는 이야기는 맞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6월에 전화받은걸 7월로 잘못 기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그래도 탕수육은 먹고 은퇴해야지
결국 먹지 못했다

1.4. 현역 은퇴

이후 2020년 4월까지 새 팀을 찾지 못했고, 결국 2020년 4월 10일에 은퇴를 선언했다.[단독] ‘은퇴’ 이대형 “정말 죽도록, 미련 없이 뛰었다”

은퇴 후 뭉쳐야 찬다 팬들로부터 영입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28] 단, 현재 양준혁, 김병현 등 야구선수만 두 명이라 쉽지 않을 듯 하다. 이후 뭉쳐야 찬다 2 1차 오디션에 출연하면서 올 4불을 받고 통과했다.

은퇴 선언 이후, 커뮤니티에서 11년간 몸담았고, 4년 연속 도루왕을 기록하기도 하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LG 트윈스에서 대주자로라도 은퇴경기를 마련하면 안되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본인은 SNS에 "은퇴식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하고 싶은 생각과 목표가 있었다"며, 또 자신은 "그 자리까지 가지 못했기에 은퇴식을 할 정도의 선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은퇴식 없이 조용히 은퇴하고 싶다고 밝혔다.#[29]

2. 국가대표 경력

2.1. 2007 대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LG 47 53 .245 13 2 2 0 4 12 7 2 0 .358 .273
2004 13 11 .091 1 0 0 0 0 1 2 0 0 .091 .091
2005 107 127 .268 34 4 1 0 5 40 37
(3위)
11 1 .315 .331
2006 87 155 .258 40 3 0 0 4 23 15 5 0 .277 .281
2007 125 451 .308 139
(4위)
13 1 1 31 68 53
(1위)
38 5 .348 .367
2008 126 523 .264 138
(5위)
5 2 0 33 71 63
(1위)
39 2 .281 .317
2009 133 521 .280 146 10 2 2 41 92
(4위)
64
(1위)
50 0 .319 .341
2010 130 494 .261 129 14 2 1 43 73 66
(1위)
58 2 .304 .341
2011 104 354 .249 88 11 5
(3위)
1 24 56 34
(2위)
30 2 .316 .310
2012 101 258 .178 46 4 4
(4위)
1 19 32 25 25 1 .236 .253
2013 102 177 .237 42 5 1 1 10 36 13 19 1 .294 .312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4 KIA 126 461 .323 149 15 9 1 40 75 22 35 2 .401 .372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5 kt 140 546 .302 165 23 3 0 37 86 44
(3위)
53 6 .355 .370
2016 143 600
(1위)
.320 192
(3위)
14 3 1 42 89 37
(3위)
44 2 .368 .358
2017 100 337 .267 90 8 3 0 24 51 23
(4위)
24 0 .309 .315
2018 1 1 .000 0 0 0 0 0 0 0 0 0 .000 .000
2019 18 14 .143 2 1 0 0 4 2 0 4 0 .214 .316
KBO 통산
(15시즌)
1603 5083 .278 1414 132 38 9 361 807 505
(3위)
437 24 .324 .337

타율출루율이 좋지 않은 편인데 꾸준히 20도루 이상씩 기록하는 걸 보면, 다리만큼은 빠르긴 빨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초등학생때 처음 야구부가 될 무렵 부모님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야구부가 되고도 중간에 말리셨을 정도인데, 그런데도 이대형 본인이 달리기에는 자부심이 있어서 어느날 부모님이 또 말리자 "프로선수가 되면 아무리 망해도 대주자로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을 초등학생 나이에 하면서 야구선수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서 진짜 대주자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선견지명(?)에 놀랐다고 한다.[2] 2003년과 더불어 40도루를 넘긴 유이한 시즌이었다. 사실 나이 들어서 주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박용택은 한때 그 이종범보다도 통산 도루 성공률이 높았을 정도로 도루 능력이 좋았던 주자다.[3] 이 시기부터 도루왕 경쟁을 하던 이종범의 도루 수가 감소했고(그래도 2005년에도 28개로 시즌 6위이긴 했다), 그 덕에 박용택은 손쉽게 도루왕을 가져오게 되었다.[4] 현대의 이택근1표차로 제치고 2007년도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다만 2007시즌 당시 이택근이 타율, 홈런, 타점 부문에서 이대형보다 우세했고, 이대형은 3할/도루왕에 안타가 더 많았는데 이대형이 수상한 것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알다시피 2010년대 초반까지는 도루의 가치가 높게 책정되었고 한 단계 더 높은 팀 순위+3할 도루왕+사실상의 신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5] 2할 6푼대 타율임에도 최다 안타 5위라는 기묘한 기록이 이 해 타자들의 전체적인 성적을 가늠하게 한다. 작년보다도 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6] 6년 뒤 NC 다이노스 외야수 에릭 테임즈가 40-40 클럽 달성 후 해당 세레머니를 하였다.[7] 다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결장이 없던 데에는 꾸준히 볼넷은 찍어줬기 때문. 이 해 이대형은 예년보다 많은 볼넷을 기록했다.[8] 이후 2015 ~ 2018시즌까지 박해민이 4년 연속 도루왕 타이기록을 세웠다.[9] 실제로 wRC+가 60대에 불과했던 앞의 2년과는 달리 이때는 적어도 75는 기록했다.[10] 다만 wRC+로 보면 2011년은 2010년과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으며 2008~2009년보다는 오히려 더 높다. 즉 타율만 2할 5푼이 안 될 뿐이지 생산성은 그냥 평소대로의 이대형만큼은 기록했다. 역으로 부상 없이 .270정도만 찍었으면 wRC+가 80을 넘겼을 것이다.[11] OPS가 5할도 안 되며, 적어도 70은 기록한 전년과 달리 wRC+가 30대로 추락했다. WAR*가 고작 -0.1인 게 놀라운 수준.[12] 2013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7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박용택의 동점 적시타에 홈을 밟는 모습. 이 경기는 이대형의 통산 마지막 포스트 시즌 경기가 되었다.[13] 그러나 도루자 15개, 도루성공룔 59.5%의 굉장히 비효율적인 주자로 도루는 안하는게 나았다. 이 해 김주찬의 도루도 생각해 보면 챔필이 문제였을수도.[14] 여담으로 이 시즌이 이대형이 장타율 4할을 넘긴 유일한 시즌이다.[15] 셋다 어느 정도 수준급의 외야수들.[16] 빠른 발로 넓은 외야를 커버하는 수비였지만 주루툴의 눈에 띄는 하락 도루 22번 성공하고 15번은 실패하는 등으로 인해 소녀 어깨인 이대형의 수비는…. 다만 2015년에 다시 도루가 많아진 것을 보면, 주루코치의 능력에도 의문을 표할 수 있다.[17] 차일목은 이후 KIA와 재계약했다.[18] SK 와이번스 창단 때 특별지명에서 두산이 전 시즌 13승 투수 강병규를 보호 선수 명단에서 빼자 SK 프런트가 "응? 이 선수가 왜.. 어디 아픕니까?"라고 두산 프런트에 문의했단 일화랑 비슷한 상황.[19] 다른 선수들은 장성호, 김사율, 박기혁, 김상현 등.[20] 결국 허도환은 한화와 SK를 거쳐 KT로 가긴 했다.[21] 은퇴 후 출연한 MBC+ 야구톡 코너에서도 김기태와의 불화설에 대해 "서서하는 감독님과 누워서 야구하는 나는 스타일이 달라서 그런 듯 하다"라며 애써 감싸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신임 감독으로 LG때 그렇게 밀어주던 김기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아닌데...", "그래도 딴팀으로 갈 거라곤 생각 못했다"는 등(즉 어느정도의 불이익은 있을 것 같다라는 예상 자체는 했다는 뜻)의 말을 하는것을 보면 이미 LG시절 말기에 무언가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뉘앙스를 풍기긴 하지만...[22] 분명히 그 포수는 백용환아니면 이홍구였을 텐데, (당시 차일목은 FA로 자동보호) 2015년 8월 3일 기준으로 백용환은 홈런 7개, 이홍구는 한술 더 떠서 9개. 하지만 이대형의 이탈로 인해 얻은게 김호령인데다, 이 글에서 언급된 백용환, 이홍구가 차일목의 이탈 이후에 기아의 주전포수로 활약해 주면서 마냥 깔 처지까지는 아니게 되...려 했으나, 이 중 이홍구는 이성우와 함께 SK로 갔고, 백용환은 김민식에게 밀렸다가 이후에는 한승택이 주전으로 올라선 것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론 삽질 맞게 되었다. 그러나 키우기 어려운 포수 포지션을 몇 년간 잘 쓴것도 있고 애초에 이것저것 다 따지면 이대형도 KT에서 크게 다쳤기 때문에 끝도 없다.[23] 3년 연속 50도루 달성 이후에는 훔쳤던 3루 베이스를 뽑아들어 보이는 세리머니를 펼쳤던 바 있다.[24] 하필 왼쪽 무릎을 태그한 이대수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영상을 보면 태그 전까진 도루하던 주자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며, 슬라이딩이 너무 늦은데다 좋지 않은 자세로 들어간 이유가 더 크다.[25] 비슷하게 보상선수를 받지 않게 된 선수로는 롯데 자이언츠최준석이우민이 있는데, 그래도 이들과 비교해보면 이대형의 입지는 조금이나마 나은 편이긴 하다. 역사가 짧은 구단 입장에서 마케팅 용도로도 활용이 가능하고, 2명보다 나이도 1살 어리고, 주력이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면 도루 관련 기록들까지 갱신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26] 타구가 김현수의 글러브에 맞고 굴러가긴 했으나 바로 옆에 정주현이 냅다 잡았고 오지환도 2루 부근에 있었다.주루가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 2003년 십자인대 파손 후 도루가 확 줄어버렸으나 베이스러닝은 리그 상위권을 달린 이병규처럼, 도루 능력은 떨어졌으나 자체 주력은 뛰어난 상태인 셈이다.[27] NC 다이노스. 구단이름은 안 말했지만 다음해(2020년)에 우승한 팀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말한 것과 다름없다.[28] 사실 그쪽 팬들은 유명 운동선수가 은퇴만 하면 제의하기로 유명하다.[29] 본인이 초등학생때 야구부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시작했음에도 부모님이 야구를 계속하는걸 반대했었는데, 이때 이대형이 부모님에게 "저는 달리기가 빠르니 프로선수가 되면 최소한 대주자는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거에요"라고 설득해서 계속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근데 프로선수가 되고 실제로 대주자를 한창 많이 하게 되는 시기가 오자, 본인이 10여년전에 한 말이 현실이 된 걸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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