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31 08:51:28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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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夜景
1.1. 아름다운 야경?1.2. 잘 찍는 법1.3. 대한민국의 야경(夜慶)
1.3.1. 대한민국의 야경 명소
2. 夜警
2.1. 렘브란트의 그림

1. 夜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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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경치. 밤의 자연 조명이나 을 제외하면 없으므로 거의 대부분 인공 조명이 결정하게 되며 따라서 의 경치에 비해 인공적인 면모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조명을 어떻게 얼마나 배치하느냐에 따라 야경의 수준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특히 도시의 경우엔 이 야경이 도시의 이미지를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도시 계획에선 조명 체계 또한 신경쓰는 편.[1] 본래 모습은 답이 없을 정도로 볼품없어도 조명에 따라 밤에는 '별천지' 수준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예는 수없이 많다.

세계적인 야경으로 유명한 도시로는 부다페스트, 홍콩, 하코다테, 나폴리(혹은 베니스)가 있다.

1.1. 아름다운 야경?

야경이 아름답다느니 멋있다느니 하는 건 일부 인간들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고 지구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야경은 매우 안 좋은 것이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시의 불빛은 방해거리일 뿐이다. 야경이 아름답다는 건 뒤집어 이야기하면 빛공해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매우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자세한 내용은 빛공해 참조.

또한 한국의 야경은 빛공해와는 별개로 장시간 노동시간, 노동강도, 근로자 인권 등과 맞물려서 안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된다. 어느 외국인이 서울의 야경이 왜 이리 아름답냐고 탄성을 질렀을 때 곁에 있던 한국인이 시니컬하게 '"야근"'이라고 대답했다는 썰은 인터넷에서 꽤 유명하다. 근데 야경으로 유명한 대도시는 외국도 많다. 사실 야경이란 것은 야근도 있겠지만 밑에 과거 대한민국의 야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 경제력(=전력 소비량)의 표상이다. 80년대 중후반 한국의 밤 도시 풍경이훨씬 깜깜했다만 그렇다고 사무직 근로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조기 퇴근했냐하면 당연히 아니다.
한국과 외국의 야근의 진짜 차이점은 노동시간 보다도 자발성과 야근 수당의 여부에 있다.

1.2. 잘 찍는 법

야경은 주경(晝景, 낮의 풍경)과는 또 다른 특색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찍기가 힘들다. 여기서는 야경을 잘 찍는 팁을 간단히 소개한다.
  • 웬만하면 폰카는 금물
    폰카는 편리하긴 하지만 이미지 센서가 턱없이 작기 때문에 낮에는 몰라도 밤에는 영 좋지 않다. 나중에는 미러리스를 능가하는 폰카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물론 이 단점을 다 씹어먹는 괴물도 있다
  • 카메라는 단단히 고정할 것
    야경은 빛이 적어서인지 낮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미세한 흔들림도 죄다 잡아내서 그냥 들고 찍으면 무지막지하게 흔들린 사진이 찍히게 된다. 때문에 카메라를 단단히 고정시켜 줄 삼각대 등의 도구가 웬만해선 필요하다. 요새는 스마트폰 겸용 삼각대도 많이 출시되고 있으니 한번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 삼각대를 가지고 다니기가 번거롭고 귀찮다면 난간 같은 데라도 이용해야 한다. 손떨림 방지 모드는 생각보다 쓸모가 없다 추가로 셔터 버튼을 누를 때도 미세한 흔들림이 발생할 수 있으니 릴리즈를 연결해서 쓰도록 하자.[2]
  • 노출을 활용하자
    일단 단단히 고정했다면 최대한 빛을 끌어모아야 한다. 이럴 때는 보통 노출이란 기법을 쓰는데, 노출을 길게 해주면 렌즈가 빛을 중첩시키면서 빛의 궤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 빛갈라짐을 원한다면
    조리개값을 F8~F11 정도로 설정한다. 조리개값이 높을수록 빛갈라짐이 선명해진다.

1.3. 대한민국의 야경(夜慶)

예시로 들 만한 서울의 야경 10선

모든 야경은 야근으로 만들어진다 카더라

현대사 언급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이벤트인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이나 서울올림픽 개최 전후이던 80년대 중후반까지도 서울 주요 거리의 조명이 정말 어둡다고 국내언론에서 깔 정도였다. 수도가 이러는데 다른 지역이 어땠는지는 안 봐도 뻔했을 것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생산되는 전력을 산업용에 몰빵하고 보는 경향 때문에 일반 전력수급은 무조건 인색하게 아낄 것만을 요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외적 요인으로 에너지 동력 수급이 힘들다 싶으면 가정 전력소비나 가로등 끄기(...)부터 권장하던 게 일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요즘은 정말 상전벽해 수준인 셈.

시대가 지나면서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위에 설명한 도시들 못지 않은 수준으로 밤 풍경의 밝기가 많이 올라갔다. 그 요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축구, 엑스포 등 국제적인 이벤트들을 유치한 경험의 축적이 있고, 1990년대2000년대를 거쳐 국내외 미디어에서 다루어 주는 한국에 대한 언급 빈도가 그만큼 늘어 이로 인해 해외에서 유입되는 방문객들도 점차 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인상에 남는 거리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인 측면이 섞인 이유도 있다. 줄여 말하면 경제·문화·사회 부문의 레벨 향상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

경제수준과 기술의 발전, 예산의 증가 말고도, 범죄 예방 등의 필요성 등의 이유로 주거지역의 조명까지도 수십 년 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밝아졌다. 취소선 처리가 되긴 했지만, 살인적 수준의 야근이 웬만한 업종에 걸쳐 일어나기에 불을 켜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이런 야경(夜慶)의 일부를 만든다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 맞다.[3]

1.3.1. 대한민국의 야경 명소

2. 夜警

밤에 도둑 등 범죄 발생을 막기 위해 순찰을 도는 행위.

어휘 그 자체보다는 흔히 국가의 역할 수준을 논할 때 야경국가의 기본 개념으로 포함된다. 이는 국가가 공동체로서 존재 의의를 갖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이 국방과 치안 유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사후 처벌이 아닌 순찰은 국가가 직접 실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현대에도 민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자체와 경찰서가 관리하는 동단위 자율방범대가 제도 조직으로 존재한다.

2.1. 렘브란트의 그림

夜警 The Nightwatch.
크기 363×438cm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20px-The_Nightwatch_by_Rembrandt.jpg
아래도 언급되지만 박피를 하기 전의 이미지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전시 중인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1642년에 그린 그림으로 원제목은 야경/ Rembrandt(야간순찰) 혹은 (프란스 배닝 코크 대위의 민간 경비대) The Company of Frans Banning Cocq Preparing to March (The Night Watch)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유명한 그림이지만 인기많던 화가 렘브란트를 매장시킨 그림이기도 하다. 민간경비대로부터 오늘날 단체사진처럼 대원 전원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로 그렸더니만 그림에서 몇몇만 밝게 나오고 나머진 어둡게 나왔다고 하여 이 그림을 의뢰한 경비대는 무척 불쾌해했고[4][5] 당시에는 일부 사람만 편애했다,일부에게 돈을 더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렘브란트에게 그림 의뢰가 뚝 끊겼고, 그는 경제적으로 나락으로 몰려버렸다. 하필이면 아내가 그 해에 병들었으나 돈이 없어 죽어가는 걸 봐야했고 졸지에 팔리지 않은 화가가 되어 떠돌다가 유태인 빈민지구(렘브란트 본인은 유태인은 아니다.)로 들어가 살아가면서 유태인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다가 아무도 돌보지 않은 차디찬 집에서 홀로 세상을 떠난다.

정작 그를 몰락시킨 이 그림은 그의 대표작으로 현대에선 재평가받고 그의 대표작이자 불멸의 걸작으로 추앙받는다. 그리고 이 그림을 소장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은 이 그림의 인물들이 누구누구인지도 다 조사해서 안내판에 적어놓고 있다.그리고 렘브란트 본인의 모습도 작게 그려놓았다.[6]이스터에그

제목과는 달리 낮이 배경이다. 때와 먼지를 걷어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염료로 사용한 주사의 문제이다. 같은 광물계 염료라도 비싸디 비싼울트라마린의 푸른색이 수백년이 지나도 그 색이 변하지 않는 것과 달리,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주사의 붉은색은 시간이 지나면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주사가 들어간 그림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도 가장 바깥쪽의 층을 얇게 벗겨내서 화학작용이 없었던 안의 색을 드러낸 것이다. 전과 후의 비교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1173262-04AB99F1000005DC-660_634x390.jpg
실물의 크기 크고 아름답다. 박피 후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책에서 이 그림을 접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화 사이즈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실제로 보면 이 그림, 엄청 크다. 약 세로 3미터, 가로 4미터로 거의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람 한명 한명이 실제 사람 정도 크기다. 때문에 유명한 그림들의 실물을 접할때, 예상을 넘는 크기로 충격을 받는 그림이기도 하다.[7]

그나마 이것도 원래는 더 컸는데 원래 걸려있던 집이 헐리면서 그림 일부를 잘라내버린 것이 이정도다. 왼쪽에 있는 소년이 계단으로 내려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잘라낸 것.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이 그림이 잘리기 전에 다른 화가가 모사했던 작은 모사품이 옆에 같이 전시되어 원래 모습을 추측할수 있게 해준다.위키미디어 공용의 모사도. 흰색 레이어 안 쪽이 현존하는 부분이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그리는 해에 아내 사스키아를 다른 세상으로 떠나 보내게 되는데, 이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야경대의 수호천사로 표현했다. (가운데에서 왼쪽 소녀- 엄밀히 말하자면 소녀가 아니라 중년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또한 뒤에 깃발을 들고 있는 사내들 뒤에서 몰래 소녀(?)를 훔쳐보려 하지만 사내들의 어깨에 가려져 소녀를 보지 못하는 한 남성이 있는데, 이는 렘브란트 자신을 표현 한 것이고 그림에서나마 아내를 보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음을 표현 한 것이다.

암스테르담 Rembrantplein[8]에 가면 렘브란트의 동상과 함께 야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동상이 있다.


[1] 한 예로 여수시의 경우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조명을 신형으로 변경해서 산단 야경을 관광자원으로까지 이용하고 있다.#링크[2] 릴리즈가 없다면 셀프 타이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3] 비슷하게 야경이 유명한 대만, 일본등은 한국과 노동시간으로 힘겨루기하는 나라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선진국들의 야근은 수당을 보장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물론 저 두 나라가 야근수당을 보장해준다는 건 아니다.[4] 경비대원일 리가 없는 소녀가 꼽사리낀 엉뚱하게 들어있는 것도 불만의 이유. 이 소녀의 모델은 화가의 아내 사스키아라고 한다.[5] 중요한 사람들을 밝고, 돋보이게 그렸고, 오른편에 있는 강아지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기 때문에 대충 그렸다.[6] 암스테르담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 뒷쪽에 눈만 보이는 사람이 렘브란트다.[7] 반대 사례로 다 빈치의 모나리자, 밀레의 만종은 생각보다 작아서 놀란다고 한다.[8] plein은 네델란드 말로 square이다. 즉, 렘브란트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