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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스

아토스산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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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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Άγιον Όρος / Άθως
Holy Mountain / Athos
성산 / 아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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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스 산의 깃발이자 그리스 교회 상징 깃발
<colbgcolor=#0D5EAF> 국가
[[그리스|]][[틀:국기|]][[틀:국기|]]
지역 [[마케도니아#s-1.2|
파일:마케도니아(그리스) 비공식기.svg
마케도니아]]
주도 카리에스
면적 336㎢
인구 2,146명 (2011년)
시간대 UTC+2
정치
수장 파일:Coat_of_Arms_of_the_Ecumenical_Patriarchate_Constantinople_(St._George's_Cathedral,_Istanbul).svg 세계 총대주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nstantinople_coat_of_arms.png 바르톨로메오스 1세
프로토스 디오니시우의 대 시므온
(Γέροντας Συμεών Διονυσιάτης)
민간 행정관 타나시오스 마르티노스
(Θανάσης Μαρτίνος)
기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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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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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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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t Athos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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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토스 산
국가·위치
그리스 아토스 산 수도원 자치주
북위 40° 16′ 00.012″
동경 24° 13′ 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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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등재유형 복합유산
등재연도 1988년
등재기준 (ⅰ)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ⅱ)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ⅳ)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ⅴ)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
(ⅵ)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ⅶ)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
지정번호 454 }}}}}}}}}

파일:ChurchInGreece.png
현대 그리스의 정교회 관구
아테네 대교구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교구
아토스 자치주
크레타 대교구


1. 개요2. 역사3. 출입4. 행정5. 문화6. 수도생활7. 수도원
7.1. 대 라브라 수도원7.2. 에스피그메누 수도원7.3. 아기우 판델레이모노스 수도원(로시콘)
8. 스케테9.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arta_Athos.png
성산 수도원 자치주에 있는 20개 수도원들의 위치
그리스 북부에 있는 반도이자 산. 정교회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교구에 속한다. 아토스 반도는 그리스의 영토이면서도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고, 그 자체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수도자들의 자치주이다.

일반적으로는 그저 성산(聖山, Άγιον Όρος)이라고 불린다. 정식 명칭은 성산 수도원 자치주(Αυτόνομη Μοναστική Πολιτεία Αγίου Όρους). 오스만 제국 시기 무슬림들도 이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오스만 제국 시절의 파디샤의 칙령이나 각종 문서들에서는 'Aynoroz'(아이노로스)라고 칭하는걸 볼 수 있다.

면적은 335.63km²이고 인구는 2,262명(2001년)이다. 아토스 산의 정상은 높이가 2,033m이다.

2. 역사

'아토스'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기가스의 다른 명칭이다. 전설에 따르면 기가스(아토스)가 포세이돈에게 커다란 바위를 던졌는데 그 바위가 에게 해에 박히면서 아토스 산이 되었다고 한다.

아케메네스 왕조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략할 때 아토스 반도의 북쪽에 운하를 파서 반도가 섬이 되었던 적이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는 아토스 산을 통째로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으로 조각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한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사도 요한과 동행하여 라자로를 만나기 위해 야파에서 키프로스로 항해하고 있을 때 아토스에 상륙하였고, 그 인연으로 훗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고 한다. 이 전승 때문에 오늘날까지 모든 여성들은 아토스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로마 제국 치하 아토스에는 4세기부터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이 있었고, 한동안 그리스도인들과 다신교인들이 공존하였다. 다신교 황제인 율리아누스 치세에는 아토스의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공격받았으며, 역으로 그리스도교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때에는 다신교 신전들이 파괴되었다.

885년 황제 바실리오스 1세가 반포한 금인칙서에서 아토스를 수도자들만의 땅이라고 선언하여 평신도들의 정착을 금지하였다. 아토스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때는 중세 동로마 제국 시대이다.

958년에는 아타나시우스라는 수도자가 아토스에 오게 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962년 아토스의 수도 카리에스(Καρυές)에 중심 성당인 '프로타톤(Πρωτάτο)'을 건설하였다. 이듬해에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친구였던 황제 니키포로스 2세의 지원을 받아 '대 라브라 수도원(Μονή Μεγίστης Λαύρας)'을 지었으며 이 수도원은 현재까지 아토스 내 20개 수도원들 중 가장 으뜸가는 수도원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아토스의 수도원 공동체를 세운 중요한 인물이며 훗날 '아토스의 아타나시우스(Αθανάσιος ο Αθωνίτης)'라고 불리게 된다.

11세기 말과 12세기 초에는 세르비아 공국과 키예프 공국에서 온 수도자들이 아토스에 정착하였다. 세르비아인과 루스인 수도자들은 서로 수도원들을 공유하다 세르비아인들은 '힐란다리우 수도원(Манастир Хиландар)'을, 루스인들은 '아기우 판델레이모노스 수도원(Пантелеимонов монастырь)'을 사용하게 되었다.

1342년부터 1372년까지 아토스는 세르비아의 영토였다. 세르비아 제국의 황제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은 아토스에 기부를 쏟았다. 세르비아 수도자들의 힐란다리우 수도원은 스테판 두샨의 지원을 든든하게 받으면서 영역을 확장하여 당시에는 전체 아토스 반도의 3분의 1을 갖게 되었으며, 현재도 이 수도원은 반도의 5분의 1을 갖고 있다. 한편 세르비아 귀족인 안토니예 바가슈(Антоније Багаш)는 자기 돈으로 폐허가 된 '아기우 파블루 수도원(Μονή Αγίου Παύλου)'을 매입한 뒤 재건하여 수도원장으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세르비아 통치 시기에 세르비아 왕족 여자들 중에서 아토스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던 적이 두 번 있었다. 그리스도교 시대 이래 최초로 아토스에 들어가는 걸 허락받은 여자는 스테판 두샨의 부인인 옐레나(Јелена) 황후였으며, 두번째는 세르비아의 공주인 마라 브란코비치(Mara Branković)였다.

오스만 술탄국이 1430년 테살로니키를 정복할 때 아토스도 오스만 술탄국에 포함되었는데 아토스의 수도자들은 오스만의 술탄들과 우호적으로 지냈으며, 무라트 2세메흐메트 2세에게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셀림 1세는 아예 이전의 전란으로 인해 파괴되거나 훼손된 수도원들을 국가재정으로 복구하고, 후손들도 절대로 파괴해서는 안된다라고 명령을 내렸으며, 이후의 파디샤들도 재정적으로 수도원들을 지원하거나 최소한 보호하는 조치를 내렸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여행가인 에울리야 첼레비(Evliya Çelebi)의 1667년 5월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아토스 일대에 대규모 기근이 발생해 "굶주림에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할 정도"였으나 폭도들이 아토스 수도원들만큼은 털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리스 독립 전쟁 시기에는 1824년부터 1830년까지 수도원에 3,000명으로 구성된 군대가 주둔하기도 했으나 오스만 제국에 의한 정교회 자치권보장은 오스만 제국 시기 내내 지켜졌다. 발칸 전쟁 이후 아토스는 그리스 왕국의 영토가 되어 현재 그리스에 이른다.

3. 출입

아토스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수도자들의 자치주라 그리스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출입하려면 별도로 비자[1]를 받아야 한다. 비자 발급에는 소정의 비용이 징수되지만, 수도원에서의 숙식은 무료로 제공된다. 물론 수도원의 숙식은 매우 검소하고 소박한 채식 식단이다.

아토스에 있는 정교회의 20개 수도원들은 절대 금녀의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도 여성들의 입장을 불허한다. 때문에 모든 여성은 비자 신청 자체가 안 된다. 하지만 전쟁 등 비상시에는 피난 등으로 받아준 극히 일부 사례가 있다. 남장 등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몰래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있으나 이는 확실하지 않다. 여성이 들어갈 수 없으므로 성차별 논란이 있고 실제로 유럽의회에서 금녀정책 폐지를 권고했으나 관련 역사가 매우 긴데다 종교계와 얽혀 있는 문제라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물마저 암컷은 아토스에 들어갈 수 없다. 예외는 고양이 암컷과 암탉. 암고양이가 허용된 이유는 수도원마다 가 하도 많아서 고양이를 많이 번식시켜야 하기 때문이고, 암탉은 달걀과 그것을 활용한 종교음식의 제조 목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또한 20세 미만 미성년자는 남녀 불문하고 신청이 아예 안 된다. 즉 20세 이상 남성만이 비자를 발급받아 갈 수 있다. 게다가 비자 발급량은 하루에 정교회 신자 100명, 타 신자 15명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20세 이상 남성이라도 여러모로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마치 메카랑 비슷하지만 제한조건만 놓고 보면 메카보다도 훨씬 엄격한 곳이다.

그리스의 중마케도니아할키디키현 아리스토텔레스 시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반도이지만 육로는 개설되어 있지 않으며, 경계는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고 출입금지 경고판이 부착되어 있다#. 이 곳으로 향하는 유일한 교통편은 우라노폴리스 항에서 하루 한 번 운항하는 배편 뿐이다.

2018년 정교회 분열로 인해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도 출입이 곤란해졌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가 관할하는 지역의 방문을 금지했는데, 아토스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관할 구역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하지만 이곳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서는 자유롭지 못하여 감염된 수도자들이 나왔다. 기사 확진된 수도자들이 내려갈 수 없어 자체적으로 수도원 내 격리구역을 만들었다고 한다.

4. 행정

아토스는 그리스의 영토이면서 그리스의 다른 하위 행정 구역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주이다. 아토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직할 교구에 속하며, 정치 체제는 신권정치 형태를 띤다. 행정 수도인 카리에스(Καρυές)에서 아토스의 세속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

아토스의 행정은 20개 수도원의 대표로 이루어진 '성 공동체(Ιερά Κοινότητα)'가 한다. 성 공동체는 4명으로 이루어진 '성 행정부(Ιερά Επιστασία)'를 간부로 두며, 성 행정부의 구성원들 중에서 아토스의 수장인 '프로토스(πρώτος)'를 선출한다. 프로토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동의하에 종교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총대주교 회의(시노드)에 참석할 수 있으며, '수도원장(Ηγούμενος)'들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다.

'수도원장(Ηγούμενος)'들은 각각 20개 수도원들의 행정을 담당하며 수도원에서 영적 지주 역할을 한다. '수사단(Γεροντία) 총회'는 입법을 맡는다.

5. 문화

그리스어를 주로 쓰지만 수도원의 국적마다 쓰는 언어가 다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구에 속하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이 그레고리력을 도입한 것과 달리 아토스에서는 기존 율리우스력을 고수한다.

6. 수도생활

아토스 출신의 잘 알려진 수도자들로는 하찌 예오르기오스 수사와 파이시오스 수사 등이 있으며, 파이시오스 수사가 1980년에 쓴 저서에 따르면, 파이시오스 수사가 젊었을 시절인 1950년대 당시 아토스 성산의 정상 부근 숲속에는, 대략 7~12명 가량의 은둔 수도자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파이시오스 수사는 아토스산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12명의 은수자 중 한명을 만난 적이 있다. 이 은수자들은 사람이 없는 깊은 아토스 산 정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초야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와 생사여부는 알 수가 없다. 파이시오스 수사가 은둔자를 만난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이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모든 은수자들이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다수의 아토스 은수자들은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 거의 음식을 먹지 않으며[2] 매우 힘들게 거룩한 삶을 영위한다. 아토스 은수자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면 좋다. 아토스 수도사의 삶 예시를 들자면 아토스의 수도사들은 이들은 사탄이 5가지 욕구[3]를 통하여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에 아토스 수도원들은 종이 5가지, 5개가 매달려 있고, 종을 울릴 때마다 자기 감정을 모두 합하여 하나님만 찬양하여 5가지 욕구를 빼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음욕에 대해서는 그 5가지 욕구 중에서도 특히 경멸시하는데, 어느 정도냐면 이 '마귀와의 투쟁'에 대해서는 어느 종교, 어느 수도회에 비해서도 더더욱 강조할 정도다. #

러시아 출신 티혼(Tikhon)수도사제처럼, 음식을 거의 먹지 않거나 아토스 숲속에서 자연인처럼 살며 수도생활을 하는 등, 관련 서적에 의하면 매우 극한 환경에서 수도생활을 한다.

일본인 정교회 신자 1명이 한국에 위치한 성 안드레아 수도원에 있다가 아토스로 떠난 적이 있다. 현재 강원도에 위치한 한국정교회의 남자 수도원엔 아무도 상주하지 않고 있다. 과거 이 일본인 수사 1명과 한국인 수사 1명이 있었으나, 일본인 수사는 상술했다시피 아토스로 가버렸고 한국인 수사는 환속했다.

파일:A_monk_who_never_saw_a_woman.jpg

파일:Man_who_never_saw_a_woman.jpg

여자들의 출입을 금하다 보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한 번도 여자를 본 적이 없었던 수도자가 있었다. 미하일로 톨로토스(Mihailo Tolotos, 1856년 ~ 1938년)라는 할키디키반도 출신의 수도자는 출생 4시간 만에 어머니가 사망하고 그 하루 뒤 아토스의 수도원으로 보내져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수도원 생활이 적성에 맞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자뿐만 아니라 자동차나 영화, 비행기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생활하였다. 그의 말년에는 어느정도 대중화된 기술들임에도. 다만 그가 찍혔다고 전해지는 사진이 딱 한 장이나마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4] 사진의 개념에 대해선 모르더라도 일단 사진기만큼은 봤을 것이다.[5] 이를 기념해 수도원에서는 그가 1938년 82세로 사망할 때 특별한 장례식을 치러주었다.[6][7] 현대 같으면 산모가 죽어서 가족 자체가 아예 없는 아이라도 일단 보육시설에 맡겨놓고 어느 정도 커서 어느 정도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때 수도원으로 갈 지 다른 삶을 살지 스스로 결정하게끔 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수도원에 여자 자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아토스 정도밖에 없다시피하니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기록이기도 하다.

7. 수도원

아래 표에서 대부분 그리스어 표기가 따로 없는 것은 원어가 그리스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도원은 십중팔구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직속이 아니라 아테네 대주교 산하 그리스 정교회 소속 수도원이다.
이름 설립 연도 교회 국적 원어 표기 그리스어 표기 비고
대 라브라 수도원963년그리스Μονή Μεγίστης Λαύρας
바토페디 수도원10세기 중반그리스Βατοπέδι
Βατοπαίδι
[8]
이비론 수도원980년에서 983년 사이조지아ივერთა მონასტერიΙερα Μονή Ιβήρων
힐란다리우 수도원1198년세르비아Манастир ХиландарΜονή Χιλανδαρίου[9]
디오니시우 수도원14세기 중반그리스Μονή Διονυσίου
쿠틀루무시우 수도원14세기 중반그리스Μονή Κουτλουμουσίου [10]
판도크라토로스 수도원1363년그리스Μονή Παντοκράτορος
크시로포타무 수도원10세기경그리스Μονή Ξηροποτάμου
조그라푸 수도원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불가리아Зографски манастирΜονή Ζωγράφου
도키아리우 수도원10세기경그리스Μονή Δοχειαρίου
카라칼루 수도원11세기 초그리스Μονή Καρακάλλου [11]
필로테우 수도원10세기 말그리스Μονή Φιλοθέου
시모노스 페트라스 수도원
(시모노페트라)
12세기경그리스Μονή Σίμωνος Πέτρας
(Σιμωνόπετρα)
[12]
아기우 파블루 수도원불명그리스Μονή Αγίου Παύλου [13]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1536년그리스Μονή Σταυρονικήτα [14]
크세노폰토스 수도원10세기에서 11세기경그리스Μονή Ξενοφώντος
오시우 그레고리우 수도원불명그리스Μονή Οσίου Γρηγορίου [15]
에스피그메누 수도원불명그리스Μονή Εσφιγμένου
아기우 판델레이모노스 수도원
(로시콘)
1167년러시아Пантелеимонов монастырьΆγιος Παντελεήμωνος
(Ρωσσικόν)
콘스타모니투 수도원
(카스타모니투 수도원)
11세기경그리스Μονή Κωνσταμονίτου
(Μονή Κασταμονίτου)

7.1. 대 라브라 수도원

  • Μονή Μεγίστης Λαύρας

아토스의 20개 수도원들 중 서열 1위 수도원. 니키포로스 2세의 지원 하에 수도자 '아토스의 아타나시우스(Αθανάσιος ο Αθωνίτης)'가 세웠다. 기록이 온전하게 남아있어서 아토스의 수도원들 중에서 역사가 가장 뚜렷한 수도원이기도 하다.

7.2. 에스피그메누 수도원

  • Μονή Εσφιγμένου

전승에 따르면, 5세기부터 수도원이 존재했다고 하나, 현존하는 기록에 처음 언급되는 건 10세기부터이다. 현재 아토스 산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상주하는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측과 종교적인 문제로 충돌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가톨릭그리스도교의 타 종파들과 다른 종교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목표로 이들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하기 시작하자, 이에 발맞추어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측에서도 타 종교에 대한 포용주의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에 에스피그메누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발끈하여 총대주교청의 이런 방침에 반기를 들었고, 이에 총대주교청 측으로부터 수도자들을 추방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서 여러명이 파문되었다. 여기에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가 엮여들어가면서 사태가 점점 엉망이 됐는데, 수도원 측에서 총대주교청 측이 파견한 조사단을 들여보내지 않기로 작정하자, 이에 발끈한 조사단이 소화기빠루를 들고 수도원 문을 뜯고 쳐들어가서 깽판을 벌이기도 했다(...). 고든 프리맨 가뜩이나 막장스런 상황에 수도자들 몇몇의 횡령 혐의가 적발되어 테살로니키 검찰이 이들을 포함한 수도원의 주요 인사들을 기소했고, 수도원을 취재하러 간 BBC 측에서 여기에 수도원 측에 대한 정치적인 압력이 가해졌음을 폭로하여 그리스 정교회 측이 반발을 하는 등 아수라장이 되가는 중이다.

7.3. 아기우 판델레이모노스 수도원(로시콘)

  • Пантелеимонов монастырь

현재 아토스 산의 수도원 중에서 가장 거대한 수도원으로,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았던 덕택에 자금 사정 또한 가장 나은 편이다.[16] 물론 소련이 들어선 후에는 지원이 한동안 중단되어 재정난에 시달린 적이 있으나, 소련 해체 후에 블라디미르 푸틴에 의해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다시 지원이 들어왔다. 2018년 정교회 분열 이후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측에서 러시아 정교회 소속 신자들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관할 구역의 출입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렸는데, 아토스 산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이 관할하기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의 아토스 산 출입이 곤란해진 바람에 로시콘의 운명도 불투명해졌다.

8. 스케테

스케테는 수도자들의 숙소 같은 곳이다. 현대 그리스어로는 '스키티(Σκήτη)'라고 한다.
이름 그리스어 이름 교회 국적 소속 수도원 다른 이름
아기아스 안나스Αγίας Άννας그리스대 라브라 수도원아기안나
(Αγίαννα)
아기아스 트리아도스Αγίας Τριάδος그리스대 라브라 수도원카프소칼리비아
(Καυσοκαλυβία)
티미우 프로드로무Τιμίου Προδρόμου루마니아대 라브라 수도원거룩한 선지자, 세례자 요한
(Prodromu, Sfântul Ioan Botezătorul)
아기우 안드레아Αγίου Ανδρέα그리스바토페디 수도원사라이
(Σαράι)
아기우 디미트리우Αγίου Δημητρίου그리스대 라브라 수도원바토페디니
(Βατοπεδινή)
티미우 프로드로무 이비론Τιμίου Προδρόμου Ιβήρων조지아이비론 수도원이비리티키
(Ιβηριτική)
아기우 판델레이모노스Αγίου Παντελεήμονος그리스쿠틀루무시우 수도원쿠틀루무시아니
(Κουτλουμουσιανή)
프로피티 일리아Προφήτη Ηλία그리스판도크라토로스 수도원
테오토쿠Θεοτόκου그리스아기우 파블루 수도원네아 스키티
(Νέα Σκήτη)
아기우 디미트리우 투 락쿠Αγίου Δημητρίου του Λάκκου루마니아아기우 파블루 수도원스케테의 성 디미트리오스
(Lacu, Sfântul Dumitru)
락코스키티
(Λακκοσκήτη)
에방겔리스무 티스 테오토쿠Ευαγγελισμού της Θεοτόκου그리스크세노폰토스 수도원크세노폰티니
(Ξενοφωντινή)
보고로디차Βογορόδιτσα불가리아아기우 판델레이몬 수도원하느님의 수태자
(Богородица)

9. 기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New_Athos_Monastery.jpg
압하지야새로운 아토스라는 유사품이 있다. 여기도 1874년에 아토스 산에서 온 수도자들이 세운 것. 새로운 아토스 부근에는 동굴이 유명한데, 어찌나 넓은지 1975년에는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정도이다.
(3개 역, 길이 1.3 km. 914 mm 협궤)

아토스 산에 대해 한국어 위키백과에 상세하게 문서가 있으며, 게다가 20개 수도원 각각에 대해서도 문서들이 있지만, 영어 자료를 번역기로 돌렸는지 문장이 매우 부자연스럽다. 아토스 산

감리교 목사로서 충주봉쇄수도원을 설립한 강문호 목사가 쓴 아토스 방문기가 있다#.

아이세움의 학습만화 그리스에서 보물찾기에서 봉팔이 일행이 암포라를 훔쳐 도주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건 범죄자인 봉팔이 일행에게 비자가 나온 것... 주인공 일행은 상기한 대로 아토스로 가는 배는 하루 한 척뿐+여자와 미성년자는 출입 불가+성인 남자도 언제 비자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쫓아갈 방도가 없었는데, 우연히 아토스로 건축 자재를 나르는 배의 선장을 만난 덕분에 봉팔이 일행을 쫓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발 늦어서 봉팔이가 아토스에 내리고 말았지만, 이내 부두에 있던 신자가 봉팔이를 알아보고 "귀중하고 신성한 물건을 훔친 자가 감히 이 신성한 곳에 발을 들이려 하다니! 당장 나가시오!"라고 하며 도로 바다로 밀어낸다. 이 신자는 의식에 쓰일 포도주를 담은 암포라를 들고 다니던 신자인데, 봉팔이가 고대 유물이자 작중 보물인 또다른 암포라를 훔쳐서 갖고 가던 중 길에서 부딪히면서 신자의 암포라가 깨지자, 봉팔이가 오히려 싸구려 암포라라며 밟아서 더 부쉈기에 열받을 수밖에. 그 덕분에 주인공 일행이 암포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1] diamonitirion이라고 한다. 편의상 '비자'라고 썼지만, 아토스가 독립국가는 아니므로 엄밀히 비자는 아니고 이 구역에 들어가기 위한 특별허가증인데, 여권에 부착 또는 날인되는 형식은 아니다. 이 허가 없이 무단 입경시에는 처벌된다.[2] 일례로 이들은 음식을 '생존을 위한 양식'으로만 여기면서 고기를 아예 먹지 않고 채식 위주로 생활을 하며, 가끔식 생선을 먹는 정도라고 한다. 사실 아토스는 암짐승을 못 들어오게 하기에 목축이 이루질 수 없다.[3] 식욕, 잠욕, 성욕, 소유욕, 안전욕[4] 다만 이 사진의 주인공이 톨로토스라는 확증은 없으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다른 수도사의 사진이 톨로토스의 사진이라고 언급된 경우도 있다.[5] 사실 인물 사진이 발명된 게 톨로토스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던 1839년이긴 하다.[6] 물론 이런 사례가 정말 극히 드물다 보니 이 이야기 자체의 신빙성에도 논란이 있으며, 진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7] 다만 성경의 창세기에서부터 여자의 존재가 언급되는 걸 보면 톨로토스가 생전에 '여자'라는 성별의 존재를 눈치챘을 가능성은 있으며, 실제로 동료들에게도 여성의 존재를 전해들었다고 한다.[8] 신민주주의당 집권 시절이던 2008년에 당시 총리였던 코스타스 카라만리스의 주도로 아토스 산 외부의 수도원 소유 토지를 정부에 거액의 돈을 받고 넘겼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었다.[9] 2004년에 수도원 소속 건물들이 50% 가량 불타는 큰 화재가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안에 있던 유물들은 무사했다.[10] 수도원 자체는 그리스 소속이나, 수도원 건물은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인 니콜라에 알렉산드루와 그 아들인 블라디슬라오 1세에 의해 지어졌다.[11] 13세기 중에 라틴 제국의 군대와 해적들에게 약탈을 당했다.[12] 1581년과 1626년, 1891년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가 그때마다 재건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13] 본래는 아토스 산 내에 있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버려져 폐허가 된 수도원이었는데, 14세기 중반에 세르비아 귀족인 안토니예 바가슈(Антоније Багаш)가 자비로 이곳을 매입하고 수도원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14] 수도원 건물은 16세기에 건설되었으나, 10세기에 이곳 부지에 이미 수도자들의 숙소가 있었고, 건축 시기가 불분명한 수도원이 세워져 있었다.[15] 건축 시기가 불분명하지만,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성인인 성 게오르기우스가 세웠다고 한다.[16] 정교회의 중심이던 동로마 제국이 망한 뒤로 강성한 정교회 국가가 러시아 하나만 남은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