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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83년 |
로마제국 히스파니아 속주 이탈리카 | |
사망 | 136년 또는 137년 |
로마제국 이탈리아 로마 | |
아버지 | 루키우스 비비우스 사비누스 |
어머니 | 살로니아 마티디아 |
남편 | 하드리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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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황후.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할머니, 대 파우스티나의 어머니, 소 파우스티나의 외할머니가 되는 루필리아 파우스티나의 이부언니다.
2. 생애
83년경 로마 제국 히스파니아 속주 이탈리카에서 전직 집정관이었던 부친 루키우스 비비우스 사비누스와 어머니 살로니아 마티디아 사이의 딸로 출생했다. 여동생으로 마티디아 2세, 루필리아 파우스티나[1]가 있었다. 트라야누스가 98년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뒤, 그녀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중요해졌다. 트라야누스와 폼페이아 플로티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그녀는 트라야누스의 조카딸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혼인한 자는 후계자로 지명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플로티나는 오랫동안 친자식처럼 길러온 하드리아누스를 비비아 사비나와 결혼시키자고 강력히 주장했고, 사비나의 어머니 마티디아도 하드리아누스를 마음에 들어했다. 트라야누스는 내키지 않아 했다고 전해지나, 아내의 간곡한 설득을 받아들여 서기 100년경 하드리아누스와 사비나를 결혼시켰다.하드리아누스와 사비나의 결혼 생활이 어땠는지는 기록이 엇갈린다. 당대의 몇몇 기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결혼 생활 내내 냉랭했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는 냉정한 성격이었고, 사비나는 날카로웠다고 하며, 좀처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하드리아누스는 남자애인 안티노우스를 무척 사랑한 동성애자였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안티노우스와 함께 보냈다.
조작된 서술들로 가득한,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아내를 홀대하고 구박해 자살로 몰아 넣었다고 한다. 허나 하드리아누스는 아내가 자신보다 먼저 사망했을 때 진심으로 슬퍼했고, 호사가들의 주장과 악명 높은 위서 내용처럼 설령 그렇게 하려고 해도 상술했듯 비비아 사비나 황후한테 그렇게 할 수 없던 위치였다. 왜냐하면 아내의 모친은 트라야누스 황제의 조카딸이었고 , 아내의 외할머니는 황제의 하나뿐인 누나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촌수로는 멀어보일 수 있어도, 누나의 자녀 및 그들의 딸, 사위 외에는 친혈육이 전무한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하드리아누스의 장모는 황제의 친딸과 같은 위치였던데다 비비아 사비나는 친혈육 그 이상으로 선황이 무척 아낀 공주였다. 따라서 하드리아누스가 남자애인들에게 빠져 아내의 아우구스타 직위를 박탈했다거나, 아내를 구박해 자살로 몰아 넣었다는 이야기는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취급받고 있다.분명한 사실은 하드리아누스가 아내를 모욕한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기 112년, 비서관 수에토니우스가 사비나에게 불쾌하고 저질스러운 발언을 했다. 사비나는 관용을 베풀어 용서했지만, 하드리아누스는 크게 분노하여 수에토니우스 및 그와 친하게 지낸 인사들을 공직에서 내쫓아버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비나는 자기가 용서했는데도 봐주지 않고 처벌해버린 남편에게 화가 나서 한동안 각방을 썼다고 한다.
사비나는 서기 136년 또는 137년경에 사망했다. 하드리아누스는 그녀를 신격화하였고, 훗날 사망했을 때 그녀의 무덤에 합장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혈연상 비비아 사비나의 조카손주뻘이 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소 파우스티나가 낳은 막내딸 비비아 아우렐리아 사비나 공주의 이름이 비비아 사비나에서 따왔다고 한다.
[1] 살로니아 마티디아가 세번째 결혼으로 맞이한 남편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할머니로 하드리아누스의 벗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