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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515년 |
동로마 제국 트라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 |
아버지 | 레오 1세 |
어머니 | 아일리아 베리나 |
형제자매 | 레온티아 |
남편 | 제노, 아나스타시우스 1세 |
자녀 | 레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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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레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제노와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황후.2. 생애
레오 1세와 아일리아 베리나의 장녀로 출생했다. 457년 1월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후, 권신 아스파르에 의해 부친이 황위에 올랐다. 레오 1세는 아스파르를 견제하기 위해 아사우리아족을 군대의 주축으로 삼기로 하였고, 아사우리아 출신의 제노와 아리아드네를 결혼시켰다. 아리아드네는 제노와의 사이에서 아들 레오 2세를 낳았다.473년 10월, 레오 1세는 제노와 아리아드네 사이에서 태어난 손자 레오를 레오 2세로 즉위시켰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474년 1월 18일, 레오 1세가 사망했다. 그 후 제노와 레오 2세가 공동 황제가 되었으나, 레오 2세는 474년 11월 7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제노가 아들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아리아드네가 남편을 위해 아들을 독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신빙성은 부족하다.
475년 11월 어머니 베리나가 애인 파트리키우스, 오빠 바실리스쿠스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제노는 급히 달아났고, 바실리스쿠스가 새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바실리스쿠스는 무능한 행보로 일관하였고, 이사우리아인 장군 일루스더러 제노를 체포하라고 해놓고 수도에서 이사우리아인을 학살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이에 일루스는 제노의 편을 들었고, 476년 8월 제노는 수도로 돌아와 재위를 되찾고 바실리스쿠스를 굶겨죽였다.
479년, 베리나는 일루스를 암살하려 했다가 실패한 뒤 일루스의 압력을 받은 제노에 의해 타르수스로 유배되었다. 479년 후반 아리아드네의 여동생 레온티아의 남편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가 형제 프로코피우스, 로물루스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제노는 이로 인해 거의 실각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진압했다. 이후 제노의 황후이자 베리나의 장녀인 아리아드네는 제노에게 어머니를 석방해달라고 청했다. 제노는 아리아드네에게 일루스에게 간청하라고 했다. 아리아드네는 일루스를 만나 울먹이며 어머니를 풀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일루스는 "그녀는 또 다른 황제를 세워 당신의 남편에게 대항할 거다"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아리아드네는 제노에게 어머니와 일루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제노는 "당신이 나와 함께 하면 좋겠다"라며 베리나가 유배지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였고, 아리아드네는 어머니와 함께 일루스에 대한 세 번째 암살 시도를 벌였다. 암살자는 일루스의 귀를 잘랐지만 죽이지 못했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판단한 일루스는 484년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베리나는 일루스에 의해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황제로 추대한 레온티우스를 지지한다는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일루스의 반란은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반란군은 이사우리아의 파피리우스 요새로 철수했고, 베리나는 484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 요새에서 사망했다. 요새는 488년 함락되었고 일루스는 처형되었다. 베리나의 시신은 아리아드네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졌다.
491년 4월 9일, 제노가 사망했다. 다음 날 아리아드네는 수행원과 함께 황실의 예복을 입고 히포드룸(경마와 다른 공적인 행사를 위해 궁전에 딸린 큰 경기장)에 들어섰다. 군중은 "주여, 그녀의 장수를 허락하소서!"라고 외쳤다. 당시 제노에게는 동생 플라비우스 롱기누스가 있었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은 '정통 로마인'이 황제가 되기를 원했다. 여론을 확인한 아리아드네는 원로원에게 "왕실의 미덕이 충만한 기독교와 로마 황제, 돈에 대한 사랑이나 가능한 한 어떠한 악덕도 베풀지 않는 자를 선택하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대신들이 열띤 논쟁을 벌였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아리아드네가 직접 에피루스 지방에서 명망 높았던 환갑의 노인 아나스타시우스 1세를 옹립했다. 그 후 491년 5월 20일, 그녀는 아나스타시우스의 황후가 되었다.
이후 별다른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아리아드네는 515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사망하고 성 사도 교회에 안장되었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3년 후인 518년에 사망했고, 그녀의 곁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