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3 14:48:05

아모리아 왕조

[[고대 로마|
파일:SPQR_sign.png파일:투명.png
로마의 역사
Historia Romae
Ἡ Ἱστορία τῶν Ῥωμαίων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color: #fff; margin: -5px -11px; padding: 5px 0px; background-color: #9F0807"
{{{#fbe673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4A3800; margin: -5px 0px"
<colbgcolor=#fff5d2,#ccc4a8> 시대 국가
고대
로마
<colbgcolor=#FFF5D2,#ccc4a8> 왕정 <colbgcolor=#fff9e3,#ccc7b6> 로마 왕국
공화정
로마 공화국
원수정
로마 제국
갈리아 제국 | 팔미라 제국
전제정
전제정 서로마 제국
수아송 왕국
<colbgcolor=#fff9e3,#ccc7b6> 동로마 제국
중세 동로마 제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라틴 제국 니케아 제국 <colbgcolor=#faf7ed,#c8c6be> 트라페준타 제국
동로마 제국
근세
잔존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모레아 전제군주국 <colbgcolor=#faf7ed,#c8c6be> 트라페준타 제국

제정 왕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네 황제의 해플라비우스 왕조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 오현제다섯 황제의 해세베루스 왕조여섯 황제의 해군인 황제 시대사두정치사두정의 내전콘스탄티누스 왕조발렌티니아누스 왕조테오도시우스 왕조레오 왕조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이라클리오스 왕조20년간의 혼란이사브리아 왕조니키포로스 왕조아모리아 왕조마케도니아 왕조두카스 왕조콤니노스 왕조앙겔로스 왕조라스카리스 왕조팔레올로고스 왕조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아모리아 왕조
Δυναστεία των Αμορίων
820년 ~ 867년
창건자 미하일 2세 (820~829)
주요 황제 미하일 2세
테오필로스
미하일 3세
로마 제국의 왕조
니키포로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조

1. 개요2. 역사3. 역대 황제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세습왕조. 820년부터 867년까지 47년간 제국을 통치했다. 초기에는 내우외환으로 위태로웠지만 극복하였고, 아랍과의 전쟁에서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해, 마케도니아 왕조 시대에 제국이 팽창 정책을 추진하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이 왕조 시대에 100여년간 이어진 성상 파괴 운동이 종식되었지만 포티오스 분열이 발발하면서 동서 교회간 갈등이 또다시 벌어졌다.

2. 역사

  • 자세한 내용은 각 황제의 개별 항목 참조

2.1. 미하일 2세(820~829)

레온 5세와 함께 니키포로스 1세를 섬긴 아르메니아계 장군으로, 레온이 미하일 1세를 밀어내고 새 황제에 등극하는 걸 도왔다. 그러나 레온이 자신 대신 아들을 후계자로 삼자 반감을 품고 반란을 꾀했다가 820년 성탄절 전야에 발각되어 긴급 체포되었다. 하지만 간수를 회유해 추종자들을 감옥에서 비밀리에 접견한 뒤, 성탄예배 때 레온을 참살하고 황위에 올랐다. 명분없는 찬탈에 민심이 격양되자, 슬라브인 토마스콘스탄티노스 6세라고 자칭하며 8만 대군을 일으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갔다. 이리하여 벌어진 제6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미하일은 한때 패망할 뻔했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압도적인 방어력과 불가리아 왕 오무르타그의 지원 덕분에 반란군을 격파하고 토마스를 참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방력이 약해졌고, 무슬림은 이 기회를 틈타 시칠리아와 크레타를 빼앗았다.

미하일은 성상 파괴주의자였지만, 전임 황제 레온 5세처럼 성상 옹호론자들을 딱히 박해하지 않고 추방된 자들을 불러들였다. 또한 행정을 재정비하고, 아랍의 침략에 분전하였다. 이리하여 제국은 안정을 되찾았고, 뒤를 이은 테오필로스가 반격을 가할 기반이 마련되었다.

2.2. 테오필로스(829~842)

테오필로스의 13년 치세는 아랍과의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시칠리아와 동방 전선에서 연이은 전쟁을 벌여 승패를 주고받았다. 830년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이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자 친히 출정하여 방어했으나 패배하였고, 타우루스 산맥의 요새 몇 곳을 상실했다. 831년 보복 차원에서 킬리키아를 공격하여 타르수스를 함락하고, 아랍인 중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자들을 추방했다. 833년 알 마문이 카파도키아를 공격하여 파괴하자, 더 이상 전쟁을 이어가봐야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금화 10만 개와 아랍인 포로 7천 명을 석방하는 대가로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836년 불가리아와의 20년 평화 협약이 끝나자 트라키아 북부를 유린했다. 이에 프레시안 1세가 보복에 나서 카반 이스불을 파견해 필리포폴리스 인근에서 동로마 제국군을 격파하고 필리포폴리스를 점령했다. 이리하여 불가리아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백해 연안에 이르렀고,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테살로니키 사이의 육로를 차단했고, 테살로니키 근처의 슬라브인들은 불가리아의 산하로 들어갔다. 테오필로스는 이에 맞서 842년 세르비아 부족들을 부추겨 자치국을 세우게 했다. 프레시안 1세는 이를 토벌하고자 세르비아를 전격 침공했으나 3년간의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845년 별다른 영토 변경 없이 평화 협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한편, 테오필로스는 837년 테오포보스 장군을 앞세운 7만 대군을 이끌고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휩쓸었고, 사모사타를 함락하였으며, 멜리테네(말라티야)를 조공 도시로 만들었고, 칼리파 알 무타심의 출생지인 소조페트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838년 알 무타심이 8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테오필로스는 다지몬에서 알 아프심의 부하 알 아프산과 맞붙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테오필로스가 죽었다는 헛소문이 도는 바람에 동로마군이 패배했고, 그 여파로 앙카라가 함락되었다. 아랍군은 앙카라에서 집결한 뒤 아모리움을 포위해 2주만에 함락하고 7만에 달하는 시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았다. 하지만 알 무타심은 내부 반란 때문에 본국으로 귀환하였고, 가혹한 숙청을 강행해 다지몬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알 아프신을 죽인 뒤 얼마 안가 병사했다.

842년 1월 20일, 테오필로스는 중병에 걸렸다. 이때 다지몬 전투 때 자기가 죽은 줄 알고 황제를 칭했다가 나중에 취소했던 테오포보스가 또 다시 반란을 일으켜 어린 아들 미하일 3세를 위협할 걸 우려하여, 그를 처형하게 하였다. 그는 테오포보스의 수급을 본 직후 눈을 감았다.

2.3. 미하일 3세(842~867)

842년 2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모친 테오도라, 환관 테옥티스도스의 섭정을 받았다. 테오도라는 843년 3월 초 공의회를 소집해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한 성상 파괴주의 단죄를 재차 추인했다. 이리하여 성상 파괴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아랍을 상대로 공세를 연이어 펼쳐 큰 성과를 거뒀으며, 경제 정책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어 막대한 금을 확보해 국고를 가득 채웠다. 다만 파울리키아파를 대대적으로 탄압해, 그들이 멜리테네의 아랍 세력과 손을 잡고 제국에 대항하게 만들었다. 855년 15살이 된 미하일 3세는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고, 테오도라의 오빠 바르다스와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켜 테옥티스토스를 죽이고 어머니를 수도원에 보냈다.

비록 어머니를 유폐하고 단독 황제로 등극하긴 했지만, 미하일 3세는 아직 15살의 소년이었고, 책임감이 결여되어 통치는 뒷전이고 향락을 추구했기 때문에 실권은 바르다스에게 주어졌다. 바르다스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정치적 식견과 탁월한 행정 능력을 갖췄으며 군사적 재능도 뛰어났다. 856년 파울리키아파를 등에 업고 쳐들어온 멜리테네의 아미르 오마르 이븐 아브둘라를 주살하였고, 아미다를 공략하였다. 859년 미하일 3세가 직접 원정군을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사라센에 타격을 입혔고, 제국 함대가 다미에타를 습격하여 많은 포로를 확보했다. 863년, 루스인과 아랍인이 침공했지만 제국군은 이를 격퇴하고 아랍군 사령관들은 모두 전사했다. 또한 제국군은 불가리아를 상대로 몰아붙여 필리포폴리스, 메셈브리아 등을 수복했다.

한편, 바르다스는 미하일 3세의 동의를 받아 친교황파인 총대주교 이그나티오스를 해임하고, 중립적인 포티오스를 총대주교로 선출했다. 이 일은 서방 교회와의 분열로 이어졌다. 이그나티오스는 교황 니콜라오 1세에게 도움을 호소했고, 교황은 이를 받아들여 863년에 포티오스를 파문했다. 미하일 3세는 이에 맞서 867년 포티오스와 다른 세 명의 동방 주교들을 소집해 교황 니콜라오 1세를 파문했다.(포티오스 분열) 이러한 분열의 와중에 두 교회는 발칸 반도의 슬라브인들에 대한 사목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모라비아에 파견된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가 키릴 문자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라비아는 서방 교회를 택하였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하일은 가뭄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불가리아를 공격하여 보리스 1세를 굴복시키고 동방 교회로 개종시켰다.

866년, 미하일 3세는 친구 바실리오스와 힘을 합쳐 바르다스를 죽였다. 그 후 정사를 바실리오스에게 떠맡기고 향락에 빠졌다가, 867년 9월 24일 바실리오스와 추종자들에게 살해되었다. 이리하여 아모리아 왕조는 멸망했고, 동로마 제국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 마케도니아 왕조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3. 역대 황제

대수 이름 재위 기간
1대 미하일 2세 820년 12월 25일 ~ 829년 10월 2일
2대 테오필로스 829년 10월 2일 ~ 842년 1월 20일
3대 미하일 3세 842년 1월 20일 ~ 867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