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71대 황제 레온티오스 Λεόντιος | |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레온티오스 (Λεόντιος) |
출생 | 미상 |
동로마 제국 이사우리아 | |
사망 | 706년 2월 15일 |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695년 ~ 698년 (3년) | |
전임자 |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후임자 | 티베리오스 3세 |
부모 | 아버지 : 라자루스 |
종교 |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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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의 황제. 695년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폐위시키고 황위에 올랐으나 697년 카르타고를 빼앗긴 후 티베리오스 3세에게 폐위당해 수도원으로 유폐되었다가 706년 2월 15일 복위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티베리오스와 함께 처형되었다.2. 생애
2.1. 황제 즉위 이전
레온티오스의 초기 생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단지 그가 이사우리아 출신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통치 기간 동안, 레온티오스는 아나톨릭 테마의 군사 책임자였다. 레온티오스는 688년 이전 우마이야 왕조 이슬람 제국과 무력 충돌을 벌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칼리파 아브드 알 말리크는 688년 평화를 위해 강화를 제의했고 공납금 지급액을 매주 1천 파운드의 금, 말, 그리고 노예로 늘리기로 합의했다.692년, 레온티오스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명령을 받들어 이슬람 세력을 공격했다. 그러나 아브드 알 말리크는 이들을 격파하고 북아프리카와 아나톨리아를 침략했다. 세바스토폴리스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한 레온티오스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비난을 받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러다가 3년 후인 695년에 석방되어 헬라스 테마의 스트라테고스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에게 반감을 품고 반역을 꾀했다.
2.2. 황제 즉위
레온티오스가 거병하자,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토지 정책에 반감을 품은 귀족들과 가혹한 세금에 반발한 농민들이 전폭적으로 호응했다. 그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수감되었던 사람들을 감옥에서 풀어주고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다. 청색당에 가담한 시민들은 레온티오스의 반란을 환영했고 하기아 소피아 성당으로 행진했다. 여기에 갈리니쿠스 총대주교도 레온티오스의 황제 즉위를 승인했다. 그 후 레온티오스는 그의 군대를 황궁으로 보내 유스티니아노스와 그의 부하들을 체포했다. 레온티오스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코와 혀를 자르고 케르손으로 추방했고 그의 부하들을 산채로 화형에 처했다. 레온티오스는 선황 콘스탄티노스 4세에 대한 존경심으로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는데, 이는 훗날 자신은 물론이고 제국의 큰 화근이 되었다.2.3. 최후
697년, 아브드 알 말리크가 이끄는 이슬람 군대가 북아프리카를 침공해 카르타고를 점령했다. 이듬해 레온티오스는 카르타고를 탈환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으나 실패했다. 카르타고 탈환에 실패한 함대는 크레타 섬으로 후퇴했는데, 거기서 아프시마로스라는 게르만 혈통의 해군 사령관이 병사들의 추대를 받고 티베리오스로 개명한 후 콘스탄티노플로 진군했다. 그의 군대는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한 후 레온티오스를 체포해 코와 혀를 잘라버리고 달마티아의 수도원으로 보냈다.이후 레온티오스는 수도원에서 유폐 생활을 보내다가 706년 2월 15일 황위에 복귀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끌려왔다. 그는 자신을 폐위시켰던 티베리오스와 함께 원형 경기장을 돌았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오물을 던졌다. 그 후 유스티니아노스는 그들의 목에 발길질을 한 번씩 가한 후 형장으로 보내 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