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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郞機砲
불랑기포에 대해 자세히 볼 수 있는 사진. 맨 위는 족철이 장착된 것, 두 번째는 족철을 분리해 족철을 거는 포이가 보이는 것, 세 번째는 탄약을 장전한 뒤 모포에 끼우는 자포다.
1. 개요
중세 후기~근세 시기에 사용된 후미장전식 대포. 기존의 대포와는 달리 후장식이라 빠르게 장전해서 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와 이를 끼워 발사하는 본체인 모포가 분리되어 가능한 일. 이런 구조 때문에 자모포(子母砲)라고도 부른다.불랑기포는 동양권에서 사용된 후미장전식 대포를 부를때 쓰는 이름이며 탄생 기원은 마카오의 포르투갈인을 통해 명나라로 유입된 근세 시대 유럽식 후미장전 대포를 명나라에서 자체적으로 복제 생산한 것이 시초이다.[1] 불랑기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서양인이나 그리스도교인을 부르던 통칭 파랑기(فرنگی / farangī, '프랑크족')에서 유래하였으며, 당시에는 포르투갈을 파랑국(波浪國) 또는 불랑국(佛浪國)으로 기록하였다.
영미권에서는 Breech-loading swivel gun으로 불리며 Culverin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동음이의어인 컬버린과 구분하기 위해 전자의 명칭이 더 자주 쓰인다.
2. 기원
14세기 오스만 술탄국에서는 탄알과 화약이 미리 하나로 내장된 구조의 분갑을 제작해서[2] 전투에서 쓰일 화기들 또한 이에 맞도록 개조했다. 이것이 지중해 지역에서 베르소(Verso)로 발전하고, 비슷한 시기에 부르고뉴 지방에서 개발된 후장식 대포에도 이런 개조가 진행되면서 완성된 형태의 불랑기포가 등장했다.※ 초기형 불랑기포의 모습. 대나무 같은 마디가 있는 이유는 철판을 둥글게 구부린 뒤 철테를 끼워 고정시키는 구식의 제작방법 때문이다. 아래쪽의 휘어있는 놈은 포신 중간마저도 조립식으로 만드는 구식일 것이다.
※ 개량된 불랑기포. 포신은 통째로 주조되어, 마디가 보이지 않는다.
※ 포수가 불 붙은 심지를 들고 불랑기포를 발사하려고 한다. 족철로 고정되어있는 자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유튜브나 구글에는 후장포 전반을 뜻하는 breech-loading cannon이나 선회포 전반을 말하는 swivel gun이라 검색해야 이런 후장식 포들이 제대로 나온다. 이런 초기 형태의 서양 대포들은 후장식과 전장식 모두 철판 여러 장을 겹쳐 묶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내구력이 낮은데다 발사 후 화약 찌꺼기가 잘 끼어 청소도 어렵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으로 인한 부식이 심해 결과적으로 발포 시 폭발사고가 잦았다. 때문에 정량보다 더 적은 화약을 넣고 발사하기 일쑤라 실전에서 보여주는 사거리는 매우 짧았다.
2.1. 중국
이런 함재포들은 빠르게 연사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서양 각국의 군함들에서 보조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517년 스페인의 배 네 척이 광동성 신회현 서초 만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다 명나라 관군에게 제압당하고 보유 물품을 압수당하면서 이때 배에 장착해 놓았던 후장포도 같이 유입되었고, 빠른 연사력과 기존의 명나라 포들보다 더 긴 사정거리, 포이를 사용한 손쉬운 각도조절능력 등을 본 명나라는 1522년 복제 생산에 성공했다. 나중에는 다양한 크기의 불랑기포를 대량으로 생산하였고, 심지어 말 위에서 쏠 수 있는 마상용도 있었을 정도로 주력화기로 사용한다.불랑기 도입 이후 만들어진 중국의 병서 <병록>(兵錄)에 실린 중국의 후장식 화승총인 자모총. 구조가 불랑기포와 동일하며, 총도(銃刀)라는 이름의 총검도 보인다.[3]다만 이런 신무기들은 대부분 당시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다총신 조총이 그나마 조금 쓰였다는 걸 제외하면 주력 병기로 채택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저 이런 것도 만들어졌었다 정도?[4]
2.2. 한국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불랑기포 유물. 출처는 위키백과
한국에 도입된 것으로 현재로서 확인되는 것은 명종 18년(1563년)으로, 정식 유적 발굴조사로 발견된 것은 2009년 서울에서 발굴된 군기시 유적에서 나온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1982년 발견된 것이 최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불랑기포가 많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에서 명 남방군이 주력 화기로 불랑기포를 쓰는 것을 보면서부터로, 이 때 강한 인상을 받은 조선은 불랑기포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조선시대 한국의 불랑기포의 스케치. 가장 작은 5호 불랑기이다.출처 조선군은 소형인 4, 5호 불랑기를 주력으로 운용했다. 가장 큰 1호 불랑기는 남한산성 같은 수도방위 핵심요새에도 배치되지 않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렇게 많이 사용했음에도 5호 불랑기 유물 원본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이강칠 선생의 도록 <한국의 화포>(현재는 절판)에 따르면 신미양요 때 미군이 노획해서 현재 미 해사박물관에 보관중인 유물이 있다고 한다.#
위 유물을 근간으로 만들어 수원화성에 전시중인 모형 불랑기포.#
전쟁기념관에 전시중인 불랑기 복원품.# 포차에 올려진 모형은 조선 후기에 신헌이 개발한# 마반차라는 360도 회전 가능한 포차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불랑기를 크기에 따라 1,2,3,4,5호로 구분하였으며, 1호가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2호, 3호의 순서대로 작아진다. 다만 중국의 병서 <기효신서>에 적힌 수치보다 현존하는 한국의 불랑기가 약간 더 큰편. 또한 한국에서는 불랑기포로 조란환을 쏘기도 했다. <기효신서> 기준으로 대형 불랑기인 1호는 9척(9자, 약 2.73미터)로, 현존 홍이포 유물이 2미터 남짓인 것을 고려하면 덩치면에선 크게 꿀리지는 않는다.
임진왜란 때도 천자총통, 지자총통보다 현자총통, 별황자총통같은 소형 총통을 애용했던 조선에서는 기존의 천지현황 브라더스를 완전히 대체하진 않았지만 단기간에 주력 화포로 등극했다. 선조 시기 명군에 의해 도입된 호준포와 경쟁하다 광해군과 인조 시기를 거치며 청의 기병이 주적으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최종승자가 되었다. 총통에 밀린 2인자 격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기존 총통류가 한참 밀렸다. 병자호란 이후 신미양요 때까지 조선 후기 주력 화포는 불랑기였다. 1810년(순조 10년) 남한산성 주둔군이 보유한 화포 수량을 보면 총 375문 중에 300문(2호 13문, 4호 102문, 5호 185문)이 불랑기였으며 개중에서도 소형인 4~5호가 주력이었다.
근대식 포가는 조선 말엽 개항 직전에나 도입되었고[5], 체계적인 탄도학과 포병 이론이 적어도 현재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은 장전 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며 화약 소모량이 많은 대형 총통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사격 절차가 간단하며 이동이 용이한 소형 화포류를 선호했다. 특히 화약 소모량이 문제였는데, 조선은 동시대 타국에 비해 기술적,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화약 제조량이 대단히 적었다.[6] 그래서 화약을 많이 소모하는 화기를 대량으로 배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대형에 훨씬 강력한 홍이포는 영조 때나 겨우 제작법을 들여왔을 뿐 너무 비싸서 대량양산에 부적합했다. 그리고 홍이포 같은 대형 화포는 조선군의 전략에 있어서도 부적절한 점이 많았다.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대형 화포의 막강한 화력이 필수 요건이지만, 수성하는 입장에서는 대물 사격보다는 인명 살상의 비중이 좀 더 높기 때문에, 대형 화포의 가치가 공성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조선군은 후기 기준으로는 항상 수세적인 입장에서 수성전을 치르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었지 공성전을 비롯한 공세적인 전략을 상정한 적이 없었다.[7] 청의 재빠른 기병대를 주적으로 상정한 조선에게는 가벼워서 운반이 용이하고, 저렴해서 대량생산 할 수 있고, 사격 절차가 간소하며 화약 소모량도 적어 직사로 산탄을 다량 퍼부을 수 있는 불랑기포가 최적이었다.
신미양요 당시에 강화도 해역 포대에 배치된 화포들도 대부분 불랑기였는데 미군 함대에 그토록 많은 포탄을 퍼붓고도 피해를 주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분명 포대 배치는 해협에 진입하는 함정을 일방적으로 두들길 수 있을 정도로 오밀조밀했으나 불랑기의 위력이 너무 약했다.
조선군은 불랑기포의 모포 부분을 나무로 만들어서 경량화한 화포인 목모포를 운용하기도 했다. 주로 강화도의 돈대나 북한산성에 배치했다.
2.3. 일본
일본에 전래된 최초의 대포라고도 불리며, 일본에서는 이시비야(石火矢)라고도 부른다.[8]포르투갈인이 오토모 소린에게 1576년 기증한 유물이 남아있다. 메이지 시대 폐번치현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이전 안치되어 있으며, 원래는 오토모 소린의 거성이었던 우스키 성(臼杵城)에 설치되어 있었다.
오토모 소린이 시마즈 군세를 막아낸 우스키 성 전투 계기로 '쿠니쿠즈시(国崩し, 나라를 무너뜨리는 포)'[9]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렀다. 방어측에서 쓴 이후 이런 별명이 붙은 걸 보면 화력보다는 소리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걸로 추정된다. 선교사 프로이스의 기록 등을 보자면, 오토모 소린은 아예 불랑기포를 자체생산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외의 지역에서는 정작 평가는 좋지 못했다. 오토모 소린이나 모리(또는 모리의 지휘를 받는 무라카미 수군), 마쓰라 가문 같은 일본의 극서지방 영주들이 종종 사용하긴[10] 했지만 포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일본에서는 많이 쓰이지도 않았고, 평가 역시 '얘게게? 겨우 큼지막한 구슬 던져서 성문이나 좀 부수는 거?'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당시 일본에도 같은 역할로 쓸 투석기나 오오즈츠(大筒)는 있었고 생산/구입가격이나 안정성도 이쪽이 훨씬 유리했다. 성문이 하나 파괴당했다고 일본의 성이 바로 함락되는 것도 아니었던지라[11] 심지어 "조총 10개가 불랑기 하나보다 낫네요. 이걸 어따씀?"하는 악평까지 있었을 정도.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불랑기포 유물도 거의 없다. 불랑기포가 그나마 활약한 우스키성 전투에서 깨진 시마즈군도 그 이후에는 불랑기포에 전혀 관심을 안가졌으니 대충 대우를 알만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 전투를 위해 불랑기포 12문을 서양으로부터 구매한 기록이 있다. 그외에도 컬버린 4문, 세이커 1문을 구매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전투를 묘사한 기록을 보면 전투전 대포 생산을 주문의뢰하고 전투시에는 대포 300문을 일제히 천수로 발사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대포는 우리가 아는 그런 대포가 아니라 대부분 오오즈츠(大筒)[12]를 말하며 이건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대포라기보다는 대구경 조총에 가깝고 다른 나라에서도 핸드 캐논의 일종으로 분류한다.[13] 물론 위에서 언급한 불랑기포, 컬버린, 세이커도 같이 발사되기는 했다. 또한 대포의 일제발사를 통해 성이 함락된 것도 아니고 당시 수비군 총대장이었던 요도도노가 포소리에 놀라 강화협상을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14] 한마디로, 공갈포로 잘 쓰였다.
어쨌든 이후 불랑기포는 일본에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되고 오토모 소린이 보유하고 있던 자체 제작 기술도 실전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까지 중국/조선/서양 같은 대포보다 오오즈츠(大筒)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좀 더 크고 강하게 변용되는 방식으로 주력무기로 쓰였고 불랑기포는 지극히 적은 흔적만을 남기게 된다. 예를 들어 에도 시대 말기 이치노미야(오늘날의 치바현)에서 제작된 대포를 보면 오오즈츠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2.4. 기타 지역
이 외에 동남아 지역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뭐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한국, 중국, 일본까지 도달한 것이니 당연한 결과다.(사실 정화의 원정 당시에도 자모포 교체식 후장포를 쓴다는 기록이 있을만큼 위력을 좀 낮춰서 연사력을 중시한 수렴진화라 볼수도 있다) 이쪽에서는 란타카(LANTAKA)라고 불리는데, 란타카는 서양의 선회포(swivel gun)를 동남아에서 도입 및 개량[15]한 것으로 위에 나왔듯이 선회포 중에 후장식이 있다 보니 란타카 중에도 후장식이 존재한다.용두가 새겨진 란타카. 출처
3. 사용법
불랑기포의 발사/재장전 동영상. 두번째 영상은 신기비결의 내용을 바탕으로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재현한 영상이다.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1. 대포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2. 미리 준비된 자포 여러 개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고 심지 등 불을 붙일 도구를 준비한다. 3. 모포의 장전 공간에 자포를 끼운다. 4. 빗장쇠(족철)를 걸어 자포를 고정한다. 5. 2의 도구로 자포에 난 구멍을 통해 화약에 불을 붙여 발사한다. 6. 빗장쇠를 벗겨내 사용한 자포를 빼낸다. 7. 싸움이 끝나거나 2에서 장전해둔 자포가 바닥날때까지 3~6을 반복한다. |
4. 성능
사정거리는 자세하지는 않지만 보통 500미터 남짓~ 1킬로미터 정도(대형 한정)라고 한다.4.1. 장점
- 자포가 분리되어 있어 빠른 연사가 가능. 조선이 기존에 사용했던 천지현황 총통류에 비해 훨씬 간소하고 빠르다. 기본적으로 후장식 장전이라 가능한 것이며, 하나의 모포에 다수의 자포를 배치할 수 있어서 미리 자포에 장전을 해놓았다가 발사하자마자 자포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발사속도를 높일 수 있고, 사격하는 도중에도 보조 인원들이 자포에 재장전을 해서 지속적인 속사 능력도 좋다.
- 가늠자가 붙어 있어 조준사격이 쉽다. 현대의 화기처럼 정밀한 물건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좋았고, 후장식이라 대포가 장전을 위해 이동하지 않으므로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 포이가 있어, 포좌에 설치 후 각도 조절이 쉽다. 구형 대포라도 항상 수평사격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4.2. 단점
- 자포와 모포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접합부가 약하다 보니 쉽게 폭발한다. 실제로 이런 사고에 대한 기록이 종종 발견된다. 이는 전장식 대포에 비해 명백한 단점으로 화약이 조금 더 들어갔다는 사소한 이유로 발사 순간 포가 폭발하면서 황천 보기 딱 좋기 때문에 정량보다 화약을 적게 넣게 되므로 안그래도 위력이 낮은 대포가 더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 자포 고정장치가 달랑 빗장쇠 하나다 보니 접합부로 가스가 새어 결과적으로 동급의 전장포보다 위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가스가 새면 주변의 포수와 장전수들을 잘 구워줄 뿐 아니라 화약같은 곳에 인화하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래서 가스 새는 것을 막으려고 별별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구판 역사스페셜 실험에서는 아예 모포와 자포의 틈에 납조각들을 하나하나 박는 고증을 보여 주었었다.
나중에 자포 어떻게 빼려고?
불랑기포의 고정장치를 위에서 본 모습. 이런 걸로 대포 발사가 가능하다는 게 어찌 보면 신기하다.
- 대포 자체가 노후화되기 쉽고, 일단 노후화하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전장식 대포야 포미 자체가 통짜로 연결된 쇳덩어리니 충격도 상대적으로 잘 견디고, 노후화하더라도 심지를 넣는 구멍이 갈라지는 등 증상을 판별할 수 있으나, 불랑기포는 자포와 모포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둘중 하나만 노후화되어도 터지기 딱 좋고, 외부에서 판별하기 힘든 내부 손상이 조금만 진행되어도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발사하면 터지기 딱 좋다.
때문에 불랑기포의 성능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고, 때문에 불랑기포를 애용한 중국에서도 기존 화포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5. 대중문화에서
조선 후기 주력 화포였음에도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진다. 심지어 불량기포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묘사하더라도 조선의 화포보다는 명, 청, 일본의 화포로 묘사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임란 당시에는 조명 연합 함대와 일본 함대 모두 불랑기포를 활용했음에도 매체에서는 불랑기포를 철저하게 명과 일본의 제식 화포로만 묘사한다.임진록2, 조선의 반격에서 명의 기본 화포로 등장. 그리고 불량기포로 나온다. 역사에서의 설움을 극복하려는 듯 조선의 천자총통보다 공격력이 더 높다. 하지만 360도 회전포대를 갖춘 천자포와는 달리 고정식이라 적이 움직이면 포차 전체를 돌리느라 선회력이 많이 떨어진다.[16] 더욱이 패치를 거치면서 천자포의 체력이 불랑기포와 비슷한 수준이던 게 불랑기포보다 많아졌다. 거기다 명나라 유저들은 발석거를 주력으로 쓰지 불랑기포는 주력으로 잘 안쓴다.
조선의 반격에서는 신 유닛인 뇌격비조가 등에 이 불랑기포를 매달고 다니며 적을 폭격한다.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명나라의 영웅 이령이 불랑기포로 전직한다. 근데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물건이다. 생긴 걸로만 보면 오히려 서양의 오르간 건에 가깝다. 6문의 불랑기포가 탑재된 차량에 탑승하는데, 앙천대소 모드가 되면 그 자리에 고정되어 포탄 3발을 발사한다. 하지만 성능이 너무 최악이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한 때 지어진 별칭이 불량기포. 물론 거상의 원본이 임진록 2였으며, 그쪽에서 오기하다 거상에서 제대로 이름 맞췄건만...
토탈 워: 쇼군2에 등장하는 메쿠라부네가 실제 역사적으로는 이 불랑기포를 장착했는데…. 그놈의 대나무 지붕 때문에 게임에서는 불랑기가 맞는지 아닌지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쇼군2: 토탈 워의 육상전에서 등장하는 유럽식 대포는 불랑기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는 조립식 포(Built-up Gun)다. 둘 다 브리치-로딩 캐넌(breech-loading cannon)이긴 한데, 구분하자면 조립식 포의 경우 포신 중간중간도 불랑기포의 모포-자포 결합부 비슷하게 쇠 원기둥을 끼워맞춰 조립한 뒤 쏘는 물건이다. 때문에 더 많은 양의 가스가 새어나가고, 따라서 성능도 더 떨어젔다. 더군다나 불랑기포는 자포와 모포의 결합/분리가 쉬워 빠른 연사라도 가능했지만, 조립식 포는 각 연결부위를 고정시키는 잠금장치가 복잡하여 장전속도도 느렸다. 실제로 하나의 통짜 포신으로 된 전장포 제작기술이 발달하자 이런 조립포나 초보적인 후장식 포들은 빠르게 사라졌으며, 근대 초기까지 후장포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해 전장포에 밀려난 상태였다. 근데 쇼군2에서 조립식 포의 성능은 끝내주게 좋게 나온다. 미디블2 토탈 워에서 최고 수준의 포인 바실리스크나 대형 사석포가 450정도인데, 쇼군2의 유럽식 대포는 사거리가 500.[17]
아래 그림이 문제의 조립식 포. 출처
한극사극에서는 징비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명나라군의 화포로서 활약을 하고 있다.[18]
화정에서도 사르후 전투씬에서 조선군의 화포로 등장한다.
영화 명량에서 백병전 장면과 이순신의 배와 일본군 안택선이 부딪히는 장면에도 등장한다.
천수의 사쿠나히메라는 게임에서 적으로 등장하는 야생동물들이 뒤틀린 오니들 중 토끼 오니들이 화포 성곽에서 맵에 놓여진 화포를 사용한다. 작중에서 다른 언급이나 표시도 없고, 언뜻 보면 그냥 대포로 인식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장전 모션을 살펴보면 자포를 빼고 끼우는 과정이 고스란히 재현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 중 위력은 대단하지만, 토끼 오니들의 기본 무기인 투척 폭탄과 마찬가지로 피아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적절히 엄폐해 있으면 알아서 적들을 다 녹여준다(…). 대포 자체는 파괴할 수 없고 대신 토끼 오니를 제거해야 무력화된다.
명말을 다루는 영화 대명겁(大明劫) 초반 전투씬에도 명군과 이자성군의 전투 장면에서 등장한다. 다만 영화 자체는 당시 활동한 의사 우위커(吳又可)의 생애를 배경으로 하기에 전쟁씬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다.[19] 하지만 이 영화도 2020년 전염병 이후 재조명되었다.
임진왜란 1592에서 명나라군이 사용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자포를 교환하며 연속으로 방포하는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왜군이 어떻게든 거북선을 때려잡고자 마련한 철갑선에 달려있는 채로 나온다. 거북선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듯 보였지만 결국 공략엔 실패하고 침몰하며 같이 사라진다.
[1] 불랑기포보다 좀 나중에 도입된 홍이포의 도입 과정도 마찬가지로 명나라 시절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입수한 근세 유럽식 대포의 일종인 컬버린을 사실상 복제 생산한 물건이다.[2] 영어로는 chamber라고 표기. 현대 개인화기의 약실을 일컫는 말과 똑같은 영단어를 쓴다.[3] 명나라는 유럽뿐만 아니라 오스만, 심지어 동남아의 유럽인들이 만든 화기 또한 도입하였고 이들을 개량하였는데 대표적인 결과물이 자모총과 수석식 총인 자생화총이다.[4] 명나라가 더 존속했다면 모르겠지만 명나라는 얼마안가 멸망하고 새로 들어선 청나라는 화기의 개량과 발전에 관심이 없었다.[5]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임진왜란 때까지는 포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실제로 왜란 직후 쓰여진 신기비결에서는 포가 없이 화포를 흙바닥에 고정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다가 호란을 거치고, 벨테브레나 하멜 등 네덜란드 표류자들의 물품을 통해 포가라는 개념을 학습한 조선은 이후 '동차' 라는 자체적인 포가를 개발하여 사용한다. 동차의 구체적인 모습은 19세기 기록에 처음 등장하지만, 개념 자체는 17세기 기록에서 이미 등장한다. 다만 동차는 근대식 포가에 비하면 반동을 흡수하거나 각도를 조절하는 데에 한계가 명확한 물건이었다.[6] 조선은 소위 '염초밭' 이라고 하는, 땅속에 오물을 묻은 뒤 삭혀서 염초를 생산하는 기술을 타국에 비해 꽤 늦은 시점부터 알아냈다. 조선이 처음 염초밭 만드는 법을 알게 된 시점은 신전자취염초방언해가 쓰여진 1635년으로, 독일에서 16세기 초에 처음 염초밭을 개발한 시기에 비하면 100여 년 가량 늦었다. 게다가 인도, 베트남, 중국과는 달리 자연 염초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화약 제조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3국은 자연 염초 광산 + 염초밭으로 굉장히 많은 염초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7] 이것 때문에 나중에 조선군은 홍경래의 난 당시, 정주성에 틀어박힌 반란군을 상대할 때 성벽에 충분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대형 화포가 부족하여 곤욕을 치른다.[8] 다만, 이시비야=불랑기포는 아니다. 에도 시대 들어서면서 대구경(8센치) 대포는 종류 불문하고 이시비야라고 부르기 때문. 에도 시대에도 대구경 대포를 몇 개 만들어 이시비야라 부른 기록은 있기는 한데 이건 불랑기포라 부르기 힘든 물건이다. 조선에서 자체 제작한 칼이든 외국(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서양 군함에 승선하고 있던 해군들)에서 얻은 칼이든 모두 뭉뚱그려서 '환도'라고 부른 것과 비슷하다.[9] 모리원취전 한글패치에서는 '국가붕괴' 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였다.[10] 그외에도 프로이스 기록에 따르면, 오다 노부나가가 철갑선을 만들때 거기에 포 3문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있다. 서양인의 기록이니 여기서의 포는 불랑기포나 혹은 유사한 서양식 대포로 추정된다.[11] 성벽 한번 무너지면 백병전이 되어버려 성벽의 강화와 방어에 모든 역량을 쏟은 다른 동아시아의 성과 달리 일본성은 복수의 성벽구조로 구성되어 있어 성벽이 무너져도 후방의 성벽으로 후퇴하는 식으로 병력을 운용했다. 실제로 정유재란 중 조명연합군은 다수의 포를 가지고도 왜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특히 한국의 산은 봉우리가 여러개 있는 구릉지대가 많았기 때문에 당시 기록을 보면 '왜적이 성을 버리고 다른 성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나와서 반격한다'는 식의 기록이 많다.[12] 일본식으로는 대포로 분류된다.[13] 물론 남아있는 유물을 보자면 수레에 실어서 중국/조선식 대포처럼 운용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게 옵션이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14] 일설에 의하면 포 한발이 오사카성 천수각에 맞아 샤치호코가 떨어졌고 요도도노의 시녀가 그것에 깔려 죽은걸 봤다는 설도 있다 이 이야기는 NHK 대하사극드라마,사나다마루(드라마)에 나온다.[15] 영문 위키백과 란타카항목에 따르면 Lela Cannon/Meriam Lela등으로 불리는 이중 포신형이나 카라코스(cartacoas)라 불리는 대형화한 것 등이 존재하며, 큰 것은 1천 파운드(약 453킬로그램)이 넘는다고 한다.[16] 즉 게임 상에서 불랑기포의 모습과 천자총통의 모습은 서로 뒤바뀐 상태인 셈.[17] 다만 미디블2와 쇼군2는 발매 시기의 격차도 있고 시스템 차이도 커서 게임상 수치만으로 비교할 문제는 아니긴 하다.[18] 10년 전에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명나라군의 화포가 설정상 불랑기포인 것으로 보이나, 소품은 조선군의 천자총통 소품을 그대로 돌려막기한 것으로 보인다.[19] 포스터는 무슨 전쟁영화인 것처럼 만들어서 여기 넘어간 사람들이 많았다. 근데 중국 내 개봉이전 공개한 스틸컷도 상당수가 전쟁씬 관련이었던 게 함정. 그리고 전쟁영화가 아님에도 명군 고증이 쓸데없이 고퀄리티다. 하지만 2020년 이 영화는 재조명되었고 영화의 주인공으로 실존 인물인 우위커는 우한 등지에서 소리없이 사라져 간 의료진들의 메타포가 되어 칭송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