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8-22 17:35:20

벤체슬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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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체: 대관식을 받은 적이 없는 로마왕이지만 사실상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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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ceslaus, Wenzel, Václav
가문 룩셈부르크 가문
생몰년도 1361년 2월 26일 ~ 1419년 8월 16일
출생지 독일 뉘른베르크
사망지 보헤미아 프라하
재위
기간
독일 국왕, 벤첼 1376년 6월 10일 ~ 1400년 8월 20일
보헤미아 왕국 국왕, 바츨라프 4세 1378년 11월 29일 ~ 1419년 8월 16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벤첼 1373년 10월 2일 ~ 1378년 11월 29일
룩셈부르크 공작, 벤첼 2세 1383년 12월 7일 ~ 1388년

1. 개관2. 왕위 등극3. 계속되는 대립

1. 개관

독일어: Wenzel IV. (벤첼 4세)
체코어: Václav IV (바츨라프 4세)
라틴어: Venceslaus IV (벤체슬라우스 4세)

벤체슬라스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4세와 그의 셋째 부인 안나 폰 슈바이드니츠의 아들이다. 그는 제국 도시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성 제발두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프라하 대주교 파르두비체의 아르노스트와 얀 아코에게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카를 4세는 1363년 벤체슬라스가 2살 때에 보헤미아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고[1] 1373년에 선제후령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을 하사했다. 1376년에 카를 4세가 벤체슬라스의 로마왕 선출을 확고히 했을 때 7표 중에서 2표를 벤체슬라스와 카를 4세가 가지고 있었다.

아들의 승계권을 안정시킨 카를 4세는 제국 도시들에 주었던 특전을 취소하고 다른 귀족들에게 특전을 주었다. 그러나 도시들은 약하지 않았으며 강한 군대를 길렀다. 더욱이 카를 4세는 큰 규모로 협조하고 시도할 수 있는 연맹이 가능하도록 도시들을 조직했다. 1376년 7월, 벤체슬라스가 왕으로 선출된 2일 뒤에 14개의 슈바벤 도시들이 새롭게 선출된 왕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슈바벤 동맹을 결성하고 뷔르템베르크백작 에버하르트 2세를 공격했다. 도시 동맹은 1389년 제국 내의 자주적인 주들로 활동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새로운 멤버를 모집했다.

2. 왕위 등극

1378년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벤체슬라스는 보헤미아신성 로마 제국의 내정을 승계했다. 몬차의 대성당에서 그는 롬바르디아 철관과 함께 이탈리아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보통 7명의 선제후가 독일 왕을 선출하도록 되어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보헤미아의 왕이다. 벤체슬라스는 보헤미아 왕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선제후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387년 바이에른의 프리드리히 공작과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동맹을 맺은 슈바벤 리그 간에 반목이 일어났다. 격리되어 약해졌고 상호간의 질시와 내부 분열을 거듭한 도시들은 1368년 8월 그라페나우 근처에서 에버하르트 2세에게 패배했다. 그들은 각자 흩어졌고 충격에 빠졌다. 벤체슬라스가 1389년 체브에서 자치권을 가진 도시들 간의 동맹을 금지한다고 선언할 때 그들 대부분은 조용히 묵인했다. 이 평화령은 수십년간 약간의 안정을 가져왔으나 도시들은 제국이 가지는 권위의 기반을 거부했다.

3. 계속되는 대립

긴 치세를 보냈으나 벤체슬라스의 지배력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로젠베르크 가문이 이끄는 보헤미아 귀족들과 다시 대립하게 되었다. 이 두 번의 상황에서 그는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에 의해 감금되기도 했다. 벤체슬라스의 가장 큰 책임은 그의 가족들이 입증했다. 카를 4세가 재산을 아들들과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복 형제인 지기스문트가 브란덴부르크를 상속받고 삼촌 벤첼 1세가 룩셈부르크 백작이 되었으며 모라비아는 사촌들이 나주어 가졌다. 그러나 벤체슬라스는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다. 1386년 지기스문트헝가리 왕이 되어 동부의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

또 그는 프라하 대주교와 보헤미아 귀족들의 심각한 반대에 직면했다. 클라드라우의 수도원장 임명식을 둘러싼 대립에서 왕실 관료들에 의해 대주교의 총대리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하자 1393년에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1394년에는 그의 사촌인 모라비아의 요프스트가 섭정을 자칭했다. 헝가리의 지기스문트는 1396년에 휴전을 주선했으며, 이것 때문에 그가 벤체슬라스의 후계자로 인정받게 된다.

서방교회 대분열에서 벤체슬라스는 로마 교황 우르바노 6세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보헤미아의 왕으로서 종교 개혁가 얀 후스를 보호하려고 했다. 당시 얀 후스의 추종자들은 그들을 이단으로 보고 진압하는 가톨릭에 저항하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많은 독일인들이 프라하 대학을 떠났고 라이프치히 대학을 새로 세웠다. 후스는 1415년 콘스탄츠에서 처형당했고 이것 때문에 후스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추가바람

[1] 대관식은 1363년에 열렸지만 벤체슬라스가 실질적으로 보헤미아 왕의 권한을 행사한 것은 1378년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