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16:51:43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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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프로이센 제4대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iedrich Wilhelm II
파일:Friedrich_Wilhelm_II.jpg
출생 1744년 9월 25일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베를린 성
사망 1797년 11월 16일 (향년 53세)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 대리석 궁전
재위기간 프로이센 국왕브란덴부르크 선제후
1786년 8월 17일 ~ 1797년 11월 16일
(11년 2개월 4주 2일, 4,109일)
서명
파일: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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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배우자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공녀 (1765년 결혼 / 1769년 이혼)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케 루이제 (1769년 결혼)
자녀 프리데리케 샤를로테,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루트비히 카를, 빌헬미네, 아우구스타, 하인리히, 빌헬름
아버지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1]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루이제 여공작[2]
형제자매 빌헬미네, 하인리히, 에밀
가문 호엔촐레른 가문
종교 칼뱅파 }}}}}}}}}
1. 개요2. 생애3. 평가4. 여담5.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프로이센 왕국의 제4대 국왕이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프리드리히 대왕의 조카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2. 생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오남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백부인 프리드리히 대왕이 자식이 없고 아버지가 일찍 죽은 영향으로 14살 때부터 추정 상속자로 취급받았다. 위에 백부 4명이 자녀 없이 사망했기에 오남의 장남인데도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장손이였다. 친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루이제가 프리드리히 대왕의 왕비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베베른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와 친자매[3]인데다가, 앞서 말했다시피 프리드리히 대왕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던 이모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에게 예쁨받았고(?) 큰아버지와 삼촌들이 전쟁에서 구르며 영토를 확장한 덕을 톡톡히 봤다.

1786년 왕위에 오를 때는 별 존재감이 없었는데 선왕 프리드리히 대왕이 워낙에 존재감이 높은지라 "우리들의 늙은 프리츠가 죽으니 듣보잡 뚱보가 왕이 됐네!?" 정도의 반응... 인기를 올리기 위해 재임초 프리드리히 대왕이 말년 인기 하락 주 원인이던 국가 독점 담배 전매를 폐지했다. 대신 커피 같은 다른 사치품에서 세금을 올렸다.

가정적으로는 상당히 막장이었다. 1765년에 결혼한 첫번째 아내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4]와는 결혼 초기부터 불화하며 따로 내연녀를 두는 등의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가 음악가와 바람을 피워 임신하고 야반도주할 계획을 세웠다가 들통나자 강제로 구금시키고 1769년에 이혼했다.[5] 이혼한지 3개월만에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레데리케 루이제와 두 번째로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결혼 생활을 계속 하면서 내연녀에게서 다섯의 자녀를 따로 얻었다. 아예 쓸모 없는 짓은 아니어서 사생아 중의 한 명은 손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시절 총리를 지낸 브란덴부르크 백작이 된다. 그리고 말년에 내연녀 하나를 또 얻었다. 그렇게 해서 사생아까지 합쳐서 슬하에 16자녀를 얻었고 51명의 손자녀를 두었다.

재위 중에는 행운이 따랐다. 호엔촐레른 가문 방계들이 다스리던 남독일의 안스바흐바이로이트에서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자 진압할 능력이 없는 방계 혈족들이 프로이센에 대신 좀 다스려 달라고 영토를 고대로 들어 바쳤다. 그러나 경솔하게 오스트리아에 낚여서 혁명 프랑스를 쳤다가 이건 아닌듯 싶어서 중간에 도로 빠졌는데[6] 프랑스에서는 혁명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프랑스와 강화하는 나라라 하여 매우 반가워했고, 1795년 바젤 평화조약으로 라인강 서쪽의 코딱지 만한 영토를 프랑스에 넘기는 대신 프랑스로부터 영국동군연합이던 하노버 선제후국의 점유를 승인받았다. 당연히 다른 유럽 국가들한텐 얍삽하고 비열한 행동으로 욕은 많이 먹었다. 그리고 동쪽 국경에서는 1792년, 1795년 제2차, 제3차 폴란드 분할에 참가하여 영토는 재위 초기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3. 평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재위기간의 유럽은 계몽주의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맞이했는데, 전제군주제를 지지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프로이센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개혁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현대적인 토지법 발효, 신하들의 종교의 자유 보장, 제2차, 제3차 폴란드 분할에 참여해 프로이센의 영토를 많이 늘린 것 정도의 업적이 있으나 그가 주도적으로 한 것은 없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암군. 백부 프리드리히 대왕의 후광 덕분에 본인의 무능함이 가려졌으며, 뚱보 잉간(der dicke Lüderjahn)이라는 멸칭까지 붙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이 호엔촐레른 가문의 사실상 중시조인데 현재 프로이센 왕실의 구성원들은 모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자손들이다.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슬하 7남 7녀를 두었으나 아들 7명 중 5명이 요절하거나 자녀 없이 사망했고 아들을 낳은 아들은 오남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와 칠남인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왕자 뿐이였다.

칠남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왕자는 아들 5명은 모두 자녀 없이 사망해서 가계가 단절되었고, 오남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의 3남 1녀 중 장남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본인을 제외한 차남과 삼남과 요절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친손자 중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은 사람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뿐이였다.

4. 여담

5. 가족관계

파일:Elisabeth Christine of Brunswick-Lüneburg.jpg
첫번째 아내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공녀
파일:Frederica Louisa of Hesse-Darmstadt.jpg
두번째 아내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케 루이제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공녀(Elisabeth Christine von Braunschweig-Wolfenbüttel)[7]
1녀 요크와 올버니 공작부인 프리데리카 샬럿 공주
(Princess Frederica Charlotte, Duchess of York and Albany)
1767년 5월 7일 1820년 8월 6일 요크와 올버니 공작 프레더릭 왕자[8]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케 루이제(Friederike Luise von Hessen-Darmstadt)[9]
1남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iedrich Wilhelm III)
1770년 8월 3일 1840년 6월 7일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5남 4녀[10]
2녀 크리스티네 공주
(Princess Christine)
1772년 1773년
2남 루트비히 카를 왕자
(Prince Louis Charles)
1773년 11월 5일 1796년 12월 28일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프리데리케
슬하 2남 1녀
3녀 네덜란드의 왕비 빌헬미나
(Wilhelmine, Queen of the Netherlands)
1774년 11월 18일 1837년 10월 12일 빌럼 1세
슬하 2남 2녀[11]
4녀 헤센의 선제후비 아우구스테
(Augusta, Electress of Hesse)
1780년 5월 1일 1841년 2월 19일 헤센의 선제후 빌헬름 2세
슬하 3남 3녀
3남 하인리히 왕자
(Prince Henry)
1781년 12월 30일 1846년 7월 12일
4남 빌헬름 왕자
(Prince Wilhelm)
1783년 7월 3일 1851년 9월 28일 헤센-홈부르크의 마리아 안나
슬하 2남 2녀[12]


[1]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성인까지 생존한 아들 중 차남.[2] 프리드리히 대왕의 왕비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여동생이자 마리아 테레지아, 율리아네 마리, 표트르 2세의 이종사촌.[3] 외삼촌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카를 1세가 고모 필리피네 샤를로테와 결혼하면서 겹사돈을 연이어 맺었다. 참고로 아이러니하게도 루이제와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둘 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주적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종사촌이었다.[4] 외삼촌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카를 1세와 고모 필리피네 샤를로테의 딸로 고종사촌 겸 외사촌이다. 아무튼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와의 사이에서 딸 프리데리케 샤를로테를 낳았고, 프리데리케는 조지 3세의 차남 요크와 올버니 공작 프레드릭과 결혼했지만 자녀는 없었다.[5]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내연남이었던 음악가 피에트로는 야반도주 계획이 실패하면서 체포되어 참수당했고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와의 불륜을 도와준 그녀의 오빠 빌헬름 아돌프 역시 프로이센군 장교의 지위를 내려놓았고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약물로 뱃속의 아이를 지운 뒤 이혼당했다.[6] 여담으로 이때 친정을 나간 적이 있는데 내연녀들도 모두 데리고 갔다가 부리나케 도망갔다.[7] 1746년 11월 8일 ~ 1840년 2월 18일[8] 조지 3세의 차남이다.[9] 1751년 10월 16일 ~ 1805년 2월 25일[10]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빌헬름 1세, 러시아의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왕자 등.[11] 빌럼 2세 등.[12] 헤센의 카를 공자비 엘리자베트, 바이에른의 왕비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