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2 20:22:20

표트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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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프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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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제13대 제14대
알렉산드르 2세 알렉산드르 3세 니콜라이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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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d30><colcolor=#000>
러시아 제국 제3대 황제
표트르 2세
Пётр II
파일:1200px-Peter_II_by_anonymous_(1800s,_Hermitage).jpg
출생 1715년 10월 23일
루스 차르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730년 1월 29일 (향년 14세)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묘소 대천사 성당
재위기간 전러시아의 황제
1727년 5월 18일 ~ 1730년 1월 29일
서명
파일:표트르 2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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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d30><colcolor=#000> 가문 로마노프 가문
이름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
(Пётр Алексе́евич Рома́нов)[1]
아버지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샤를로테 크리스티네
형제자매 나탈리야
배우자 없음
자녀 없음
종교 러시아 정교회 }}}}}}}}}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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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제국황제.

2. 생애

표트르 1세의 하나뿐인 친손자이자 장손이다. 즉, 같은 "표트르"라는 왕호를 쓴 표트르 3세는 표트르 2세의 배다른 고종 사촌 동생이 된다. 정작 그가 2살이 되기도 전에 사망했지만. 아무리 표트르 1세가 문제가 많은 아버지였다 한들, 러시아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국부(國父)이자 대제로서 이룩한 모든 업적과 정책을 전면 백지화시키려 한 무분별하고 무모한 행보[2]와 뒷말이 많은 죽음으로 요절한 표트르 2세와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를 창시한 업적만 있을 뿐 존재 자체가 암군인 표트르 3세 때문에 표트르라는 이름은 더는 황제와 황위 계승자에게서 절대 쓰이지 않게 되었다.

표트르 1세의 정책에 반대해서 죽은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의 아들로서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표트르 2세는 평생토록 할아버지를 원망하고 증오했다. 거기다 표트르 1세는 표트르 2세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핑계로 자신의 후처이자 애첩인 예카테리나 1세를 먼저 즉위시키고 표트르 2세를 그 후순위로 즉위하게끔 했는데 이 또한 표트르 2세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는 의붓할머니인 예카테리나 1세의 뒤를 이어 12세의 나이로 러시아 제국의 제3대 황제[3]로 즉위했다. 즉위 시점에서 아직 어린 나이고 더는 섭정할 사람이 없어서 권신들에 휘둘릴 줄 알았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신하들에 기 죽지 않고 뚝심있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이었고 즉위하자마자 자신은 그토록 증오하던 할아버지의 정책에 반대한다면서 할아버지가 행했던 개혁을 모두 취소하는 정책을 취한다.[4]

하지만 그의 재위도 오래가지 못했는데 결혼을 앞두고 천연두에 걸려 14살 어린 나이에 자식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가 죽으면서 로마노프 왕조 정통 남계는 끊기게 되었다.

참고로 이 때 청나라와 캬흐타 조약이 맺어지게 된다.

3. 여담

  •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종사촌오빠이기도 하다. 표트르의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샤를로테 크리스티네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여동생이기 때문.

[1] 조부와 이름이 완전히 똑같다.[2] 훗날 이는 이복 오촌 조카인 파벨 1세도 죽은 아버지를 위해 증오하는 어머니 예카테리나 2세의 정책들을 전부 철회하려 했다는 점에서 표트르 2세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파벨 은 즉위한 지 5년 만에 귀족들을 적으로 돌리는 대책 없는 행보와 여계 후손의 즉위를 금지한 법령 등과 맞물려 쿠데타로 암살당했다.[3] 로마노프 가문 황제로서는 6번째이다. 중간에 표트르 1세가 차르(왕)에서 임페라토르(황제)가 되면서 댓수가 리셋되었다.[4] 다만 표트르 1세 시절 서구화의 영향이 러시아에 이미 뿌리깊게 정착된 터라 오래 살았어도 예전처럼 돌려놓는 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기다 본인도 그 서구화의 여파로 독일계 외가 혈통을 얻었고 초상화를 보다시피 1700년대생 서유럽인의 전형적인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비슷한 예로 루이 18세, 샤를 10세는 프랑스 혁명으로 큰형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본인들은 국외로 망명해 고생했기에 혁명세력은 물론 입헌군주주의자조차도 절대악 수준으로 극도로 증오했지만 부르봉 왕정복고 이후로도 프랑스 혁명 이전의 사회로 돌려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