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야구가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해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그 중심은 지금의 보스턴, 뉴욕, 볼티모어였다. 이 당시엔 미식축구나 농구가 없고 라운더스, 축구, 럭비, 크리켓 등 영국식 스포츠가 영국 이민자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졌는데, 웃기게도 이 미국 이주민자의 대부분이 크리켓보다 라운더스가 더 인기있는 영국 중북부 지방 출신이라서 라운더스가 미국에서 많이 행해졌고 이 결과 1830년에는 보스턴에서 라운더스를 모방한 타운 볼(town ball)이라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3년 후인 1833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또 비슷한 시기 뉴욕에서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의 타운 볼이 성행했고 그것이 발전하여 비로소 지금의 야구가 되었다고 한다.야구의 기원에 관한 또 다른 하나의 설은 군인이었던 애브너 더블데이라는 사람이 1839년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야구를 만들어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건 조작으로 드러나 그냥 설로 이야기된다. 자세한 건 야구/기원 문서를 볼 것.
아무튼 19세기 중엽 무렵 미국 각지에 보급되어 발달하면서 이 당시 야구는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최고의 생활 스포츠로 발전했고, 국기(國技)스포츠의 토대를 마련했다. 야구가 인기를 끌게 되자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던 야구 규칙을 하나의 규칙으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1845년 알렉산더 카트라이트의 주도 하에 명문화된 최초의 야구 규칙인 니커보커 규칙이 성립되었고, 이 니커보커 규칙에 따라 성립된 최초의 야구팀인 뉴욕 니커보커스가 등장한다. 니커보커스는 너무 길었기 때문에 줄여서 부르곤 했는데 그 약칭이 바로 닉스. 뉴욕 닉스의 그 닉스다. 니커보커스는 또 하나의 기록을 갖고 있는데, 최초로 니커보커 규칙을 적용하여 공식적으로 야구 기록을 남긴 최초의 팀이다. 1846년 벌어진 이 경기의 상대는 뉴욕 나인이었고, 니커보커스는 23-1로 떡실신 당했다. 그 후 1851년 니커보커스는 최초로 유니폼을 만들어 입는 팀이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지만 프로화의 바람에 휘말리며 1870년대 초반에 해산하고 만다.
2. 전국 야구 선수 협회의 등장부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창설까지
1857년 창설된 전미 야구 선수 협회(NABBP, National Association of Base Ball Players)는 미국 야구를 관장하는 최초의 단체였다.1857년 16개의 뉴욕 지역 클럽들의 첫 번째 대회는 사실상 니커보커 시대를 종식시켰고, 이 기간 동안 경기 규칙은 대부분 개별 클럽들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 경기 규칙과 자체 조직을 관리하는 것 외에도, 협회는 공식적인 채점(보고), "경기" 플레이, 챔피언십, 아마추어리즘, 그리고 대회의 무결성(당시에는 하마드로밍으로 알려짐)에 대한 기준을 세웠다. 스포츠의 발전 추세에 따라, 1869년 시즌에 프로로 전향했다.
1871년에 열린 마지막 대회는 수백 명의 회원들이 국가 협회를 통해서만 대표되었고, 이는 별도의 전문 협회와 아마추어 협회의 설립을 자극했다. 1875년까지 프로 야구를 감독하고 사실상 모든 선수들을 위한 경기 규칙을 제정한 최초의 프로 스포츠 리그로 여겨진다. 아마추어 후계자가 많은 회원을 유치한 적이 없고 몇 번밖에 소집되지 않았기 때문에 NABBP는 프로 후계자와 대조적으로 "아마추어 협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북 전쟁 이전에 야구의 시작은 크리켓과 지역 변형 야구, 특히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타운볼과 뉴잉글랜드에서 열린 매사추세츠 게임과 같은 대중의 관심을 위해 경쟁했다. 1860년대에 전쟁의 도움으로 뉴욕 스타일의 야구는 다양한 군단, 연대, 여단 및 기타 부대를 통해 전국적인 경기로 확장되었다. 게다가, 민간인 NABBP는 뉴욕, 브루클린, 필라델피아에 기반을 둔 대부분의 클럽들이 남아있었지만, 통치 기구로서 진정한 국가 조직으로 확장되었다. 1865년 말, 거의 100개의 클럽이 "국가 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867년까지 400명 이상의 회원이 있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태평양 서부 해안에서 루이지애나의 멕시코 만 해안까지 일부 클럽이 있었다. 이러한 성장으로 인해, 지역 및 주 기관들은 스포츠의 거버넌스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구의 폭발적인 인기는 뉴욕 근교에 핵심을 둔 NABBP 조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870년까지 전국적으로 수천 개의 야구 클럽이 조직되었고, 그들 중 대다수는 협회 회원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 전날 밤에 멀리 떨어진 뉴올리언스에는 7개의 야구팀이 있었는데, 그들 중 어느 팀도 NABBP에 속하지 않았다.
NABBP는 처음에 아마추어리즘의 원칙에 따라 설립되었다. 그러나 역사 초기에도 브루클린 엑셀시어 클럽의 제임스 크레이튼과 같은 일부 스타 선수들은 비밀리에 또는 보수를 통해 보상을 받았다. 1866년 NABBP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 클럽이 립 파이크를 포함한 3명의 선수들에게 돈을 지불한 것에 대해 조사했지만, 클럽과 선수들 모두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클럽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최고의 선수들의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비공식적인 지불이 보편화되었다. 1868년 12월 NABBP 회의에서 NABBP는 다음 1869년 시즌을 위한 프로 부문을 설립했고, 선수들에게 돈을 지불하기를 원하는 구단들은 제재 없이 자유롭게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시내티의 레드 스타킹스는 가장 먼저 그렇게 선언한 선수들이며, 최고의 가용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가장 공격적인 선수들 중의 하나였다. NABBP의 가장 강력한 팀들을 포함한 12개의 클럽들이 1869년 시즌에 프로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중요한 문제는 챔피언십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와 선수들이 한 팀에서 다른 팀으로 뛰어드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3년간의 실험 끝에 1871년에 대부분의 주요 프로 구단들이 해체되어 독립된 프로 야구 선수 협회(NAPBBP, 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ional Base Ball Players)를 설립했다. 초기 NABBP는 주 및 지역 통합으로 해체되기 전에 약 2년 동안 더 지속되었다.
전미 프로 야구 선수 협회(NAPBBP)는 프로 야구 최초의 스포츠 리그이다. NA는 1871년에 설립되었고 1875년까지 계속되었다. 1869년, 이전에 아마추어였던 전미야구선수협회는 일부 팀들이 선수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우려에 대응하여 프로 부문을 설립했다.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는 완전한 프로가 되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을 선언한 첫 번째 팀이었다. 다른 팀들도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1871년, 아마추어 협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를 원하는 몇몇 클럽들이 탈퇴하여 전미 프로 야구 선수 협회를 설립하였다. 1876년, 더 강력한 중앙 조직을 원했고, NA의 6개 클럽과 2개의 독립 클럽이 내셔널 리그를 설립했다: 보스턴 레드 스타킹스, 하트퍼드, 뮤추얼, 애슬레틱,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NA와 독립 클럽인 루이빌과 신시내티의 루이스 브라운 스타킹.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의 수명을 제한한 요인들은 하나의 팀 (보스턴)에 의한 리그의 존재의 대부분에 대한 지배, 몇몇은 프로 야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에 너무 작은 도시들에 놓였기 때문에 프랜차이즈의 불안정, 중앙 권한의 부족, 도박꾼들의 영향력의 의심을 포함하였다.
그러던 중 1882년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merican Association)이라는 별도의 리그가 창설되고 1892년 내셔널 리그에 합병되어 총 12팀으로 리그가 진행되어 오다가 1899년 내셔널 리그에 소속돼 있던 4개의 팀이 빠져나와 1901년, 총 8개의 팀이 아메리칸 리그라는 새로운 리그를 창설해 마침내 양대 리그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 때문에 현대적인 형태의 메이저리그는 1901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프로 야구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초기부터 뜨거웠다. 당시 야구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탄생한 프로 스포츠 리그였으며 동시에 가장 인기 있는 생활 스포츠이자 유일하게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였다. 이때부터 미국인들은 야구를 크리켓과 비교하며 크리켓은 영국 폼 잡는 얼간이들이 하는 오락 활동이지만, 야구는 카우보이들의 일대일 격투 정신에 기반한 스포츠라며 자랑하였다. 참고로 이 당시엔 NFL[1]과 NBA[2]는 아직 없었다.[3] 당시 에드 델라한티, 찰스 레드번, 캡 앤슨, 팀 키프, 퍼드 갤빈, 제시 버켓 등이 초창기 야구를 빛냈다.
한편 원래는 내셔널 리그 8개 팀, 아메리칸 리그 8개 팀으로 총 16개 팀이 미국 동부와 동부에 인접한 중부 지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각 리그도 별도의 지구 구분이 없는 단일 리그로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리그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4] 여러 새로운 팀들이 창설되어 메이저리그에 참여하였고, 기존 팀들이 미국 서부 지역으로 연고지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리그 확대와 팀의 증가, 연고지의 이동에 따라 여러 팀들의 원정 거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늘어나게 되자 1969년 연고지를 기준으로 서부와 동부 지구로 재편하였다. 1969년 2개 지구로 리그가 확대 되었을 때의 규모가 양대 리그 각각 10팀씩 총 20팀이었다. 이후 AL와 NL에 각각 1977년 2팀, 1993년 2팀 이렇게 각각 총 4팀씩 생겨 28팀으로 늘어났다. 1년 뒤인 1994년엔 리그 확대에 맞춰 다시 서부, 중부, 동부 지구로 재편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의 양대 리그 3개 지구 체계가 완성되었다.
초창기에는 경기 수를 못박지 않아서 140~150경기를 전후로 순위를 가리기 위해 경기 수가 들쭉날쭉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1904년 한 시즌을 한 팀당 22경기씩 치러 총 154경기(7팀×22경기)로 확정을 지으면서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순위를 가리기 위해 1~2경기를 더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차피 순위가 이미 확정돼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경기는 취소될 경우 그냥 생략해버리는 경우도 있었기에 실제 정확히 154경기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5] 시즌은 4월 말에 시작하여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끝났으며, 보통 시즌이 9월 말~10월 극초면 끝났기 때문에 10월 초에 양대리그 우승팀이 격돌하는 월드 시리즈를 가지는 형태였다.
1919년 잠시 한 시즌을 한 팀당 20경기로 줄인 적이 있었는데 바로 흑역사. 이듬해 다시 22경기로 늘어나면서 154경기로 계속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1962년 리그 확대로 각 리그의 팀이 10개로 늘어나면서 팀당 18경기씩, 총 162경기(1962년 당시, 9팀×18경기)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3월 말~4월 초에 시즌이 시작하고 10월 초에 시즌이 마무리되는 형태로 변경이 되었다.
2018년 현재 162경기는 보통 동일 지구 76경기(4팀×19차전)+동일 리그 다른 지구 66경기(팀당 6~7차전)+다른 리그 20경기(팀당 2~4차전)로 구성된다.
3. 1900~1970년
"스포츠 선수를 목표로 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종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냥 조금 좋아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택해야 합니다. 그 종목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요? 저는 공 치는 걸 가장 사랑했습니다."[6]
- 베이브 루스
기본적인 룰의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상업적 프로리그인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가 프로 스포츠로서 자생력을 갖추고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도전했다. 1914년 7월 야구계의 판을 뒤집고 홈런이라는 야구의 꽃을 만들어낸 선수가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면서 미국 야구의 첫 역사, 스토리가 발생되었다. 베이브 루스는 이 당시 좌완투수로 활약하면서 매우 뛰어난 피칭을 선보였고, 당시 리그에서 월터 존슨과 함께 최고의 투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이라는 희대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고, 야구의 인기도 주춤하나 싶었다.- 베이브 루스
1920년 1월, 베이브 루스를 마침내 보스턴 레드삭스가 당시 비명문, 비인기 팀이었던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시켰고, 이 트레이드로 미국에 의한, 미국을 대표하는 팀인 뉴욕 양키스가 탄생하게 되어 야구를 넘어 미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발굴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이적으로 인해 베이브 루스는 양키스를 그저 그런 약체 팀에서 20세기 미국 최고 명문 스포츠 팀으로 그 위상을 끌어올렸으며, 베이브 루스 본인 역시 미국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밤비노의 저주라는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히스토리가 탄생하면서 미국 프로스포츠 최초의 라이벌 매치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쟁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쉽게 말해 이 당시에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과장 하나 없는 미국 최고의 넘사벽 인기 스포츠였으며 베이브 루스를 모르면 간첩 수준이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천황에게 욕을 퍼붓는 미군에게 일본군이 베이브 루스에 대한 욕설로 대응했을 정도였다. 미국 본토에 노예로 이주한 흑인들 역시 따로 니그로리그를 창설하여 야구를 했다. 당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이 야구를 할 수 없었기 때문.
이 시대에 야구가 가장 최고로 인기 있었던 건 미국 내에서 프로 스포츠로서 가장 큰 입지와 자생력을 가지고 있었기도 했지만 1920년, 1930년 조 디마지오, 루 게릭 등 최고의 스타성을 가진 플레이어들과 야구 특유의 턴제라는 중독성, 또 홈런이라는 그 당시 여타 스포츠보다도 시각적으로나 기록적으로나 화려했던 요소가 야구의 꽃으로 정착된 이유 등이었다.
이후 메이저리그는 수많은 야구 룰의 개정을 통해 1950년대까지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1960년대부터는 상업 컨텐츠로서의 자리를 완고히 하게 됐다. 여러 새로운 팀들이 창설되어 메이저리그에 참여하였고, 기존 팀들은 미국 서부 지역으로 연고지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리그 확대와 팀의 증가, 연고지의 이동에 따라 여러 팀들의 원정 거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늘어나게 되자 1969년 연고지를 기준으로 서부와 동부지구로 재편하였다. 1969년 2개 지구제로 리그가 확대되었을 때의 규모가 양대 리그 각각 10개 팀 씩 총 20개 팀이었다. 이러하여 명실상부 미국 전역에서 즐겨하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하였다. 물론 야구란 종목 자체의 인기를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지만 그동안 야구란 틀 안의 경쟁도 막심했다. 1914년 당시 시카고 컵스라는 최고 인기 팀을 중심으로 한 페더럴 리그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압박하며 경쟁을 했었고, 1950년경에는 멕시코의 석유 재벌 네루가 니그로 리그, 페더럴 리그에서 방출된 선수들을 긁어모아 멕시칸 리그를 메이저리그에 대항하는 제3 리그로 만드는 것을 시도했으나, 메이저리그의 압박으로 무산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메이저리그는 멕시칸 리그를 사실상 합병하여 지금의 마이너리그 트리플 A 리그 중 하나로 축소시켜버린다.
4. 1970~1995년
빅 레드 머신을 이끌던, 당대 최고의 인기 선수 중 하나인 피트 로즈. |
그러나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군림하던 MLB 옆에 갓 태어난 신생아, 프로 미식축구 리그 NFL이 어느새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MLB는 그런 NFL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1914년 같은 야구리그인 페더럴 리그와의 흥행 경쟁에서 승리하여 오히려 페더럴 리그를 합병한 경험이 있을 만큼 MLB는 이미 미국 전역이 인정하는 확고한 국기 스포츠로 자리잡았었기에 앞으로의 발전만 보고 있는 여유로운 입장이었다. 실제로 1965년 당시 NFL은 MLB 인기의 2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1977년에는 AL와 NL에 신생팀이 2팀씩 생겨 총 24개 팀으로 참가 팀 수가 늘어나는 등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오히려 NFL이 골리앗 수준인 MLB의 인기를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했는데 그 중 하나가 리그 기간을 MLB 시즌을 피해 9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로 정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MLB 팀들의 인기가 확고한 공업 대도시 지역을 피해 미국 전역의 지방 소도시나 남부에 연고를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텍사스. 야구가 뉴욕 등 동부 지역을 통해 급상승했듯이 미식축구는 텍사스 지역을 통해 급상승하였다.[7]
그리고 70년대 들어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NFL의 인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였고 마침내 MLB와 엇비슷한 인기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 원인으로는 야구가 다소 정적인 턴제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보다 역동적인 미식축구가 TV 중계에 유리해서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으나, 한편으로 이때 당시는 여유롭고 느린 여가 활동이 대세였고, 야구가 미국인들의 일상적 취미이기도 했기 때문에 단지 정적이라는 것이 원인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오히려 NFL이 MLB의 리그 기간을 피해서 열게 됨으로써 MLB 비시즌 동안의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슈퍼볼 등 축제로서의 이미지를 굳히면서 그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보는 스포츠 전문가들도 많다.
1985년 인기를 보면 MLB와 NFL의 인기는 동률이다. |
그렇게 NFL과 MLB는 미국의 '축제'와 '일상의 스포츠', 양대 국기(国技)로서 서로 굳혀지는 공생을 이어가는 듯 했으나...
메이저리그가 점수도 나지 않는 극심한 투고타저에 휩쓸리면서 일명 '재미없는 스포츠'로 인식이 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MLBPA)와 메이저 리그 사무국 간의 갈등이 폭발하여 선수 노조의 파업이 발생하면서 1년 가까이 리그가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난다. 자세한 내용은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 문서를 참조.[8]
이 파업으로 인해 상당수의 북미 스포츠 팬들이 NFL로, 그리고 이제 막 분주하게 상업 스포츠로서 발을 넓히고 있었던 NBA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NFL은 MLB를 따돌리고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아직은 매우 약소한 차이였고 파업과 리그 중단 사태 속에서도 MLB는 여전히 확고한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중 하나였으며 미국의 조사 기관인 헤리스 폴의 조사에 의하면 70-80년대 MLB와 NFL의 인기는 양 리그 모두 20%대로 비슷했다.
5. 1996~2003년
그렇게 NFL에게 북미 최고 인기 스포츠 자리를 내준 MLB는 90년대 모든 프로 스포츠에 불어닥친 대약물시대의 영향을 가장 먼저 입기 시작했다. 먼저 타자 쪽에서 약물의 힘을 빌린 배리 본즈, 새미 소사 , 마크 맥과이어 등의 괴물 타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가 홈런왕 타이틀을 놓고 매일 매일 레이스를 펼치자, 팬들은 베이브 루스 이후 다시 부활한 홈런 시대를 대환영했다. ABC와 ESPN은 맥과이어와 소사의 출전 경기를 매일 미국 전역에 생중계했으며, 맥도날드, KFC, 펩시, 코카콜라 등 미국의 유명 기업들도 앞다투어 메이저 리그 선수들을 광고 모델로 발탁하며 효과를 극대화시키려고 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시카고 컵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역시 팬이 이 때 많이 불어났다.배리 본즈의 KFC 광고 |
마크 맥과이어의 맥도날드 광고 |
새미 소사의 맥도날드 광고 |
그렇게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이 일어나자 투수들 역시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기술적으로 삼진을 잡는 기교파 투수보다 로저 클레멘스, 에리크 가녜 등 약물의 힘에 의존한 강속구 투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약물 논란에서 자유로운, 일명 '청정 타자' 중 켄 그리피 주니어라는, 당시 흑인이면서도 미국 스포츠의 아이콘이 등장하면서 대중적 화제 면에서도 미국의 인기 스포츠로 부활하게 되었다. 많은 야구 팬들이 아직도 이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야구가 그 어느 스포츠보다도 역동적이고, 파워풀하고, 지루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 베이브 루스 시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로 기억된다.
참고로 이때 Turn Ahead the Clock 이라고, 메이저리그의 30년 후의 유니폼은 어떨까 상상해서 입어보는 행사
6. 2003~2009년
2007년 당시 당시 야구의 인기를 보여주는 미국 인기 스포츠 구글 검색량 자료.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리그인 NFL보다도 화제성에서 한 수 위였다.
당시 ESPN의 홈페이지 분위기, '스타 파워'라는 문구의 MLB 기사.
벤츠, 나이키, 뉴욕 양키스가 A로드의 당시 가치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2005년, 호세 칸세코가 자서전에서 스테로이드 시대 최고 선수들의 상당수가 약물빨 사기꾼이라는 것을 밝히며 미국 야구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나 메이저리그 제2의 전성기를 이끈 일등공신들 배리 본즈, 새미 소사, 마크 맥과이어, 로저 클레멘스 등이 주축이라 충격이 더했다. 그러나 이 폭로는 불같이 폭발하던 메이저리그 인기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루 걸러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들이 주구장창 쏟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매니 라미레즈, 데이비드 오티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폰소 소리아노, 데릭 지터, 데이비드 라이트, 아드리안 벨트레, 카를로스 벨트란, 더스틴 페드로이아 등 뉴 스타들이 대거 출몰하는 동시에 뉴욕 양키스의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악의 제국 건설로 당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인기는 하늘까지 치솟았다. 데릭 지터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 다음가는 미국 최고의 인기 스타였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최고 스포츠 스타였으며 뉴욕 양키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포츠 클럽으로, 보스턴과 양키스의 라이벌 매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스포츠 라이벌전으로 꼽히는 등 양적으로나 흥행 면에서나 메이저리그는 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또한 MLB 사무국은 MLB tv를 런칭하며 미국 4대 스포츠 중 가장 선도적이고 진보적인 스포츠 컨텐츠를 자체 생산하게 되었다. NBA와 NFL은 이를 벤치마킹해 각각 스포츠 방송국을 개국하였다. 2008년엔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이 건설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경기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7. 2010~2015년
그렇게 스테로이드 시대가 저문 이후, 약물 파동에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인기는 굳건할 것만 같았으나 새로운 스타들인 알렉스 로드리게스, 매니 라미레즈, 데이비드 오티즈마저 약물을 복용한 것이 미첼 리포트와 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로 밝혀지면서 많은 타자들의 일명 '약빨'이 드러났다. 엄격한 도핑 검사가 계속되었고 타자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하락하면서 다시 1970년대의 재미없는 데드볼 시대로 회귀해버렸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월드 시리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의 자존심을 구긴 시리즈로 기록에 남았는데, 두 자릿수 시청률은 커녕 고작 평균 7.6%이라는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에 그쳐버린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TV 하나에만 치중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NFL의 슈퍼볼이나 NBA의 NBA 파이널은 시청률이 10년 전과 변함이 없었으며 오히려 반등의 여지까지 보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인기가 전보다 많이 하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이때부터 미국 야구 팬들 사이에선 "미국에서 야구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 젊은이들이 야구를 기피하고 있다"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나, 인기 팀인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 진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어물쩡 넘어갔다. 그러나 2012년 들어 메이저리그가 인기를 끌던 다른 국가들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자체 프로야구 리그가 없어 TV 중계와 선수 수급 등 모든 컨텐츠를 메이저리그에 맡겼던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등지의 야구 인기 하락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베네수엘라에서는 2013년 생활 체육 가입자 수에서 넘사벽으로 여겨졌던 야구를 축구 종사자가 뛰어넘었고,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야구보다 농구, 축구를 더 즐기는 추세를 보였다.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현 상황을 '야구 존립의 위기'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들어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이비드 오티즈 등 왕년의 대스타들의 은퇴마저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티켓을 팔아줄 뉴 스타조차 사라지는 추세가 되어버렸다.
- 위기의 미국 야구(워싱턴 스트리트 저널 - 2015년 5월 27일)
- 21세기 들어 위기에 빠진 메이저리그…'지루하다'…젊은층 외면에 고령팬만 남아
- 메이저리그가 위기인 진짜 이유(김형준 칼럼 - 2015년 4월 16일)
이러한 야구 팬들의 근심에 더욱 찬물을 끼얹은 것은 2014년 ESPN이 내놓은 미국 4대 스포츠 인기별 12-24세 젊은이들의 관심도 통계였다. 야구팬들에게 이 통계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는데, 12-24세 미국 젊은이들이 축구를 MLB보다 2배나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15년에 들어서는 쿠바와 일본에서도 젊은 층들의 이탈이 점점 심해지는 등 전 세계적으로 야구의 위기가 불었다. 이에 새로 취임한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야구의 전통과 역사를 고집하지 않고 시대에 맞춰 새로운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야구의 근본을 흔들더라도 야구의 인기 부활을 도모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5월에 들어서는 마이클 조던 시대 이후 쇠락하던 NBA가 스테판 커리, 르브론 제임스 등의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들을 앞세워 인기를 회복하며, MLB를 제치고 인기 스포츠 2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에 야구의 파트너를 자부하던 ESPN마저 NBA를 야구보다 더 중시하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아예 NBA 파이널 시청률이 월드 시리즈 시청률을 역전하며 점점 더 격차를 벌려나갔다. 또 2001년 460만 명에 달하던 리틀 야구 회원 수가 2011년에는 2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하자 리틀야구협회는 회원 수 조사를 폐지해버렸다. 2015년에 실시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현역 스포츠 스타 30인을 뽑는 조사에서도 야구선수는 단 한 명도 들지 못했다. 위에 서술된 이전 시대의 MLB의 화려했던 항목들을 보면 현재 메이저리그의 위상이 얼마나 급격히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이 야구가 2010년대에 들어 급격히 몰락한 이유에 대해 진단한 바로는 첫째, 스마트폰의 보급화, 둘째, 야구 자체의 득점력 감소, 마지막으로 지금껏 누려온 흥행과 인기 탓에 나태해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홍보 마케팅 등을 이유로 뽑는다. 1번을 얘기하자면 결국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많은 팬들이 던지고, 치고, 달리는 시간보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야구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경기 시간도 길고, 중간중간 너무 텀이 길어 지루하다"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또 두 번째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매우 많은 젊은층들이 야구를 기피하고 떠나는 데 일조했으며 이에 전문가들은 3번의 이유를 들며 지금까지 메이저리그는 젊은이들이 야구를 떠날 동안 무슨 혁신을 시도했고,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꼬집고 있다. 그것들이 바로 시간 단축, 불문율, 마케팅, 세계화인데, 사무국은 이 4가지 부분에서 모두 부진하며,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NBA는 공격 제한 시간을 둬서 빠른 플레이를 유도해 공격적인 모습을 농구의 대표적인 트렌드로 자리잡게 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국제 마케팅으로 르브론 제임스, 제임스 하든,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등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냈고 동시에 세계화에 성공했으며 각종 고리타분한 보복구 문화, 세리머니 금지 등 오랜 역사를 고집 중인 메이저리그와 달리 역사와 전통, 상대에 대한 과장된 존중보다는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와 야성미 넘치는 세리머니로 팬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스테로이드 시대부터 시작된 흥행에 나태해져 변해가는 시대에 시간 단축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야구의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개최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역시 미국을 제외한 타국에서의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그 주목적은 자신들의 국제적인 이익, 외국 선수 수급을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홍보 대회라는 것이다. 또 젊은층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도 사무국은 배트 플립을 하고 빈볼을 맞는 선수들을 위해 지금껏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문화 확산에 대한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층의 이탈과 동시에 운동 능력이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MLB를 외면하고 NFL, NBA로 몰리게 되는 현상까지 초래했다. 이와 별개지만 흑인 선수들이 MLB를 기피하는 현상에는 MLB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이 전액 장학금을 보장하는 NBA, NFL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8. 2015~2020년
그러나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버드 셀릭이 작성해놓은 야구의 부활을 위한 차세대 계획들을 모두 실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지적됐던 야구 중간중간에 텀을 없애기 위해 농구처럼 투구 제한 시간, 일명 스피드업 제도를 야구의 기본 룰로 고정시켰으며 이로 인해 경기 시간을 평균적으로 10분 정도 단축하는 데 성공했고 전보다 경기의 흐름이 한 템포 빨라지면서 젊은층의 이탈을 멈추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또 이외에도 코치와 스태프의 마운드 방문 시간과 이닝 사이 광고 시간, 선수의 투구 피칭 연습 시간 등을 모두 단축시켜 전체적인 경기 템포의 흐름을 빠르게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스트라이크 존을 슬개골 위까지 좁혀 젊은 팬들이 좋아할 만한 홈런이나 압도적인 구위로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들이 많아지도록 유도 중이다. 또 배트 플립에 관련해서도 브라이스 하퍼같은 스타 선수들이나 커미셔너에 의해 그 인식이 점차 바뀌어 최근엔 배트 플립을 행하는 선수들도 많아지고 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 배트플립을 싫어하는 건 구닥다리 문화
최근엔 SNS 마케팅에서도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다양한 유튜버들에게 비밀리에 지원을 하여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출연시켜 젊은층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또 크리스 브라이언트, 브라이스 하퍼 등은 선수 본인의 스타성과 더불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자체의 지원으로 메이저 기업들의 광고 후원을 받고 메인 모델로 발탁되어 미국 전역의 인지도를 넓히면서 전국적인 스타로 점점 성장하고 있다. 특히나 브라이스 하퍼는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NBA 선수인 존 월을 2위로 따돌리고 워싱턴 D.C.에서 명실상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선수 1위로 뽑혔을 정도로 그 결과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5 워싱턴 포스트 현지 팬들 설문조사 인기 순위
또 호세 바티스타의 배트 플립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약진 등으로 캐나다에서 부진하던 MLB의 인기가 CFL과 NBA(토론토 랩터스)의 인기를 넘어 NHL에 이은 2위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특히 400만명 이상의 캐나다 시청자들이 블루제이스와 텍사스의 디비전시리즈 5차전을 봤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이끌어내 메이저리그의 부활이 다시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다. '하키보다 야구' 캐나다는 블루제이스 열풍 야후 캐나다 스포츠 사이트의 2016년 현재 조회수 순위는 NHL(하키)-MLB(야구) - NBA(농구) -NFL(미식축구) - CFL(캐내디언 풋볼)순이다 토론토의 PS, 캐나다 국민 48%가 지켜봤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시즌 관중 수는 7,315만여 명으로 전년보다 61만 명, 2007년에 비해 635만 명 줄어들었고 평균 관중 수도 2010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져 지속적인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 현재 투고타저가 완화되면서 역으로 경기 시간이 더 늘어나는 바람에 사무국의 고충은 더 커지고 있다. 이에 사무국은 2018년 야구의 근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피치 클락을 도입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Pitch clock, limits on mound visits looming for MLB in 2018 피치 클락은 2011년부터 미국 대학 야구에서 이미 실시되던 것으로 투수가 잘 보이는 곳에 농구처럼 초시계를 달아놓고, 20초 안에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볼을 선언하는 것이다.[9] 이는 여지껏 야구가 주장해왔던 '시간 제한이 없는 스포츠'라는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그만큼 야구계가 젊은층 유출에 대한 고심이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야구계에 더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껏 야구의 본질로 여겨졌던 것들은 어쩌면 야구만의 매력이 아니라 '야구가 전통을 고집하느라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템포를 빨리 함으로써 정적인 턴제 스포츠인 야구가 빠름을 중요시하는 신세대 트렌드의 취향에 맞출 수 있다는 점은 야구에 젊은층 유출을 막아내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으며, ESPN이 매년 설문조사하는 통계에 의하면 야구 팬의 대다수는 타임아웃이 없는 전통보다는 이를 하루빨리 일단락하고 피치 클락을 도입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편, MLB는 2017년 ESPN이 설문조사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설문조사에서 50위권 안으로도 인기 선수를 배출하지 못함으로써 더욱 더 고심이 커지고 있다. 최고 인기 선수가 지터? MLB, `리그의 얼굴`이 없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데, 카를로스 코레아,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아디다스의 세계적 광고에 출연하고 야구 종목이 최초로 아디다스 세계 광고에 노출되었다. 유튜브 영상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세레나 윌리엄스와 함께 나이키 세계 광고에 출연하여 이름을 널리 알렸다. 유튜브 영상 스탠튼은 1:45초부터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MLB 사무국은 페이스북과 계약을 맺고 SNS 사업에서도 활발하게 노력하고 있다. 페이스북, 메이저리그 경기 생중계 계약…TV와 경쟁 2017년 7월 후반기부터는 NBA와 같이 주간 홈런 모음이나 탑 플레이 수비, 일간의 장면 등 여태껏 시도하지 않던 트렌디한 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반응은 긍정적. 이렇듯 최근 사무국의 행보를 보면 지금껏 고수해왔던 클래식한 면을 타파하고 NBA를 모방하여 젊은층을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8년 월드 시리즈의 시청률은 2017년보다 더욱 떨어지고 말았다. 리그 사무국 입장에선 보스턴과 다저스라는 인기 팀들의 대진이었던 만큼 실망도 클 듯. 단 2017년 월드 시리즈의 경우,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첫 월드 시리즈 진출이었다는 점과 경기 자체도 상당히 박진감이 넘친 내용들이 많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두게 한 요소가 많았던 반면 2018년 시리즈는 보스턴의 성적이 워낙에 출중했기 때문에 레드삭스가 우승하리란 의견이 우세했었다.
2018년 시즌 14년 연속 이어온 평균 관중 3만 명 선도 무너졌다. 메이저리그 평균 관중이 2만 8830명으로 2017년보다 4% 감소했다. 이는 2003년 2만 8013명 이후 가장 낮은 수치. 전체 30개 팀 중 17개 팀의 관중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 그 결과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온 최근 14년 연속 평균 관중 3만 명 기록도 깨졌다.
2018년 12월 19일에 MLB, 선수 노조와 쿠바가 선수의 망명이라는 위험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고도 쿠바 정부에서 인정한 절차를 통해 MLB에서 뛸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 이로써, 실력 있는 쿠바 선수들이 MLB에서 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어 선수 풀이 더욱 넓어질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 협약은 쿠바야구연맹을 통해 쿠바 정부를 간접 지원하게 된다는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파기되며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휴스턴발 2019 MLB 사인 훔치기 스캔들 논란이 발발하며 벌써 수많은 연루자들이 나오고 있고 세 명의 감독이 사임하는 등 찬물을 끼얹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미국 내 18-34세 사람들에게 4번째로 인기 있는 스포츠 리그로 나와 e스포츠 리그인 LCS에 밀렸다.https://twitter.com/LiQuiD112/status/1220488243730243584?s=19 참고로 대학 리그를 뺀 조사.
8.1. 2019년
2019년 6월 29일과 30일 양일에 거쳐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간의 정규 시즌 경기를 영국 런던에서 열게 되었다고 밝혔다. 내년인 2020년에도 열릴 계획이고 첫 경기의 성격으로 보아 메이저 리그 최고의 라이벌전 위주로 짤 듯하다. NFL과 NBA의 글로벌 확장 정책에 자극을 받은 듯하며 특히 야구의 불모지라 불리는 유럽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려는 계획으로 보인다.[10]2017년부터 홈런이 급증하더니 2019년엔 무려 6676개의 홈런이 터지며 그야말로 대홈런 시대가 열렸다. 관련 기사 팀 홈런 기록도 2018년 양키스의 267개를 한해 만에 네 번 경신했다. 미네소타가 무려 307개를 때리며 306개의 양키스를 뛰어넘은 것. 30홈런 타자는 한 팀에 2명 수준인 58명, 20홈런은 무려 129명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이 나왔다. 이는 스테로이드 시대의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는 기록으로 전문가들은 공인구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또한 플라이 볼 혁명으로 극단적으로 홈런만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대세가 되었고 역으로 삼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일 시즌 팀 홈런 기록 TOP 20 중 올해 작성된 기록이 무려 10개이다. 또한 30개 팀 중 15개 팀이 이번 시즌에 팀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였다.
2020년에도 마찬가지로 홈런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포스트시즌엔 홈런이 더 폭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순위 | 시즌 | 팀 | 홈런 수 | 순위 | 시즌 | 팀 | 홈런 수 |
1 | 2019 | Twins | 307 | 11 | 2019 | Cubs | 256 |
2 | 2019 | Yankees | 306 | 12 | 2016 | Orioles | 253 |
3 | 2019 | Astros | 288 | 13 | 2019 | Brewers | 250 |
4 | 2019 | Dodgers | 279 | 14 | 2019 | Braves | 249 |
5 | 2018 | Yankees | 267 | 15 | 2000 | Astros | 249 |
6 | 1997 | Mariners | 264 | 16 | 2019 | Blue Jays | 247 |
7 | 2005 | Rangers | 260 | 17 | 2001 | Rangers | 246 |
8 | 2019 | Athletics | 257 | 18 | 1996 | Mariners | 245 |
9 | 2010 | Blue Jays | 257 | 19 | 2012 | Yankees | 245 |
10 | 1996 | Orioles | 257 | 20 | 2019 | Red Sox | 245 |
8.2. 2020년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부터 발생된 코로나 19의 팬더믹 여파로 인해서 개막이 무기한 연기가 되었고, 시간이 지니도록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시즌자체가 취소될 우려까지 하던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 대만프로야구, KBO 리그, 일본프로야구가 차례로 무관중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참고하면서 리그 개최 및 진행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이미 시기가 많이 미뤄진 상태에서 개최되는 터라 리그 경기 수 축소 논의와 그에 따른 수당축소 여부 등을 놓고 선수노조와 줄다리기 끝에 결국 선수노조와의 합의가 불발이 난 채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독단으로 시즌개막이 선언되었다.#이 발표 이후 7월 1일 부로 선수단소집에 선수노조도 동의를 한 터라 2020 시즌은 60경기로 연봉도 그에 맞춰서 지급받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코로나 19에 따라 리그 진행도 변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
코로나 19관련해서 특별적용 되는 것과 2020 시즌에 새로적용되는 규칙 중에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기시간 축소를 위해 10이닝부터 승부치기가 도입된다.
- 이동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의 구분없이 서부지구, 중부지구, 동부지구의 같은 지구팀끼리만 붙는다.[11] 단, 경기진행만 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의 구분이 없이 지구전으로 하는 것이지, 팀별 선수별 성적은 각 소속리그 기록으로 적용한다.
- 내셔널리그도 투수타석 대신 지명타자가 들어선다.
- 침뱉기가 엄격하게 금지된다. 씨뱉기와 투수의 침바르기도 금지. 대신 젖은 수건을 소지하면서 손을 닦는 것은 허용된다.
-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피하기 위해 상대선수들이나 심판항의시에도 6피트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 부상자 명단이 투수와 야수 구별없이 10일, 45일로 나뉘어지고, 코로나 감염 혹은 접촉관련 명단도 새로 생긴다.
- 더블헤더 경기는 각각 7이닝으로 진행, 연장으로 갈 경우 8이닝부터 바로 승부치기를 시작한다.
또한, 포스트시즌 역시 이번 시즌에 한해 확장된다. 확장된 포스트시즌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디비전 별 1, 2위팀과 1, 2위 팀을 제외하고 승률이 가장 높은 2개팀을 더하여 각 리그 당 8개팀이 포스트시즌에 참여
* 1라운드는 3전 2승제로 상위 시드 팀에서 모든 경기를 진행
* 1라운드 승자 4팀에 대해서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
* 디비전 별 1, 2위팀과 1, 2위 팀을 제외하고 승률이 가장 높은 2개팀을 더하여 각 리그 당 8개팀이 포스트시즌에 참여
* 1라운드는 3전 2승제로 상위 시드 팀에서 모든 경기를 진행
* 1라운드 승자 4팀에 대해서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
9. 2021년~
2021년 전반기는 리그를 새롭게 이끌어갈 슈퍼스타들이 등장한 시즌이었다. 야구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전반기를 보내며 현재 미국 내 모든 스포츠스타 중에서도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위치에 오른 오타니 쇼헤이가 가히 혼자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되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타니 외에도 2세 선수들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들이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며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이로서 그동안 메이저리그의 인기가 준것은 야구 자체의 인기가 준 영향보단 단지 슈퍼스타가 적어서 인기가 줄었음이 드러난 셈. 사실 옆동네 NBA만 봐도 커리라는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고 기존 슈퍼스타 르브론과의 라이벌리가 인기를 모으며 인기 상승의 촉매재는 슈퍼스타라는걸 똑똑히 보여줬다. 반면 각각 2010년대 최고의 투수와 타자였던 클레이튼 커쇼와 마이크 트라웃이 실력에 비해 스타성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12]그러나 정작 2021 월드 시리즈 시청률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9.1. 직장폐쇄
그런데 2021시즌이 끝나고 선수노조와 구단주들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메이저리그가 직장폐쇄가 된 건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 이후 27년 만이다.선수노조와 구단주의 의견 차이에 대해서는 아래 영상에 설명되고 있다.
이 문제가 한달 넘게 해결되지 않아 2022년 1월에도 메이저리그는 폐쇄 상태이다. 이로 인해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특히 아직 입지를 팀에서 완전히 다지지 못한 김광현은 이 사태로 인해 다른 팀과의 협상도 불가능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이전 폐쇄 사례들로 미루어보아 이번에도 스프링캠프 기간 이전에는 해결될 거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 선수 노조와 구단주 간의 의견 차이가 명확해 합의점을 찾는 게 쉽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2월 말까지도 해결되지 못해 스프링 캠프 기간 이전에 해결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시즌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그 일주일 경기는 재편성 되지 않으며 선수들은 그 일주일치 보수도 못받는다고... #
사무국이 정규시즌 2주째 경기 취소를 발표한 하루만인 3월 10일에 극적으로 노사협상의 타결이 발표되었다. 새로운 노사협약에 의해 내셔널 리그에 지명타자 적용 및 포스트시즌 참가 구단이 12개로 확대되며, 2023 시즌부터 피치 클락(pitch clock) 적용 및 시프트가 제한된다. 또한, 취소되었던 경기도 일정 재조정을 해서 162 경기 전부를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
9.2. 2022년
새로운 규정으로 일명 오타니 룰이 도입되었다. 말 그대로 오타니 쇼헤이의 투타겸업을 고려한 규정으로, 투수가 지명타자로 동시에 나설 경우 해당 투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더라도 지명타자로는 계속 타석에 설 수 있게 하는 규정이다.대표적으로 로저 매리스의 AL 홈런 기록을 61년만에 경신한 애런 저지의 홈런쇼,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변함없는 투타겸업 퍼포먼스를 보여준 오타니 쇼헤이의 아메리칸 리그 MVP 대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에 남을 기록들인 알버트 푸홀스의 700홈런과 미겔 카브레라의 3000안타 마일스톤도 올해 MLB의 흥행에 큰 영향을 주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이끌었다.다만 흥행성은 전년도에 비해서 크게 늘어났다고 볼 수 있지만 포브스에 따르면 # 관중수는 코로나 직전인 2019년보다 6프로나 하락했기 때문에 경기를 직접 보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TV나 핸드폰으로 자가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난것도 올해 MLB의 특징이지만,올해 MLB는 여러 대기록들이랑 명승부가 많이 나왔다는것은 사실이다.
9.3. 2023년
수비 시프트가 제한되고 피치 클락이 도입되었다. 주자와 내야수의 충돌방지를 위해 베이스가 3인치씩(약 8cm) 더 커졌다.[13] 임시적이었던 정규시즌 연장 승부치기 룰이 영구화되었다.[14]작년 대비 35세 이하 시청자의 시청률은 14% 증가했다. MLB.tv의 총 시청시간은 26% 증가했다. MLB Network의 존 헤이먼에 따르면 관객 수가 작년 대비 약 9% 증가하였으며, 이는 1998년 이래 최고기록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WBC의 역대급 흥행을 잘 이어받으며 6년만에 7천만 관중 회복에 성공했다. 격렬한 논쟁이 오가던 피치 클락도 우려에 비해 성공적으로 정착하며 경기 시간을 크게 줄이고, 베이스 크기의 확대는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와 코빈 캐롤로 대표되는 '뛰는 야구'를 부활시키며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9.4. 2024년
오타니 쇼헤이가 2024년 9월 20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50-50을 달성하고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 1920년 창설[2] 1946년 창설[3] 프로스포츠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한 야구와 다르게 미식축구와 농구는 대학스포츠에서 시작해서 초창기 수십년간 대학스포츠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초창기 아이스하키는 미국 스포츠가 아니라 캐나다 스포츠였고 캐나다와 캐나다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4] 물론 먼저 나선 것은 아니고 당시 메이저리그 소속 야구팀이 거의 없었던 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3의 야구 리그가 창설할 조짐이 있자 그것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다.[5]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를 가릴 필요가 있을 때는 163번째 경기를 시행하며(이른바 원게임 플레이오프. 둘다 탈락하는 경우는 상대전적으로 순위를 정한다.), 취소되고 재편성되지 못한 경기가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는 해당 경기를 치르지 않고 시즌을 마감한다.[6] “The most important thing that a young athlete must do is pick the right sport. Not one that they like just a little bit, but one that they love. Because if they don’t really love their sport, they won’t work as hard as they should. Me? I loved to hit.” https://sportytell.com/quotes/babe-ruth-quotes/[7] 현재 텍사스의 미식축구 팀 댈러스 카우보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서 1위를 몇 년째 수성 중이다. 2020년 2위 뉴욕 양키스, 3위 뉴욕 닉스, 4위 LA 레이커스, 5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8] 이 와중에 1993년에는 각 리그에 2팀씩 추가되어 총 28개 팀이 되었다.[9] 단, 주자가 있을 땐 25초 룰.[10] 특히 NFL의 경우 2007년부터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리그 차원에서 상당히 신경쓰고 있고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영국 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리그 측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영국 내 미식축구 인재들을 발굴, 미국 현지의 굴지의 미식축구 명문대에 입학 기회까지 가능하게 하는 NFL 아카데미를 올 2019년 9월부터 신설해 인재 육성에까지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11] 같은 지구 내에서 팀의 소속리그 경기는 40경기, 인터리그 경기는 20경기를 가진다. 예를 들어 NL 서부지구에 속하는 LAD는 서부지구의 NL팀과 40경기, AL팀 하고 20경기만 붙는다.[12] 데릭 지터같은 전국구 스타가 되지 못한 이유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떨어지는 야구 인기의 문제라고 옹호받기도 했으나 오타니 같은 선수가 나오며 반박되었다. 다만 투수는 타자보다 스타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에 커쇼의 스타성이 적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도 보기도 한다.포시부진으로 까이는 밈의 인기만 봐도...[13] 한 변의 길이가 기존 15인치에서 18인치로.[14] 단,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정규시즌에 한해서. 포스트시즌에서는 실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