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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우리 조선 빨갛게 빨갛게/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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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련
2.1. 소련계2.2. 영미계2.3. 프랑스계2.4. 기타 유럽계2.5. 조선계
3. 조선
3.1. 왕실3.2. 근왕파3.3. 수양대군3.4. 안평대군3.5. 대신파3.6. 향민계3.7. 기타
4. 남명5. 북명6. 일본
6.1. 마극종6.2. 무로마치 막부
6.2.1. 쇼군파6.2.2. 간레이파
7. 몽골8. 여진9. 모스크바 대공국10. 폴란드-리투아니아11. 신성 로마 제국12. 카스티야 왕국13. 아라곤 왕국14. 포르투갈 왕국15. 교황청16. 피렌체 공화국17. 메시카18. 오스만 제국19. 크림 칸국20. 마자파히트 제국21. 드막 술탄국22. 믈라카 술탄국23. 미래 세계

1. 개요

웹소설 트로츠키와 우리 조선 빨갛게 빨갛게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이름 옆에 ★ 표시가 있으면 가공의 인물이다.

2. 소련

2.1. 소련계

오랫동안 객지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면서 나이를 먹으니, 그 레닌마저 기겁했던, 지랄맞기로 유명한 성격이 조금 유해지기는 했지만, 어중이떠중이였던 붉은 군대를 통솔하고, 강군으로 양성하여 신생 소련을 지켜냈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나 별 다를 게 없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정세판단 못 하는 머저리거나 대장 노릇하고 싶어하는 기회주의자다."라고 까면서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등 노회한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숙청하고 추방한 정적, 이오시프 스탈린을 향한 강렬한 증오심만은 일반적인 인식과 다를 게 없다.
우연한 사고로 역사가 뒤바뀌어 프랑스에서 추방당하지 않고 계속 파리에 머물던 중,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의 권유를 받아 정치인으로서 재기하기 위해 15,000명에 달하는 의용군을 이끌고 한창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스페인으로 향했으나, 스탈린의 부히들이 중간에 국민군에게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려서, 목적지였던 바르셀로나 땅을 밟기도 전에 프랑코 국민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 안개에 휩싸여 지중해에서 물고기 밥이 되는 대신 1452년 조선국 원산에 이르렀다. 이후 원산현 호장 김밀의 장계를 읽고서, 자신들이 '일본령 조선'으로 공간이동을 한 게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중세시대 조선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조희선, 하령군 이화의 토벌군을 연달아 방어전에서 격파하고 자치권을 공식으로 인정받았다.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이 건국된 이후에 군사인민위원, 인민위원평의회 의장, 그리고 사실상 공화국의 구심점으로서 정력적으로 스탈린을 폄훼하는 연극을 만드는 등 국정에 임하고 영구혁명파와 현상유지파를 중재하던 중 조선의 소장파 관료들이 내전을 피해서 아직 어린 나랏님(?)을 데리고 망명하자 그 사실을 숨긴 채 중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양국 간 이해 증진'을 목표로 열린 경연에서 이홍위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유물론이 무엇인지 가르쳤다. 세 대군의 난이 끝난 이후 복벽에 성공한 이홍위의 지명으로 잠깐 동안 조선의 섭정으로서 대리청정을 하였었다.
귀국 후에 원래 직책이던 소련의 인민위원평의회 의장으로서, 30여년간 통치를 위해 연임하다가, 극심한 과로로 인해 한 번 의식불명 상태로 쓰려져 치료를 받은 뒤에 건강 상 문제로 마침내 사임한다. 은퇴 후 정원을 가꾸고 자서전을 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제 트로츠키가 남긴 것과 거의 동일한 유언장을 쓴 직후에 노화로 인해 자연사했다.
사후 엠버밍해서 우상화하자는 등의 제안은 부결되고, 트로츠키와 사제 관계이자 유사 가족 관계였었던 이홍위의 제안과 그로 인한 최종 결정에 따라, 트로츠키의 유해를 그의 사저에 수목장하였고, 사저는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과 경험을 최대한 살려내어, 원산 및 조선을 비롯한 수 많은 소련 가맹국들의 농업 경제를 근대화한 총책임자로서 활동하였다. 소련 건국 이후 농업인민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홍위의 복벽 이후로는 조선 향민계에 파견되어 에릭 아서 블레어와 그의 추종자들 같은 이상주의자 팔랑귀들 틈새에서 얼마없는 실무자로서 고생하였다.
  •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스피리도노바
    러시아 제국의 사회주의 정당, 사회주의혁명당 소속의 테러리스트. 과거로 트립한 이후의 소련이 자리를 잡으며 사람들의 삶이 안락해지자,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 민족주의의 바람을 타고 해외 진출을 주장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는다. 트로츠키와의 교섭 결과, 트로츠키의 권력을 흔들지 않는 조건으로 해외 진출을 허락받고, 조선 내 대신파와 협력한다.
소련 내에서 트로츠키 다음 가는 정치적 거물로 트로츠키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을 기회를 계속 노리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이후 전략을 바꿔서 자신이 살아있을 때는 몰라도, 그 다음 세대에는 사회혁명당이 집권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꾼다. 트로츠키가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임시 정부수반이 되면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권을 하나 했는데 2일만에 본인도 과로로 의식불명에 빠지면서 겨우 2일천하에 그쳤다.
트로츠키 사망 후 인민평의회 선거에서 공산당이 분열된 덕에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 사후 공산당이 분열된 것처럼 자기가 죽은 후에 사회혁명당이 분열되는 것을 막으려면, 차기 지도자를 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깊은 고민 끝에 내리고, 정계에서 은퇴하여 후계자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유자광에게 인민위원장 자리를 넘긴다.
몽골의 기병들과 함께 동부 유럽 일대에서 거의 기계적으로 약탈과 전쟁을 반복하며 아카토프의 경우 '악마상장', 바토르스키의 경우 '수레바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1]
고르바초프는 성이 하필 소련을 멸망시킨 그 인간과 같아서 시도때도 없이 드립의 타겟이 된다. 이름을 듣고 불길한 느낌을 받는 트로츠키와 에드워즈라던가, 위의 둘과 함께 유럽에서 날뛰면서 얻은 별명이 '경제 파괴자'라던가...
  • 나탈리야 세도바
    트로츠키의 부인. 작중에선 남편의 대국적 국가 경영 이야기의 비중이 큰 탓에 딱히 역할이나 잦은 출현은 없지만, 트로츠키와 개인적으로 관련된 회차들에서 좀 비중이 있게 등장한다.

2.2. 영미계

영어권 국가들과 아일랜드를 하나로 묶었다.
  • 에릭 아서 블레어(=조지 오웰)
    1984, 동물농장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기자 신분으로 트로츠키 원정군에 합류했다가 운명의 장난 때문에 졸지에 아내 아일린과 함께 15세기 조선에서 살게 됐다. 이상주의 성향이 강해서 내놓는 안건마다 트로츠키가 태클을 건다. 그렇지만 본인 스스로의 걸출한 문학적 능력 덕분에 문화예술인민위원으로 선출되어 인민평의회에 참석하는 등 나름 문화계 중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섭정직에 오른 트로츠키의 측근으로서 영의정으로 제수되어 직위상으로 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그렇지만 원산과 조선 간의 합의에 따라 문인일 뿐 정치인은 아닌 허수아비 내지 명예직이였기에 금성대군과 대신파의 사면을 요구하는 상소를 쓴 것을 제외하면 조지월(朝支月)이라는 호을 짓고 양반 자제들과의 사교활동에 열중했다. 그런데 끼리끼리 논다고 자기처럼 좋게 말하면 생각이 유연하고 편견 없는, 나쁘게 말하면 머리에 든 거 없고 줏대도 없는 선비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농촌 공동체 중심의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인민주의자(나로드니키)로 각성했다.(...)
트로츠키는 이를 막으려다가 곧 쓰임새[2]를 발견하고는 오히려 권장한다. 이들은 곧 향민계라는 이름의 집단으로 발전하고 머리에 꽃밭만 들어찬 블레어를 대신해 김종직을 비롯해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신생 파벌이다보니 신진 사류가 성장할 때까지는 일단 블레어를 실권은 없지만 좌우의정 없이 유일한 정승으로 두고 향민계의 편의를 봐주는 등 의도적으로 밀어주게 된다.
작중 등장인물들에게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까이는 횟수가 꽤 많다. 트로츠키 등 소련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신숙주나 이홍위 등 조선인들마저도 말이다.
  • 밥 에드워즈
    영국 독립노동당 당원, 트로츠키주의자. 원정군 내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한데 모으고자 일부러 분탕을 쳤다가 되려 '트로츠키주의자란 족속들은 전부 시류도 못 읽는 멍청이 또는 얍삽한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트로츠키에게 찍혔다가 비공식 원정군 내부 트로츠키주의 관리자로 낙점되었다. 공식 직책은 영어권 소비에트 제1분과 지휘관이다. 신 소련 건국을 지지하는 '영구혁명파'였는데 제17 농민 소비에트 조직 고문을 맡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혁명을 뒤로 미루게 되었다.
트로츠키 입장에서는 죽어도 안 아까운 인물인지라 조선을 협박하는 에센을 상대로 시간을 끌거나, 에센의 군세에 생존을 위해 피난 온 만주의 여진족 난민들을 관리 및 중재하는 등 북방에서 뼈가 빠지도록 구르게 된다. 이 와중에 반쯤 의도치 않게 해버린 사소한 행동으로 여진족 난민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사회주의가 싹트자, 이를 알게된 상부의 명령에 따라 민족문제 전문가로서 에센의 정복으로 타타르의 멍에가 갱신된 루스의 총관으로 파견가게 된다.
조선의 내란이 정통 세력인 세자 이홍위와 소장파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이나게 되자, 소련의 건국 과정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내각의 사회복지인민위원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 올리버 로
    미국 공산당 당원, 블랙 아메리칸. '더러운' 빨갱이 깜둥이도 용감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원정군에 합류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스탈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 감각덕분에 재빨리 트로츠키의 권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미국 공산당 인맥을 이끌며 외무인민위원으로서 영구혁명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소련 건국 이후에도 외무인민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소련의 대국적인 대외 정책에 관여하고 있다.
  • 로버트 헤일 메리먼
    ROTC 출신 미국인 원정군 지원자. 원래 역사에서는 국제여단 '에이브러햄 링컨 대대'를 지위하던 중 전사했었다. 원산 주민들과 굿판을 벌이고 어울려지냈다가, 단종과 외유를 즐기던 트로츠키에게 딱 걸려서, 조선인 망명자들 앞에서 온갖 욕설과 협박을 다 먹었다. 소련의 공식 건국 이후에는 작중에서의 등장 빈도가 줄어들었다.
  • 윈스턴 로밀리
    실존인물인 에스몬드 로밀리와 제시카 미트포드의 가상의 아들로 트립 당시 3살이라서 잉글랜드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성인이 되어서는 바빌로프의 제자로서 소련의 몇 안 되는 박물학자가 되었다.
믈라카 술탄국의 재상 툰 페락이 방문했을 때, 소련의 몇 없는 말레이어 구사자라는 이유로 통역으로 그의 귀국길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이후 얼떨결에 잔지바르까지 가게되었고, 또 유럽까지 긴 여행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여행기로 남겼는데, 이 여행기가 쥘 베른이 연상되는 벨 에포크 분위기의 문체로, 외전 회차에서 연재되어 호평을 받았다.
잉글랜드 귀족인 부모의 영향으로 문장학, 라틴어 등의 고급 학문들을 강제로 익혔고, 이것이 쓸모없다고 생각했었으나, 이 지식들이 작중 사건사고를 해결하는 데에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이후 소련 정보총국으로 배속된 뒤 주 피렌체 스페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대사로 임명받아, 이탈리아 내전에서 큰 활약을 한다.
  • 아일린 블레어
    조지 오웰의 부인. 조선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총을 들고 앞장서고 오웰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었다. 조선과 소련이 우호적 관계를 형성한 뒤부터는 작중에서 남편에 비해 비중이 없어졌다.

2.3. 프랑스계

  • 조지프 푸츠
    프랑스의 군인.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프랑스어권 소비에트 제3분과 지휘관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소련 건국 이후 제4 병사 소비에트 대표, 혁명군사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소련 인민위원평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 르네 에티앙블
    프랑스의 문학가. 제13 병사 소비에트 소속. 자신의 전공과 경험 때문에 조선어와 동양 고전에 대한 지식을 빨리 습득하여 트로츠키의 비서 겸 전속통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 올리비에
    프랑스계 원산인, 켈틱 1호의 선장의 아들. 아버지의 가업을 따라서 뱃사람이 되었고, 윈스턴 로밀리와 함께 기상천외한 남양 항해 여행에서 조수 겸 승조원으로서 동행하였다.

2.4. 기타 유럽계

  • 하네스 마이어
    스위스의 건축가. 바우하우스의 2대 교장. 산업인민위원으로 이홍위의 복벽 이후 공조판서 이명민과 의기투합해 조선을 갈아 엎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작중에서 트로츠키의 귀국 이후에 비대해진 예산 문제로 인해 동료인 이명민과 같이 대차게 까이긴 했으나, 두 사람 특유의 건축가적 광기와 의지로 어찌저찌 해결해내어 예정될 뻔한 훈춘 탄광행 노동교화형은 피했다.

2.5. 조선계

  • 박정남(朴井男)
    원래 하령군 이양이 이끈 토벌군의 병졸이었으나 포로로 붙잡혔을 때 원산 소비에트가 내세운 만민평등에 매료되어 그대로 정착했다. 제17 농민 소비에트의 구성원이다. 1453년, 농민 소비에트 대표로 총회에 참석해서 부역 신청제를 제안했다. 이 부역 신청제가 트로츠키의 안배로 조선인 소비에트 대표가 낸 안 중에서 처음으로 가결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후 뱃사람이 되어 18년 후에는 WRS 프리드리히 엥겔스 호의 선장이 된다.
  • 유자광
    유극의 얼자 출신으로 태어나 자신의 재능을 숙이고 방만하게 살았으나, 세 왕자의 난 이후 권세가 꺾인 집안에서 적서의 차별 끝에 죽을 위험이 서서히 다가오자 어머니인 나주 최씨와 함께 향민계에서 일어나는 적서차별반대운동에 기대 집안을 떠나 원산으로 이민을 한다. 원산에 도착한 뒤로는 쏟아져 나오는 포목과 삯바느질 하는 어머니를 보고 영감을 얻어 어머니를 설득하여 신발 공장을 차리게 하였으며 이후 공장장으로서 성공하고 소비에트 의원으로 나선 어머니의 보좌관으로서 일하게 되었고, 이후 소련정보총국장이 된다.
스피리도노바가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 발빠른 대처로 당의 공중분해를 막는 공을 세우면서 사회혁명당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해졌다. 트로츠키 사후 선거에서 승리한 스피리도노바가 유자광에게 인민위원장 자리를 넘기고 은퇴하면서 트로츠키에 이어 두번째 인민위원장이 된다. 역사에는 주로 전설적 인물인 최금옥과의 관계가 강조될 뿐, 유자광 본인은 별 특징없는 밋밋한 지도자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 최금옥(崔金玉)
    본디 '최부엌이'라는 아명만 있어서 나주 최씨로만 통하던 노비 출신이다. 유자광의 어머니로, 아들이 이대로 집에 붙어있다간 죽게 생겼다는걸 알자 원산으로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아들의 주장을 듣고서 신발 공장을 차린다. 아들의 영민함이 어머니를 닮은것인지, 포목이 쏟아져 나오니 삯바느질 일이 많을게 아닌가하여 어떻게든 일거리를 찾아내고, 공장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이름이 없으면 지으면 됩니다'라는 소련 공무원의 말에 의식이 트이게 되어 최금옥이라는, 돈 많이 벌 것 같은(...)이름을 새로 얻는다.
이후 별장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무두질 기계 홍보 포스터[3]를 보고는 공장을 정부 소유로 돌리고 생산자 조합을 결성하여 가죽공장까지 운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간 지역 일자리 창출을 해온 과정에서 얻은 명망을 통해 생산자 조합장을 역임하고, 사치를 하는 성격이 아니니 늘어나기만 하는 수입을 정부와 사회에 환원하다 보니, 얼떨결에 노동영웅 훈장을 받고, 제화공 소비에트 대표로서 소비에트 의원직에 나서기까지 한다.
그렇게 입문하게된 정치에는 초연해보이는 듯 했으나, 마리아 스피리도노바와 정치적 거래로 자신의 아들 유자광을 스피리도노바의 부관으로 넘긴다. 이후 하네스 마이어의 후임으로 산업인민위원까지 역임하게 된다.
  • 마리 블레어
    에릭 블레어가 영의정일 당시 입양해서 딸로 기른 조선인 고아. 성장 과정에서 양아버지에게서 문학적 능력과 소양, 그리고 이상주의적 면모를 배웠다.
그러나, 양아버지와 다른 점으로는 대외 확장 정책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식민주의적 행보 논란 때문에 벌어진 원산 내 유럽계 민족주의자들의 소요 사태에서 조선계 주민들을 대표하여, 소련 인민경찰들의 폭동 진압을 지지하며 유럽계 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이상주의적 모습보단 현실주의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매원
    광대 출신 천민으로 천대받으며 살다가 자신에게 트로츠키같은 높으신 분들조차 자신에게 동등한 대우를 하는 공산주의에 감화되었다. 공산주의 선전 연극을 하다가 조선에 공산주의를 전파시키기 위해 1인극을 시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판소리의 창시자가 되었다.

3. 조선

3.1. 왕실

  • 문종 이향
    조선의 제5대 국왕. 트로츠키가 트립한 날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 단종(丹宗) 이홍위
    조선의 제6대 국왕.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내전이 시작되자 신숙주 등 소장파 신료들과 함께 원산으로 망명했다.[4] 도주하는 과정에서 한 어린아이의 시신을 자신의 시신으로 위장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5] 믿었던 숙부들의 배신 때문에 "인간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지만, 예외적으로 원산에서 유사 부자관계를 형성한 트로츠키만은 굳게 신뢰한다. 그 연장선상으로 공산주의 역시 호의적으로 바라본다. 미래를 알게 된 후 트로츠키가 말한 볼셰비키의 로마노프 일가 전원 처형에 대해서는 천명을 잃은 필부를 죽인것이니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원산의 힘을 빌어 수양을 무너뜨리고 다시 왕위에 오른다. 복벽 이후엔 경복궁 내에 한림원이란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곤 동서고금의 철학을 공부하여 원산의 경험을 조선에 적용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누구보다 왕의 공부를 위해 힘써야 할 조선의 신하들이 '주상께선 공부에 미치셨다.'라고 할 정도로 연구에 미친듯이 매달려서 국혼도 이립이 되어서야 할 정도.
원산에서 트로츠키의 도움을 받음과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 때문에 왕이란 작위에 대해 일종의 혐오감을 나타내고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했으나, 트로츠키와의 대화로 전제군주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인정하게 된다. 다만 원산에서의 일로 봉건적인 의식은 거의 사라져서 논문을 왕후와 공동저자로 제출할 때 이홍위라는 이름 그대로 서슴없이 제출하기까지 한다[6].
자신의 후계자가 될 원자가 탄생한 이후, 아들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아들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가 위협받을까 걱정한다. 이후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이란 나라의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르크스를 문묘에 공자와 대등한 위치로 배향하거나 정도전을 복권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사후 원역사와 같은 단종이지만, 대리청정을 하게된 윤순비의 제안[7]에 의하여 '끝 단(端)'이 아닌 붉을 단(丹)을 쓰는 단종(丹宗)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 윤순비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이유로 이홍위의 중전이 되었다. 한동안 이홍위와 함께 논문을 쓰는 등 사상적 동지에 가까운 관계였다가, 원자를 출산한다.

3.2. 근왕파

  • 신숙주
    패전의 책임을 물어 대신파를 실각시키고 승정원 동부승지로 당상관이 된 것은 좋았지만,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자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가진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부상하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여기에 그나마 두 대군을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인 지방군마저 권토중래를 노리는 대신들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에 신숙주는 이렇게 된 이상 목숨을 부지할 방법은 제3의 세력에 의탁하는 수밖에 없다며 두 대군이 시가전을 벌이는 동안 두 대군의 이름을 팔아 단종을 확보하고 동료들과 함께 원산으로 망명했다.
원산 망명 동안에는 늦게 배운 포커로 노름판을 전전하면서 무료함으로 달래다가 그 특유의 천재성으로 '저들'이 경연에서 말한 '근대 자본주의적 사회'의 함의가 무엇인지 벼락처럼 깨달아 내면의 '유학자 신숙주'를 죽이고 '근대인 신숙주'로 거듭났다.[8] 그리고 먼 미래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동아시아 공산주의 혁명 대전략'을 입안하고 그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서 일본으로 건너가 통상 전면 허용을 선언하여 수양대군을 엿먹이고 일향종 신도들 사이에 레닌 신앙을 퍼뜨렸다.
이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예조판서직에 올랐다. 복벽 후 3파벌 중 친소파의 좌장.
  • 박팽년
    신숙주가 단종을 원산으로 모시겠다는 소리에 발끈하나 대책도 없느냐는 신숙주의 반박에 침묵한다. 이후 단종의 동의에 소련으로 가서 의료진[9]을 일개 '잡술인'으로 여겨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가 한 소리 들었다. 신숙주 일본 파견 이후 원산대도호부사로 임명되었다. 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병조판서직에 올랐다. 소련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개혁에 맞서는 계파인 신 대신파의 좌장이 되었다.
  • 성삼문
    신숙주 일본 파견 이후 함길도 병마 도절제사로 임명됐다. 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호조판서직에 올랐다.
  • 하위지
    신숙주 일본 파견 이후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됐다. 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이조판서직에 올랐다. 복벽 후 3파벌중 대신파의 이론적 기반이 제일 약했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끌어와 대신파 세력의 기초로 삼는다.
  • 이개
    신숙주 일본 파견 이후 함길도 수군 도절제사로 임명됐다. 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형조판서직에 올랐다.
  • 이명민
    안평대군의 최측근. 한양 내전 마지막 날 사세가 확연히 수양대군에게 기우는 듯 보이자 곧바로 도성을 빠져나가 소련으로 망명했다. 거기에 죽을 줄로만 알았던 홍위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데꿀멍하여 죄를 용서받았다. 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공조판서직에 올랐다.
왕자의 난 이전부터 건축에만 몰두해 지탄받는 사람이었지만, 복벽 이후로는 조선의 재개발 붐과 더불어 하네스 마이어와 만나고 난 뒤에 같이 의기투합하여, 건축 얘기만 나오면 서로 미쳐날뛰는 건축광이 되었다.
물론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되려 독이 될뻔한 일도 있었는데, 트로츠키가 조선 섭정으로 있을 때 하네스 마이어와 예산 생각도 하지않고 너무 많은 자금과 자원을 충당하고, 그로 인해 생길 부작용들을 생각치 않은 상태에서 조선과 원산을 주먹구구식으로 '재개발'한 것이였다.
당연하게도 귀국한 트로츠키가 사태 파악이 끝나자마자 극대노하였으며, 두 건축광에게 '이 난장판'을 수습하지 않으면 혼춘 탄광에 일벌백계 목적으로 투옥할 것이라고 은근슬쩍 협박하여 사태를 수습할 것을 명령했다. 굴라그는 죽어도 싫었는지 동료 하네스 마이어와 함께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하면서, 사태를 그나마 좋게 마무리지었다.
  • 권람
    한명회의 활약으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자, 곧바로 소련으로 줄을 갈아타고 수양대군을 끌어내리는데 앞장섰다. 이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대사헌으로 제수되어 수양대군 계파를 철저히 발본색원했다.
숙청 이후에는 정치적 기반이 전부 날아간지라 소련에 빌붙어 친소파로 분류되나 소련 입장에서도 쓸모가 없기에 몽골, 루스로 파견되는 등 안 죽으려고, 열심히 구르게 된다.

3.3. 수양대군

  • 수양대군 이유
    내전 끝에 안평대군 일파를 격파하고 책봉까지 받았지만, 남궁복벽으로 정통제가 다시 황제가 되면서 책봉이 취소되고 권람의 배신으로 결국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을 당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의경세자
    아버지 수양대군이 역적으로 선포되어 도망치는 것을 보고, 당황하며 쳐다보기만 한다.
  • 임어을운
    원 역사에서 김종서를 철퇴로 때려죽인 수양대군의 노비. 수양대군을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며 언젠가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면 팔자를 고칠 기대를 품고있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교착상태가 길어지며 자신이 할 일이 점점 사라지자 이러다가 수양대군이 이기더라도 잊혀져서 공을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조바심에 휩싸였고, 무식한 노비였던 그는 한명회와 수양대군 등이 한확을 간단히 죽여버리지 않고 한확과 갈등하며 쩔쩔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만들고 공을 인정받기 위해 한확을 죽여버리면 된다는 간단한 결론을 내고 독단적으로 한명회가 한확에게 선물하라고 시킨 왜도로 한확을 베어 죽인다.
이 장면이 트로츠키가 이홍위에게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을 가르쳐주는 장면과 교차되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연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확을 살해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한확의 종의 철퇴에 맞아 사망했지만, 그 사이 몇 초간 노비가 아닌 운명의 주인이 되며 자유로움을 느꼈고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높으신 어른들은 노비의 칼질 한 방에 운명이 뒤틀려버리며 운명의 노예가 된다.
  • 정인지
    수양대군이 용상에 오른 이후 영의정으로 제수되었으나, 명에 고명주청사로 가다가 그만 병에 걸려 죽고 만다.
  • 한명회
    수양대군의 최측근. 수양일파의 두뇌로 여러 모략을 꾸미고 다녔고 수양이 왕위를 친탈하는 기간동안 공신에 올라 권세를 누렸으나 이후 수양이 몰락하고 한명회 또한 몰락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죽지는 않고 원산 근교의 석회암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살아남고, 굴라그 안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접한 뒤 굴라그 강제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을 벌인다.
  • 한확
    영락제, 선덕제의 처남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몸값을 올리면서 한명회가 건넨 백지수표를 받고 수양대군 편에 섰다. 그런데 안평대군의 기세가 생각보다 강하자 말을 바꿔 계속 간을 보다가 공명심에 눈이 먼 임어을운에서 살해당했다. 수양대군은 임어을운이 자기 마음대로 죽인 거라고 사실대로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수양대군이 암살했다고 생각한다.
  • 홍윤성
    대신파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하여 출병했다가 이징옥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고 사망했다.
  • 심회, 심결
    심온의 아들들로 수양대군이 외삼촌으로 우대하지만 난이 끝나고 몰락하여 굴라그 광산의 죄수로 몰락한다.
  • 양녕군 이제
    역적으로 낙인찍혀 대군호도 박탈당하고 처형되었다.
  • 홍달손
    신숙주에게 속아 단종 일행을 통과시킨다. 이후 대신파에 승리하고 청주에서 학살을 진행한다.
  • 김윤수
    청주가 무너지자 부산진에서 대신파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다.
  • 강순
    황해도 정방산성 전투에서 대신파에게 패배하자 항복한다.

3.4. 안평대군

  • 안평대군 이용
    대신파가 몰락한 이후 수양대군 일파와 왕위를 놓고 내전에 돌입했다. 단순히 세력의 크기로만 따지면 우위에 점하고 있었지만, 결국 조급함으로 일을 그르쳐 수양대군에게 패배하고 효수당했다.
  • 영양위 정종
    이홍위를 지키고 있었으나 신숙주 등 소장파 5인에게 낚여 그대로 내주고 만다. 수양대군 집권 이후 경혜공주와 함께 처형되었고 홍위가 수양에게 심히 분노를 표한다.

3.5. 대신파

  • 금성대군 이유
    두 형들의 권력투쟁이 내전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자 부인의 건강을 핑계로 도성을 떴다. 그러나 실제로 내전이 일어나자 대신들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내전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공신들 사이의 물밑 거래와 블레어의 상소로 수양과는 다르게 용서받았고 세월이 흐른 후에는 사면까지 받는다.
  • 김종서
    대신파의 주축. 본인이 천거한 하령군 이양이 트로츠키 의용군에게 참패하여 파직당했다. 이후 한양에서 내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금성대군을 옹립한 다음 병사를 일으켰다. 이후 수양의 처형을 보고 한양 출입 금지령만 받고 변방으로 가면서 단종에게 마지막 절을 올린다. 이후 사면되고 수군으로 옮겨 해군제독이 된다.
  • 이징옥
    김종서의 측근. 홍윤성의 북벌군을 격파했다. 사면 후 수군으로 옮긴다. 성리학밖에 모르는 외골수라서 '해적이니 토벌한다' 수준의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드막 술탄국을 정벌해버리고, 해적들을 생포해와서 드막에서 농사를 짓게 만든다. 이것이 소련 국내에 현지 왕국을 정복하고 현지인들을 납치해서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우는 제국주의적 행보로 알려지며, 이아구와 함께 제국주의자 커플이란 별명을 얻는다. 그 후에 세월이 흘러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자, 군에서 은퇴한다.
  • 황보인
    김종서와 함께 소장파 신료들의 탄핵으로 파직당했다.
  • 민신
    대신파측 외교관. 명에 금성대군의 책봉을 요청하러 가나 정인지보다 늦은지라 반역자의 신하라 해서 감금된다. 허나 한계란에게 한확이 수양에게 살해당한 사실을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남궁복벽으로 책봉 취소까지 이뤄낸다. 남명에 망명한 것을 가장하여 조선과 소련의 첩보원으로서 잠입했고, 늙어죽는 날까지 조선으로 정보를 보내온다. 사후 공훈을 인정받고 복권된다.
  • 허후
  • 정분
  • 조극관
  • 조수량
  • 조석강
    청주에서 수양대군에게 패배한다.
  • 황보공
  • 박이령
  • 이승평
    평안도 도절제사. 세 왕자의 난이 평정된 후 사면되어 국경방비를 맡게 되었다.

3.6. 향민계

  • 김종직
    입신양명의 꿈을 가진 젊은 진사. 세 왕자의 난 동안 느꼈던 무력감과 오욕감을 모조리 씻어내준 공산주의에 매료되어 블레어의 사이비(...) 인민주의 세력 향민계에 투신했다. 헛바람이 잔뜩 들어간 블레어와 달리 정치적 안목도 갖추고 있어 사실상 향민계의 리더나 다름이 없다.
  • 김숙자
    김종직의 아버지. 길재의 정통제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공산주의에 빠진 아들을 처음에는 못마땅해했으나 사람들이 아들을 칭찬하는걸 보고 자부심을 느끼며 자신이 애 아버지라고 자랑하고 다니게 된다.
  • 김굉필
    조선 신문의 수습기자로써 최금옥의 연설을 취재하며 등장. 이후 일본에 향민계의 사상을 전파하고 다닌다.

3.7. 기타

  • 김밀
    원산현의 호장. 난데없이 원산 앞바다에 나타난 트로츠키 의용군을 눈이 퍼런 왜구로 오인하여 공격했다. 이에 그때까지도 여전히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이 '일본령 조선'에 왔다고 생각했던 트로츠키 일행이 정식으로 항의하러 찾아오자 자신이 어찌할수 없다고 판단하고 어째 대화를 해보려 하나 그를 본 트로츠키 일행은 그를 제국주의의 앞잡이를 자처하는 자로 판단한다. 말이 안 통하자 자신의 집을 관청이라 판단한 트로츠키 일행의 행동에 지레 겁먹고 몸종들과 함께 이들을 방심시킨 후 제압하려고 했다가, 습격의 조짐을 눈치챈 메리먼의 권총에 역으로 반격을 당하여 죽었다.
  • 조희선
    덕원도호부사. 색목인 도적무리가 원산현 호장 김밀을 살해하고 마을을 점령했다는 향리 오건석의 보고를 듣고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군졸 800을 이끌고 원산에 당도했다. 그런데 도적떼와 나눌 이야기는 없다며 트로츠키 일행이 보낸 항복 사절을 살해하고 효수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결국 이에 격분한 트로츠키 일행의 기관총 세례에 휘하 병력 대부분과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 하령군 이양
    우찬성 겸 판병조사. 김종서, 황보인 등 노신들의 추천을 받아 4도 병마통제사로 임명되어 군사 3만을 이끌고 원산을 공격했다. 나름대로 원산 도적떼의 화약무기에 대비를 하고 전투에 임했으나 상상을 초월한 근대 화기의 위력에 병사 3천을 한순간에 잃었다. 이후 증파된 병력 6만으로 다시 한 번 공격을 감행했지만, 원산 소비에트의 사보타주로 진열이 붕기화여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고 만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혈혈단신으로 참호로 돌진하여 사실상 자결했다.
  • 정도전
    당연하겠지만 작중 시점에서는 오래 전에 사망했으므로 실존인물로서 등장하는것은 아니다. 이홍위가 전근대 군주로서의 자신과 사회주의자로서의 자신, 그리고 소련과 함께 가기 위한 나라를 설계하기 위해 공산주의 체제를 택하길 원하나 아들로 인해 차마 혁명을 유도하거나 스스로 왕정제 체제를 버릴 수는 없는, '혁명이 없는 사회주의'라는 모순에 대해 갈등할 무렵, 이홍위의 상념 속에서 정안대군(집권 전의 태종), 수양대군, 안평대군을 이어 차례로 나타나서 권력의 본질과 국가의 재설계에 대해 논한다.

4. 남명

  • 정통제/천순제 주기진[10]
    경태제가 역병으로 쓰러진 틈을 타 조길상, 석형 등에 의해 원 역사보다 3년 빨리 복벽에 성공했다. 경태제의 수양대군 책봉을 취소했다. 이후 자신을 황제로 올리고 실권을 휘두르려던 조길상, 석형 등을 처리하려 했지만 에센의 흥기로 북변이 어지러운지라 도리어 실각해 피난한 남경에서 스스로를 정통정부로 선포하고 북명과 대립한다.
  • 한계란(=공신부인 한씨)
    한확의 누이. 선덕제의 후궁. 딱히 살가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유일한 혈육인 한확이 수양대군 일파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천순제에게 부탁하여 국왕 책봉을 취소시켰다.
  • 성화제 주견심
    정통제의 장남이나 토목의 변 이후 폐태자되어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차에 한계란이 그를 위로해주어 가까이 지냈다. 탈문의 변으로 다시 황태자가 되지만 경태제가 복위하며 남명으로 피난하게 된다.
    주기진 사후 제위를 계승했고 몽골과의 밀약을 맺은 뒤 북명을 정벌하여 주첨선을 죽이고 중원을 다시 통일한다. 그 과정에서 북명의 모든 공장을 파괴하도록 지시하며 북명의 산업화를 백지화시킨다. 그러나 지나친 과로로 몸을 혹사시키면서 중원 재통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식 하나 없이 급사해버린다. 이후 명은 소련과 몽골의 협의로 대명합중국으로 재탄생한다.
  • 공온후 오근
    우겸의 건으로 석형과 조길상에게 원한을 품은 대신.
  • 이현
    내각대학사로 탈문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여 천순제제에게 아부한다. 조선을 방문하여 조선 조정에 서역인을 보았음을 천순제에게 증언한다. 하지만 조선의 발전을 보지는 못한다.
  • 마앙, 손당
    천순제의 명으로 여진을 토벌하다 석형과 조길상의 숙청 역할을 맡는다.

5. 북명

  • 경태제 주기옥
    대명 제7대 황제. 수양대군을 조선의 국왕으로 책봉했다. 이후 트로츠키 의용군이 과거로 오면서 퍼진 역병에 걸려 원 역사보다 빨리 천순제에게 폐위당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죽지는 않았고 유폐되어있다가 조길상 등의 반역 과정에서 양왕 주첨선의 기지로 복벽하게 된다. 북경에서 스스로를 정통정부라 선언하고 남명과 대립한다.
  • 홍치제 주첨선
    홍희제의 5남. 조길상 등이 자신들을 숙청하려는 천순제를 역으로 보내버리고 황제로 올리려 했으나 그렇게 업혀서 황제가 되어봤자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생각해 역으로 자신이 경태제를 복벽시켜 버리고 복벽의 공로로 북명의 실권자이자 후계자 자리를 양위받았다.
주기옥 사후 제위를 계승한 뒤에 소련을 모방하여 산업화를 시도한다. 산업혁명기 영국이 연상될 정도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고통을 주는 구조였음에도 어느정도 성과는 있었으나, 몽골의 배신으로 남명에게 무력하게 정벌당했고 본인도 사망한다.
그러나 사후 반 주견심파들에 의해 우상화되어 생전의 실책들마저 전부 미화되고 자애로운 노동자의 아버지로 기억되게 된다.
  • 우겸
    조선에서 민신이 사절로 오자 역적이라며 목을 벨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정통제가 복벽하자 주살당한다.
  • 석형, 조길상
    토목보 당시 우겸의 추천으로 경태제의 신임을 받았은 환관들이나 정통제를 복위시키는데 앞장선다. 하지만 천순제가 숙청하려 하자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복벽이후 숙청된다.
  • 조흠
    조길상의 조카로 몽골계 병사들의 지휘책임을 맡고있다.
  • 정선
    주첨선과 함께 조선을 방문해 풍요로운 농장을 보고 경악한다.

6. 일본

6.1. 마극종

  • 렌뇨
    원 역사 정토진종 혼간지파 제8대 법주. 일본 내 공산주의 조직 관리자로 낙점되었다. 공산주의를 불교 신앙의 일종으로 위장한 형태인 마극종이 실 역사의 정토진종을 대신해 널리 퍼진다. 공산주의 자체의 호소성, 조선, 소련의 재정적 지원 등으로 하층민과 상인을 중심으로 더 멀리, 더 빨리 퍼졌다.
  • 준뇨
    렌뇨의 맏아들.
  • 지쓰뇨
    렌뇨의 5남. 렌뇨가 가장 신임하는 아들.
  • 진보 나가노부
    하타케야마의 슈고다이 진보 가문의 가독 진보 쿠니무네의 아들. 그러나 진보 쿠니무네는 후계자 싸움에서 잘못된 편을 들어 처형당했고 나가노부는 낭인 신세. 렌뇨의 눈에 들어 마극종의 가르침을 받고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된다. 마극종의 도움으로 엣추국을 차지하고 하타케야마와도 단절하며 센고쿠 다이묘로 떠오른다. 이후 일본에 육식을 퍼뜨린다.
  • 마쓰다이라 노부미쓰
    원 역사 도쿠가와 가문의 선조. 이세 가문의 가신으로 이세 모리토키를 견제할 생각으로 렌뇨를 도와주고 가르침을 청하며 마극종에 합류한다. 역시 마극종의 도움으로 미카와국을 차지한다. 진보와는 다르게 사상적으로도 열렬한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마극종의 강력한 힘을 빌어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쪽.
  • 마쓰다이라 지카타다

6.2. 무로마치 막부

6.2.1. 쇼군파

6.2.2. 간레이파

  • 아시카가 요시미
    조도지의 주지승이었으나 환속하여 이세 모리토키를 오른팔로 삼는다.
  • 이세 모리토키
    렌뇨가 눈독들였던 인물 중 하나이나 오히려 배반하고 마극종 탄압에 앞장선다.
  • 이세 사다치카
  • 이세 모리사다
    모리토키를 양자로 들인다.

7. 몽골

  • 애원천성 대가한 에센 타이시
    몽골 제29대 대칸. 타이순 칸을 시해하고 대칸의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정통성이 없어 언제 하극상을 당할지 모르던 처지에 조선에서 내우외환[11]으로 흔들린다는 소식을 들려오자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생각보다 조선이 강건한 상태라, 전쟁없이 협박만을 하게 된다.
조선 섭정 자격의 트로츠키가 교섭을 시도하여 예상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호시를 개설하는데 성공했고, 이 과정을 피 한 방울 없이 조선을 굴복시킨 것으로 인정받으면서 몽골족으로부터 카간으로 인정받게 됐다.
내부가 안정되고 조선, 소련과의 무역으로 당시 다른 철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강도와 물량을 자랑하는 소련제 강철을 얻게 되면서 무력적으로도 강대해지면서 칭기즈 칸 급의, 아니 그 이상가는 속도의 정복전쟁을 펼치는 희대의 정복군주가 된다. 모굴리스탄 칸국, 주치인 울루스까지 정복해 옛 제국을 재건하고는 트로츠키가 나온 루스를 경계해 거의 빠져나오기 직전이었던 타타르의 멍에를 다시 씌우고야만다. 명나라가 다시 흔들리는 틈을 타서 이번에는 북경을 털어먹는데 성공한다. 나이가 든 후 아들인 호루크다슨에게 권력을 양위한다.
  • 호루크다슨
    에센의 아들로 안정적 권력 승계를 위해 에센에게 양위받는다. 군재는 부족해도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서 무난히 권력을 승계하는 듯 했으나 오스만 정벌 도중에 오스만군의 화승총에 저격당하여 애꾸눈이 된다. 이때 소련 출신 의사의 수술과 치료로 목숨을 건졌으며,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권력을 노리는 반대파들을 숙청함으로서 되려 권력을 더 공고히 다져나가, 불의의 부상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치밀한 계략을 보여준다.
  • 아락투무르 바가투르
    원래는 에센의 뒤통수를 쳤지만 에센이 소련과의 무역 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냄으로서 칸의 정통성을 확보하자,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였는지 에센에게 계속 충성하고 있다. 에센이 요동(=만주)과 동유럽을 정벌하고 세운 동녕총관부의 총관에 부임했다가 파란왕(폴란드 왕)으로 등극하였다.
  • 카탄투무르 아수드
    원래는 에센의 뒤통수를 쳤지만 에센이 소련과의 교섭을 잘 마무리지어내었기 때문에 칸의 정통성을 확보하자, 에센에게 아부하고 있다.
  • 보르지긴 마르코르기스
    호루크다슨의 사촌이자 에센의 여동생의 아들로 조카이다. 에센이 그의 아버지인 토크토부카 칸을 살해했지만 에센에게 장수로 충성한다. 보르지긴에서 알 수 있듯 황금씨족이면서 군재가 있어 군공을 많이 쌓아 호루크다슨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호루크다슨의 패배를 덮기 위해 고의로 패배하는 역할을 하게 된 이후 그를 살리고 싶은 에센 칸의 명령에 따라 소련으로 망명한다.
  • 쿠춤 무하마드 칸
    킵차크 칸국의 칸. 무능하다며 까내리는 에센에게 루스 때문이라고 항변하자 이에 에센은 루스를 정벌할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반감을 품고 보르지긴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반기를 들었으나, 패배하여 몽골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8. 여진

  • 이고납합
    이만주의 아들. 에센이 만주를 청소하는 동안 이만주가 사망하고 부족이 몰락하는 통에 그나마 여진인들을 대우해주는 조선의 북청으로 귀화한다.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어 관리가 안되는 여진을 관리하려는 에드워즈의 의향을 제일 먼저 읽고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에드워즈가 그를 대리인 삼아 북청 난민 캠프의 여진족들을 통제하게 된다. 이후 만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수반이 된다.
  • 이아구
    이만주의 아들이자 이고납합의 동생. 국가, 민족 따위 개념도 없고 여러 부족에 불과한 만주족을 하나의 덩어리로 취급하는 에드워즈를 이해하지 못해 가르침을 청하자 사회주의 서적만 잔뜩 추천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추천받은 책 이외에 헤겔, 포이어바흐, 소렐 등의 서적을 읽고 자기들만의 해석을 열심히 하더니 만주족 민족주의와 결합된 뭔가 이상한 사회주의를 창시해버린다. 이게 북청 밖으로는 만주족들의 자생적 사회주의가 등장했다고 소문이 나면서 에드워즈만 골치를 썩게 되었다. 이고납합이 수반이 된 이후 지도자 원리에 따라 지도자는 하나여야 한다는 이유로 만주를 떠나 남태평양으로 가고 이징옥과 절친한 관계가 된다. 잔지바르를 점거한 후에는 민족이 없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민족을 만들어주겠다며 아프리카에 남아서 아프리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임시 수반이 된다.

9. 모스크바 대공국

에센 타이시에게 정복당하면서 미래인들이 자신들이 만든 나비효과를 깨닫게 된다.
  • 이반 3세
    러시아가 공화국이 된 후 귀족 작위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귀족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냥 몽골로 귀순해버린다.

10. 폴란드-리투아니아

  • 이반 드미트리예비치 셰마킨
    아버지가 바실리 2세에게 눈이 먼 원한으로 에센에게 붙었으나 공동대공 자리에서 일단 만족은 했으나, 결국 권력 문제 때문에 봉신계약을 명분으로 폴란드에 붙는다.

11. 신성 로마 제국

  • 프리드리히 3세
    이탈리아 내전을 틈타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하려 했으나 휘하 병력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보나롤라가 순교해버리면서 교황의 권력이 공고해지는 결과를 맞는다. 이후 대 오스만 십자군에서 오스만이 멸망해버리면 교황권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리라 생각해서 바예지트 2세와 밀약을 맺어 오스만을 기독교 국가로 존속시키는 계략을 실행한다.

12. 카스티야 왕국

  • 엔리케 4세
    신대륙이 발견된 후 신대륙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국고를 퍼부어서 신대륙에 물자를 지원하고 선교사를 보낸다. 때문에 원역사와 달리 스페인인들이 아즈텍인들을 학살하는 대신 아즈텍인들을 후원하는 관계가 되며 신대륙 개척은 돈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카스티야의 국고를 탕진하는 사업이 된다.
  • 이사벨 1세
    엔리케 4세의 뒤를 이어 왕위를 차지한다. 돈도 안 되고 자기 정적이던 엔리케 4세의 치적인 신대륙 지원에 관심이 없었기에 지원을 끊는다.
  • 벨트란 데 라 쿠에바
    알부케르케 공작으로 산티아고 기사단장. 역사개변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첫 도달한 유럽인이 되었다.
  •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
    추기경의 조카로 카스티야의 신대륙 선교를 담당한다.

13. 아라곤 왕국

  • 페르난도 2세

14. 포르투갈 왕국

  • 주앙 2세
    프레스터 존을 찾아 역사보다 더 빨리 아프리카를 돌게 된다.
  • 아폰수 5세
    조선에서 외교적 목적으로 방문한 이징옥과 소련인들에게서 조선의 건국 역사를 듣고 나서는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왕가의 빈약한 권력을 강화할 계획[12]을 세웠다. 그리고 밤이 되자, 수도에 머무르던 불충한 귀족들을 야음을 틈타서 전부 철퇴로 숙청해버리고, 특히나 자신과 완전히 척을 지던 정적인 페르난구 브라간사를 1,000년이나 된 오래된 로마 수도교 위에서 집적 철퇴로 처단함으로서 절대 왕권을 얻었다. 게다가 그 오래된 로마 수도교는 아폰수 5세의 의지에 따라 '좋은 대나무의 다리'로 다시 불리게 되었다...
  • 에스테반 다 가마
    희망봉을 돌아 잔지바르에 도달한다.
  • 페르난두 브라간사
    어린 임금을 농단하는 난신적자로 낙인찍혀 자신의 수하들은 이징옥과 소련군에게 토벌당했고, 자신은 소련군의 소총에 다리 부상을 입고 기어서 도망치려 했으나 자신이 죽기를 잔뜩 벼르고 있었던 아폰수 5세의 철퇴에 머리에 으깨져 로마 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수도교 위에서 사망했다.

15. 교황청

  • 바오로 2세
    211대 교황. 러시아의 유럽 침공을 기회로 교황권을 크게 확대시켰으나 반발하는 추기경들의 암살 미수로 혼수상태에 빠져 이탈리아 내전의 원인을 제공한다. 내전이 끝나기 직전 절묘한 타이밍에 기적적으로 깨어나서 사보나롤라를 예언자로 인정하고 내전을 종결시킨다.
  • 로드리고 보르지아
    친 바오로 2세 추기경. 바오로 2세가 혼수상태에 빠진 후 반교황파 추기경들에게 연금당한다. 그러나 경비들에게 뇌물을 찔러줘서 담배같은 기호품을 공급받고 심지어 외부와 정보도 교환한다. 이후 황제군이 혼수상태의 교황을 확보하도록 돕는 큰 공을 세운다.

16. 피렌체 공화국

  •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
    사보나롤라와 공화당을 후원하며 그를 기반으로 힘을 키우려 했다. 교황청의 암살 시도에서도 살아남고 무난하게 피렌체를 장악하는 듯 했으나, 소련의 대계를 위해서는 메디치가가 퇴장하고 사보나롤라가 전면에 서야 했기에 소련의 암살자에게 당해 사망한다. 이후 교황청이 그를 암살한 것으로 알려져 피렌체와 교황청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 복자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예언자를 자칭하는 종교개혁가로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고 '주님 아래에서 평등하다'는 공화주의를 주장하며 공화당이라는 당을 세우고 서기장이 된다. 메디치 가의 후원을 받으며 세를 불리다가 로렌초가 암살된 후 피렌체의 정권을 잡고 교황청과 전쟁을 벌인다.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로, 독실한 신앙심은 진심이지만 자신이 예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메디치 가에서 자신을 이용했음을 알고 있으며 로렌초가 사망한 후 메디치 가를 토사구팽할 수 있었음에도 그의 사후 메디치 가에 대해 신의를 지킨다. 황제군의 공격으로 피렌체가 함락 위기에 처했을 때 윈스턴 로밀리가 소련으로 망명할 기회를 제공하지만, 자신이 살면 공화주의가 죽고 자신이 죽어야 공화주의가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일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다가 석궁에 맞아 사망하며 순교자가 된다. 사보나롤라의 내면 묘사와 승리를 위해 순교자가 되기를 택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손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

17. 메시카

  • 경건공 아우구스티노 틀라카엘렐 데 셈포알라
    셈포알라의 틀라토아니. 유럽 선교사들의 진심어린 봉사와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의 영향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독실한 신도가 된다. 엔리케 4세는 틀라카엘렐의 개종을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경건공이란 별명을 주고, 틀라카엘렐 역시 선진 유럽 문물과 기술, 자원의 지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 유럽의 문화와 역사, 양식을 습득하여 '식인종 이교도였다 개종한 신대륙 군주'로서 유럽에서 유명인사가 된다. 엔리케 4세의 딸 후안나가 이사벨 1세에게 살해당할 것을 우려한 엔리케 4세의 부탁으로 후안나와 결혼한다. 그러나 나이차가 워낙 많이 나고 후안나가 너무 철이 없는 개구쟁이라서 부부라기보단 부녀관계에 가까워보인다.
  • 후안나
    엔리케 4세의 딸. 하지만 사생아라는 의혹이 있어 엔리케 4세도 자기 친딸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엔리케 4세는 후안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며, 자기 사후 이사벨 1세에게 후안나가 살해당할 것을 우려해서 틀라카엘렐과 결혼시킨다. 공주이지만 후계자 교육을 전혀 못 받아서 예법이라고는 모르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 아샤야카틀
    테노치티클란을 수도로 하는 카스티야의 봉신인 메시카 대공국의 대공. 함께 개종한 여러 부족들이 새로운 질서하에 하나로 규합되며 틀라카엘렐의 주군이 되었다.

18. 오스만 제국

  • 메흐메트 2세
    '악마총'으로 알려진 기관총의 위력과 사회주의를 앞세워 사상적으로도 침투해오는 러시아의 저력을 알아본 후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러시아와 적대하지 않는 대신 이집트 쪽으로 확장한다. 이후 소련 측에서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었음에도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소련의 일부임을 알아채고 몽골과의 전쟁에서 소련이 중립을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 악마총과 유사한 효과를 내기 위해 순차사격 전술을 도입해서 몽골의 침략을 격퇴하지만 승전 연회에서 소련과 젬의 공작으로 독이 든 커피를 마시고 사망한다.
  • 바예지트 2세 → 파울루스 1세
    메흐메트 2세의 장자. 메흐메트 2세가 암살당한 후 술탄이 되었으나 젬의 반란, 몽골의 침략, 십자군의 침략에 오스만의 멸망이 코앞에 닥치자 멸망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파울루스 1세가 된다.

  • 메흐메트 2세의 아들. 바예지트 대신 자신이 제위에 오르겠다는 욕심에 소련과 결탁해서 아버지 메흐메트 2세를 독살한다. 그 후 원정군의 군권을 장악하고 콘스탄티니예로 회군하며 바예지트와의 내전을 준비하지만 오스만의 내분을 틈탄 십자군과 몽골군의 양면 침공으로 오스만 제국 자체가 멸망할 위기에 처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차피 제국은 망했다고 판단하고 아나톨리아를 포기한 뒤 그나마 십자군과 몽골의 손이 닿지 않는 이집트로 가서 카이로를 점령하고 파디샤이자 칼리프를 자칭한다.

19. 크림 칸국

  • 메잉리 기라이
    오스만을 막기 위해 몽골을 끌어들이자는 제노바의 안을 반대하다 제노바의 통수를 맞고 멸망한다.

20. 마자파히트 제국

  • 브라위자야 4세
    이징옥이 라덴 파타를 침공하려 하자, 살아남기 위해서 지지선언을 때린다.

21. 드막 술탄국

  • 크르타부미
    라덴 파타가 토벌당한 이후 브라위자야 4세에 위해 토벌당해 죽는다.
  • 라덴 파타
    드막의 술탄. 해적질을 하다 이징옥에게 토벌당한다.

22. 믈라카 술탄국

  • 툰 페락
    믈라카 술탄국의 재상. 최초로 조선에 조공을 바치며 단종과 신료들을 미소짓게 한다.

23. 미래 세계

  •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제3공화국의 총리, 급진당 당수.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정부 차원에서 스페인 공화국군을 지원하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정계와 연 없는 '민간인'이며 프랑스와 연 없는 '외국인'이고 거기에 군 지휘관 경험이 있는 트로츠키를 원정군 사령관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잉여인간 치우기가 아닌, 눈엣가시 같은 트로츠키와 소련 내부의 반체제 인사들, 그리고 트로츠키의 추종자들을 모두 한 번에 죽여 없애려고 준비한 차도살인이었다. 트로츠키가 스페인으로 향하자 곧바로 국민파에게 정보를 흘려 원정군이 이베리아 반도에 닿기도 전에 어뢰 공격을 받게 했다.
본인은 꿈에도 모르고 있지만,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 내 조선계 주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재앙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작중에서는 실제로 등장하기 보다는 보통 다른 등장인물들이 '상상하긴 싫지만 스탈린이라면 해결책을 내놨을까?'라고 고민할 때쯤 '상상속 친구'...아니 '상상속 민족전문가'로 등장한다.


[1] 유럽인들에게는 귀족 포로를 잡으면 당연히 명예를 존중하여 정중히 포로 대우를 해주고 몸값을 받고 석방하는 것이 상식인데, 오히려 귀족들만 전부 처형해버리고 평민들은 살려주는 아카토프는 유럽인의 이해를 벗어난 존재이고 피에 굶주린 악귀처럼 보일수밖에 없다.[2] 사회적으로는 농촌의 붕괴를 막으면서도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양을 주도하고 정치적으로는 신숙주의 친소파와 박팽년의 대신파의 무한 대치 상태 사이에서 세번째 파벌을 만들어 상호 균형상태를 이루고 국왕이 양 파벌을 번갈아 숙청하며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사태를 방지한다.[3] 기계를 통해서 인력 집중이 필요 없게 되다 보니 중공업과 비교해서 소련 정부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사업인데다, 이렇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을 인민위원평의회에서 원산 시민은 생산자 조합을 결성하면 누구든 불하받을 수 있게 하자고 했으나, 조선인들이 신량역천으로 여겨 꺼리다보니 결국 누구도 손대지 않게 되었다.[4] 정확히 말하면 소장파 관료들이 늦은 밤에 깊은 잠에 빠져있던 어린 단종을 술에 취한 상태로 데리고 튄 것이다.(...)[5] 그래서 용상을 차지한 수양대군이 단종이라고 묘호까지 올렸다.[6] 면접대상자인 김종직이 놀라 피휘의 관습을 언급하자 원산에 보낼 것이라고 간단히 해명하기는 했다.[7] 정확히는 단종이 살아생전에 윤순비에게 남긴 부탁에 따라서[8] 그래서 호인 보한재라 불려지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나 호로 부르지 말라고 하자마자 단종은 이전처럼 전하라고 부르면서 처세술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9] 노먼 베순.[10] 동일인물이다.[11] 외적으로는 소련의 침공을 받고 내적으로는 세 대군의 난이 벌어지고 있었다.[12] 문제는 그 계획이 피로 얼룩진 조선의 건국 및 초기 역사, 특히 왕자의 난과 선죽교 정몽주 피살 사건에서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모티브를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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