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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보 제91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신라 토기
新羅土器, Silla Pottery
1. 개요
신라가 형성한 독특한 토기문화. 특히 굽다리(고배)가 대표적이다.2. 신라양식 토기의 형성과 변천
진한과 변한이 지금의 경상도에 잡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듯이, 4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즉 원삼국시대까지는 경상도의 토기 문화의 전개 양상은 지역 차이가 딱히 있지 않았다.원삼국시대의 경상도의 토기 유물군의 특색은 와질제의 단경호와 주머니호,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를 소량으로 부장하는 특징을 갖는다. 세부적으로 형식적인 변화가 나타남과 동시에 그것이 부장되는 무덤의 형태도 소형의 목관묘에서 점차적으로 별도의 부장 전용 구역이 나타나는 목곽묘로 변화하면서 대형화되기 시작한다. 쉽게말해서 여러 유물을 부장하는 재력, 권력, 계층의 차별화가 발생하면서 초기 신라의 성장과정과도 결부시켜 보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4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영남지방에서는 점차 고배(굽다리 접시)를 부장품으로 묻는 습속이 나타나는데 이때를 후술할 내용과 비교하여 이동•이서 양식 성립 이전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경상도 전체에서 공자형토기라고 칭하는 넓은 상사성을 보이면서도 세부적인 형식으로는 제각각인 제도화되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4세기 중엽부터 낙동강을 경계로 점차 형태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소위 낙동강 이동양식 토기라는 것이 성립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사실상 신라토기의 시작이다.[1] 이 구분은 이서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이동양식의 등장과도 같다. 가야토기 권역에서는 공자형의 통형고배들이 다소간 지속되는 반면, 신라 권역에서는 3단 대각(고배 받침)에 투창이라는 구멍낸 장식이 교차되어 배치되고, 공자형 통형고배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동강 이동양식의 발생을 신라토기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본다.신라토기의 중심은 경주로써 신라양식 토기의 변천과 확장 속에서 다른 지역의 토기들은 신라 양식화되거나 또는 신라 토기를 수입하면서 복합적으로 변화한다.
4세기 후엽, 5세기 초반 무렵의 신라토기는 비교적 굵은 형태로 고배들이 매우 크고 3단의 대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4단인 경우도 있다. 또한 분포 범위도 경주를 중심으로 주변부를 장악했던 초기 신라의 특징과 궤를 같이한다. 경주에서 소비되는 경주 양식의 신라토기[2]는 포항, 영천, 경산, 울산 등지에서 주로 확인된다. 해당 지역들은 지역 자체적인 양식이라고 불릴 만한 토기양식군은 없음이 특징이다. 즉 애초에 신라로서 함께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범위라는 것이다.
5세기 중엽-후엽부터는 신라토기가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평균적으로 20cm 이하 크기에 2단각의 대각으로 규격화되었다. 투창의 개수 또한 4개씩 장식된다. 제도화된 토기공방이 등장하고, 자체제작하는 생활용기가 아닌, 관요에서 공적 목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부각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이 시점부터는 신라의 대외팽창[3]이 가속화되는데 이 시점부터는 거의 경북 지역은 신라토기가 확인이 되며 지역적으로는 의성양식, 창녕양식, 구미양식, 대구양식, 성주양식[4] 등의 신라토기에 포함되지만 경주양식과는 비교적 차이가 있는 지역적 특색을 띄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담으로 이러한 지역양식 신라토기와 경주양식의 신라토기는 지방과 신라 중심의 행정력 또는 영향력을 살펴보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경주에서 생산된 듯한 경주 양식의 토기들이 5세기 중후엽까지도, 특히 경북 북부 서부 지역에서는 별로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신라가 간접지배한 영역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이후 6세기부터는 신라토기의 표준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신라토기 전개과정의 전반이 막을 내리고 또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
2.1. 지역 양식 토기
2.1.1. 관련 문서
2.2. 6세기 이후의 신라 토기
소형화/단각화하던 신라토기들은 6세기 후반부터는 제도(製陶) 기술이 제도화(制度化)되면서 모두 인화문토기(印花紋土器)라는 공통된 형태로 생산되어 지역차가 거의 없을 만큼 정형화되었다. 인화문토기를 다르게는 '도장무늬토기'라고도 부르는데, 도장으로 꽃무늬를 찍어낸 토기를 뜻한다. 특히 도장으로 찍는 것도 나름대로 제도화된 방법이다. 이전에는 도공이 직접 손으로 그려야 했으므로 당연히 다소 개인차나 지역차가 있었다. 그러나 도장은 규격이 정해졌으므로 공장마냥 같은 무늬를 생산하기에 용이하였다.이전부터 나타나던 유리질의 성분을 유약으로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며 점차 자기(瓷器)화가 되었다.
6세기 중엽 이후 신라의 고분문화의 변천에 따라서 제의에 사용되었던 신라토기의 주된 소비처는 비단 고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절이나 궁궐, 생활유적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존의 5세기대 신라 고배(굽다리 접시)와는 달리 뚜껑이 거의 필수적으로 공반됨이 특징이다. 국가종교로 불교가 도입되면서 사치스러움보다는 검소함을 존중하였고 이에 과시를 위한 장례, 제의 문화도 그에 발맞추어 간략화되는 쪽으로 바뀌었다. 장례에서는 특히 골장기(骨藏器)라고 하여 화장(火葬)한 유해를 담는 전용 그릇도 제작되었고, 그릇과 세트가 되는 뚜껑이 거의 필수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5]
이후 9세기, 10세기가 되면서부터는 유약 사용이 보편화되고 기종 또한 편병(扁甁)이 주로 만들어지는 것 등을 비롯하여 점차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청자로 전이되었다. 고려가 건국되었다고 도공들이 갑자기 청자를 빚어 구운 것이 아니다. 신라 후기 9세기 장보고로 대표되는 서남해 무역집단이 당나라와 교류하면서 당나라의 도자기를 꾸준히 수입했는데 한동안은 중국 수입품으로 수요를 감당했지만 이에 자극을 받아 지금의 강진군, 부안군 지역 등의 가마터에서 자체제작 청자의 초기 형태인 해무리굽청자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2.3. 관련 문서
3. 종류
3.1. 지역별 분류
- 경주 양식 토기
- 의성 양식 토기
- 성주 양식 토기
- 김해 양식 토기
3.2. 시기별 분류
- 전기 양식 토기
- 중기 양식 토기
- 후기 양식 토기
- 통일 양식 토기
3.3. 신라토우
신라시대의 토우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 독립상형(獨立象形) 토우
어떤 기명(器皿)이나 동물·가옥을 본뜬 독특한 신라토기. - 장식용 토우
말 그대로 신라토기에 붙어있는 장식품이다. 발굴 과정에서 작은 장식토우들을 토기에서 따로 뜯어내 보관하는 과오를 저질러 원래의 배치 상태는 알지 못한 채 보존되어 왔다. 이렇게 토기에서 분리된 작은 토우들은 모두 10㎝ 미만의 것으로 어떤 것은 2∼3㎝ 미만의 경우도 있다.
신라 토우들을 보면 남근이나 여성의 가슴을 그대로 들어낸 외설적인 토우들이 꽤 많은데 최근 들어서 이러한 신라 토우들이 혐한 소재로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0년대 촉발 된 한복공정 사태를 기점으로 중국 쪽에서 해외에 한국 전통문화 비방 자료 중 하나로 적극 쓰이고 있는 모양.
4. 신라토기 고미술품 목록
4.1. 국가 지정 문화재
4.1.1. 국보
- 국보 제91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 국보 제125호 녹유골호(부석제외함)
-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4.1.2. 보물
- 보물 제453호 도기 녹유 탁잔
- 보물 제598호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
- 보물 제636호 도기 서수형 명기
- 보물 제2028호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4.2. 시도 지정 문화재
-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5호 마문장경호
4.3. 일반 동산 문화재
4.4. 해외 소재 문화재
- 이형대부등잔형토기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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