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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 가야연맹에 해당되는 여러 나라들의 관계들이다.2. 역사
2.1. 기원
신라 초기, 가야가 형성되면서 금관국을 중심으로 한 가야의 여러 나라들과 신라는 초기부터 갈등이 있었으나 동시에 무역을 하여 서로간의 영향을 주고 받기도 했었다. 이 가운데 신라 탈해 이사금과 금관가야 수로왕 시기에는 대립관계였다.2.2. 1~2세기 신라와 가야의 전쟁
76년, 수로왕이 신라를 공격하면서 처음으로 신라와 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77년, 신라가 가야군 1천을 사살하며 첫 격돌은 신라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격돌이 지속되자 87년, 신라 파사 이사금은 가소와 마두 2성을 쌓아 가야의 침략을 대비했다.94년, 마침내 가야가 마두성을 함락시키며 승기를 잡았다. 96년, 가야가 신라의 남경을 공격하여 적장을 사살했으나 군의 피해가 컸다. 97년, 신라 파사 이사금과 수로왕이 휴전 협정을 맺으며 20년간 치러졌던 1차 전쟁은 무승부로 종결되었다.
102년, 수로왕이 신라를 도와 진한의 음즙벌국과 실직국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는 등 신라-가야 사이의 잠깐의 평화가 깃들었으나 108년, 신라가 진한의 다벌, 비지, 초팔 3국을 병합하자 현재 대구-경산 지방을 중심으로 신라와 가야 사이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15년, 신라 지마 이사금이 직접 1만 군사를 이끌고 황산하를 건너 금관가야를 공격했으나 가야군의 복병에 걸려 참패하고 왕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왔다. 이듬해 116년, 이사금이 다시 한번 가야를 공격하지만 가야군은 버텼고 장마마저 내리며 또 다시 대패하여 돌아갔다. 이리하여 10여년에 걸쳤던 2차 전쟁은 가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후 80여년간 신라-가야 사이의 접촉은 없었다.
2.3. 포상팔국의 난
201년, 금관가야 거등왕이 신라에 동맹을 요청하자 신라가 이를 받아 들였다. 209년, 소가야를 비롯한 남해안 연안 8개 가야 소국이 금관가야와 아라가야에 반란을 일으켰다.(포상팔국의 난) 하지만 신라-금관가야가 힘을 합쳐 8국을 물리쳤다.3년 뒤 212년, 소가야, 골포, 칠포의 3국이 신라의 갈화성을 공격하자 이번에도 금관가야와 신라가 힘을 합쳤다. 신라-금관가야 연합은 대승을 거뒀고 금관가야는 이 전쟁을 기점으로 서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전기 가야 연맹의 맹주로 성장했다. 이렇듯 신라와 금관가야의 관계가 8국의 난을 계기로 다시 좋아졌으나 254년, 신라가 고령가야를 멸망시키며 다시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2.4. 금관가야의 쇠퇴과 대가야의 성장
그러던 400년, 금관가야가 백제,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협공해 수도까지 포위했다. 신라 내물 마립간이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자 고구려가 5만의 군사를 보내 신라를 지원했다.고구려는 진한의 남거성에서 신라 수도에 있던 왜군과 백제군, 가야군을 몰아냈다. 기세를 이어 금관가야의 종발성에 이르니 금관가야의 이시품왕이 항복했다. 이를 계기로 신라는 일시적으로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고 금관가야는 쇠퇴하여 전기 가야 연맹이 해체되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비슷한 상황이다.
5세기 중반, 대가야가 하지왕 대에 중국 남조의 남제와 교류하는 등 세력을 키우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후기 가야 연맹의 나라 수는 22개에 달했고 다시 한번 백제, 신라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을 키워나갔다.
2.5. 대가야&아라가야와 신라의 대치
6세기 초, 지증왕 대에 백제가 서부 지역의 가야 7국을 멸망시키자 대가야는 친신라로 외교 노선을 바꿨다. 522년, 대가야 이뇌왕과 신라 법흥왕의 딸이 혼인하여 양국이 동맹을 맺었다. 처음으로 신라와 가야가 힘을 합쳐 반백제 노선을 탄 것이었다.그러나 동부 지역의 가야, 탁순국은 친신라에 반대하며 신라 공주의 신하들을 간첩으로 여겨 모두 돌려보냈다. 이에 신라가 혼인 동맹의 파기를 요청했으나 이뇌왕은 이미 아들과 딸이 있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529년, 신라가 가장 동쪽의 가야 탁기탄을 멸망시켰다. 신라와 대가야의 실처럼 얕았던 동맹은 7년만에 깨지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대가야는 가야 연맹 맹주의 자리를 아라가야에 넘겨주게 되었다.
529년, 아라가야는 안라회의를 개최하여 백제와 신라에 중립을 선언하고 왜와 동맹을 맺었다. 이에 반발한 백제가 아라가야를 공격하며 선수를 쳐 걸탁성을 빼앗았다. 신라도 이에 질세라 532년에 금관가야를 538년에는 탁순국을 멸망시켰다. 이렇게 동부 가야 3국[1]이 신라에 멸망하자 남아 있는 가야 제국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548년, 아라가야가 고구려와 연합하여 백제의 독산성을 공격했을 때, 신라의 나제동맹을 내세우며 백제를 도왔다. 독산성의 싸움은 나제동맹의 승리로 끝이 났고 이를 계기로 아라가야가 몰락하며 20년에 걸친 아라가야의 저항은 막을 내렸다.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가야 연맹은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원동력을 잃었으며 백제와 신라의 가야 쟁탈전만이 남게 되었다.
2.6. 관산성 전투와 가야의 멸망
554년, 백제-대가야-왜가 연합하여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하였다. 전투는 백제 성왕이 죽으며 신라의 승리로 끝이 났고 백제는 대가로 가야 쟁탈전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했다. 554년 말, 신라 진흥왕은 소가야(고성)와 사물국(사천)을 병합하며 가야 진출을 본격화했다.[2]신라는 이듬해 창녕에 완산주를 설치하고, 아라가야 바로 옆의 사이기국과 산반하국을 편입하여 아라가야를 압박했다. 3~4년을 더 거치며 신라는 임례국(의령), 자타국(진주), 걸손국(산청), 졸마국(함양)의 4개국을 멸망시켰고 대가야가 아라가야를 도와주는 길목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560년 거열국(거창)을 합병한 신라는 이제 백제와 가야의 국경까지 끊어버렸다.
연이어 신라는 그해 12월 아라가야(함안)를 공격했다. 아라가야는 금사에서 버티며 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신라는 561년 1월, 아라파사산에 성산산성을 쌓아 왜의 침입에 대비하며 아라가야의 정복을 시도했다. 저항하던 아라가야는 끝내 2월에 멸망했으며, 신라 진흥왕은 즉시 그곳을 순행하여 창녕에 척경비를 두었다. 이로써 마지막으로 남은 세 가야 중 아라가야가 사라지고, 다라국(합천)과 대가야국(고령)만이 남게 되었다.
562년 1월, 신라는 다라국을 병합하고, 임나관가를 쳐서 부흥을 꾀하던 아라가야 잔존 세력을 완전히 진압했다. 2월, 신라가 대가야를 쳤으나 백제가 도와 간신히 구원했다. 이에 신라는 백제가 대가야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음을 알아채고, 4월 추풍령에 군사를 두어 백제가 오는 길을 끊고, 성산산성과 종발성에 군사를 두어 왜군이 들이 닥치는 것을 막아냈다.
562년 가을 7월, 신라에서 사다함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5,000명을 주어 대가야를 공격하게 했다. 사다함이 대가야로 쳐들어가 전단문에 들어서 흰 깃발을 꽃으니 성안의 사람들이 두려워 어쩔줄을 몰랐다고 한다. 대가야가 조금 저항하며 백제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당시 백제는 도와줄 여건이 되지 않았다. 9월, 대가야가 계속해서 버티자 진흥왕은 대장군 이사부에게 20,000명의 병력을 주어 토벌하게 했다. 이사부가 대가야에 다다르자 도설지왕을 포함하여 모두 일시에 항복함으로써 대가야는 멸망했다.
3. 문화
신라와 가야는 전쟁을 많이 했으나 동시에 서로 간의 왕래도 적지 않았는데, 특히 신라는 가야의 영향을 많이받았다. 금관국, 반파국 등의 인재를 받아들였고, 가야금 역시 신라가 가야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우륵에 의해 나왔다. 또한 가야계 출신인 김세종, 김무력, 김유신, 김흠순, 강수는 훗날 신라의 영토 확장과 문무왕의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4. 관련 사건
4.1. 같이 보기
4.2. 둘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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