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0:40

원종(신라)

元宗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대중매체에서

1. 개요

통일신라 말기의 반란자. 889년에 중앙 정부에서 세금 독촉을 심하게 하자, 사벌주(沙伐州)[1]에서 애노(哀奴)와 함께 원종·애노의 난을 일으켰으며, 본격적으로 후삼국시대가 열리는 첫 신호탄이 되었다. 초한전쟁기진승·오광의 난이나 삼국지황건적의 난과 비슷한 포지션.

반란이 일어나자, 신라 조정은 나마 관등에 있는 장군 영기(令奇)를 토벌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파병을 했으나, 영기가 원종과 애노의 반란군의 본진을 보고 두려워하여 진군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촌주(村主) 우연(祐連)이 대신 나서서 반란군가 맞서다가 전사했다. 진성여왕이 영기의 행동을 보고 받았고, 칙명을 내려서 영기를 참수하였고, 나이가 10여 세에 불과한 우연의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뒤를 잇게하여서 촌주가 되게 했다. 이후 원종과 애노의 난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고, 애노와 원종의 최후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자세하게 알기 어렵다.

우연과 어린 아들에게 일종의 논공행상을 하는 걸 보아 우여곡절 끝에 원종과 애노의 농민봉기는 진압되고 애노와 원종이 신라 조정의 토벌군에 토벌되어서 살해되었거나, 그게 아니라도 결국 기록상 나중에 아자개가 이들과 같은 상주에서 호족으로 자리를 잡기 때문에 이 아자개 등의 다른 호족 세력에 격파당했거나 흡수됐을 것으로 보인다.

2. 대중매체에서

소설 마의태자에서 신라의 귀족인 신홍의 심복으로 나와 의기가 있는 모략이 있다고 하며, 어떤 연유로 죽을 뻔한 것을 신홍이 구해줘서 섬겼다고 한다. 신홍이 위홍과 싸울 때 50명의 장사를 이끌었고 이 싸움에서 오른팔에 칼을 맞는 부상을 입었으며, 신홍이 패해 죽게 되자 숨어살다가 애노와 함께 군사를 일으킨 후에는 궁예의 부하가 되었다.

궁예가 처음 싯내벌에 왔을 때 믿지 못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가 왕건의 미움을 받아 벼슬을 빼앗겼다고 한다. 궁예가 왕건의 쿠데타로 몰락하면서 궁예를 피신시켰는데, 피신 도중에 왕건에게 내통한 것으로 의심받아 궁예에게 왼쪽 팔이 잘렸다.

결국 원종은 천지신명에게 자신의 충심을 증명한다면서 칼로 가슴을 찔러 자결한다.


[1] 현재의 상주(尙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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