Беломо́рско–Балти́йский кана́л [1]
운하 루트
1. 개요
북극해의 일부인 백해와 발트해를 잇는 운하이다. 1931년~1933년에 건설된 총길이 227km, 인공 수로 48km의 긴 운하이다. 대부분의 운하길은 강과 호수를 따라 이어져 있고 19개 수문이 있는데, 오네가호와 백해 사이에 몰려있다. 이 운하의 건설에는 굴라크 수용자 등의 죄수들이 동원되어 수많은 희생자를 내어가며 완공했다.때문에 백해-발트해 운하의 왼쪽은 소련에 대한 정치적인 농담을 했던 사람들이, 오른쪽은 그 농담을 듣고 깔깔거렸던 사람들이 지었다는 웃픈 농담도 있다.
1.1. 목적
운하를 공사할 당시 소련의 해군 함대는 북방함대, 발트함대, 극동함대 등이 있었는데, 발트해와 백해를 이어 감시에 걸리지 않고 여러 함대의 연계를 강화시키고 자유로운 해상/해저 작전의 수행을 위해서 건설하였다. 운하 건설 이후의 일이지만 냉전 시기 발트 함대가 유틀란트 해협을 통해서 나가기에는 나토의 감시를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는 데도 유용하게 써먹었다.1.2. 위치
발트해 연안 대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라도가 호수, 오네가 호수, 비고제로 호수, 백해로 이어진다.운하의 갑문은 오네가 호수-비고제로 호수-백해쪽에 건설돼있다.
1.3. 효과
대서양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아르한겔스크까지 4000km의 거리를 절약한다.2. 운하의 이름을 딴 러시아의 담배
담배갑 아래에 우크라이나어로 "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Куріння шкодить здоров'ю)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우크라이나 생산분으로 추정된다. |
1932년에 레닌그라드에 소재한 우리츠키 담배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러시아와 구 소련계 국가들 각지에서 생산 중인 담배. 당시 소련 지도부가 야심차게 진행한 대공사이자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 중 하나였던 백해-발트해 운하를 선전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3] 그래서 담배갑 디자인도 백해-발트해 운하의 지도를 중심으로 구성하였고, 담배의 이름도 백해-발트해 운하(Беломорско-Балтийский канал)의 줄임말인 벨라모르카날(Беломорканал)가 되었다.[4] 소련 시절에는 한 갑에 25개비가 들어있었다고 하지만 소련의 해체 이후 구 소련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생산하다 보니 규격 통일이 되지 않았는지 18개비가 든 벨라모르카날 담배갑 사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출시 연도가 연도이니만큼 필터는 당연히 없고, 담배의 앞쪽에만 담배잎이 차 있고 나머지는 그냥 흰색 마분지로 텅 비어있는 구조. 흡연 중 입으로 담배잎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진처럼 마분지 부분을 접은 뒤 피운다. 타르와 니코틴 함량은 대략 타르 30~35mg, 니코틴 1.8mg 정도.[5] 현재 시판중인 일본의 피스보다도 훨씬 독하고, 1969년 출시된 청자와 비슷하거나 더 독한 수준. 담배가 유해하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1930년대에 출시된 제품이다 보니 말도 안 되게 독하다. 국내에서도 호기심에 이 담배를 피워 봤다가 엄청나게 독해서 당황했다는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
소련 시절에는 보통 1갑당 20개비가 들어있는 다른 담배에 비해 5개비 더 들어있으면서도 저렴한 가격, 적당한 품질, 백해-발트해 운하라는 이름이 주는 노동자 영웅주의 감성[6]으로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서민 문화답게 이 담배에 대한 다양한 농담들도 존재하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은 비행 지도를 잃어버린 항공기 조종사가 이 담배갑에 그려진 지도를 보고 비행하여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농담이다.#
[1] Беломорканал이라고 줄여쓰기도 한다.[2] Belomorkanal, 발음은 대략 벨라모르카날 정도[3] 한국에도 신탄진 연초제조창 준공을 기념하여 만든 신탄진 담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만든 88시리즈 담배 등 다양한 담배가 선전 목적으로 제조되었으니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닌 것.[4] 민간에서는 이걸 더 줄여서 "벨로모르"라고만 부르기도 했다.[5] 출처, 단 러시아어 위키백과에서는 타르 27~32mg, 니코틴 1.5~1.7mg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엄청 독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6] 당시 소련 정부는 5개년 계획 목표 달성이나 대규모 토목공사 등에서 활약한 노동자들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며 초과달성을 독려했다. 알렉세이 스타하노프가 대표적인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