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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1977)/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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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4. 두산 베어스 시절
4.1. 2008 시즌4.2. 2009 시즌4.3. 2010 시즌4.4. 2011 시즌4.5. 2012 시즌4.6. 2013 시즌
5. LG 트윈스 시절
5.1. 2014 시즌
6. 국가대표 경력7. 수상 경력
7.1. KBO7.2. 기타
8. 연도별 성적

1. 개요

김선우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휘문고(88회) 시절에는 혼자서 청룡기 우승(1994년)[1]을 이끌 만큼 능력있는 초고교급 에이스였다. 이 해 세계 청소년대회에서 2학년으로는 유일하게 발탁되어 우승 멤버가 되었다.

1996년 신인 지명 때 OB 베어스가 고졸우선지명을 했지만, 휘문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원하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로 진학하였다.[2] 사실 LG 트윈스에서 먼저 김선우의 아버지와 접촉한 뒤 계약금을 제시하였고 당시 LG의 광팬이였던 김선우 역시 LG에 바로 입단하길 희망했지만, 아들이 대학을 나오기를 희망했던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로 무산되었다.(당시 3억 5천을 받은 박명환이 동기였단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박명환보단 더 많은 계약금을 제시받았을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엘선우라고 부르기도 한다.[3]

고려대학교 1학년 때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최악의 투구내용을 보였고, 대표팀도 최하위에 머무른다. 허나 199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1선발로 맹활약하였다. 여담으로 이 때 투수진이 후덜덜한데 1선발 김선우, 2선발 서재응, 3선발 김병현, 원 포인트 릴리프 좌완 투수 최희섭.

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


계약금 125만 달러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다. 이 때만 해도 김선우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상당한 기대를 품었던 국제 유망주 시장의 최대어였다. 130만 달러를 받고 입단한 것부터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당시 1라운드 초중반급의 사이닝 보너스이며, 2010년대에도 어지간한 드래프티가 아니면 이 정도 금액은 받기 어렵다.

싱글A부터 차근차근히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간 김선우는 2002년 데드라인 때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이적한다. 소위 클리프 플로이드[4] 트레이드.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플로이드를 받아 오고 레드삭스가 내준 선수는 김선우와 송승준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빌리 빈 단장이 이 딜에 끼어들어서 케빈 유킬리스를 데려오려던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 참조.

하지만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감독인 프랭크 로빈슨과의 불화로 출장 기회를 전혀 잡지 못하여 김선우는 메이저리그에서 자리잡지 못했다. 이후 엑스포스가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이전한 워싱턴 내셔널스, 콜로라도 로키스, 신시내티 레즈 등의 팀을 전전하다가, 2008년에 대한민국 무대로 온다.

참고로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에 따른 복귀가 아니다. 1999년 이전에 미국으로 나간 선수들은 기존 지명권이 유효했기 때문에, 김선우는 고졸우선 지명권을 통해 별도의 절차 없이 두산 베어스에 입단할 수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은 동갑내기 투수 서재응도 같은 경우다.


여담으로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에는 그 악명높은 쿠어스 필드에서 완봉승을 올린 기록이 있다.# 완봉이라는 기록 자체도 대단하지만, 쿠어스 필드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다 못해 부정구장 소리를 듣는 투수들의 무덤이며 여기서 완봉투를 보여 주면 용자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이 기록은 쿠어스 필드 역대 완봉 기록 중 노모 히데오의 노히트에 이은 최소 피안타 2위다.[5] 이렇게 용자 대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쿠어스 필드는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해서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웬만한 볼은 톡 쳐도 쭉쭉 날아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타자천국 투수지옥. 김선우가 완봉을 작성한 비결은 웬만한 타구도 쭉쭉 날아가는 산동네에서 살아남는데 필수인 그라운드볼 유도에 좋은 강력한 투심 패스트볼. 컨트롤이 무척 불안정해서 안 긁히는 날이 더 많았지만, 일단 긁히는 날에는 이거 하나로 게임을 책임졌다.

참고로 김선우와 노모의 쿠어스필드 통산방어율은 각각 ERA 5.35 , ERA 8.05 다. 쿠어스필드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부분.

또한 쿠어스 필드 완봉승 외에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마지막 홈경기 승리 선발 투수[6] 및 최후의 홈경기 선발 투수[7], 칼 립켄 주니어의 커리어 마지막 삼진을 잡아낸 등의 레어한 기록도 있다.[8] 2006년 WBC에서 손민한알렉스 로드리게스 삼구삼진과 함께 은퇴 후에도 계속 회자되는 기록.

메이저 시기의 한 가지 슬픈 일화로, 상대팀의 투수에게 홈런을 허용한 적이 있다. 2002년 7월 21일 몬트리올 홈 경기였는데, 0-1로 뒤지던 5회초, 상대 선발투수였던 마크 헨드릭슨에게 볼카운트 2-1 상황에서 솔로 홈런을 얻어맞은 후 멘탈이 나간듯 버논 웰스의 솔로 홈런 포함, 추가로 2실점을 더 한 뒤 강판되어버리고 만다. 문제는, 이 선수의 소속팀은 바로 투수가 전혀 타격 할 일 없는 아메리칸 리그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였던 것.[9]

MLB 통산 성적은 118경기 337이닝 13승 13패 4홀드 211탈삼진 ERA 5.31 WAR 1.4

4.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20080111_김선우 두산 입단.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2007년 시즌 종료 후, 김선우의 지명권을 갖고 있던 두산 베어스는 선발진 보강을 위해 메이저리그에서의 경험과 아직 젊은 나이(당시 32세), 그리고 좋은 구위를 지닌 김선우와 접촉, 총액 15억 원(계약금 9억, 연봉 4억, 옵션 2억)에 입단시키는 데 성공했다.#[10][11]

4.1. 2008 시즌

영입 당시까지만 해도 에이스로 생각했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에이스는 커녕 뭔가 부족한 모습들이 연이어 노출되면서 시즌 개막 후 3연패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4월 8일 한화전에서 6이닝 5피안타 1볼넷 3탈삼진 3실점(2자책)의 호투도 있었으나, 다음 등판이었던 4월 13일 LG전에서 투심 제구가 전혀 되지 않으면서 2⅓이닝 6피안타 2볼넷 4실점으로 조기강판을 당하면서 김경문 감독의 신뢰를 저버렸고, 결국 전격 2군행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클라스가 있으니 10일 뒤면 당연히 1군에 복귀하겠거니 했는데, 4월 말까지는 아예 2군 등판도 하지 않고 재정비를 한 후 5월 들어서야 연습경기와 2군 경기에 선발 등판하며 감각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2군에서 착실하게 로테이션을 돌던 중 5월 27일 롯데 2군 상대로 6이닝 3실점(2자책)을 기록하면서 최고 구속도 145km/h까지 나옴에 따라 다음 날 28일 1군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이후 31일 기아전에 구원 등판하여 2이닝 동안 2탈삼진 무실점의 깔끔한 피칭으로 기대감을 다시 높이는 듯 했으나, 6월 네 번의 선발 등판에서 삼성 상대로만 2승을 따낸 것과는 별개로 월간 평균자책은 4.66을 보이는 등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였었다.

7월에는 네 번의 선발 등판과 한 번의 구원 등판[12]에서도 7월 9일 LG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승리투수를 한 것을 빼면 나머지 선발 등판에서는 QS는 커녕 5~6실점 씩 하는 부진투와 구원 등판에서 마저 1이닝 1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는 등 전반기에는 메이저리거 클라스를 통 보여주지 못했다. 성적도 그렇거니와 제구난조로 인해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팀 승선도 당연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나마 올림픽 브레이크가 끝난 뒤 8월 27일 SK전 선발 등판에서 6⅔이닝 동안 7피안타 4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를 따내더니, 9월에는 비로소 구단과 팬들이 바라던 에이스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비록 9월 막판 히어로즈전과 삼성전에서 부진투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이 때는 유독 수비도움을 못 받으면서 자책점은 두 경기 모두 0으로 처리됨에 따라 9월 월간 기록은 31⅔이닝 동안 2승 1패 평균자책 1.99의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0월 3일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히어로즈 상대로 5이닝 13피안타 4탈삼진 8실점(4자책)의 영 좋지 못한 투구로 시즌을 다소 아쉽게 마무리 지었다.

정규시즌 최종 21경기에 등판하여 101⅔이닝 동안 6승 7패 평균자책 4.25라는 애매한 성적을 기록,[13] 봉중근에 이어 김미미라는 별명이 붙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플레이오프에서는 굉장히 부진했으나 한국시리즈 때 SK를 상대로 2패를 당하긴 했어도 2경기 10⅔이닝 동안 평균자책 1.69로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최대한 보여주면서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4.2. 2009 시즌

정규시즌에서 11승 10패를 올리며 팀에서 유일한 선발 10승 투수라는 명함을 걸긴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으로 평균자책 5.11에 WHIP도 소폭 상승, 본인의 성적만으로 놓고 본다면 예전보다 더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나마 선발진이 처참한 두산에서 가장 잘 던진 선발이니 에이스"라는 팬과 "이따위 성적으로 무슨 에이스냐 돈 토해내라"라는 팬들이 첨예하게 대립을 일으키고 있다. 그 와중에 2010 시즌 연봉이 인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야구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하였다. 이재우가 연봉이 깎인 판인데 어째서?

4.3. 2010 시즌

140km/h 중후반대를 기록하는 무브먼트가 동반된 직구는 김선우의 상징이었다. 그 직구의 위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김선우의 직구 승부는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였는지도. 하지만 2010년 김선우의 투구 패턴은 기존 김선우가 대한민국 무대에서 보여줬던 패턴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가는 직구의 위력은 여전하다. 그런데 여기에 본격적으로 종변화구가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직구-슬라이더(본인은 커터라고 말한다.)라는 단순한 조합에 스플리터와 커브가 본격적으로 섞이기 시작한 것인데, 높은 직구처럼 들어가다가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의 위력은 명불허전. 아니 왜 이런 공을 여태 던지지 않았는지. 이에 대해선 메이저리그에서는 변화구를 던졌을 때 스트라이크라 생각했는데 볼로 판정되는 일이 많아 잘 구사를 안한 게 국내 복귀 이후에도 습관으로 남았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다가 스프링캠프 때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는데 떨어진 스피드를 벌충하기 위해 비로소 변화구 구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4월 29일 2010년 두산 선발사에 남을 류현진과의 투수전은 그가 두산의 에이스로 올라서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7이닝 1실점(무자책) 9탈삼진, 총 117개의 투구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구수를 기록하며 7이닝을 소화, 8이닝 2실점을 기록한 류현진을 누르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두산이 들였던 돈에 걸맞은 피칭을 드디어 하기 시작한 것일까?

2010년 7월에 들어간 현재까지도, 얼마 전 등판에서 혼자서 7이닝을 우걱우걱 퍼먹으며, 절친인 기아의 서재응과의 마운드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물론 마지막에 타자들이 날려준 감이 있지만, 그래도 7이닝 무실점. 최근 이닝이터로써 장기간 먹어줘서 달감독의 효자가 되었다. 반면 KBO의 12초 룰의 첫 희생자가 되어 KBO 게시판에 심판을 비판하는 글이 쇄도하기도.

사실 올해 김선우가 가장 달라진 이유는 마인드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야"라는 마음으로 싸웠는데, 올해는 그냥 두산의 선배 투수로서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보겠다 한다. 그리고 진짜 그러고 있다... 아니, 그 수준이 아니고, 현재 두산 투수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수준. 작년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도, 작년만큼 직구빠가 아닌 완급조절과 다양한 구질로 상대 타자들을 잡고 있다.

특히 유격수 손시헌과는 아주 짝짝궁이 잘 맞아서, 2010년에만 2루 견제사를 몇 번 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다. 김선우는 팀 내에서도 가장 수비를 잘하는 투수로 평가받고 있는데다 수비진과의 호흡도 잘 맞는다. 정말 지금 보면, 돈이 아깝지 않다. 올해 초에만 해도, 이현승을 영입하면서 "김선우를 주자"라고 했던 팬들은, 2010 시즌 김선우의 첫 등판을 보고 "선우형 미안해요 ㅠㅠ"등의 글을 쏟아냈다.

2010년 8월 24일 국내 복귀 후 첫 완투를 기록했다. 그런데 남은 기록은 5이닝 2실점. 24일 경기가 강우 콜드로 인해 2:2 상황에서 무승부 처리되었기 때문에 나온 기록이다. 최근에는 체력 문제를 보이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2010 시즌을 28경기 출장 154⅔이닝 13승 6패 평균자책점 4.02, 128삼진(6위), 그리고 K/9(9이닝당 평균삼진개수) 5위, BB/9(9이닝당 평균 볼넷개수) 6위 등을 랭크하며 안타깝게도 본인이 바라던 3점대의 평균자책점에는 실패했으나, 안정된 제구력과 강력한 속구로 거의 모든 기록에서 상위를 랭크하며, 켈빈 히메네스와 함께 강력한 원투펀치를 이루었고, 팀의 KBO 포스트시즌 진출의 공신이 되었다.

참고로 평균자책 순위를 살펴보면 규정이닝 채운 투수 9위, 규정이닝 채운 우완투수중 5위(1위 카도쿠라 켄, 2위 켈빈 히메네스, 3위 서재응, 4위 라이언 사도스키), 규정이닝 채운 우완 한국국적선수중 2위(1위 서재응)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2이닝 11피안타 2볼넷 2사구(死球) 8탈삼진 4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2.25, 1승을 기록했고, 팀은 2패 후 3연승을 거둬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⅓이닝 8피안타 2볼넷 2사구(死球) 2탈삼진 6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27.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4경기 13⅓이닝 19피안타 4볼넷 4사구(死球) 8탈삼진 10실점 7자책점 평균자책점 4.73, 1승을 기록했다.

4.4.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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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시범경기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여줬으나, 시즌이 시작하면서 QS도 자주 기록하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2011년 5월 8일 롯데전에서 투구수 94개로 한국무대 첫 완봉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5월 18일까지 22이닝 연속 무실점을 하였으며 진행중이었는데... 5월 19일 5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27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6회 손시헌의 에러와 한상훈의 적시타로 이 기록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나마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이었으니 이날 자책점은 0점이고 기록은 30이닝 연속 무자책으로 내용이 바뀌게 되었다.

8월 18일 이후에는 김선우만 나왔다 하면 타선이 폭발하거나 상대 타선이 지리멸렬하면서 두산이 승리를 챙기고 있다.

8월 2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10승째를 따내 팀 내에서는 드물게 3년 연속 10승 달성을 이루게 되었다. 팀 내에서는 10승 투수가 현재로선 김선우가 유일하다.

2011년 8월 23일8월 28일에는 승리 투수가 되었으나, 그 사이에는 전부 팀이 패배했다. 다행히도 30일 경기는 이겼고, 그 이후 팀은 9월 중순까지 상승세였다.

9월 23일 한화전에서 승리하면서 올 시즌 7번째로 전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두산이 2점차로 앞선 9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이대수가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성 타구를 날렸으나 1루 대주자(동점주자)로 들어가 있던 김준호가 3루를 돌아 홈으로 뛰다 근육 파열로 넘어져 아웃되는 바람에 김선우는 간신히 승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당시 KIA의 윤석민과 치열한 다승왕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중계 카메라는 김준호의 어이없는 횡사로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김선우에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즌 마지막 등판일인 10월 3일 LG 트윈스 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 시즌 16승을 챙기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

이름값에 비해 조금씩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이전과 달리, 김선우는 이번 시즌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두산의 토종 에이스로 당당히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팀이 총체적 난국으로 무너지며 두산 입단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구경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4.5.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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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경기의 선발로 나와 묘하기 짝이 없는 바람과 기세를 탄 넥센 타선에 말려 4⅓이닝 96투구수 11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9실점 9자책점[14]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팀은 대첩다운 명경기 끝에 넥센 불펜의 방화로 팀이 11:13으로 이겨서 패전을 모면했다.

그러나 4월 14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6이닝 91투구수 5피안타 1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 그런데 7회를 어찌어찌 막아낸 이혜천이 8회 시작하자마자 2안타를 맞고, 뒤에 올라온 노경은마저 불을 지르면서 승리가 증발했다. 팀은 스코어 3:3 무승부를 기록.

4월 20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3:1로 이기던 6회말 무사 1, 2루에서 마운드에 내려왔다. 그런데 다음 투수인 고창성이 김선우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여 3:3 동점이 되어 승리가 날아갔다. 덧붙여서 고창성 이날 승계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6회말에 3실점 3자책점을 넥센에 헌납하는 바람에 팀이 패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본인도 1점 분식을 당하긴 했지만 김선우 바로 뒤에서 불을 거하게 질러버린 여파가 장난이 아니어서 두산 패배의 원흉으로 찍혔다.
김선우는 이날 5이닝 98투구수 6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했다.

4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4:6으로 이기던 7회초 무사 1, 3루에서 마운드에 내려왔다. 그런데 다음 투수 이혜천이 등판하여 이용규에게 볼넷을 허용함과 동시에 포일이 나와서 3루주자가 홈으로 들어왔고, 이용규만 상대하고 내려간 이혜천의 다음 투수인 노경은안치홍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고, 안치홍만 상대하고 내려간 노경은의 다음 투수인 정대현이 김원섭에게 희생플라이를 허용하여 스코어가 6:6이 되는 바람에 승리가 또 날아갔다. 게다가 이 날은 수비도 정말 안 도와줬다.
이날 6이닝 112투구수 7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6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다.

결국 4월까지 1패를 모면한 것도 있었지만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두산의 다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는 벌써 3승째였다. 김선우 본인이 다소 부진한 감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불펜이 안 도와줘서야….

하지만 5월, 6월이 되도 구위도 제구도 살아나지 않으면서 두산의 선발진 중 가장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16일 현재 니퍼트는 7승, 이용찬은 6승, 김승회와 노경은이 선발진을 잘 메꿔주고 있지만 김선우는 방어율 6.67 11경기 2승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있다. 오죽하면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김선우는 투수로도 안친다, 김선우가 누군가요 신인 투순가요 하고 있다(...)[15][16]
여러모로 2011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현실.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구위를 살리기 위해 팔 각도를 내렸는데, 제구가 안되면서 직구고 변화구고간에 가운데로 몰리며 초반에 집중 안타를 맞으며, 특히 1회에 출루 허용률과 피홈런이 급증하며 홍성흔에게 쓰리런, 김태완에게 만루홈런을 내주며 불안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유지하였다. 시즌 시작 전 몸이 이렇게 완벽한 적이 없었다며 설레발을 떨다가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투구 밸런스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 사이에 팀의 토종 에이스 자리는 완봉승 2번 등 임팩트를 보여준 노경은에게 넘어갔다.

어쨌든 그 와중에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등판, 6월 막판부터해서 후반기에는 조금이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승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결국 6승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월 12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 74투구수 6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였고 팀이 스코어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기 때문에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네 번째 투수 니퍼트가 8회말에 네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장작을 쌓고 홍상삼이 완벽하게 분식회계를 시전하며 블론세이브를 저질러 스코어 3:3이 되는 바람에 승리가 날아가 버렸다.

결국 이날 팀은 연장 10회까지 가는 경기 끝에 포수 양의지의 끝내기 송구 실책으로 스코어 3:4로 어이없게 패하였고 1승 3패로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따라서 10월 12일의 경기가 김선우의 2012년 포스트시즌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6. 2013 시즌

4월 출발은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평균자책도 2점대 후반을 마크하며 두산 베어스의 준수한 선발 투수로 계속 가나 했지만, 5월이 되자 선발진 붕괴의 한 축을 맡으며 9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LG 트윈스와의 6월 5일 경기에서 박용택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뒤 시즌 세번째로 2군으로 내려갔다. 이전까지의 2군행은 선발 로테이션과 컨디션 조절용의 짧은 2군행이었지만, 6월의 1군 말소는 2달가량 이어졌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8월 1일 경기에 복귀하여 승리를 챙겼지만, 2주 뒤 20일간의 1군 말소를 겪었다.

1군 17경기 60⅓이닝 5승 6패 평균자책점 5.52에 피안타율 .328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며 2013년을 마감했다.

포스트시즌에서 특이한 역할을 받았다. 병살 유도용 릴리프.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에 등판하여 ⅔이닝 1볼넷 1탈삼진 무실점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⅔이닝 2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2013년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1로 앞선 13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2이닝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김선우의 2013년 포스트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 중 6경기 등판, 3⅓이닝 3피안타 4볼넷 2탈삼진 무실점 1블론세이브.

시즌 종료 후 구단 측과 면담을 거쳐 상호 합의 하에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되었다. 두산 프런트가 김선우에게 선수 은퇴 및 코치 연수를 제안했지만 본인이 이를 거절했다는 썰이 돌기도 했으나 10년 후 본인이 스톡킹에 출연해 직접 그런 적 없었다고 밝혔다.

5. LG 트윈스 시절

이후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에서 그를 눈여겨보았지만 김선우는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연봉 1억 5,000만 원을 제시한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 아이들의 교육 문제와, 지방 팀으로 갈 경우 이사 등 자주 옮겨다녀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LG팬으로 이상훈을 가장 좋아하며 자랐다. 그래서 은퇴 이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팀에서 뛰다 은퇴하고 싶다는[17] 열망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은퇴 시의 인터뷰를 보면 거의 빼박이다. 본인 스스로가 엠스플 진행시에 메이저리그 진출했을 때보다 이상훈과 캐치볼 했을 때가 비교도 안 되게 더 긴장되고 떨렸다고 했을 정도로 강한 LG팬.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컨디션이 상당히 좋았고, 시범경기에서는 1승 방어율 3.60을 기록했다. MBC SPORTS+가 진행한 스프링캠프 인터뷰에서 소속구단을 옮기게 된 심정과 각오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두산 시절을 지난 안 좋은 기억들이라고 언급한 걸로 보아 전 소속 구단인 두산에 그닥 좋은 감정인 건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두산 시절 잦은 부침에 따른 마음 고생과 결별 때의 껄끄러움 때문인 듯. 그리고 이 무슨 곡절인지 3월 29일 개막전 선발로 확정되고 친정 팀 두산 베어스를 상대하게 되었다.

5.1. 2014 시즌

3월 29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팀이 스코어 1:0으로 앞선 2회말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6번타자 양의지에게 홈런[18]을 허용했고, 팀이 3:1로 앞선 3회말 2사 3루에서 3번타자 김현수를 고의사구성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거른 뒤 다음 타자 호르헤 칸투에게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역전 쓰리런 홈런을 맞았다. 김선우는 팀이 스코어 3:4로 지던 4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 류택현으로 교체되었고, 류택현이 실점없이 이닝을 끝내면서 김선우의 실점은 늘지 않았다. 김선우는 이날 3⅓이닝 72투구수 4피안타 2피홈런 3사사구 1탈삼진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4:5로 지면서 2014년 LG의 첫 패전 투수가 되었다.

개막전 바로 다음날인 3월 3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4월 11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됨과 동시에 당일 잠실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1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두 번째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1⅓이닝 47투구수 6피안타 2사사구 7실점 7자책점으로 여지없이 털렸고, 팀이 이날 경기 끝에 스코어 12:11로 패했지만, 팀이 6회말 동점을 만들며 패전 투수는 면했다. 이에 따라 두산이 내친 것이 재평가를 받았다. 결국 21.21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2군에서 12경기를 소화하고 9월 13일 1군에 콜업되었다.

9월 14일 잠실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1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12로 크게 앞선 9회초에 윤지웅에 이어 네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3번째 경기를 치렀다. 5달 만의 1군 등판. 김선우는 이날 세 타자를 상대하여 13투구수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10월 3일 잠실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1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11로 앞선 9회초에 이동현에 이어 일곱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다섯 번째 경기를 치렀다. 김선우는 이날 여섯 타자를 상대하여 1이닝 20투구수 3피안타 무사사구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고 스코어 5:11로 경기를 끝냈다.

10월 11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1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5:2로 크게 앞선 9회말에 유원상에 이어 여섯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여섯 번째 경기를 치렀다. 김선우는 이날 10투구수 1탈삼진으로 9회말을 삼자범퇴로 막고 경기를 끝냈다. 팀은 3경기 연속 역전승을 거둠과 동시에 5연승을 달렸다.

최종 성적은 6경기 1패 평균자책점 14.04로 에이징 커브를 감안해도 심히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19]

6.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에서 꾸준히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국가대표와는 연이 없는 듯하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 예선 니카라과전 선발등판 3이닝 4실점 패전투수.
  • 예선 쿠바전 구원등판.
  • 예선 일본전 구원등판 1이닝 6실점(4자책).

1997 대만 타이베이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 직전해 올림픽 멤버였던 문동환, 임선동, 손민한 등이 프로에 진출하면서 자연스레 김선우가 대표팀 에이스역할을 맡게 되었다. 투구내용이 아주 좋은 건 아니었지만 등판경기마다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했고, 팀의 우승도 이끌었다.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 9회 구원등판해 피홈런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이후 후속타자들을 범타처리하면서 헹가래 투수의 영예도 차지한다. 또한 대회 베스트10에도 선정되었다.

2006 WBC[20]
  • 1라운드 일본전 선발등판 3.1이닝 2실점.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최종예선[21]
  • 스페인전 선발등판 5이닝 4실점 승리투수.

7. 수상 경력

7.1. KBO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김선우의 KBO 수상 경력
2011 페어플레이상

7.2. 기타

김선우의 기타 수상 경력
1994 청룡기고교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상
청룡기고교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투수상
2011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기량발전상

8. 연도별 성적

8.1. KBO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김선우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08 두산 21 6 7 0 0 101⅔ 4.25 126 3 0.462 24 46 1.47 96.3 1.66
2009 29 11 10 0 0 148 5.11 176 18 0.524 54 89 1.51 93.0 2.29
2010 28 13 6 0 0 154⅔ 4.02 163 12 0.684 58 128 1.38 113.3 3.80
2011 28 16
(2위)
7 1 0 175⅔
(4위)
3.13
(3위)
188 13 0.696
(5위)
41 89 1.27
(5위)
131.1 4.61
(5위)
2012 28 6 9 0 0 163⅓ 4.52 182 13 0.400 49 63 1.37 84.7 1.38
2013 17 5 6 0 0 60⅓ 5.52 77 6 0.450 25 20 1.58 77.1 0.16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4 LG 6 0 1 0 0 8⅓ 14.04 14 2 0.000 5 3 2.16 35.3 -0.30
KBO 통산
(7시즌)
157 57 46 1 0 812 4.37 926 66 0.553 256 438 1.41 101.0 13.60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10년 1완투
(6위)
0완봉
2011년 2완투
(4위)
1완봉
(3위)
2012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4완투 1완봉

8.2. MLB

파일:MLB 로고.svg 김선우의 역대 MLB 투수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1 BOS 20 0 2 0 0 41⅓ 5.83 54 1 21 4 27 1.800 77 0.4 0.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2 BOS/MON 19 3 0 0 2 49⅓ 4.74 52 5 14 2 29 1.338 95 0.4 0.6
2003 MON 4 0 1 0 0 14 8.36 24 6 8 4 5 2.286 55 -0.6 -0.3
2004 43 4 6 0 2 135⅔ 4.58 145 17 55 13 87 1.474 99 0.5 0.2
<rowcolor=#cccccc> 연도 소속팀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5 WSH/COL 24 6 3 0 0 82⅔ 4.90 97 10 21 3 55 1.427 93 1.0 0.5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6 COL/CIN 8 0 1 0 0 13⅔ 12.51 24 5 8 1 8 2.341 40 -0.3 -0.6
MLB 통산
(6시즌)
118 13 13 0 4 337 5.31 396 44 127 27 211 1.552 86 1.4 0.4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5년 1완투 1완봉
MLB 통산 1완투 1완봉

파일:MLB 로고.svg 김선우의 역대 MLB 타자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1 BOS 3 0 0 0 0 0 0 0 0 0 0 - - - - 0.0 0.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2 MON 4 8 2 0 0 0 2 0 0 0 2 .250 .250 .250 .500 0.0 0.2
2003 4 3 0 0 0 0 0 0 0 0 1 .000 .000 .000 .000 0.0 0.0
2004 41 32 6 2 0 0 1 5 1 0 9 .214 .214 .286 .500 0.1 0.1
<rowcolor=#cccccc> 연도 소속팀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5 WSH/COL 22 26 2 0 0 0 2 3 0 0 5 .105 .100 .105 .205 -0.2 0.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6 COL/CIN 8 2 1 1 0 0 0 0 0 0 0 .500 .500 1.000 1.500 0.1 0.1
MLB 통산
(6시즌)
82 71 11 3 0 0 5 8 1 0 17 .183 .180 .233 .414 0.0 0.4

8.3. MiLB

  • 한 연도에 동일 구단 산하 여러 레벨의 기록이 존재할 경우, Rk → A- → A → A+ → AA → AAA 순으로 서술.
역대 기록(투수)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사라소타 레드삭스(A+) 26 153 12 8 0 0 .600 4.82 159 18 42 132 88 82 1.30
1999 트렌턴 썬더(AA) 26 149 9 8 0 0 .529 4.89 160 16 53 130 86 81 1.37
2000 포터킷 레드삭스(AAA) 26 134⅓ 11 7 0 0 .611 6.03 170 17 47 116 98 90 1.58
2001 29 89 6 7 0 0 .462 5.36 93 10 33 79 55 53 1.35
2002 8 45⅓ 4 2 0 0 .667 3.18 34 4 19 37 18 16 1.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오타와 링크스(AAA) 7 43⅔ 3 0 0 0 1.000 1.24 29 2 16 28 11 6 1.03
2002 시즌 합계 15 89 7 2 0 0 .778 2.22 63 6 34 65 29 22 1.07
2003 에드먼턴 트래퍼스(AAA) 22 132⅓ 10 8 0 0 .556 5.03 147 18 56 83 83 74 1.5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뉴올리언스 제퍼스(AAA) 9 49 4 2 0 0 .667 2.76 46 4 17 38 23 15 1.2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스카이삭스(AAA) 21 124⅔ 8 6 0 0 .571 5.05 149 14 43 71 77 70 1.4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프레즈노 그리즐리스(AAA) 25 118⅓ 8 8 0 2 .500 4.87 131 11 37 88 77 64 1.40
<colbgcolor=#ffff99> MiLB 통산
(9시즌)
189 1038⅔ 75 56 0 2 .573 4.77 1118 114 363 802 616 551 1.39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98년 5완투 0완봉
1999년 1완투 1완봉
2002년 2완투 1완봉
2003년 3완투 2완봉
2006년 2완투 2완봉
2007년 1완투 1완봉
MiLB 통산 14완투 7완봉

역대 기록(타자)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2 오타와 링크스(AAA) 7 3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2003 에드먼턴 트래퍼스(AAA) 22 34 .265 9 2 0 0 7 4 0 1 .286 .324 .610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5 뉴올리언즈 제퍼스(AAA) 9 12 .250 3 1 0 0 0 0 0 0 .250 .333 .583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스카이삭스(AAA) 21 26 .154 4 1 0 0 2 2 0 1 .185 .192 .377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7 프레즈노 그리즐리스(AAA) 27 23 .174 4 1 0 0 1 0 0 1 .208 .217 .425
MiLB 통산
(5시즌)
86 98 .204 20 5 0 0 10 5 0 3 .228 .255 .483


[1] 휘문고의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이었다.[2] 고려대를 선택한 이유는 재학 도중 메이저리그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3] 심지어 은퇴할 때도 "어려서부터 뛰고 싶었던 LG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말을 남겨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쥐선우라고 미친 듯이 까였으며 반대로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찬양받았다.[4] 박찬호에 유난히 강했던 천적들중의 한 명으로 4홈런 10타점을 뺏어냈다.[5] 저 피안타는 5~7번 타자에게 허용한건데 배리 본즈 앞의 상위 타자들은 잡는 것에 집중하고 던졌다고 한다.[6] 8⅔이닝 1실점. 이는 동시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마지막 선발승 기록이기도 하다.[7] 다만 엑스포스의 최후의 홈경기에서는 일찌감치 털려서 패전투수가 됐다.[8] 다만 김선우 본인은 이날 발목힘줄부근에 공을 맞았는데도 교체가 안되어 결국 역전홈런을 허용했고 이후 두달을 못걸어다닌 것 때문에 썩 좋은 기억은 아닌듯.[9] 이 홈런은 헨드릭스의 야구선수로서의 유일한 홈런이었다.[10] 사실 김선우의 지명권을 갖고 있던 두산은 2006년부터 김선우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끊임없이 그와 접촉해 계약 조건을 제시했으나 김선우가 여전히 미국 무대 도전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입단시키는 데 실패했던 바 있다. 결국 김선우는 점점 올라올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데다 가정에 집중하기 위해 KBO 리턴을 결정했고 2008년에야 그를 입단시키는 데 성공한 셈. 참고로 2007년에 열렸던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복귀한 선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마이너 소속이었던 이승학이었고, 김선우는 해외파 복귀 2년 유예 제도가 생기기 전에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유예기간 없이 바로 입단이 가능했다. 이는 서재응도 해당되는 부분.[11] 한편 한 달 전인 2007년 12월 중순 서재응이 먼저 KIA 타이거즈로 입단하면서 2008 시즌을 앞두고 때아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었다. 총액 15억원의 계약 역시 서재응을 의식하여 그에 맞춘 금액일 것이라는 게 당시 중론.[12] 7월 27일 삼성전[13] 한국행 직전 시즌인 2007년엔 NPB 수준으로 평가받는 트리플A에서 8승 8패를 기록했다.[14] 이 경기 직후 평균자책점이 18.69가 되었다. 9/(13/3)*9 = 18.6923...[15] 여담으로 김선우를 앞장서서 까는 모 갤러는 개구리 옷을 입고 잠실야구장에 갔다가 TV카메라에 잡히자, XTM 임용수 캐스터에게 '김선우의 열렬한 팬'이라는 말을 들었다.[16] 2012년 6월 9일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성장호르몬 부족증세에 걸린 15세 몽골 소년이 김선우의 투구를 보며 탄식하는 장면이 나왔는데(XTM에서 중계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한 달 후 이 장면이 발굴되자 돡갤러들은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빼앗는다"라며 탄식하고 있다. 발굴된 장면[17] 비슷한 예로 현재윤이 있는데 커리어 대부분을 삼성에서 보낸 현재윤은 LG에서 잠깐 뛰고 은퇴하였음에도 LG 선수로서 행복했었다는 글을 남겨 삼성팬들을 멘붕시켰다.[18] 2014년 프로야구 1호 홈런이다.[19]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KBO로 복귀한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에는 이상훈이 가장 먼저 은퇴했고 이후 조진호, 박찬호 순.[20] 도쿄돔.[21] 대만 타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