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7 17:21:08

에드바르 그리그

그리그에서 넘어옴
서양 음악사의 주요 인물 · 기록물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keep-all; letter-spacing:-.2px"
고대 메소포타미아 음악 <colbgcolor=#fff,#1c1d1f>후르리인의 닌갈 찬가
그리스 음악 세이킬로스의 노래 · 델포이 찬가
중세 음악 노트르담 악파 레오냉 · 페로탱
아르스 노바 비트리 · 마쇼
기타 란디니 · 던스터블 · 빙엔
르네​상스 음악 부르고뉴 악파 뒤파이 · 뱅슈아
플랑드르 악파 오케겜 · 프레 · 이자크
이탈리아 팔레스트리나 · 라수스 · 카치니 · 가브리엘리
스페인 빅토리아
영국 탈리스 · 버드 · 다울런드
독일 루터 · 스벨링크 · 프레토리우스 · 하슬러
프랑스 샹보니에르 · 륄리 · 레벨 · 마레 · 캉프라 · 샤르팡티에 · 라모 · 쿠프랭 · 드 라 게르 · 르클레어 · 루아예
이탈리아 몬테베르디 · 알레그리 · 프레스코발디 · 카발리 · 카리시미 · 스트로치 · 스트라델라 · 코렐리 · 스테파니 · 토렐리 · A. 스카를라티 · 비탈리 · 로티 · A. 마르첼로 · 칼다라 · G. 보논치니 · 알비노니 · A. M. 보논치니 · 비발디 · 사로 · D. 스카를라티 · B. 마르첼로 · 포르포라 · 제미니아니 · 빈치 · 페오 · 타르티니 · 로카텔리 · 레오 · R. 브로스키 · 로그로시노 · 셀리토 · 파리넬리 · 페르골레지
중부 유럽 비버 · 쉿츠 · 산즈 · 프로베르거 · 파헬벨 · 툰더 · 북스테후데 · 젤렌카 · 마테존 · 하이니헨 · 텔레만 · J. S. 바흐 · 파슈 · 피젠델
영국 퍼셀 · 헨델 · 애비슨
고전​주의 전고전(로코코) 하세 · J. G. 그라운 · C. H. 그라운 · 마르티니 · 아라야 · F. 벤다 · 루소 · W. F. 바흐 · 보이스 · C. P. E. 바흐 · 글루크 · 욤멜리 · J. 슈타미츠 · L. 모차르트 · 아벨
초기 고전파 G. 벤다 · 베르토니 · 트라에타 · 하이든 · 고세크 · M. 하이든 · C. 슈타미츠 · J. C. 바흐 · 파이지엘로 · 보케리니
후기 고전파와 과도기 치마로사 · 살리에리 · 클레멘티 · 모차르트 · 케루비니 · 카룰리 · 베토벤 · 훔멜 · 소르 · 줄리아니 · 쿨라우 · 리스 · 카르카시
낭만​주의 전기 낭만​주의 초기 낭만파 아구아도 · 베버 · 파가니니 · 레냐니 · F. 모차르트 · 슈베르트 · 글린카 · 슈포어 · 메르츠
독일, 오스트리아
낭만주의
멘델스존 · 슈만 · C. 슈만
미국, 프랑스
낭만주의
베를리오즈 · 코스트 · 구노 · 포스터 · 고트샬크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 체르니 · 쇼팽 · 리스트 · 탈베르크 · 알캉 · 헨젤트 · 루빈시테인
오페라 로시니 · 마이어베어 · 도니체티 · 벨리니
빈 왈츠 라너 · J. 슈트라우스 1세 · 주페 · J. 슈트라우스 2세 · 페피 · E. 슈트라우스 · 치러 · J. 슈트라우스 3세
후기 낭만​주의 독일, 오스트리아
후기 낭만
바그너 · 라이네케 · 브루크너 · 뷜로 · 브람스 · 브루흐 · 로트 · 말러 · R. 슈트라우스 · 레거 · 라블 · 크라이슬러 · 푸르트뱅글러 · 코른골트 · 슈레커 · 라프 · 라인베르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
베르디 · 폰키엘리 · 푸치니 · 레온카발로 · 마스카니
프랑스
후기 낭만
비외탕 · 생상스 · 비제 · 오펜바흐 · 발퇴펠 · 뒤카 · 포레 · 프랑크 · 랄로 · 이자이 · 사티
러시아
후기 낭만
차이콥스키 · 라흐마니노프 · 스크랴빈 · 메트네르 · 아렌스키 · 글라주노프 · 칼리니코프 · 보르트키에비치
영국
낭만주의
엘가 · 홀스트 · 브리지 · 본 윌리엄스 · 블리스 · 핀치
폴란드
낭만주의
봉다제프스카 · 모슈코프스키 · 호프만 · 시마노프스키
미국
후기 낭만
와이먼 · 수자 · 오르트 · 고도프스키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낭만주의
이바노비치 · 페야체비치
국민​악파 러시아 무소륵스키 · 보로딘 · 림스키코르사코프 · 발라키레프 · 큐이 · 글리에르
중부 유럽 스메타나 파일:체코 국기.svg · 드보르자크 파일:체코 국기.svg · 야나체크 파일:체코 국기.svg · 에네스쿠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 도흐나니 파일:헝가리 국기.svg · 흐리스토프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 블라디게로프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 모니우슈코 파일:폴란드 국기.svg · 비에니아프스키 · 파일:폴란드 국기.svg
북유럽 닐센 파일:덴마크 국기.svg · 그리그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 시벨리우스 파일:핀란드 국기.svg · 알벤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페인 사라사테 · 타레가 · 알베니스 · 라라 · 그라나도스 · 파야 · 요베트 · 투리나 · 토로바 · 사인스 데 라 마사 · 로드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쇼송 · 당디 · 레스피기
20​세기​음악
인상주의 드뷔시 · 라벨 · 고베르 · 이베르 · 호세
신고전주의 부조니 · 스트라빈스키 · 힌데미트 · 바체비치
제2 빈 악파 쇤베르크 · 베베른 · 베르크
프랑스 근현대 음악 풀랑크 · 불랑제 · 미요 · 테유페르 · 오네게르 · 메시앙 · 뒤티외 · 불레즈 · 뒤사팽 · 졸리베 · 디앙 · 페송
영국 근현대 음악 소랍지 · 월튼 · 티펫 · 브리튼 · 두아르테
앵글로아메리카
근현대 음악
바레즈 · 조플린 · 아이브스 · 거슈윈 · 그로페 · 바일 · 코플런드 · 앤더슨 · 카터 · 바버 · 케이지 · 낸캐로우 · 배빗 · 해리슨 · 번스타인 · 로렘 · 펠드먼 · 무친스키 · 크럼 · 존 윌리엄스 · 테니 · 라일리 · · 라이히 · 글래스 · 다비도브스키 · 제프스키 · 볼컴 · 애덤스 · 에바즌 · · 체르노빈 · 리버만 · 히그던 · 캐시디 · 노먼 · 비비에 · 아믈랭
라틴 아메리카
근현대 음악
로사스 · 폰세 · 브라우어 · 라우로 · 레쿠오나 · 망고레 · 빌라로부스 · 히나스테라 · 피아졸라
소련-러시아
근현대 음악
프로코피예프 · 쇼스타코비치 · 하차투리안 · 시닛케 · 카발레프스키 · 먀스콥스키 · 스비리도프 · 구바이둘리나 · 셰드린 · 카푸스틴 · 스코릭 · 아르투니안
헝가리 근현대 음악 버르토크 · 코다이 · 리게티 · 쿠르탁 · 외트뵈시
폴란드 현대 음악 루토스와프스키 · 펜데레츠키 · 구레츠키
독일-오스트리아
현대 음악
슈토크하우젠 · 치머만 · 라헨만 · 헨체
이탈리아 현대 음악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 노노 · 달라피콜라 · 베리오 · 샤리노 · 페델레
한국 현대 음악 백병동 · 강석희 · 나인용 · 나운영 · 이만방
기타 크세나키스 · 바인 · 아브라함센 · 김순남 · 윤이상 · 라우타바라 · 카잔지예프 · · 타케미츠 · 진은숙 · 박-파안 영희 · 요시마츠 · · 도이처 }}}}}}}}}
<colbgcolor=#000><colcolor=#fff> 에드바르 그리그
Edvard Grieg
파일:Edvard_Grieg_(1888)_by_Elliot_and_Fry_-_02.jpg
본명 에드바르 하게루프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출생 1843년 6월 15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베스틀란주 베르겐
사망 1907년 9월 4일 (향년 64세)
노르웨이 베스틀란주 베르겐시 파나구 파라디스동
국적
[[노르웨이|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작곡가, 피아니스트
신체 152cm
배우자 니나 그리그 (1867년 결혼)
자녀 알렉산드라 그리그
종교 유니테리언[1]

1. 개요2. 생애3. 작품 성향4. 주요 작품
4.1. 협주곡4.2. 관현악4.3. 실내악4.4. 피아노4.5. 가곡4.6. 합창
5. 기타

[clearfix]

1. 개요

노르웨이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2. 생애

1843년에 베르겐의 스코틀랜드계 혈통의 가정에서 태어났다.[2] 1849년에 6살 때 악보 읽기와 짧은 피아노 연습곡을 배웠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었는지 일기"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노 연습에 염증을 느꼈다.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더라면 음악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썼다. 1858년에는 노르웨이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이 그리그와 만났는데, 그는 그리그에게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 음악원으로 간 그리그는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교육환경에 실망했다. 게다가 담당교수가 쇼팽을 비난했기 때문에 쇼팽을 흠모했던 그리그는 음악원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이 시절에 일시적으로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1861년에는 스웨덴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리그는 1862년에 3년 반에 걸친 학업을 마치고 음악원을 졸업했다.

초기에는 주로 피아노곡을 작곡했는데, 이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는 '3개의 피아노 소품'(1860), '4개의 피아노 소품, Op.1'(1861)이 있다. 1863년에는 음악적으로 뒤떨어진 베르겐을 떠나 덴마크코펜하겐으로 옮겨서 약 3년을 보냈다. 여기서 유명한 덴마크 작곡가 닐스 가데(1817~1890)[3]를 만나 조언을 받기도 했다. 1864년에는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작곡가 노드로크(Rikard Nordraak 1842~1866)를 만난 것도 이곳에서였다. 노드로크[4]는 그리그에게 민족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같은 해에 사촌동생이었던 니나와 약혼을 했는데, 그 때 나온 작품이 가곡 '그대를 사랑해, Op.5-3'이다.

노드로크와 그리그는 노르웨이인 민족음악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했으나, 노드로크는 2년 뒤인 1866년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 때 그리그가 쓴 작품이 '노드로크를 추모하는 장송행진곡 A단조'이다.[5] 그리그는 노드로크와의 약속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훗날 그것을 지켰다. 그리그는 “노드로크는 음악을 뛰어넘어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그리그는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헨리크 입센에게 극장의 일을 부탁한다. 그러나 극장주 비외르손은 거절한다. 이 사건은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의 발전을 늦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드로크가 사망한 해인 1866년에 그리그는 노르웨이 음악만으로 이루어진 연주회를 가졌는데, 이 때 나온 작품이 '바이올린 소나타 1번 F장조'였다. 이 작품을 접하고 감명을 받은 리스트는 이후 그리그를 꾸준히 후원해 주었다. 1867년에는 니나와 결혼했으며, 이후 니나는 반려자로서 그리그를 충실하게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성악가로서도 남편의 작품을 꾸준히 노래했다. 한편 그리그는 2년 뒤인 1869년에 노르웨이 민요의 악보 “고금의 산중음악”을 입수했으며, 이를 면밀히 연구해 훗날 진정한 민족음악을 작곡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1868년에는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작곡했는데, 이 곡은 그리그의 유일한 협주곡이 되었다. 이 작품을 접한 리스트는 "이것이야말로 스칸디나비아의 혼이다."라고 극찬하면서 그리그에게 "지금 잘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대로만 계속 하십시오."라고 격려했다.

1874년에는 입센에게서 그의 희곡 '페르 귄트'에 들어갈 연주용 부수음악 작곡을 의뢰하는 편지를 받았다. 그리그는 이 난해한 희곡에 대하여 상당히 고민했으나[6]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그 작품이 극부수음악 페르 귄트였다. 그 후 1876년에 이 부수음악을 가지고 각각 4개의 곡을 가진 2개의 모음곡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작품의 초연에는 입센과 그리그 모두 불참하였으나 이후 이 곡이 성공하자 입센은 그리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 곡은 후에 그리그를 평생 먹여 살리는 곡이 되었다.

1877년에는 '현악 4중주 G단조'를, 1883년에는 '첼로 소나타 A단조'를 작곡하는 등 실내악 부분에서도 작곡을 진행하였다. 2년 뒤인 1885년에는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홀베르 모음곡'을 작곡하였다. 1887년에는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를 작곡하였다.

이 때 즈음에 그리그는 훈장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훈장은 정말 쓸모 있는 물건이야. 여행가방 위에 훈장을 올려놓으면, 세관원들이 친절하게 대해준다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7]

1894년에는 자신의 피아노 작품인 '서정 소품집'에서 발췌하여 관현악으로 편곡한 '서정 모음곡'을 작곡하였고, 1896년에 피아노곡 '19개의 노르웨이 민요'를 작곡하였다. 한편 1898년에는 베르겐 음악제 감독에 취임해 자신의 음악을 마음껏 뽐내게 되었고, 같은 해에 피아노곡 '3개의 피아노 소품', 관현악곡 '교향적 춤곡'을 작곡하였다. 그 후 1901년에는 합창곡 '올레 불에게', 1906년에는 합창곡 '오래된 노르웨이 교회 선율에 의한 4개의 시편'을 작곡하였으며 1907년 9월 4일에 베르겐에서 사망하였다. 노르웨이 정부는 자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국장으로 예우하였으며, 그의 시신은 화장된 후 그가 그리워한 어느 피오르의 바위동굴에 안치되었다.

당시 그가 남겼던 유언은 다음과 같다.
"Well, if it must be so.'''
''뭐, 이래야 한다면."

3. 작품 성향

노르웨이쇼팽이라 불릴 정도로 피아노곡을 많이 썼으며, 실내악, 관현악, 합창곡, 가곡 등에서도 성과를 보였다.

4. 주요 작품

4.1.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

4.2. 관현악

홀베르그 모음곡 중 가보트와 뮈제트

4.3. 실내악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F장조 Op.8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간주곡 A단조 EG 115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G장조 Op.13
  • 피아노 3중주 안단테 콘 모토 C단조 EG 116
  • 현악 4중주 1번 G단조 Op.27
  • 첼로 소나타 A단조 Op.36
  •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 Op.45
  • 현악 4중주 2번 F장조(미완성)

4.4. 피아노

서정 소곡집 5권 서정 모음곡 중 난쟁이들의 행진
피아노 소나타 E단조
  • 3개의 피아노 소품 EG 105
  • 4개의 피아노 소품 Op.1
  • 유머레스크 Op.6
  • 피아노 소나타 E단조 Op.7
  • 서정 소곡집 1~10권[12]
  • 노드라크를 추모하는 장송 행진곡 A단조[13]
  • 25개의 노르웨이 민요와 춤곡 Op.17
  •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변주곡 형식의 발라드 G단조 Op.24
  • 두 개의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즉흥곡 Op.29
  • 오래된 노르웨이 멜로디에 의한 변주곡 Op.51
  • 19개의 노르웨이 민요 Op.66
  • 노르웨이 농민 춤곡 Op.72

4.5. 가곡

  • 마음의 선율 Op.5
  • 아이들의 노래 Op.61
  • 6개의 노래 EG 177
  • 연가곡 산의 요정 Op.67

4.6. 합창

  • 홀베르 칸타타
  • 올레 불에게
  • 오래된 노르웨이 교회 멜로디에 의한 4개의 시편

5. 기타

  • 키가 북유럽 출신 중 유난히 작은 편인데, 그때 당시의 북유럽 출신 남성 단신들도 160cm은 넘는 것에 비해 152cm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현대의 노르웨이 남성 평균키 보다도 30cm가 작을 뿐더러 심지어 노르웨이 여성 평균키보다도 10cm 이상 작은 키이다. 하지만 옛날 사람이라 키가 작을 가능성도 있다.
  • 그리그의 후손이 바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이다. 정확힌 외증조부의 사촌이 그리그였다.


[1] 부인 니나와 함께 독실한 유니테리언 신자로 살았다.[2] 원래 성은 그레이그(Greig)로 자코바이트였던 그리그의 증조부가 1746년 스코틀랜드의 자코바이트 반란에 참가했다가 실패한 뒤 스코틀랜드를 떠나 전세계를 떠돌던 중 노르웨이에 정착했다.[3] 로베르트 슈만펠릭스 멘델스존의 친구였으며 보수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을 썼다. 카를 닐센이 그의 마지막 제자였다.[4] 노르웨이 국가 그래,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를 작곡했다.[5] 말년에 자신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리그는 여행을 다닐 때마다 항상 이 곡의 악보를 챙겼다고 한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장례식에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이 곡은 그리그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6] 그리그 자신은 이 희곡이 '지나치게 철학적이며, 기껏해야 스칸디나비아 안에서나 먹힐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판단했기에 작곡에 주저했다.[7] 출처1 출처2[8] 그리그가 완성한 유일한 협주곡[9] 작곡가가 악보에 "연주 금지"라고 썼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연주되었다.[10] 이 곡의 두 번째 악장인 '오제의 죽음'은 박정희 대통령 10.26 사태 이후 TV에서 사용되었다. 2005년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주요 등장인물이 전사하는 등 중요하면서도 슬픈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은 장면에서 즐겨 쓰였으며, 게임 문명 5에서는 유럽권 문명들의 공용 OST 가운데 하나로 연주된다. 한때는 국립현충원에 가면 하루 종일 원 없이 들을 수 있었다고(...).[11] 유명한 곡인 산왕의 궁전에서(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가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12] 모두 66곡이다.[13] 이쪽이 원곡이고, 관현악 버전은 나중에 편곡한 것이다.[14]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