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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도라에몽 (1979~2005) ドラえもん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작품 정보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장르 | SF, 일상, 코미디 | |
원작 | 후지코 F. 후지오 | ||
치프 디렉터 | 시바야마 츠토무 모토히라 료 | ||
캐릭터 디자인 | 나카무라 에이이치(中村英一) | ||
총 작화감독 | |||
미술 감독 | 쿠도 코이치(工藤剛一) 사토 마사유키(佐藤正行) 시미즈 토시유키(清水としゆき) | ||
색채 설계 | 노나카 사치코(野中幸子) 마츠타니 사나에(松谷早苗) | ||
촬영 감독 | 시미즈 타츠마사(清水達正) 코이케 아키라(小池 彰) | ||
편집 | 오카야스 하지메(岡安 肇) | ||
음향 감독 | 우라카미 야스오(浦上靖夫) 오오쿠마 아키라(大熊 昭) | ||
음악 | 키쿠치 슌스케(菊池俊輔) 사와다 칸[1] | ||
프로듀서 | 사나다 요시노부(真田芳房) 타카사히 마사키(高橋正樹) 벳시 소이치(別紙壮一) 칸노 테츠오(菅野哲夫) | ||
애니메이션 제작 | 신에이 동화 | ||
제작 | 테레비 아사히 ADK 신에이 동화 | ||
방영 기간 | 1979. 04. 02. ~ 2005. 03. 18. | ||
방송국 | 테레비 아사히 / (금) 19:00[2] MBC 대원방송 | ||
편당 러닝타임 | 24분 | ||
화수 | 1787화 + 특별편 30화 | ||
시청 등급 | 모든 연령 시청가 | ||
관련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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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코 F. 후지오의 만화 도라에몽을 원작으로 하는 TV 애니메이션.1979년 4월 2일부터 2005년 3월 25일까지 총 26년 동안 방영되었다. 제작은 신에이 동화.
한국에서 MBC를 통해 처음 소개된 도라에몽이 바로 이 시리즈. 2006년부터 2010년대 중후반까지[3] 우리가 애니메이션 채널만 켜면 볼 수 있었던 그 시리즈다. 나중에 챔프TV/애니원에서 추가로 방영한 다음 시즌 도라에몽을 <신 도라에몽>으로 들여옴에 따라 국내 팬들 사이에서 편의상 이 시즌을 자연스레 <구 도라에몽>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일본 팬들은 오오야마 성우진 도라에몽이라고도 부른다. 일단 나무위키 또한 정리상 구 도라에몽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국내에선 니혼도라가 방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평범히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이라고 하면 구 도라에몽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잦은 편이었다.[4]
구 도라에몽 시즌은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시리즈의 중심점 같은 작품일 만큼 방영 기간도 무척 길었고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프로그램 개편기,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맞이할 때마다 거의 매번 빼먹지 않고 <도라에몽 마츠리>라는 이름으로 1~2시간짜리 스페셜 방송을 했을 정도. 연말 특집은 3시간 이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원작을 무척 중시한 시즌이지만 원작과는 되려 바뀐 요소도 몇가지 있다. 첫째로 도라에몽의 '어린아이 돌보기 로봇'이라는 점이 이 시즌부터 강하게 그려졌다. 이는 도라에몽의 담당 성우였던 오오야마 노부요의 캐릭터 연구 덕분. 둘째로 뜻밖의 신이슬의 상대방을 호칭하는 단어가 하나로 정리되었다. 자세한 것은 신이슬 문서 참고. 후에 이런 개선점은 원작에 역수입된다.
색감이 전체적으로 쨍하고, 진하고, 채도가 높다. 신도라에몽은 채도가 낮고, 옅은 파스텔톤의 색감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일부 초기 에피소드는 더빙판도 성인인증이 필요한데,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심의가 약하지만[5], 한국은 그동안 심의가 세지고, 유튜브 내에서도 자체 심의에도 걸리는 듯하다.
1979년~1981년과 1999년~2001년 에피소드를 비교해보면 작화 갭이 있다. 구도라 후반부에서 도라에몽의 키가 더 커지고 캐릭터들의 머리가 작아진다. 짱구는 못말려에 비유하면 봉미선이나 나미리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훈이 내지는 신짱아처럼 미미한 변화다. 다만 초기 에피소드는 작화가 매우 불안정해서 단정짓기는 어렵다.[6] 심지어 문의 색깔이 수시로 바뀌는 적도 있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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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7일, 마지막 녹음 당시 오오야마 성우진[7] |
니혼 테레비 동화가 애니메이션 사업을 불의의 사고로 접고 해산한 뒤,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의 제작권리는 작가에게 신뢰를 얻고 있던 도쿄 무비에게 맡겨졌다. 그 뒤 1976년 10월, 도쿄 무비에서 하청 제작을 담당하던 A 프로덕션이 독립해서 신에이 동화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당시 도쿄 무비의 사장 후지오카 유타카는 전별금 삼아 신에이 동화에게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의 제작 권리를 혼쾌히 양도했다고 한다. 이 일을 인연으로 신에이 동화가 2005년까지 구 도라에몽의 제작을 맡게 된다.
파일럿 방송 당시의 에피소드 타이틀 화면. 에피소드는 "내 방의 낚시터"로, 원작에 수록된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화하였다. 이 에피소드는 2005년 신 도라에몽 첫 방영 에피소드로 다시 리메이크되었다.
당시 신에이 동화의 사장 쿠스베 산키치로[8]는 1977년 10월 후지코 F. 후지오를 찾아가 재추진 의사를 물었지만, 이미 애니화가 실패한 것을 겪은 후지코 F. 후지오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반응을 보인다. 비록 TV 애니메이션은 이때도 아직 허가받지 못했으나 대신 후지코 F. 후지오로부터 극장판의 제작은 허가받았다고 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 A 프로덕션에서 일한 타카하타 이사오한테 도라에몽을 사서 보여주고 기획서를 써달라고 요청했고 타카하타 이사오는 훑어보고는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다.' 라고 평하며 바로 기획서 작성에 착수했다고 한다. 기획서의 핵심은 원작을 오리지널 요소 없이 그대로 애니화하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각본가를 따로 두지 않고 원작 만화를 콘티담당을 시켜 콘티로 바로 옮겨 그리게 하고 바로 영상으로 만드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원작이 훌륭하니 크게 변경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하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어차피 원작부터가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에피소드 하나를 20분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해서[9] 1화에 원작 에피소드 2개를 애니화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
타카하타 이사오가 만든 기획서를 둘이서 후지코 F. 후지오한테 보여주자 바로 허락 답변을 들어 TV 애니메이션화 권한을 얻었다고 하는데, 사실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의 재추진은 비슷한 시기의 요미우리 TV의 프로듀서가 기획서를 제출하여 먼저 접근하였으나 방송국 상층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었다. 이듬해(1978년)엔 소학관이 도라에몽의 재애니메이션화 교섭을 시작했으며, 같은 시기 TV 아사히 19~23시 프라임 타임 담당자 타카하시 히로시는 편성 국장과 편성 부장에게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꾸중을 들은 이후 해결책으로 월~토 10분 벨트 프로그램 기획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때 타카하시는 도라에몽을 포함한 88개의 기획들을 마련했고, 때마침 아사히 통신사(지금의 ADK)가 TV 아사히에 벨트 프로그램 기획 상황을 물어보며 타카하시의 도라에몽 진행에 동의해 신에이가 제작한 파일럿판 에피소드인 '내 방의 낚시터'를 감상하자 편성부 내의 큰 호평을 받아내 1979년 4월 TV 아사히의 프로그램 개편기를 맞아 방영이 결정됐다.
1979년 당시의 TV 아사히 월~토 시간대(18시 50분 ~ 19시)는 간토 한정의 로컬 스폰서만 존재하여, 광고 대행사에서의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존재해 본방송 분들을 일요일 아침(8시 30분 ~ 9시) 시간대의 전국 동시 방송용으로 편집해 재방송하는 당시에 드문 편성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역사적인 첫 에피소드는 파일럿 필름상으로는 '내 방의 낚시터'이나 1979년 10월 3일 도라에몽 가을 축제에서 첫 방영되었고 실제로 처음 방영된 에피소드는 '꿈의 노비타랜드'이다. 이 에피소드는 훗날 신 도라에몽에서도 첫 방영 에피소드를 담당했다. 덧붙여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화가 마치 니혼TV판 도라에몽의 속편을 의식한 듯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고. 신이슬(시즈카)의 머리 색이 옅은 밤색인 설정이 유지되는 등, 니혼TV판 시청자들을 배려한 부분도 엿보였다. 당시에 첫 방영 빼고 시청률이 10%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2010년대까지 2~30년 연속으로 꾸준히 10% 이상을 하며 만년 시청률 1위의 사자에상에 이어 콩라인으로 올라서게 된다.
덧붙여 도라에몽이 처음으로 노비타의 앞에 나타난 에피소드 <저 먼 미래의 나라에서>는 다음해 새해 특집에 가서야 방영되었으며 해당 에피소드는 90년대 중반에 한 차례 리메이크 되었다.[10]
2002년 10월 4일 방영분부터 셀 채색에서 디지털 채색으로 바뀌었고 이 때 여는 노래 및 닫는 노래가 교체되었다.[11][12] 디지털 채색 전환을 기점으로 방영 스타일도 크게 달라졌는데, 과감한 리액션과 톰과 제리를 연상시키는 슬랩스틱 개그 연출이 많아졌으며, 그와 반대로 직접적으로 성기를 노출하는 장면과 잔혹한 장면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가장 마지막에 방영된 에피소드는 2005년 3월 18일에 방영된[13] <도라에몽에게 휴일을?!>. 해당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엔 도라에몽이 웃으며 창밖으로 경치를 구경하는 훈훈한 장면으로 종영하면서 구 도라에몽은 완결되었다.
3.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도라에몽/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4. 설정
도구에 대한 내용은 도라에몽/도구 문서 참고하십시오.
5. 주제가
자세한 내용은 도라에몽(애니메이션)/주제가 문서 참고하십시오.6. 회차 목록
1979년부터 2005년까지의 내용은 1973~2000년 문서\회차 목록 | |||||
1973-1980년 | 1981-1990년 | 1991-2000년 | 2001-2010년 | 2011-2020년 | 2021-2030년 |
7. 평가
7.1. 시청률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인기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일본의 TV 시청률 순위에서도 늘 10위권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을 정도. 2005년 3월까지 일본에서 뽑은 최고 시청률은 무려 31.2%. 이후 1980년대 전반에 걸쳐서 시청률 20%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거의 매주 기록했으며 동시간대 탑에 선 적도 많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는 연간 평균으로 1990년대 후반은 15%전후, 구도라 시즌이 종료되는 2000년대 전반엔 12% 전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끝머리에서도 11~13%는 기록하는 우월함을 보였다.종종 도라에몽의 팬층이 '신 도라에몽은 구 도라에몽의 시청률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위의 설명처럼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시리즈의 시청률 저하는 딱히 신 도라에몽 시즌 때문이라기보다는 TV시청 말고도 놀거리가 늘어나고 인터넷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시대의 흐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도라에몽 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민 애니메이션들도 이러한 경향이 있다.
씁쓸한 우스갯소리로 뽀뽀뽀와 도라에몽의 차이점이라면 뽀뽀뽀가 한 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MBC 내부에서도 폐지냐 존속이냐 논란이 계속되다 잠시 폐지되었지만 도라에몽은 아직도 시청률 상위 톱10 안에 들고 있다는 것이다.
8. 모두 몇 편?
기록에 따르면 모두 1787편. 화수에 포함되지 않는 스페셜 에피소드까지 합치면 1814편. 26년이라는 세월동안 방영한 시리즈라서 1만편이 넘는 내용 중 상당수가 이 시즌에 해당한다. 시리즈에 따른 작화의 질이나 시대상의 변화도 무척 잘 담겨있는 보존 대상. 한국으로 따지면 박정희 정부 말기[14]에서 참여정부 중기[15]까지 방영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16] 또한 구 도라에몽이 방영되는 동안 일본에서는 68대 오히라 마사요시부터 88대 고이즈미 준이치로[17]까지 21대 14명의 총리가 거쳐갔으며 미국에서는 지미 카터부터 조지 W. 부시까지 5명의 대통령이 거쳐갔다.이처럼 상당히 오랫동안 방영한 만큼 특히 소재 착안에 많은 힘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 전 방영한 에피소드를 같은 시즌 안에서 리메이크해서 방영하는 역발상(…)을 시도했을 정도. 기념비가 될 첫 리메이크 에피소드는 1985년 방영된 '늑대 가족을 구해라!!'. 다만 1981년 한해동안은 후지코 F. 후지오의 작품인 《포코냥》의 내용을 도라에몽으로 바꾼 에피소드를 주로 방영했고, 2002년부터 2005년 종영까지는 《키테레츠 대백과》를 도라에몽으로 바꾼 에피소드가 주로 방영했다. 도라에몽의 에피소드 리메이크는 이제 특이사항도 아니지만 포코냥과 키테레츠 대백과의 내용을 넣은 것은 특이한 경우이다.
원작자 사망 직후인 1997년에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처음으로 생기더니 2000년 이후로는 쟈이코를 필두로 미니도라, 스네키치, 미이쨩 등 오리지널 조연 캐릭터가 무더기로 등장했고 그와 함께 비중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편 1980년 4월 스페셜 에피소드에서 캐릭터 도라미가 본작에 합류해 등장했다. 단 작가의 의향을 존중해서 가챠코는 완결되는 순간까지 일절 등장하지 않았다. 때문에 니혼TV판을 시청한 사람들은 실망했다고 한다.
당시 1화분의 에피소드 수는 1981년 9월까진 3편이었지만 그 다음 달(10월)부터 2편씩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18]1979~1981년까지는 두 파트가 모두 신작이었고, 1982년~2005년 3월까지는 A파트가 신작이고 B파트가 기존 파트의 재방송이었다.[19] 1시간으로 확대된 특별방송일 땐 B, C파트를 뺀 중편짜리만 신작이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국내에서 방영하던 구 도라에몽의 후반 시즌이 3편이다. 즉, 2010년대에 1980년대의 초반의 에피소드를 했었다.
9. 수상
10. 기타
- 초창기였던 1980년경에 전일본교통안전협회(全日本交通安全協会)와 협력하여 교통안전이라고! 도라에몽(交通安全だよ!ドラえもん) 특별 에피소드 겸 교육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이후 1990년대에 한번 더 리메이크된 적이 있다.
- 1996년에 원작자가 타계하고 유족이 애니메이션의 방영 종료를 요구한 바 있다. 마침 TV아사히 측에서도 시청률 저하로 종영을 고려했던 적까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스폰서가 유족과 TV아사히를 설득해서 2005년 3월까지 구작 애니메이션을 지속했다.
- 주요 5인 멤버, 음악감독(키쿠치 슌스케[20][21]) 캐스팅은 1978년 제작된 '공부방의 낚시터'에서부터 시작된 구성으로 이후 본편에서도 2005년 3월까지 동일하게 승계된다.
- 노비타의 집이 목조 주택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창문이나 기타 형상 등 원작과 크게 다른 점들이 많다. 또한 당시의 원작에선 대나무 헬리콥터의 명칭이 타케콥타와 헤리톤보로 혼재해 있었으나 이 애니에서부터 전자의 명칭으로 확정되어 이후에 원작으로도 역수입된다.
- 이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은 1979년 4월 2일 ~ 1981년 9월 27일분이 매우 불안정하며[22], 작화 감독 중에선 나카무라 에이이치[23], 토미나가 사다요시, 와타나베 아유무, 혼다 토시유키가 장수 감독으로 꼽히며, 타이틀 부제의 변천은 구 그린 타이틀과 옐로우 타이틀(극초기 방영분)[24] ~ 오렌지 타이틀[25](80년대 초~후반 방영분) ~ 신 그린 타이틀(90년대 초~후반 방영분) ~ 핑크 타이틀(2000년대 방영분) 순서이다. BGM도 1979년 방송 초기에 제작한 브금과 1980년대 후기에 제작한 브금으로 나뉘는데, 90년대 중반까지 전자의 브금이 종종 삽입되었다가 이후부터 후자의 브금으로 교체된다.
- 이 작품도 당시 시대상의 흐름을 반영한 티가 보인다. 대표적으로 2004년 에피소드 '이슬이가 두 사람!?"에서는 비실이 집에 닌텐도 게임큐브로 보이는 게임기가 등장한다. 게임의 모티브는 누가 봐도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DX.
- 2020년 현재 상당수의 한국 내 OTT 사이트에서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볼 수 없다. 다만 유튜브에 더빙판 한정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복각된 상태.
[1] 마지막화 한정[2] 1989. 04. 14. 방영분 이후 기준[3] 2020년 이후에는 극장판을 제외하고 전부 신 도라에몽만 방영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신 도라에몽 역시 10기 이전 시즌들의 편성이 거의 없어졌다.[4] 물론 2020년 이후에는 신 도라에몽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에 구 도라에몽보다는 신 도라에몽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거나, 굳이 구/신 따질 필요 없이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5] 한국 기준 15~19금 수준이 전체 시청 가능을 받는 경우도 있다지만 더 예전엔 대놓고 여성 캐릭터 알몸이 멀쩡히 나오는 경우도 있었기도 하니...[6] 이러한 초기 에피소드의 작화 불안정은 1979년 4월부터 1981년 9월에 이르기까지 2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난 1981년 10월에 들어서야 우리가 아는 작화로 정착했다.[7] 왼쪽부터 타테카베 카즈야(만퉁퉁), 노무라 미치코(신이슬), 오오야마 노부요(도라에몽), 오하라 노리코(노진구), 키모츠키 카네타(왕비실).[8] 1950년대 후기에 토에이 동화에서 일하다 A 프로덕션으로 이직했다. 도쿄무비와 상당한 연이 있었으나 이미 독립한 모회사(도쿄무비)와의 커넥션에 더 이상 의지하는 건 의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선전 대상 방송국을 바꾸기로 정했다고 한다.[9] 닛폰 테레비판은 에피소드 1개를 강제로 늘려서 20분을 풀로 사용했으며 오리지널 캐릭터를 넣어 분량을 늘리기도 해서 후지코 후지오의 불만을 샀다.[10] 구 도라에몽 스페셜 2기 14화 B파트 <미래에서 온 도라에몽>[11] 오프닝은 도라에몽의 노래 그대로 갔지만, 도쿄 푸딩 버전으로 바뀌었다.[12] 이때부터 캐릭터들의 눈 모양이 더 커졌다.[13] 구도라에몽 극장판으로서의 마지막 방송은 3월 25일 방영된 2004년 극장판 《노비타의 완냥시공전》이다.[14] 1979년 4월~[15] ~2005년 3월[16] 물론 한국에서는 26년 간의 에피소드를 2006년 5월부터 2016년 6월까지 10년 만에 모두 방영하였다.[17] 당시 2차 내각으로, 신 도라에몽 첫 방영 이후 89대 총리를 연임하였다.[18] 또한 1화부터 이어진 에피소드가 끝난 후 나온 보너스 카드는 1981년 10월 이후로 에피소드부터 없어졌다.[19] 단, 1987년 후반과 1993년 전반은 두 파트 모두 신작을 방영하는 시기도 있었다.[20] 이 작품을 기점으로 80년대에 제작된 후지코 후지오 애니메이션 다수에서 음악감독을 맡게 된다.[21] 초창기의 음악들은 박자, 음조에서 특촬물, 로봇물의 영향이 짙은 느낌이 있는데, 키쿠치가 1970년대에 토에이의 유명한 특촬, 로봇물들의 음악감독을 다수 전담한 경력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년 후 80년대 중반에 한번 더 작곡한 배경음악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뀐다.[22] 신에이가 독립한 지 3년도 안된 영세 업체로써 만든 첫 자주 제작 작품이라서 캐릭터 디자인이 가장 불안정했다. 일본 위키에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이러한 작화로 인해 원작자한테 지적받은 일도 있었다.[23] 캐릭터 디자인과 총작화감독까지 겸임.[24] MBC 도라에몽 방영분이 이것이었다. 1979년~1981년경. 대원방송분은 처음에는 2000년대 방영분에 나왔던 핑크로 대체되었다가 이후 원모습으로 나왔다.[25] 이 타이틀부터 도라에몽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삽입된다.[26] 초반에는 일본에서 중반에 방영했던 걸 방송하고 11기와 3기 후반에는 일본 후반 방영분, 후기에는 일본 초반 방영분을 방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