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18:55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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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조준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 진상조사보고서 전문다운로드 필요

1. 개요2. 당내 사건 진행3. 당외로의 확산4. 후폭풍
4.1. 반응4.2. 각 정당들의 이해득실4.3. 정치인들에게 미친 영향
5. 당권파의 반론
5.1. 외부 전문가 보고서의 석연찮은 폐기?5.2. 당권파 측의 반박5.3. 선거관리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
6. 기타
6.1. 통합진보당 야권 단일화 부정 경선6.2.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
7. 유사 부정 투표 사건

1. 개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 발생한 통합진보당 당내 부정선거 사건이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경선 투표의 결과를 조작해 특정 계파가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이청호 부산광역시 금정구의원의 폭로로 드러났다.[1] 이 사건으로 인해 통합진보당은 당의 총체적인 재구성을 요구받는 한편 극단적으로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다수 당원의 탈당 및 통합 해체론에 휩싸이는 치명적인 위기를 겪게 되었다. 초기에는 당권파에 비난이 쏟아졌으나, 검찰의 조사 결과 구속된 7명 중 6명이 비당권파였고 부정의 주체로 지목되었던 이석기, 김재연은 기소되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열하기 짝이 없는 수단을 동원한 부정경선이라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으며, 그 논란 과정에서 나온 폭력사태, 경기동부연합 논란, 종북논란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등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종북'이라는 최악의 이미지를 매우 강화시켰다.

통합진보당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로 전에 비해 의석이 비약적으로 늘었고(7석→13석) 제3당에 등극하여, 민주통합당[2]에 비해 앞날이 희망적이었다.[3] 부정선거 사건은 통합진보당이 그간 얻었던 지지와 도약 가능성을 스스로 걷어찬 짓이라는 평가가 다수이나, 마녀사냥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여권의 도덕적 결함의 반대항에 서서 '도덕적 우위'나 '상식' 등을 중요한 무기로 삼았던 진보 계열 정당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윤리를 저버린 부정선거 사건이 벌어지면서 잃어서는 안 될 것을 잃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의혹이 제기되자, 당권파는 부정선거를 인정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비당권파는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전략공천자를 제외한 모든 비례대표 당선자와 후보의 총사퇴를 주장하면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내전이 시작됐다. 이후 기존의 비당권파 세력이 새로운 지도부를 형성하고 당권파를 축출하면서 상황은 정리되는 줄 알았으나, 통합진보당 당 대표 경선에서 이른바 신당권파(비당권파) 쪽이 열세로 드러나면서 무산위기에 처했고, 이에 관련해 '종북' 논란이 얽히면서 사태가 다른 면으로 확장되었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이석기, 김재연을 아예 국회의원 200명 이상의 찬성으로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명시키겠다고 개원 합의문을 박아넣은 상황이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신당권파는 최후의 수단으로 의원 표결을 통해 두 의원을 축출하려고 했으나. 그러나 이후에 서술될 김제남의 팀킬로 인해 축출안 또한 부결되었다. 논란의 해소를 위해 국회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이 불가피해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결국 국민참여당 계열과 인천연합, 진보신당 탈당파 계열은 의원 자가제명과 탈당을 통해 훗날의 정의당이 되는 진보정의당으로 갈아탔다.

잔류파만 남은 통합진보당은 이 사건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빨갱이, 종북주의자에 부정선거, 폭력집단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저들에게 표를 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라는 식의 불안감을 유권자들이 갖게 된 것이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신의 외교관을 뚜렷이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논란이 벌어지면서, 당권파가 파벌의 이익을 위해 헛소리를 한 것이고 불신만 커졌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참고로 이 사건 이후 NLPDR 계열은 2022년[4] 까지 영향력을 상실했었다. NLPDR 입장에선 잃어버린 10년의 서막이 바로 이 사건이였던 것[5]

2. 당내 사건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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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외로의 확산

3.1. 100분 토론

2012년 5월 15일 100분 토론에서도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 홍성걸 국민대학교 교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6]이 출연해 모두 둘러 앉아 통합진보당을 함께 까는 훈훈한(?) 토론이 벌어졌다. 100분 토론 영상은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우리가 왜 저기에 나가서 전국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가?"의 반응을 보였으나[7] 결국 2012년 5월 22일 토론에서는 당권파를 섭외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토론에 참여한 이상규 통합진보당 대표는 당시 당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때까지 건설노동을 한 탓[8]에 부정경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으며 이런 토론을 하는 자리인줄 모르고 나갔다고 했다. 당시 이의엽 의장이 그나마 사건을 좀 아는 듯 하였으나, 스포트라이트는 이상규를 향했고 이에 이상규는 어버버하다가 그나마 시민 논객이 종북주의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을 현 사건과 관련 없이 질문한 줄 알고 안심해 발언한 것이 퍼졌다고 회고했다. 즉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데려다 놓고 쥐어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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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는 디아블로 3와 합성된 위와 같은 짤이 돌아다니면서 관심을 보여주었다.

2012년 5월 22일자 100분 토론 전반부에서는 이의엽이 각종 부정선거 의혹 및 증거 제시에 변명과 말돌리기로 일관하면서 안 그래도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의 짜증을 유발하고 있었다는 평가가 다수었다. 이의엽 정책위의장은 "부정선거가 10% 있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진중권의 맹폭과 마지막에 시민 논객의 사상검증식 질문이 이상규에게 왔는데, 그 질문은 바로 "북한 인권 문제, 북한의 3대 세습, 북핵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였다. 그리고 이상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들면서 답변을 유보했다. 그러자 진중권은 "개인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라면 유권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므로 유권자에게 자신의 사상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구심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의원이 그런 사람들 앞에서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고 하면 공직자로서 나오면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전반적인 시청자들의 의견은 북한 체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엉뚱하게 북한산 병뚜껑 비판을 하는 황당함을 보였다는게 중론이다. 한번 묻고 재차 정확한 입장을 말해달라고 질문하자 사상검증이라고 돌려까고 병뚜겅 애기나 하고 끝까지 사상검증이라고 할 뿐 정확한 말을 못하자 질문자의 표정이 압권이다.



해당 부분 영상에 있는 김정일 개객기 해봐의 장면이다.[11]

그리고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도 용산지구당 사건의 피해자답게 칼을 갈고 나왔는데 과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에서도 민주노동당 내에 부정의혹이 있다는 폭탄을 떠트리며 통합진보당 측을 데꿀멍시켰다. 결국 이 날 토론으로 구 당권파측이 정작 자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중론이다.

위에 링크된 동영상 후반부에 보면 시민패널의 질문에 어버버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측 패널들에게 통합진보당 소속 조승수 의원이 연평도 포격전 당시 북한의 행동에 대해 비판을 했던 모습을 예로 들어 비판을 가하면서 다시 한 번 데꿀멍시켰다.

결국 이날의 방송으로 인해 채태인처럼 이상규의 위키백과 페이지가 반달리즘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 밖에도 이의엽 의장의 "보고서에 내용 없으니 그걸로 뭐라 그러지 마라"[12], 현수막 걸고 음악 튼게 농성입니까?(아니라는 뜻)[13] 등의 드립도 압권이다. 그리고 도중에 이청호 금정구의원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MBC의 파업을 지지하면서 구 당권파와 파업 100일을 넘었음에도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을 같이 까는 패기를 보여줬다.

이의엽과 이상규는 경기동부연합 주축의 당권파 내에서는 이번 부정경선 사태 처리에 있어서나 혹은 대북관에 있어서 그나마 온건파이다. 실제로 이상규는 그 자신의 말대로 한 때 혁신비대위 참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콘크리트와 병뚜껑 이야기를 끌어댄 것은 말돌리기가 맞지만 어쨌든 그 속뜻은 "내가 그 곳을 천국으로 여기고 떠받드는 건 아니다"라는 표현을 에둘러 한 것이다. 그런데 NL 내에서는 북한에 대해 이런 수준의 표현도 반북적인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당권파인 이상규 입장에서는 사실 어려운 말을 한 셈이다. 온건파가 이 정도라면, 강경파는 어느 정도냐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 이후 자신은 종북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북한의 핵 보유에 반대하고, 3대 세습에 대해 기본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민감한 질문에는 뭉뚱그려서 퉁치고 이상규가 핵을 반대한다고 발언한 것인지 진보세력은 보통 핵을 반대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인지 애매하게 말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문제는(3대 세습과 인권 역시) 우리 인식으로 바라보면 이상하게 보인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변명을 하면서 교묘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답변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카시즘이라는 비판과 북의 권력층이 단지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해온 악질적인 행위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로서 민주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북한의 권력층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하지만 남북평화를 위해 북한체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남북평화, 국제정세 안정를 위해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건 틀린 주장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다만 이러한 '종북' 문제에 대해 유력 정치인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일련의 코멘트를 남기면서,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당권파는 명확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권력독점과 부당한 인권 침해, 핵 문제 등에 대해서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3.2. 검찰 수사

이번 사태로 인해 검찰측에서 통합진보당 당사를 압수수색해서 당원 명부 등을 입수하려 했으나, 통합진보당의 강력한 반발로 일시 무산되었다.# 이 압수수색에 대해 구당권파 측과 신당권파 측이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냈는데, 이 압수수색에 대한 반응을 보면 신당권파는 '자체적으로 조사, 징계하겠다는데 왜 압수수색하고 난리냐?', 구당권파는 '극우단체와 검찰의 음모 아니냐?'라는 분위기를 보였다. 일단 극우 단체인 라이트 코리아에서 통합진보당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된 일인 데다가, 과거 공안수사를 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한 일 때문에 진보 진영이 작살난 경험도 있고, 만일 검찰이 이 사태를 대선 때까지 이용해 야권을 압박한다면 야권 전체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진보신당도 이 압수수색에 대해 반대의견을 낸 것을 보면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진보 진영이 가장 우려하는 일은 검찰의 손에 당원 명부가 입수되는 상황으로, 이렇게 되면 통합진보당에 후원금을 내는 교사 등의 신상이 그대로 드러나버려서 정당 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기갑 비대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당원 명부는 곧 당의 심장'[14]

그리고 일각에서는 검찰의 개입이 오히려 당권파들을 자극시켜 일을 꼬이게 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신당권파가 자체적으로 당을 수습할 기회를 주지 않고 검찰이 무리하게 개입해서 사실상 정치에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고, 검찰도 이에 대한 부담을 느껴서 신당권파는 냅두고 구당권파를 수사했다.#

이번에 검찰이 압수수색한 서버에서 당권파 측의 자금 유용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고 밝혔다.# 자금 유용 그리고 2012년 5월 27일까지로 되어있는 압수수색 영장에 따라 통합진보당 당사를 다시 압수수색하는 것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었다.# 일단 검찰 측에서는 고발 내용인 부정선거와 폭력사태에 대해서만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선을 그은 상태였다.#

그러다 2012년 6월 27일검찰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서버의 암호를 뚫고 선거인명부를 확보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약 1주일 후인 2012년 7월 1일에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투표자 중 절반 이상이 동일 IP의 컴퓨터에서 중복투표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기사 그리고 2012년 7월 3일에는 이석기한테 투표된 경선 투표수 중 58.8%가 중복 투표로 확인되었다.#그러나 ip중복이 곧 대리투표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3.3. 국회의원 제명

한편, 앞선 2012년 5월 15일에는 이석기김재연이미 몰래 국회의원 등록을 해서 국회의원 배지를 받아가 버린 사실이 확인되었다. 국회의원 등록에 대해서는 2012년 4월 17일에 이뤄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렇게 국회의원 등록을 해서 배지를 받아가버린 이상, 통합진보당에서 중앙위원회 결의 위반을 이유로 출당(당에서 제명)시켜도 국회의원직이 박탈되지 않는다.무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지 차순위에 승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진사퇴하거나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소속 의원들이 합의해서 200명[15] 이상의 국회의원의 찬성투표로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명시켜야 차순위 후보가 승계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국회의원 제명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헌정사상 국회의원 제명안이 통과된 것은 1979년 10월 4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의원 재직 중 제명된 사례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당시 독재 권력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저지르고 나자 그 후폭풍으로 부마민주항쟁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로서는 국회의원들은 제명 선례 자체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제명이 선례가 생겨서 쉬워지면 장차 자신들도 나중에 무슨 일로 제명을 당할지 모른다는 보신주의 때문이다. 그러다 제21대 국회가 개원하고 윤미향, 이상직, 박덕흠의 제명 논의가 있었지만 소위원회가 열리지 않아 후속절차가 멈춰버렸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 혁신 비상대책위원회가 새누리당민주통합당에게 협조를 구해서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를 제19대 국회가 개회되자마자 제명시키겠다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오보라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의 경우는 통합진보당의 부정한 당선자들이 사퇴해야 한다고 자기들 입으로 공언한 바가 있지만 민주통합당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문대성, 김형태 당선자와 함께 제명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새누리당에서는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직접 민주통합당이석기와 김재연을 제명시켜버리자고 제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민주통합당 측과 박원석 새로나기 위원장측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부터 처리하라고 맞불을 놓았다. 그런데 새누리당에서 윤리위원회에 제소한다면 김형태문대성의 제명논의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자 민주통합당은 박근혜도 제명대상이라며 정우택, 염동열, 신경림, 유재중도 함께 논의대상에 올린다면 정치적 의도를 인정할 것이고 그 외에 좌편향을 기준으로 한다면 김문수, 이재오도 있다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의 반응은 새누리당한테 제명안에 대해 선수를 빼앗긴데 대하여 당황해서 나온 무리수에 가까웠다. 처음에 새누리당이 이석기와 김재연을 날리자고 제안했을 때 민주통합당이 문대성과 김형태도 날리자고 했는데 새누리당이 너무 순순하게 을 외쳤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국회의원의 절반을 장악한 이상 구 새누리당 두 사람과 구 통합진보당 두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도 유리한 상황이었다.[16]

통합진보당 두 사람을 제명하면 명분상으로나 실리상으로나 이긴 것이고, 둘 다 같이 제명하면 오히려 새누리당 쇄신 이미지를 획득함과 동시에 '부패한 통합진보당'의 의원들을 갈아치우는 '쇄신의 주도자'가 되는 셈이고, 혹은 정반대로 새누리당만 날린다고 하더라도 통합진보당과 달리 '자기 쇄신'을 행했다는 차원에서 불리할 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모두 제명에 실패한다면 새누리당에서는 "민주통합당이 반대를 해서 2/3 못 채웠어요."라고 하면서 민주통합당을 신나게 깔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18대 대통령 선거겨우 6개월을 앞둔 상황이었다.

강기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에 새누리당에서 문제가 된 당선자들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하자고 안건을 낸 것에 관해서 초법적 조치라고 비난하면서 이상규가 MBC 100분 토론에서 '북한 인권, 북핵, 3대 세습'에 대한 견해에 대한 답변을 거부한데 대해서는 "우리 당과 관련이 없는 색깔론이 등장하는 맥락의 질문이라 보고 답변을 거부한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25일 12시에 사퇴시한이 종결되었다. 물론 비례대표 경쟁 부문 후보들[17]은 사퇴서를 내지 않았고 이에 강기갑은 최후의 조치(사실상의 출당)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퇴 거부자들을 당기위원회에 제소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28일 본격적으로 출당절차를 밟았다. 물론 구당권파 측은 엄청나게 반발을 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29일에 비례대표 경쟁부문 후보자 9명과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국회의원직 승계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했다. 윤금순 후보는 사퇴를 보류하는 대신 평생연금과 세비를 안받고, 동시에 보좌관을 두지 않음으로써 국회의원으로서 받는 혜택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윤 후보가 사퇴 보류를 한 이유는 윤 후보가 사퇴하면 그 의원자리가 구 당권파 인물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한편, 2012년 5월 31일에 북한의 조평통에서 남한의 문제는 종북이 아닌 종미라는 글을 쓰면서 이석기에게 지원사격을 하려고 했었다.#

결국 2012년 6월 29일새누리당보다 못한 민주통합당제19대 국회를 개원하는 협상을 하면서, 이석기김재연국회에서 제명시켜버리는 자격심사안을 공동 발의하기로 합의해버렸다.# 자격심사안은 다른 법률과 달리 국회가 개원하여 윤리위원회가 구성되어야만 발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이 합의한 의사일정에 따르면, 기어이 2012년 7월 임시국회 내로 자격심사를 개최하여 이석기와 김재연을 국회에서 쫓아내버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3.4. 재판

2013년 10월 7일 1심 서울중앙지법은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 등 4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후 광주지방법원, 부산지방법원에서는 유죄로 판결하여 향후 있을 상급심의 결과가 주목되었다.#[18]

대법원 판결 결과, 업무방해죄 유죄를 선고하였다.#

4. 후폭풍

4.1. 반응

야권 및 진보 진영은 침울한 반응을 보였다. 오죽하면 당권파 측이 일부러 보수 세력에게 봉사하고 진보적 의제[19]를 덮어버리기 위해 자폭하는 것이다라는 반(半) 우스개 소리도 나돌았다. 덕분에 진보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으며,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야권연대 파기론까지 고개를 들었다. 예전에 같은 당에 속해 있던 진보신당에서는 진보 정당 자체에 대한 나쁜 시각을 우려하고 있다.

2012년 5월 5일의 막장 회의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도 저 정도라면 안 볼 때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라며 당권파의 행동에 분개했다.

2012년 5월 18일에 구 당권파 측의 당원비대위 결성이 가시화되자 진중권은 당내 의결기구를 통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비상대책위원회는 사적인 동아리이며, 그런 만큼 당원이라면 누구나 당원비대위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외부인사로 참여할 테니 이 참에 혁신비대위를 지지하는 당원비대위를 개나 소나 다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였다.#

굽시니스트도 이번 사태를 이정희를 중심으로 하여 본격 시사인 만화 2012년 5월 3일 자와 2012년 5월 11일 자에서 깠다.

변희재는 검찰조사결과가 나온 뒤, 친노종북세력[20]과 언론이 이정희를 마녀사냥했다며 비당권파를 비판했다.

배우 김여진참여계 오옥만의 부정이 훨씬 더 비중있게 다뤄져야 했다며 비당권파의 행태와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사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해주던 이들에게 더 큰 배신감을 안겨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으로 보였다. 부정선거라는 핵폭탄급 부정을 저지름으로써 비례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을 찍어준 10% 가량의 국민들을 배신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실망을 받아 대한민국의 진보정당대한민국의 극좌정당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통합진보당 해산에서는 헌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싸늘한 반응을 받았고, 이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폭망하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8석으로[21] 쪼그라지는가 하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더 암울한 것은, 원내정당 10석 이상 탈환은커녕 전통적인 주요 지지 지역인 공단 등지가 계속 축소되는 추세고 특히 민주당계 정당이 잠식하고 있어서 앞으로 길이 안 보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22]

4.2. 각 정당들의 이해득실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이석기, 김재연의 종북 논란을 발판으로 삼아서 민주통합당을 압박했으며 임수경 사건까지 터지면서 새누리당은 호조를 탔다. 새누리당은 오히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자폭을 하는 상황이라 오히려 종북 논란 등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자제하고 당쇄신에 주력하였다.

민주통합당은 사태 초기에는 통합진보당에 쇄신을 촉구하면서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야권연대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심지어는 새누리당에게 이게 야권연대의 실체라는 조롱까지 받으면서 궁지에 몰렸다. 사실, 최대 피해자는 민주통합당인데 내부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해서 통합진보당 의석을 이 규모로 늘려준 장본인이 민주통합당이라 어느 정도 비난을 받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대비한 야권연대도 제동이 걸렸다.[23]

여기에 새누리당 당원 명부 유출사건과 전두환 사열 논란이 터지기 무섭게 이석기가 애국가 발언으로 그마저 몽땅 덮었다. 이후 새누리당 일부 후보자가 당원 명부를 받았고, 그 가운데 당선자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통합진보당에서 당 대표 선거에서 서버 프로그램에서 에러가 나 투표가 중단되면서 관심이 다시 돌아갔다. 이후 새누리당이 이석기, 김재연의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며 제명을 논하자 민주통합당에서도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가 5.16 군사정변과 유신 독재에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며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공격했으나 마침 통합진보당에서 의원 제명에 실패했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캐스팅보트는커녕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동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야권 성향의 네티즌들은 12월에 있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발목이나 잡지 말아라며 돌아섰다.

4.3. 정치인들에게 미친 영향

먼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사건초기에 당의 혁신, 회생보다 기존 당권파 지켜주기에 급급한 행보라는 평가를 받으며 '차세대 여성리더 1위', '후원해주고 싶은 여성 정치인 1위'를 차지했던 과거의 영광은 '종파주의자', '당권파의 얼굴마담'으로 이미지가 추락해 버렸다. 그럼에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보물에 4ㆍ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이 깨끗하게 치러졌다는 내용을 넣어 당원들로부터 고소당했다.#

김선동 또한 최루탄 투척 당시에 의견이 양극으로 갈리기는 했으나 일정한 지지를 얻었던 상황에서, 풀이 다시 살아나서 붙는 바람에 용지가 붙었다'는 주장이 논란이 되면서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 외에 당권파 의원인 이상규, 오병윤, 김미희 지역구 주민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줬다.(...)[24] 덕분에 오병윤 지역구에서 주민소환운동이 펼쳐졌을 정도였다.# 다만 광주광역시 지역에 한정되어서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되었다.[25]

한편 이 와중에 이석기가 사장으로 있는 CNP 계열의 회사들이 한대련 계열 학생회들로부터 행사 기획등을 명목으로 돈을 받은 뒤에 계약보다 못한 조건의 행사를 제공하고 차액을 학생회 계좌에서 직접 인출해서 빼돌렸다는 기사가 나와, 이석기의 이미지를 산으로 날려버렸다.#

반대로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당권파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당의 쇄신을 주도했고 폭력사태 와중에 심상정을 보호하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비호감', '분열주의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개혁주의자'로 이미지 반전에 성공해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그를 맹렬하게 비난했던 고종석[26], 진중권마저도 이번사태에서는 그를 응원했다. 심지어 조선일보에도 유시민을 옹호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러나 이후 유시민의 참여계가 부정을 저질렀음이 밝혀지자 그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심상정도 당권파의 대대적인 저항 속에서도 중앙위원회 회의를 나름대로 깔끔하게 매듭지어 이득을 얻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중앙위원회에서 강령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처리하는 모습은 심상정의 강단을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조준호 조사위원장도 당초 무색무취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당권파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데다가 폭력 사태때 뒷머리가 잡혀서 폭행당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통합진보당을 대대적으로 쇄신해야한다는 여론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여 당권파들의 입지 축소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결과적으로 득을 본 셈이다.

강기갑의 경우에는 외모와 복장이 전통적이라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국회폭력 때문에 강경파로 취급받고 있었지만 이번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당권파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조금씩 이미지가 좋아졌다.

한편으로 비례대표 전원 사퇴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면서, 비례대표 전원 사퇴 시 승계받게 되는 18번 강종헌 후보의 자격 논란도 불거졌다. 그는 공안 전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점을 이용하여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13년 복역 후 일본으로 추방되었고, 일본에서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결한 한통련과 범민련 해외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다는 전과 정보를 고의로 누락해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2013년 1월 24일에 재판부는 재일동포 간첩단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논란이 종식되었다.#

5. 당권파의 반론

5.1. 외부 전문가 보고서의 석연찮은 폐기?

1차 조사 이후 2차 조사에서 외부 IT 전문가로 김인성 교수에 의뢰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 보고서를 최고회의를 통한 표결처리로 폐기를 시키는 석연찮은 행동을 벌인다.

당연 김 교수측에서는 반발하였고 조사위원회의 권위에 금이 가게 되었다.#

5.2. 당권파 측의 반박

검찰수사 결과 기소자들이 나왔다.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말대로 당권파, 비당권파 당원들이 대거 기소되었다. 그러나 비례대표 후보, 지도부 등 당내 주요인사급 기소자들은 오옥만, 고영삼, 이영희 등 대부분 참여계에서 나왔다.# 참고로 이석기와 김재연은 기소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대다수 부정경선 논란 당시 조사를 요구한 측이자, 1차 조사위에서 비당권파의 요청으로 조사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었다. 기술보고서 폐기를 주도했던 온라인 분과 간사 본인이 선거부정 혐의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당권파는 비당권파의 주요인물들이 부정선거 혐의로 기소된 걸 보면 가장 악질적인 선거부정은 비당권파들이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5.3. 선거관리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

통합진보당 비례경선 관련 진실과 치유를 위한 특별위원회 진실보고서에서는 선거관리시스템에 관한 의혹들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 선거관리시스템 부정 의혹
    • 비례경선 당시 투표시스템을 만든 업체는 민주노동당의 당원관리프로그램을 2007년 부터 관리해오던 회사로 5년 동안 이 회사로부터 당원정보가 유출된 적이 없음.
    • 당시 최고위원 후보들이 파견한 기술진들은 만장일치로 예전 업체 프로그램을 사용 하기로 했고 아무 문제없이 투표를 끝냈음.
    • 특히 투표시스템의 안정성과 당원정보를 다루는 관계로 신뢰성이 주요한 기준이라 할 때 업체는 아무 하자가 없었음.
  • 선관위 지휘체계가 무시되었다는 의혹
    • 비례경선 당시 서버접근기록에 대한 조사를 통해 관리자아이디를 통한 부정사례를 찾을 수 없었음.
    • 선관위원은 비례선거 당시 7인(위원장 포함)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상근직이 아니며 집행은 사무총국이 협조함.
    • 당규상 선관위 간사는 1인이지만 선거 때는 당직자들이 역할을 나눠 선관위 업무를 분담하고 있으며 업무지시와 보고는 간사를 통해 함.
    • 비례경선 준비 당시 회의준비 및 이의제기심의 투표용지제작 등 사무 인터넷투표시스템 관련 업무를 3인이 담당했으며 진행상황을 공유함.
    • 선거 때는 투표가 되지 않는다는 문의전화가 폭주했는데 3인이 모두 상담을 했음.
    • 비례경선 당시 중앙당뿐 아니라 광역당부도 입당원서 입력 이의신청 및 투표문의로 업무가 폭주했지만 당직자들의 헌신으로 선거가 치러짐.
    • 당직자들의 업무 분담은 사무총국과 선관위의 공감 하에 진행된 정당한 것이었음.
  • 선거인명부 부정 의혹
    • 1개월 당비 납부 당권자의 급증으로 선거인명부 작성이 늦어짐.
    • 해당 시기까지 등록된 당원들의 고의 누락은 없었음 해당 당부에서 자료 제출이 선거인명부 작성 이후 보고된 경우는 있음.
    • 전화번호가 수정되어도 한 번호로는 두 번 투표할 수 없는 시스템임.
    • 비례경선 때 본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투표부정방지에는 더욱 효과적이겠지만 타인(가족 등) 명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당원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투표가 불가능해지고 그러한 당원숫자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이며 그 해당당원들에게 이를 공고하여 대비케 하기에는 투표일까지 시간이 짧은 점을 근거로 한 중앙선관위의 회의 및 결정에 따른 것이었음.
    • 대다수 당원들은 이의신청 기간에는 당권 여부를 확인할 뿐이고 선거 시기에야 비로소 전화번호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현실임.
    • 선거마감과 개표발표 사이의 선거인명부 숫자의 차이는 착오에 의한 오기였음이 확인됨.

6. 기타

6.1. 통합진보당 야권 단일화 부정 경선

비례대표 경선 이전에,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부정을 지시한 적이 있었다. 이 행위는 당시 당권파이자 현재 잔류파가 주축이 되어 진행됐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와 민주통합당 정태호 후보간의 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통합진보당 측이 자기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에서 성별, 나이를 속여 대답하라고 지시했으며, 뿐만 아니라 일반전화를 대량으로 설치하여 여론조작을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27] 결국 관련자들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똑같은 사건이 인천광역시에서도 확인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6.2.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

이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으로 이석기가 테러와 관련된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석기가 내란선동 혐의에 대한 유죄의 판결을 받았고,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5명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한편 다음 승계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7번의 조윤숙, 15번의 황선, 18번의 강종헌인데 7번과 15번은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으로 제명되었다가 구당권파가 복귀한 이후 제명에 대해 무효 결정이 내려졌다. 법원에서는 처분 무효를 확인할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는데 해석 논란이 있다. 그러나 2014년 12월 19일에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인해 통합진보당이 사라지면서 없는 일이 되었다.

7. 유사 부정 투표 사건



[1] 사실 폭로라 보긴 힘든게 당권파 소속도 아닌 참여계 의원인지라 내부 폭로는 맞지만 사실상 수사에 가까웠다.[2]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보다 의석이 40석 가까이 늘고 수도권에서 제1당을 차지했는데도 패배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수도권과 제주 이외 지역에서 부진한 데다가 결정적으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탓이 컸다. 무엇보다도 이 선거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레임덕 시기에 치러진 선거임을 주목해야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막판이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이기기가 몹시 힘든 선거였고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정권심판론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선거였다. 실제로 야권연대까지 해가며 압승을 기대했었다는 생각하면 참패라고 볼 수 있다. 정부 말기 혹은 종료 직후 치러진 총선 중 여당이 승리한 선거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밖에 없다. 참고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문재인 정부 중기에 해당된다. 민주당계 정당 관점에서 통합민주당 시절이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최악의 참패이고 민주통합당 시절이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아쉬운 패배로 평가된다.[3] 다만 직접 눈에 보이는 수치만큼 좋은 상황만은 아니었다. 일단 텃밭인 부울경 지역에서 전멸한데다가, 캐스팅보트 위치를 차지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썩 잘나갔다고 보기엔 어렵다. 게다가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선거구진보신당과 단일화에 성공했으면 이길 가능성이 충분했고, 울산광역시에서도 공천을 독단적으로 하지 않았어도 새누리당의 과반확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4]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김종훈이 구청장에 당선되고 기초/광역 조직력을 어느정도 복구하고, 2023년에 강성희 의원이 전주시 을에 입성하며, 이듬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로 지역구 1석에 비례 2석으로 총 3석을 확보하며 입지를 어느정도 회복했다.[5] 물론 결정타를 내린 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였다.[6] 훗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로 당선되고 문재인 정부 제5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7] 실제로 2012년 5월 15일 방송분에 앵커가 이렇게 설명한다.[8] 2024년 기준으로도 현직 배관공이다.[9] 단, 진중권은 이후 진보신당에서 탈당하였다.[10] 훗날 정의당 대표를 역임했으나 장혜영을 성추행한 혐의로 제명되었다.[11] 참고로 이 욕설은 나흘 뒤 전원책옆 방송국에서 직접 시전했다. 덕분에 방송 중에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했다고 논란이 되었다.[12] 부정 경선에 대해서 해명하면서 통합진보당 1차 보고서에 그러한 내용이 없다고 말하면서 한 말이다.[13] 진중권 曰 : 그게 농성이지 뭡니까?[14] 물론 일심회 사건때 당원 명부 유출 사건이 있긴 했지만 당에서 넘겨준 것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넘겨준거고, 관련자가 이적행위로 처벌받은 것과 별개로 당 내에서도 엄청난 비판이 일었다. 굳이 국가보안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몇몇 조직원이 무단으로 당원 명부를 유출한 것은 정당법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결국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 열심히 명부 유출 관련 인사를 옹호하고 당의 분열까지도 방관한 인사들이 바로 구당권파였다.[15] 대한민국 헌법상 국회의원 제명에는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며, 제19대 국회의원은 300명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4조 3항에서는 의원을 제명하려면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16] 게다가 구 새누리당 국회의원 두 명의 지역구는 각각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울릉군, 부산광역시 사하구 갑이었다.[17] 물론 신당권파측에 속하는 후보들은 전부 사퇴서를 냈다. 다만 윤금순 후보는 사퇴거부자인 황선 후보가 의원직을 계승하는 걸 막기 위해 해당 인물들이 출당될 때까지 일단 국회의원직에 있기로 했었다.[18] 쟁점은 일반 정당의 내부 경선에서도 공직선거와 같은 비밀, 직접, 평등, 보통의 4대 선거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지방법원은 아니라는 취지였고, 광주지방법원과 부산지방법원은 적용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19] 예를 들면 대통령 측근비리, 파이시티, 민간인 불법사찰, 광우병, 저축은행 파산, 언론사 파업 등을 들 수 있다.[20] 진짜 종북은 오히려 당권파였음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보수 유튜버라는 작자가 종북세력을 옹호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21] 정의당 6석,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계 무소속 2석이 전부다.[22]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양당 체제의 고착 현상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했으나 국민의 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 창당으로 무력화 시켜버렸다.[23] 그리고 이 사건이 끝난 뒤에도 통합진보당이 5석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제 18대 대통령 선거 TV 토론회의 1, 2, 3 후보의 구성은 이 때부터 짜인 것이다.[24] 이 덕에 신상진이 진보색이 강한 지역구인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서 판세가 불리하진 않은 채로도 55%를 넘기고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재보궐선거는 신상진이 당선된 4번의 선거중 유일하게 진보권의 분열 없이 자기 힘으로 승리해 얻은 결과이다. 하지만 신상진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윤영찬한테 패했다.[25] 결국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반감이 겹쳐서 당시 무소속이었던 천정배가 당선되었다.[26] 단 고종석은 후에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에 참여계도 관여한 사실을 알고 유시민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27] 이후 정태호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신환한테 연거푸 패하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패한 이유는 재보궐선거에서는 정동영이, 총선에서는 이행자가 출마해서 표가 분산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