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4:42:21

DC 디젤동차

니가타 동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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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의 디젤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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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디젤동차 672호 DC 디젤동차 405호
1. 개요2. 도입배경3. 차량구분
3.1. 1961년~1963년 도입분3.2. 1966년 경인선 복선화 도입분3.3. 1975년 포항제철 기부채납 도입분3.4. 부수차
4. 운용
4.1. 도입 초기4.2. 비둘기호 등급 신설 이후4.3. 고상홈 대응 개조 운행4.4. 격상운행과 특별동차 운행
5. 퇴역과 보존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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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C 디젤동차 구동음
디젤액압동차 / Diesel Car

대한민국 철도청이 단거리 통근열차 운행을 위해 1961년부터 1975년까지 도입한 디젤 동차이다.

2. 도입배경

광복 후 미군정청 운수부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한 한국 철도에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단거리 지선 운행을 위해 도입한 '3등 동차' '가솔린 동차' 와 같은 단량 동차 29대, 서울지역과 지방의 여러 사철(私鐵)이 운용하던 차량 31대를 합해, 60대의 디젤동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들 차량은 절망적이기 그지없던 해방 후 철도사정[1]으로 인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던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6.25 전쟁으로 인해 많은 철도차량이 소실되어, 디젤동차는 겨우 6대만이 남아 폭증하는 철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1961년 들어 관광산업의 진흥이 정부의 주요 시책으로 떠오르면서, 중단거리 반복운전이 용이한 단량 디젤동차의 도입이 시급해졌다.

이에 철도청은 정부보유외환자금(KFX)를 이용해 니가타 철공소(현 니가타 트랜시스)에 중련연결이 가능한 단량 동차 2량을 발주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75년까지 많은 차량을 도입, 운용했다. 실제로 키하 52-125형, 키하 17형은 본 차량들의 조상격이며 외형은 매우 닯아 있다. 일본에서 인천항을 통해 디젤동차의 부품을 수입해 철도청 산하 인천공작창에서 조립되어 영업을 위해 전국 각지로 보내졌다.

3. 차량구분

3.1. 1961년~1963년 도입분

파일:동두천 철도역-1972-000.jpg
동두천역의 203호 동차(출처)
차량 정보
구동 방식 디젤 동력분산식 열차
기관형식 DMH 17H
대차형식 1A-A1
도입량 68량
도입기간 1961~1963년
운행기간 1961년~1996년
제작사 니가타 철공소
킨키차량
좌석 크로스시트+롱시트
정원 126명
제원
전장 20,800㎜
전폭 2,980㎜
전고 3,730㎜
궤간 1,435㎜
기관 최대회전수 1,800rpm
견인마력 180HPx2=360HP
정비중량 49t

가장 초기 도입분으로 일본 니가타 철공소에서 도입되었다. 이 차량이 계속 증비되면서 1963년 8월 13일에는 지금의 용산역 인근 옛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자리에 '서울동차사무소' 가 개소해 서울, 경기지역의 지선에 운행하던 DC동차를 총괄하게 되었다. 차번은 201~209호, 210~216호, 251~276호, 301~326호가 할당되었으며, 후자의 301~326호는 니가타 철공소가 아닌 긴키 차량에서 생산되었다.

3.2. 1966년 경인선 복선화 도입분

파일:CAQ53cca13073194.jpg
사진출처
차량 정보
구동 방식 디젤 동력분산식 열차
기관형식 DMH 17H
대차형식 1A-A1
도입량 89량
도입기간 1966, 1969년
운행기간 1966년~1996년
제작사 니가타 철공소
킨키차량
일본차량제조
가와사키 차량
좌석 크로스시트+롱시트
정원 132명
제원
전장 20,800㎜
전폭 2,980㎜
전고 3,730㎜
궤간 1,435㎜
기관 최대회전수 1,800rpm
견인마력 180HPx2=360HP
정비중량 51t

경인선의 복선화에 맞추어 도입한 차량으로, 출입문 기준으로 차량 안쪽으로는 크로스시트만 장착되어 있는 초기 도입분과 달리 출입문 근처의 좌석에 롱시트[2]가 양쪽으로 장착되어 탑승 가능 인원 수가 늘었다. 또한 출입문 역시 폴딩도어[3]에서 미닫이문으로 변경되었다. 제조사 역시 니가타 철공소뿐 아닌 다른 중공업으로 다양화되었다. 차번은 일본차량제조에서 도입된 2량이 551~552호, 긴키차량에서 도입된 차량은 277~296호, 니가타 철공소에서 도입된 차량은 327~351호,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도입된 차량은 401~405호, 일본차량제조에서 다시 도입한 차량이 501~510호, 701~725호, 1001~1002호[4]를 할당받았다.

3.3. 1975년 포항제철 기부채납 도입분

파일:괴동선.jpg
제철역에서 열린 괴동선 통근열차 개통식
차량 정보
구동 방식 디젤 동력분산식 열차
기관형식 DMH 17H
대차형식 1A-A1
도입량 2량
도입기간 1975년
운행기간 1975년~1996년
제작사 니가타 철공소
좌석 롱시트
정원 174명
제원
전장 20,800㎜
전폭 2,980㎜
전고 3,730㎜
궤간 1,435㎜
기관 최대회전수 1,800rpm
견인마력 180HPx2=360HP
정비중량 51t

포항제철소 내부로 들어가는 괴동선 철도의 통근열차를 운행하기 위해 포스코가 구매, 철도청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도입되었다. 기본적으로 1966년 도입분의 설계를 따르고 있으나, 크로스시트+롱시트가 혼합되어 있는 타 차량들과 달리 전량 롱시트가 적용되었고 편운전대 방식이 채택되어 정원이 174명으로 조정되었다. 1996년 4월부로 CDC로 대차되었는데, CDC 역시 괴동선에서 운행하는 차량은 포스코에서 기부채납하는 형태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511~512호 차번을 할당받았다.

3.4. 부수차

파일:부수차A.png 파일:부수차B.png
1966년 인천공작창 제작분 1965년 인천공작창 제작분

DC동차의 증결시 연결되는 무동력 객차로, 1965년/1966년식으로 나뉜다. 1968년에도 3량이 생산되었으나 1966년식은 중앙에도 출입문이 달려 있다는게 특징. 크로스시트+롱시트가 혼합되어 있는 동차와 달리 롱시트만 장착되어 있다. 차번은 1966년에 생산된 4량이 19401~19404호, 1966년에 생산된 26량이 19411~19436호, 1968년에 생산된 3량이 19437~19439호를 할당받았다. 주로 중련한 동차 2량의 최후미에 연결되거나, 동차 2량 사이에 연결되는 형태로 운행되었다.

3비차도 의외로 생명력이 끈질겨, 1990년대 역삼각 CI도색으로도 잠시 다녔다. 물론 훨씬 이전에 2비차로 개조되었는데 개조되면서 출입문도 슬라이딩 방식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가운데 창이 부자연스러운 차량으로 구별 가능하였다. 처음부터 2비차였던 차는 가운데 창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4. 운용

4.1. 도입 초기

대한뉴스 제 347호 - 중앙선에 디젤동차 등장
1983년 경원선 성북~신탄리 구간 운행 중 초성리에서 촬영된 영상

파일:20240625_091614.jpg
도입 초기에는 당초의 도입목적이었던 단거리 소운전과 주요간선에서의 특급열차 운용이 모두 이루어졌다. 초기 도입 직후에는 중앙선(청량리역~원주역)과 경춘선(성동역~춘천역) 구간에서 운행되었으며, 대전-대구간 운행과 같이 기타 노선에서의 단거리 운용 역시 이루어졌다. 경부선과 같은 주요 간선에서 특급열차로 사용된 기록 역시 존재하는데, 당시 특급열차인 재건호의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동차 2/3량+객차로 구성된 임시 특급열차로 운행하는가 하면 대천역으로 향하는 피서객을 위한 임시열차로도 활발히 사용되었다. 하지만 1969년에 관광호가 도입되고, 1977년에 무궁화호의 운행이 시작되며 기관차가 견인하는 객차형 열차의 수가 압도적이었으로 되었기에 1970년대 이후로 이러한 운용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동차들은 단거리 로컬선 운행을 하게 되었으며 1978년부터는 수도권 전철의 일부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4.2. 비둘기호 등급 신설 이후

경원선 복선전철 개통 당시 모습[5]

1984년부터 보통열차가 비둘기호라는 이름으로 변경되면서 DC동차 역시 비둘기호 등급으로 주로 활약했다. 아무래도 차량의 노후화와 낮은 운행속도로 인해 새마을, 무궁화호로 배정이 되는 일이 없다보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요간선의 특급열차로는 운용되지 않았지만, 문경선여천선 등 지금은 여객영업 또는 운행이 중단된 지선에서까지 널리 운행했다.

4.3. 고상홈 대응 개조 운행

파일:20240610_003424.jpg파일:attachment/비둘기호/19903_2.jpg
고상홈 대응 개조 이전 고상홈 대응 개조 이후
경원선 용산~성북구간에서는 1983년부터 1991년 7월까지 계단을 제거한 고상홈 차량으로 개조 및 초저항 차량처럼 운전실 출입문 상단에 행선지 표시판 꽂이대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차량들을 투입하여 수도권 전철의 일부로서 운행되기도 했다. 개조 전의 동차는 이 영상처럼 출입문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행선판 꽂이가 측면 중앙에 있는 것이 보이는데 비해, 개조된 동차는 이 영상에서처럼 출입문이 고상홈에 맞게 개조되어 있으며, 행선판 꽂이도 운전석 출입문 상단에 있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개조를 시행한 이유는 경원선은 이미 1978년에 용산~성북간 전동차 운행이 개시되었음에도 1980년대 경인선의 수요 폭증과 혼잡도 문제로 용산~성북간 운행하던 경원선 전동차 일부를 경인선 운행으로 돌리고,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었던 경원선 구간을 디젤동차로 운행했다는 기록(서울지하철건설30년사)이 존재한다.

4.4. 격상운행과 특별동차 운행

파일:DBc5773371993cca.png 파일:국무총리특동.png
안산선 개통 당시 현장을 방문한 이현재 국무총리가 이용했던 특별동차 9호[6]
파일:DBc5773371965dfc.jpg
상기 특동의 모델이 되었던 대구-마산 간을 운행한 통일호 동차[7]
파일:DCR.jpg
1986년 부터 1988년 까지 2년여간 극소수로 운행했던 무궁화호 동차

1985년 4월 시간표 개정을 앞두고 3량이 통일호로 격상되어 광주 - 송정리, 대구-마산, 부산-울산간 통일호로 운행했고, 같은 해에는 2량이 무궁화호로 승격되어 대구 - 부산, 대구 - 영주 계통을 운행했다. 통일호에 달리는 전환식 크로스시트로 개조되었으며, 무궁화호로 승격한 차량은 냉방개조도 되었다. 그러니까 RDC 디젤동차의 직속선배격이 되시겠다.

이후 1986년, 1987년에 각각 3, 2량이 추가로 개조되어 총 8량이 통일호, 2량이 무궁화호 등급으로 운행했으나[8] 1987년에 사고로 통일호로 다니던 2대가 결차되었고 1988년에 청도-남성현간 화재 사고로 무궁화호로 다니던 1대(251호)가 결차, 나머지 1대(252호)는 통일호 격하로 인해 무궁화호로 다니는 일은 없어지고 만다. 당시에는 특대기관차의 도입과 2X3배열의 무궁화호 객차, NDC 디젤동차의 도입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밀려 자리가 없던 상황이었는데 1대가 화재로 전소되면서 짝이 안 맞게 되자 아예 통일호로 밀어낸 것이었다.

그렇게 7대가 광주 - 송정리[9], 대구 - 부산, 울산 - 부산 통일호 등급으로 다니다가 1990년에 울산 - 부산 계통이 수요가 늘어 NDC 동차가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 계통에서 이탈하여 1994년까지 이어지다가[10] 1994년 4월부로 객차형 비둘기/통일호로 바뀌며 퇴출되었다. 디젤동차의 수명이 현재 기준으로 20년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28년을 운행한 셈이니 본전 다 뽑았다.

특기할만한 사항으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철도청장 등이 이용하는 특별동차 역시 DC동차를 개조해서 제작되었다. 8, 9호 특별동차가 운행한 바 있으며 침실, 주방, 수행원실, 회의실이 1량 안에 들어있는 구성.

특별동차 8호는 1966년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제작한 405호 디젤동차를 개조한 것으로 철도박물관에 옮겨져 한동안 '우주관광열차' 라는 이름으로 박물관 구내에서 운행되었으나[11], 부품 수급과 노후화로 운행이 중지되어 현재는 세미나실로 이용 중에 있다.

특별동차 9호는 1966년 니가타 철공소에서 제작한 288호 디젤동차를 개조한 것으로 2002년 초반에 용산 서울철도차량정비창에서 해체되었다.

5. 퇴역과 보존

1990년대가 되면서 이들 디젤동차의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았다. 동차를 비롯한 비둘기호의 대부분의 차량이 이미 차령을 20년 이상 넘긴 상태였고, 운행 중 프레임이 파손되고 휘어지거나 연결기가 분리되는 등 심각한 수준의 차량 결함이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언론 역시 이러한 노후화를 끊임없이 지적했고, 결국 철도청은 정선선에 운행하던 비둘기호를 제외한 모든 비둘기호를 통일호/무궁화호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DC동차의 후계차량으로 도시통근형 디젤동차를 제작했다. 진작부터 전철화를 시키는게 나았을 수도 있지만 예산 문제를 비롯해서 당장 그러할 방법이 없었다.[12]

사실 1986년에 성북 - 의정부 구간 수도권 전철이 개통된 것도 디젤동차의 노후가 왔던 것 때문에 박차를 가한 결과였다. 1980년대 초부터 이러한 기사가 떴고, 대차가 내려앉아 수도권 전철 노선이 운행중단된 적도 비일비재했었다. 170명 정원인 열차에 출퇴근시 꽉꽉 들어찼으니.[13] 1960년대에 도입된 열차는 엔진 노후화 문제로 진작에 니가타 철공소 엔진을 1970년대 미국 커민스 N855R 엔진으로 바꾸거나 일부는 엔진을 빼버리고 객차로 개조해서 다니기도 했었다. 1961년산은 빠른 노후화로 인해 1970년대에 조기 폐차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수도권 전철이 일부 구간 개통하면서 경원선은 1990년대 초부터 차츰 차츰 전동차로 대체하는 등으로 활약상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교외선을 시작으로 전국의 지선에서 운행하고 있던 중단거리 통근열차 기능은 CDC 동차로 승계된다. 괴동선에서 운행되던 1975년식 동차는 1996년 4월에 CDC로 교체되어 퇴역했고,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대전철도차량정비단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2017년 3월 8일자 게시글 2004년 7월 16일 이후로 폐차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5월까지는 군산선에서 굴렸다는 기록이 있으니 지금이라고 하더라도 차령이 이미 30년을 넘긴 상태였다.[14]

지금이야 차령을 어떻게든 연장해서 2020년대까지도 멀쩡히 다닌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라는 예시가 있지만, 1000호대는 그나마도 전기로 굴리는 전동열차이지, DC와 CDC는 고유가로 인해 굴리면 굴릴수록 손해날 가능성이 높은 디젤동차이다. 애당초 비둘기호 자체로 굴리면 굴릴수록 손해가 심각하다는 건 자명했고, 이 당시 기술력으로 더 이상 수명을 어거지로 늘려 연장운행 하는것은 불가능했다.[15]

현재 전국에 3대가 보존되어 있다.
차호 보존지/상황
672 경기도 의왕시 철도박물관 에서 비둘기호 도색으로 정태보존 중.[16]
405 경기도 의왕시 철도박물관 에서 세미나실로 활용 중.[17]
9670 경기도 양주시 청암민속박물관에 전두부만 절단되어 보존 중.[18]

6. 여담

  • 정식 명칭은 '디젤액압동차' 이며, 현업에서는 'RC동차'라는 정식명칭과 현장 기술직원들 사이에서 불렸던 '니가타 동차'라는 은어가 존재했으나 이미 이 차량이 은퇴한 이후 대한민국에 철도동호회가 결성되었으므로 CDC와 NDC 등에 비해 RC동차라는 명칭이 잘 알려지지 않아 동호인들은 그냥 디젤 카에서 따온 DC동차 라고 부르는 경향이 많다. '카와사키 동차'라는 말 또한 본 차량의 제작사가 니가타철공소와 카와사키 중공업으로 나눠져있다고 하여 동호인들이 만든 말이고 실제로 현업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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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에는 일본국유철도의 쇼난색과 비슷한 녹색 + 주황색 도색을 사용했다. 이후 1970년대 즈음부터는 수도권 전철과 같은 남색 + 베이지색 도색[19]을 적용하기도 했으며, 일부 열차는 베이지색 + 갈색 이나 녹색의 보급열차 도색을 하기도 했다.
  • 차번이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다. 초기저항제어 전동차와 겹치는 1001~1002호[20]와 같이 차량번호를 재정비하고, 특별동차로 승급시키고 하다 보니 철도 동호인들도 이 차량의 원래 차번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 일본 니가타 트랜시스의 키하 52형에서 시작한 '관통형' 차량의 디자인은 한국의 DC 디젤동차(니가타 디젤동차)외에도 수인선(협궤) 동차, 초저항 전동차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21]. 이 차량들의 외형은 크기가 다를 뿐 매우 비슷하다.
  • 1961~1963년에 도입한 일부 차량의 경우 차량 성능의 노후화로 운전대와 디젤엔진을 탈거하고 부수차로(...) 개조된 이력이 있었다.
  • 후미등과 전조등을 전환하기 매우 쉽다. 전조등 주위에 있는 후미등 반사판만 위로 올리면 끝이다.
  • 여담으로 1968년 2월 7일 경전선 개통 행사 당시 하동역을 지나는 장면이 있다.


[1] 레일러 8호(2012)에 따르면, 당장 해방 직후 서울역에서 정상적으로 출발하는 열차가 경인선밖에 없었다. 해방 후의 혼란이 수습되고 군정이 실시되면서 철도 역시 점차 안정을 찾아갔으나 잦은 파업과 기술진 부족 등으로 파행운행을 완전하게 면하지는 못했다.[2] 크로스시트는 통일호 객차에서 볼 수 있는 마주보는 형태의 좌석, 롱시트는 도시철도 전동차에서 볼 수 있는 길쭉한 좌석을 의미한다.[3] 흔히 시내버스 앞문에 장착되는 접이식 출입문.[4] 1001~1002호는 1969년 도입분[5] 04:45, 09:10 부분에서 볼 수 있다.[6] 사진은 1988년에 찍힌 것으로, 개통 극 초기의 중앙역이다. 사진출처[22][7] 무려 1990년대까지 운행했다. 촬영지는 경부선 밀양↔상동(유천) 구간으로, 좌측에 상동역 앞 빈지소 유원지가 보인다. 우등열차가 현역이던 1970~1980년대 초반 빈지소는 부산 근교에서 기차로 닿을 수 있는 유명한 피서지였다.사진출처[8] 10, 605, 607, 614, 628, 647, 756, 나머지 3대는 차호 미상. 모두 1966년 도입분이었다.[9] 1991년에 목포로 연장.[10] 중간에 차호를 501~509로 바꿨고 다시 9501~9509로 교체.[11] 이 때문에 실내 개조가 이뤄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12] 3기 지하철 계획도 그 중 하나였다. 몇 년 뒤에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가서 다 엎어졌을 뿐이지.[13] 경원선에서 DC 디젤동차에 탔던 승무원의 회고에 의하면 정원을 넘긴 적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14] 괴동선에 굴러다니던 포스코 통근열차도 1966년 모델을 기반으로 1975년에 도입되었다.[15] 일본처럼 겉껍데기만 구형 차량에다 일부 부품과 대차까지 싹 바꾸는 등으로 개조해서 굴린다면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저항제어를 VVVF로 마개조한 거였고, 디젤열차는 유가 문제로 점차 물러나면서 1990년대 초에 VVVF가 굴러다니는 추세였고, 한국도 VVVF를 굴리기에 이른다. 현재는 CDC 디젤동차 조차도 지속적인 손해 때문에 결국 RDC 디젤동차로 마개조를 거치고 무궁화호로 승격시켜서 다니고 있다가 내구연한 문제로 인해 퇴출되는 수순을 밟았다. 현재 연천 이북에 경원선 디젤열차가 다니지 않는 것도 이 때문.[16] 박물관 개원 부터 1990년대 까지는 실내도 개방을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내 상태가 좋지 않자 2000년대에 폐쇄되었고 2020년대 기준으로 외장 일부 상태도 좋지 않다.[17] 특동 8호로 운행한 이력이 있다.[18] 현재 상태가 좋지 않다.[19] 이 도색도 일본국철의 요코스카선 전철에 쓰이던 ‘스카색’의 영향을 받았다.[20] 사실 이건 기관차다(...). 9100호대 디젤기관차 문서 참조.[21] 다만 초저항은 103계 관통형 차량과 301계 전동차의 영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