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에서의 수요로 XM16E1의 정식 운용이 가까워지자 높은 요구 조건에 한참 미달되는 성능 평가까지 더해져 점점 나중을 위한 연구개발품 수준으로 격하되었으며, 창설된지 얼마 안 된 미국 육군무기사령부와 미국 육군전투개발사령부(현 미국 육군전투능력개발사령부)의 입장 차이로 인한 마찰로 개발 지연을 겪다가 후속의 미래형 소총 사업의 XM19를 포함한 그 어느 기종도 실전에 쓰이지 못한채 록 아일랜드 조병창박물관 한켠의 장식품들로 남게 되었다.
곧은 탄도로 400m의 거리에서 0.25인치(6.35mm) 두께의 철판을 뚫는 관통력을 갖춘 플레셰트탄약을 2,400발 가량의 빠른 발사 속도의 점사로 점 표적을 맞힐 수 있도록 설계되어 M14 및 M16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 차이를 보여줄 것이라 여겨졌지만 실제로 보여준 것은 작은 빗방울과의 마찰에도 크게 낮아지는 명중률과 예광탄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결점들 뿐이었다.
DBCATA 유탄발사기
범위 표적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3연발 반자동식 유탄발사기는 운용이 불편하고 신뢰성마저 낮은데다 4.5kg 이하의 전체 중량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로 작용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탄피가 약실과 포신을 겸하는 형태로[4] 바뀌었음에도 단가 상승 및 기존 규격과의 호환 불가로 효율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1959년의 APHHW(다목적 휴대화기, All Purpose Hand-Held Weapon) 사업에 제출된 원형. 5.6x53mm XM110 탄약의 성능을 시험하는데 주안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에 극도로 단순한 원통형 외관으로 연필이라는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미국알래스카 포트 그릴리(Fort Greely)에서의 극지 환경 실험 이후에 당시의 제식 소총인 M14 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명중률과 관통력을 보였음에도 미국 육군탄도학 연구소에서의 평가는 다소 긍정적이었기에 미국 육군병기부장의 승인 아래 추가 개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SPIW 사업의 시작을 함께한 1964년의 제1차 심사용(Phase I Trial) 초기형. 상술된 APHHW 사업과 병합된 니블릭[6] 계획의 부산물인 총열 하단 부착식 유탄발사기의 개발도 함께 진행되었으나 요구 조건에 미달되는 제원으로 다른 경쟁자의 제출품과 똑같이 선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