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08:01:02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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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시즌 2007년 시즌 2008년 시즌

1. 개요2. 1차 지명3. 2차 지명
3.1. 지명방식3.2. 지명 결과
4. 드래프트 평가5. 이모저모

1. 개요

2007년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공식 명칭: 200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2006년 6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2명을 뽑았다. 원래는 1명만 뽑아 왔으나, 연고지 배려 차원에서 2명으로 늘어난 것. 한편 현대 유니콘스는 연고지 문제로 1차 지명에서 제외되었다.

※표시는 해외진출이나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1차 지명자
두산 베어스 이용찬(장충고, 투수)
임태훈(서울고, 투수)
롯데 자이언츠 이상화(경남고, 투수)
이재곤(경남고, 투수)
삼성 라이온즈 김동명(대구고, 포수)
김상걸(경주고, 투수)
한화 이글스 장필준(북일고, 투수)※
최진호(세광고-인하대, 투수)
KIA 타이거즈 정영일(진흥고, 투수)※
오준형(광주일고-인하대, 투수)
LG 트윈스 봉중근(신일고-애틀랜타-신시내티, 투수)
김유선(덕수정보고, 투수)
SK 와이번스 김광현(안산공고, 투수)
나현수(야탑고, 투수)※

3. 2차 지명

2006년 8월 16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715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9라운드까지 진행되었으며 각 팀은 최대 9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홀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의 역순, 짝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 볼드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1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라운드 KIA 현대 LG 롯데 한화 SK 두산 삼성
1 양현종
(동성고,
투수)
장효훈[2]
(북일고,
투수)
박용근
(속초상고-영남대,
내야수)
이웅한
(공주고,
투수)
김혁민
(성남서고,
투수)
이창욱
(군산상고-고려대,
투수)
이원재
(중앙고,
투수)
백정현
(상원고,
투수)
2 김연훈
(군산상고-성균관대,
내야수)
임태준
(전주고,
포수)
김태식
(공주고,
투수)
김민성
(덕수정보고,
내야수)
최연오
(휘문고-연세대,
포수)
김기현
(마산고,
투수)
이두환
(장충고,
포수)
추승민
(구미전공,
투수)
3 이호신
(휘문고-경희대,
외야수)
김남형
(인천고,
내야수)
이승우
(장충고,
투수)
박세진
(충암고,
투수)
김강
(광주일고,
내야수)
위대한
(부산고,
투수)
권영준
(중앙고,
투수)
임익준
(동성고,
내야수)
4 성민규[3]
(대구상고-홍익대 중퇴-
네브라스카대,
외야수)
조성원
(광주일고,
포수)
최종인[4]
(덕수정보고,
투수)
손광민[5]
(부산고,
내야수)
김경택
(북일고,
투수)
[6]
한윤기
(신일고,
투수)
김강률
(경기고,
투수)
김종호
(배재고-건국대,
외야수)
5 권윤민
(전 시카고,
포수)
박종선
(용마고,
투수)
유정민
(선린인터넷고,
투수)
[7]
이중훈
(야탑고-동의대,
포수)
서정
(광주일고-성균관대,
외야수)
박윤
(인천고,
내야수)
이정민
(춘천고,
내야수)
김상준
(안산공고,
외야수)
6 김주현
(덕수정보고,
내야수)
패스 나성용
(진흥고,
포수)
[8]
황진수
(공주고,
내야수)
손재윤
(공주고,
내야수)
이천웅
(성남서고,
투수)
[9]
이용호
(덕수정보고,
투수)
이병용
(서울고,
투수)
7 김남석
(광주일고,
내야수)
[10]
패스 김용진
(김해고,
내야수)
장동웅
(북일고,
포수)
[11]
패스 조영민
(신일고-홍익대 중퇴,
투수)
이동걸
(휘문고-동국대,
투수)
8 박윤식
(제물포고-인하대,
외야수)
패스 경정수
(청주기공,
내야수)
장동우
(경기고,
내야수)
[12]
정대욱[13]
(대구고,
내야수)
9 전준수
(광주일고,
외야수)
패스 문준용
(진흥고,
내야수)
이종훈
(대구고,
투수)

4. 드래프트 평가

  • LG 트윈스: 불운과 삽질로 점철되었으며, 김유선봉중근이라는 LG팬에게는 잊지 못할 이름이 두명이나 등장한 그야말로 전설의 드래프트라 할 수 있다. 김유선은 덕수고 2학년 때 최고 구속 147km/h까지 기록하며 당시 강속구로 고교 무대를 평정했던 장충고 이용찬과 함께 1학년 때부터 팬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재목이었으나 3학년 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단 한번도 등판 하지 못한 상태로 원래 LG 트윈스의 계획에는 없었던 선수였다. 하지만 LG 트윈스가 진작부터 1차 지명자로 점찍었던 김강률이 전학생 규정에 걸리는 바람에 1차 지명이 불가능하게 된 데다가 서울고 에이스 임태훈과 장충고 에이스 이용찬을 둘러싼 두산 베어스와의 영입 경쟁에서 완패하면서 LG는 김유선의 1차 지명이라는 모험수를 감행하였으나 이는 대실패로 끝나고 만다.[14] 결국 김유선은 삽질만 하다가 신고선수로 전환된 뒤 2012년에 방출당했고, 2013년 kt wiz 트라이아웃에서도 떨어졌다. 이후 고양 원더스 테스트에서도 떨어지고 결국 은퇴하여 조선소에서 일했다. 은퇴 후의 인터뷰에서 본인 말에 의하면 팔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니 이건 명백한 스카우트들의 삽질이다. 2차 1순위였던 박용근의 지명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상위 지명이었다. 박용근이 신체 조건이나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내었다는 점 등 몇해전 똑같이 깜짝 지명을 받은 SK 와이번스의 정근우와 유사한 점이 많아 제2의 정근우 케이스를 노린 지명으로 평가받았다. 문제는 포텐셜 자체는 빵빵하다고 평가받은 정근우와 달리 박용근은 상위 지명감은 아니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으며, 이 평가 그대로 박용근은 1군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고 2015 시즌 도중 kt로 트레이드 됐고 2017년에 은퇴했다. 한편 LG의 이 뻘짓을 틈타 두산은 유력한 1차 지명자로 거론되었던 중앙고 투수 이원재를 지명하는 데 성공하는데 이어, 4라운드에서는 김강률의 지명까지 성공하면서 서울 내의 투수 유망주들을 거의 싹쓸이하는데 성공한다. 반면 LG는 이후 지명에서 장충고 2선발이었던 이승우의 지명 이외에는 대학행이 확정된 선수들을 지명하는 등의 헛지명을 남발하며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봉중근을 뽑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지명.
  • 한화 이글스: 1차 지명자인 장필준은 입단을 거절하고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도미하였다가 2015년 삼성의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다. 최진호는 2011년 뺑소니 사망 사고를 내서 흑역사화되었다. 김혁민을 뽑은 것이 그나마 수확이나, 18시즌을 끝으로 방출됐다.
  • KIA 타이거즈: 양현종 이외에는 없다고 봐도 좋다. 다만 그 양현종이 리그 에이스로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김연훈은 2008년 전병두와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나마 이호신이 간간히 1군에서 모습을 보였다. 성민규는 특이하게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했으며, 은퇴 후 엠스플에서 메이저리그 해설가로 활동하였다. 한편 2차 5라운드 지명인 권윤민은 포수로 뽑혔지만 부상으로 내야수로 기용되었으며, 1년만인 2008 시즌 후 은퇴한 뒤 KIA의 악명높은 스카우트가 되었다. 그리고 2013, 2014 드래프트를 망치고 말았다. 1차 지명인 정영일은 KIA와 계약 문제로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 계약을 포기, 해외 진출을 선언하면서 지명권이 소멸되었고 2014년 SK의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다. 같은 1차 지명인 오준형도 별 활약을 하지 못한 채 2014년 은퇴를 선언하여 전력분석관이 되었다.
  • 롯데 자이언츠: 이상화이종운 감독과 함께 신나게 욕만 먹고 끝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로 떠났다. 김민성넥센 히어로즈에 가서 포텐이 터졌다. 4순위 지명을 받은 손광민은 2009년 손아섭으로 개명하고 외야수로 전향하면서 골든 글러브+국대급으로 성장했다. 2차 1픽인 이웅한은 끝내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015년에 방출당했다.
  • 두산 베어스: 이용찬이 2009년에 신인왕이 된 뒤 2012년에는 선발 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2013년에 팔꿈치 부상, 그리고 2014 시즌 마무리로 다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음주 뺑소니에 약물적발[15] 등으로 잡음만 남기고 상무에 입대했다. 전역후 2018년 현재 두산의 선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입단 첫 해 맹활약하며 순수 신인으로 신인왕[16]까지 수상했던 임태훈2011년 본인이 야기한 최악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금지어로 전락했고, 이후 따가운 시선과 함께 복귀했지만 예전과 같은 피칭을 다시 보이지 못했고 결국 2015년 임의탈퇴 공시되면서 야구계를 떠났다. 이두환 역시 탄탄한 두산 야수 백업 선수들 중에선 2군에서 군계일학의 활약을 하며 팬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멘탈 문제로 인해 1군에서 별 활약을 못 보였다. 2011년 몸 상태에 이상이 생겼고, 결국 큰 포텐을 가지고 있음에도 1회 2차 드래프트로 KIA에 갔다. 하지만 KIA로 가서는 암(골육종) 판정을 받아 몸상태가 크게 악화되며 단 1경기도 뛰어 보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두산과 KIA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선수 중 하나로, 이두환이 사망한 후에 양현종이 모자에 쓴 DH가 이두환을 뜻한다. 이외에는 김강률만이 1군에 자주 나오는 수준. 이원재가 강속구로 기대를 받았으나 부상 등으로 기량이 저하되며 사실상 망한 수순이었고 결국 2018 시즌 후 방출. 김강률은 2015 시즌 시범경기 3월 14일 kt전에서 빠른공 최저구속 153km/h를 찍으며 팬들을 설레게 했는데, 5월 초 경기 도중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다. 시즌아웃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안타까울 따름. 그러나 2017 시즌에는 다시 부상을 딛고 두산의 필승조가 되었다.
  • SK 와이번스: 그래도 김광현 하나는 제대로 터졌다. 박윤도 2군에서는 건실한 모습을 보였다만 그 정도. 하지만 나현수와는 결국 계약에 실패했으며, 결국에는 지명권이 풀렸다. 박윤 역시 몇년간 정체되었다가 2015시즌 후에 자진해서 방출을 요청했고 이후 넥센에 입단했지만기서도 2군 본즈 노릇만 하다가 2017 시즌이 끝나고 방출당했다.
  • 삼성 라이온즈: 뽑은 선수들의 기여도만 놓고 생각할 때, 간단하게 말하자면 2000년대 최악의 망픽 시즌 중 하나.[17] 1차 지명 때 대구/경북 팜에서 도무지 뽑을 만한 선수가 없었다고 한다. 저 중에서 그나마 가장 성공한 외야수 김종호는 삼성이 아닌 NC의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하여 터진 케이스이다. 1차 지명을 받았으나 계약금 8,000만 원에 입단한 경주고 투수 김상걸은 더딘 성장을 보인 데다가, 팔꿈치 부상까지 당해 수술을 받으면서 입단한 지 불과 1년 만에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 이후 김상걸은 연천 미라클에서 활동했지만 프로 복귀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1픽인 김동명(김동욱으로 개명)과 2차 7라운더 이동걸 모두 부진하여 결국 2013년 2차 드래프트 때 각각 다른 팀으로 옮겼다. 현재 삼성에 남아있는 선수는 사실상 백정현 하나뿐이다. 그나마도 중간계투로서는 추격조 수준이고, 선발로서는 등판할 때마다 꾸준히 4~5실점을 찍어서 1군 수준이 어니다. 하지만 2015년 권혁의 이적과 차우찬의 보직 변경으로 삼성의 좌완 계투진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피칭을 선보이며 같이 각성한 박근홍과 함께 새로운 구세주가 된 덕에 재평가를 받았다가 2017년에 초토화된 삼성 투수진에서 선발 에이스로 급부상하며 백쇼로 칭송받고 있다.
  • 현대 유니콘스: 장효훈 말고는 딱히 설명할 만한 선수가 없다. 괜히 평가 문단에서 현대만 빠진 게 아니었다. 장효훈은 2013년 장시환으로 개명하고 2015년 kt wiz의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하여 1군 데뷔 첫 승을 올리는 등, kt 투수진의 기둥이 되었다가 롯데로 떠났다.

5. 이모저모

  • 2007년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자인 장필준은 한화가 제시한 계약금에 이견을 보여 북일고 졸업을 앞두고 3학년 겨울에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자진 입대한다. 2006년 한화 이글스는 유원상한테 5억 원 이상을 질렀음에도 다음해 유원상보다 북일고에서 실질적 에이스였던 장필준에게 1억 5천만 원부터 제시하며 장필준의 자존심을 구겼다고 한다. 장필준은 상무에서 제대한 후 도미하여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 마이너 계약을 맺고 입단했으나 2012년 마이너리그에서도 방출되었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갔지만 팔꿈치 부상을 당해 2경기에만 등판하고 귀국하여 재활했고, 삼성 라이온즈의 2015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한 후 일찌감치 STC에 입소했다. 그리고 2017년부터 묵직한 150km/h의 강속구를 주무기로 삼아서 삼성의 마무리로 활약중.
  • 이 해부터 1차 지명 불가의 기준이 중학교 3학년 이후 유급을 했거나 타 구단 연고 지역 학교로 전학 또는 진학한 선수로 고정되었다. 전면 드래프트로 바뀌면서 이 규정은 폐지되었으며 2013년 1차 지명이 부활과 함께 이 규정도 부활되었다. 대신 2013년 이전의 전학, 유급은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다.
  • 이 때문에 SK 와이번스는 성남서고 투수 김혁민, 이천웅[18]을 1차 지명하지 못하고 남은 한 자리에 야탑고등학교 투수 나현수를 지명했지만, 나현수는 SK 입단을 거절하고 경성대학교에 입학했다. 1차 지명이라 지명권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나현수는 경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19] 결국 지명권이 풀렸다.
  • 삼성 1차 지명의 경우, 포수 김동명 외에 당시 1차 지명감이 없어 그나마 체격만 좋았던 경주고 투수 김상걸을 뽑았다.[20] 하지만 김상걸은 이듬해 시즌 중 불과 1년 만에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 김동명도 군 복무를 마치고도 별 활약을 못 보이고 2013년 2차 드래프트 때 조뱀의 팀에 끌려갔다.
  • SK에 3라운드 지명된 부산고 투수 위대한[21]은 학창 시절의 악행이 드러나면서 야구 팬들의 질타를 받았고, 결국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SK에서 임의탈퇴 공시되어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리고 진짜로 조폭이 되었다.
  • KIA에 4라운드 지명된 성민규는 최초로 지명된 해외 아마추어 선수다. 원래 홍익대학교에서 운동을 포기하면서 중퇴한 후 미국 내브래스카로 건너가, 그 곳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한 것. 그러나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은퇴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미국에서 스카우트와 마이너리그 코치로 활동했다. 엠스플에서 메이저리그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 한화에 4라운드 지명된 김경택은 지명 후 유급했으며 한화에 입단하지도 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은 가운데 몇 년을 보내다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2012년 귀국한 후 고양 원더스에 합류했으나 부상으로 1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 KIA에 5라운드 지명된 권윤민은 법정 싸움을 벌인 끝에 신인 지명에 참가할 수 있었다. 원래 규정대로라면 1년 더 기다린 후에 신인 지명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은퇴하고 스카우트로 전업.
  • SK에 5라운드 지명된 박윤박종훈 당시 SK 수석코치의 아들. 그리고 아버지는 2006 시즌 후 친정 팀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 두산에 7라운드 지명된 조영민은 대학 중퇴 후 바로 두산 베어스신고선수로 입단하면서 선수로 활동할 수 없게 되자[22] 신인 지명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7 시즌 후 방출당한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2] 2013년 7월 장시환으로 개명.[3] 시카고 컵스의 극동 스카우트이자 메이저리그 해설위원.[4] 후에 최유건으로 개명.[5] 후에 손아섭으로 개명[6] 유급 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일본 독립리그 등에서 뛰다가 2012년 고양 원더스에 합류. 2013년 퇴단해 일반 회사원으로 근무 중.[7] 유급 후 충청대, 원광대를 거쳐 2012년도 신인 지명에서 롯데에 지명.[8] 4년 뒤 한화에 지명. 입단 1년만에 송신영의 보상선수로 LG로 이적.[9] 고려대 진학 후 4년 뒤 LG에 신고선수로 입단.[10] 4년 뒤 LG에 지명. 입단 후 김재율로 개명.[11] 고려대를 거쳐 경찰청 복무를 마친 후 NC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1년만에 방출.[12] 6년 뒤 NC에 지명.(한양대 진학 후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2011년 복학.) 2014시즌 후 방출.[13] 후에 정윤혁으로 개명.[14] 김유선 지명의 미스테리에 대해 일부에서는 김유선이 2학년 때 미리 LG와 계약을 하였기 때문에 3학년 때 태업하였다는 주장을 하지만, LG가 임태훈, 이용찬 영입을 원했으며 실제로 계약을 시도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김유선이 고교 1, 2학년 동안 고작 6경기 등판에 5⅔이닝 투구에 그쳤다는 점을 봤을 때 더더욱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15] 아두치와 같은 치료목적이긴 하지만...[16] 2017년 이정후가 신인왕을 수상하기 전까지 10년간 마지막 프로&고졸 1년차 신인왕이었다[17] 이때부터 시작된 망픽과 육성실패는 2016년 나락으로 떨어진 시발점 중 하나가 된다.[18] 고려대학교 졸업 후 LG 트윈스신고선수로 입단하여 외야수로 전향했다.[19] 대학 4년 동안 1학년 때 14이닝을 던진 것 외에는 전혀 기록이 없다.[20] 2005년 1차 지명자 백준영처럼 계약금 8,000만 원에 입단하였다. 2005년 지명처럼 당시 대구·경북 팜이 얼마나 암울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21] 2009년 히어로즈 지명자와는 동명이인이다. 이쪽은 내야수다.[22] 원래 대학 중퇴생의 경우엔 1년 후에 프로 입단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