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15:55:29

칼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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Καλυψώ[1] / Calypso[2]

1. 개요

“바다 가운데 외딴 오귀기아 섬에는 머리를 곱게 땋은,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가 살고 있는데, 그녀는 무시무시한 여신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제7권
“멀리 떨어져 있는 님파이에에는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가 살고 있었다.”
아폴로니오스, 『아르고나우티카』 제4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 지중해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오귀기아(Ogygia) 섬을 다스리는 바다여신이다. 3천 오케아니데스 중 한 명, 50~100명 네레이데스 중에도 한 명 있다. 이름 뜻은 숨기는 자, 은폐하는 자. 오디세이아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며 키르케레우코테아, 나우시카와 더불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20년간 지중해를 떠돌던 오디세우스가 두 번째로 만난 여성이자 은인. 순서상 20년 동안 긴 고난과 여정을 겪던 그의 앞에 나타나 도움을 준 두 번째 여신이기도 하다. 근데 키르케와 레우코테아와 달리 칼립소는 명백한 신임에도 불구하고 신으로서의 권능이나 인외급 능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여준 적이 없다.

호메로스오디세이아,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 기록에서는 티타노마키아 때 제우스에게 패배하여 하늘을 영원히 떠받치는 벌을 받은 티탄 신 아틀라스의 딸들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전령 신 헤르메스의 어머니가 칼립소의 이복 자매들인 플레이아데스 일곱 자매 중 한 명이므로 촌수를 따지면 이모조카가 되며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조카외고손자인 셈. 아버지가 누군지는 확실하게 나오지만, 휘기누스는 어머니를 플레이오네로 제시했다.

2. 오디세이아

칼립소는 아틀라스의 딸이자 지중해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오귀기아 섬을 통치하는 주신이며 곱게 땋은 길고 빛나는 금발을 지닌 아름답고 고귀한 여신이었다. 작중에서도 호메로스는 칼립소를 '가장 고귀한', '여신들 중의 여신'이라고 칭송하는 구절이 여러 번 나온다.
“바다 가운데 외딴 오기기아 섬에는 머리를 곱게 땋은,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가 살고 있는데, 그녀는 무시무시한 여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이든 필멸의 인간들이든 그 누구도 그녀와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독하게 불운한 저의 운명이 저를 홀로 그녀의 화롯가로 데려갔습니다. 이는 제우스신께서 그의 번쩍이는 번개로 저의 날랜 배를 세게 내리치셔 포도주 색깔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저의 배를 산산이 부셔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의 훌륭하고 충실한 전우들이 모두 다 죽었고, 저 혼자만 양쪽 끝이 휜 배의 용골을 두 팔로 꽉 움켜잡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저는 아흐레를 떠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열흘째 되던 날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신들께서 저를 오기기아 섬으로 데려다주셨습니다. 그 섬에는 머리를 곱게 땋은 무시무시한 여신인 칼립소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그녀의 집으로 데려갔고 환대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음식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저를 죽지도 늙지도 않게 만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칼립소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는 오디세우스, 『오디세이아』 제7권
오디세우스가 동료 선원들을 전부 잃고 표류했을 때 자신이 거느리는 시종 님프들과 함께 오디세우스를 발견하고 그를 자신의 동굴에 데려다눕혀 정성스럽게 상처를 치료하고 간호를 해주었다. 칼립소는 쓰러진 오뒷세우스를 돌보면서 점점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다가 자신의 남편이자 영원한 동반자로 삼기로 결심한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오귀기아 섬에서만 외롭게 살아온 영향인지 오디세우스에게 한눈에 반해 거의 집착과 소유욕에 가까운 뒤틀린 애정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수년간[3] 오귀기아 섬 안에 가둬 살게 만든다. 그리고 시녀들에게 오디세우스가 도와 달라고 하면 절대 돕지 말라고 명령한다. 먹은 자에게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부여하는 신들의 음료 넥타르와 신들의 음식 암브로시아로 오디세우스를 불로불사의 신으로 만들어 줄 테니[4] 영원히 자신과 함께 이 섬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권유한다.[5]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있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아버지 라에르테스 등 가족들을 그리워할 뿐이며, 불로불사에 관심이 없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천수를 누리고 죽는 필멸자의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한다. 칼립소는 인간이 불로불사의 신이 되는 것마저 보장할 만큼 신격이 강한 여신이라 오디세우스로서는 감히 칼립소에게 대들지 못하고 제발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고향으로 가게 해달라고 절절히 호소하는 게 고작이었다. 오랫동안 섬에 틀어박히면서 외부인과 교류하지 않고 시녀 님프들과 고독하게 살아온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의 애원을 완강하게 거절하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불로불사의 신이 될 것을 강요한다.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저주를 받아 침몰해 죽을 뻔한 자신을 구원한 은인 칼립소 여신께 감사하면서도, 페넬로페를 향한 충의를 생각해 겸허히 거절하고 싶었지만, 결국 동침한다. 오디세우스는 지금쯤 페넬로페가 20여 년의 긴 기다림에 지쳐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고 여기고 거의 자포자기한 신세였다.

거기에 더해 포세이돈헬리오스, 제우스를 포함한 신들의 분노를 의도치 않게 건드린 탓에[6] 배는 침몰하고 부하들까지 잃은, 말 그대로 '잃을 게 없는' 처지가 되면서 사소한 실수 하나만 저질러도 인간이 신의 심기를 거스르면 그 대가가 상상 이상으로 얼마나 무섭고 혹독한지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당장 칼립소보다 훨씬 위계가 높은 신들이 오디세우스가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여건들을 남김없이 박살냈다. 모든 걸 잃고 간신히 구사일생한 상황에서 입 함부로 놀려 칼립소를 격분시키면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이미 그는 아테나헤르메스를 빼면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신들을 의도치 않은 실수[7]로 적으로 돌리는 골치 아픈 전례를 2연속이나 겪어봤다. 트로이 전쟁 중 아킬레우스가 참전을 거부하고 헥토르가 그리스 야영지까지 쳐들어온 대 위기 상황에서는 직접 전쟁터에 강림해 그리스군의 사기를 지켰고, 트로이 마지막 날에 바다괴물들을 보내어 트로이 목마 작전을 방해한 라오콘을 제거하면서까지 오디세우스를 뒷바라지했던 포세이돈 역시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를 맹인으로 만든 걸 자신의 영역인 '바다 위'에서 자랑스럽게 떠벌리자 그야말로 악랄할 정도로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방해하며 헤라클레스를 박해하는 헤라 이상으로 끈질기게 괴롭혔다.[8] 그 다음에 조우한 신이자 타산 없는 호의를 베풀던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도 결국 실망과 적의를 드러내며 차갑게 문전박대한 사례가 있었다.[9] 간신히 헤르메스키르케, 명계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통해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들이 사는 섬을 무사히 건너면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희망을 품었건만, 이번에는 멍청하고 인내심 없는 부하들이 오디세우스의 명령을 불복하고 소들을 잡아먹은 탓에 격분한 헬리오스의 요구를 들어준 제우스의 벼락과 스퀼라와 카리브디스의 맹공에 의해 모두 전멸하고 본인만 살아남았다. 의도치 않은 실수들로 신들의 미움에 심판당한 오디세우스가 선뜻 다가와 호의와 은혜를 베푼 칼립소에게 미움 받을 짓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신의 고백을 거절한 대가는 대부분 운 좋은 소수[10][11]를 빼면 잔혹하고 비참하기 그지없으며, 최악의 경우 골로 갈 수 있다. 게다가 이미 칼립소의 구애를 거절하고 아내 페넬로페가 더 그립다고 말한 건 신계 기준으로 신성모독이자 어그로에 준하는 발언이다.
  • 제우스는 칼리스토가 자신의 구애를 거부하자, 아르테미스로 변신해서 안심시킨 다음 칼리스토를 강간했다.
  • 오디세우스와 같이 아내만을 사랑하는 순정남이자 유부남인 피쿠스는 키르케의 프러포즈를 거절하고 "나의 아내 카넨스가 당신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진노한 키르케의 저주를 받아 딱따구리가 되었다.[12]
  • 칼립소와 키르케보다 격이 높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자신을 거절한 케팔로스의 의처증을 부추겨 아내 프로크리스와의 부부 관계를 파탄내곤 자기에게 오도록 만든다. 이렇게 에오스는 교묘한 이간질로 케팔로스를 빼앗는 데 성공한다.
  •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 아폴론카산드라가 한때의 연애는 좋아도 결혼은 싫다고 거절하자 그녀의 예언 능력에서 설득력을 빼앗아 모든 사람이 그녀를 거짓말쟁이라고 불신하고 서서히 고립시켜 파멸로 몰고 가는 잔인한 저주로 보복했다. 그 이전에 오르코메노스의 공주 코로니스는 아폴론이 사랑한 여인들 중 유일하게 그를 적극 사랑하고 아들 아스클레피오스까지 임신했다. 처음엔 기뻤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올림포스의 업무에만 전념하느라 궁에 거의 오지 않는 아폴론에게 슬슬 정나미가 떨어지고 있었고[13] 불멸자인 신과 필멸자인 인간의 차이를 절실히 깨달아 인간 이스키스와 결혼했다. 스파이로 심어놓은 흰 까마귀가 이 사실을 알리자 배신감에 사로잡힌 아폴론은 코로니스에게 화살을 쏴서 보복해버리곤[14] 시체 속에 있던 아들 하나만 데리고 사라졌다.
그에 반해 칼립소는 여신인 자신 앞에서도 꿋꿋이 페넬로페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오디세우스가 고백을 거절했다고 키르케처럼 무작정 앙심을 품거나 저주나 복수로 받아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페넬로페도 잊어버릴 것이라며 천천히 생각하고 선택할 시간을 주었다. 계곡으로 데려가 신이고 인간이고 할 것 없이 신나게 물놀이도 즐기고 화려한 진수성찬도 대접하는 한편, 밤이 되면 잠자리로 불러들인다.

칼립소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신세가 된 오디세우스가 말 그대로 '뺏을 게 없어서' 그냥 넘어갔거나 이미 섬 안에 억류시키는 것으로 충분히 신을 거스른 인간에게 처벌을 하고 있다고 볼 가능성도 있지만, 상단의 예시들과 비교하면 '저주 하나 내리지 않고 환대를 지속한 것'만 해도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게 충분히 너그럽고 자비로운 선처를 베푼 게 맞다. 오디세우스 입장에서 봐도 은혜로운 여신을 찼다가 괜히 어그로를 끌어 파멸할 바에야 아무 탈 없이 사이 좋게 동침하고 끝내는 게 훨씬 손해 볼 게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15]

칼립소는 오디세우스가 섬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고, 오디세우스는 칼립소가 베푸는 호화롭고 화려한 만찬과 유흥에 처음에는 즐거운 듯 싶었지만 슬슬 향수병에 걸리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기 시작한다. 가족들과 이타카를 추억에 잠긴 채 통곡하던 오디세우스는 올림포스 신들을 향해 제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절실히 기도한다. 이를 보다 못한 아테나제우스에게 항의했고[16], 아테나 이외 나머지 여러 신들이 오디세우스를 도와줄 것을 제우스한테 호소하였다. 이에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칼립소에게 파견시킨다. 칼립소는 헤르메스를 환영하며 그에게 넥타르암브로시아를 대접하지만, 고국에 처자식이 있는 인간 오디세우스와는 절대 이어질 수 없다는 전언을 보낸다.
가 이렇게 말하자, 여신들 중의 여신인 칼립소는 몸서리를 치더니
그에게 소리 내어 날개 돋친 말을 건네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유달리 시샘 많은 그대들이야말로
고집스러운 신들이외다. 여신이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남편으로 삼아
120공공연히 그 남자 곁에서 잠들면 그대들은 여신들에게 질투란 걸 하더군요.
장밋빛 손가락의 에오스(새벽)가 오리온을 선택했을 때에도
수월하게 살아가는 그대들, 신들은 그녀를 내내 시샘했지요.
황금 보좌의 순결한 아르테미스가 오르튀기아에서
그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화살들로 숨통을 끊어놓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그대들, 신들이 이번엔 죽게 마련인 한 사내가 제 곁에 있다는 이유로
130저를 시샘하는군요. 홀로 용골에 올라타 있던 그이를 구해낸 게 바로 접니다."
오디세이아 5.116-130, 이준석 번역, 아카넷, 2023
가장 고귀한 칼립소는 몸이 얼어붙더니
소리 내어 그를 향해 날개 돋친 말을 쏘았다.
"가혹하네요, 신들이여, 질투심이 유별나서
여신들이 사내들 곁에 누워 있는 걸 시기하다니. 공개적으로
120여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남편으로 삼기라도 하면.
장밋빛 손가락 펼치는 에오스가 그렇게 오리온을 취하자
안락하게 살아가는 신들이 계속 질투를 일삼다가
오르튀기에에서, 황금 옥좌 앉은 정결한 아르테미스가
오리온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화살로 죽였다고요.
...신들이여, 필멸자가 내 곁에 있다고 그렇게 지금 나를
130질투하네요. 그 사내는 내가 구한 거라고요, 그가 용골에
혼자 매달려 있을 때, 제우스는 그의 빠른 배를 제지하더니
번쩍하는 번개로 포도줏빛 바다에서 부숴버렸지요.
오디세이아 5.116-132, 김기영 번역, 민음사, 2022
하지만 여태까지의 올림포스 12신들의 막장 행각을 생각하면 헤르메스의 전언은 내로남불이었다.(...) 칼립소는 언성을 높이고 몸서리까지 치며 당신 같은 남신들은 여자들을 실컷 갖고 놀면서 여신이 남자 곁에 있으면 절대 못 참는다고 받아친다. 처녀신 아르테미스가 직무를 유기한 채 짝사랑하던 오리온에오스에게 뺏기자 질투나서 활로 쏴죽인 일화까지 언급하며 다른 누구보다도 질투가 많은 그대림이야말로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작자들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한다.[17] 제우스가 던진 벼락에 죽을 뻔한 오디세우스를 구조한 건 다름 아닌 나의 공인데 실컷 방관하더니 이제 와서 변덕을 부리냐고 대차게 깐다.[18][19]

결국 제 아무리 여신이라 해도 그보다 서열과 지위가 훨씬 높은 올림포스 12신을 거스를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오디세우스를 이타카로 돌려보낼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에게 뗏목을 만들어 주고[20] 쓸쓸하게 떠나보내면서 이별을 고한다.
“불행한 그대여! 저는 그대에게 간청해요.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슬퍼하지 마세요. 그대는 슬픔에 젖어 그대의 삶을 보내지 마세요. 저는 이제 그대가 그대의 길을 가도록 기꺼이 보내드릴게요. 자, 그대는 도끼로 키가 큰 나무를 베어 널찍한 뗏목을 만드세요. 그리고 뗏목 위에 갑판으로 십자가 모양의 나무판자를 잘 짜 맞추세요. 그것이 그대를 안개가 자욱한 깊은 바다 위로 실어다줄 수 있도록 말예요. 그러면 저는 그 뗏목 안에 굶주림으로부터 그대로 구해줄 빵과 물과 적포도주를 넉넉히 넣어드릴게요. 그리고 저는 그대에게 옷을 입혀주고, 그대 뒤에서 순풍을 보내줄 거예요. 그대는 아무 탈 없이 그대의 고향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거예요. 이는 넓은 하늘에 사는 신들의 뜻이지요. 저보다 강력한 그들이 이를 계획하고 이루기를 원해요.”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를 떠나보내는 칼립소
칼립소는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섬에서 우울해지지 않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여신으로서 진심으로 축복한다. 그리고 항해 도중 아사하지 않도록 다 완성된 뗏목에 적포도주, 을 잔뜩 실어주었다. 오디세우스도 칼립소의 은혜에 진심 어린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언젠가 여신님께서 자기보다 더 훌륭한 남자를 만나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면서 둘은 좋은 마무리를 지으며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그렇게 올림포스 12신과 칼립소의 도움으로 오귀기아 섬을 떠나 출발한 오뒷세우스는 파이아케스인들이 사는 스케리아 섬이 보이는 부근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에티오피아인들이 바친 제물을 받고 돌아가던 포세이돈이 이걸 보곤 괘씸해하며 파도를 일으켜 오디세우스는 또다시 배를 잃고 표류하다가 바다의 여신 레우코테아의 도움으로 스케리아 섬 해변에 다다른다. 그리고 아테나에 의해 해변으로 나온 파이아케스인들의 공주 나우시카에게 구원 받아 이타카로 돌아가게 된다.

비록 저주는 걸지 않되 오랫동안 오디세우스를 향한 지나친 사랑과 집착으로 그를 피폐시켰지만, 결국 오디세우스의 행복을 기원하고 그의 귀환을 위해 자비를 베풀었다. 칼립소가 그토록 갈망했던 오디세우스와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성숙한 사랑을 실천한 셈. 최종적으로는 칼립소 역시 자신이 원하던 오디세우스의 부인이 될 수 없었지만, 키르케와 나우시카 공주와 더불어 오디세우스, 나아가 그의 정실부인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의 조력자로 남았다.[21]

이후 텔레마코스메넬라오스로부터 아버지가 오귀기아 섬의 여신 칼립소에 의해 억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중해 서쪽 끝까지 항해하여 오귀기아에 들렀었다. 이때 칼립소는 텔레마코스를 한때 사랑하던 남자 오디세우스의 아들임을 알아보고 붙잡아두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스승인 멘토르[22]로 분장해 같이 다니던 아테나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전승도 있다.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살했다.”
휘기누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결국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애타게 그리워한 나머지 신으로서의 불로불사의 삶마저 포기하고 자살했다고 나온다. 다른 남신이나 남자는 거들떠도 보지도 않고 오직 한결같이 오디세우스만을 바라봤다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집착하고 절망시켰어도, 오디세우스 한 사람을 향한 칼립소의 사랑과 헌신만큼은 순수하게 진심이었던 듯. 고향에 아내와 아들이 있는 유부남을 사랑하고 만 바다의 여신의 이야기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 셈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는 슬픈 결말로 끝나지만, 『신들의 계보』는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와의 동침을 통해 나우시토오스와 나우시노오스를 낳았다고 전한다. 서사시환에서는 키레나이안 인은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와의 사이에서 텔레고노스 혹은 텔레다모스라는 아들을 두었다고도 한다. 『비블리오테케』는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 반해 라티노스를 낳았다고 적고 있으니 적어도 그와의 혈육을 낳고 키우게 되면서 외로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3. 대중 문화에서

3.1.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파일:Screenshot_20220827-162743_Samsung Internet.jpg
홍은영이 집필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칼립소

3.2. 반쪽 피 캠프 연대기

Calypso
파일:Percy Jackson.Calypso.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칼립소(반쪽 피 캠프 연대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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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 외

4. 토성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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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순행)
S/2006 S 12 · S/2019 S 6 · S/2004 S 24
※ 위성들은 토성에서부터의 거리 순으로 정렬
※ *: 대형 위성
※ 모든 내위성 및 대형 위성은 순방향 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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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칼립소
임시 명칭 S/1980 S 25
모행성 토성
지름 약 21.4km
발견 날짜 1980년 3월 13일

칼립소(Calypso) 또는 토성 XIV는 토성의 제14위성이며 트로이 위성에 속한다. 지름은 약 21.4km(30.2×23×14)정도이고 임시 명칭은 S/1980 S 25다.

5. 존 덴버의 노래 제목


1975년에 발표한 노래로 프랑스의 전설인 다이버 자크 쿠스토랑 개인적으로 친했기에 그에 대한 헌사로 만들었다. 칼립소는 실제로 쿠스토가 타고 다니던 배 이름이기도 하다. 1975~76 빌보드 핫 100에서 2위에 오르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1] ‘숨기다’, ‘덮다’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칼립토(καλύπτω, kalypto)에서 유래. 그녀의 행적과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2] 위의 명화는 윌리엄 해밀턴의 '동굴에서 텔레마코스와 멘토르를 맞이하는 칼립소.'[3] 전승에 따라 1년, 5년, 7년 등 차이를 보인다.[4]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달의 여신 셀레네와 새벽의 여신 에오스 자매가 저지른 실수를 들먹이며, 자신은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한 젊음과 생명을 약속하는 동시에 치명적인 실수로 비극적인 사랑을 맞이한 두 여신들을 뒷담까기도 한다. 1세대 달의 여신과 새벽의 여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뒷담깔 정도로 올림포스 12신 이하의 신들 중에서는 제법 권능이 높다고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일개 반신이나 인간이 이런 말을 했다가는 두 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즉각 신벌을 집행했을 것이다.[5] 대표적으로 원래 지상계의 인간 왕족이였으나 이후에 에로스의 아내가 되면서 영혼의 여신이 된 프시케, 미노스의 유혹과 강간 위협을 뿌리치고 아르테미스의 축복을 받아 그물과 사냥의 여신이 된 브리토마르티스가 있다.[6] 그러나 제우스는 나중에 오디세우스가 고국 이타카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입장을 변경했다. 오디세우스의 배를 침몰시킨 건 소들을 남김없이 요리해서 먹어치운 오디세우스 부하들의 신성모독에 분노한 헬리오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포세이돈이 오디세우스를 끈질기게 괴롭혀도 말리지 않은 것도 신의 아들의 눈을 직접 눈 멀어버리게 하고 바다 위에서 잘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소리지른 오디세우스의 돌발행동은 포세이돈이 충분히 아버지로서 분노할 만한 일이라 생각해서 냅둔 거였다. 제우스는 오디세우스 개인은 싫어하지 않았다. 헬리오스도 자신의 소들을 잡아먹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만 처벌하는 걸로만 만족했지, 끝까지 식욕을 견딘 오디세우스는 이후에도 해코지하지 않았다.[7] 유혹에 쉽게 걸려드는 감정적이고 무능한 부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디세우스가 가는 곳마다 신들의 증오를 산 계기는 본인이 직접 오만에 겨워 어그로를 끈 포세이돈 건만 빼면 모두 부하들이 상관 오디세우스의 명령과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의로 저지른 잘못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잘못은 내가 아니라 가족이나 부하, 상관이 저질렀는데 연좌제로 같이 보복당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남편 히포메네스가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반칙을 써서 경주에 이겨놓고 아프로디테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단 이유로 억울하게 사자가 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아탈란테가 대표적.[8]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포세이돈은 오직 오디세우스 개인만 지독하게 괴롭혔지, 자기 아들의 눈을 멀어버리게 만들어 괘씸하다는 이유로 똑같이 오디세우스의 가장 소중한 외동아들인 텔레마코스와 아내 페넬로페, 아버지 라에르테스, 여동생 크티메네의 목숨을 빼앗거나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여정 도중에 배를 통째로 침몰시켜 죽이는 연좌제성 처벌은 내리지 않았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바다의 권능을 써서 텔레마코스를 익사시키거나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해 증오하는 오디세우스의 씨를 영원히 끊어버리는 한편,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에게 부당한 임금체불을 당했던 것처럼 그의 고국이던 이타카에 직접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나라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선택지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세이돈은 자신의 원한과 증오를 아들의 눈을 찔러 영원히 멀어버리게 한 오디세우스 한 사람에게만 향하게 했으며 그가 아끼는 가족들이나 신하들에게 화풀이하지 않았다. 당장 복수심이 치열하기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신들의 여왕 헤라만 해도 헤라클레스 포함 제우스의 사생아들뿐만 아니라 그 주변 가족과 친구들, 연인들의 인생을 파탄내는 것조차 서슴지 않으며 이는 제우스와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다. 포세이돈이 차마 그 생각까지 못 간 건지 아니면 성격이 과격하다 못해 단순한 건지 오디세우스만 죽이지 않을 정도만 고통스럽게 괴롭힌 게 결과적으로 오디세우스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일지도 모른다. 신들의 분노를 의도치 않게 혹은 알면서도 일부러 건드린 인간들의 최후는 자기 하나만 죽는 걸로 끝나지 않고 일가족 몰살 혹은 고향 전체가 초토화당하는 최악의 결말까지 치닫는데 오디세우스는 운 좋게도 그런 결말을 피할 예정인 것으로 운명의 여신들인 모이라이가 결정내린 듯. 또한 아테나가 기나긴 트로이 전쟁으로 한동안 사이가 험악해져 있었던 올림포스 12신들 모두를 화합시켜 오디세우스의 귀향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한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삼주신 중 한 명인 포세이돈의 분노를 건드리고도 해피엔딩을 맞이한 소수의 인간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9] 여행 초기 때 아이올로스는 자신의 섬을 방문한 오디세우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첫 만남부터 맛있는 술과 진수성찬을 대접해주었다. 귀향길을 열어주기 위해 귀향에 방해가 될 만한 모든 바람을 주머니 자루에 따로 모아놓는 등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베풀었다. 결국 호기심을 자중하지 못한 부하들의 트롤짓으로 주머니가 열려 봉인된 바람이 풀리고 이타카까지 가까이 간 배가 봉인되어 있던 바람에 휩쓸려 또다시 지중해를 표류하고 만다. 오디세우스의 방심과 보물이 들어 있는 줄 알고 탐욕에 눈이 멀어 자루를 연 부하들의 멍청한 트롤링에 크게 실망한 아이올로스는 곧 그가 신들의 '미움을 받는 자'임을 깨닫고 다시 도움을 구하러 온 그에게 자신의 섬에서 냉큼 떠나라고 경고하며 쫓아냈다. 외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가 자신이 평생껏 자랑 삼아 저질러온 사기도둑질을 비롯한 경범죄들로 인해 외손자가 사방의 증오를 받아 고난을 겪을 것을 예상하고 지은 이름이자 오디세우스의 이름에 담긴 진짜 의미이기도 하다.[10] 제우스의 구애를 거부했지만 현명한 꾀와 처세술로 보복당할 여지조차 깔끔하게 없애고 영원한 처녀로 살아남은 시노페가 그 예시.[11] 아레스의 손녀이자 에베노스의 딸 마르페사도 아폴론의 구애를 거부하고 이다스를 남편으로 삼았다. 올림포스 남신들 중에서도 제우스 못지않게 성미가 매우 더럽고 졸렬하기로 악명 높은 아폴론의 구애를 차고도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며 살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례로 꼽히지만, 이때는 제우스가 이다스와 아폴론의 쟁탈전에 끼어들어 둘이 멋대로 결정하지 말고 마르페사의 선택권을 존중하자고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제우스의 허가 아래 남편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게 된 마르페사는 영생을 사는 신인 아폴론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인간인 이다스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았다. 제우스는 마르페사가 잘했다는 듯이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칭찬하며 부부가 된 마르페사와 이다스에게 축복을 내렸고, 아폴론은 분함을 느꼈지만 코로니스와 카산드라 때처럼 마르페사에게 보복은 커녕 얌전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12] 마법사 여신을 향한 당대인들의 배척과 혐오, 경외 등등으로 인해 오랜 세월 사무친 고립감에 시달려온 키르케는 이방인을 멀리하고 혼자만의 삶을 유지했는데, 피쿠스와 글라우코스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경험을 하도 겪다 보니 남성혐오가 매우 강해져 있었다. 아르고 호 원정 당시 키르케의 조카 메데이아이아손에게 "내 고모 키르케는 섬에 오는 남자들을 족족 돼지나 사자 같은 동물들로 만들어버리니 내 손을 단단히 잡고 따라와라."고 경고했을 정도. 맨 처음에는 아이아이에 섬에 당도한 그 부하들은 물론이고 오디세우스를 먹을 것으로 환술을 건 뒤 돼지로 만들어버리려고 했다. 헤르메스가 험난하게 방랑하는 외증손자 오디세우스에게 직접 신비한 약초 몰리와 사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오디세이아는 그쯤에서 끝났을 것이다.[13] 거기다 코로니스는 아폴론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성차별이 극심한 당대 그리스에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외간 남자와 바람나 순결을 잃고 임신한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다. 당장 세멜레만 해도 제우스와 사랑을 나눠 아이를 가졌다고 가족들과 자매들에게 얘기했지만, 이노와 아우토노에, 아가우에 세 자매는 갑자기 애가 이상해져서 거짓말을 했다고 치부했다. 결국 세멜레가 헤라의 복수에 의해 까맣게 타죽자 자매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도, 감히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함부로 떠벌리고 다닌 탓에 제우스 혹은 헤라 님이 크게 노하셔서 천벌을 내린 거라고 해석하고 받아들였을 정도. 코로니스가 가족들에게 아폴론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털어놓는다 한들 물증도 없고 아폴론이 직접 현신하지 않는 이상 믿어준다는 보장도 없다. 코로니스는 배가 점점 불러나올 때마다 나이 들어 늙으면 아폴론에게 차일 거라는 불안감, 애아빠 역할을 할 남자를 찾지 않으면 쫓겨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14] 막상 코로니스를 죽여놓고 후회에 잠기더니 명령대로 스파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인 애먼 까마귀에게 불을 쏴서 까맣게 태워버리는 찌질한 책임전가, 화풀이를 한다.[15]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결국 빈털터리로 전락한 와중에 친절과 환대를 베푼 칼립소에게 너무 기쁘고 감사했던 나머지 잠깐이라도 동침하고 싶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의도가 어쨌든 서양권에서는 이 둘의 섹스가 키르케랑 달리 합의된 것이라 보다는 위계에 따른 강압적인 관계라 보는지, 영문 위키에서는 오디세우스는 신화 속 강간 피해자로 분류되어 있다. 대놓고 오디세우스를 성노리개Boy-Toy라 부르는 기사도 있고, 진지한 학술적 분석이 나올 정도.[16] 사실 아테나가 권력 서열상 제우스 및 헤라 다음 가고 칼립소보다 위계가 높은 12신 중 한 명인데 왜 굳이 직접 칼립소를 압박하지 않고 아버지 제우스에게 도움을 청하는지 의아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른 신이 맡고 있는 일을 다른 신이 개입하는 건 원칙상 금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늘의 제왕이자 신들의 왕인 제우스도 거스를 수 없었고, 격이 높은 신도 그보다 하등한 신의 업무에 끼어들 수 없다. 그래서 아테나는 먼저 아버지 제우스에게 이 문제를 건의해보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제우스와 다른 12신들의 동의를 구해내서까지 오디세우스를 칼립소의 억류에서 구하려고 한 것이다.[17] 오디세우스가 자신이 아니라 페넬로페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저주를 내리지 않고 죽이지도 않은 나는 적어도 질투심에 눈 멀어 오리온을 쏴죽인 아르테미스만큼 졸렬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오리온은 다른 전승에서는 아내 시데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님프와 여자들을 가지고 놀다 버리는 걸로 악명 높은 희대의 난봉꾼이자 쓰레기인지라 순정남이자 애처가인 오디세우스와 비교하기는 무리이다. 물론, 칼립소는 어디까지나 자기들은 실컷 마음에 드는 인간들을 가지고 놀면서 필요 없어지면 버리거나 죽이기끼지 하는 신들의 졸렬함을 강조하려고 그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와 오리온 일화를 꺼내든 것이다. 아르테미스는 사랑을 멀리하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처녀신인 주제에 칼리스토 같은 강간당한 님프들의 말도 안 듣고 쫓아내거나, 본인도 남자와 사랑을 하려는 무책임한 직무유기를 저지르려 했고 끝내는 미련을 못 버려 오리온을 죽이는 찌질함을 보인 적 있었다. 칼립소 입장에서는 이런 아르테미스의 행보가 충분히 졸렬하다고 생각할 만했다.[18]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비교적 짧게 "내가 지위가 낮은 여신이라서요?"라고 소극적으로 핀잔만 주고 순순히 명령을 따르겠다는 선에서 끝낸다. 원전에는 사실 그보다 더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헤르메스를 쏘아붙이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19] 올림포스 12신들은 내로남불이 기본값이니 칼립소 입장에서는 충분히 분노할 만한 일이었다. 거기다 제우스의 명령을 하달하러 온 헤르메스조차 장난기 많은 순수한 소년의 이미지와 달리 자신의 아버지 제우스나 큰아버지 포세이돈처럼 수많은 여인들과의 사이에서 강간 또는 불륜을 통해서 여러 사생아들을 낳은 남신이었다. 이렇게 여인들을 마구 갈취해온 헤르메스가 갑자기 자기에게 찾아와 오디세우스를 풀어달라고 반협박식으로 강요하고 앉아 있는 이 상황이 칼립소에게 있어서는 내로남불이 따로 없었다.[20]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뗏목을 직접 만들어주지 않고 도끼를 건네면서 그걸로 섬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서 뗏목을 만들라고 말한다.[21] 반대로 페넬로페 입장에서는 키르케와 더불어 힘들게 고생하던 남편을 수년씩 붙잡아둔 것도 모자라 유혹하여 바람까지 피우게 만든 불륜녀가 따로 없지만, 동시에 신들의 저주에 시달리던 애꿎은 남편의 목숨도 구해주고 고향으로 갈 뗏목과 식량까지 제공한 은인이라는 복잡하고 입체적인 포지션에 있는 여신인 셈.[22] Mentor.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스승이라는 뜻으로 쓰는 '멘토'라는 단어는 여기서 유래했다. 오디세우스가 갓난아기 텔레마코스를 두고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기 전 친구 멘토르에게 아들의 후견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