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56:27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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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020년 대한민국의 젠더 관련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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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colbgcolor=#ffffff,#1f2023>한국여성단체연합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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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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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SJ레스토랑 불매운동 사건
11월 전국디바협회 트위터 계정 생성
11월 18일 강남패치 수사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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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
3월 29일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7월 27일 서울위례별초등학교 페미니즘 교사 논란
8월 5일 상서중학교 성추행 의혹 교사 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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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현대카드 성폭행 의혹 사건
11월 18일 유아인 사이버 불링 사건
11월 20일 워마드 호주국자 아동 성범죄 사건
11월 30일 배성재의 TEN 작가 SNS 논란
12월 메갈리아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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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검찰청 내부 성추문
3월 5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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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김학규의 일러스트레이터 사상 검증 논란
4월 인벤 메갈리아 편파 운영 논란
2018년 소방관 여성비하 욕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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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서강대학교 인권 강연 논란
5월 16일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관련 논란
5월 19일 제1차 2018년 혜화역 시위
5월 24일 2018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인권축제 사태
6월 9일 제2차 2018년 혜화역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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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그것이 알고싶다웹하드 카르텔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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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유흥탐정 개설
9월 5일 보배드림 곰탕집 성추행 판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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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 구하라가 최종범을 폭행했다는 소식 보도
10월 6일 제5차 2018년 혜화역 시위
10월 15일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10월 17일 유흥탐정 운영자 체포
10월 27일 제 1차 제1차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 시위
10월 29일 뉴스타파, '몰카제국의 황제' 양진호 첫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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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이수역 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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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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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국회 통과
12월 22일 제 6차 2018년 혜화역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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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1월 8일 2019년 체육계 성추문 폭로사건
서강대학교 국제인문학부 성평등위원회 린치 사건
1월 9일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관련 논란 1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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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 2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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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관련 논란 2심 판결
4월 26일 보배드림 곰탕집 성추행 판결 논란 2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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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여성가족부 폐지 국회 국민동의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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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설 '즐거운 사라'
2.1. 마광수의 '작가의 말'
3.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4. 사건의 진행
4.1. 체포와 유죄 선고
4.1.1. 재판
4.2.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구명 운동4.3. 유죄 선고 이후
5. 관련 문서

1. 개요

나는 '민주화'가 한창 강조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적어도 '상식'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솔직하게 글을 써나갔다.
그래서 1992년 여름에 내게 된 소설이 바로 그 '즐거운 사라'이다.
나는 그때까지 사법부의 양심을 믿고 있었기에, "판금을 할 테면 해 봐라. 헌법소원이라도 불사하겠다"고 순진하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저항'의 결과는 나의 '전격 구속'이었다. 이른바 '외설'을 이유로 작가를 전격 구속한, 한국 최초, 세계 최초의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중략) 이젠 제발 '즐거운 사라'를 해금시켜 줬으면 좋겠고, 내가 별 공포심 없이 글을 쓰게 해 줬으면 좋겠다.
마광수, 1999년 12월 12일 조선일보에 실은 칼럼 중 #
이 사회가 기피하는 부분들을 은폐하려고만 하면 아이들은 어디서 알고 어디서 느끼나요? 나는 마 교수가 잘했다고 봐요.
김광석[1], 1993년 2월 월간 『길』과의 인터뷰 중

1992년 10월 29일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1951~2017)가 집필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형법 제243조244조음란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강의 도중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된 후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징역을 선고받은 사건.

이렇게 작가가 공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을 필화(筆禍; 붓으로 인한 재앙)라고 한다. 대부분의 필화는 반체제 인사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로 당하는 것이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야한 소설을 창작했다는 이유'로 대학 교수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2. 소설 '즐거운 사라'

즐거운 사라
파일:external/bookimg.naver.com/115061.jpg
<colbgcolor=#E5C8B4,#E5C8B4><colcolor=#000> 저자 마광수
출판사 청하
출간일 1992년 8월 20일[2]
쪽수 363p
ISBN 8940301463

이 소설은 성에 대해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프리섹스를 지향하는 자유로운 H대학교 미대생 '나사라'가 여러 파트너들과 섹스를 즐기면서 쾌락을 추구하다 결국 방황 끝에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에서 전반적으로 벌어지던 일들[3]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다지 반사회적인 사상을 내세우고 있지 않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성애 묘사들도 비슷한 시기에 버젓이 출판되어 팔린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법적인 처벌을 받을 정도로 음란한 편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1980년대나 90년대에 웬만한 스포츠신문이나 잡지에는 즐거운 사라보다 훨씬 더 선정적인 묘사를 자랑하던 소설이나 만화들이 버젓이 실렸기 때문이다. 무협 소설들도 일명 노루표 무협지라고 하여 웬만한 작품들에 수위가 높은 섹스 장면이 꼭 들어가 있었으며 하다못해 춘향전 같은 고전 문학조차 굉장히 자유로운 성적 묘사가 드러나는 판이다.

동시대 다른 외국 서적과 비교해 봐도 이 소설이 특별히 이상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본프랑스, 독일처럼 서점에 야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나라와는 비교할 것도 없고 《롤리타》나 《소돔의 120일》에 비하면 양반이다. 당시 한국에 출판된 서적들을 봐도 그보다 훨씬 야한 일본의 에로티시즘 소설인 《여인의 추억》이나 《요마록》 같은 물건이 아무 문제 없이 버젓이 출판되었는데 누구는 체포되었다. 사법부에서는 '음란성의 정도를 사회 일반인의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한 적이 있으나 사회 일반적으로 이 소설만이 특히 이상한 것이 아님에도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것은 오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후술된 '작가의 말'을 참고해 보면, 마광수의 의도는 단순히 퇴폐적인 야설을 쓰고자 함이 아니라 20세기 중후반 우리나라의 억압되고 음지화된 성문화를 더 건전하게 조명할 수 있도록 양지화시키고자 함이었으나, 대중과 평론계는 그런 저의는 보지 못하고 단지 성적인 묘사에만 치중해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작가를 고발해버렸다. 어떻게 보면 출간 이후의 사회적 반응이 작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게 된 셈이다.

2.1. 마광수의 '작가의 말'

이 책은 내 세번째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의 개정판이다. 첫 작품 "권태"는 심리묘사에 치중하여 내 잠재의식 속에 있는 관능적 판타지를 발가벗겨 본 것이었고, 두번째 작품인 "광마일기狂馬日記"는 사소설私小說 기법을 사용하여 현실과 공상 사이를 넘나드는 현대판 전기소설傳奇小說을 시도해 본 것이었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는 일인칭 기법을 사용하긴 하되, 화자話者를 여성으로 만들어 보았다. 리얼리즘 기법을 기반으로 하여 일종의 성격소설을 꾸미되, 주인공의 심리적 내면풍경 묘사에 중점을 두어 지금까지 우리나라 소설들이 보여줬던 상투적 여성상을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융통성 있고 적응력이 강한, 말하자면 긍정적인 여성상의 전형을 창조해 보려고 한 것이 내 의도이다.

여주인공 사라의 실제 모델은 없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은 여성이요 내가 늘 그리워하며 꿈꾸고 있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라의 이미지 부각에 중점을 두다 보니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다 잠시 반짝이다 스러지는 비누방울처럼 약하고 허전하게 그려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이 세상 어디엔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로 형상화시켜 보려고 애썼다. 주인공 <사라>만 가지고 봐도, 특정한 모델은 없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내가 만난 여러 여성들로부터 추출된 갖가지 성격의 파편들이 조합組合돼 있다.

물론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겉보기엔 다들 어딘지 모르게 가치관을 미처 정립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이 세상에 오직 겉모습으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나 당위론적 인간형을 그리기보다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멍울처럼 자리잡고 있는 내재적 인간형을 그려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산뜻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썼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소설들은 이른바 야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음습하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대부분 결벽증적 정신주의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설의 목적이 <계몽주의적 설교>에 있다고는 보지 않기 때문에, 일체의 도덕적 코멘트나 이른바 <전망의 제시> 같은 것을 무시하면서, 헷갈리고 방황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해 나가려고 애쓰는 한 여대생의 시각을 통해 전환기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를 조감해 보려고 했다.

나는 여주인공 <사라>를 스스로의 이기적 욕구에 솔직하면서도 한편으론 천진스럽기도 한 여성으로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악할 수가 없고, 또 이성적으로도 완전히 헷갈리거나 완전히 냉철할 수는 도저히 없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윤리>와 <반윤리反倫理>, <절제>와 <일탈逸脫> 사이를 넘나들며 왔다갔다하는 우리 모두의 내면세계를 가시화시켜 보려고 애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야한 부분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산뜻하고 청신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는 한국의 현대문학이 이광수 이래로 고수해 온 도덕주의적 전통이, 한국소설을 정체시키고 답보시켜 온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위선적으로 고착固着된 도덕주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문학작품을 통해 작가의 인격이나 가치관을 저울질해 보려는 태도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사회적 입지를 위축시켜 그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들어 버리기 쉽다.

문학이 준엄하고 결벽한 교사敎師나 사제司祭의 역할, 또는 혁명가의 역할까지 짊어져야만 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질식되고 만다. 또한 소설의 근본은 역시 <리얼리즘>에 있는 바(실제적 현실을 그리든, 내면적 현실 또는 상상적 현실을 낭만적으로 그리든, 모든 것은 다 리얼리즘이다), 그것의 소재가 혹시 퇴폐적이고 반동적인 부르주아적 상상력의 소산이라 할지라도 결코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판적 리얼리즘이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반대한다. 리얼리즘은 글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만 충실해야 하며, 거기에 작가의 당위론적 세계관이 절대로 개입돼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논설이나 평론 등 소설 말고도 얼마든지 많다.

우리나라의 현대문학은 비록 이광수의 계몽주의(또는 교양주의)로부터 시작됐지만 곧바로 김동인의 리얼리즘에 의해서 극복되었다. 성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김동인은 "감자"나 "김연실전"을 통하여 이광수의 편협한 시혜의식施惠意識과 비현실적 이상주의를 극복하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성을 그릴 뿐 거기에다가 섣부른 <진단>이나 <처방>을 첨가시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김동인으로부터 시작된 <문학적 주관의 확립>이 그 이후로 후계자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소설은 그 이후 줄곧 이데올로기나 도덕의 슬하膝下에서 벗어나오지를 못했고, 지금은 오히려 더욱 심해진 <이광수주의>의 단면들이 여러 가지 가면假面들을 통해서 노정露呈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문학적 퇴보라고 나는 생각한다.

"권태"와 "광마일기", 그리고 이번의 "즐거운 사라"에 이르기까지 나는 주로 사랑문제만을 다뤄 왔다. 나는 <사랑문제>와 <성문제>를 특별히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둘 다 인간의 보편적 행복도幸福度를 결정짓는 중요한 인자因子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성만이 인간의 모든 현상을 지배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나는 성이 <사회적 삶>이 아닌 <개인적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껏 성에 대한 일체의 논의나 표현은 구태의연한 조선조식 윤리와 엉거주춤 양다리 걸치기식 눈치보기의 풍조 때문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사회적 자아>뿐만이 아니라 <개인적 자아>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개인적 자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성문제에 대해 툭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한시바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성문제는 마치 <쓰레기통에 뚜껑만 덮어 놓고 있는 양상>과도 같아서, 은폐될 대로 은폐된 채 해결책을 전혀 찾지 못하고 속으로 썩어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새 시대의 조류에 맞는 새로운 성의식이나 성철학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어 사회 전체를 숨막힌 답보상태로 몰아가고 있으며, 정치 · 사회 · 문화 전반에 걸쳐 이중적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보수적 억압의 논리만이 판을 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굳이 자유분방한 연애심리에만 집착하는 나의 문학세계를 변명하는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설사 욕을 얻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일체의 성문제를 사상과 토론의 자유시장에 상장시키고 싶어서 주로 성문제에 치중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밝혀두고 싶다.

"즐거운 사라"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다시 제2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을 탈고한 것은 1990년 6월이었는데,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일 년 뒤인 1991년 7월에 가서야 비로소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꽤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타의에 의해 나온 지 한 달 만에 출판사측이 자진 절판을 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때로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내게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소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손질하여 깁고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말 부분을 바꾸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문장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손질을 가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진짜 결정본決定本 "즐거운 사라"를 이제 독자 여러분들께 새로 선보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에 내는 "즐거운 사라"는 내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과정에서의 우여곡절 말고도, 아무래도 내가 남자인지라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녀의 내면세계를 묘사해 내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을 맡아준 청하 출판사측에 감사하며, 나뿐만 아니라 부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즐거운 사라> 아니 <즐겁게 방황하는 사라>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1992년 8월

마광수
"즐거운 사라" 개정판의 권말에 실린 '작가의 말'.

3.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파일:1200px-Pornography_laws.svg.png
<colcolor=#000,#ddd>파일:초록색 상자.png 포르노그래피가 원천적으로 합법인 나라
파일:노란색 상자.png 포르노그래피가 조건부 합법인 나라
파일:붉은색 상자.png 포르노그래피가 원천적으로 불법인 나라
※1 회색은 자료 없음.
※2 실재하는 아동을 소재로 한 포르노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이며, 위 지도의 구분에 포함되지 않음.
※3 포르노그래피 사이트를 국가 차원에서 접속차단하는 국가들은 이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냉전기 자유 진영인 제1세계에서는 68혁명과 함께 전후 세대에 성적 자유주의가 확산되어 성인이 성인물을 향유하는 것을 개인의 권리로 생각하는 사상이 확산되었으나 대한민국소련이나 중국 못지않게 엄숙주의를 제도적으로 강요하였다. 당시 한국은 계획경제국가, 경찰국가로서 수십 년간 지속된 군사정권 하에서 '북한사회주의 이념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국민을 계도・검열하기 위한 규제가 문화 산업 전반에 아주 팽배해 있었다. 음악계에서는 건전가요가 대표적인 사례다. 배경에는 성 문화를 부끄러운 것이라고 여기고 터부시하는 성리학적 잔재도 깊게 깔려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부의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것도 이러한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저출산의 배경이 되는 데 한몫했다.

1987년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민주화를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국민의 문화 지체는 계속되었고 특히 성 문화와 관련된 의식은 70-80년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주제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의 존재였는데 심지어 후자는 각각 2009년2015년에야 폐지되었다. 불과 20세기까지 한국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도 비교적 최근인 1992년에 일어난 것이며 '국민소득 2만불'을 목표로 하고 선진국의 반열을 넘본다던 한국에서 현직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징역을 선고받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이 유명해진 이유는 마광수 교수가 근대 문학 비평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천재라는 점과 쌍팔년도[4]도 아니고 도화(圖畵)나 영상이 아니라 활자 매체인 소설에까지 공권력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마광수 교수는 '즐거운 사라'만 그렇게 혹독한 처분을 받은 것이 일단 교수가 쓴 것이기 때문이고[5] 주인공 '사라'가 방탕한 삶 끝에 불행해지거나 정신 차리는 교훈적, 도덕적 결말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닐까 하고 언급한 바 있다.

4. 사건의 진행

4.1. 체포와 유죄 선고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1206_376.jpg
연행 당시 모습

당시 1심 판결문[6]

1992년 9월 1일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출판 서적에 대한 검열 작업 도중 《즐거운 사라》를 발견해 검찰음화제조음화반포죄로 마광수 교수와 청하출판사를 고발했고 9월 24일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마 교수에 대한 제재를 건의하였다.

10월 29일 강의 중에 형사가 들어와 그대로 마광수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끌고 가면서 그대로 구속되었다. 출판사 직원도 줄줄이 체포되었고 검찰은 책을 인쇄했던 업체 고려제책(주)을 압수수색해 5천여 권의 서적을 수거했다.

당시 마광수는 검찰에 강력하게 항의하였으나 세간의 인식은 "뭐? 연세대 교수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야한 소설을 써!? 세상이 망했구나! 저 놈을 매우 쳐라!!"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작가 조경휘는 자신의 소설인 '마지막 손오공'에서 "요즘 인간 세상은 대학 교수나 되는 사람이 야한 소설을 쓰고 그게 무죄라고 징징거릴 만큼 품위가 떨어졌고 말세다."라고 비아냥거렸다.[7] 소수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마광수를 옹호하였으나 결국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8]

사건 당시 보수 성향의 유력 일간지 등을 통하여 "마광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손봉호[9]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마광수는 교수가 아니라 마광수 씨로 불러야 한다" 등의 공격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자신의 위세를 높이기도[10] 했으며 이태동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는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여대생과 그를 가르치는 교수 사이에서 문란하고 변태적인 성관계가 성실한 노력의 상징인 학점의 흥정대상이 된다는 것은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라며 마광수와 여제자 사이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고 이문열중앙일보에서 그의 작품을 '구역질을 동반한다, 보잘 것 없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11] 다만 해당 칼럼에서 이문열은 동시에 검찰의 마광수 교수에 대한 대처도 구역질 나는 짓을 했지만 그렇다고 잡아가는 것도 구역질 나는 짓이라며 비난했다. 해당 칼럼의 링크는 이문열 항목에 있다.

실질적으로 마광수를 법적 처리하라고 검찰에 "명령"한 것은 당시 국무총리였던 현승종인데 현승종은 원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자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인물로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다. 민주당계 정권이 들어선 후 극우적인 시국선언에 단골로 나왔다.[12] #

여담으로 문재인 정부 초기 법무부 장관후보자였다가 자진 사퇴한 안경환 서울대학교 교수는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에서 <즐거운 사라> 2차 감정 때 재판부측 감정인으로서 감정했는데 그 감정서로 인해서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

4.1.1.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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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론
各論
내란죄의 의미 (전두환·노태우 내란 사건 / 96도3376) · 주거침입죄의 '침입'의 의미 (초원복집 사건 / 95도2674, 2020도12630) · 내란선동죄의 구성요건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 2014도10978) · 피해자 특정성 (아나운서들의 강용석 고소 / 2011도15631) · 사문서위조 (성수대교 붕괴 사고 / 97도1741) · 업무상배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 2007도4949) · 음란문서제조등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 / 92고단10092) · 사칭과 정통망법위반 명예훼손 (타인을 사칭해 데이팅 앱과 일베에 글을 올린 경우 / 2015도10112, 2017도607)
형사소송법
刑事訴訟法
외국에서의 사인에 의한 체포(2011도12927) · 미국문화원의 관할권(86도403) · 제3자 소유 임의제출물의 증거능력(2021도11170) · 원격지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2017도9747) · 검사의 공소권남용 (2016도14772) }}}}}}}}}


이 판결의 판시사항 및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서울형사지방법원 1992. 12. 28. 선고 92고단10092 판결
[음란문서제조등][하집1992(3),393]
【판시사항】
변태적인 성행위를 선동적인 필치로 노골적,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문서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소설 "즐거운 사라"는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은 각종의 난잡하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선동적인 필치로 노골적,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데다가 나아가 그러한 묘사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문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 고찰하여 볼 때 위 소설은 문학작품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명제와 오늘날의 개방된 성문화 및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형법 제243조[13], 제244조[14]에서 말하는 음란한 문서에 해당된다.

4.2.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구명 운동

마광수를 지지한 연세대 학생들이 구명운동을 벌였는데 "마 교수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가 주한인도대사관의 항의를 받는 일이 있었다. 플래카드를 건 사진이 신문 1면에 실리자 이를 본 인도대사관이 "아직도 우리가 식민지냐"고 항의했고 이에 연세대학교 학생회가 사과했다고 한다.#

4.3. 유죄 선고 이후

이 사건으로 인해 마광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가 1998년에 다시 교수직에 복직하였지만 <즐거운 사라>는 아직도 재판이 허용되지 않는 금서[15]이며 마광수는 국문학계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 전공 수업을 하거나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교양 강의만 하는 교수로 좌천되고 말았다.[16]

이 사건은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현세 화백의 <천국의 신화>와 함께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답 없는 논쟁을 사회 전반에 일으키기도 하였다.

훗날 어떤 열성 팬이 마광수의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전부 손으로 쳐서 올렸다가 2007년에 마광수 본인이 약식기소되기도 하였다. '달라진 시대상에 비추어 봐도 음란물이기는 하지만 과거 정식기소했을 때보다는 음란성이 약하다'는 것이 약식기소의 이유였다.# 마광수는 이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즐거운 사라> 때문에 전과가 두 개나 생긴 것이다. 이때 마광수는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 책 하나 때문에 불거진 두 사건으로 생긴 전과는 마광수가 정년퇴임한 뒤 연금조차 못 받게 만들었고 퇴임한 지 1년 뒤 자살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2009년 인터뷰

마 교수는 2016년 강단에서 퇴임하였다. 전과 때문에 연금 수급에 문제가 있어[17]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우울증까지 심해져 결국 2017년 9월 5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마광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아내측도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마광수는 이 사건에 대해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말대로 10년이 지난 2002년과 이후를 기준으로 야만적이었던 그 시절을 상징하는 비웃음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즐거운 사라>에서 묘사되는 삶의 태도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등장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성적인 개방이 이루어졌지만 마광수를 유죄로 만들고 <즐거운 사라>를 금서로 만든 법조항은 아직도 살아 있으며 그 판결도 전원합의체로 변경되지 않았다. #[18]

그리고 <즐거운 사라>는 재출판되지 않고 있다. 재출간되려면 유죄 판결을 재심을 통해 뒤집어야 하는데 마광수 본인이 상술한 '홈페이지 사건' 당시에도 항소를 아예 하지 않았을 정도로 법정 다툼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요원한 일이었고 결국 재심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즐거운 사라>가 다시 정식 출간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일은 없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마광수 교수의 윤동주 연구가 주목받으면서 야한 소설이나 쓰는 사람이라는 오명도 어느정도 털어냈다.

5. 관련 문서



[1] 후술하겠지만 마광수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이래 최초로 방송 출연정지에 오른 적이 있다. 초대 게스트로 출연한 마광수에게 간통죄에 대해서 먼저 물어봤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 "사람이 도덕적인 틀에 얽매여서 진실을 왜곡할 때가 많다. 도덕성보다는 솔직성이 중요하다."라는 등 비판적인 그의 발언에 "맞습니다"라며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혼전순결과 관련한 마 교수의 부적절한 발언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는 이유에서였다.[2] 초판 16쇄 발행일이 1992년 10월 30일인데, 10월 29일에 작가가 구속되고 이후 인쇄소에 남아있던 5천부가 수거되었으므로 16쇄까지만 발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3] 21세기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고 언론을 통제하기 상대적으로 쉬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묻혔을 뿐 훗날 재발굴된 당시의 성추문들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도 혀를 내두를 만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웬만한 부자나 공무원들은 죄다 본부인 이외에 을 거느리고 사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86세대라고 불리는 당시의 젊은이들도 이들을 동경하여 권력자가 되면 자신도 수많은 여자들을 거느리고 살 것이라든가 첩이라도 좋으니 부잣집에 들어가고 싶다든가 하는 대사들이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곤 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벌어졌던 정인숙 살해사건만 보아도 당시 한국인들이 얼마나 방탕하고 난잡한 성생활을 즐겼는지 알 수 있다.[4] 쌍팔년도를 1988년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서기로 쌍팔이 아니라 단기로 쌍팔이다. 즉 1955년이다.[5] 만약 마광수가 대학 교수가 아니라 스포츠신문이나 잡지에 성인 소설을 연재하던 평범한 소설가였다면 처벌을 받기는커녕 그 이름조차 언론 매체에 언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들도 있다.[6] '범죄사실'의 2번째 줄에 언급된 불교방송에서 김광석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밤의 창가에서'에 출연하여 성적인 발언을 하였다가 출연금지 처분을 받은 일은 1991년이 아닌 1992년에 일어났다.[7] 그런데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손오공'은 작중 내내 온갖 섹드립이 난무한다.[8] 항소심에서는 재판장이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이 공개된 바 없어 저 소문의 진위는 확인하기 어렵다.[9] 국어국문학과는 학과 문서에도 있지만 문과 기초학문의 보루이기 때문에 역사 깊은 학교들은 모두 나름의 역사와 고유의 업적, 학풍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연세대서울대는 그 중에서도 견원지간인 데다 연대 국문과 내부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마 교수는 이중고를 겪은 셈이었다. 손봉호는 국문학자도 아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소속이었는데도 이 정도 극딜을 해댔다. 특이한 것은 손 교수는 매춘을 막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에 의거해 공창제에 찬성했다고 한다.[10] 손 교수는 이후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초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다.[11] 1990년대부터 마광수는 이문열전두환 정권의 교육정책에 대한 문제점 덕분에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정곡을 찌른 발언인데 이문열 본인은 전두환의 생일 잔치에도 참가했을 만큼 전두환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대표작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인 엄석대가 바로 전두환에 대한 이문열의 그리움을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정설로 통한다.[12] 다만 이 부분은 심재륜 전 대검 중수부장의 발언에 따르면 수사시작은 본인의 의견으로부터 시작했으며 훗날 검찰총장에 오르는 김진태(1952) (당시 특수 2부 소속)검사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한다.[13]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4] 제243조의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5] 시장에 극소수 풀렸던 1992년 초판본만이 수집가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실정이다.[16] 마광수도 강의 시간에 대놓고 다른 국문과 교수들을 깠다. 다만 필화 사건 이후 해임 및 복직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개인주의를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고 한다.[17] 다만 징계를 받아도 50% 정도는 수급을 받은게 있었다.[18] 사실 판례라는 것은 시대상에 따라 충분히 바뀔수 있는 것이기에 새 판례가 나온다면 높은 확률로 무죄, 혹은 벌금형 정도로 끝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검사가 기소해 봤자 무죄나올게 뻔해 아예 건들지도 않다보니 새 판례가 나오지도 않는 것이다.[19] 현직 교수라는 신분이 크게 작용하여 처벌까지 간 대표적인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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